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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08/08
    천국을 불사르자!!
    뒤질레
  2. 2005/08/08
    좆깥다 병신새퀴
    뒤질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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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로그 작성
    뒤질레
  7. 2005/08/08
    뒤질레
  8. 2005/08/08
    뒤질레
    뒤질레

천국을 불사르자!!



♪ Heaven Shall Burn ♪

 

 

여름엔 메틀코어가 짱이다!!
유럽과 미국 메틀, 하드코어, 펑크씬에서는 노래하는 사상의 범위가 아주 넓다. 스킨헤드 신나찌 쌟들에서부터 극좌 폭력 혁명을 노래하는 녀석들도 많다. 섹피는 아나키를 노래했고, RATM은 부시의 악의 축에 대항해 정의의 축을 만들었다.  디어사이드는 신을 죽이려했다. 오코너는 주류 미디어에나와 교황을 암살했으며, 핑플은 문명을 싸잡아 엿먹였으며 존레논은 공산주의를 꿈꾸었다. 퍼블릭에너미는 혁명 랩을 완성했다.
지금의 저항음악을 하는 메탈그룹은 극단적 헤비니스라는 초강력 무기를 가지고 음악으로 게릴라전을 펼쳐댔다. 오늘은 천국을 불살라버리는 놈들의 음악이다. 말이 필요없다.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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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지각있는 직접적 행동을 요구하는 하드코어 정신에 충실한 독일 출신의 5인조 밴드. Heaven Shall Burn 은 90년대 중반 독일에서 결성되었다.그들 스스로가 동독 출신으로 통일을 겪어서 인지, 그들 가사는 초기부터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비판을 통해,팬들이 밴드에 대해 어떤것도 소홀히 할수없게 해주었다.현재 유럽의 메틀코어씬은 Caliban 이나 Destiny 같은 팀들이 강세로서 Lifeforce 패밀리에 주도되고 있는데 이들 Heaven Shall Burn 도 역시 이곳 출신이다.전세계로의 도약을 위해 Century Media 사와 계약했으며 기존의 멜로딕 데스메틀팬 들과 메틀코어에 새로운 관심을 쏟는 매니아들이 듣기에 더할나위없이 적합한 밴드이다. 이들의 연주방식은 멜로딕 데쓰메틀적인 요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파워풀한 연주에 스며든 음악적 감수성이 균형적인 발전을 이루고 있다.

메틀코어는 연주방식에서 헤비메틀에도 깊은 이해를 갖추고있어 자신들의 연주방식을 보다 깊고 명확히 표현하고 있다. 라이프스타일에선 하드코어 노선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하드코어는 음악을 떠나서 개개인에게 삶의 방식이나 이념까지 제시하는 성격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메틀코어 밴드들의 라이프 스타일은 하드코어에 충실하다. 바로 하드코어의 이념을 따르고 있는 독일출신의 메틀코어 밴드 헤븐 셸 ! 이들은 일부에선 'Vegan Metal'이라고 불리기도 한다.(실제로 멤버 전원이 채식주의자이며 4명이 스트레이트 엣지 사상에 발을 들여놓고 있다 )

첫 미니앨범은 1998년 Deeds Of Revolution Record를 통해 발매되었다. 곧 새로운 기타리스트 Patrick Schleitzer를 가입시켜 최종 라인업을 이루었고, 1999년 역시 같은 레이블에서 Fall of Serenity 와 함께 스플릿 LP를 발매하였다. 2000년에 드디어 밴드는 첫 데뷔앨범 [Asunder]를 Impression Music을 통해 발매하게 되었고, 유럽 외의 지역에선 라이프포스 레코드(Lifeforce Records)가 배급을 맡게되었다. 또한 그들은 같은 독일밴드 칼리반과 함께 스플릿 CD를 완성하고, 스페인, 포르투갈, 스위스, 이탈리아, 베네룩스를 잇는 투어를 감행하였으며, 2001년 겨울 밴드는 곧 다가올 새로운 CD에 들어갈 곡들을 준비하게되었다. 2002년 발매된 두 번째 앨범 [Whatever It May Take]를 발매하여 긍정적인 평가와 더욱 많은 페스티벌에 참여하면서 이름을 알려나갔다.

깨어있는 현대 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헤븐쉘번 식의 사회적 메세지 전달 Antigone

"우리는 설교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생각하게 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것을 원합 니다." 라고 하는 Heaven Shall Burn 은 밴드 이름에서 부터 큰 의미를 두고 있다.실제로 이 이름은 Marduk 의 트랙이름과 일치하기도 하는데 Heaven Shall Burn 은 " 그것이 우리가 사타닉밴드임을 의미하거나 Marduk 팬이라서는 아니구요.우리가 Heaven 을 사용한 것은 사람들이 자신 들의 마음속에 만들어내는 잘못된 낙원을 은유해 본것입니다.우리는 사람들이 생각해 보는 것을 원했고 그것을 통해 무엇이 중요한 진실인지 찾기를 말이죠.그래서 잘못된 낙원은 불타버려야 했 죠 ! 그것이 Heaven Shall Burn 우리만의 의미입니다 "





가사

The Weapon They Fear lyrics
Words - these words of freedom
A bequest - never to be silenced

In this world of lies, the truth, it means resistance
To make the masses see and sense their needs

He healed so many aching hearts and wounds
And threw back the baseness - back to where it came from

Aspired from the middle of his brothers
Charged this suffering and oppression
One single voice became a storm
His words and melodies - the weapon they fear

Threw back the baseness - back from where it came

Nobody is chosen to suffer
Nobody is destined to rule
Gagged his mouth but not his songs, the songs we sing
Fettered his hands but not the words he wrote
These songs we'll sing!

"Silence and screams are the end of my song." - Victor Jara
빅토르하라를 인용했따. 빅토르 하라는 누군가?


빅토르 하라. 이 사람의 이름을 들어본 사람이 우리들 중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에서 땅을 직각으로 파고 들어가면 혹시 나올지도 모르는 지구 반대편의 대륙에서 어느 날 한 가수가 죽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개의 가수들은 늙어 죽거나(요새 우리 저녁 뉴스에는 가끔 잊혀진 옛가수들의 죽음이 나온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두 명의 가수가 죽었다. 황금심과 고운봉) 아니면 사고로, 그도 아니면 마약 중독이나 자살로 유명을 달리 한다. 가수가 총맞아 죽었다는 얘기는 주변에서 쉽게 들어볼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 흔하게 들을 수 없는 노래와 흔하게 들을 수 없는 사연의 중심에 빅토르 하라가 놓여 있다.

 솔직히 빅토르 하라의 노래를 들은 것은 올해(2001년)초의 일이었다. 그의 음반이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물론 정식 라이센스 음반이 나온 것은 아니고, 수입 음반도 최근에서야 들어오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의 노래를 듣기 전부터 그를 좋아했다. 가수를 좋아한다는 것은 영화배우나 탈렌트를 좋아하는 일과는 틀린 일이다. 영화배우나 탈렌트에 대해서는 그들의 연기보다는 그가 풍기는 이미지나 외모를 좋아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가 연기한 작품을 하나도 보지 못하더라도 좋아할 수 있지만 가수는 그의 노래를 들어보기 전에 어떤 근거로 좋아할 수 있게 될까?



"내게는 가난한 사람들의 고민과 희망을 아주 강렬하게 느끼게 해주는 출신 배경이 있습니다. … 나는 그들을 도와주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투쟁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그 스스로 자립할 수 있게 해주고 더 나은 세상을 보게 해줘야 한다는 게 나의 희망입니다."





그래서 시인의 음성은 들리게 되리라
죽음이 나를 앗아갈 때까지
죽음이 가는 길을 따라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민중의 바람」 중에서





빈민촌에서 빅토르 하라









빅토르 하라의 음반들 - 현재까지 국내에 공식적으로 그의 음반이 발매된 적은 없다.
 

 그러고 보니 우연한 기회에 우리들은 그의 노래를 들어보았을 지도 모른다. 예전에 아직 우리나라에서 최루탄 가스 냄새가 가시기 전에  TV에서 영화 <산티아고에 내리는 비>(혹자는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라고 합니다만 어쨌든)를 통해서 짧지만 빅토르 하라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실제로 그가 주인공은 아니고 배우가 대신한) 어떻게 그때 우리나라에서 그런 영화를 TV에서 해주었는지 모르겠다. 칠레의 독재자 피노체트가 가장 존경한 이가 우리나라의 박정희였고, 그가 죽었을 때 조기를 게양하도록 했다는 이야기가 있고 보면 한국과 칠레 사이의 우호 증진을 목적으로 그리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칠레의 선거 혁명으로 이룩한 짧았던 칠레의 봄은 피노체트의 쿠데타에 의해 못다핀 꽃 한 송이가 되고 말았다.이 영화 <산티아고에 내리는 비>는 쿠데타군의 병사들이 아옌데 정부를 지지하는 시민들을 마구잡이로 끌고가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병사들의 총구가 삼엄하게 주변을 경계하는 체육관. 사람들은 모두 겁에 질려 아무 말 못하고 머리를 푹 숙이고 있다. 그곳에서 머리가 덥수룩한 젊은이 하나가 조용히 노래를 부른다.

“벤세레모스, 벤세레모스(단결하라! 단결하라!)”

 점점 그의 노래 소리는 커가고, 체육관의 모든 사람들이 그 노래를 따라 부르자 군인들은 그 젊은이를 끌고 나간다. 그가 바로 칠레의 전설적인 민중가수 빅토르 하라였다. 그는 영화처럼 실제로 총구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리고 그 댓가는 양 손목이 부러진 싸늘한 주검이 되어 사랑하는 아내 조안 하라에게 돌아오는 것이었다. 칠레의 어떤 가수. 빅토르 하라는 그렇게 아옌데 정부와 운명을 함께 했다.

누에바 깐시온과 벤세레모스(단결하라!)

 라틴 아메리카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서는 앞서 다룬 바 있는 시몬 볼리바르와 살바도르 아옌데, 체 게바라 편을 참고한다면 빅토르 하라와 누에바 깐시온을 이해하는 데 보탬이 되리라 생각한다. 소위 '제3세계(이제는 무너져버린 용어이지만)'의 음악이 음악학자에게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은 일이다. 아들러(Guido Adler), 크리잔더(Karl F. Chrysander), 리만(Hugo Riemann)으로 이어지는 독일의 음악학 전통은 주로 음악이론, 서양음악사, 음악미학으로 대표되는 예술음악, 혹은 악보로 전해지는 음악들에 대해서만 관심을 보여왔고, 그 악곡의 형식에 치중하는 경향을 보여 정작 그 음악을 만들고 향유해왔던  인간에 대한 무관심해왔다. 그후 이에 대한 반성으로 "음악이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고 향유된다"는 극히 자명한 명제에 대해 음악학자들이 새삼 눈길을 돌리며 제3세계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음악이 새로운 관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그 중에서도 라틴 아메리카의 '새로운 노래(누에바 깐시온)'은 "월드 뮤직"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형성하는 주축으로 성장하고 있다. 누에바 깐시온(Nueva Cancion)이라는 말은 1969년 라틴 아메리카에서 처음으로 생겨났다. 칠레 산티아고에서 열린 제1회 누에바 깐시온이라는 행사의 이름으로 붙여졌던 것이 그 범위가 점점 더 넓어져 1970년대의 민족운동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칠레에서의 노래운동은 1960면대 초반 민속에 대한 연구와 보급이 주요활동이었다. 비올레타 파라(Violeta Parra), 로욜라(Margot Loyola), 피사로, 파바스 등은  칠레의 변방과 인디오 거주지에서 상당한 양의 노래와 시, 전설, 춤을 채집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뿌리를 단순히 스페인 등 유럽에서 이식되어 온 것이 아니라 인디오들의 문화와도 그 뿌리를 함께 하고 있다고 인식하였고, 자신들의 뿌리로서 그 문화를 보호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고, 그런 의식을 대중에게도 널리 전파하였다.

 이중에서도 빅토르 하라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은 비올레타 파라였다. 파라는 칠레의 평원과 산악지역을 횡단하면서 거기서 흡수한 지식과 대중예술을 바탕으로 자신의 노래를 만들어 남미 전역에 그녀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

 빅토르 하라는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 인근의 변두리 로껜(Loquen)이란 시골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마누엘(Manuel)은 소작농이었고, 술주정뱅이였다. 하라의 어머니 아만다(Amanda)는 생계를 위해 온갖 잡일을 해야만했다. 그러나 아버지 마누엘은 술만 마시면 어머니를 구타하곤 했다. 아버지는 더 나은 돈벌이를 위해 다른 지방으로 떠나 버렸고, 하라의 어머니는 홀로 남아 자식들을 키웠다. 그의 어머니는 고된 노동 뒤에도 어린 빅토르에게 기타와 칠레 민요를 들려주었다. 하라는 어머니에게 기타와 칠레 민요를 배웠다. 1950년 3월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던 하라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는다. 어머니의 죽음이 그에게 던져준 상심은 큰 것이었다. 그는 다니던 상업학교를 포기하고 신학교에 입학했으나 신앙에 대한 회의로 퇴학당하고 군에 입대한다. 제대한 뒤 다시 로껜으로 돌아온 빅토르 하라는 포크 음악과 연극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 무렵 칠레의 전통음악에 대해 공부하던 빅토르 하라는 어느날 비올레타 파라를 만나게 된다. 빅토르 하라는 그녀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일을 하며 대중들에게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1970년 그의 데뷔 첫 앨범을 내었고, 곧 칠레 전역의 들끓는 정치적 운동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 그는 라틴 아메리카 노래 운동의 상징인 누에바 깐시온(Nueva Cancion) 운동을 벌여 나가고, 그 와중에서 미국을 등에 업은 자본가들과 군부에 대항하는 사회당과 아옌데의 대통령 선거를 위해 유세에 참여한다. 결국 칠레 민중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살바도르 아옌데는 칠레에서 민주적 선거에 의해 당선된 최초의 사회주의 정권을 수립하게 된다. 그러나 이에 반발한 미국과 군부에 의해 피노체트 군사 구데타가 발생한다.

노래의 가장 좋은 학교는 삶 그 자체다

 비올레타 파라를 만나기 전, 이미 어머니로부터 칠레 민속 음악의 세례를 받고 그 자신이 일찍이 시화 노래와 연극을 사랑한 청년이었던 빅토르 하라는 스무살이 되던 해에는 사라져가는 칠레의 전통민요를 조사하고 채집하는 등의 자각을 보였다. 그런 그에게 민요운동의 선구자 비올레타 파라와의 만남은 열정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 되었다. 그는 '쿤쿠멘'이라는 보컬 그룹의 일원이 되었다. 쿤쿠멘은 전통 민요와 민속춤을 채집하여 그것을 연구, 연주하는 데 주력하는 그룹이었다.

 빅토르 하라는 쿤쿠멘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음반을 취입하고, 대규모 군중집회에서 연주했다. 하라가 칠레 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의 일이었다. 그는 또한 연극 연출 분야에도 두각을 나타내어 그가 처음 연출한「행복 비슷한 그 무엇」이라는 작품으로 상당한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빅토르 하라가 조안 터너를 만난 것은 칠레 대학 연극학과의 연기 동작 강의에서 스승과 제자 사이의 만남이었다. 영국출신의 무용가 조안 터너는 전남편인 안무가 파트리시오하와 이혼하고 첫 딸을 낳은 후 매우 상심해 있는 상황이었다. 조안은 빅토르 하라와의 사랑을 통해 결혼에 실패한 상처를 치유받고 칠레와 민중의 상황에도 눈을 돌리게 되었다.






빅토르 하라 연보

1935 산티아고에서 50마일 가량 떨어진 론껜의 가난한 소작농의 자식으로 태어남
1950 겨울 산베르나르도 시의 속신 수도회 소속 신학교에 입학
1952 3월 신학교에서 퇴학
1956 칠레대학 부설 연극학교에 입학
1958 칠레의 민속, 민요 운동 보컬 그룹 '쿤쿠멘'의 단원이 됨.
1960 10월 영국출신의 무용가 조안과 사랑에 빠짐
1961 12월 칠레 대학교 연극연구소 상임연출가
1962 '쿤쿠멘' 그룹의 민요모음집 『칠레의 음악지도』 출반
1963 민속예술학교 설립
1965 희곡작품 「방랑자」,「술책」을 연출하여 카우폴리칸 상과 비평가 상을 수상. 첫 독집 레코드 『라코시네리타』출반
1969 6월 독집 레코드 『당신의 벌린 손 안에』출반
1971 4월 독집 레코드『평화롭게 살 권리』출반
1973 9월 11일 아옌데 정권 붕괴
1973 9월 14일 실내 체육관 지하실에서 피살




 

 이들의 결합으로 칠레 대학에는 새로운 형태의 무용극과 연극, 음악 공연과 노래공연의 중심이 형성되었다. 빅토르 하라의 연극연출가로서의 특출한 재능과 열정은 제도권에서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졸업과 동시에 대학 연극연구소의 상임연출가 자리를 얻게 되었고, 1965년에는 가장 훌륭한 연출가들에게 주는 권위있는 상들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연극 연출 분야에서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 속에 있는 음악에 대한 갈증을 풀 수 없었다.

"내게는 가난한 사람들의 고민과 희망을 아주 강렬하게 느끼게 해주는 출신 배경이 있습니다. … 나는 그들을 도와주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투쟁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그 스스로 자립할 수 있게 해주고 더 나은 세상을 보게 해줘야 한다는 게 나의 희망입니다."

 그는 제한된 장소에서의 공연이라는 연극의 한계를 극복하고 좀 더 많은 사람들과의 직접적인 의사소통을 원했다.

 1960년대 중반 칠레는 정치적 혼미를 거듭하게 된다. 라틴 아메리카는 미국의 지배와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고자 악착같았던 부르주아 계급이 각성하고 있는 민중을 억압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하라의 음악도 개인적인 내용을 담은 노래에서 도시와 농촌에서 삶의 뿌리가 뽑힌 민중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담은 사회적 노래로 변모해갔다. 그는 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에게 바치는 노래 <유령>을 비롯해서 앞으로 닥쳐올 피노체트의 쿠데타를 예언한 듯한 노래 <군인들>을 포함해서 많은 노래를 만들고 불렀다.

아옌데와의 만남, 승리 그리고 죽음 - 끝나지 않은 노래

 빅토르 하라는 살바도르 아옌데가 이끄는 인민연합의 승리를 위해 신변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아옌데 정부를 승리로 이끌기 위해 그는 민중벽화운동, 민중발레단, 노래운동 등 다양한 방면의 민중문화 운동 세력을 결집시켰다. <벤세레모스>는 하라가 쓴 시를 첫 번째 선거운동극이었다.

 아옌데가 승리하고 세계 최초로 선거를 통해 선출된 합법적 사회주의 정부가 출현했다. 학생들은 문맹퇴치를 위해 자발적으로 노동자와 농민들을 교육했고, 예술가들도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들의 문화 예술 창조 욕구와 잠재력을 자극할 수 있는여러 활동을 벌여 나갔다. 그러나 사회주의 정부를 시기한 기득권 세력은 그들에 의해 장악된 언론을 이용해 악의에 찬 여론 조작을 해나갔다. 하라는 1971년말 라틴 아메리카 전역을 순회하며 칠레 민중들의 삶의 역사와 고난의 역사를 노래했다. 점증해가는군부의 쿠데타 음모를 경고하고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한 전국적인 캠페인을 열었다.

참고사이트 & 참고 도서



 노동하는 기타, 천일의 노래/ 배윤경 지음/ 이후/ 2000 - 누에바 깐시온의 대표적인 가수이자 칠레의 저항가수였던 빅토르 하라의 일대기와 살바도르 아옌데 그밖에 많은 라틴 아메리카 가수들의 이야기들을 읽을 수 있는 좋은 책이다. 게다가 부록으로 빅토르 하라의 노래가 담긴 음반까지 포함되어 있으니 반드시 사 볼만 한 책이다. 놓치면 아쉬워 할 것이다.

 라틴 아메리카를 찾아서/ 곽재성, 우석균 지음/ 민음사/ 2000년  - 위의 책이 약간의 사전 지식을 필요로 하는 책이라면 이 책은 라틴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입문서 구실을 할 수 있는 책이다.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간략한 통사와 더불어 문화, 예술, 환경 등에 대해서 곽재성, 우석균 두 명의 필자가 재미있게 잘 다루고 있다. 게다가 이 책의 한 가지 장점을 더 추가하자면 인터넷 시대답게 관련된 사이트들을 두루 소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단점을 꼽으라면 적은 분량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만큼 대충대충이 좀 눈에 띄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옥에 티인 셈이고, 라틴 아메리카 읽기를 시작하는 분들은 이 책을 가지고 시작하는 것이 무난하리란 생각이다.

  심장은 탄환을 동경한다/ 노동은·김응교 편저/ 민글/ 1993년 - 불멸의 예술가 18인의 삶과 예술을 펼쳐보이는 책이다. 현재는 절판되어서 구할 수 없는 책이라는 사실이 가장 안타까운 책 중 하나이다.
 

아옌데 정부 역시 미국의 시장 교란과 위협을 극복하며 서서히 안정을 찾아갔고, 1973년 3월 의회선거에서 아옌데의 인민연합은 과반수가 넘는 지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민중의 열렬한 지지를 등에 업은 아옌데의 개혁은 추진력을 얻었고 본격적인 개혁에 착수하기 전에 국민들로부터 재신임을 묻는 투표를 실시하려고 했다. 바로 그 투표를 하려고 했던 날 쿠데타가 일어났다.

 이미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빅토르 하라는 미국과 헨리 키신저(노벨평화상을 받은 바로 그 사람), CIA 그리고 피노체트가 장악한 군부에 의한 쿠데타로 아옌데가 칠레의 모데나 대통령궁에서 장렬한 최후를 마치던 바로 그 때 살해당했다. 피노체트의 쿠데타가 벌어진 일주일 동안 3만여 명의 칠레 시민이 학살당했다. 그후 피노체트 집권 기간동안 사망자 3천여 명, 실종 1천여 명, 고문 불구자 10만 명, 국외추방 100만 명에 이른다. 그러나 미국은 세계최고의 경찰국가답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으며 미국 CIA는 칠레 비밀경찰과 손잡고 양심적 지식인들을 암살하기까지 했다.

 빅토르 하라는 고통받는 칠레 민중을 위해 노래불렀다. 그리고 그의 노래를 멈추게 하기 위해 칠레 군부는 그를 때리고, 고문한 뒤 양 손목을 부러뜨리고 죽였다. 그러나 고통받는 사람이 있는 곳 어디에선가는 끊임없이 그의 노래가 불려졌고, 그는 시와 음악이 사람들을 양심에 따라 행동하도록 일깨우는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그의 노래는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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좆깥다 병신새퀴

음악의 진행 (추천 0점)
2004-08-20 02:40

제가 초등학교 좋아하던 스타는 룰라였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2학년때 싸바싸바 날개잃은 천사로 가요 순위 프로그램을 독점했죠. 룰라에 이어서 노이즈라는 남성 4인조(맞나)가 프로포즈라는 음악으로 활동했었고 녹색지대도 나왔던 해였죠. 김건모다 핑계가 TV에서 많이 나왔던 해.

 

룰라의 테이프를 동네 가판데에서 구입하고 테잎이 늘어져라 2번트랙을 들었습니다. 다른곡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신세대 최신가요니, 아니면 x세대 최신가요니, 이런 컴필레이션으로 테입 한장에 20여곡을 담은 테잎을 수집했습니다. 그때는 그런 짜가 테입들이 이천원이었습니다. 엄마 아빠한테 이천원 달라그러던가 친척네 들어서 받으 용돈으로 그런 것들을 구입했죠. 그런 생활이 초등학교 3학년때까지 계속 됬어요.  룰라에서 부터 서태지의 컴백홈까지의 이어졌던 기간이었죠. 그리고 그 후부터 한국의 가요는 거의 안들었어요. 음악적 공백이었죠. 그리고 한국의 HOT와 젝키가 나오고 활동하던 시기... 저에게 있어 초등학교 5학년은 혁명이었습니다. 그 때 Backstreet boys를 알게 됬던 것이죠. 그때 우연히 bsb의 2집 타이틀은 everybody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미국에서 만들어진 아이돌 상품에 관심을 가졌죠. 그래서 6학년때 이르러 1998년에 한국에 스타크래프트가 들어오고 인터넷이 깔리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집에 33.6k 모뎀으로 저는 외국의 mp3사이트에서 bsb의  n sync나 celindion, britney christinaboyzone, westlife(그 후에), aqua등을 듣게 됬습니다. 그때 한국의 소리바다는 없었고 한국의 mp3사이트는 전무한 실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영국이나 미국쪽에 포르토사이트와 연계 운영된느 mp3사이트를 집에 64k ISDN모뎀으로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사이트는 앨범단위보다는 UK차트 빌보드 차트, Dutch차트 , 미국차트, 유럽차트 이렇게 여러가지로 세분화된 차트로 구성되어있어서, 저는 그때 빌보드와 UK차트를 달달 외우면서 댕겼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으로서는 대단한 것이죠. 그런 생활이 중1 때 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중1때는 BSB앨범 3집이 5월며칠에 한국에 발매되던 시점이었습니다. 그 날짜에 저는 수련회 기간이라 아쉬웠습니다.그리고 여러 차트와 mp3사이트를 전전하며 한국에 음반이 나오기 직전에 boyzone이후에 westlife의 곡들 ,if i let you go, swear it again, i have a dream , season in the sun, flying without wings를 중학교 1학년 내내 들었었는데 11월인가 10월에 그런 westlife의 앨범이 한국에 발매되었습니다. GMV라는 잡지에서 11월 6일인가? 10월 6일인가 외웠다가 이틀이 지나면 시흥 매장에 있겠다 싶어 매장을 2군대를 갔습니다.

westlife 1집 있어요? 물어보면 모두 westlife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발음해도 못알아듣고 앨범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3년이 지나 제가 관심있어하던 여자애의 cd - p 에 westlife가 있던게 얼마나 반갑던지...

 

중1이 지나 중2 때는 이제 최신을 달리던 미국과 유럽쪽 상업주의 팝이 아니라 듣기좋은 보통사람이 접하기 어려운 곡들을 많이 들었습니다. 처음 뻑갔던 음악은 Santana와 Eagles였습니다. 그리고 그 때 재즈와의 첫만남, 뉴에이지의 섭렵이 시작됬던 기간이었죠. 중2 때와 고2때는 저에게 있어 새로운 음악적 욕망의 분출구 였습니다. 뉴에이지는 유키, 앙드레가뇽, 케빈컨, 조지윈스턴을 들었고, Eagles의 Hotel california는 삼백번도 더 들었습니다. 가사와 해석까지 전부 외워버렸을 정도였죠. 아무리 생각해도 hotel california는 저에게 신비로운 기적의 곡이었습니다. 기타의 앙상블이나 구성, 가사의 알지 못할 신비함등. 사운드가 그리는 호텔의 풍경들 모두가 이색적이면서 새루웠습니다.정말 뻑간것이죠. Thanksgiving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때는 소수의 곡들을 반복해서 듣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앙드레가뇽의 un piano su la mer이나 머나먼추억, 정말 귀가 닭도록 많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중3학년때 올라와 그런 음악적 편력이 초고속 인터넷을 만나더 강해졌습니다. 중3은 중2의 연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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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재즈 일기1:재즈까지의 길 (추천 0점)
2004-08-20 02:20

모 태어날 때부터 음악을 접하면서부터 재즈를 알았겠죠. 그런데 재즈를 직접적으로 의식해서 듣게 된것은 Duke Jordan의 앨범을 통해서였어요 그 때 들었던 Everything heppens to me가 중학생이던 저에게 엄청나게 감성적이었어요. 그당시 듣던 뉴에이지나 가요, 팝이 깨워주지 못했던 감성들을 일깨워 준것이죠. 그 한곡만 일년동안 100번도 더 들었던것 같아요. 언제나 PDA와 MP3엔 그 곡이 함게 있었죠. 그리고 제목모를 CF에 삽입되었던 많은 곡들. 지금은 모두 그 이름들을 알죠.

데이브 드루벡의 Tave Tive나 엘라 핏제랄드의 곡이라던가 마일즈 데이비스라던가. 그당시에는 재즈의 한곡한곡이 너무나 감성적이고 산뜻하고 새롭게 다가 왔어요.

 

그리고 그때는 음반을 살 돈이 없어서 소리바다 채팅방과 온라인에 많이 있는 재즈 동호회를 찾아다니며 음악을 듣고 모았습니다. 처음에 제가 앨범단위로 다운 받았던 음악은 Keith Jarret이었죠. 학교에 my Song을 mp3에 담아갔을 때 그때가 겨울이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에 올라와 이론적 체계를 세우기 위해 재즈와 관계된 책들을 찾아봤죠.

그리고 고등학교 때는 모던재즈계열에서 모달재즈 스타일의 아주 듣기 좋은 곡들, 발라드에 치우쳐서 들었습니다. 아직 비밥이나 하드밥, 스윙은 듣지 않았어요. 한마디로 야들야들하고 끈적끈적하며 듣기 좋은 곡들만 하나하나 골라들었던 것이죠.

 

고등학교 2학년 때 들어와 재즈는 거의 안들었어요. 그때 막 다른 활동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면서 음악활동에 전념하지 못했죠. 2학년대는 대부분 락이나 팝을 들었어요. 보컬리스트에 대한 꿈 때문에 마이클볼튼이라던지 고전 헤비메틀의 보컬들, 그레헴보넷이나 로니제임스 디오, 한국의 임재범을 들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은 음악의 르네상스를 맞았습니다. 아트록에 심취해서 거기서 느낄 수 있는 현란한 코드 진행과 새로운 실험들이 너무나 매력적이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때 이마빡에 딱 새겨놓은 이름은 pink Floyd였습니다 핑크와 더불러 예스나 Gong, 카멜, 제네시스, 르네상스, 레이크 애머슨앤 팔머, 정말 아트록과 프로그레시브씬에서 보여주었던 현란하고 아름답고 예술적인 선율과 실험적, 독창적 소리는 18세의 저의 정신을 단단히 잡아 두어서 놓아주질 않았다는 것이죠.

 

이런 음악의 편력이 가능했던 이유는 다른 가정에 비해 자유로운 분위기 그리고 인터넷이란 매체에 의한 정보의 폭발로 다른 사람과 의견을 공유하기 쉬우며 정보를 쉽게 알 수 있었죠. 저는 고2때 이미 프로그레시브 정신에 바탕을 둔 음악의 장래를 설정해 두었습니다. 그 모델로 핑크플로이, 사운드의 핵심은 현대적이면서도 헤비하고 컨셉구성을 통해여 주제를 전달하는, 한국의 모델로 next의 1,2,3,4집을 선정했습니다. 5집까지 나왔지만 5집은 저의 취향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고3에 올라와 매우 방황했던 작년보다 심리적으로 안정된 생활이 가능해지자 저는 재즈를 다시 찾았습니다. 먼저 루이 암스트롱부터 펫메쓰니까지의 재즈사를 독학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음반을 지금 수집하고 있는중입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재즈 앨범이 40여개 정도 됩니다.

펫메쓰니의  offramp는 들을 떄 마다 프로그레시브해서 아트록으로 구분해도 무리가 없겠다고 생각했고, 마일즈 데이비스의 카리스마에 압도당했고, 쳇베이커의 불행에 눈물 흘리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재즈의 시작, 첫단계 였습니다.

 

 

메모장에서 발췌 (추천 0점)
2004-08-31 23:58

격정적으로 사는 것, 지치도록 일하고

노력하고 열기있게 생활하고

많이 사랑하고

아뭏든 뜨겁게 사는 것, 그 외에는 방법이 없다.

나는 더 생을 사랑한다. 집착ㅎ나다.

남에게 보여서 부끄러운 사랑은 마약밀매상적인 요소가 있다.

대낮을 견딜 수 있는 사랑이어야 한다. -전혜린

 

Injustice anywhere is a threat to justice everywhere.

어딘가에 있는 부정을 방치하면 어디에나 있는 정의가 위협받게 된다.

-Martin Luther King Jr-

 

I disapprove if what you say, but I will defend to the death your right to say it

당신의 의견에는 찬성하지 않지만, 당신이 발언할 권리는 죽을 때까지 옹호하겠다.

-Francois Marie A . Voltaire

 

독일의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극우 포리송의 탄원서에 서명을 했던 Chomsky도 같은 말을 하였음.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상대방이 어떠한 주장을 하든지 발언할 권리를 뺃어서는 안된다. 에밀졸라의 "나는 고발한다"에 이어 전율을 느꼈다.

 

The Cure for boredom is curiosity

There is no cure for curiosity -Ellen Parr

권태로움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호기심이다.

호기심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I never think of the future, it comes soon enought

-Albert Einstein

나는 결코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미래는 충분히 일찍 오기 때문이다.

 

No man is free who cannot control himself

-Pythagoras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자유롭지 못하다.

 

 

문장을 암기하는 습관이 몸에 베게 하려고 노력해 왔다.

메모장에는 아직 스며들지 않은 외피에 문장이 움직인다.

잔인하게 부서진 시간의 파편을 이제는 알알이 바라볼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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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LA메틀이 주는 가오와 후까시의 청소년. 감화

 

누구나 락의 시작은 LA메틀이지 않을까?

신해철도 누구나 음악하는 사람들의 공통적 이야기 소재가 LA메탈이 된다고 했다. 크게 공감한다. 그에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존나 키득키득됬으니 이렇게 완벽한 통찰이 어딨다나ㅑ?

 

재즈를 하든 불르스를 하든지 락을 하든지 국악을 핟느지 워드뮤직을 하든지 뉴에이지를 하든지 퓨전을 하든지 크로스오버를 하든지 누구나 다 청소녀 청소년기때는 LA메탈을 듣는가보다. 크게 스키드 로우 머틀리쿠루 본조지, 건젠로지스, 등 꽃미남 미국 동부 양아치풍의 새퀴들이 들려주는 말랑말랑하고 멜로딕하고 언제나 듣기 편한 LA메탈은 처음의 헤비사운들르 귀에 익히기 위해서는 좋은 아이템이 되고 만다.

 

음악에도 단게가 있다.?!~`

 

 

 

내친구들은 아지고 할로윈이든 스키도로우든그 외에 멜로디라인이 중심 구성으로 된 고음위주의 클린보컬의 음악을 듣고 잇다. 아마추어 락 구인사이트에서도 음악의 순수한 형식미만 강조하는 기타솔로가 들어가있느 에라이 메탈을 찾는 아이들이 많다. 지금의 보컬수요에서 그로울링 하우링의 익스트림 보컬의 수요는 그다지 많지 않다. 아니 거의 없다고 봐도 좋다. 락을 한다? 아니면 메탈을 한다는 아이들도 고전 80년대 음악 카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멜로디에서벗어나지 못하고 고음 클린보컬과 기타솔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처음에 누구나 깔쌈한 보컬과 귀에 화악 꽃치는 멜로리에 감화받는다. 내 새대때는 스트라이퍼가 그랬고 스키도 로우가 그러했다. 아마추어 병신 새머리놈들도 전부 바흐나 스트라이퍼만 따라한다. 고음이 최고고 그 이하는 좆도 부랄도 아니라고 취급해버린다.

 

그런 시절이 있고 이제 단조의 음악이 주는 서긆므이라든지 음울함이라던지를 이해하게 된다.

 

마왕의 이야기는 아주 적절한 비유다.

 

총 몇가지의 비유를 해

ㅆ었지?

 

 

 

음식에 비유했다.

어릴때는 굴의 맛을 모른다.

크면 굴에

떫은맛 쓴맛 이딴것을 이해한단다. 술도 마찬가지란다.

술의 맛을 이해한다.

 

어릴때 나는 순대국의 맛을 몰랐다.

그냥 돈까쓰와 햄버거만 존나 좋았는데

요즘 순대국이든지 곱창전골이라든지 얼큰하게 푹푹 끓여낸것이 밥 푹 마라 먹는것을 좋아한다. 게다가 풋고추를 고치장에 푹 찍어먹는 기막힘이란.

 

어릴때 깻잎의 맛을 몰랐다.

이제 고기든 회를 먹을때 깻입에 게다가 통마늘 하나 , 풋고추 하나 싸서 먹으면 기가막힌 맛이 난다. 마을새퀴때문에 눈물을 나도. 어릴때는 깻입ㅍ의 맛을 모른다. 돈까쓰나 좆같은 정크푸트 ㄷ좋아한다.

 

 

 

 

어릴때는 달콤한것을 좋아한다.

 

장조 도, 미 , 솔 로 된 음악을 좋아한다.

불협화음 하면 운다.

 

어릴때는 아이돌음악 좋아했다.

느린 템포의 발라든 ㄴ젖같았다.

룰라를 좋아했다. 댄스음악 REF등을 좋아했따.

장조의 밟은 톤의 음악들

 

그리고 이제 초딩 고학년이 되어서 발라드를 조금씩 듣기 시작했고 중학교과되어서 뉴에이지와 재즈가 주는 서글픔과 깊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색깔도 어릴때는 원색의 옷을 좋아한다.

빨란 노란 파란

크면 이제 쥐색이라던지 약간 칙칙한 색이 주는 안정감을 마음에 둔다.

 

 

 

어릴때는 모든 삶이 완벽하게만 진행된다.

어릴때 만화 대가리와 몸뚱이가 1대1 비율로 완벽하게 되어있는 언제나 정의가 승리하는 주인공은 절대 죽지않는 완전한 만화에서

 

어른들의 만화를 보게된다.

아키라가 보여주는 미래의 음울함과 좆같은 회색톤의 고통스러운 분위기

드래곤해드에서 보여준느 인간의 패닉과 집단적 환각과 폭력과 살인

 

이제 이런것ㅇ들을 이해할 수 가 있게된다.

 

 

어린이들의 삶은 완벽하기만하다.

동내 애새끼 대가리 빵구내고 집에 들어와도 집에는 맛있는 뜨끈한 밥이 차려져 있었다.

이제 동내 애새끼 대가리 빵구내면 좆된다.-_-;

 

집에 와도 구박만 존나 듣는다.

 

 

인생이란 이런것이다.

 

라고 개나소나 다 철학자인척하듯

인생에서 모든일들ㅇ

 

이루어져야 하는 일들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야할 자리에 있지 않고

언제나 인생의 단계들이 어긋날때 이제 음악도 단계를 거쳐 진화를 시작한다.

 

일레븐 코드니 부슨 세븐 마이나 코드니 하는 프리재즈형식에서부터 DJango등 블루스재즈기타가 주는 음울함들을 이제 이해한다.

재프백의 커즈위 처음 도입부의 반음 내려가는 그 심오함과 슬픔을 이해하게 된다.

 

불협화음을 인지하고 소화가능하게 됬다는게 이제 다 컸다는 소리인가보다.

 

 

10대
대 아이돌 땐스음악을 좋앟나ㅡㄴ것은 음악의 단계가 거기에 가잇기 때문인것이다. 내가 블루스 듣는다고 아아돌 댄스음악듣는것을 욕할 수는 없다. 아이돌댄스음악은 10대 그들에게는 효용가치가 만빵인 양질의 음식과도 같고 이미 그 단계를 지나친 자에게는 효용가치가 없을테니까.

 

그러나 한 세대가 20대가 아이돌댄스음악을 전부 듣고 있다면 이것은 적색신호다.

그 단계에서 가져야할 것을 가지지 않고 10대로 머물러 있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맹꽁하긴

 

 

몬얘기하다가 이렇게 되어버렸잔/

 

 

시작은 누구나 유스곤 와일드 투헬위더 데블

헤비니스는 이미 80년대 데스에서 완성되었다. 이 이상의 스피드와 기타톤의 중후한 헤비니스는 나와있다.

지금 가장 극단적이라는것은 사운드 자체의 헤비니스가 아니라. 각각 곡의 구성에 있어서 완급조절 과 분배에서 성공하여 느끼는 긴박감에 다름아니다.

 

메틀코어를 사랑한다.

하드코어 펑크정신을 사랑한다.

나의 인생은 락 그 자체다.

 

우호호ㅔ헤ㅗㅔㅗㅔ호ㅔ헤ㅗ호ㅔ호ㅔㅗㅔ호ㅔ호ㅔ헤호ㅔ호ㅔㅗㅔ

 

Fuc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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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ㅇ안옇

 

안녕안녕

 

 

지금 듣는것

 

하나님의 어린양

메틀코어로 분류가되

천국을 불태워 버려

 

mp3에 꼭꼭 처박아 넣어져있다.

음악과 책은 아껴서 구석에 짱박아놓아서 나중에 읽거나 듣는것이 아니다 바로 꺼내 서 바로 들어버리는것이다.

 

듀크조던의 덴마크앨범을 아낀다.

어느땐지는 모르겠지만 재즈가 너무 조아서 1년내내 재즈만 들었다. 재즈를 들으면 가슴은 텅텅터터어 비어서 구녕에서 고독이 새어나왔다. 내방은 재즈로 인테리어했고 소리와 찬바람이 꽉찬 아늑한 개인공간이 되었다. 좋아하는 앨범은 수도 없이 많았고 재즈를 꿈꾸었고 재즈와 함께 잤다. 지난 겨울은 그렇게 재즈로 빛을 내고 있다. 여름은 재즈로 벗어날 수 없었다. 작년에도 그랬듯이 여름의 더워는 재즈의 끈적임과 따쓰함이 도달하면 금세 찜통이 되어서 방안에서 날 훈제가 되어버릴판이다. 메틀코어와 저항적 하드코어가 주는 시원시원한 분노감에 같이 달린다. 기타는 고개를 흔들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모슁에 손과 팔을 휘두를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깊숙히 단전깊숙히 숨어있는 전율의 신을 소리에 얹혀 놓기만하면된다. 지가 알아서 춤추고 박치고 북치고 생쑈를 벌일테니.

 

6월 4일의 아마쳐 콘썰을 잊지 못한다. 전인류를 싸잡아 욕하는 가사를 때보로 했었고 머리통은 바람만 들어갔고 허리와 모가지는 근육이 뭉쳤다. 땀으로 샤워했고 슬램붙었다가 나가떨어지고 넘어지고 했다. 엔돌핀이 온몸을 감싸고 심장은 천볼트의 전류가 흘렀다. Fucker 쉿 하울링으로 선동에 응할때는 성대마지더 흥분되어있었다. 한번더 그것을 꿈꾸었다. 부산락페만 기달렸다. 신을 죽이는 사람. 바셀린 메탈 엠프앞에 바짝서서 나의 뼈를 뒤흔들고 하늘을 울려줄것을 요구했다. 마음속. 꿈에는 나는 콘서트장에 있었다. 출렁이는 사람의 파도속에서 서핑했다.

 

시간은 지났다. 락페는 뒤안길로 사그라졌다. 태양이 진후에 남는 어둠... 부산락페 락페 락페 락페 락페 락페 락페 혼자 여행이나 가야지. 돈이라도 빨리 모아서. 이번에 15만원 봉사비로 나오는것으로 5만원을 친구들에게 보내고 10만원으로 2박 3일로 남도로 다녀와야 겠다. 더위도 잊고 속세도 잊고 잠시 시간과 공간적 단절을 시도해봄이다. 쾌적한 기차 쾌적한 하향길은 오히려 속세에 연장선이다. 시간과 공간의 단절없이 업무를 쾌적한 기차에서 한다니 병신같은 새퀴들 그럼 여행은 왜가는데?

 

산도 알아봐야지 이번 가을동안에 있을 산도 알아봐야한다. 산에서 9월 10월 11월 약 3달은 거주하면서 친구먹어야지. 산안에 들어가서 잠시동안 머물르며 지금까지의 생을 정리하고 다음의 불가능한 꿈들을 구체화시켜내는 작업을 해야지. 한손에는 꼬란 한손에는 칼? 아니다 한손에는 자본론 한손에는 펜이다. 가을속에 접합되는 회색지대에서 다리를 나란히 놓고 계곡에 둥둥떠서 소리를 지르기. 맨발로 한손에 책을 잡고 이리저리 사찰을 돌아댕기며 읽기. 물구나무 서서 떨어지는 낙엽을 손으로 밟기. 정상까지 15분만에 뛰어갔다오기. 성대가 날아가라 소리지르고 또 지르고해서 성대안에 상처가 덧나고 덧나서 말소리까지 뒤바뀌게 하기. 좋은 음반 20 전부 외어서 내려오리라. ㅇ_ㅇ_ㅇ_ㅇ_ㅇ_ㅇ_ㅇ_ㅇ_ㅇ_ㅇ_ㅇ_ㅇ

 

맹자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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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꽁한

비가 왔으면 좋겠다.

아까 잠시 오더나 태양이 떠버렸다.

오락하듯이 이리저리 전환된다.

 

천국을 불태우자

성직자들을 화형에 처하자

신의 목을 따자.

 

 

ㅁㄴㅇ롬ㄴㅇ라ㅣㅓㅏㅁㄴ이라ㅏㅣㅁㄴㅇ람ㄴㅇ럼;ㄴㅇ러ㅣ;ㅁㄴ어ㅏㅣㄻㄴㅇㄻㄴ어럼ㄴㅇ러ㅏㅣ

 

 

토요일에 1차로 곱창을 먹었다.옆에 있던 페르소나와 옛날 얘기했따. 그때 1년의 절반은 그와 짝이었거등. 이야기 이야기 돌아가고 싶은것은 잘 정제되고 숙성된 3년전이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어퍼진 물은 담을 수 없다.

 

한번 담배빵된 팔뚝의 흉터는 지울 수 없다.

 

디디디디디디디디

 

부산락페만 꿈꾸었다 2달전부터 신을 죽이는 사람들도 온다.

제발 신을 죽여다오

그리고 제발 천국을 불살러버려다오

 

각 개인의 선택에 월권을 행사하는 도덕주의자 윤리주의자 기독교 병신새퀴들의 헛소리는 그들의 범위를 넘어섰고 헌법도 넘어서서 사회에 작동된다. 그들은 신의 말을 어겼고 전쟁을 찬성하고 어느때는 사람을 죽이는 것도 불사한다. 그들의 정신은 신의 정신이 아니라 사적이익의 정신이고 그들이 말하는 악마의 정신이다.

 

자기 자신은 모르는 법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말하는 나의 모습

누군가가 화내서 뱉는 나에대한 욕이 그렇게 자기 성찰에서 중요한것이다.

 

가드나 올려라.

가드 올려라는 말에는 많은 함축적 의미가 있다.

 

너스스로 반성을 해보아라.

 

 

곱창집에서 소주나 한 7잔 먹었나? 한병먹으니 약간 알딸딸하다. 그렇게 술이 쌔진않으니 2병먹으면 뻑가는 ..

 

이차다 홍탁?

 

어? 이게 모지? 막걸리에 홍어다. 게다가 김치전까지 시켰다. 김치전은 멧돌에서 먹었던 것보다 맛이 없다. 전문집이 아니라 보니까. 김치전에 고추는 존내 맵기만하다. 막걸리만 존내 먹었다. 막걸리 한 4잔 처먹었다. 소주 2잔 분량의 알콜인가?

말짱한 정신으로 돌아왔다.

주구장창 소주만을 강조한 페르소나 동면중인 곰탱이에게 의지해서 집까지 왔다.

 

비라도 와라.

 

 

 

승봉의 낭만을 경험한지 1달이나 지났다.

그때가 논술학고 1강이 시작한 주였다.

지금이 4강이다.

그러니 1달이나 지나가 버린것이다.

ㅋㅋㅋ

 

승봉의 밤은 잊혀지지 않는다.

아주 얇게 깔린 주황색 가로등 꿈의 거리를 걷는듣한 몽환함에 올 누드로 해변에서 뛰어놀았다. 도와 엄은 그곳에서 딸딸이를 깠다. 븅신들 ㅋㅋㅋㅋ 나는 스지도 않는다. 물은 차갑지도 따시지도 않다. 딱 중간에서 물에 풍덩빠지면 심장이 미동을 하고 뜀방시킬 만큼의 차가움이 있고 청량감이 녹아들어가있었다.

물은 바닥이 보이도록 맑았다. 새벽에 바다는 사람이 없다. 퐁퐁도 존내하면서 시간을 보냈따. 술에 취한 체 해변에서 뛰어놀았던 그떄를 잊을 수 없다.

 

지금 바러미녀 해변에 있는 소주병에 발꼬락이 배겠지.

쓰레기로 넘처나겠다.

이제 1년후면 갈 수가 없을만큼 오염되어 버렸다. 해변의 부드러운 품은 사라지고 날카롭게 날을 올린 쓰레기들만 있어 낭만은커녕 불쾌감만 있을테니

 

승봉의 하루는 지나갓따.

 

이미 수백의 사람들은 산과 바다 계곡으로 들어갔고 그곳에다가 수많은 사라지지 않는 배설을 끝마쳤다.

 

배설된 곳에 가면 배설물이 내는 악취와 시각적 불량함 좆같음이 누적되있다. 오랜세월...

 

이제 한국땅을 떠나버리면 볼 수 없다. 15년 후에 다시 만나자 승봉아.

 

 

 

 

 

 

 

 

 

 

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

 

칠복은 초록세상을 비판했고 초록세상은 얼굴이 빨게져서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바닥을 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조용했다. 칠복은 이상이 있다. 실천이 있따. 고민한다.

 

 

 

 

 

일몰

초록세상

칠복

동면

페르소나

총무님

한칸

 

녹색평화 시흥시민 네트워크

 

 

시간이 지나서 벌써 두밤이나 떨어져 나갔다.

고민하는 삶. 미칠듯한 몰입하는 삶.

 

페르소나가 이런말을 해다.

 

부지런한것과 치열한것은 다르다.

 

나는 치열함을 지향한다.

 

삶을 사랑하자

 

 

도의 생일이다 그는 일을 마치고 지금부터 1시간 30분 후정도 11시정도에 시흥에 떨어질듯하다. 전화해서 물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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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을 부단히 움직여아 불안감이 사라지는 이상한 희귀한 병이 걸려버렸다.

뱉는 말들은 언제나 같은 말들이고 하는 소리도 다 같은 무늬의 다른 색들인데 계속 써야 한다. 써나가야 한다. 자판이 부서저라 써야한다.

 

 

 

토요일인가?

 

논술학교 강의가 끝나고 나서 회식자리 어머니 논술하시는 분들은 단 한분만 오시고 다 안오셨다. 회의는 11시에 시작인데 11시 30분정도에 시작했고 칠복은 늦게 왓다. 지속반에 대한 논의와 종강식 행사 주제는 정해졌다. 아이들에게 알려야 한다. 이번에는 좀더 완벽한 종강식이 되어버렸다면 작년처럼 어정쩡하게 끝나버린 감동이 없는 종강식이 되어버리면 안되니.

아이들중에 자유를 획득하기 위한 몸부림을 치는 사람은 없돠. 이곳에 온 목적 자체가 기계적인 암기식 제도교육에서 빌어먹기 위한 것.

우리의 목표는 ?고민없는 유들유들한 두부삶을 사는 일반 민중에게 다른 세계에 대한 자각을 불러일으키는것 자기 안에 고수화되어있는 불의와 통제라는 틀을 부수기 위해서.

 

눈에 보이는 것만 바라볼 수밖에 없어서 처음에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고 며느리도 모른다. 이제 끝까지 남아서 필연적으로 그러했다 라는 염소의

개달음만...

 

우리반 조금온지 알았는데 여기 빌레 저리 비레 좀씩 와보니 7명이나 된다. 이런 망할

합반하는게 아닌데 아이들은 토론하지 못한다. 배우지 못하니 토론하지 못하지

아무나 딱 잡아놓고 임요환이 했던 테란의 페러다임변화와 스타계의 프로게임리그의 산업화에 대해 논해보라 이런것과 같다.

 

삶에서 유리되어 있는 사회

삶에서 유리된 지식과

 

삶과 관련 없는 아니 그렇게 배워버려서 밥쳐먹고 야자하는것외에는 기대할것없는 청소녀 청소년들의 나약한 삶에서 우리는 어려운것들을 요구하고 있다.

 

자본을 벌라고 코묻은 학생들의 돈을 탐하려는 사교육에 종사하는 개새퀴들

나의 분노는 그들에게 날카롭게 향해있다.

 

나의 강제적 과외를 할 수밖에 없었던 선생앞에서 나는 당당하게 말했었다.

사교육은 죽어야 한다고.

그의 밥줄이 그것이고 그의 생활이 그것이 전부인데도 나는 정의를 외칠 수 밖에 없다.

무기상인들에게 밥줄이 그것이고 그의 생활과 사고구조가 거기서 벗어나지 못할 때도 나는 정의를 구할 수 밖에 없다.

 

잘못된 길을 걷고 있다면 박살내버리자.

 

 

자기가 당한 고통들 자기가 했던 고민들을 20살이되어버려 전부 까먹어서 사교육에 투신하여 일련의 어떤 죄책감없이 코묻은 학생들과 그 가족의 돈을 갈취해버리는 학원 선생 개새퀴들 그리고 과외나 하면서 용돈 마련해보는 SKY 학벌 프리미엄가진 개 찌지리새퀴들 내눈깔에 뛰면 존나 맞는다 개새퀴들아.

 

옴팡진 것들

 

그들은 고민없이 살았나?

자기의 인생 전인생의 절반 이상을 수용소에서 통제와 억압과 폭력속에 길들임당하면서 나오려는 시도도 없었고 선생한테 기싸대기를 맞는 친구보면서 모르는척하고 급식 개밥먹으면서 분노할 줄 몰랐나? 방관의 연쇄작용 방관의 네트워크는 영혼을 잠식하고 모든것은 있는 그대로 지나가 버렸다.

 

시간이 아깝다. 초딩 6년과 중딩 3년과 고딩3년동안에

감옥생활 헤어나오지 못하는 단절속에 독방생활에서 내 인생의 오분의 사가 공중으로 분쇄되어버렸고 영혼은 모든것들에 움추렸다. 남은것은 날카롭고 삐뚤어진 눈깔이오 열받음에 타들어간 연기나는 심장뿐이오, 이제 나의 천성은 정해저버렸다. 누구도 내 길을 막을 수 없다.

 

끊임없이 사고하고 공격하고 움직이고 운동하면서 살아가야하는 80평생이다.

흐르는 물이 바위를 깍고 다듬는다는데 내가 흘리는 세상의 피들로서 과연 움직일 수 있을지.

 

과외를 하는 개새퀴들

그게 생활비를 버는 어리석은 자기 합리화로 일착된다면 노동이라도 해보아라.

아침 10시에 시작한 노동으로 밤 12시에 끝나는 최저임금의 노동을 해보아라.

 

그다음날 일어나지도 못하는 고된 하루를 맛보아라.

너희가 1시간 아니 2시간 노동으로 시급으로 계산했을대 2만원 벌때

나와 내 친구들은 고된 노동으로 2500원 받는다.

 

너희의 학벌은 부모의 덕택이며 부모역시 그 부모의 덕택일터니. 부조리한 구조가 불평등을 만들고 불평등한 곳에서 상위에 속하려 발버둥치며 자기가 얻는 권력과 특권들이 자기의 능력에 의해 쟁취되었다고 생각하는 개 찌지리새퀴들 학교다닐때 너희가 방관한 폭력들이 그대로 너의 자식들 다음새대의 내장으로 쏘고 들어갈텐데...

 

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싫다.

싫다.

싫다.

싫다.

절대 싫다.

싫다.

 

절대로 사교육과는 타협해서는 안된다.

절대로 자본을 얻는 직업과 타협해서는 안된다.

 

상위 20과 하위 80

 

시대가 나왔다.

 

기꺼이 하위 80에 속하겠고

 

상위 20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또다른 하위 80의 하위 20이 되버리겠다.

 

이론으로 무장하고 다음시대를 걱정하며 유토피아를 꿈꾸는 몽상가가 되버리겠다.

사교육 개새퀴들아 제발 너희들이 하는 죄를 알아라.

 

내 친구는 학교를 나오지 못했다.

중졸이다.

그의 집은 가난한다.

부모는 육체노동자고 그의 누나 역시 대학을 나오지 못하고 바로 노동에 종사했다. 2년전에 그는 오토바이를 샀다.

내가 학교에서 퍼져서 자고있는 동안에 그는 기름냄새나 처먹고 삶을 회의했다. 그만의 고민이 있을테지 .,

 

그가 할 수 있는것은 1달에 2번있는 쉬는날. 그리고 일이 끝나고 남는 약 4시간의 휴식시간에 미칠듯이 달릴 수 있는 쾌락이다.

오토바이는 중고를 구입했고 그는 한강으로 폭주를 나갔다.

그의 삶에서 그게 전부다.

그는 제도에서 이탈했고 사회는 그에게 신경쓰지 않난다. 오히려 손가락질하며 염색하고 오토바이타는 양아치라고 욕을 가한다.

 

그래도 그의 어리석은 마음속에서는 출세라는 또다른 피해의식이 존재했따.

만날때마다 사법고시 사법고시 운운하며 자기가 당하는 최저임금에도 못미치는 노동착취, 한달에 단 2번만 쉴 수 있는 근로기준법에 어긋나는 근로요구. 분노와 바꾸려는 노력보다는 빨리 여기서 도망가야지하는 피함이 우선했다.

 

엄씨는 그런 삶을 3년이나 견뎌왔다.

그리고 그에게 닥친것은

군대

 

국가는 모든 젊은이들에게 시간을 요구한다. 강요당하기 싫은 단체생활의 규율에 순웅하게 하고 규율권력의 폭력에 순응하게 하고 끝내 그가 2년이상의 복무를 마쳤을 때 국가규율 구조과 행위를 그대로 답습하는 기계가 되어 사회로 나온다.

 

나를 조팼던 일본어 새끼의 막말역시도 이런 군대문화에서 나온듯하다. 그에 고압적인 명령과 언제나 군대식 규율을 강조하고 알아서 기라는 듯한 그의 태도

알아서 기지 않거나 굽신됨이 가시적으로 보이지 않을때는 어떠한 꼬투리를 잡아서라도 학생에게 기싸대기를 올리는 그의 태도.

그런 새퀴들이 선생질을 하고 있다.

 

이런 못된 선생때문에 수백의 학생들이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

 

 

비가온다. 어느때보다도 괴로운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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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레종 1갑 2500

맥주 페트와 안주 5000정도

막걸리와 땅콩 한 4000정도

총 오늘 12,000 썻다.

내가 3000썻다.

9000

엄이 냈다.

 

 

 

 

디생일

어제

 

산에 올라가서

맥주 한페트와 막껄리 2개 깟다.

 

안주는 새우쾅 양파링

 

처음에 담배나 필려고 산책으로 만났다.

20분

 

우주인을 부리는 의식을 하고 있는 7명 정도의 스키조들이 종알종알 거린다.

나의 사랑하는 하느님이시여

헛소리를 지꺼이는 멍청이들이라니... 쯧쯧. 인정할건 인정해라? 저들을 인정하라고? 인정하긴하는데 왜 이리 웃기냐? 그들 마음속에는 상상속에 신이 모셔져 있고, 누군가의 마음속에는 상상속에 UFO 외계인이 모셔져 있다. 그들을 인정하라고? 누구의 마음속에는 빨간 망또를 걸친 마르크스가 모셔져 있다. 그들을 인정하라고? 누구의 마음속에는 날카로운 쌍칼을 들고 주머니에 폭탄 40개를 꽉꽉 눌러담은 히틀러가 있을테지.

 

유에프오를 부르는 의식에 심히 흥미가 가지 않는다. 꼬마애는 버스를 기달리려고 하고 어둠이 내린 산업지대엔 무풍의 찜통더위와 속옷바람으로 돌아다니는 이주 노동자들이 가득차있다. 여기는 저임금의 도시. 적어도 경제적 조건에서 아랫쪽 20퍼센트가 사는 곳임에도 여자들은 치열한 외모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옷에는 10만원을 걸치고 다닌다. 가난한 동네에서 20대의 젊은 여자들만 유독 튀는 형상을 하고 있다.

 

엄은 일찍 나오지 않는다. 언제나 옷차림에 신경을 쓴다. 365일 쳐입는 체크무니 주머니 남방에 면바지에 어울리지도 않는 빈골 벙거지 모자를 쳐입었다. 언제나같이 어울려? 어울려? 중딩의 삶속이 그대로 투영되 있느 듯한 지독한 타인지향주의다. 애구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은 꼬박 3000원 엄씨는 얼마 있는지 모른다. 서로 돈없는것 매한가지

 

나 3000원

그것도 이천원 종이

오백원 2개

 

담배 하나 사면 끝난다.

 

페트 하나에 안주는 양빠링600?

새우쾅 매운맛 600? 게다가 종이컵 2개는 서비스냐?

바로 위가 동산이다.

299m짜리 다 올라갈 수는 없다. 여름이고 일요일이라서 아니면 휴가쳐나와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사람이 여기저기 깔려있다. 엄시 지독한 타인지향성 사람만으니 다른데 가자고 한다. 이해할 수가 없다. 왜이렇게 숙쓰러워하는지를... 제도를 빠져나올 수 밖에없던 인생인가보다.

 

엄씨 산으로 올라가는길 거미줄

자정이 되진 않았다.

10시쯤인가?

 

우리가 술먹고 디비져 누우려고 하던곳에 사람이 캠핑하고 있다. 워낙 휴식공간이 부족하다보니 개나소나 밤만되면 집안에서 비비빅기어나와서 시원한 산으로 올라온다. 에구머니나 그렇게 쳇바퀴돌면서 수백명이 같은 라인을 뛰면서 부딪히는 공원도 마찬가지

 

웃기다.그것도 존내

 

두사람 지나가면 꽉차는 길을

서로 각자의 스피드도 뛰고 걷고 한다. 아침과 저녁이면 인간 다람쥐가 펼치는 경주시합. 거대한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강강술레의 규모를 훨씬 뒤엎는 우주 최대의 인간 노예들의 쉬지않는 어리석은 경주! 여기서만 볼 수 있는 장관이다.

 

공원은 딸랑 하나.

 

아파트는 우후죽순 생기고

작년에 또 푸르지오라는 개같은 아파트가 산을깍고 또 생겨버렸으니 남은 녹지는 이제 없다. 15년전 오를 수 있는 산이 있었고 소똥냄새 쳐먹으면서 그내를 띄울 수 있었고 개울로 내려가면 가재를 볼 수 있었는데 그 생태계를 싸그리 밀어버린것이다. 그곳에 언제부터 소유가 있었을까?

누가 그곳이 자기의 것으로 주장할 수 있었는가?

많지도 않은 시민들의 추억을 담은 곳이 이미 누구의 것이었고 누군가가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집은 이사를 했고 그곳에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그리고 산을깍기 시작하고 아스팔트를 쫙 깔았을 때 일이 터진것이다.

근 한 10년간 침수당하지도 않았던 아랫동내게 몇미리 정말 몇미리의 많지도 않은 빗물에 침수당해버렸다. 사람들은 아우성이오 집에 있는 물건들을 말리느라 정신이 없다. 아이들은 첨보는 광경에 재미난 구경이라고 동네애들과 존내 뛰어놀고 수영하며 발광만 한다.

보상은 전혀 없었다.

 

아파트는 수백동

공원은 하나

밤에 높은 곳에 올라가보아라.

빽빽하게 그 작은 공원에 얼마나 많은 인간 노예들이 존재하는지

 

정해진곳에의 여가

정해진 곳 정해진 소비타운에서의 여가

인간은 이미 시스템이 내린 명령을 소화하고 그곳에 길들여진 감시당하는 로보트

 

 

 

 

어둡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산은 원래 그런곳이오 엄씨는 겁도 많다.

수줍음도 많이 탄다.

나이는 그렇게 처먹고도

변한것은 말하는 것이다.

자기의 쪽팔림을 변호할 수 있고

자기의 겁들을 구라로 변신시킬 수 있는것이다.

 

언어를 배우고

어른이 되어감이

...

 

어릴때 나쁜 어린이는 주먹으로 사탕을 빼앗는데

어른이 되면 잘굴리는 혀와 간사한 머리로 사탕을 빼앗아.

이런 양태가 여러가지로 얽혀있는것이 사회란말이야?

동의할 수 없다.

 

어둠에 무서운 엄씨

주위를 둘러본다.

사람이 내려오면 무섭과 신기해서 쳐다본다.

그리고 누군가 있으면 일단 말부터 끊는다.

지나친 타인의존성이다.

 

이런삶속에서 주체를 발휘할 수 없다.

 

 

페트 첫모금 아이큐 시원하라.

아이쿠 시원하다.

 

금세 다 먹어버렸다.

 

 

아이규

 

담배도 없네요

내려갔다.

20분후 다시 올라왔다.

 

이번엔 막껄리

 

 

막걸리와

좆껍데기 술이다.

 

누구의 좆껍데기로 만들었는지

이거먹으면 정력이 쌔지는건가? 그럼 아이쿠 좋쿠나.

 

가평에서 먹었던, 그리고 대부도에서 먹었던 막 주조한듯한 건성한 탁주와는 달랐다.

냉장고 구석에 처박아서 아무도 안사가는것. 유통기한 3일 남아버린 좆껍데기 술은

맛이 변질됬다. 존나 셨다. 식초를 몇잔이나 쳐 부운것같이 셨다.

이런 망할

 

좆껍데기는 냅다 새와 개미와 야생돌물의 먹이로 주고

막껄리만 다 먹고

잠시 누웠다.

풀벌레만 우는 소리

 

아무것도 구별할 수 없는 산속에서 누웠다. 이상하게 모기가 없다 싶었더니 눕는즉시 삐리리리달려와 5방정도를 물었다. 그래서 산에서 도망나왔다. 모기의 공격력은 일탄 후퇴다.

 

음악 듣고

내려와서

 

횡단보도에서 해어졌다.

집에와서 뻣어 잤다.

 

오늘 도 생일이다

 

연락주기로 했다.

 

한 11시쯤에 해야지

 

생일 축하에 기워에 대해 생각해봐야지

이런 문화는 왜 있는지

생일은 슬픈날 인데 축하는 위로를 하려 모여야지

고민을 들어주고

인생의 앞날을 희망해주고

그가 처한 구조와 그의 이상을 명확하게 정리해주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생일이란것이 그 인간을 위한 날이라면

 

그 인간 자기 자신이 모르는 자기자신의 모습을

알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친구들이 모인다면 그런 이야기를 하도록하자.

 

시간이 또 지나간다.

8시다 아 시파 존나 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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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질레

비가 온다 하늘 껍데기가 벚겨졌다 누가 나를 바라보냐? 그눈은 새눈이냐? 런던에서 일어난 폭동에 같이 참여하지 못함에 분노가 똥꼬속에 똥에 알맹이로 녹아들어가고 있을때 켈리포니아에서도 역시 폭동이 일어났는데 그곳에 폭동의 시위진압에선 사람이 2명이 죽었다니... 이런 국가권력같은 십창개보수새퀴들

 

그럼 모두 다같지 우리는 하나

너희는 악마

우리는 하나로 인정하자.

그리고 같이 점프하자. 점프하여 국가권력 중앙화된 절대권력의 상징들을 격파해 나가도록 하자.

우리는 하나.

우리는 하나.

 

점프! 점프!

 

 

나는 세계를 인시할 수가 없다.

위험하게만 보이는 세계의 움직임에 어떠한 영향도 미칠 수가 없다.

위험하게만 보이는 움직임

새눈을 가지고 보아라.

이리와라 이리와라 새로운 눈으로 세계를 보아라.

이리와라 이리와라 새로운 눈으로 세계를 보아라.

 

좆까지마라 세상아!

엄마와 아버지 출생 모든것 옳아매던 모든 것들에서 해방되어 나가자 도시를 나와서 시골로 들어가라. 너의 이름을 거부하라. 지나가는 명품 차에 기스를 가하자. 자본가의 음식에 똥을 누자. 길다가다 100평짜리 집을 둘러싼 견고한 벽에다가 오줌을 갈겨버리자.

 

오~

 

호~~

호~~

 

오~~

 

범범범범범범 터져라 폭탄이여

터져라 폭탄이여

그들의 심장에서부터 우리 민중의 분노의 씨앗이 그들의 심장을 관통하고 폭발하라.

이로와~~일로와

 

집안 구석에 쳐박혀서 엄마에게 매맞고

학교 구석에 쳐박혀서 선생들에게 매맞고

너의 시간 전부를 빼앗겨버린 노예들아.

노예문서는 안보이게 존재하고 있다.

모든 규정의 총합들

너를 규정해버린 모든 사회적 조건들

이름, 국적, 생년월일, 가족

 

벗어나가자.

새로운 공동체를 건설하자 우리들이 살기좋은 새로운 공동체를 건설하자.

다시는 저새끼들이 우리의 양식과 우리의 노동력과 우리의 시간 우리의 인생자체를 착취하지 못하는 꿈의 세계로 가자.

가자!

가자!

 

영혼을 억압에 흐느끼고 목에서는 피가 터져나간다 외치고 외쳐보아도 변하는것은 고통의 단계속에서 피어나는 인내력과 무력감뿐 인내하지 마라 무력하지 마라 바로 쳐부수러 거리로 나가라 그들이 가진 우리의 모든것들을 빼앗아 버려라. 우리는 도둑 강도 그중에서도 특수강도

 

이렇게 앉아도 분노를 느껴

무릎꿀어서 생각해보아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다만 내가 일어나서 피의 욕조에서 점프하는것 이게 유일한 일

모든것은 3가지의 모욕감에 처해있다.

이것이 고통인가? 기억인가?

나는 다시 분노가 치밀어오르는것을느낀다.

미쳐보지 않고는 살기힘든 위험한 세계에 기차에 타고 있다.

 

달리기 위해 달리고

보지 못하기 위해 눈을 뜨고

내 피부는 크립으로 뒤엎였고

모든것에 저항하라

모든것에 엿먹여라

세계에 저항하라

모든것에 대항하라

어디에도 속하지 마라

어디에도 존재하지 마라

 

송곳으로 지나는 악마의 눈을 찍어버려

모든것에 저항하라

세계에 저항하라

어디에도 속하지도 존재하지도 마라

 

자기 자신의 급진성만을 담보로 생명을 부지해나가

 

침을 뱉어주마

너의 대갈빡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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