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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 재난 맞은 정부가 채택한 정답 (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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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이후의 정국을 파시즘에 비유하는 건 조금 오바 같지만, 주말에 진행되는 촛불집회로 인해 서울 도심이 경찰에 막혀 인도 통행마저 자유롭지 않은 상황을 보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통행을 할 수 있도록 길을 터달라라는 요청마저 경찰들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거부한다. 이른바 상식, 이성, 합리 이런 것들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만약 자치경찰제로 바뀌면 조금 상황이 나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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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 재난 맞은 정부가 채택한 정답 (한겨레21 2014.06.02 제1013호, 엄지원 기자)
[특집1] 지난 5월17~18일 세월호 추모집회 참가자 200여 명 연행, 정홍원 국무총리
KBS에 ‘보도협조’ 요청하고 해양학자들 인터뷰 통제, 경찰은 유가족 미행

1923년 9월1일 오전 11시58분, 일본 관동 지역이 대지진으로 허물어졌다. 9만여 명이 숨지는 엄청난 인명 피해가 나자 일본 정부는 계엄을 선포했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약을 탔다”는 거짓 정보가 나돌아 조선인이 떼죽음을 당했다. ‘간토(관동) 대지진’의 비극은 여전히 진상이 규명되지 않았다.
집단 참사를 동반한 재난은 반드시 한 사회에 격정을 몰고 온다. 격정의 밑바닥에는 예측 불가능한 미래에 대한 공포가 있다. 스스로의 무능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국가는 더 강한 힘을 과시하고 무능을 지적하는 국민을 통제한다. 멀리 독일 경제 붕괴의 책임을 유대인에게서 찾으려 했던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이 수행한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과 2011년 3·11 동일본 대지진 뒤 집권세력이 추진한 집단 자위권 행사 움직임에 가까운 예가 있다. 사회 구성원의 분노를 집중시킬 대상을 물색하고, 비판 여론을 금지하는 것. 재난의 역사 속에서 ‘파시즘’으로의 일탈은 우파 정부들이 정답처럼 택해온 전략이다.
선장·선원 뭇매 뒤 유병언 표적으로
세월호 참사를 통과하는 박근혜 정부의 돌파 전략도 크게 다르지 않다. 참사 이후 대중의 증오와 분노를 집중시킬 표적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가장 먼저 증오의 대상으로 호명됐던 선장·선원들에 대한 뭇매가 지나간 뒤, 표적이 된 것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다. 사고 초기부터 일부 언론은 유 전 회장 일가를 지나치게 ‘악마화’하며 여론을 이끌었다. 그의 피의 사실과 무관한 과거 행적을 문제 삼거나 “대한민국의 적” “출두 거부는 대국민 선전포고”라고 규정하는 언론도 있었다.
지난 5월21일 검찰은 유 회장 등이 지내온 것으로 알려진 경기도 안성 금수원 일대에 70여 명의 수사관을 투입하고 경기지방경찰청 소속 15개 중대 1천여 명의 경찰 병력을 배치하는 등 총동원령을 내렸다. 이미 그에 앞선 5월20일 검찰 스스로 “유씨가 금수원 내부에 없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음을 고려하면, 대대적인 ‘뒷북’ 수색에 나선 것은 증거 확보를 위한 것보단 보여주기식 수사에 가깝다. 서울 지역의 한 경찰 간부는 “국민적 공분을 고려한다 해도 경제사범에 대해 지명수배를 내린 것도, 대대적인 검거 작전을 펼친 것도 이례적”이라고 평했다.
“9·11 이후 공중의 테러 공포는 정부의 권위를 강화하기 위해 체계적으로 조작되었다. 그 후 계속해서 시민권에 물린 많은 재갈, 이를테면 9·11 이후의 애국법은 공포를 통해 지배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경향을 그대로 보여준다.”(<공포정치>, 프랭크 푸레디) 구조 작업 실패로 땅에 떨어진 정부의 권위를 일으켜세운 것은 진심 어린 사과 이전에 공권력이었다. 경찰은 지난 5월17~18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벌어진 세월호 추모집회 뒤 200여 명의 참가자들을 연행했다. 청와대로 향하는 도로에 섰다는 이유다. 참사 이후 최대 규모의 집회에서, ‘2008년 촛불’ 이후 최대 규모의 시민들이 연행됐다. 박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를 앞둔 주말이었다.
외신기자가 붙잡히고 젊은 여성들이 저항 끝에 끌려갔다. 이튿날인 5월19일 아침 박 대통령은 “국민 여러분이 같이 아파하고, 같이 분노하신 이유를 잘 알고 있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정작 ‘같이 아파하고 같이 분노했던’ 대학생 용혜인(24)씨는 그 모습을 직접 볼 수 없었다. 서울 은평경찰서 유치장에 갇힌 채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대통령의 목소리를 간신히 들었다. 용씨는 “추모집회 참가자들을 잡아들인 것이야말로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국민의 항변에 대한 대통령의 응답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경찰은 배후가 누구냐고 물었다”
강력한 공권력 행사 뒤엔 ‘불순분자’ 색출이 이어졌다. 경찰에 연행된 집회 참가자들은 “경찰이 조사 과정에서 배후가 누군지를 주로 확인했다”고 입을 모았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 제안자인 용혜인씨의 페이스북 등을 통해 집회 소식을 접하고 현장에 나왔지만 경찰은 “세월호 추모 청년모임에 대해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조사 과정에서 20대 여성 연행자들에게 속옷 탈의를 요구하거나 욕설을 하는 등 인권침해가 이뤄졌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5월18일 서울 동대문경찰서에 연행돼 이틀 동안 조사를 받은 서지영(24)씨는 “경찰이 자해·자살 위험이 있다며 브래지어를 탈의한 채 조사받도록 요구해 너무나 불쾌했다”고 말했다.
“정말로 위험한 미국의 파시스트는 폭력을 선호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공적인 정보의 전달 경로들을 오염시키는 방법을 쓸 것이다.” 1944년 당시 미국 부통령이었던 헨리 월리스는 ‘어떤 사람이 파시스트냐’는 <뉴욕타임스>의 질문에 이와 같이 답했다. 파시즘적 징후를 띠는 현대 정부는 더는 물리적 힘에만 매달리지 않는다. 정보를 오염시키고 비판 여론을 틀어막는다. 세월호 참사 직후 박근혜 정부는 수습보다 비판 여론에 대한 ‘재갈 물리기’에 매달렸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공영방송인 KBS에 ‘보도협조’ 요청이라는 이름으로 간접적인 ‘보도통제’를 시도한 사실(5월21일 국회 긴급 현안질문)이 밝혀졌고, 정부의 연구용역으로 살아가는 해양학자들은 정부의 통제(4월21일 <노컷뉴스>)에 입을 닫았다. 전문가와 언론의 통제는 공포 통치의 필요조건 중 하나다.
경찰도 희생자 가족들의 움직임과 추모 분위기 정탐에 매달려온 것으로 드러났다. 김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공개한 세월호 참사 이후 안산 지역에 투입된 정보경찰 현황 자료를 보면, 경찰은 사고 발생일인 4월16일부터 5월20일까지 801명(연인원)의 정보경찰을 안산 단원고, 합동분향소 등에 배치했다. 단원서, 경기지방경찰청 외에 본청 소속 정보경찰까지 현장에 투입됐다. 진도에 투입된 인원까지 고려하면 1천 명을 훌쩍 넘길 것으로 보인다. 경찰이 청와대 등 분향소 인근에서 세월호 사고 추모의 의미를 담은 노란 리본을 매단 시민들에게 불심검문을 시도한 사실이 드러나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는 ‘불심검문 대처법’이 재빨리 공유되기도 했다. 더는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시민 불복종의 메시지인 셈이다.
추모 분위기 정탐, 1천 명 넘는 경찰 투입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파시즘은 소리 없이 진행된다. 기실 ‘n명의 파시즘 연구자가 있으면 n개의 파시즘 정의가 있다’고 말할 정도로 파시즘을 규정하는 일은 쉽지 않다. 다만 파시즘 정권을 식별하는 몇 개의 표지는 다음과 같다. △애국적인 표어와 슬로건 △인권을 인정하는 것을 경멸함 △적·희생양을 통합의 명분으로 봄 △군대를 최우선시함 △대중매체 통제 △국가안보에 대한 강박관념 △기업권력이 보호받음 △노동권력이 억압됨 △지식인과 예술을 경멸함 △범죄와 형벌에 대한 강박관념 △파벌주의와 부패의 만연.
일부를 제외한다면, 최소한 몇 가지 특징에서 고개를 주억거리게 될 것이다. 재난을 밟고 선, 파시즘의 징후들이 현 정부에서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언론학자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지금 국민들이 느끼는 분노는 너무나 광범위하고 치명적이어서 지금까지 정부가 위기 국면마다 써먹었던 것처럼 민주주의와 언론 탄압으로 덮는 것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임기응변과 국가통제로 흐른다면 이번엔 심각한 역풍을 맞을 수 있다.”
■ 참고 문헌
<아메리카, 파시즘 그리고 하느님>(데이비슨 뢰어·2007)
<파시즘>(장문석·2010)
<공포정치>(프랭크 푸레디·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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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2 11:22 2014/06/02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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