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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동 숲 아래 동네

역시 카메라를 늘 지니고 다니는 습관이 중요하다.

 

그러나 나는 옷 보따리 두 개에다가 또 하나의 보따리를 양 손에 나눠 들고 있었다.

핸드백까지 어깨에 걸고.

요즘은 무조건 가벼운 짐, 그것이 움직임의 제 1의 조건이다.

어깨가 쑤시고 다리가 아퍼 지하철에서 빈자리가 보이면 쏜살같이 달려가 엉덩이부터 디밀고 본다. 다리를 구부려 앉을때 입에서는 어어어어이휴 소리가 난다.

한창 때 들고다니던 가방은 무조건 배낭, 그 안에 읽고있는 책은 물론이요, 혹 기분이 달라질 경우를 대비하여 소설도 하나 더 챙겨넣고, 사전도(사전은 왜?) 챙겨넣고, 하여 항상 바윗덩어리 가방을 메고다니면서도, 지하철의 빈자리는 소 닭 보듯 하였던 시절이 있었건만. 그러니 삼단 같은 머리채의 청춘들아 이 내몸이 늙었다고 괄시를 말게. 내일이면 그 청춘은 바람결에 사라지고 돌아보면 아득한 꿈이련가 할터이니. 이러니 무슨 얼어죽을 카메라인가 말이다.

 

그 동네는 도심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숲 아래 있었는데, 세련되게 뽑아놓은 공원의 숲도 아니었고, 그냥 어쩌다가 이렇게 되어버렸다는 듯한 숲이었다. 듬성듬성 나무 아래 봉숭아와 무슨 덩쿨(나팔꽃인지 호박인지 -원래 이 둘의 차이를 정확히 알고 있으나, 기억이 가물가물)이 섞여있었다. 그러니까 모양이 꼭 시골길 같았다.(시골이라면 단지 '길' 정도의 모습이었는데, 도심 한복판이라 그 정도의 모습으로도 '숲'이 연상되었다.)

그런 숲 아래, 친구 집이 있었는데, 그 집 또한 도심 한복판 하고는 어울리지 않았다. 마치 30년 전의 내 기억에서 고대로 불쑥 튀어나온 듯한 집. 시멘트로 마감한 오르막길 한쪽에 엉성한 시멘트 층계가 있고, 그 오르막길 위에 철 대문이 있었다. 철 대문은 대충 열려있는 모양이었고, 그 안으로 들어서니 양팔 벌린 너비의 기다란 시멘트 마당이 있었다.

 

그 집으로 가기 전, 나는 고양이 두마리를 보았다.

어느 집에서 이불을 담장에 걸어놨는데 그 이불 아래 두 마리가 누워 자고 있었다.

한 마리는 배를 한껏 늘어뜨려 아주 길고 긴 자세로 자고 있었고, 다른 한 마리는 등을 바닥에 대고 앞 다리 한 쌍은 머리 옆으로 들어올려 만세 자세 처럼 하고는 땅에 내려놓고 뒷 다리 한 쌍은 공중을 향해 치켜 든 채 자고 있었다.

색깔도 비슷한 두 고양이. 그 모습이 한 편의 코메디 같기도 하고, 한 편의 소설 같기도 하여 한참을 바라보았다.

 

이 쯤에서 사진들이 들어있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다음엔 꼭 사진기를 가지고 다니자. 다른 짐들은 다 포기하더라도 사진기만은 놓치지 않는 자세, 그것이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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