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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정치학을 하는 문제에 관하여(최장집,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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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최장집 교수가 쓴 '한국에서 정치학을 하는 문제에 대하여'라는 글을 읽었다. 정치학이라고 하였지만, 다른 사회과학에도 적용될 수 있고, 특히 행정학, 정책학을 하는 이들이 귀담아들어야 할 글이다.

 

이 글이 예전 학진의 웹진, 지금의 한국연구재단 웹진에 실렸는데, 한국연구재단 사람들은 이 글을 읽고 찔리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았다면 이 글을 읽지 않았을 테고...

 

의외로 상당히 긴 글이고, 연구재단에서 저작권 운운하길래 발췌해서 담아왔다. 이 정도도 문제가 될까. 원문은 제목의 링크를 따라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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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정치학을 하는 문제에 관하여

최장집(고려대학교명예교수. 민주주의교육연구센터소장), 한국연구재단 웹진 2008년 2호(12월)
  

1. 문제의 두 측면
‘한국에서 정치학을 하기’라는 주제는 두 의미의 말이 결합된 것이다. 하나는 ‘정치학을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에서 한다’는 것이다. 
사회과학 일반에 대해서도 해당될 수 있겠지만, 정치학은 기본적으로 가치중립적이기 어렵다는 특성을 갖는다. 학문의 성격을 이론적 이성과 실천 이성의 구분으로 나누어 볼 때, 정치학은 후자의 영역에 속해 있다는 말이다. 정치학이 실천적 학문이라는 점 때문에 두 가지 요소가 더 지적될 수 있겠다. 하나는 정치학은 특정 정치공동체와 관련된 역사적, 경험적 문제를 포괄하며, 그 사회가 해결해야 할 중심적 문제를 다뤄야 한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정치학을 하는 사람들이 그 자신의 학문적 혹은 지적 행위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하여 사회에 대한 책임 윤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2. 정치학을 한다는 것
가치의 권위적 배분으로 정의되는 정치는 인간 행위의 개별적이고 사적인 영역이나 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 일어나는 집단적 인간 행위와 사회적 힘의 관계를 통하여 실현되는 것이기 때문에, 정치행위는 개별 정치인들의 행위라기보다는 집단(합)적 행위와 이를 둘러싼 경쟁, 갈등, 투쟁이 중심이 된다. 그러므로 이스턴의 정의는 지나치게 가치중립적이다.정치는 기본적으로 공동체의 윤리적 문제와 결부되어있기 때문에,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 이루어지는 현상을 객관적으로 설명하려고 노력할 뿐 아니라 이를 어떻게 ‘좋게’ 이루어지도록 할 것인가 하는 가치의 문제를 포괄하는 행위이다. 
정치를 서술적으로 말한다면 집단과 집단, 신념과 신념 사이에서 가치의 권위적 배분을 둘러싼 갈등 내지 경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민주적 가치의 추구라는 점에서 정치는 힘의 차이가 유발하는 통치와 피통치, 지배와 피지배, 민중과 엘리트 간 갈등 내지는 모순으로부터 발생하고, 이 과정에서 사회 세력 간, 사회 집단 간 힘의 차이가 좁아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정치학은 이와 같은 정치의 두 측면 모두를 대상으로 한다. 특히 민주주의와 관련하여 볼 때, 그 가치는 인간의 평등이라는 대전제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고, 이 중심 가치로부터 차별과 배제, 소외, 억압에 대한 부정과 같은 가치들이 정의의 원리로서 파생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가치들을 실현코자하는 끊임없는 운동이야말로 민주화를 추동하고, 또 정치변화를 가져오는 동력이 아닐 수 없다.
 
3. 한국에서 한다는 것
보편적 이성, 보편적 학문 이론이 더 넓고 더 깊게 한국사회에 수용되어야 하는 것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국에서 학문의 보편성을 확대하는 일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다만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학문이 그것이 발 딛고 있는 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와 문제의식에 기초하지 못할 때 학문의 발전뿐 아니라 사회에 대한 기여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관한 것이다.
한국에서 민주주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였다. 오늘의 한국 민주주의 및 정치와 관련하여 우리가 배울 것이 더 많은 부분은, 미국에서 1960~70년대와 그 이전 시기에 발전한 이론에 있다는 생각이 크다. 나의 경우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에서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때늦게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 로마/르네상스 공화주의, 17,8세기의 자유주의, 미국 헌법 등을 공부하게 되었다. 바꾸어 말하면, 한국의 정치학에서 학문발전의 사이클은 한국 정치현실의 전개와 병행하고 미국의 이론 및 방법론과는 병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의 한국정치가 안고 있는 보다 근본적인 것, 보다 큰 문제는 한 세대 훨씬 이전의 이론에서 더 중요하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사람에게 있어 다른 사회와 역사적 경험에서 발전한 이론에 대하여 그가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에서 그 이론과 동일한 문제에 대한 경험을 갖지 않을 때 그는 그 이론의 의미와 진실을 이해할 수 없거나, 한다하더라도 매우 피상적으로 이해할 가능성이 높다. 하버마스(Jürgen Habermas)는 『이론과 실천』, 『지식과 관심』을 통하여 인간의 지식이 경험적, 역사적 상황에서 발생하는 인지적 관심, 그 관심이란 이데올로기와 권력 구조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가능성의 조건을 성찰하는 자기 성찰적, 지적 행위라고 이해한다. 내가 미국 이론에 대해 가졌던 관심은 그러한 문제의식과 유사하다. 자본주의 산업화와 노동문제, 민주주의를 경험하지 않고서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정당체제나 선거 경쟁, 노동운동의 경험과 이론에 대해 자기 성찰적, 지적 관심을 가질 수 없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중요한 기준은, 한 나라의 정치학자는 그 사회와 대면하는 중심적인 문제를 얼마나 진지하게 다루느냐, 그리고 현실 속으로 들어가 얼마나 깊이 있게, 체계적으로 그 문제와 씨름하느냐, 그로부터 얼마나 그 사회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좋은 이론을 만들고, 그에 기초하여 얼마나 좋은 대안을 제시하느냐 하는 것이다. 한 정치학도가 자기가 살고 있는 나라에서 정치학을 하는 것이 아니고, 세계 정치학의 중심이라 할 미국에서 정치학을 하는 경우에도 문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자신의 성장배경인 모국의 경험과 문제의식을 지닐 때, 그는 그로부터 세계의 보편적인 문제를 보다 더 깊이 있게 천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치학계의 대가들, 주요 이론가들, 그들이 외국에 성장 배경을 갖는 사람인 경우, 예외 없이 그러하다.
학문이 이루어지는 대학생활, 제도가 학문의 내용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 것임은 물론이다. 오늘날 한국의 대학제도와 대학생활, 영어교육의 강화와 같은 교육내용은 신자유주의적 시장원리가 주도하는 세계화의 영향 하에서 빠르고도 과격하게 미국화되고 있다. 제도 변화와 학문 내용의 변화에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학문하는 사람에게 있어 먼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현실로부터 문제를 발견하고, 경험적 자료들을 이론화하고, 문제를 이론적으로 해결코자 시도하는 것은 사회과학, 정치학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현실에서 현실로부터 이론을 만드는, 현실 우선의 현실-이론관계를 유지하는 학문적 태도를 견지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외래의 이론을 끌어와 구조와 성격이 다른 사회에 그 이론을 발전시킨 맥락을 제거하고 무매개적으로 이를 적용하여 그 사회의 현실을 분석하고, 그로부터 문제해결의 대안을 위한 이론을 끌어올 때 그렇게 수용된 이론이 얼마나 그 사회의 학문발전이나 문제해결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은 일종의 주객전도 현상이고 이론에 의한 현실의 소외 현상이다. 즉 이론을 수용한 사회가 그 이론에 의해 소외되는 것이다. 한국학계에서 학자들이 자신의 연구에 그리고 정책 커뮤니티의 전문가들이 외국의 이론을 무차별적으로 들여와 이를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는 현상은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4. 연구 환경의 변화와 학문하는 자세
제도의 외양적 측면 이외에 실제로 미국 체제가 갖는 경쟁적이고 개방적인 성격, 그리고 성과주의 원리에 기초한 연구업적에 대한 보상체계가 그대로 구현되지 못하고 있다 하더라도. 한국에서도 20세기 초 독일의 대학 체제에 대해 베버가 말했던 현상, 즉 전통적인 소규모 장인적 제도들이 미국식 경쟁과 대규모 체제로 전환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제기되는 질문은 대학과 전문 연구영역에 대한 많은 투자와 그로 인한 규모의 비약적 팽창과 외양적 발전이 얼마나 대학과 학문영역에서의 내적 발전을 가져왔는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양적 팽창과 발전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의 학문 발전은, 사회과학에 한정해서 말할 때 후퇴한 것이 아니라면 결코 그에 비례하여 발전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 해답의 하나는 학문의 성격 또는 특성, 학자나 연구자들의 학문하는 태도에서 발견될 수 있을지 모른다. 학문의 발전이 아무리 개인적 노력의 결과라 하더라도, 학문 연구가 지속되고 권장될 수 있는 학문적, 사회적 조건이나 제도가 이를 뒷받침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것은 학문을 위한 중요한 인센티브가 된다. 그러므로 한 사회의 학문과 연구의 발전이 있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될 필요가 있다.
첫 번째로 학자와 연구자가 가져야할 개인적 요소에 해당하는 진실을 탐구하고자 하는 정신, 말하자면 어떤 생명력을 갖는 힘 내지 동적 의지만큼 중요한 요소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학자와 연구자 개인이 학문하는 행위에 대한 헌신, 진정성, 몰입, 열정을 수반하는 내적 동인으로부터 발생한다. 학자의 이러한 내적 동인이 단지 경험적 사실에 대한 객관적 탐구에서만 나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보다는 그 사람의 학문과 연구를 추동하는 가치, 그것이 사회정의의 실현을 뒷받침하고 사회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기대와 믿음을 가질 때 발생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두 번째로 학문과 연구를 지원하는 사회적 환경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학문과 연구결과에 대한 객관적이고도 공정한 평가, 그에 상응하는 적절한 보상체계의 발전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자나 연구자 개인과 관계된 사적, 공적 관계에 있어서의 네트워크나 연줄관계, 또는 친소관계에 영향받음이 없이 학문의 내용과 연구 결과에 대해 그 자체를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는 학문 공동체나 학문의 제도적 발전이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보다 넓은 사회적 환경, 즉 연구와 사상의 자유, 이데올로기적 속박으로부터의 자유로움, 정치적 권력으로부터의 자율성과 같은 사회적 조건들이 형성되고 발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러한 환경적 조건은 반드시 연구비의 규모와 연관된 것이 아니라 보다 더 정치적, 사회적 환경과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한국의 대학교수들은, 그들이 오늘의 보수적 지배질서에 도전하지 않는 한, 그로부터 얻게 되는 보상이 너무 크며, 그 지위는 이미 너무 높고 특권적이기 때문에 다른 학문적 행위에 천착할 특별한 인센티브를 갖지 못한다. 이 학문적 성과의 부족분을 메꾸어 주는 것은 학술진흥재단이나 그 외 단체의 여러 연구비 자원을 통하여 양산되는 연구 결과물이다. 그러나 그렇게 이루어지는 학문과 연구행위는 현실을 정면으로 대면하는 과정에서 갖게 되는 주제설정과 문제해결에 대한 어떤 절박성에서 나오는 경우가 적기 때문에 학문탐구에서 열정을 갖기 어려우며, 갖는다 하더라도 지속되기 어렵다. 그것이 지적 관심이든, 현실에 대한 해답을 얻으려는 것이든 열정을 갖지 않는 학문연구는 살아 생동하는 연구를 만들어낼 수 없다. 정신없이도 학문과 연구는 얼마든지 가능하고, 돈이 연구에 투여되는 것만큼 논문 수의 증가를 가져오고, 그로 인해 학문의 양적 발전은 가능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로부터 진정한 그리고 창의적인 학문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일본의 사례는 전통적인 장인적 도제제도가 그 틀을 유지하는, 즉 작은 돈, 작은 수의 연구자 풀을 가진 소규모 연구체제를 유지하면서도 현대적 연구체제에 적응할 수 있는, 그 사회에 적합한 모델을 훌륭하게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일본의 사례에 비춰볼 때, 한국의 경우 상대적으로 많은 연구비를 투자하면서도 연구자 개개인의 정신에 있어서나 사회적 연구 환경 조건에 있어 만족스러운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일본이나 유럽의 대학들은 외양적으로는 초라할 정도로 소박한 대학의 캠퍼스와는 달리 많은 내실 있는 세계적인 학문적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한국의 대학들은 화려한 외양이나 연구비 규모와는 달리 그 내실은 무척 빈곤한 실정이다. 
 
5. 학문 발전을 저해하는 학문 외적인 문제
한국에서 대학교수들의 지위나 역할이 더 크게 느껴지는 까닭은 정치, 경제, 관계, 언론 등 다른 영역으로부터 나오는 엘리트 공급 기능이 상대적으로 엷다는 사실,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쟁과 세계화 시대, 지식정보산업 시대의 도래라는 새로운 사회경제적 환경변화와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나아가 민주화 역시 교수-전문가집단들의 역할을 축소하기보다는 확대하는 방향으로 작용했다. 정책 형성과 결정이 정치참여의 이름으로 사회의 보다 광범한 전문가들의 정책투입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 교수 및 전문 지식인들은 사회적 역할을 갖는 사회집단으로 접근될 수 있다. 교수와 전문가집단의 성원이 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국내의 좋은 학교 배경은 물론 나아가 외국대학, 특히 최근에는 좋은 미국대학의 배경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최근 년에 이르러 그러한 배경을 갖는 일은 점차 좋은 가정, 사회계층의 위계구조에 있어 상층에 속하지 않고서는 지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현상이 오늘날 한국사회의 현상 유지를 강화하는 지배적 가치와 담론을 공유하거나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일을 쉽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한국의 대학교수, 정치학교수, 또는 전문가지식인들이 한국현실, 민중문제로부터 쉽게 괴리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정치학, 나아가 사회과학의 발전을 저해하는 중요한 요소의 하나는 이데올로기의 영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한국사회에서 탈냉전과 민주화 이후에도 커다란 영향력을 갖는 냉전반공이데올로기와 깊은 상관관계를 갖는다. 이데올로기는 학문발전, 특히 정치학에 유해한 효과를 창출한다. 권력이 동반하는 이데올로기는 권력을 평가하고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문제를 어렵게 한다. 이러한 점 때문에 정치학은 이데올로기의 비판을 중요한 기능으로 갖는다.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능력이다. 그것이 효능을 갖기 위해서는 일정한 억압적 보조기능을 수반하게 되는데, 그것은 이론, 이념, 독트린, 가치체계 등의 여러 형태를 가질 수 있지만, 이러한 인지적 틀이 현실로부터 괴리되면서도 사실이나 현상인식, 그에 대한 판단력을 형성하면서 독자적인 신념이나 가치의 체계를 형성하게 된다. 특히 이데올로기는, 그것이 권력 작용의 정당화 기제로서 기능하기 때문에, 정당성의 어떤 원천이 될 수 있는 외국이나 외부적 자원으로부터 불러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또한 개인이 사회문제를 보는 인식과 비전을 형성함에 있어 특정의 요소를 극히 긍정적으로, 특정의 요소를 극히 부정적으로 보게 하는 가치선호의 선별기능을 통하여 인식작용, 지식의 학습, 판단과정에 영향을 미치고, 그 결과 현실인식을 오도하거나 왜곡하도록 한다. 이데올로기가 강한 환경 하에서 지식인 일반, 특히 정치학자들은 이데올로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능력, 이를 벗어나서 사고하고 판단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이 요구된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사회의 정치학자, 사회과학자가 가질 수 있는 학문, 지적 탐구의 주된 관삼사로 등장할 수 있는 문제들은 무엇일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한국사회에서 정치와 사회의 중심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탐구하고, 그 문제를 적시하면서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오늘의 중심문제는 경제뿐 아니라 정치와 사회 운영의 중심원리로서 군림하는 시장근본주의가 가져온 부정적 효과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 조건으로부터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한국의 사회경제적 현실이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와 정책이 만들어낸 결과를 그 중심에 포괄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경험적이고 이론적으로 탐구하는 것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오늘날 신자유주의로 통칭되는 시장경쟁의 가치나 성장 지상주의는 그것이 전제하는 가치 자체도 문제려니와 그 이념이 현실에서 구현되는 과정에서 수반하는 이데올로기적 전체주의화가 더 큰 문제라 하겠다. 그것은 다른 인간적, 사회경제적 가치에 대해 극히 적대적 태도를 가지고, 다른 이념과 가치에 대한 논의를 허용하지 않으려는 강한 이데올로기적 공격성을 갖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비판적 사회과학, 비판적 정치학이 있다면, 그것은 경제성장의 가치, 부의 총량적 증가를 유일가치로 하여, 모든 다른 인간적 가치, 즉 사회성원의 경제적 물질적 가치뿐만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 정치와 사회 발전에 따라 확대되는 사회적 시민권의 가치, 휴머니티의 가치를 부정하는 오늘의 획일주의적 이데올로기를 제어할 수 있는 정치적 조건을 창출하는데 기여하는 내용을 갖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외국의 사례로부터 한국사회에 대한 어떤 비교의 준거나 발전을 위한 모델을 발견하려고 시도할 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국현실을 중심으로 한 준거로부터 그 중요성과 장단점이 평가될 뿐인 것이다. 
 
6.학문 연구에 있어서 용기와 책임성
결론적으로 말해, 한국의 사회과학자, 정치학자가 취할 수 있는 바람직한 태도는 어떤 것일까? 하나는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에 맞설 수 있는 학문하는 것의 용기라고 할 수 있다. 헤게모니에 맞선다는 것은, 그가 향유할 수 있는 특권적, 또는 기득적 지위나 사회적 보상으로부터의 소외나 그에 대한 포기를 감내할 수 있는 내적 결의와 그러한 자세를 말한다. 다른 하나는 막스 베버의 말대로 ‘목적 윤리’와 ‘책임 윤리’를 함께 가질 것이 요구된다. 그러나 학자와 전문가들의 목적 윤리란 진실을 탐구하는 정신이라고 한다면,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책임 윤리의 중요성이다. 물론 아무리 민주주의 사회라 하더라도 보통 학자들에게 책임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오늘의 현대사회에서 그리고 민주주의 사회에서 학자들 역시 사회에 책임질 것이 요구된다. 왜냐하면 오늘날 한국사회를 볼 때 학자/지식인 전문가들의 학문 행위는 반드시 학문 영역에만 한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의 학문의 결과물과 지적 작업들은 정책결정 과정에서 정책 자문과 대안의 형태로 투입되고 많은 경우 그것은 정책 내용에 영향을 미쳐 사회와 시민 일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지식인들의 직접적인 정책 투입의 결과가 많은 경우 부정적으로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그 결과에 책임지지 않는다. 사회가 학자와 전문가들에 의존하는 바가 클 때, 이들의 정치적 역할과 정책 참여의 결과는 보다 직접적으로, 그들의 학문의 결과와 지식은 간접적으로 사회 전체에, 그리고 보통 사람들의 삶의 조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지식인의 책임 윤리는 윤리라는 말이 뜻하듯, 어디까지나 도덕적인 것이기 때문에 어떤 정치적, 사회적 제재를 수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도덕적 측면만큼 한 사람의 학자 혹은 지식인에게 중요한 책무는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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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30 23:24 2010/03/30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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