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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도서관이 큰 도시를 깨웠다 (시사저널 [1036호] 09-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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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구에서도 작은 도서관 운동이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어떠한지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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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도서관이 큰 도시를 깨웠다 (시사저널 [1036호] 2009년 08월 26일 (수)  이은지)
주민들이 자치적으로 운영…잠자던 새마을문고에도 영향 
 
지난 2000년 전국을 독서 열풍으로 몰아넣었던 MBC 프로그램 <느낌표>에 ‘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라는 코너가 있었다. 당시 MBC는 각 지방자치단체와 손잡고 전국 12개 지역에 ‘기적의 도서관’을 설립했다. 6년이 지난 지금, 전국 각지에서 제2의 기적의 도서관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지자체의 지원 없이 100% 주민의 손으로 만든다는 것과 사랑방 같은 규모의 작은 도서관이라는 점이다.
 
대구가 대표적이다. 시작은 단순했다. 아파트회관 안에 쌓인 책들을 묵히기가 아까워서 혹은 내 아이가 집 근처에서 책을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부모의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일단 한두 명이 주도적으로 나서서 작은 도서관을 만들기 시작하면 주위 사람들이 알아서 도와주러 찾아왔다. <시사저널>이 대구에서 취재한 작은 도서관 네 곳이 모두 그러했다. 
 
대구 지역 9개 작은 도서관이 모범 사례
대구에서 순수하게 민간이 주도해 만든 작은 도서관이 등장하기 시작한 때는 2007년. 2년 만에 아홉 개로 늘어났다. 작은 도서관이 주변에 미치는 힘은 컸다. 죽어 있던 새마을문고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1970년 새마을운동 당시 우후죽순 생겨났던 새마을문고는 대구에만 80개가 넘는다. 하지만 애정을 가지고 운영하는 주체가 없고, 지원금도 드문드문 나오는 바람에 창고로 전락해버린 지 오래였다. 그런 새마을문고에 작은 도서관의 영향을 받아 ‘자치적으로 운영해 보자’라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9개의 작은 도서관이 대구 지역에 가져온 변화는 이토록 컸다.
 
전례가 없기 때문에 설립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대구 롯데캐슬레전드(동구 신서동) 내 아파트회관에 문을 연 ‘꿈 날자 문고’는 한 입주민이 ‘미친 사람’이라는 소리까지 들어가며 만든 애증 어린(?) 문고이다. 입주자대표자회의 이영교 전 회장은 단지 사람 냄새 나는 아파트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도서관 설립을 건의했다. 인터넷 모임인 카페에 뜻을 말하자 호응하는 주민들이 많았다. 2007년 4월, 입주하면서 입주자대표자회의 회장을 맡은 이씨는 입주민을 대상으로 그림 그리기 대회를 열었다. 도서관에 비치할 책을 기증받기 위해서였다. 반응이 좋아 1천권을 쉽게 모았다. 이때부터 이씨는 발품을 팔기 시작했다. 동네 유지는 물론 대기업, 마트, 구청을 돌아다니며 후원을 요청했다. 이씨는 “일곱 살짜리와 한 살짜리 아이가 있다. 아이들이 고등학생만 되었어도 그렇게 구걸하듯이 열심히 돌아다니지 않았을 것이다. 내 아이에게 책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뛰어다녔다”라며 힘들었던 순간을 떠올렸다. 
 
아파트가 갖춰야 할 필수 조건으로 자리 잡아
이씨는 주택법을 뒤져 건설사로부터도 책을 기증받았다. 주택 건설 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3백 세대 이상인 대규모 신규 아파트를 건설할 때에는 건설사가 문고 설치와 8백50만원 이상의 도서를 구입해주도록 명시되어 있다. 이씨의 노력으로 2007년 11월, 도서관이 개관할 무렵에는 3천권 정도의 도서가 모였다. 운영 자금은 대표자입주회의 앞으로 나오는 판공비 50만원으로 충당하고 있다. 꿈 날자 문고 박미진 관장은 “도서관이 자리 잡기까지 2년 정도는 걸리는 것 같다. 도서관 설립을 이야기할 때, 2년은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함께 세워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대구시 달성구 월성동에 있는 하늘채 1단지 아파트 주민들이 도서관을 만들 때도 헤매기는 마찬가지였다. 2007년 3월 입주한 주민들은 아파트회관에 모여 비상대책회의를 하다가 무질서하게 쌓인 책을 보았다. 건설사 코오롱이 주택 건설 기준에 따라 보내온 3천5백권의 도서였다. 자연스럽게 어린이 도서관을 운영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자원봉사회가 꾸려졌다. 자원봉사회 정해분 회장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여섯 명의 아줌마가 모였다. 책에 바코드 찍는 작업을 아파트회관에서 했다. 사람들이 오다가다 보게 되자 자연스럽게 자원봉사자들이 늘어났다. 한 달 새에 20명이 넘어섰다”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도서관 개관에 앞서 입주민들의 동의를 받기 위해 설문조사를 했다. 입주자대표자회의 하종성 회장은 “아이가 없는 일부 주민들은 불만을 표시하기도 한다. 모든 아파트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이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직접 도서관으로 모셔와 보여주면서 취지를 설명했다. 아파트 잡수익으로 도서관을 운영하기 때문에 관리비에 추가적인 부담이 없다는 점도 강조했다. 결국은 다 수긍하더라”라며 흐뭇해했다.
 
2년 남짓 지난 지금, 작은 도서관은 하늘채 아파트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40명이 넘는 자원봉사자가 도서관 운영도 맡고, 시낭송 같은 부대 행사도 진행한다. 아파트 자원봉사자인 권해숙씨는 “우리가 작은 도서관을 만들 때만 해도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요즘은 작은 도서관 설립이 아파트가 갖추어야 할 필수 조건으로 자리 잡았다. 아파트 가격을 올리는 데에도 일조한다”라며 뿌듯해했다.
 
일반 주택이 모여 있는 지역에서는 작은 도서관 설립이 더 어렵다. 대구 반야월에 세워진 아띠 어린이 도서관은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대구 참여연대 동구 주민회 소속 회원들은 주변에 쉽게 갈 수 있는 도서관이 하나도 없다는 점에 착안해 작은 도서관을 만드는 일에 나섰다. 문제는 장소였다. 발품을 팔아 돈이 적게 드는 공간을 찾았지만 당장 보증금 5백만원이 없었다.
 
주민 1천명에게 저금통을 돌려 모금을 받고, 뜻있는 몇몇 주민들이 수백만 원을 기부했다. 간신히 5백만원은 모았지만 인테리어 비용이 부족했다. 2007년 12월 구성된 준비위원회 사람들을 중심으로 1일 주점을 열었다. 하루 만에 6백50만원을 모았다. 인건비라도 아낄 요량으로 주민들이 직접 공사에 나섰다.
 
이듬해인 2008년 10월, 1년여의 준비 기간을 거쳐 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아띠 어린이 도서관 김영숙 관장은 “지자체의 지원만 기다리고 있어서는 절대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없다. 주민들 스스로 도서관을 꾸려나갈 수 있다는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하지만 도서관이 생명력을 가지려면 신간이 끊임없이 들어와야 한다. 지자체의 지원에 전적으로 의존해서는 안 되겠지만 일정 자금은 지속적으로 지원해주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대구시도 지역 주민들의 이런 요구를 충분히 알고 있다. 대구시 교육학술팀 류은주씨는 “예산이 허락하는 한 지원금 규모도 늘려나갈 계획이다. 작은 도서관의 궁극적인 목표는 책만 보는 공간이 아니라 지식과 정보가 오고 가는 지역 커뮤니티 공간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대구가 선두로 나선 만큼 모범을 보이고 싶다”라고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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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5 18:00 2009/09/0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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