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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순이 때문에 눈물콧물 짬

오랜만에 나에게 드라마 바람이 불었다.

마지막 바람이 언제였던가....

제목이... <신(新)황태자전>이던가?

최지우가 재벌집 딸인데, 결혼하라고 닥달하는 부모로부터 도망가기 위해 (영국유학중인) 약혼자가 있다는 뻥을 치고 잠시 그 약혼자가 한국에 왔네, 쑈를 하며 부모에게 잠깐 선을 뵈는 작전을 피우는데, 그 작전용 약혼자로 생수배달원 김승우를 내세웠다가, 둘이 정말 사랑하게 되어 고비를 넘기고 결국 결혼에 골인한다는 이야기.

옆에서 날 한심하게 보는 남편, 오죽하랴, 나도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 뻔한 유치뽕인 줄 알면서도, 생수배달원 김승우가 이용만 당하고 상처받을까봐 노심초사하며 보았다.

 

그 전 바람은, <8월의 신부>.

김지호가 쓰러졌다 다시 깨어나는데 다시 깨어나는 바람에 전생을 기억하게 된다. 전생에 그녀와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는 남자의 친구의 배신으로 불운한 죽음을 맞았다. 그때 둘이 못다한 사랑과 억울한 죽음에 한이 맺혀 전생의 모습을 그대로하고 다시 태어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김지호는 그것을 기억하나 남자(정찬)는 모른다. 남자에겐 이미 약혼녀(박상아)가 있다. 김지호는 그를 적극적으로 설득할 자신이 없다. 그런데 슬슬 이 남자도 왠지모를 힘에 의해 강력하게 김지호에게 끌림을 느낀다. 아, 전생의 못다한 사랑의 인연과 현생의 또렷한 사랑의 기억, 이 갈림길에 선 자의 선택은...

이건 유치뽕이라고 생각할 틈도 없이 정말 몰입해서 봤다.

 

김지호가 우수와 비련에 찬 표정을 도회풍으로 세련되게 구사하며 나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았었다. 남자주인공 정찬은 지금이나 그때나 어금니로 발음을 씹으며 눈썹 찌푸리는 게 연기의 전부이지만, 지금이나 그때나 알 수 없는 이유로 나의 호감을 받고 있다. (지난 총선때 민주노동당 지지자로 커밍아웃을 하여 그나마 떳떳하게(?) 호감을 드러냄)

회사 다닐때 방송되었던 것인데, 회식이 있어 보지 못하는 날엔 엄마에게 신신당부를 하여 비디오 녹화까지 하면서 봤다. (당시 이 드라마가 제법 인기드라마였던 듯, 회식 끝나고 내가 이 드라마를 녹화했다는 소문이 사무실 내에 돌자, 남녀젊은 사원들이 앞다투어 대여해갔다. 나는 김지호와 정찬의 휀이라 그 둘의 사랑을 절찬 지지하고 있었고, 박상아(정찬의 현생 애인)는 거들떠도 안 보고 있던 와중이었는데, 선배사원 하나(남자였음)가 박상아 캐릭터가 정말 사랑이란 무언지, 어떻게 해야하는 건지 아는 인물이라고 침이 튀기도록 칭찬을 하여 잠시, 정말 사랑이란 무언지,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지 생각해보았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그때 그 교훈이 가끔 떠오르곤 한다. 사랑이란 무언지,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지 가만 생각해보아야하는 것이란 교훈. 그러고보면 그 선배사원, 사랑을 진지하게 생각할 줄 아는 남자였었던 것 같다. 내 타입이 전혀 아니게 생겼다는 게 그와 나 사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게 하였지만, 검지손가락에 반지를 끼고 다니던 그 남자, 지금 누군가를 진지하게 사랑하며 잘 살고 있기를...  )

 

그리고나서 완전히 잦아들어 이제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던 드라마 바람이 다시 불었다.

뭐, 이 까짓것 이주일에 한 번 볼까말까해도 내용 다 꿰겠고, 봐봤자 성질만 돋구고 안 보느니 못하다,라는 편이었는데, 갑자기 불이 붙었다.

구재희(배우 이름이 강지환이라고 함, 오, 새 인물 발견)의 사랑이 메마른 내 가슴에도 불을 붙인 것이다.

어제는 드디어 내 손으로 테레비를 켜고 보았다.

그리고는 얼마나 질질 짰는지 모른다. 박인환의 연기 때문에.

박인환은 금순이의 시아버지인데, 아들이 죽은 후, 손자를 낳아 제 집에서 살고 있는 며느리, 금순이가 이제 재혼을 하려하자, 금순에게 손자를 이 집에 놔두고 결혼하라고 협박, 호통, 애걸, 간청한다. 그 때까지는 고집쟁이 이기주의자 같기만 했는데, 오밤중에 몰래 죽은 아들 사진을 가슴에 부비며 눈물을 철철 흘리는 장면에서 그만 나도 같이 울어버렸다.

금순이도 그걸 봐버렸다. 시부모와 대적 상황이기만 했던 금순의 마음은 이로써 대선회하여, 시부모가 가엾어 그들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고 한다.

 

사랑하는 여인, 금순이 괴로워하는 것을 보며 또한 괴로워하는 남자, 구재희(강지환).

오늘 그는 금순과 차라리 헤어질 결심을 하며 전화를 걸어 일부러 잔인한 말을 내뱉는다.

그때 그의 그 일그러지며 오열을 삼키는 표정, 아!

이 표정 때문에 드라마 끝나고도 한동안 멍했다.

구재희랑 금순이랑 정말 헤어질까봐 내 가슴이 쓰라리다.

둘이 헤어지면 얼마나 그들 가슴이 찢어질까.

아니야, 현실에 저런 사랑이란 없어, 하고 의도적으로 냉정한 말을 뱉었다.

드라마에 빠져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스스로에게 일침을 주기 위한 것이었지만, 사실 그렇다.

실제로 저런 식의 사랑은 드라마 식의 드라마틱한 사랑인 것이다.

실제 사랑이 아니라, 실제 사랑을 그럴싸하게 흉내낸 밀랍 장식 같은.

그런데도 왜 나는 정신을 빼앗길 정도로 설득당하였는가.

사랑이란 그런 것인가.

아무리 비현실적이라고 한들, 그래서  엔터테인먼트용이거나 혹은 장식용라고 한들, 없느니 차라리 존재하여야할 것인가.

그래서 보이면, 아주 희미하게 보여도 보이기만 하면 거기에 매달리는가.

그리하여, 그러나, 그래서, 그럼에도 사랑은 결국 .... (이하 생략)

 

나는 혼자 각본을 썼다.

그래서 두 사람은 헤어진다. 그러나 두 사람은 헤어지지 못한다. 너무도 괴로워하는 모습에 주변 사람들이 둘을 다시 엮어준다. (아이를 두고가라던 시아버지가 결혼까지 포기할 뻔하는 금순의 모습에 반성하며 아이를 보내기로 결심한다.)

이렇게 혼자 해피엔딩의 각본을 쓰며 내 마음을 달랬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다음 싸이트 우표사진 뉴스에 금순이 웨딩드레스 입은 사진이 걸렸다. 마지막회 사진이란다. 둘이 결혼에 결국 성공하는 것이다. 그걸 보고 내 마음이 비로소 정말 달래졌으니, 결혼은 사랑의 해피엔딩이 아니라는 평소의 믿음도 드라마 앞에서는 말짱 헛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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