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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자의 무기, 손배·가압류 (프레시안 기획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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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길님의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손배 가압류] 에 관련된 글.


아래 프레시안의 기획기사는 손배·가압류 문제를 알기 쉬우면서도 설득력 있게 잘 짚고 있다. 이 문제가 어떻게 발생했고, 국가와 자본에 의해 어떻게 활용되어 왔으며, 왜 없어져야 하는지를 다른 나라의 사례, 이 문제가 논란이 된 사례들을 들어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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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30111112704
내 가족 죽게 만든 '연쇄 살인범', 알고 보니… (프레시안, 최하얀 기자, 2013-01-14 오전 7:53:57)
[강자의 무기, 손배·가압류 ①] 헌법에 보장된 노동권, 돈의 힘에 짓눌리다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대한민국 헌법 제33조 제1항이다. 여기서 말하는 단체행동에는 잔업 거부, 태업, 부분 파업, 전면 파업 등이 포함된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다르다. 막상 노동자들이 단체행동을 하면,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은 손쉽게 제한된다.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악랄하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평가받는 게 손해배상청구소송(손배)과 가압류다.
지난해 12월 21일 최강서 한진중공업 노조 조직차장을 자살이라는 벼랑 끝으로 몰았던 것도 이 손배·가압류였다. 최 조직차장은 유명을 달리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노동 현장이 수십 억, 수백 억대의 손배·가압류에 시달리고 있다. 이를 짚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

"나는 회사를 증오한다. 자본, 아니 가진 자들의 횡포에 졌다.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심장이 터지는 것 같다. 내가 못 가진 것이 한이 된다. 민주노조 사수하라. 손해배상 철회하라. 태어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돈 158억. 죽어라고 밀어내는 한진 악질자본 박근혜가 대통령 되고 5년을 또…. 못하겠다. 지회로 돌아오세요. 동지들 여태껏 어떻게 지켜낸 민주노조입니까?? 꼭 돌아와서 승리해주십시오…. 돈이 전부인 세상에 없어서 더 힘들다…."
- 고(故) 최강서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 조직차장이 휴대전화에 남긴 유서
지난해 12월 21일 최강서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 조직차장은 이 같은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 씨의 죽음을 계기로 한진중공업이 노조를 상대로 제기한 158억 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이 도마에 올랐다.
노동계는 재작년에 이어, 다시금 '희망버스' 등을 조직하며, 손배·가압류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또 사측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각계각층의 2만3000여 명은 최근 부산지방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한진중공업은 문제가 되는 158억 원의 손배를 철회하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다. 손배는 파업 기간에 발생한 각종 피해를 보전하기 위한 최소한의 자구책이란 게 사측의 입장이다. 그러면서 지난해 12월 26일에는 최 씨의 자살을 두고 "지극히 개인적인 사안"이라며 노조의 교섭 요청을 거부했다.
과연 그럴까. 최 씨의 죽음을 단지 '사적인 선택'으로 치부해도 되는 걸까. 그러기엔 손배·가압류 문제는 지난 10여 년 동안 너무나 많은 노동자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실제 죽음이 아니더라도, 일상 경제생활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사실상 사회·경제적 죽음 상태로 몰아넣은 사례도 많다.
"잊을 수 없는 죽음"…두산중공업 배달호, 한진중공업 김주익·곽재규 등
손배·가압류를 비롯한 사측의 압박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동자는 최 씨만이 아니다. 지난 10년간 여러 사람이 이 문제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무차별적인 손배·가압류는 사실상 '연쇄 살인 무기'나 다름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대표적인 게 지난 9일 10주기를 맞은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 씨의 죽음이다. 노동계가 '손배·가압류'라 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바로 배 씨, 그리고 한진중공업 김주익 노조 위원장이다.
고 배달호 씨는 두산중공업 노조 교섭위원이었다. 2002년 두산중공업은 노조를 상대로 65억 원 규모의 손배와 가압류를 청구·신청했다. 배 씨는 2003년 1월 자신의 몸에 기름을 붓고 분신하며 사측이 제기한 손배의 부당성을 호소했다. 그리고 불과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비슷한 일이 한진중공업에서 벌어졌다. 김주익 당시 노조 위원장은 구조조정과 손해배상 청구 철회를 요구하며 그해 6월부터 부산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벌였다. 재작년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이 올랐던 그 크레인이다. 그러다 그해 10월 17일, 김 위원장은 농성 129일 만에 85호 크레인 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로부터 13일 후, 곽재규 조합원이 도크에 몸을 던져 세상을 떠났다.
이후 한진중공업과 금속노조는 "노조 활동을 이유로 손해배상청구소송과 가압류를 하지 않는다"는 합의서를 작성했다. 그러면서 당시 노조를 상대로 제기했던 손배를 사측은 취하했다. 하지만 이 합의는 결국 지켜지지 않았다. 그리고 9년 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같은 이유로 동료를 또 한 번 떠나보냈다.
생사람 잡는 손배·가압류…"내 권리 요구하다 '패가망신' 한순간"
최강서, 배달호, 김주익, 곽재규 외에도 손배·가압류가 '(사회·경제적) 사망 선고'를 내린 노동자들은 많다. 경우에 따라, 임금·노조통장이 가압류돼 생활이 불가능해짐은 물론, 가족들과 함께 살던 집까지 경매에 부쳐진 사례도 있다.
6년째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재능교육 해고 노동자들이 딱 그런 경우다. 재능교육은 지난 2008년 노조를 상대로 업무방해금지가처분을 신청냈다. 서울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 항의 농성을 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이를 통해 사측은 노조원 8명의 급여와 통장을 가압류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중앙지법에 강제 압류를 신청했다. 그리고 2010년 10월, 재능교육 직원 6명이 법원 집행관과 함께 오수영 전 노조 사무국장 집에 들이닥쳤다. 이들은 오 전 사무국장의 시어머니가 혼자 있는 집에서 세탁기, 김치냉장고, 장롱, 텔레비전 등 총 127만 원어치의 가전 제품에 빨간 압류 딱지를 붙였다.
이 일에 대해, 오수영 전 사무국장의 남편은 포털사이트 '다음'의 아고라에 다음과 같이 썼다.
"오늘 저희 집에 법원 집행관과 자칭 채권자 교육기업 재능교육에서 와서 집안 집기들에 빨간딱지들을 붙이고 갔습니다. 육아 때문에 2년 전에 합가해 모시고 있는 어머님 혼자 계실 때, 장정 6명 정도가 우르르 몰려와 제대로 설명도 없이 왜 함부로 들어오냐니까 우리는 그냥 문 따고도 들어올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하면서 집안을 어슬렁거리면서 여기저기 딱지를 붙였다는군요."
"집사람이 노조일 한다고 애 돌볼 여력이 안 돼서 곧 칠순인 어머니하고 합쳤습니다. 몇 년 전에 세 아들네가 주는 용돈들 모아서 사신 김치냉장고에 딱지가 붙었습니다. 당신이 드시려는 생각보다는 김치 담글 줄 모르는 며느리들 생각에 많이씩 담가서 나눠 먹이려고 당신 용돈 모아서 사신 거지요. 그 김치냉장고에 붙어 있는 딱지. 보니까 참 거시기합니다."
이것만이 아니었다. 사측은 오 전 사무국장의 집안 집기를 압류하고 두 달 후인 2010년 12월, 유득규 재능지부 조합원의 자택을 실제로 경매에 넘겼다. 강제 경매 통보를 받은 집은 유 씨의 어머니가 유산으로 물려준 것이었다. 당시 유 씨와 유 씨의 오빠 식구까지 총 다섯 명이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이 같은 재능교육의 노조원 재산 압류는 당시 시민사회 진영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사측이 실제 빨간 압류 딱지를 들고 자택에 들이닥치거나, 집을 경매에 부쳐버린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노동계는 이 사건이 노조 탄압의 '선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유 조합원 자택에 대한 강제 경매는 재작년 법원에서 기각 결정이 내려졌다. 또 오 씨에게서 압류한 재산에 대해서도 재작년 사측은 경매를 취하했다고 밝혔다. 그 외에 사측이 노조원들을 상대로 벌였던 20억 원 규모의 손배와 여타 경제적 압박도 현재는 일부 해제된 상태다. 단, 강종숙 학습지 노조위원장의 급여는 재작년 1월부터 지금까지 100% 압류되고 있다.
이 같은 재능교육의 손배·압류 사례는, 사측이 마음만 먹으면 노동자들의 경제생활을 얼마든지 파탄 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또 그에 따른 고통은 노사갈등 당사자인 노조원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까지 겪게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였다.
이와 관련,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노조 활동이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란 인식을 사회에 뿌리내리게 하려는 시도"라며 "손배·(가)압류는 매우 반인권적인 신종 연좌제"라고 비판했다.
힘들게 지켜온 노조, 사측의 가압류 협박으로 '산산조각'
또 하나 눈여겨볼 사례는, 반도체 공장 KEC가 노조를 상대로 손배·가압류를 사용한 방식과 목적이다. 수십 억, 수백 억대의 청구액을 노조로부터 전부 받아내려는 게 손배를 청구하는 사측의 진짜 목적으로 보기는 어렵다. KEC 등 많은 사례에서 손배·가압류는 사측이 자신들과 갈등을 빚고 있는 노조를 파괴하거나, 집단행동을 조기에 제압하려는 목적으로 사용된다.
KEC 노조는 지난 2010년 6월 '노사 성실교섭'을 요구하며 14일간 옥쇄 파업(점거 농성)을 벌였다. 그러다 노사 양측은 '즉시 교섭, 징계·고소·고발·손해배상 등의 최소화' 원칙에 합의했다. 이 합의에는 당시 야 5당도 참여해 '사회적 합의'라 불렸다. 하지만 막상 파업이 끝나자, KEC는 노조 간부 및 조합원 88명(점거 농성자)을 대상으로 무려 301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이를 빌미로 조합원들에게 사직을 종용하기 시작했다.
금속노조 KEC 지회 김성훈 지회장은 "사측에서 조합원들에게 개별적으로 전화를 걸어, 손배 안 걸고 희망퇴직금 몰아줄 테니 퇴사하라고 설득했다"며 "이런 노조 파괴 작업을 통해 당시 조합원 150여 명이 사표를 쓰고 회사를 떠났다"고 말했다. 150여 명이 떠났으니 노조의 기세가 기우는 건 당연했다. 김 씨는 "한번 노조가 꺾였다는 소문, 회사가 사표 내면 손배를 안 건다는 소문이 현장에 퍼지기 시작하자 퇴직이 줄줄 이어졌다"며 "조직이 무너지니 정말 답답했다. 힘들게 공장을 점거해서 교섭 합의를 이끌어낸 결과가 해고와 구속, 그리고 손배였다"고 말했다.
현재 KEC가 조합원들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금액은 156억 원으로 줄었다. 재판 과정에서 입증이 어려운 부분을 사측 스스로 취하하면서다. 하지만 여전히 노동자들은 커다란 심리적·경제적 압박과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김 지회장은 "손배를 빌미로 한 사측의 노조 탈퇴 작업으로 빠져나간 많은 사람의 빈자리를 남은 사람들이 정말 간신히, 간신히 지켜가고 있다"며 "사측은 지금도 손배 1심 결과가 나오면 바로 집행을 하겠다는 협박을 멈추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고(故) 최강서 씨의 죽음을 바라보는 마음도 남다르다. 김 지회장은 "최강서 열사를 보면, '저게 우리의 미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감정이입이 되곤 한다"며 "그래서인지 최근 노조 분위기가 부쩍 우울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가 가진 걸 다 뜯어가도 156억 원이 나올 리 만무하다. 사측도 이를 당연히 알고 있다"며 "회사가 진짜 원하는 건 돈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느낄 불안이나 공포, 절망감"이라고 말했다. "벼랑 끝까지 밀어 넣어 원하는 바를 달성하고 싶은 것"이란 말도 덧붙였다.
금속노조 사업장만 해도 총 709억6000만 원 손배, 20억8000만 원 가압류
2013년 1월 현재,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 사업장 중 손배·가압류에 시달리고 있는 곳이 총 12곳에 이른다. 청구한 손해배상 금액만 총액 약 709억6000만 원이고 가압류 금액도 20억8000만 원에 이른다. 이 밖의 다른 산별노조 소속 사업장까지 생각하면, 그 규모는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2009년 77일간 옥쇄파업을 벌였던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지부와 금속노조에는 약 430억9000만 원 규모의 손배 및 구상권 청구가 걸려 있다. 이와 함께, 일부 노조 간부들의 임금 및 퇴직금, 부동산 등(28억9000여만 원 규모)이 가압류됐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에는 전주 지회 소속 간부 및 조합원들에게 22억6000만 원, 아산 지회에는 16억7000만 원대 손배가 청구됐다. 발레오만도 노조에는 26억4800만 원, 포항 DKC 노조에는 26억 원, 유성기업 노조에는 58억6400만 원의 손배가 걸려 있다.
이 같은 수십 억, 수백 억대 손배로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은 무색해졌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정당한 투쟁을 벌이더라도, 사측이 제기하는 민사소송(손해배상청구소송)은 쉽사리 제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양형근 쌍용자동차 지부 조직실장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으로 압박하는 것만큼 잔인한 압박 방법이 어디 있겠나"라며 "자신의 일자리, 노조, 가족 등을 지키기 위해 벌인 투쟁이 자본주의 사회에선 사망 선고나 다름없는 손배로 돌아온다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지는 게 당연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30130110231242
대한민국, 국민 목에 '돈의 칼'을 들이대다 (프레시안, 김윤나영 기자, 2013-01-15 오전 8:09:10)
[강자의 무기, 손배·가압류 ②] 이명박 정권, 노동자 대상 손배 본격화
"노동자들의 죽음을 현 정권과 연결시키려는 주장은 잘못됐다."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2일 정부 과천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 말이다. 이 장관은 "손배나 가압류 문제는 한진중공업 조합원 유서에 언급됐으나, 노동조합에 대한 것이고 개인에 대한 사항은 없다"면서 이와 같이 발언했다. 이 장관은 "손배는 노무현 정부 때가 건수는 훨씬 많고 금액은 이명박 정부 때가 커졌다"고 덧붙였다. 노무현 정부 때 손배와 가압류 건수는 각각 62건, 60건이었으나 이명박 정부 들어 33건, 26건으로 줄었다는 것이다.
이 장관이 지적한 대로 손배·가압류 문제가 이명박 정권 들어 처음 나타난 건 아니다. 그 이전에도 손배·가압류는 존재했고, 노동자의 죽음에 영향을 끼쳤다. 2003년 1월 두산중공업의 배달호 씨가 분신 자살했고, 같은 해 10월 김주익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장이 '손배·가압류 철회'를 요구하며 스스로 목을 매 숨졌다. 노동자들이 잇따라 목숨을 끊었던 2003년 당시 언론은 손배·가압류를 '신종 노조 탄압 수단'으로 지목하며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지만 손배로 노동자가 죽는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손배는 어떻게 '신종 노동 탄압' 수단이 됐나?
200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손배는 사회 문제로 대두되지 않았다. 1990년대에 경영계는 주요 파업 대처 방식으로 민사소송보다는 형사소송을 통한 파업 주동자 구속·수감을 택했다. 노조 간부 구속 및 수억 원대 손배 청구가 동시에 이뤄졌지만, 파업이 끝난 후 노사가 서로 민형사상 소송을 취하하는 것이 관례였다.
2000년대 초반 들어 상황은 달라졌다. 경영계에서 손배 청구는 노조에 대처하기 위한 효율적인 '경제적 압박 카드'로 부상했다. 실제로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부설 연구원이 2004년 내놓은 '불법 쟁의 행위와 손해배상·가압류에 관한 연구'를 보면, 경영계는 "불법 파업에 대한 손배·가압류는 최소한의 자구 조치"라고 주장했다.
손배의 양태도 달라졌다. 경영계는 '노조 조직'에만 부과하던 손배를 2000년대 이후 노조 간부뿐만 아니라 파업에 참가한 평조합원, 가족, 신원보증인에게도 부과했다. 가압류 대상도 노조 조합비에서 노조원 개인의 임금 및 퇴직금, 노조원의 아버지나 형제의 선산까지로 확대됐다. 친척에게까지 '연좌제' 성격의 차압이 들어오니 집안이 풍비박산 나고 가족 관계가 파탄 나는 것은 당연했다.
배달호·김주익 씨가 숨진 2003년 전후 손배는 '노조에 대처하는 협상 카드'에서 '노조 탈퇴 압박 수단'으로 차츰 진화했다. 사측은 전방위적으로 손배·가압류를 걸어 노동자를 압박한 뒤, 노조를 탈퇴하고 회사에 순응하는 사람들에게 선별적으로 가압류를 취하했다. 박성호 한진중공업 지회 부지회장은 "손배를 갚을 수 있는 길은 노조를 탈퇴하고 회사한테 잘못했다고 비는 것"이라며 "그렇게 노조 간부들이 회사와 손잡고 해고 명단이나 손배 대상에서 빠지면, 노조는 완전히 깨진다"고 말했다.
배달호 씨의 죽음은 '손배 탄압'의 상징이었다. 두산중공업 노조 교섭위원이던 배 씨는 2002년 단체협상이 어그러지고 파업에 돌입하면서 임금과 퇴직금, 부동산이 압류됐다. 배 씨는 구속된 이후 현장에 복귀했지만, 가압류로 6개월 이상 사실상 임금도 받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는 초반에 배달호 씨의 죽음을 외면했다.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금과 같이 민주화된 시대에 노동자들의 분신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투쟁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후 김주익 지회장마저 '손배' 문제로 스스로 목숨을 끊자 노 전 대통령은 노동자 투쟁에 대한 강경한 태도에서 한 발 물러났다. 2003년 11월 정부는 노사정위원회를 열고 급여에 대한 가압류 범위를 최저임금이 보장되도록 제한하는 방안을 도입키로 결정했다. 경영계도 신원보증인과 평조합원에 대한 손배 청구는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문제는 가압류 대상이 되는 노동자들이 주로 '징계 해고자'라는 점이다. 이미 해고돼 최저임금만큼 남겨둘 '급여'조차 없는 노조 간부들과 그 가족들의 부동산은 제도가 도입된 이후에도 여전히 차압됐다. 해고 시 가압류로 퇴직금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현실은 이명박 정부 때에도 이어졌다.
"민주노총 사업장에 청구된 손배 총액, 575억→1582억"
이명박 정부 들어 변한 것도 있었다. 우선 이채필 장관 스스로 밝혔듯 손배 액수가 절대적으로 늘었다. 민주노총이 2011년에 낸 정책 보고서를 보면, 민주노총 소속 사업장에 청구된 손배 총액은 2003년 10월 575억 원에서 2011년 5월 1582억7000만 원으로 3배에 가까운 금액이 됐다.
손배 액수를 보수적으로 책정하는 고용노동부 자료를 따르더라도, 손배 총액은 2010년 121억4200만 원에서 2011년 7월 700억1000만 원으로 6배에 가까운 금액이 됐다. 가압류 신청 금액도 2010년 13억3000만 원에서 지난해 160억4900만 원으로 12배가 됐다.
손배 액수가 커진 이유에 대해 권두섭 공공운수노조 법률원장은 "2003년 직전까지만 해도 돈 있는 사측이 경제적 약자인 노동자에게 손배를 청구하는 것을 도덕적으로 꺼리는 분위기가 있었다"며 "지금은 손배에 대한 사회적 문제 제기나, 국회나 정부 차원에서 제한하려는 노력이 없다 보니 마구잡이로 금액을 청구한다"고 분석했다.
이명박 정부, 노조에 대한 손배 청구 본격화
이전까지 손배 청구 주체가 주로 사측이었다면, 이명박 정권 들어 정부가 노조와 파업 참여 노동자들에게 본격적으로 손배를 청구하기 시작했다는 점도 중요한 변화다. 2009년 쌍용자동차 파업에 대한 손배 청구가 대표적이다. 2009년 당시 1년치 최루액 사용량의 90%를 사용해 파업을 진압했던 정부는 쌍용차 해고자들을 상대로 경찰 치료비와 경찰 개인 위자료 및 장비 손상비를 청구하는 소송을 벌이고 있다. 이 소송의 원고 '대한민국 및 경찰'이 피고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와 노동자 103명에게 세 차례에 걸쳐 청구한 손배 금액만 22억 원이다. 65명을 대상으로 청구한 가압류 금액도 20억 원에 달한다.
2011년 사측이 공격적으로 직장 폐쇄를 한 유성기업에서도 정부가 유성기업 노동자 30여 명에게 '경찰 피해 및 장비 손상비' 1억1000여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에 더해 정부는 2800만 원의 가압류를 신청했고, 해고자인 홍종인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장의 퇴직금을 압류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한정애 민주통합당 의원이 지난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08년부터 2011년 8월까지 국가가 노조와 노조원을 상대로 승소한 손배 소송 수는 8건, 압류를 마친 손배 액수는 1억6000만 원이다. 이는 정부가 '노조'로 인정하지 않는 화물연대(특수고용직) 파업에 대한 손배 소송, 그리고 패소한 소송과 진행 중인 소송은 제외한 수치다.
양형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조직실장은 "이전에는 회사만 손배를 때렸지만, 국가까지 나서서 노동권이 있는 노동자에게 손배를 청구하는 것은 납득이 안 간다"며 "다친 사람은 우리가 더 많은데 경찰 개인 위자료 2억 원까지 청구하는 건 너무하다"고 호소했다.
공공 부문에서 정부가 '손배로 적극 대응' 독려하기도
노동계에서는 정부의 노동정책이 '파업 유도→고소·형사처분→파업 불법화→징계해고·손배 소송→노조 파괴'를 묵인하거나 조장한다고 분석한다. 정부와 경찰의 묵인 하에 손배는 '노조 압박' 수단으로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한명숙 민주통합당 의원이 아산경찰서에서 입수한 문건을 보면, 경찰은 "유성기업 파업은 적법"하다고 자체 판단했지만 "(파업) 상황이 악화하고 여론 지지를 확보한 뒤 경찰력 투입, 노조 지도부 체포영장 조속 발부를 통한 (노조) 지속 압박, 사측에 손해배상 청구 유도를 통한 지속적 노조 압박" 등의 대응책을 내부 문건으로 공유했다.
공공 부문에서는 정부가 더 노골적으로 '노동 탄압'을 주문하기도 했다. 2009년에는 청와대와 국무총리실이 한국전력 자회사인 발전회사들의 노조 탄압을 지시한 정황이 포착됐다. 주목할 만한 점은 정부가 직접 주관한 회의에서 공기업의 "(민형사상) 고소, 고발에 대한 적극적 대처"를 독려했다는 점이다.
2009년 9월 17일 박영준 당시 국무총리실 국무차장 주재로 '노사관계 회의'가 열렸다. 노동부, 행안부, 지경부, 교과부, 방통위 등 정부 부처 국장이 참석한 자리였다. 발전노조가 공개한 당시 회의록에 따르면, 이영호 당시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은 "철도공사에(서)는 적극적으로 노조 대응을 하고 있으나, 가스와 발전은 계획만 있지 실천은 없다"고 지적했다. 박영준 차장은 "해당 기업이 고소, 고발하면 경찰에서는 적극적으로 대처 당부"라며 손배를 포함한 각종 민형사상 소송을 독려했다.
이영호 비서관은 "인사권, 경영권에서 양보하지 말고 원칙적으로 대처"하되 "이면계약 등 노사 간의 이면 합의는 절대 용납 불가"하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정부가 이미 일어난 노사 분규에 공권력을 투입해 진압하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정부가 직접 '노사 문제에 개입'해 노사 분규를 유도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영호 비서관이 '노조 대응을 잘하고 있다'고 칭찬한 철도공사의 상황을 보자. 철도공사는 2006년 3월 철도노조가 '철도 민영화 철회, 인력 충원,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걸고 불과 나흘간 돌입한 파업을 빌미로 2009년 100억 원대의 손배 소송과 가압류를 단행했다. 2009년 파업 때도 노조 간부들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와 압수수색이 이어졌다. 200여 명이 해고됐고 1만3000여 명이 징계됐으며, 100억 원이 넘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이 뒤따랐다. 결과는 참혹했다. 철도노조 파업에 참여한 이후 해고자가 된 허모 씨(39)는 2011년 11월 21일 화장실에서 연탄불을 피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실제로 청와대와 정부가 '발전노조 대응 회의'를 한 지 두 달 뒤인 2009년 11월에는 동서발전이 발전노조와 맺은 단체협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해 파업을 유도했다. 한전은 발전회사 노조들의 '민주노총 탈퇴' 실적과 '노조 사무실 회수' 노력을 경영 평가에 반영했다. 같은 해 발전노조 영흥화력 남성화 지부장은 '근무 태만'을 이유로 해고됐다. 발전회사가 노조에 걸었던 손배 소송은 결국 법원에서 기각됐다.
수십억 원대 손배액은 합당한가?
손배 가압류가 노동자들의 죽음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쳤음에도 경영계는 손배·가압류가 '불법 파업을 막는 효율적인 수단'이라고 강조한다. 문제는 노동자들이 한국에서 '합법 파업'을 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헌법은 파업권을 보장하고 있지만, 정부와 법원은 파업권과 경영권이 충돌하면 경영권이 우선이라고 해석한다. 다시 말해 철도노조가 KTX 민영화에 반대하거나, 한진중공업 지회가 정리해고에 반대하거나, 언론노조가 편집권 독립을 요구하거나, 두산중공업 노조가 회사 매각에 반대해 파업하면 '불법'이다. 파견 노동자들이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원청 사업장에서 파업하는 것도 원천적으로 불법이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사측이 청구하는 수억, 수십억 원대의 손배액이 합당한지 여부는 별개의 문제다. 일례로 경주 발레오만도가 파업 참가자 32명에게 청구한 손배액 26억4800만 원에는 영업 손실액, 용역 투입비와 더불어 파업에 따른 '사장의 명예훼손 및 정신적 피해 위자료'가 포함됐다.
권두섭 공공운수노조 법률원장은 "파업으로 손해가 안 생겼을지라도 사측은 노조 압박 수단으로 손배 대상이 안 되는 천문학적 액수를 일단 청구하고 본다"며 "설사 법원에서 몇 년 뒤에 기각 판결이 나더라도 당장 파업을 진행하는 노조를 무력화해야 하고, 가압류도 (되면 좋고) 법원에서 안 받아주면 그만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사측이 신청한 '가압류'가 일단 받아들여지면, 재판이 진행 중이더라도 신속하게 재산을 차압해 광범위한 노동자들을 압박할 수 있다는 얘기다.
법원이 일반적으로 사측의 자료를 넓게 인정해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낸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권 법률원장은 "노조로서는 영업 손실액이 적절한지 확인할 정보가 없고, 법원은 사측이 면밀한 손실액을 입증하지 않아도 사측 자료를 편의적으로 인정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30111204209
"158억 손배? 외국은 '야만적인 한국'으로 볼 것" (프레시안, 최하얀 기자,김윤나영 기자, 2013-01-16 오전 8:07:44)
[강자의 무기, 손배·가압류 ③] 노동계 "노조법 개정해 파업권 보장하라"
"업무방해죄, 애초에 노동운동 탄압 목적으로 탄생"
혹자는 "야만적 자본주의 시대"라 부르는 19세기, 유럽에는 '단결금지법'이란 것이 있었다. 노동자들의 단결은 계약의 자유를 해치는 '죄악'으로 간주됐다. 여러 유럽 국가는 단결을 공모죄로 엄하게 처벌하는 '단결금지법'을 만들고, 노동자 파업을 철저히 차단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게 다음의 법조문이다.
임금 인상이나 임금 인하를 강요할 목적으로, 혹은 산업 또는 노동의 자유로운 수행을 방해할 목적으로, 폭력·폭행·협박 또는 위계로써 노동의 조직적(공동) 정지의 결과를 발생케 하거나 그 정지를 유지·존속케 하거나 혹은 그 실행에 착수한 자는 6일 이상 3년 이하의 구금 또는 500프랑 이상 1만800프랑 이하의 벌금을 매기거나 이를 병과한다. - 1864년 프랑스 형법 제414조(업무 방해)
쉽게 상상되듯, 이 조항은 파업을 원천 봉쇄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다. 이와 관련,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이호중 교수는 "이처럼 '업무방해죄'란 애초에 노동운동을 탄압할 목적으로 탄생했다"며 "1864년 프랑스 형법은 일본 형법에서 '위력업무방해죄'로 변경된 후, 우리나라 형법에까지 반영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업무방해죄가 폐지돼, 지금은 없다. 우리와 법체계가 비슷한 일본도, 위력업무방해죄가 존재하긴 하나 노동자 파업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많은 노동자의 피와 눈물의 대가로, 이들 국가가 단결권을 비롯한 노동3권을 '기본권'의 하나로 인정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은 왜?…"파업을 예외적으로 인정하는 논리 때문"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는 '업무방해죄'가 노동자들의 집단행동에 광범위하게 적용된다. 파업이 개시되면, 거의 곧바로 업무방해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및 가압류가 자동으로 따라붙기 마련이다. 이는 '파업권'을 매우 협소하게 인정하는 상황과 관련이 있다. 현행 형법 제314조(업무방해)는 "위력으로써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단, "노조법상 파업의 요건을 준수하면 예외적으로 업무방해죄로 처벌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붙는다. 149년 전의 프랑스 형법과 별로 다르지 않다.
이 형법에 따르면, 업무방해가 본질인 '파업'은 기본적으로 불법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는 곧 민형사상 처벌로 이어진다. 이를 두고, 이호중 교수는 "(한국의 업무방해죄는) '파업은 일단 나쁜 범죄'란 전제를 깔고 있다"며 "정당화되는 파업을 아주 예외적인 것으로 풀어가는 이 논리 구조로 노동자의 권리는 제약되고 있다"고 말했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합법' 파업?
그렇다면 노조법이 예외적으로 '허락'하는 파업이란 대체 뭘까. 사람들이 흔히 볼 수 있는 파업, 예컨대 쌍용차 옥쇄 파업, 한진중공업 파업, 현대자동차 사내 하청 파업 등엔 모두 '불법' 딱지가 붙었다. '합법' 파업 사례를 찾기는 좀처럼 쉽지 않다.
이 교수가 정리한 노조법상 파업 정당성 요건은 다음과 같다. ① 근로조건의 개선을 목적으로 한다. ② 노조 찬반 투표를 거치는 등 절차가 정당해야 한다. ③ 사용자의 재산권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 가운데 ① 요건에 따라 임금, 근로시간, 근로복지에 관한 파업은 그 정당성을 인정받는다. 반면 정리해고, 구조조정, 민영화, 자유무역협정(FTA) 등에 반발한 노동자 파업은 다 불법으로 여겨진다. 또 ③ 요건에 따라, 노조가 생산 시설을 멈추고 직장을 점거하면 곧바로 불법 파업이 된다. 이렇게 불법 파업이 되는 순간, 아무리 정당한 파업일지라도 바로 공권력이 투입되고 업무방해죄 처벌도 이어진다. 쉽게 말해, 헌법(33조)이 보장한 노동3권을, 하위법이 제한하는 꼴이다.
영국·프랑스·일본 등에선 불법 파업 되기가 더 어려워
파업을 극히 예외적으로 인정하는 한국과 달리, 해외 선진국들에서는 오히려 불법 파업이 되기가 더 까다롭다. 금속노조 법률원 소속 김태욱 변호사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와 법체계가 비슷한 일본도 정리해고 반대 파업을 '불법'으로 보지 않는다. 또 정치 파업, 예컨대 정부의 환경 파괴에 반발해 노조가 벌이는 파업도 근로조건과 관련성이 있으면 합법으로 인정된다.
순천향대 조경배 법학교수도 비슷한 지적을 한다. 조 교수는 "정리해고 반대 파업을 '불법'으로 해석하는 국가는 세상 어느 나라에도 없다"며 "한국 법원이 국가주의 사상에 극도로 물들어 생긴 문제로, 국제사회의 보편적 기준에 전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권두섭 변호사도 "영국, 프랑스 등 외국 사례를 보면, 파업이 불법인 경우가 극히 드물다"며 "정리해고·구조조정 (반대 파업), 정치 파업, 노동법 개정 파업 등을 폭넓게 정당한 파업권 행사라고 보는 사례가 더 많다"고 말했다.
"파업권 폭넓게 보장해야"
이에 전문가들은 한국이 파업권을 현재보다 폭넓게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달리 말해, 하위법(노조법)이 상위법(헌법)보다 우선하는 모순을 해결하자는 얘기다. 조경배 교수는 "전체 법체계를 노동3권이 보장되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노조법 개정이 필수"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특히 노조법에 있는 '형벌' 조항을 모두 없애야 한다"며 "노조법 속에 형벌이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노조법을 보면, 거의 모든 조항이 '이런 쟁의행위를 하면 이렇게 형벌한다'는 형벌 조항"이라며 "이런 형벌 조항을 모두 없애고 사용자와 노동자가 자율적으로 힘겨루기를 하게 놔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조 교수는 "법체계 전반이 파업을 원천 허용하고, 다만 개별적 행위에 대해 죄형법정주의 원리에 따라 위법성 여부와 형벌을 따져야 한다"며 "지금과는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가야, 노동3권이 기본권으로 보장된다"고 말했다.
손배 금액 산정은 누가, 어떻게?
손배 금액의 규모와 그 산정 방식에 대해서도 노동계는 할 말이 많다. 한국의 경우, 기업들이 '일단 세게 걸고 보자'는 태도를 취하는 까닭에, 손배 규모가 수백억 대까지 치닫기 때문이다.
일례로 한진중공업이 노조를 상대로 제기한 158억 원 손배를 두고 노동계는 "말도 안 되는 산정 논리"라고 비판한다. 박성호 한진중공업 지회 부지회장은 "노조가 정리해고 철회를 걸고 2011년 파업했을 당시, 회사가 수주한 선박은 하나도 없었으므로 손해가 발생하는 게 불가능"하다며 "게다가 사측이 노조에 청구한 158억 원 가운데 3분의 2는 2009년부터 2010년까지 합법 파업 기간에 청구한 금액"이라고 주장했다.
영업 손실을 측정할 수 있는 원자료(재무제표 등)를 애초에 사측만 가지고 있는 까닭에, 관련 소송이 노동자 쪽에 훨씬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김태욱 변호사는 "영업 손실을 감정할 때, 사측이 가진 자료가 일단 기초가 된다"며 "그런데 이 자료가 어디까지 사실이냐를 검증하는 건 쉽지 않다. 자료가 진짜인지 아닌지는 외부인(감정인)이 봐도 모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사측은 영업 손실을 청구할 때, 생산한 만큼 다 판매된다고 전제한다"며 "하지만 피고(노동자) 측에서는 생산해도 안 팔리면 오히려 손해라는 지적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노사 시각 차이가 손배 소송에서 항상 쟁점이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사법부는 보통 "원고 편(사측)"이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권두섭 변호사는 "사측이 해괴망측한 논리로 손배 규모를 키워도, 법원은 아무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분위기가 됐다"고 말했다.
글로벌 스탠더드?!…"158억 손배, 외국은 '야만적'으로 볼 것"
반면, 외국에서는 파업의 불법성이 인정되더라도, 손배는 극히 제한적으로 사용된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권 변호사는 "해외에서는 사측이 노동자에게 수십 억, 수백 억 원대 손배를 청구하는 것이 사회적인 지탄 대상이 된다"며 "오히려 사회적 비난에 따른 손실이 (손배 청구로 벌어들이는 이득보다) 클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러다 보니 설령 법적으로 손배 소송이 가능해도, 사측이 이를 피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조경배 교수는 "영국의 경우, 사용자가 노동자를 상대로 한 손배 청구의 상한선이 약 1억 원 수준으로 제한돼 있다"며 "158억은 (영국에선) 상상할 수 없다"고 전했다. 조 교수는 "외국에서는 '한국의 손배가 야만적'이라고 볼 것"이라며 "갚을 능력도 없는 노동자와 노조에 수백 억대의 손배를 청구하는 건 누가 봐도 '보복'성 소송"이라고 말했다.
"국회가 나서야"…노동계, "민주당 의지 보여라"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대안은 노동법 개정"이라고 말한다. 노동계 역시 손배·가압류를 지금보다 더 제한할 수 있도록 관련 법안을 개선할 것을 꾸준히 요구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7월 노동계의 요구를 담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이하 개정안)'이 국회에서 발의됐다. 심상정 진보정의당 의원 등 10명이 공동으로 발의한 이 개정안은 현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개정안을 보면, "사용자든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 그 밖의 노동조합의 활동으로 손해를 입은 경우에 노동조합 및 근로자에 대하여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 다만, 폭력이나 파괴 행위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에 대하여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는 대목이 나온다. 또 "손해배상에 영업 손실로 인한 손해 및 제3자에 대한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는 포함되지 아니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아울러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 그 밖의 노동조합 활동으로 발생한 손해배상청구권의 강제 집행을 보전할 목적으로 가압류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내용도 들어갔다.
문제는, 이 같은 개정안이 과연 이른 시일 안에 국회를 통과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이 개정안을 발의한 의원들은 전부 통합진보당과 진보정의당, 무소속 의원들이다. 제1야당인 민주통합당 소속 의원은 아무도 참여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 김태욱 변호사는 "민주당이 의지와 책임감을 가지고 개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자신들이 집권 여당이던 참여정부 당시에도 손배·가압류로 많은 노동자가 희생됐던 만큼 지금이라도 제도 개선에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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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7 02:48 2013/01/17 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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