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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의 레디앙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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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의 레디앙 인터뷰에 곰씹어볼만한 대목이 많다. 대부분 평소에 하던 얘기이지만, 조금 강하게 주장한 부분도 보인다. 이에 대해 어떻게 볼까. 개인적으로는 박 대표의 주장에 상당부분 동의한다. 향후 전망과 관련해서는 엇갈리는 내용도 있지만, 적어도 지난 10여년간의 진보정당운동을 비롯한 제도정치에 대한 평가는 공감할 부분이 많다.
 
다만 이제는 제도정치의 주요 이슈로 제기되어야 하는 생태나 지역정치에 대한 고민이 빠져 있는 것이 아쉽다. 평소에 이 부분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게 박 대표의 한계일지도 모르겠다. 반드시 중앙의 의회정치를 통해서만이 변화가 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런 대안의 모색이 베네수엘라나 브라질 등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구체적으로 이번 대선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 문재인, 안철수를 지지하지도 않고, 통진당 후보나 진보정의당의 심상정 후보를 찍을 생각도 없다. 참고로 말하자면, 박근혜의 당선을 막기 위해 문재인, 안철수를 당선시키고자 노력하는 것보다는 아무리 적은 득표를 얻을지라도 노동자 민중후보에게 표를 주는 게 세상을 바꾸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노동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노동자 민중후보나 진보신당의 사회연대후보의 가능성에 박수를 쳐줄 수 있지만, 크게 기대하지는 않는다. 지금 생각은 노동자 민중후보의 흐름이 대선 이후 좌파정당의 건설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차라리 후보를 내지 않는 게 좋을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다.
 
다만 문재인, 안철수에게서 희망을 보는 젊은 친구들에게 이와는 다른, 진정 새로운 대안이 있음을 보여주지 못하는 진보진영의 처지가 안타깝다. 그들 자신이 정치의 주체로 나설 수 있도록 하는, 그런 방안이 필요한데, 역량의 부족을 어찌할 수가 없다. 그러하기에 박상훈 대표의 말처럼 2세대 진보정치운동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암튼 박상훈 대표의 인터뷰 글을 가지고 많은 이들과 논의를 해봤으면 좋겠다. 사실 내가 잘 알고 있고, 연구하고 있는 공공정책분야 뿐만 아니라 진보정치를 포함한 제도정치에 대해서도 일상적으로 함께 토론할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게 쉽지가 않다. 물론 당장 공공운수노조 선거나 조직발전 방향에 대해서도 산적한 과제가 계속 꼬이고 있고, 제대로 된 해결방안조차 내놓지 못하는 주제에, 맨날 거시정치만 바라보는 것도 우습기는 하다만...
 
아래에 박상훈 대표의 인터뷰 내용 중에서 일부를 발췌했다. 너무 많나? 이럴 때면 나의 빈약한 요약능력을 절감하게 된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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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정치학 박사)는 이른바 ‘시대정신’ 운운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이다. 대중의 현실로 들어가 그들의 요구를 파악하고 이를 정치화하지 않고, 소수 엘리트들이 ‘시대정신’이라는 것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며 이를 자신들이 해결해주겠다고 나서는 것은 민주주의적이지 않다는 입장이다.

그는 또 주요 대통령 후보를 중심으로 정치권에서 쏟아내는 ‘좋은 소리’들은 그 요구들을 함께 수행해나갈 정치적 시민적 주체와 결합되지 않는 한, 공허한 소리에 그칠 수밖에 없으며, 말로만 정책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각 정파들의 언술이 비슷해지는 것은 필연적 과정이라고 강조한다.
박 대표는 또 여야, 안철수 진영 모두 정치개혁은 인사이더들(정치 엘리트 그룹)에 의한 정치 개혁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진보진영도 야권연대, 공동정부 운운하면서 인사이더 중심의 정치 개혁에 편승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진보는 자신들 본연의 역할을 상실하고, 인사이더 중심의 정치 개혁을 정당화해주는 역할만 해주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야권 후보 단일화가 이뤄진다고 이번 대선에서 야권 승리가 보장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으며, 야권이 승리한다고 우리 사회가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믿는 것은 ‘순진한 기대’일 뿐이라고 말했다. 야권이 승리할 경우 다만 ‘변화의 가능성’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를 찾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인터뷰-박상훈①] “비례대표 확대, 결선투표 도입 필요”
우리 사회는 정치를 향해서 강력하게 항의하고, 구체적으로 요구하는데 정치는 이 문제를 해체하고, 펑퍼짐하게 동일화시키는 담론을 생산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사회경제적 문제에 대한 무슨 책임 있는 대화가 정치 세계에서 진행될 수 있을까 하는 자괴감이 든다. 지금 정치권에서 얘기하는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담론은 우리 사회의 절박한 요구를 문제가 안 되게 만드는 이데올로기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대중들의 요구가 있는 곳에 조직이 있고, 그 조직 있는 곳에서 그 조직이 원하는 어떤 대안을 찾아내고, 정치는 그 속에서 존재하면서 그것을 집약해내는 것이다. 시민들에게 “내가 이거 해줄게, 이게 시대정신이야.”라면서 위에서 아래로 쏟아내는 게 정치가 아니다.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도, 민주주의는 평등을 지향하는 사회인데, 경제 주체들 사이의 관계가 불평등한 사회에서 이 문제가 갑자기 ‘노동시장 발전’이라든가 하는 것으로 거꾸로 역순으로 담론화되면서 거꾸로 된 이야기들을 쏟아낸다면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다.
지식인이든 정당, 정치인들은 요구가 있는 곳에 가야 한다. 그들의 요구가 밑에서부터 조직되고, 거기서 대안이 구체적으로 올라와 주고, 그것을 정당은 자신에게 요구하는 사람들과 함께, 다른 의견을 가진 쪽과 맞서고 싸워나가야 한다. 그러면 차이가 안 날 수가 없다. 지금은 그 과정이 빠져있기 때문에, 누구나 좋은 말만 하는 것이고, 결국은 언술 차원에서는 똑같아진다.
대안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만들어지는 과정이 정치적이고 사회적이어야 한다. 거기엔 당연히 그런 대안이나 정책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조직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이런 것이 없으면 민주적 정책 결정 과정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경제민주화나 복지 담론이 노동문제나 사회 양극화 등 구체적인 수준까지 포괄시키고 연결시키지 않는 것을 지적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담론이 중심이 된 경쟁의 프레임을 구성하는 것 자체를 문제라고 하기는 어렵지 않나.) 경제시민이 인지되지 않고 추상화되면서, 정치영역에서 정책을 통해 이들에게 뭔가 좋은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는 식으로 얘기되면, 이는 경제시민 없는 경제민주화와 같은 뜻이 된다.
복지국가 이슈도 시민적 요구의 기초 없이 마치 정부가 예산 증액과 이런 저런 정책을 통해 방안을 만들어내고 이것을 보편적 복지라고 얘기한다면 절반이 빠진 것일 수밖에 없다. 나중에 노동을 불러들이는 등 뭐를 해도 결국은 (정당 간의 관련 정책)내용이 비슷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말 자체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갈등의 거점이 사라지면서, 사회적 대중적 기반의 차이에 따른 차별화된 정책이 생산되지 못한 채, 대중적 에너지원의 바깥에서 진행되는 전문가들의 아이디어 경쟁 수준으로 민주 정치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이게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시민정치 이론도 기존 정치권 바깥에 있는 시민운동 엘리트들, 즉 법률가나 전문가들이 정치권에 들어가면 좋겠다는 얘기로, “정치 엘리트를 순환하자.”는 얘기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은 ‘인사이더 범위 안에서의 정치 개혁’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초기에 포괄했던 사회의 부문, 그 안에서 권력을 재분배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기존의 정치 개혁은 여기에 국한돼서 논의가 진행됐다. 그리고 그 범위 안에서는 이미 나올 수 있는 아이디어가 다 나온 상태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대중들이 직접 자기 손으로 대통령 정치인을 뽑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갈등을 담고, 이를 풀어나가는 거다. 따라서 기존 정치가 포괄하지 못했지만 넓게 포진돼 있는 아웃사이더들을 (정치 영역, 정치 과정에) 불러들이지 않고, ‘인사이더 정치’ 내부의 권력 재분배 방식으로는 새로울 것도 없으며, 정치 개혁을 이뤄낼 수도 없다.
지금 여든 야든, 안철수 진영이든 모두 정치개혁은 인사이더들에 의한 (그래서 인사이더들을 위한) 정치 개혁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진보진영도 자신들이 할 일을 하지 않은 채, 야권연대 공동정부 운운하면서 인사이더 중심의 정치 개혁에 편승하고 있다. 진보는 자신들을 본연의 역할을 상실하고, 인사이더 중심의 정치 개혁을 정당화해주는 역할만 해주고 있는 셈이다.
비례대표 후보를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 정 그게 대통령 중심제와는 맞지 않는 제도라는 주장을 한다면, 결선투표제라도 도입해서 시민들의 다양한 정치적 선호가 억압되지 않게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제도를 바꾸는 데 역할을 해왔던 진보정치인들이 그런 의지를 상실했다고 본다. 진보정치의 정체성을 믿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보니까 그들은 ‘인사이더가 되고 싶은 열망’을 진보의 언어로 포장해온 위선자들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제도 변화에 대한 노력도 없고, 그런 의지를 가진 사람도 약해진다면 누가 어떻게 정치 개혁을 하겠나.
맨 처음의 정치 개혁 단계라고 볼 수 있는 관료 개혁의 경우 공식적인 담론으로 된 건 아니지만 기존 관료정치 상층을 야당 인사로 바꾸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김대중 정권에서는 안기부를 포함한 호남 출신 관료들을 등장시켰으며, 노무현 정부 때는 흔히 말하는 거버넌스 개념을 확장시켜 비관료 출신의 등용에 적극적이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여러 가지 위원회를 만들었으며, 위원회에 들어가는 예산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관료 개혁을 위해 청와대의 인력과 예산도 확장했다. 하지만 이런 두 가지 방법은 성공하지 못했다. 결과를 보면 두 정권의 집권 말기에는 대통령 본인 스스로 관료들에게 더 의존적이 됐다.
관료 문제는 정치학의 오래된 논의 주제다. 현대 민주주의에는 세 가지의 권력 자원 공간이 있다. 하나는 경제 권력이다. 자본주의 시장중심 사회에서 법인 기업이 중심이 된 불평등한 권력이다. 다른 하나는 행정 권력이다. (관료들이 다루는) 예산 규모로 따지면 경제 권력 못지 않다. 복지를 제외하더라도 이들이 관장하는 예산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우리 사회가 점차 민주화되다 보니 이들이 단순히 민주정치 결과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모피아’처럼 스스로 자신들의 조직적 이익을 추구하게 됐다. 자신들의 이익을 포장하는 담론과 이데올로기를 개발하는 주체가 되고 있다. 불평등한 경제 권력과 위계적인 행정 권력이라는 두 개의 권력을 견제하는 것이 민주정치이고 구 주체는 정치권력이다. 그런데 정치권력의 경우 힘이 약해지면서 비정치적 요소로 이것이 대체되고 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사회적 요구 가운데 정치가 보호해줘야 할 대상들이 빠지고 인사이더 중심의 엘리트나 전문가가 정치를 하다보니까 시간이 지나면서 행정 권력과 경제 권력을 제어하기 어렵게 된다. 그러다보니 말로는 검찰 개혁 포함 행정권력, 경제 민주화 경제권력 제어한다고 하는데 결국 공허해지게 된다. 이러니 실체 없는 개혁 담론들이 자신들의 진정성을 과시하기 위해 유통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검찰 개혁의 제도적 대안을 물어오는데, 많이 물어지는 담론 상황이 되면 전문가들이 득세할 수밖에 없다. 대안을 찾아내라는 건 전문가 불러내는 것이다. 우리가 경험에서 전문가들은 자기 전공 분야에 대해 말 그대로 ‘코딱지’만큼만 알고 나머지 분야에는 무지하기 짝이 없고, 시민생활과는 완전히 유리된 그들이 어떻게 국가정책을 잘 만들 수 있나? 차라리 보통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법률적 지식은 없더라도 방향을 잘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민주정치에는 두 가지 모델이 있다. 하나는 사회적 갈등을 줄여서, 합리적이고 유능한 행정을 제도화를 통해서 사회를 운영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적 갈등과 사회적 요구를 더 많이 정치에 투입시키는 방식이다. 
전국적 싸움은 큰 싸움이 돼야 한다. 보통 사람들, 배제된 사람들의 요구를 정치 안으로 들여오고, 이걸 전국으로 확신시키는 게 필요하다. 괴롭지만 전국 차원의 큰 싸움을 통해 한국정치를 변화시키고 확산시키면서 이를 매개로 지방 토호세력들의 이익을 깨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다.
  
[인터뷰-박상훈 ②] “문-안 당선돼도 사회 근본변화 없어”
이미 존재하는 이익과 영향력을 결사적으로 지키려는 힘들 사이에 부딪치는 갈등의 세계 속에서 진행되는 것이 정치다. 이런 정치 세계의 변화를 예측하려면 변화를 추진하는 사람들의 의지와 힘을 봐야 한다.
설령 정권이 이번 대선 결과 바뀐다고 해도, 구조적인 큰 변화는 가능하지 않다. 물론 그럼에도 대선에서 정권을 교체하는 것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변화 자체가 아니라, 변화를 가능하게 만드는 조건이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식인들의 역할이라면 사회적 요구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것을 조직해야 되는데, 모두 다 좋은 슬로건이나 요구를 가지고 정치 캠프에 세일을 하고 있다. 2013년 체제론도 그런 것이라고 본다. 이런 것들은 현실을 바꾸는 게 아니라 본인들의 우월적 위치를 과시하는 것에 불과하다.
제발 지식인들이 연구하고 조사하는 자신들의 역할에 충실했으면 좋겠다. 모두 자기가 통치자 옆의 자문관이나 되는 것처럼, 그런 자기 심리적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보는데, 이는 엘리트주의로 보기도 아깝다. 
나는 이른바 ‘폴리페서’를 부정하지 않는다. 방법이 문제라는 것이다. 모두 다 대접 받고 싶은 심리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과거 문국현 현상 같이 새로운 외생 정치세력들의 경우 기존의 정당 체제 밖에서 새롭게 형성되는데, 대부분 이들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사이클이 꺾이는 경향을 보였는데, 안철수에 대한 지지는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되어가고 있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는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물론 아직도 이들이 지배담론에 갇혀 있다고 보는데, 이제 점차적으로 정치를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지지 기반도 형성되고, 민주당 내부도 동요하는 걸 보면서, 이들이 어떤 정당의 길로 갈 것인가를 계속 주시할 필요가 있다.
한국사회에서 정당이 될 수 있는 열정을 끌어올 수 있는 자원은 세 가지다. 하나는 호남이다. 해방 직후 인구 기준으로 30% 정도가 되면서, 이들이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에서 자신들의 집단적 정서를 공유했다. 이들이 한국 정치의 주요 변수가 될 수 있었던 배경이다.
또 하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이후, 노사모 또는 친노라 불리는 사람들의 열정이다. 민주당이라는 정당의 주요 자원 중에 하나다. 이들은 어떻게 보면 한국사회에서 주변부 엘리트들이라 볼 수 있다. 한국사회가 워낙 중앙집권적이고 학벌 중심적이며, 이런 신분적 사회에서 지위재를 갖지 못하는 중산층의 소외와 저항 의식이 있다.
나머지 하나는 진보적 이념과 노동에 대한 열정이다. 그동안 진보정당이 민주화 이후 첫 단계부터 제도 야당에 휩쓸리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소외된 민중의 기반과 이런 열정 때문이었다.
이런 세 종류의 열정 덩어리가 있었는데 그 주요 축인 민주통합당의 당 대표 경선 과정을 거치면서, 당권이 지나치게 친노와 호남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여기에 대한 불만이 (안철수 지지 흐름이라는) 변화를 가져오는 요인으로 작용됐다. 다른 하나는 진보의 약화다. 안철수 현상은 이것을 빼고는 설명을 할 수가 없다. 안철수는 안철수 현상을 만드는 데 10% 정도밖에 기여하지 못했다.
결국 안철수 선거 운동은 민주통합당과 진보가 해준 셈이다. 이것을 표현하는 방식 중에 하나가 상식, 합리성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상식이라는 공허한 발언 뒤에 숨어 있는 것은 그런 힘의 변화라고 본다.
정당은 단순한 법률적 조직 형식이 아니다. 그것을 넘어서 사회를 조직하고 변화시키기 위한 하나의 세계관이다. 시대정신이라든지 상식을 반영해서 국가를 운영하겠다는 것은 전체주의로 가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제는 야권 단일화라는 것은 기획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됐다. 그리고 시간은 너무 짧다. 시간이 너무 짧은 짧다는 것은 야권 단일화의 절차적 정당성을 만들어내는 조건이 너무 나쁘다는 의미다. 지금 조건에서는 단일화가 언젠가 이뤄진다 해도 정당성은 훼손, 결핍되고 약화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양쪽을 지지했던 에너지들이 단일화를 다 좋아하고 찬성하는 것도 아니다. 정권 교체를 가능하게 하는 단일화는 두 후보의 지지 기반이 통합돼야 한다고 가정하면, 두 후보는 게임이 아니라 실제로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마이너스 게임이 안 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권력분점을 멋지게 하기 위해 이런 저런 위원회 같은 것들을 꾸리는 그런 짓들을 할 것이다. 어떻게 하든지 정당성은 훼손될 수밖에 없으며, 대선 전망은 불투명하다. 
보수는 사회적 요구에 대해 임시변통 적응하는 스타일로 처리한 것이다. 이것은 보수정치 자체가 일상적으로 해오던 과정이다. 이 과정을 통해서 보수정당도 사회를 좀 더 넓게 반영하게 된다.
 
[인터뷰-박상훈③] “진보정당 없으면 정치안정도 없어”
우리 정치에서 변형주의가 일상화되고 있다. 자기 정체성을 중심으로 하고, 이것을 풍부하게 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면 모든 것을 다 변형적으로 통합해나가고, 나중에는 모든 정당의 세계관이나 조직화 방식이 다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대중들의 정치 불신은 높아지고, 이런 정치를 수동적인 입장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그 놈이 그 놈이다.”라며 정치적 동질화를 욕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쁜 정치는 사람들로 하여금 좋은 시민이 되겠다는 생각을 버리게 한다. 그냥 착한 소비자가 되자, 윤리적 소비자가 되자, 생협을 만들어서 우리끼리 유기농하면서 살자면서 시민되기를 벗어나 개인, 소비자, 조합원 같은 범위로 자신을 규정하게 된다. 이는 정치와 전체 공동체로부터 스스로를 소외시키고, 작은 공동체에서 자족을 찾는 경향이 커지게 된다.
우리에게는 개인적 삶과 함께 사회적으로 부여된 역할이 있다. 개인적으로 착하게 살려고 하는 것과, 개인에게 부여된 과업을 과감하고 단호하게 실현하는 일 사이에 딜레마와 도덕적 긴장이 있으며, 그 속에서 사람의 인격이 나오게 된다.
만약에 ‘악마와 손을 잡을 일’이 필요하다면 굳이 진보정치를 할 필요가 없다. 그냥 권력정치를 하면 된다. 좋은 정치를 하려는 대의를 가진 사람이 정치 세계에서 자신에게 부여된 과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도덕성을 기준으로 괴로움을 겪더라도 자기 일을 해나가야 한다는 얘기지, 결과만 좋으면 무조건 좋다고 한다면 뭐 하러 진보정치를 하나?
현재 상황에서는 진보정치의 앞날이 이런 저런 아이디어를 내고 방법을 찾아서 좋아질 가능성은 완전히 다 소진됐다고 본다. 첫 번째, 왜 20년 가까운 기반을 가지고 있는 진보정치가 실패했느냐 하는 질문이 제기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 그 전에는 보이지 않게 진보진영 사람들이 갖는 우애 의식 있었다고 본다. 어디 가서 잘난 척 해서 사람들에게 좋은 평을 받지는 못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같은 진보라는 점에서, 서로 의견이 다르더라도 우리 세계 안에 일종의 집단적, 공동체적 소속감 같은 게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그뿐 아니라 자신들의 행동을 설명하는 방식, 자신들의 대의와 신념이 왜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설명의 언어를 잃어버렸다.
서로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도구적 가치, 도구적 대상 수준이며, 대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연대를 이뤄낼 수 있을까?
더 이상 1세대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새로운 2세대 진보정치에서 희망을 찾아야 한다. 1세대는 모두 다가 문제다, 건질 만한 리더는 단 한 명도 없다.
통합진보당 탈당파는 어떤 조직이라도 가져야 하는 최소한 가져야 할 요소가 없다. 조직 지속성의 관점에서 보면 통합진보당보다 못하다. 통합진보당을 야유하면서 본인들이 정당성을 찾으려는 태도는 조롱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 당의 대중 투표 권력은 구 참여당 계열에서 나온다. 나머지 그 위에 떠있는 사람들은 본인들의 정치적 자산을 잃고 싶어 하지 않거나, 그걸 어떻게든 잘 발휘해서 더 많은 것을 보장 받으려고 하고 있다.
정치에서는 단절을 통하지 않고 과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그게 정치다. 왜냐하면 정치는 열정이라는 에너지가 있기 때문이다. 정치를 이성적으로 보면 그런 방법을 찾는 게 합리적이고, 모든 사람이 덜 상처받는 일이지만, 정치는 그렇게 하면 에너지가 나오지 않는다.
실망스러운 경우도 있었지만 과거 20년 가까이 진보정치를 이끌었던 리더들이 나서서 하지 않고는 어렵지 않겠냐는 생각, 지렛대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오랫동안 관용을 베풀어왔는데, 돌아보니까 사람들 나이가 너무 많아졌다. 그들 밑에서 성장했어야 할 사람들이 성장하지 못하고, 생활상 압박이 커지면서 진보정치 언저리에서 일을 하기가 어려워졌다. 이게 큰 비극이다. 그들이 후배 세대들을 길렀어야 한다. 그들에 대한 심리적 의존 상태를 연장시킬 필요는 없다.
내 생각에는 의정활동을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잃어버린 신뢰를 다시 얻기 위해 1~2년 동안 노력을 했으면 한다. 노동운동을 생각하면, 현장 조합원들의 마음을 열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정치는 조건에 영향을 받지만 조건을 만들어가는 면도 하다. 진보정치 지도자들에게 느끼는 불만 가운데 하나는 자신들의 역할을 여러 가지 전략적 고려에 (조건을 만들어내는 적극적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수동적으로 본다는 점이다. 한국정치는 지금 있는 정당들로는 결코 안정될 수 없다. 그만큼 기존 정치가 포괄하지 못하는 항의 목소리가 크다. 우리나라의 무당파는 무관심파가 아니라 아주 비판적인 사람들이다.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진보정치의 길을 열려는 적극적 의지도 과감함도 담대함도 없이 쪼잔하다. 그래서 기대를 하지 않는다. 연합정치도 추레하다. 끼워주기를 바라는 그런 심리에 머물고 싶지 않다. 그러려면 좀 멀리 보고 차분하게 다시 해볼 필요가 있다. 그런 자세가 진보파의 기개라고 본다. 그런 것 없이 이번 대선에서 뭘 하려하면 안 된다. 
정권교체, 연립정부 고민을 하다보면 계속 의존적 심리를 벗어날 수 없다. 진보적 시민은 또 들러리가 되거나 수동적 구경꾼이 되고, 결과에 대해서 또 한 번 실망할 것이다. 차라리 이런 단호함 보여주는 게 지도부에게 경각심 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당신들을 신뢰할 수 없다는 그런 신호를 보여주는 게 낫다.
노동자 대통령 후보를 내는 흐름이 성과는 내기 어렵다. 기존 민주노총 지도부, 정규직과 명망가 중심성에 대한 비처럼 소극적 비판으로는 정치를 할 수가 없다. 정치는 적극적 가능성을 불러일으키는 일이다. 그런 에너지를 만드는 데 본인들이 익숙해지는 심리를 갖고 정치를 해야 한다.
정치라는 건 정말 인간이 갖고 있는 미칠 것 같은 열정에서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그 길은 내는 사람들은 화만 내면 길이 안 열린다는 걸 잘 알아야 한다. 괴롭지만 나와 같이 가면 비를 피해가고, 우애를 찾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정치에서 보통 시민연합, 시민정치라고 하는 흐름은 압력정치를 특징으로 한다. 본인들이 다른 정당에서 대표될 수 없는 열정이 있지만, 지지 기반이나 균열 기반을 조직해서 사회 권력구조에 변화를 주는 것이 아니라, 정당은 기존 정당 체제에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시키는 압력행사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게 전형적인 시민운동의 한 방법이다. 이런 흐름이 있는 것 자체가 유해한 것은 아니데, 그게 만들어내는 부정적 효과가 늘 있다. 주체들이 스스로 조직하는 걸 잘 못하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시민운동 엘리트들의 이력을 보면 결론적으로 정치권에 이렇게 저렇게 차명하는 것 이외 다른 정치적 변화는 만들어내지 못한다.
기존 정당 체제에 충격을 주려면, 스스로 권력 자원 없는 가난한 보통사람들의 응집을 통해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동원하는 방법밖에 없다. 시민운동은 전세계적으로 교육받은 중산층 운동이다. 또한 정당의 실패와 관련해서도, 정확하게 말하면 민주당이나 진보정당의 실패일 따름이다. 정당은 강해지고 있다. 안철수도 결국 정당으로 갈 수밖에 없다. 현대정치에 적응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조직적 무기는 정당이라는 것을 오히려 확인되고 있다.
시민정치 연합론은 인사이더 좀 더 참여시키는 것이다. 민주주의 가치를 자본주의라는 사회경제 토대 위에서 실현하려면 권력자원이 머릿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정치적 결사를 통해야 한다. 교육도 받고, 자기를 설명하는 말도 배우고, 일정 수준의 소득도 있는 중산층을 통해서가 아니다.
우리도 실패를 학습의 비용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온건한 사민주의적 이념에 바탕을 둔 제3정당이 50석 이상이 돼야 한국정치가 안정될 수 있다고 본다. 진보정당이 정당 체제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면 그 기간 내내 갈등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정도의 경제수준이라면 보수정치인들도 진보정치가 들어와야 보수정치도 안정된다고 생각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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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18 18:31 2012/10/18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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