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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詩, 문대현 曲 - 슬픔이 기쁨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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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노래를 기억하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다시 들어도 좋구나.
20년도 넘은 노래인데 말이다.
아마도 시가 좋아서일지도 모르겠다.
아래 글은 2009/01/29 00:51에 티스토리 블로그에 썼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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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기쁨에게는 정호승 시인이 1979년 펴낸 처녀시집 「슬픔이 기쁨에게」에 실린 시이다.
조세희의 난쏘공과 같이 1970년대의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얘기를 담고 있다. 검색해서 보니 "
의지적인 어조와 이기적 삶에 대한 비판적 태도, '슬픔'을 시적 화자로 설정하여 청자인 '기쁨'에게 말하는 형식을 취함(의인화)"라고 나와 있다. 아마도 이 시가 수능이나 논술에서도 출제되는 모양이다. 이렇게 접하는 것보다 현실과 연결해서 보면 더욱 실감나지 않을까. 
30년이 지난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용산 참사는 이 시가 말하고 있는 것들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돌칼님이 블로그에 올린 시를 보고 생각이 나서 문대현 님이 이 시에 곡을 붙인 동명의 노래를 담아놓는다.
돌칼님이 평한 대로 '낮은 멜로디와 조바꿈이 인상적인 노래'이다.
 

이런 식의 노래도 접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잘 알려지지 않았는지도 모르겠고...

 
이 노래가 어느 앨범에 실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래의 버전은 서울대 중앙노래패 메아리가 1992년 봄 공연에서 부른 것이다. 

 

 

 

 

정호승 詩, 문대현 曲 - 슬픔이 기쁨에게

 
(詩낭송 1~6행)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 주겠다.


저녁놀도 없이 해지는 나라
오늘도 해가 진다 어디로 가나

 
(詩낭송 7~13행)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번도 평등하게 웃어 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우리 죽어서 별에 묻히기 위해
언제 다시 헤어질 때 너를 만나나
홀로 새벽 강가에 우는 사람들
눈물의 칼을 씻고 바다로 간다

 
(詩낭송 13~19행)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길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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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3 03:42 2014/02/13 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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