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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부, 영리병원 허용 여론몰이 본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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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민영화, 영리병원 허용에 대해서는 더이상 관련 글을 옮기고 싶지 않은데(이에 대해서는 네이버 블로그와 티스토리 블로그에 많이 퍼다 놓은 듯...), 이명박 정부는 어떻게든지 이를 추진하려고 한다. 이렇게 자꾸 주입하면 그래 한번 해보자라는 식으로 여론도 바뀌겠지. 일단 도입되면 다시 뒤로 돌리지는 못할 것이고...
  
정책실패가 뻔히 내다보이는 정책을 정부가 앞장서서 추진할 경우에는 구체적으로 어느 부처의 어떤 인간들이 이를 기획하고 실행에 옮기며, 어떤 이들이 이데올로그 역할을 하는지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 '모든 것이 MB 탓'이라고 뭉뚱그려서는 안된다. 그리고 그들의 책임을 반드시 추궁할 수 있어야 한다. 노무현 정권과 그 아래서 수족 노릇을 하면서 실제로는 MB의 신자유주의 정책의 기반을 다졌던 이들이 자신은 그에 책임이 없는 것처럼 입을 삭 씻는 행태를 그대로 넘어가서는 안된다.
 
의료민영화 뿐만 아니라 MB 노동, 복지, 경제 정책들의 디테일을 살피고 그 전위역할을 하고 있는 이들이 누구인지 기억해야 할 때이다. 
 
얼마 전 용산 살인진압 규탄 범국민추모대회에서 흘러나왔던 노래 한 소절이 떠오른다. 예전에는 엄청 과격하다고 생각했던 가사인데... (물론 지금도 생경한 것은 여전하고, 거부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먼 훗날 노동해방의 그날은 반동의 피로 붉게 도색하리라." 그 정도는 아니지만, 그들을 민중의 심판대에 올려놓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라도 우리의 대안과 역량이 강화되어야 할 것이고...
 
요새는 무슨 사안을 보면 구체적인 대응방안이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분노만이 치민다. 그리고 왜 이리 머리 속만 혼자 과격해지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난 급진적 개혁 정도 이상의 방책을 꿈꾸지 않는 소박한 소시민인데 말이지.
 
또 옆길로 샜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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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부, 영리병원 허용 여론몰이 본격화 (프레시안, 성현석 기자, 2009-03-09 오후 12:41:19)
오는 13일, "의료서비스 산업 선진화" 토론회 열려
 
영리 목적 대형 병원 설립을 위한 여론 몰이가 가속화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교육, 의료 등을 대폭 영리화하는 내용이 담긴 '서비스산업경쟁력 강화 방안'에 대한 공개 토론회를 오는 10일부터 20일 사이에 총 10회에 걸쳐 개최하기로 했다.
 
기획재정부 "돈벌이 원하면 누구나 병원 설립 가능하도록"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오는 13일 열리는 의료 부문 토론회다. 서울 은평구에 있는 보건사회연구원에서 "의료서비스산업 선진화,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날 토론회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 정책의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의사와 비영리법인에만 주어지는 현행 의료기관 설립 자격 규정을 바꿔 영리를 노린 대형 자본이 자유롭게 병원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 기획재정부의 방침이다. 부유층이 해외로 의료쇼핑을 떠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라는 게 기획재정부의 설명이다.
 
또, 기획재정부는 의료채권 발행 허용 등을 통해 병원이 자금을 쉽게 조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와 함께 기획재정부는 병원의 의료비, 병상(病床)수, 수술 성공률 등에 관한 정보를 인터넷에 공개하는 방침도 추진하기로 했다.
 
"어차피 지금도 대부분 병원은 돈벌이 목적" vs "의료 양극화, 더 심화될 것"
하지만, 이에 대한 반대 목소리도 높다. 의료계에서 인술(仁術)보다 돈벌이를 앞세우는 경향이 지금보다 더 심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어차피 지금도 개인 병원의 90%이상은 영리 목적으로 설립된다"며 부정적인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영리 목적 병원이 유통시키는 초고가 의료 상품은 환자와 의사 집단 모두에게 양극화를 더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병원들이 앞다투어 영리 목적의 고가 시술에만 힘을 쏟을 경우, 평범한 환자들에게 돌아갈 의료 행위의 질은 떨어진다는 것이다. 막대한 자본을 유치할 능력이 없는 소규모 병원의 경우, '이류 병원'이라는 낙인이 찍혀 환자 수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국회 전문위원실 "의료채권 도입, 신종 리베이트 수단 될 수도"
의료채권 도입에 대한 우려 목소리도 높다.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 수석전문위원실은 지난 2월 의료채권법에 대한 검토보고서를 통해 "이 법안은 보건의료체계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신중한 검토를 주문했다. 전문위원실은 이 보고서에서 "의료채권을 증권시장에 상장함에 따라 의료기관의 이윤추구 행위가 심화될 수 있다"며 "채권을 발행할 수 있는 일부 대형의료기관이 현재보다 더욱 대규모화하게 돼 의료시장이 과점화될 가능성이 있는 등 역기능도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전문위원실은 "제약회사 등이 리베이트의 수단으로 해당 의료기관의 의료채권을 매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고 채권을 매입한 후 의료채권자집회에서 압력을 행사할 우려도 있다는 의견이 제기될 수 있다"고 밝혔다.
 
촛불 수그러드니, 다시 고개 드는 '병원 영리화'
영리목적 의료 법인 허용을 위한 시도는 노무현 정부에서부터 추진돼 왔다. 대형병원 및 의료계 상층부의 요구가 강하게 작용했다. 이런 흐름은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더 가속화됐지만, 지난해 촛불집회에서 '의료 민영화 반대'가 주요 의제 가운데 하나로 떠오르면서 잠시 소강 국면을 맞았다. 하지만, 촛불집회가 수그러들면서 의료 민영화 흐름은 다시 가속화 됐다.
 
이런 반대 여론이 주춤해진 틈을 타, 정부가 올해 3월부터 의료 민영화 추진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오는 13일 토론회는 이런 흐름이 가속화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주류 언론도 이런 흐름에 힘을 보태고 있다. <중앙일보>는 지난 7일 박의준 경제부문 에디터의 칼럼을 통해 영리 목적 병원 설립 허용을 정부에 강력히 주문했다. 이 칼럼은 "이 문제만 나오면 가슴이 답답하다. 이를 거론하기 두렵지만 이젠 정면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의 의료 및 교육 민영화 문제에 관한 발언을 소개했다.
 
<중앙일보> "병원 영리화, 대통령이 힘 실어 줘야"
이어 이 칼럼은 "하지만 병원 영리화 같은 민감한 현안을 장관 혼자 힘으로는 풀기 어렵다"며 "이명박 대통령이 힘을 실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칼럼은 "이 대통령은 이제 촛불시위 탓에 잃은 '실용'을 되찾아 국가 경제를 위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욕을 먹더라도 과감히 추진해야 한다. 현 정부는 이런 방향과 맞는 정부 아닌가"라는 내용으로 끝난다.
 
기획재정부 역시 이런 주문에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기획재정부 측은 "비의료인의 의료기관 설립 문제는 올해 하반기께 관련 법률 등과 함께 종합적으로 다룰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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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은 어차피 다 영리가 목적" (참세상, 김삼권 기자, 2009년03월10일 17시59분)
재정부 '영리병원 허용' 입장 재확인
 
정부가 '영리병원 허용'을 비롯해 의료 및 교육 등 사회서비스 분야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하겠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허경욱 기획재정부 차관은 10일 재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 주최로 서울 중구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 중회의실에서 열린 '서비스산업 선진화를 위한 공개토론회'에서 "(의료·교육 등) 서비스산업이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되도록 규제를 과감히 없애고, 외국 대학 및 의료 기관을 적극 유치하겠다"고 말했다. 허경욱 차관은 "아직도 국내엔 외국의료 기관이 전무한데, 태국은 100만 명의 외국환자들을 유치하고 있다"며 이 같이 말했다.
 
토론회에선 '영리병원 허용'을 기정사실화하는 정부측 발언도 나왔다. 구본진 기획재정부 정책조정국장은 '영리병원 허용' 문제에 대해 "병원은 어차피 다 영리 목적이고, 의사들이 자선사업 하는 것 아니다. 다만 '영리'라고 할 때 투자한 것에 대한 배당수익만 보장해주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구본진 국장은 '영리병원'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혹자들은 의료비 상승을 우려하는데 그런 것 아니다. 영리병원 도입하더라도 의료보험제도는 그대로 유지되고 국민들이 받는 의료서비스는 변화 없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재계를 대표해 참석한 황인학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본부장도 "영리병원은 병원을 주식회사로 만들자는 거다. 개인은 주식회사 만들어 돈 가져갈 수 있는데, 병원은 안 된다는 건 우스운 얘기"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토론회에선 의료와 교육 등 공공부문의 규제를 완화하고, 시장화를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김주훈 KDI 선임연구원은 주제발표에서 "의료기관으로의 자본유입, 비의료 전문경영인 영입 등을 위한 관련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영리병원' 허용을 촉구했다. 그는 의료와 교육 분야에 대해 "공공성이라는 이름의 규제로 외부 자본의 유입 기회를 차단시켜 성장이 지체되고 있다. 취약계층에 대한 서비스는 재정 지출로 해결해야 하지만 시장의 작동을 저해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주훈 연구원은 의료기관과 법무법인 광고를 금지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서비스 상품에 관한 소비자들의 정보접근 차단으로 시장의 확대가 제약되고 있다"고 관련법 개정을 요구했다.
 
이번 토론회는 재정부와 복지부 등 8개 관계부처와 KDI가 공동 주최해 이날 총괄토론을 시작으로 오는 20일 까지 각 분야별 토론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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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주식회사' 고집하는 윤증현의 학점은 'F' (프레시안, 정태인 경제평론가, 2009-03-11 오전 7:57:07)
[기고] 이명박 정부만 모르는 의료 민영화 현실
 
현재의 국민건강보험이 제공하는 것보다 더 나은 서비스라면, 예컨대 줄을 서지 않는다면 돈을 더 내겠다는 부자들을 위해서 가격 차별화로 시장을 분할하는 것이 영리법인화의 핵심 목표다.
 
병원당연지정제(모든 병원은 건강보험 환자를 받아야 한다)가 유지된다고 하더라도 영리법인 병원은 어떻게든 건강보험 환자를 받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그들이 오지 않을수록 더욱 쾌적하게 고급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제 병원의 양극화가 급속하게 진행된다. 영국은 대기자수를 줄이기 위해 NHS(National Health System·국가보건체계)의 일부 병원에 영리법인을 허용했다. 당연히 실력 있는 의사들이 월급 많은 영리법인 병원으로 몰려갔고, 대기자 수는 별로 줄지 않았다. NHS의 의사 숫자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돈도 수익을 많이 내는 영리법인 병원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 건강보험 병원의 시설은 점점 더 밀리게 된다.
 
마치 40~50평 아파트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된 것처럼 영리병원의 이용이 지위재(status goods)가 되어 버리면 이제 중산층도 고급 서비스로 몰려가게 된다. 물론 세금을 더 집어넣어서 건강보험 병원의 시설과 인력을 보강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한 증세에는 중산층도 반대할지 모른다. 프랑스에서 일어난 일이다.
 
아예 외국인 투자를 10% 이상 유치해서 경제자유구역에 영리법인 병원을 세우면 어떻게 될까? 여기에는 병원당연지정제가 적용되지 않으니 건강보험 환자를 아예 받지 않아도 되니 힘들여 쫓아낼 필요도 없다. 경제자유구역은 기존 인천, 부산, 광양에 더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면서 추가로 지정한 대구, 새만금, 황해(평택, 아산지역), 그리고 제주도 특별자치체까지 온 국토에 존재하니 사실상 병원 당연지정제는 깨진 것이나 다름없다.
 
의료나 교육처럼 차별화가 가능한 서비스를 시장에 맡겨 놓으면 '단물 빨아먹기'(cream skimming) 현상이 필연적으로 일어난다. 돈 되는 고급시장부터 차례로 챙겨서 돈과 인력이 그 쪽에 몰리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서비스는 지상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다.
 
의료서비스의 시장화가 일단 진행되면 여간해선 돌이키기 어렵다. 한국의 건강보험 비슷한 것을 만들려는 오바마의 악전고투를 보면 모르는가? 또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 이 협정을 폐기하기 전에는 현재의 건강보험으로도 되돌아올 수 없다. 경제자유구역에는 래칫조항(다시 돌아가지 못하도록 한 조항)이 적용되며 그 외의 땅에도 투자자국가제소권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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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주의자들의 거침없는 솔직함과 무모함 (참세상, 강동진(편집위원)  / 2009년03월11일 13시56분)
[강동진의 복지는 죽었다] 영리병원 추진 보도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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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1 21:57 2009/03/11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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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3.8세계여성의 날 101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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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는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대회에 가고 싶었으나, 걍 참았다. 아무래도 어머니가 함께 계시면 외출이 그리 자유롭지 못하다.
공부하거나 연구하는 거, 또는 아주 중요한 집회가 아니면 나가기가 거시기하기 때문이다.
작년 100주년 때에도 가지 못했는데...
아래 글은 네이버 블로그에 작년에 올렸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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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세계 여성의 날 100주년을 맞아 2008/03/04 06:42
 
올해가 여성의 날 100주년이다. 하지만 여성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기념만을 할 수는 없을 듯하다. 게다가 여성가족부는 여성부로 축소되면서 성인지 정책을 전 사회적으로 확산시키는데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에 투쟁기획단이 결성되어 '투쟁하는 여성의 날'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3월 8일이 여성의 날이라는 것과 그 기원이 무엇인지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그런데 요새 와서는 민중운동 또한 과거 학생운동과 같이 날짜에 따라 진행되는 관성적인 투쟁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거의 매달 있는 몇 개의 기념일에 맞춰 사업이 진행되는 것이다. 올해 여성의 날은 100주년인 만큼 조금 특별하지만, 이러한 기념일이라도 있어야 나름대로 조직의 동력을 가동할 수 있는 민중운동의 현실이 조금은 안타깝다. 물론 이런 기념일도 생까기 일쑤인 곳도 많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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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날 100주년, “기념이 아니라 투쟁으로” (참세상, 이꽃맘 기자, 2008년03월03일 17시19분)
[38 100주년] 투쟁기획단, 비정규 악법 폐기 등 요구 
 
1908년, 그리고 2008년 똑같은 요구들

1908년 전 3월 8일, 미국의 방직공장에서 일하던 1만 5천 명의 여성노동자들이 “임금을 인상하라”, “10시간만 일하자”,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를 보장하라”, “여성에게도 선거권을 달라”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다. 그리고 100년 후 또 다시 3월 8일이 왔다. 
 
3월 8일, 여성의 날 100주년을 맞아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를 보장하라”, “여성들의 고용안정을 보장하라” 를 외치며 또 다시 여성들이 한 판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  '38 세계 여성의 날 100주년 투쟁기획단'은 오늘(3일) 오전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뉴코아-이랜드일반노조, 기륭전자분회, 공공노조 간병인분회 등 비정규직 노동자의 70%를 차지한다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로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여성들과 공공노조 서울본부, 민주노총 서울본부, 노동자의 힘, 노동자의 힘 여성활동가 모임, 다함께, 사회진보연대, 빈곤사회연대,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인권운동사랑방, 전국빈민연합, 전국학생행진, 사회서비스시장화저지를위한 공동대책위원회 등이 모여 ‘3·8 세계 여성의 날 100주년 투쟁기획단을 구성하고 “투쟁하는 여성의 날”을 만든다.
 
“여성에게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살기 위해 노동할 권리를”

이들은 오늘(3일)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100년이니 만큼 우리 여성노동자들도 함께 축제를 말하고 즐거이 세계여성의 날을 맞이하고 싶지만, 그러기엔 우리의 현실은 너무나 어둡다”라고 밝혔다. 
 
정지영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장은 “100년 전 미국 방직공작 여성노동자들의 요구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외쳐지고 있다”라며 “100년이 지나도 변한 것 하나 없는 현실에서 여성의 날을 축제로, 기념하는 날로만 남겨둘 수 없다”라며 말하고,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여성의 사회적 참여를 확대하고 여성일자리를 확충하겠다고 하지만 이는 여성을 저임금의 비정규직 노동자로 전락시키기겠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라며 “여성의 권리는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살기 위해 노동할 권리, 인간답게 살 권리, 빈곤하지 않게 살 권리이다”라고 목소리 높였다. 
  
해를 넘겨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뉴코아-이랜드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기자회견에 함께 했다. 윤송단 이랜드일반노조 여성국장은 “80만 원 받으며 일하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을 거리로 내모는 것이 선진국으로 가는 길인가”라며 “여성들이 절규하고 싸워야 하는 사회는 절대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여성이 노동을 하며 희망을 갖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해 함께 싸우자”라고 말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3·8 여성의 날 100주년을 맞이해 우리는 기념에 그치는 100주년이 아니라, 이 땅의 여성 노동자들 모두가 웃는 100주년을 맞이하기 위해 투쟁할 것”이라고 선포하고 △비정규 악법 폐기 △돌봄 노동의 사회적 책임 강화, 사회서비스 노동자 노동권 보장 △최저임금 현실화, 생활임금 보장 등을 이명박 정부에게 요구했다. 
 
이들은 오늘부터 여성의 날인 오는 3월 8일까지 집중 투쟁기간으로 선정하고,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오는 5일, 6시 병원노동자 희망터에서 ‘비정규 여성노동자 이야기 마당’을 열고, 8일 오전 11시에는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서울지역 여성노동자 한마당’을 개최한다. 
 
한편, ‘민중언론 참세상’은 3·8 세계 여성의 날을 ‘집중이슈’로 선정하고 ‘3·8 세계 여성의 날 100주년 투쟁기획단’과 함께 현장 취재와 다양한 기고를 통해 집중 보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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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날을 '기념'할 수 없는 이유 (참세상, 정지영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장, 2008년03월03일 18시39분)
[38 100주년] 100년이 지나도 똑같은 여성의 삶
 
“임금을 인상하라!”, “10시간만 일하자!”,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를 보장하라!”
3·8 세계 여성의 날의 유래가 된 미국의 방직공장 여성노동자들의 봉기에서 나온 요구다. 그 후로 100년이 지났지만, 여성의 삶은 여전히 빈곤, 저임금, 비정규직이라는 말을 빼놓고 설명 할 수 없다.
 
지난 해 3월 8일, 바로 여성의 날에 그저 계속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면서 시청을 점거하다 무참히 강제 해산된 광주시청 청소용역 노동자은 1년이 지난 지금도 일터로 돌아가지 못한 채 투쟁을 지속하고 있다. 최저임금을 간신히 넘기는 저임금과 수시로 자행되는 해고에 맞서 2005년 8월 파업을 시작했던 기륭전자 노동자는 지금도 공장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비정규법안 시행령을 앞두고 회사의 외주 용역화 시도에 맞서 파업을 시작한 이랜드, 뉴코아 노동자도 200일이 넘게 투쟁을 지속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몇몇 사업장만의 상황은 아니다. “최저임금 현실화하라! 생활임금 쟁취하자!”, “외주용역화 저지하고 정규직화 쟁취하자!”, “노동자성 인정하고 노조결성 보장하라!”, “빈곤과 불안정노동 양산하는 비정규악법 철회하라!” 오늘날 대다수 여성노동자들이 외치는 이 요구와 구호들은 여성노동자 전반의 현실을 분명히 말해준다. 비정규직에 맞서 싸우는 여성노동자들, 청소, 간병, 보육 등 사회를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노동을 하지만 여성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할 수 있는 손쉬운 일이라는 부당한 저평가 속에서 저임금과 해고의 위협에 시달리는 여성노동자들, 노동자로서의 권리조차 박탈당한 채 노동조합을 결성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 저임금, 장시간, 불안정한 노동으로 착취당하는 여성노동자들이 바로 오늘날 여성의 자화상이다.
 
'3·8 세계 여성의 날 100주년 투쟁기획단'(투쟁기획단)은 대다수 여성들이 처한 빈곤, 저임금, 비정규직이라는 현실을 제기하고자 한다.
 
여성들의 사회 참여 기회를 확대하고 일자지를 확충하겠다는 정부의 정책이 지속되고 있지만, 이랜드-뉴코아, 기륭전자의 여성노동자들은 자신의 일터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으며, 점점 더 많은 여성노동자들이 비정규직으로 내몰리거나 직무급제와 분리직군제 등의 ‘영원한 비정규직’이 주된 일자리 형태가 될 것이다.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정책이 지속되고 있지만, 많은 여성노동자들은 출산의 의무와 노동자로서의 착취를 모두 감당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거나 가사 도우미, 간병, 노인 돌봄, 보육 등 기존에 가족에서 자신들이 하던 일을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직장에서 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결국 정부가 말하는 여성 일자리 확충이나 일-가정 양립은 자본의 이윤을 위해 여성의 노동력을 최대한 활용하고, 이를 지탱할 수 있도록 여성이 자신의 재생산 노동의 부담을 다른 여성노동자들의 저임금 노동을 통해 줄이라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3·8 여성의 날 100주년은 축하하거나 기념해야 하는 날일 수 없다. 정부와 자본의 요구가 여성정책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일과 가정 모두에서 여성노동자들의 부담과 착취를 심화시키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여성정책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 또 전체는 아니더라도 일부 여성에 대해서는 확실히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과연 축하할 일인가.
 
결국 여성정책의 성과라는 것은 알파걸, 골드미스, 증가하는 여성 전문직, 고위직과 같이 성공한 여성의 신화가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현실과 최저 임금도 안 되는 임금을 받으면서 다른 집의 돌봄 노동을 떠맡아야만 하는 빈곤 여성의 상황을 압도하고 은폐하는 것, 즉 자본과 지배세력의 성과다. 여성들이 이런 성과를 추켜세우는 들러리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신자유주의가 요구하는 저임금, 불안정한 노동으로 활용당하고 재생산 노동의 부담을 짊어질 선택지가 여성의 일할 권리로 둔갑하는 현실을 폭로하고 비판해야 한다.
 
따라서 오늘 3·8 여성의 날은 여성들의 투쟁의 날이 되어야 한다. 자신의 권리와 현실의 요구마저 자본과 지배세력의 필요에 의해 활용당하며 빼앗겨 버린 여성들이, 다시 자신의 요구와 권리를 말하고 쟁취하는 투쟁의 날 말이다. 광주시청, 이랜드-뉴코아, 기륭전자, 간병, 보육, 청소용역, 학교비정규직, 노점상, 각자의 구체적인 상황과 요구는 다를 지라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노동자라는 이유로 억압당하고 차별받는 공통의 현실에 맞선 투쟁을 진행하려고 한다. 여성노동자들 스스로가 투쟁의 주체로 일어서고 서로 연대하면서 자신들의 부당한 현실에 맞서 싸우는 것이야 말로 여성해방을 위해 싸워 온 3·8 여성의 날의 의미와 정신에 가장 부합하는 것이다.
 
'투쟁기획단'은 “여성 저임금, 비정규 노동 철폐! 여성노동권 쟁취! 재생산 노동의 사회적 책임 강화!”라는 요구를 중심으로 지금 이 순간 투쟁하며 노동하는 여성노동자들의 권리 쟁취 투쟁을 전 사회적으로 확대해 나갈 것이다. 3·8 여성의 날을 여성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전체 노동자 민중의 인간다운 권리를 실현하는 사회를 위한 투쟁의 날로 만드는 것, 여성/남성, 비정규직/정규직 노동자들이 여성노동자들의 요구와 목소리를 매개로 연대하는 날로 만드는 것은 '투쟁기획단'을 포함한 전체 운동의 과제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여성 저임금, 비정규 노동 철폐! 여성노동권 쟁취! 재생산 노동의 사회적 책임 강화! 
'3·8 세계 여성의 날 100주년 투쟁기획단'
 
투쟁기조
- 여성의 저임금 불안정 노동과 빈곤의 현실을 폭로하고 그에 맞선 투쟁을 조직한다.
- 여성노동자들 사이의 연대, 여성/남성,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들 사이의 연대를 형성한다.
 
주요 요구
- 여성 비정규직 심화하는 비정규 악법 폐기!
- 외주용역화 저지, 정규직화 쟁취!
- 여성 비정규 노동 고착화시키는 무기계약제, 분리직군제 반대!
- 사회서비스 노동자의 노동권 확보! 사회서비스 공공성 쟁취!
- 최저임금 현실화, 생활임금 쟁취!
- 이주여성의 노동권, 시민권 보장!
- 여성의 빈곤, 불안정 노동을 확대하는 FTA 반대!
- 여성의 삶 악화시키는 미국의 대테러 전쟁 반대, 한국군 파병 반대!
 
참가 단위
공공노조 서울본부, 금속노조 서울지부 남부지역지회 기륭전자분회, 노동자의 힘, 노동자의 힘 여성 활동가 모임, 뉴코아 노동조합, 다함께, 민주노총 서울본부, 빈곤사회연대, 사회서비스 시장화 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사회진보연대,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이랜드 일반노동조합, 인권운동사랑방, 전국공공서비스노조 의료연대 서울지역지부 간병인분회,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전국빈민연합, 전국학생행진, 학생행동연대, 100주년 3·8 여성의 날 학생기획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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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노동자의 힘을 확인하는, '세계 여성의 날' (콜론타이(러시아 혁명가) 번역: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2003.4) / 2008년03월04일 15시39분)
[3·8 100주년] 1920년 러시아, 여성의 날과 여성노동자의 날
 
이 글은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저작선집(알릭스 홀트 역, Highland Park: Sun Press, 1975. 원판은 1920년 출간) 중, pp. 1-8에 수록되어 있는 글이다.
 
알렉산드라 콜론타이는 1920년 러시아의 1917 볼셰비키 혁명의 지도자 중 한 명이었다. 콜론타이는 러시아의 노동자계급 여성들을 위해 다음의 팜플렛을 작성했다. 콜론타이는 여성의 날의 역사를 간략하게 묘사하고, 이 날이 여성 평등에 있어서 가지는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여성의 날 100주년을 맞아 이 글을 소개한다.
 
전투적인 기념일

여성의 날 혹은 여성노동자의 날은 국제적인 연대의 날이며 프롤레타리아 여성의 힘과 조직을 확인하는 날이다. 그러나 이 날은 여성에게만 특별한 날은 아니다. 3월 8일은 노동자와 농민, 모든 러시아의 노동자들과 전 세계의 노동자들에게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기념일이다. 1917년 이 날 2월 대혁명이 일어났다.(1) 이 혁명의 포문을 연 것은 뻬쩨르부르그의 여성노동자들이었다. 짜르와 그의 협력자들에 대해 반대의 깃발을 들 것을 처음으로 결심한 이들이 바로 이 여성노동자들이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여성의 날을 이중적인 의미에서 축하해야 한다.
 
그런데, 모든 프롤레타리아의 축제일이라면, 우리는 왜 이 날을 “여성의 날”이라고 부르는가? 왜 우리는 여성노동자와 여성 농민들을 위한 기념행사와 회의를 개최하는 것인가? 이것이 노동자 계급의 단결과 연대를 위태롭게 하는 것은 아닌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여성의 날이 어떻게 생겨났으며 목표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어떻게, 그리고 왜 여성의 날이 조직되었는가?

불과 10년 전만 해도 여성 평등이라는 문제, 그리고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정부에 참여할 수 있는지 하는 문제는 뜨거운 논쟁거리였다. 모든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자계급은 여성노동자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했다. 부르주아들은 이러한 권리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의회 내에서 노동자 계급의 표가 늘어나는 것은 부르주아의 이익에 반하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나라에서 그들은 여성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을 방해했다.
 
미국의 사회주의자들은 투표권을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1909년 2월 28일, 미국의 한 여성사회주의자가 여성노동자의 정치적 권리를 요구하는 미국 전역에 걸친 대규모 시위를 조직했다. 이것이 첫 “여성의 날”(.(2)인 셈이다. 그러므로, 여성의 날을 조직하는 일은 미국의 여성노동자들이 주도한 것이다.
 
1910년, 2차 국제 여성노동자 회의에서 클라라 제트킨(3)은 세계 여성노동자의 날을 조직하자는 의견을 제출했다. 이 회의를 통해 매년 모든 나라에서 한 날 “여성을 위한 투표는 사회주의를 향한 우리의 투쟁의 힘을 하나로 모을 수 있도록 해 준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여성의 날”을 기념할 것을 결의했다.
 
이 시기 동안, 의회를 더욱 민주적으로 만드는 것, 참정권을 확대하고 여성의 표를 확장하는 것은 사활적인 이슈였다. 1차 세계대전 이전에도, 노동자들은 러시아를 제외한 모든 부르주아 국가에서 투표권을 가지고 있었다.(4) 오직 여성들만 비정상적으로 투표권이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동시에 자본주의의 냉혹한 현실은 여성들에게 국가 경제에 기여할 것을 요구하였다. 매년 직장에서 혹은 하녀나 파출부로 일하는 여성들의 수는 증가했다. 여성들은 남성과 함께 일했고, 국가의 부는 여성노동자들의 손으로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여성들은 투표권이 없었다.
 
그러나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물가가 오르자, 가장 평온했던 주부들이 정치 문제에 관심을 갖고 부르주아들의 약탈 경제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주부들의 봉기”는 점점 빈번해졌고, 오스트리아, 영국, 프랑스, 독일로 퍼졌다. 여성노동자들은 시장의 상품 진열대를 부수거나 사악한 상인들을 위협하는 것만으로는 생계 비용을 내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정부의 정책을 변화시켜야 하고, 이것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참정권을 확대해야 한다. 각 국에서 여성의 날을 조직하는 것은 여성노동자들의 투표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의 한 형태로 받아들여졌다. 이 날은 공동의 목표를 향한 투쟁에서의 국제적인 연대의 날, 사회주의 깃발 아래 조직된 여성노동자들의 힘을 확인하는 날이다.
 
첫 번째 세계 여성의 날

2차 국제 여성 사회주의자 대회의 결정 사항은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다. 첫 번째 세계 여성의 날은 1911년 3월 19일로 결정되었다. 이 날짜는 임의로 정해진 것은 아니다. 1848년 혁명 당시, 프러시아 황제가 무장한 인민들의 힘을 인식하고 프롤레타리아 봉기의 위협 앞에서 도망친 것이 3월 19일이다. 그가 약속한 많은 것들 중 지키지 못한 것이 바로 여성들을 위한 투표를 도입하는 것이다.
 
1월 11일 이후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여성의 날이 준비되었다. 그들은 이 날의 계획을 입에서 입으로 전했고, 언론을 통해 알려내기도 했다. 여성의 날이 열리기로 한 날에 한 주 앞서, 독일의 여성 투표권과 오스트리아에서의 여성의 날에 관한 두 개의 기사가 작성되었다. 여성의 날에 관한 다양한 기사 - “여성과 의회”, “여성노동자와 지방자자치단체의 업무”, “주부와 정치의 관계” 등 -가 정부와 사회에서의 여성의 평등에 관한 문제들을 분석했다. 모든 기사들은 여성 참정권을 확대하여 의회를 민주적으로 만드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첫 번째 세계 여성의 날 행사는 1911년에 열렸다. 성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여성의 날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는 수많은 여성들이 쏟아져 나와 바다를 이루었다. 작은 도시 곳곳에서 회의가 열렸고, 마을의 강당을 가득 채운 여성들은 노동자들에게 자리를 내어줄 것을 요구했다.
 
이는 여성노동자들의 투쟁력을 확인시켜 준 첫 계기가 되었다. 남성들은 변화를 위해 아이들과 함께 집에 머물렀고, 그들의 아내들, 포로였던 주부들은 회의에 참석했다. 30,000명이 참석한 대규모 거리 시위가 열리는 동안 경찰들은 시위대의 깃발을 빼앗으려 했고, 여성노동자들은 계속해서 버텼다.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고 의회 내에 있는 사회주의자 의원들이 유혈사태를 가까스로 막았다.
 
1913년, 세계 여성의 날은 3월 8일로 옮겨졌다. 이후 이 날이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의 날이 되었다.
 
여성의 날은 필수적인가?

미국과 유럽에서 여성의 날은 놀라운 결과를 낳았다. 어떤 부르주아 의회도 노동자들에게 양보하거나 여성들의 요구에 응답할 것을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 당시 부르주아들에게 사회주의 혁명이 위협이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여성의 날은 무엇인가를 달성했다. 이 날은 정치적 기회를 별로 갖지 못한 우리 프롤레타리아 자매들에게 선동의 훌륭한 수단이 되었다. 그녀들은 여성의 날을 위한 회의와 시위, 포스터와 팜플렛 신문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심지어 정치적으로 뒤쳐진 여성들도 스스로 “이 날은 우리의 날이다. 여성노동자들의 축제일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서둘러 회의와 시위가 열리는 곳으로 향했다. 각 여성의 날 행사가 끝나고, 더 많은 여성들이 사회주의 당과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조직들은 발전했고 정치적 합의는 진척되었다.
 
뿐만 아니라 여성의 날은 노동자들의 국제연대를 강화하는데 기여했다. 독일의 동지들이 영국으로 가고, 영국의 동지들은 네덜란드로 가는 등 각 국에 있는 당들은 연사들을 교환했다. 노동자 계급의 국제적인 단결은 더욱 견고해졌고, 이는 전체 프롤레타리아의 투쟁력이 성장했음을 의미한다.
 
이는 여성노동자 투쟁의 날의 결과이다. 이 날은 프롤레타리아 여성들의 합의와 조직력이 확대되도록 했다. 그리고, 이것은 노동자 계급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싸움을 성공으로 이끄는데 이 여성의 날이 필수적임을 의미한다.
 
러시아에서의 여성노동자의 날

러시아 여성노동자들은 1913년에 처음으로 “여성노동자의 날”에 동참했다. 이 시기는 짜리즘이 노동자와 농민들을 옭죄고 있던 시기라서, 공개적인 시위로 “여성노동자의 날”을 기념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러나 조직된 여성노동자들은 세계적인 여성의 날임을 천명할 수 있었다. 노동자계급의 합법적인 신문들-볼셰비키의 프라우다, 멘셰비키의 Looch-은 세계 여성의 날(5)에 관한 기사를 보도했다. 이 신문들은 특별 기사, 여성노동자 운동에 참가하는 이들의 초상화, 베벨이나 체트킨(6)과 같은 동지들의 인사에 지면을 할애했다.
 
이 냉혹한 시기에 회합은 금지되어 있었다. 그러나 페트로그라드, 칼라샤일코프스키에서는 볼셰비키에 속해있던 여성노동자들은 “여성 문제”에 관한 공개포럼을 조직했다. 입장료는 5 코펙이었다. 이는 불법적인 회합이었지만 회의장은 가득 찼다. 당원들이 연설을 했다. 그러나 이 열띤 회의가 끝나자마자 경찰들은 경고와 함께 회의를 침탈하고 많은 연사들을 체포해 갔다.
 
짜르의 억압 하에서 살고 있었던 러시아의 여성들이 국제 여성의 날 투쟁에 어렵사리 함께 했던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러시아가 깨어나고 있으며, 짜르의 감옥과 단두대가 노동자들의 투쟁 정신을 죽일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환영할 만한 신호다.
 
러시아에서 1914년 “여성노동자의 날”은 훨씬 잘 조직되었다. 두 개의 노동자 신문 모두 이 행사에 집중했다. 우리의 동지들은 “여성노동자의 날”을 준비하는 데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경찰의 방해로 인하여 시위를 조직하지는 못했다. “여성노동자의 날”을 계획하는 데 가담했던 이들은 짜르의 감옥으로 넘겨졌고, 이후 많은 사람들이 차가운 북쪽 지역으로 보내졌다. “여성노동자들의 투표권을 쟁취하자”는 자연스럽게 러시아에서는 짜르의 독재권력을 몰아내자는 공개적인 요구가 되었다.
 
제국주의 전쟁 시기의 여성노동자의 날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모든 나라의 노동자 계급은 전쟁의 피로 뒤덮였다.(7) 1915년과 1916년에는 해외에서 열리는 “여성노동자의 날”이 설득력이 없는 일이었다. 러시아 볼셰비키 당과 관점을 공유한 여성 사회주의자들은 3월 8일을 여성노동자들의 전쟁 반대 투쟁의 날로 바꾸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독일과 다른 나라에서 사회주의자 당의 반역자들은 여성 사회주의자들이 회합을 조직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여성 사회주의자들은 국제회의 개최장소인 중립국으로 가는 여권 발급을 거부당했다. 그곳에서 여성노동자들은 국제 연대의 정신이 부르주아들의 바램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1915년에는 오직 노르웨이에서만 가까스로 국제 여성의 날 시위를 조직할 수 있었고, 러시아와 중립국의 대표자들이 참석했다. 러시아에서 여성의 날을 조직하는 것은 난폭한 짜리즘 권력과 군대 기구 때문에 생각조차 하기 힘들었다.
 
위대한 1917년이 왔다. 기아와 추위 그리고 전쟁 시도는 러시아의 여성노동자와 여성 농민의 인내심을 파괴했다. 1917년 3월 8일(구력으로 2월 23일) 여성노동자의 날, 이들은 페트로그라드의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일부는 노동자, 일부는 군인의 아내였던 여성들은 “우리의 아이들에게 빵을 달라”, “우리의 남편을 전장에서 돌려보내라”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 중대한 시기에 조직된 여성노동자들의 시위는 짜르의 비밀 군대도 감히 평소와 같이 진압하지 못할 만큼 위협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민중들의 분노로 폭풍치는 바다를 혼란에 싸여 바라보기만 했다.
 
1917년의 여성노동자의 날은 역사적인 기념일이 되었다. 이날 러시아의 여성들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횃불을 치켜들었고 세계를 격분시켰다. 2월 혁명은 이 날로 시작되었다.
 
우리의 투쟁 호소

“여성노동자의 날”은 여성의 정치적 평등을 요구하는 투쟁과 사회주의를 향한 투쟁 속에서 10년 전 처음으로 조직되었다. 이러한 임무는 러시아의 노동자 계급 여성들에 의해 달성되었다. 소비에트 공화국에서 여성노동자와 여성 농민은 투표권과 시민권을 쟁취하기 위해 싸울 필요가 없다. 그들은 이미 이러한 권리를 쟁취했다. 러시아의 여성노동자와 농민은 평등한 시민이다. 더 나은 삶을 좀더 쉽게 쟁취하기 위한 투쟁의 무기-투표권, 소비에트와 그 밖의 조직에 참가할 권리-가 그들의 손에 있다.(8)
 
그러나 권리만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우리는 이러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투표권은 우리 스스로의 이익을, 그리고 노동자 공화국의 이익을 완성할 수 있도록 하는 무기이다. 소비에트 권력 2년 동안, 삶 자체는 완전히 변화되지 않았다. 우리는 단지 공산주의를 향한 투쟁을 진척시켰을 뿐이며, 여전히 어둡고 억압적인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세계에 둘러싸여 있다. 가족, 가사노동, 성매매라는 족쇄는 여전히 여성노동자들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여성노동자와 여성농민은 러시아를 진정한 공산주의 사회로 만드는 데에 온 힘을 기울여야만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삶에서의 평등을 쟁취할 수 있다.
 
이를 앞당기기 위해, 우리는 우선적으로 러시아의 망가진 경제를 회복시켜야 한다. 우리는 ‘훌륭하게 조직된 노동자 군대 창설’과 ‘교통의 재건’이라는 가장 긴요한 우리의 임무를 해결하는데 신경을 써야 한다. 만약 우리의 노동자가 제대로 움직인다면 우리는 조만간 다시 한번 엔진을 돌릴 수 있고 철도는 다시 작동하기 시작할 것이다. 이것은 남성·여성노동자들이 죽도록 원했던 식량과 연료를 얻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통이 복원되면 공산주의의 승리에 속도가 붙을 것이다. 그리고 공산주의의 승리는 완전하고도 근본적인 여성의 평등을 가져올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올해의 “여성노동자의 날”의 메시지가 “여성노동자, 여성 농민, 어머니, 그리고 자매들이여, 철도의 혼돈을 극복하고 교통을 재건하는 데 모든 노력을 다해 우리의 동지들에게 도움을 주자! 식량과 연료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 모두가 함께 하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지난해 여성노동자의 날의 슬로건은 “모두가 붉은 전선의 승리를 향해!”(9)였다. 이제 우리는 여성노동자들이 새로운 무혈 전선-노동자 전선으로 결집할 것을 요청한다. 적군은 조직되고, 훈련되고, 자신을 희생할 준비가 되었기 때문에 외부의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조직화, 자기-훈련, 자기 희생과 노력을 통해서만 내부의 적- 교통과 경제의 혼란, 기아, 추위, 질병-을 물리칠 수 있다. “모두가 무혈의 노동전선의 승리를 향해!”
 
여성노동자의 날이 가지는 새로운 임무

10월 혁명은 시민권에 관한 한 여성들에게 남성과의 평등을 부여했다. 불과 얼마 전에도 가장 불행하고 억압받았던 러시아 프롤레타리아 여성들은 이제 소비에트 공화국에서는 타국의 동지들에게 자랑스럽게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소비에트 권력을 통해 정치적 평등으로 향하는 길을 보여줄 수 있었다.
 
여성들이 아직도 초과노동을 하던 자본주의 국가들과는 상황이 매우 달랐다.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여성노동자의 목소리가 매우 약했다. 노르웨이, 오스트레일리아, 핀란드, 그리고 북미의 몇 주에서 여성들은 심지어 전쟁 전에 시민권을 획득했었다.(10)
 
독일에서, 카이저가 몰락하고 “타협자”(11)들이 부르주아 공화국을 세운 이후, 36명의 여성들이 의회에 입성했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는 한 명도 없었다!
 
1919년, 영국에서 한 여성이 선거를 통해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누구였을까? “레이디”였다. 바로 지주, 귀족이었던 것이다.(12)
 
프랑스에서도, 여성의 투표권 확대라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러나, 부르주아 의회라는 틀 속에서 여성노동자들에게 이런 권리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권력이 자본가와 유산자들의 손에 있는 동안, 어떠한 정치적 권리도 집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전통적인 노예의 위치에 있는 여성노동자들을 구출해주지 않는다. 프랑스 부르주아들은 프롤레타리아 사이에서 볼셰비키 이념이 확산되자 노동자계급에게 또 하나의 빵조각을 던져주고자 했다. 그들은 여성들에게 투표권을 줄 준비를 했다.(13)
 
부르주아 신사 양반, 너무 늦었소!

10월 혁명의 경험 이후, 프랑스와 영국 등지의 모든 여성노동자들은 오직 노동자 계급의 독재, 소비에트의 권력만이 완전하고 절대적인 평등을 가져다 줄 수 있고, 궁극적인 공산주의의 승리만이 권리의 박탈과 억압의 낡은 사슬을 끊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명백히 인식하게 되었다. 이전에 세계 여성의 날의 임무였던 여성의 투표권을 쟁취하기 위한 싸움을 부르주아 의회가 대신하고 있으니, 여성노동자들은 이제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는다. 제3 인터내셔널의 슬로건을 내건 싸움으로 여성노동자들을 조직해야 한다. 부르주아 의회의 활동에 참여하기보다는, 러시아로부터의 호소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만국의 여성노동자여! 전 세계를 약탈하려는 자들에 맞선 투쟁에서 단결된 프롤레타리아 전선을 조직하자! 부르주아들의 의회주의를 무력화시키자! 우리는 소비에트 권력을 환영한다! 남성·여성노동자들에 대한 불평등을 타파하자! 우리는 세계 공산주의의 승리를 향해 노동자들과 함께 싸울 것이다!”
 
이 호소는 새로운 질서를 향한 시도가 한창일 때 처음으로 울려 퍼졌고, 내전의 전장에서도 들릴 것이며 다른 나라의 여성노동자들의 심금을 울릴 것이다. 여성노동자들은 이 호소에 귀기울일 것이며 올바르다고 믿을 것이다. 최근까지 그들은 만약 겨우 몇 명의 대표를 의회에 보낼 수 있다면 그들의 삶이 좀더 편해질 것이고 자본주의의 억압이 견딜만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다르게 생각한다. 
 
자본주의를 타도하고 소비에트 권력을 세우는 것만이 여성노동자들을 자본주의 하에서 그들의 삶을 힘들게 만드는 굴욕과 불평등, 고통의 세계에서 구할 수 있다. “여성노동자의 날”은 투표권 쟁취를 위한 투쟁의 날에서 여성의 완전한 해방을 쟁취하기 위한, 즉 소비에트의 승리와 공산주의를 향한 국제적인 투쟁의 날로 바뀌어야 한다.
 
자본의 권력을 타도하자!
부르주아 세계의 유산인 여성의 불평등, 무권리, 억압을 타파하자!
양 성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위한 투쟁에서 여성·남성 노동자의 국제적 단결을 향하여!
 
미주-----------------
1. 짜르 시대의 러시아는 여전히 중세시대의 “줄리안”력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 달력은 대부분의 나라들이 사용하고 있던 “그레고리”력 보다 13일이 뒤쳐지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3월 8일은 구력(舊曆)으로는 2월 23일이다. 이 때문에 1917년 3월에 발생한 혁명이 “2월 혁명”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2. 없음
3. 클라라 체트킨은 독일의 사회주의 운동 지도자였고, 세계 여성노동자 운동의 주요한 지도자였다. 콜론타이는 성 페체르부르크의 방직 노동자를 대표하여 국제 회의에 참석하였다.
4. 이것은 정확하지 않다. 영국, 프랑스, 독일의 대다수 미숙련 노동자들은 투표권이 없었다. 미국에서도 소수의 노동자 계급 남성- 특히 이주자-만이 투표를 할 수 있었다. 미국의 남부에서는 흑인 남성은 종종 투표할 기회를 차단 당했다. 모든 유럽지역에서 일어난 중간 계급의 참정권 운동이 노동자계급의 남성 혹은 여성의 투표권을 쟁취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
5. 러시아 사회민주주의노동자당은 1903년 대회에서 “볼셰비키”와 “멘셰비키”로 분열되었다. 1903년에서 1912년 사이 양 파는 서로 협력했고, 잠시 동안 단결했으나 다시 분열했다. 모든 사회주의자들은 이 논쟁에서 양쪽 모두에 속하거나 중립을 지켰다. 활동적인 사회주의자이자 여성권을 쟁취하기 위한 싸움에 나섰던 콜론타이는 처음에는 분파에 속하지 않았으나, 몇 년 후 멘셰비키가 되었다. 그녀는 1915년에 볼셰비키가 되었고, 중앙 위원회에서 유일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소비에트 공화국의 복지 인민위원이었고 볼셰비키 당 여성국장을 역임했다.
6. 아우구스트 베벨(1840-1913)은 독일 사회민주당의 지도자였다. 그는 여성운동 지지자,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와 여성에 관한 고전의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7. 1914년 전쟁이 발발했을 때, 국제 사회주의 운동은 대대적으로 분열되었다.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영국의 대다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전쟁을 지지했다. 러시아의 콜론타이, 레닌, 트로츠키, 독일의 클라라 체트킨, 로자 룩셈부르크, 미국의 유진 뎁스 등 다른 사회주의자들은 전쟁에 찬성하는 사회주의자들을 노동자 계급과 노동자 혁명을 위한 투쟁의 배신자라고 비판했다.
8. “소비에트”라는 단어는 “평의회”라는 의미이다. 소비에트, 혹은 노동자 평의회는 공장과 지역의 회의를 통해 선출된 대표들로 구성되어 노동자들에 의해 통제되는 민주적인 기구이다. 소비에트의 대표는 그들의 유권자에게 보고할 의무를 가지고 있었으며, 즉시 소환될 수도 있었다.
9. 1917년 10월/11월 노동자 계급이 권력을 장악한 후, 러시아 노동자 국가는 두 가지 큰 문제에 직면했다. 하나는 미국을 포함한 13개국으로부터 침략당한 것이고, 두 번째는 러시아의 친-군주 세력과 친-자본 세력의 저항이었다. 레온 트로츠키의 지시 하에, 소비에트는 노동자, 농민의 군대인 ‘적군’을 창설했고, 이들은 반혁명 세력을 척결했다.
10. 1차 대전에 앞서 여성들은 미국 각처에서 투표권을 얻었다. 21세 이상의 모든 여성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연방 수정 조항이 1920년 8월 26일에 통과되었다. 1960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노동 계급의 인민들이 투표하는 것을 가로막는 최후의 법적인 장벽이 무너졌다.
11. 콜론타이가 언급한 타협은 1918년 카이저가 몰락한 이후 독일에 새로운 자본주의 정부를 세운 사회민주주의 지도자들이었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반혁명을 지지했다.
12. 귀족출신의 레이디 아스토어가 영국 최초의 여성 의원이었지만, 최초의 의원으로 선출된 여성은 아일랜드의 혁명적인 콘스턴스 마키빅츠였다. 다른 신 페인 당의 성원들과 함께 그녀는 제국 의회에서의 자신의 자리를 거부했다.
13. 프랑스의 여성들은 결국 2차 대전 이후까지 투표권을 쟁취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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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9 16:56 2009/03/09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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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델슨과 전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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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경향신문에 영국의 만델슨 장관과 전여옥 의원을 비교한 기사가 나왔다. 만델슨 장관은 액체 세례를 받았고, 전여옥 의원은 폭행을 당했는데, 등장 인물과 소재 등 몇 가지 구체적인 요소만 제외하면 두 사건은 흡사하다는 것이다.
 
[아침을 열며]英 만델슨과 전여옥 (경향, 이중근 국제부장, 2009-03-08 18:14:08)
  
하긴 전여옥 의원은 놀라운 헐리우드 연기로 사이비 작가에서 의원이 되더니, 이제는 배우의 자리까지 넘보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민중의 소리에 폭행 직후의 상황을 담은 동영상이 있으니 확인해보시라. 전치 8주 진단을 받았다는 전여옥 의원의 연기가 실감날 것이다.
 
그런데 경향의 기사만으로는 뭔가 좀 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진보블로거인 EM님께서 전여옥과 만델슨 경을 비교하면서 한국과 영국의 민주주의를 비교하는 글을 올렸다. 만델슨경의 액체세례 사건이 실감나게 다가온다. 역시 현지인은 다르다는... 아니다. EM님이라서 가능하다고 해야 할 것 같다.
 
EM님의 글.
두 개의 민주주의: 전여옥과 만델슨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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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9 15:55 2009/03/09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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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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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한지 일주일이 지났다.
이제는 학교까지 최단거리로 가는 길을 익혔고, 작은 방에 있는 새 책장들에서 나오는 냄새 또한 거의 사라진 것 같다. 정리하고 고물상에 가져다줄 책들과 대형 쓰레기봉투만이 새로 이사한 집임을 보여준다.
이사과정을 간략하게 서술해놔야 나중에도 기억할 것 같아서 여기에 써놓는다.
 
ㅇ 02-27 (금) 이사
우여곡절 끝에 오후 1시경부터 이사 시작해서 8시경 마치다. 이사하는데 꽤 많은 비용이 들어갔다. 처음에 계약을 했던 곳에서 40만원에 일반이사를 하려고 했다가 소통의 문제로 사다리 사용 및 인부 추가 사용의 댓가로 60만원을 요구하여 결국 그 전날 보냈다. 어쩐지 바구니와 박수를 놔두고 간 것이 이상하더라니... 그러면서 위약금 조로 4만원을 주었다. 문서계약을 한 것도 아닌데, 구두계약을 했다고 법으로 해결 어쩌고 하는 걸 열받아서 맞받아치려다 시간이 없어서 참았다. 새로 계약하여 온 곳에서는 45만원에 포장이사를 하려고 하였으나 책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2.5톤 트럭 한대로는 이사하기 어렵고 사다리가 빠졌다는 이유로 사다리차 7만원, 차량 동원15만원 도합 22만원 중 할인하여 65만원에 하자고 하였으나 이또한 너무 비싼 듯하여 보냈다.
 
결국 이리저리 알음알음해서 온 곳이 휴먼트럭. 여기서도 2명이 왔다가 책이 많다는 이유로 바구니를 더 많이 필요로 하였고, 새로 이사온 집이 경사가 지고 길을 돌아가기 어려워서 2.5톤 트럭이 들어가기 곤란했기 때문에, 결국 인부 2명(1인당 8만원)을 더 불러서 1.5톤 트럭 2대가 2번씩 왕복하여 이사를 끝냈다. 이전 집도, 새집도 이사하는데 다른 곳보다 힘이 더 든 것은 사실이다. 이전 집은 1층이라고 하나 상당히 돌아서 들어가야 하는데다 오르내리는 계단이 있어서 사실상 2층이나 마찬가지였고, 새집은 2층이지만 계단 올라가는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3층이었기 때문에 추가출혈을 감수해야 했다. 결국 사다리차 없이 30만원이었는데, 63만원을 지불하고 이사를 마쳤다. 그리고 저녁 때 가족들과 이사집센터의 사람들이 함께 중국집에 시켜먹은 돈이 3만5천원, 이것까지 이사비용에 포함되어야겠지.
 
그리고 그 사이에 헌 책장을 버리고 새 책장을 구입했는데, 책장 4개를 구입하는데 34만원이 들었다. 튼튼하기는 한데, 이것도 생각보다 큰 비용지출이다. 이것을 옮기고 나서도 배치 때문에 골치를 앓았는데, 이리저리 혼자 옮기면서 적정 위치에 책장을 놓았다. 그래도 여기에 책이 다 들어갈 수 있을지 의문이었는데, 추가로 버렸다가 새로 가지고 온 작은 책장을 추가하여 책을 다 넣을 수 있었다.
 
인터넷 이전은 쉽게 되었다. 다만 티브이가 잘 안되었는데, 인터넷 케이블에 연결해서 보려고 했더니 상태가 쉽게 좋아지지 않는다. 이를 감수하든지 아니면 새롭게 케이블방송을 신청하든지 해야 하는데, 어머니가 즐겨보시는 SBS의 드라마는 인터넷으로 볼 수 있고, MBC와 KBS는 상태가 좋지 않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먹을 수 있어 걍 이대로 가는 게 좋을 듯 싶다. 이래도 수신료를 강제로 내게 되는데, 이걸 빼달라고 해야겠다. 요새 KBS가 맛이 가기도 했고, 보지도 않는데, 왜 수신료를 내야 한단 말이냐.
 
ㅇ 02-28 (토)
민서가 피곤한지 집에서 일찍 잠들었길래 그냥 작은 방에서 자도록 내버려두었다. 역시 새벽에 깨지 않고 아침까지 잔다. 이 녀석을 어떻게 볼까 걱정했는데, 인터넷으로 공룡나라 동영상을 들어주었더니, 가끔씩 하는 방식을 몰라 나에게 문의하는 경우가 많긴 하였지만, 혼자 잘 논다. 그나마 다행이다.
 
방바닥은 뜨근뜨근하다. 도시가스가 잘 돌아가나 보다. 세 라인 중 작은 방 2개로 들어가는 라인은 막고, 주방으로 가는 라인은 절반정도만 틀었다.
 
발바닥, 허리, 손마디가 아프다. 무리를 한 게 사실이지만, 지금 정리하지 않으면 오래갈 듯하여 어쩔 수 없었다. 손톱에는 떼가 계속 끼어 있고, 손가락이 퉁퉁 부은 것 같다. 손바닥도 많이 닳아졌는지 밥그릇에 밥을 담으려다 뜨거워서 오래 잡고 있을 수가 없었다.
 
토요일까지 책장정리를 다 하려했는데, 책을 꽂을 공간도 그리 많지 않고, 어떻게 꽂을까를 생각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번 기회에 어디에 무슨 책이 있는지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제일 작은 방에는 작는 책장 4개에 학위논문들, 소설, 시, 평전, 산문집, 만화, 에세이, 더이상 간행되지 않는 계간지, 기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을 꽂았다.
 
다른 중간 방에는 큰 책장 4개에 사회과학서적, 전공서적을 꽂았다. 분류는 지방행정, 정책학 / 행정학, 정부혁신관련 서적·자료 / 조직론 / 정보통신, 과학기술·여성 / 세계화·한국사회분석·노동운동·법 / NGO·방법론·사회학·환경 / 정치학·교육 / ML원서, ML주의, 사회주의, 혁명, 사민주의 / 철학, 해외운동 / 경제학으로 했다. 그리고 책장 위에는 수업자료와 각종 계간지를 쌓았다. 아쉽지만 교지와 행정논총, 그리 중요하지 않은 민주노동당 관련 자료, 기타 서적·자료 등은 버리기로 했다. 이것만 해도 4-5박스 된다. 항상 그렇지만, 나에게는 버리는 지혜가 부족하다.
 
ㅇ 03-01 (일)
책장 정리를 드디어 다 마쳤다. 생각보다는 짧은 시간 안에 끝냈다. 동생이 더 책이 들어올 경우 어떻게 할지 묻는다. 그러고 보니 책장에 거의 빈틈이 없어서 연구실에 있는 책들을 집으로 가져갈 경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 있는 책과 자료들 중에서 빨리 대충 읽고 정리한 후 버리거나 누구에게 줘버릴 책들을 선별해야 읽어야겠다.
 
청소까지 하고 나니 나름 말끔하다. 세탁기에 연결해서 쓸 호스와 시멘트 못을 사와서 거울, 세면장 등을 걸 수 있도록 못을 박았다. 이제 주민등록을 이전하고 확정일자를 받는 것만 남았다. 아, 버리고 온 책장도 신고를 해야 하는구나.
 
금요일 이후 대충 세면만 하고 면도도 하지 않고 머리도 감지 않았더니 거지 꼴이다. 강의 가기 전에 이발을 하고 머리 염색도 해야겠다.
 
ㅇ 03-02 (월)
아침 처음으로 새집에서 연구실로 나서다. 25분이 조금 걸리지 않았다. 이제는 학교 가는데 버스타기도 뭐하고 어쩔 수 없이 걸어다녀야 할 판이다. 조금더 부지런해져야 한다.
 
오늘, 내일, 아니 이번 주가 바쁘다. 경영평가 보고서 완결도 해야 하고, 강의 준비도 해야 하고(아직 강의계획서도 작성하지 않았다. 제대로 알지 못하는 과목을 이렇게 하고 있으니 큰 일이다), 감사원에 관한 이슈페이퍼도 써야 한다. 이제는 정말 공부를 해야 하는데... 
 
이사과정을 정리하고 보니 어머니, 동생네가 없었으면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이 집도 나만의 집이라고만은 볼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서 얼마나 살게 될까. 어머니는 여기에서 결혼까지 해서 살라고 하는데...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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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8 19:04 2009/03/08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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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상의 『공공성이란 무엇인가』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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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성이란 무엇인가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120, 저자 조한상 | 출판사 책세상 
2009년 01월 10일 출간, 정가 : 5,900원

공공성이란
조한상. 2009. 『공공성이란 무엇인가』. 책세상.
 
이 책을 산 지는 한달 가까이 된 것 같은데, 계속 시간이 나면 읽어야지 하면서 가방 속에 가지고 다니다가 읽지 못했는데, 오늘에야 다 볼 수 있었다. 물론 짧은 분량 때문인지 하루만에 읽을 수 있었는데, 왜 이렇게 질질 끌었는지...
 
읽고 난 소감은 공공성이란 무엇인가가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 저자는 공공성의 기본적 의미를 검토하고 그것을 기초로 공공성과 시민사회, 공공성과 국가, 공공성과 언론의 이론적, 현실적 관계에 대해 고찰해보았고, 이 과정을 통해 공공성 개념을 둘러싼 혼란과 오해가 해소되었기를 기대한다고 하였지만, 만족스럽지 못하다.
 
사실 이 책의 150페이지 가까운 분량 중에서 공공성과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논의는 40페이지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저자는 시민사회, 국가, 언론과 관련된 논의를 통해 공공성 개념을 구체화하기를 바란 것 같지만, 실제 그들 분야에서 공공성과 관련하여 논의되는 것은 저자가 초점을 두고 있는 것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내가 나중에라도 써먹을 수 있는 내용들을 정리한 것은 뒷부분에 적도록 하고, 먼저 아쉬운 점을 중심으로 논평을 해보련다.
 
1. 저자는 법학적인 관점에서 공공성에 접근한다. 그리하여 독일의 문헌에 대한 인용, 법학문헌에 대한 인용이 많은 대신, 정작 공공성에 대해 많은 논의가 이루어졌고, 실제 사람들이 공공성이라는 용어를 많이 접하게 되는 정치학, 경제학, 행정학, 사회학 문헌은 별로 언급되지 않거나 피상적으로 인용되고 있고, 당연히 이에 대한 분석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2. 이렇게 법학적으로 접근하다 보니 법학계에서는 별로 문제제기가 나오고 있지 않으나, 그 외부에서는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들에 메스를 들지 않고 있다. 헌법재판소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헌법재판소의 결정들은 초기와는 달리 그 구성 및 운영에 있어서 보수성에 대한 논란이 있고, 특히 대표성과 관련해서도 사법부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헌법을 염두에 두고 공공성을 고찰한 결과일 터이다.
 
공공성의 개념정의에 있어 공익 대신 공공복리를 제시한 것도 법적으로 치우친 것이다. 공익에 대해서는 절차설과 실체설 등 그 자체만으로도 많은 논란이 있다. 공공성의 핵심적인 요소로 공익이 포함되는 것은 분명하나, 공익에 대해 좀더 구체적인 정의가 필요했던 것이다.
 
공익도 상황에 따라, 호명하는 주체에 따라 변하는 개념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당장 공무원 노동자들이나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제한하는 논리로 공익이 동원되고 있는 현실을 살펴야 하는 것이다. 필수유지업무가 대표적 아닌던가.
 
3. 공공성 개념을 검토하자면 시민사회에 대한 언급이 불가피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시민사회와 공공성 문제를 해명하면서 그 논의를 시민단체로 확장시킨 것은 과도하다.
 
4. 저자는 공공성의 개념에 공개성과 의사소통을 포함시키는 것에 대해서도 많은 논란이 있음을 간과하고 있다. 독일에서의 용례로만 보면 공공성과 공론장 등이 혼용되면서 사용될지는 모르나, publicness, publicity와 public sphere 사이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고, 이를 구별하여 파악해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시민단체, 언론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 공개성과 의사소통의 개념까지 공공성에 포함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를 제외하고서도 공공성에서 쟁점으로 대두되고 있는 것들이 너무 많다.
 
5. 저자는 법학적 관점 중에서도 루돌프 스멘트의 통합론적 헌법관에 약간 경도된 느낌이다. 한국에서 이를 주창하고 나섰던 이는 허영 전 연세대 교수이다. 그가 쓴 헌법 교과서는 헌법에 대한 통합론적이고 기능론적인 접근을 통해 헌법에 대한 새로운 시야를 확대한 것으로 환영받았지만, 정작 그러한 관점으로 헌법적인 사안들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여 많은 이들을 실망시켰다. 물론 이론과 주장자의 입장을 동일시할 필요는 없겠지만, 통합론적 헌법관을 통한 공공성 설명이 타당한지 여부에 의문을 품는데에는 모자람이 없다.
 
6. 공공성이라는 용어가 차고 넘치지만, 역시 한방에 정리하기란 쉽지 않은 듯하다. 우선 기존의 문헌들이라도 정리를 해서 전체적으로 또는 각 부문별로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여러 논의에서 부족한 것은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보완할 수 있는지, 우리 활동의 전제가 되는 공공성 개념에서 공통되는 것은 무엇인지, 일상적인 또는 한국의 관행에서 제기되는 개념과 대안으로 제시하는 개념 사이의 괴리를 어떻게 메울 수 있는 것인지 등이 밝혀져야 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는 공공부문에서의 공공성 논의를 정리하고 싶고, 공공성 평가가 가능하도록 구체화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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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성이 본래 담고 있는 의미, 또 담아야 하는 의미를 소개함으로써 혼란을 최소화하자는 것이 이 책의 일차적인 목표이다. 두 번째 목표는 우리 현실에서 공공성이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떠한 문제가 발생하는지를 검토하는 것이다.” (9쪽)
 
“공공성은 무엇보다 인민(시민), 공공복리, 의사소통이라는 세 가지 개념을 핵심적인 요소로 담고 있다.” (9쪽)
 
“공공성에 관한 연구는 그 의미론적 고찰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공공성 개념의 역사, 공공성에 대한 다양한 관점, 공공성과 관련된 현실 등이 종합적으로 검토될 필요가 있다.” (9쪽)
 
“헌법학적 연구 방법은 공공성에 대한 학제적 연구의 필요성, 존재와 당위의 측면에 대한 균형적 연구의 필요성에 상당히 부합한다.” (10쪽)
→ 이에 동의하기 어렵다. 헌법학적 연구 방법은 학제적 연구의 한 분야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제1장 공공성의 의미와 체계
 
“(공공성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공공성이 이른바 ‘개념의 인플레이션’이라는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개념의 인플레이션이란 빈번하게 사용되어 그 의미가 익숙한 것 같은 용어가 실제로는 불명확하게 이해되는 상황이 지속되는 경우, 그 용어가 담고 있는 본래의 또는 잠재된 가치까지 상실되는 현상이다.” (16쪽)
 
“우리가 관심을 두고 있고 또 두어야 할 것은 21세기 초반, 대한민국이라는 시간적ㆍ공간적 조건 아래서 통용되는 공공성의 의미이다.” (16쪽)
→ 그런데 그렇게 되지는 않은 듯...
 
“라틴어 publicus는 populus라는 말에서 도출된 형용사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populus는 영어 people의 어원이 되는 개념이며, 로마 시대의 populus는 그냥 사람들이 아닌, 국가 공동체의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정치적 권리를 가진 자유민을 의미했다. 이러한 뉘앙스를 담기 위해 populus는 ‘인민’이라고 번역되는 것이 보통이다.” (17쪽)
 
“로마의 인민(populus Romanus)이라는 말은 곧 로마라는 국가 공동체의 공식적인 표현이었다. 이에 따라 pulicus는 자동적으로 ‘국가의’라는 의미도 내포하게 된다. 인민이 곧 국가인 셈이다.
 
하지만 이후 publicus의 의미는 변화게 되며, 특히 로마의 정치 체제 변화가 이 변화의 핵심 원인이 된다. 로마의 정치 체제가 공화정에서 제정과 절대 군주제로 바뀐 후 ‘황제의’라는 의미로 변질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populus도 미묘한 의미 변화를 겪게 된다. 즉 정치 활동이 가능한 자유민이라는 의미보다는, 이익의 주체로서의 사람들이라는 뉘앙스를 가진 개념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예컨대 salus publica 등의 표현이 자주 사용되게 되었는데, 이것은 공동체의 복리 또는 공공복리를 의미하는 말이었다.” (18-9쪽)
 
“독일어 öffentlich의 어원은 중세 독일어 offanlih, offenlich 등에서 찾을 수 있는데, 영어의 open에 해당하는, 비밀스럽고 은밀한 것이 아닌, 열려 있는 것을 의미했다. 즉 ‘일반적으로 인식 또는 접근이 가능한’, ‘실제적으로 개방되어 있는’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이후 öffentlich라는 단어가 성립되고, 이후 단순히 개방되어 있다는 의미를 넘어서, 일정한 상징적인 의미를 내포하게 되어, ‘진실한(wahr)’, ‘올바른(gerecht)’ 등의 의미를 포함하게 되었다.
 
öffentlich는 17세기 이래 ‘공동의(gemein)’라는 형용사의 의미를 내포하게 되면서부터 라틴어 publicus와 본격적인 관련을 맺게 된다. öffentlich는 ‘정치적 공동체는 올바른 목적을 지향해야 마땅하다’라는 규범적 의미 요소를 내포하게 된 것이다. Öffentlichkeit라는 개념은 오늘날 공공성이라는 의미 외에도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19-20쪽)
 
“루돌프 스멘트(Rudolf Smend)는 공공성에 대체로 다섯 가지의 의미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고 보았다. 첫째, 공공성은 공공연함, 일반적 이익의 영역에 대한 접근 가능성을 의미한다. 둘째, 공공성은 공개적 토론ㆍ공개 절차에서 진리ㆍ결백 및 정의가 획득된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셋째, 공공성은 단지 수단이 아닌 자체 목적으로서 고양된 의미를 내포한다. 넷째, 공공성은 집단적 생활 영역의 주체, 즉 인민을 의미한다. 다섯째, 공공성은 현대 국가의 가장 고유한 과제의 본질을 의미한다.” (21쪽)
 
공공성의 3요소(Die Trias des Öffentlichen) (22쪽)
“publicus라는 개념이 원래 populus에서 나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공공성의 첫 번째 요소는 ‘인민’이 되어야 한다. 인민은 국정에 참여할 수 있는 자유민이다. 그런데 시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이러한 자유민의 범위와 성격은 변해왔다. 두 번째 의미 요소는 공동체의 복리, 줄여서 공공복리(salus publica)이다. 세 번째 의미 요소는 공개성(Publizität)이다. 이것은 공공성과 관련된 독일어 개념 öffentlich의 역사에서 추출할 수 있는 개념이다.” (22-23쪽)
 
“공공복리는 특정 개인의 복리가 아닌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복리, 특수한 복리가 아닌 일반적 복리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구체적인 의미가 대폭 생략된, 지나치게 추상적인 개념이다. 이러한 개념의 추상성은 종종 위험성으로 바뀌기도 한다. 자칫하면 자의적인 권력 행사를 은폐하는 수단이 되거나 심지어 그것에 빌미를 제공할 여지가 있고, 실제로도 그러했기 때문이다. 
공공복리는 이미 헌법에서조차 사용되고 있는 개념(헌법§37②), 이를 가급적 명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불가피한 과제이다.” (23-24쪽)
 
“공공복리에 대한 이해방식의 첫 번째는 추상적 이해의 경향이다. 전체주의적 공공복리 이해가 이에 해당한다. 두 번째 공공복리에 대한 구체적 이해의 경향은 공공복리와 사익이 충돌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공공복리는 사람들 사이의 이해관계 안에서 언제나 가변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결국 공공복리의 실체는 미리 정해져 있지 않으며, 오로지 각자 공공복리라고 주장하는 수많은 특정한 이익이 있을 뿐이다.” (24-26쪽)
 
“공공성에 대한 추상적 이해방식은 공공복리라는 개념에 확고한 내용이 담겨 있다는 가정 자체가 성립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이다. 결정적인 비판은 공공복리라는 개념이 전체주의, 독재 정권에 의해 쉽게 남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단지 공공복리의 규범 체계적 지위를 설정하기 위해서 추상적 차원의 공공복리를 설정하는 입장도, 그것의 본래 의도와는 달리 권력자의 자의에 의해 악용될 위험이 있다.” (27-28쪽)
 
“öffentlich 개념의 역사를 검토하면서 공개성이 '진실함', '올바름' 등의 개념과 연결되어 있음을 언급했다. 그러나 진정 올바른 것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특정인들에게만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올바를 것으로 확인되어야 한다.
 
누구에게나 이익이 되는지 특정인에게만 이익이 되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공개성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공개성만으로는 공공복리를 조건 짓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공개성의 관념에 일정한 요건을 부가하여, 사람들은 공개된 정보를 바탕으로 공개된 절차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함으로써 자신과 타인의 주장이 진정 올바른지에 대해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당연히 이러한 과정에는 참여하는 사람들의 지위에 있어서 자유와 평등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요컨대, 자유롭고 평등한 사람들의 ‘의사소통’이라는 요건이 공개성의 의미에 부가되어야 한다.
 
이 같은 경로로 의사소통은 공개성 개념에 포섭되어, 공공성의 또 하나의 의미 요소가 된다. 근래에는 하버마스가 공공성과 의사소통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공론장은 사회구성원 간의 이성적이고 비판적인 토론과 대화가 이루어지는 곳이고, 이러한 대화와 토론이 이른바 의사소통적 합리성의 전제 조건이 된다는 것이다.” (29-30쪽)
 
“합의 이론에 따르더라도 잠정적으로 존중받은 모든 이해와 해석이 다 진리인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진리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가능한 한 많은 주체들이 동의하고 합의해야만 잠정적으로 진리라고 부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전제되어야 할 것은 진리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주체들로서 그러한 진리에 대한 이해와 해석을 가지고 진리 탐구의 절차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인격적 존재로 승인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30-1쪽)
이준일. 2004. 『법학입문』. 박영사: 18쪽 이하.
 
“공개적 의사소통이 아닌 시장과 경제 활동을 중심으로 공공성을 이해하는 이론들이 제시되기도 한다(시장 중심적 공공성 이해). 토이브너에 따르면 기존의 공법과 국가 중심의 정치과정보다 오히려 私法과 시장 중심의 경제활동이 오늘날과 같은 다맥락성 사회를 더욱 잘 반영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자유롭고 평등한 주체, 그리고 공개성이 전제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공공복리가 확인되고 실현되기를 바라는 것은, 막연히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선의를 베풀기를 기대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한 시각은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자유시장을 공공복리의 선험적 내용으로 간주하게 할 위험이 있다.” (31-2쪽)
 
“공공성의 각각의 의미 요소들은 서로가 서로를 순환적으로 규정짓는다고 할 수 있다. 즉 인민은 공개적인 의사소통 과정에 참여하는 자유롭고 평등한 사람들이며, 공공복리가 귀속되는 주체이다. 공공복리는 공동체 구성원인 인민에게 구체적으로 귀속되는 이익이며, 공개적인 의사소통 과정을 통해 확인되는 이익이다. 공개성 및 의사소통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인민이 참여하는 과정이며, 공공복리를 구체화하는 과정이다.
 
결국 공공성은 그것을 추구하는 주체, 추구하는 방법에 대한 기본적 사항까지 내포하고 있는, 개념의 복합체라고 할 수 있다. 공공성은 ‘자유롭고 평등한 인민(populus)이 공개적인 의사소통의 절차를 통하여(Publizität) 공공복리(salus publica)를 추구’하는 속성이다.” (33-4쪽)
 
제2장 공공성과 시민사회
 
“공공 영역은 자유롭고 평등한 인민(populus)이 모이는 장소이고, 공개된 장소이며(Publizität), 공공복리(salus publica)가 구체화되는 장소이다. 특히 공공성은 단순한 공개성이 아니라 공개된 의사소통을 바탕으로 성립된다고 했다. 따라서 Öffentlichkeit를 공적 논의가 이루어지는 장소, 즉 공론장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결국 공론장은 공공성을 전제하는 동시에 추구하는 변증법적 공간을 의미한다.” (48-9쪽)
 
“오늘날 시민사회에서는 민주주의적 가치도, 사회주의(내지 사회국가)적 가치도 모두 추구될 수 있고, 또 추구되고 있다. 정부 정책에 대한 실패도, 독점 기업의 전횡도 시민사회의 견제와 비판을 받게 된다. 그런 점에서 다양한 모습의 현대적 시민사회에 대한 이해를 포괄하고 종합하기 위해 공공성 내지 공론장 이론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즉 현대적 시민사회 또한, 자유롭고 평등한 주체들이 다양한 수단을 통해 공개적으로 대화하고 토론하여, 다양한 가치들을 공공복리로서 주장하고 합의하고 나아가 실현하는 장으로 상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53쪽)
 
“시민사회는 공공 영역으로서의 시민사회의 역할 속에서 결사와 제도적 조율의 장은 물론 논쟁과 심의의 장이 된다. 공공 영역은 사회적 차이, 사회 문제, 문화적 정체성, 공공 정책, 정부의 결정과 공동체의 업무가 개발되고 심의되는 비입법적, 초사법적 공적 공간이다.”
마이클 에드워즈. 서유경 옮김. 2005. 『시민사회』. 동아시아: 120.
 
“시민단체는 시민사회의 공공성 발현과정에 보다 본격적으로 참여하고 기여하려는 단체라고 할 수 있다.” (57쪽)
 
시민단체의 공공성 발현을 위한 전제 조건 (57-62쪽)
- 시민의 참여: 시민단체는 시민의 단체이며, 시민들의 참여가 본질적인 전제 조건이고, 가급적 많은 시민이 참여하는 단체여야 한다. 이것은 시민단체가 공론장으로서의 시민사회에 더 많은 시민이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시민단체의 존재 이유와도 연결되어 있다. 이때 시민들의 참여는 자발적인 것이어야 한다.
 
- 의사소통을 바탕으로 한 운영: 시민단체는 구성원들의 자유롭고 평등한, 그리고 공개적인 의사소통에 바탕을 두고 운영되어야 한다. 시민단체가 진정 시민사회의 공공성 제고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그 작동 및 운영 절차도 시민사회의 그것과 동질적인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시민단체 운영의 투명성과 민주성을 제고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이 이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 참여하는 시민들이 시민단체 운영 과정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다원화하고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또 인터넷 등을 활용해 시민단체의 운영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의견을 즉각적으로 수렴하는 장치 등을 고안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 공공복리적 과제의 추구: 시민단체는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다양한 공공복리적 과제를 추구한다. 이 때문에 시민단체는 공익적 성격을 갖는다고 여겨진다. 또 특정 시민단체가 어떠한 공익적 과제를 추구하느냐는 실제로 매우 중요한 문제다. 시민단체가 추구하는 공익적 과제는 각각의 시민단체를 유형화하고 분류함에 있어서 가장 자주 사용되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무엇이 공공복리인지에 대한 최종적 확인의 권한은 공론장으로서의 시민사회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공공복리의 내용은 선험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며, 공적 논의를 통해 구체화되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제시되는 각각의 공공복리에 대한 주장은 또한 (넓은 의미에서)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시민단체에 대하여 획일적인 정치적 중립성을 요청할 수는 없으며, 이것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이 오히려 시민단체의 활동을 위축시키는 위험 요인이 될 수도 있다. 다만 시민단체의 정치적 중립성은 시민단체의 당파적 중립성 내지 비당파성을 근거 짓는 한에서 어느 정도 유효하다.
 
“시민단체에 대한 법적 규율은 이론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으며, 실제로 이미 다수의 법령이 시민단체의 조직과 활동 전반에 대한 직접적ㆍ간접적 규율을 부과하고 있다.
 
시민의 자발적 참여와 의사소통에 의해 운영되는 시민단체에 획일적이고 강제적인 법적 규율을 부과하는 것은, 그 자체가 시민단체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민단체에 대한 법적 규율은 매우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하는데, 특히 몇 가지 요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첫 번째, 시민단체의 문제점은 그 내부에서 자율적으로 해결되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며, 법적 규율은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보충성). 두 번째, 시민단체에 대한 법적 규율은 시민단체가 더 많은 시민의 참여와 그들 사이의 의사소통을 통하여 운영디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내부적 공공성). 세 번째, 궁극적으로 시민단체가 공론장에서 적절한 활동을 하는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외부적 공공성). 네 번째, 시민단체에 관한 법적 규율은 원칙적으로 활동을 저해하는 규제적 규율보다는 활동을 장려하고 촉진하는 지원적 규율이어야 한다(지원적 규율 우선).” (63-4쪽)
 
제3장 공공성과 국가
 
“공공성과 국가를 단순 등치하는 것은 심각한 비약이며, 이러한 이해 방식은 극복되어야 함을 미리 밝혀둔다. 그리고 양자는 헌법이라는 연결 고리를 통해서만 정당하게 관계를 맺는다.” (77쪽)
 
“종래에는 국가권력적 속성과 공공성을 같은 개념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러한 이해는 공공성의 실질적 의미 요소인 인민, 공공복리, 공개성 등은 고려하지 않고 국가권력적 속성과 공공성을 형식적으로 단순 등치시킨, 공공성에 대한 형식적 이해라고 할 수 있다. 공공성의 형식적 이해는 특히 법학의 영역에서 자주 나타나는데, 그 대표적 예는 바로 공법과 사법의 구별 이론이다. 그 이론적 전개 과정을 통해 ‘공적인 것=국가권력적인 것’이라는 공식이 확고해졌다. 여기에서 공공성은 실용성에 초점을 둔 형식적ㆍ기술적 개념으로 기능하고 있었던 것이다.” (81-83쪽)
 
“오늘날 전통적 의미에서 공법으로도, 또 사법으로도 분류할 수 없는 새로운 법적 문제가 나타남으로써 공공성의 형식적 이해에 근거한 공법ㆍ사법 구분 이론의 실용성에 대한 의문은 증폭되고 있다. 가장 커다란 문제는 관헌 국가적 또는 권위주의적 국가권력까지도 공공성으로 수식된다는 데에 있다. 특히 공개성의 요청이 공공성에 내재되어 있음에도 은밀한 국가권력까지도 공적인 것으로 정당화되는 일이 발생한다. 결국 공공성의 형식적 이해는 공공성의 본래 의미를 왜곡하며, 이렇게 왜곡된 공공성이 다시 국가권력을 정당화하는 악순환이 나타나는 것이다.” (83-4쪽)
 
“루돌프 스멘트는 형식적으로 이해된 공공성 개념을 비판하고, 프랑스를 비롯해 민주주의가 성숙한 여타 서구의 역사에서 공공성의 본래 의미를 발견하여, 공공성을 현대 국가의 본질적이고 규범적인 과제로 고양시킬 수 있는 시각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85쪽)
 
“군주제적 국가는 그 자체로 (모든 헌법에 앞서서) 공공성 독점을 관철시켰고 그러한 범위 안에서 국가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것은 오늘날 여전히 처음부터 그리고 무엇보다 국가적인 것이 공적인 것이라는 방식으로 파급 효과를 미치고 있다. 헌법에 근거한 공공적인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규범적인 (그리고 사실상의) 공공성을 언제 그리고 어떻게 구성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왜 얼마만큼 스스로 공적인 것이고 공적이어야 하는 것인지가 우선적으로 질문되지 않는 것이다.”
Peter Häberle. 1978. "Öffentlichkeit und Verfassung." Verffassung und öffentlicher Prozess. Berlin: Duncker & Humbolt: 227쪽 참조.
 
“헌법은 그것의 형성, 해석, 실현이라는 전 과정에서 공공성의 영향을 받는다고 할 수 있다. 헌법의 형성은 공론장으로서 근대적 시민사회가 공공성을 발현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고, 또 정당화되었던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89쪽)
 
“개방적인 헌법 해석 과정에서 헌법재판소는 공론장 내의 갈등을 해소하고 합의를 얻는 데 봉사하는 역할을 해야 하고, 이 과정에의 공중의 참여가 충분히 보장되어야 한다.” (92쪽)
 
“공론장은 헌법을 실현하는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공론장에 의한 헌법 실현이 멈춰지는 순간 헌법은 정당하지 않은 것이 되고 심지어 사문화될 위험에 처하게 된다. 공론장은 헌법을 실현하는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공론장에 의한 헌법 실현이 멈춰지는 순간 헌법은 정당하지 않은 것이 되고 심지어 사문화될 위험에 처하게 된다.
 
공론장은 다양한 방식을 통해 헌법을 ‘직접적으로’ 실현한다. 예컨대 언론의 자유나 집회의 자유 등의 행사를 통하여, 또는 정치적 기본권의 행사를 통하여 헌법을 해석하고 실현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무엇보다 공론장은 대표자의 선출을 비롯하여 공개성의 요청을 받는 각각의 활동 과정을 감시하고 통제한다. 이는 국가권력에 의한 헌법 실현의 과정에 공론장이 참여하고 그 과정을 통제함으로써 헌법 실현에 ‘간접적으로’ 가담하는 것이다.” (93-4쪽)
 
“헌법은 무엇보다 공공성을 발현하는 공론장의 구조를 보장하는 방식으로 공공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res publica는 단순히 국가가 아닌, 공공성과 관련된 국가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헌법 제1조 1항은 우리 국가 공동체 내에 공공성을 발현하는 공론장이 존재함을 선언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나아가 헌법은 공론장의 인적ㆍ물적 기초에 대한 보장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것은 주로 기본권 규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아울러 민주주의, 법치주의, 사회국가 원리 등 헌법의 기본적 원리들도 공론장 존립의 전제 조건과 활동 방식을 규정한다고 볼 수 있다.” (94-5쪽)
 
“헌법이 보장하는 공론장이 결정 권한을 갖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해 여러 의견이 대립되고 있다. 첫 번째 입장은 공론장이 일정한 영역, 특히 개인들의 이른바 사적 영역에 대하여 공적 논의를 진행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두 번째 입장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사적 영역에 관한 공적 논의가 획일적으로 배제되는 것은 잘못이라고 본다. 공적 논의의 영역을 축소하여 자유를 보장한다는 비현실적 주장을 좇는 것보다, 차라리 사람들 사이의 숙고, 토론, 심의를 바탕으로 공동체의 의사를 결정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이것이 궁극적으로는 개인의 자유 보장에도 더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96-7쪽)
 
“공동체의 모든 사안이 원칙적으로 공개되어야 하며, 사람들은 자유로운 대화와 토론을 통해 무엇이 공공복리인지 확인하여 그것을 근거로 공동체의 운영과 그에 수반되는 기본권 제한을 정당화 내지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이에 따라 헌법이 열어놓은 공론장과 그를 통해 발현되는 공공성은 헌법 질서에서 전면적이고 핵심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즉 오늘날 헌법이 공공성을 단지 중요한 가치 중 하나로 채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헌법 그 자체가 공공성의 화신 내지 실현 구조라고 말할 수도 있다.” (99쪽)
 
“헌법은 공공성을 전면적이고 핵심적인 가치 중 하나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국가 공동체는 이러한 헌법적 가치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ㆍ발전하는 동적 과정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시민사회와 마찬가지로 국가 공동체의 실체도 그것이 공공성을 발현하는 장, 공론장이라는 점에 있다는 결론이 도출될 수 있다.” (101-3쪽)
→ 저자는 국민과 시민이 질적으로도 양적으로도 상호 접근하는 개념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것은 국가 공동체를 공론장으로 파악하기 위한 비약이 아닐까 싶다. 국민과 시민이 상호 접근하는 개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본다.
 
“국가권력의 긍정적 측면 내지 가능성의 측면을 현실화하고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국가권력이 형식적 의미의 공적 권력이 아니라, 실질적인 공적 권력이 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국가권력은 한편으로는 공공복리를 추구하는 권력이 되어야 한다. 국가권력을 담당하는 각각의 기관이 공론장에서 공공복리를 주장하는 하나의 주체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보다 공론장에서 합의되고 확인된 공공복리적 과제를 직접 실현하는 주체가 되는 것이 더 일반적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 국가권력은 공공성 발현에 기여하기에 적합한 구조, 즉 공적 구조를 갖추어야 한다. 즉 국가권력의 구성과 활동의 전 과정이 원칙적으로 공개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 국민들이 자유롭고 평등한 의사소통을 바탕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105-6쪽)
 
“현실적으로 직접 민주제는 일상적으로 사용되기 곤란하다. 뿐만 아니라 대표적인 직접 민주제로 알려진 국민투표 또는 국민발안도 엄밀하게 말하면 순수하게 직접 민주제는 아니다.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누군가가 국민투표로 결정할 대상, 또는 법률안으로 발의할 대상을 구체적으로 선정하고 정리해야 하는 이른바 의사선형성(意思先形成)의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것은 또 다른 의미의 대표 현상이기 때문이다.” (107쪽)
 
“국가권력이 공적 구조를 갖추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이루어지던 것보다 더 많은 국민의 국가권력에 대한 참여가 필요하다.
시민단체는 보다 많은 시민을 공론장의 의사소통에 참여시키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시민단체가 국가권력의 구성과 활동에 참여한다는 것은 국가권력의 구조가 보다 공적인 것이 되도록 한다는 의미와 다르지 않다.” (109쪽)
→ 저자는 시민단체가 국가권력의 구성에 참여하는 예로, 시민단체의 낙천ㆍ낙선운동, 매니페스토 운동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예들은 적극적이라기보다는 소극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어, 적당하지 않다. 오히려 참여예산제나 옴부즈만 제도, 참여배심제 등이 더 적절하다고 본다.
또한 국가권력 운영에 대한 시민단체의 참여에 있어서 공개성을 핵심적인 전제 조건 중 하나로 제시하면서, 국가권력의 공개성은 원칙적으로 유지되어야 하며, 비공개는 필요한 최소한도에 그쳐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원칙적 표명보다 정보공개제도가 형식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현실을 적시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서 제대로 된 정보공개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음은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되고 있는 사실이다.
 
“국가권력의 운영은 기존의 제도로는 효율적으로 통제되지 못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시민단체의 참여와 통제는 점점 더 중요한 것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참여가 기존의 국가권력 담당자의 권한을 보완하기는 하지만 대체하는 것은 아니며, 여전히 최종적인 결정 권한은 대표와 그들에 의해 임명된 공무원에게 있다. 따라서 시민단체의 국가권력 운영 참여를 직접 민주제의 한 방편이라고 이해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토의 민주주의는 특히 사람들이 토의 과정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얻고 서로 다른 견해를 접하게 되며, 그로써 자신들의 선호를 정확히 파악하고 잘못된 견해를 교정하여 결국 올바른 의사 결정에 다다를 수 있다는 생각을 전제한다. 이 때문에 토의 민주주의는 토의 과정을 보장하고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의사 형성 방법을 고안하는 것이 핵심 과제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의사 형성 방법이 고안되면서 시민단체의 역할도 대폭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일반적인 예상이다.” (113-5쪽)
→ 시민단체의 국가권력 운영 참여를 직접 민주제의 한 방편이라고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최종적인 결정 권한이 대표와 그들에 의해 임명된 공무원에게 있다고 파악하는 것은 직접 민주제를 배제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대표와 관료제에 대한 통제, 최종적인 결정 권한을 실질적으로 시민, 민중에게 줄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제4장 공공성과 언론
 
“언론 매체가 국가 기관 내지 국가 기관과 유사한 것이 됨으로써 공공성과의 관계를 유지한다는 시각은 이른바 공공성의 형식적 이해에 바탕을 둔 것으로서 옳지 못하다. 나아가 언론 매체의 자율성이 심각하게 침해되거나, 독재자의 언론 통제에 기여할 위험이 높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129쪽)
 
“사상의 자유 시장 자체를 심각하게 교란하는 언론 매체의 행위가 있다면 반드시 규제가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 논리적일 것이다. 다만 주의할 것은 사상의 자유 시장이 일반 상품의 자유 시장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말이 아니라는 점이다. 상품의 자유 시장에서는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상품의 가격이 결정되고 그로 인하여 자원 배분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사상의 자유 시장은 수많은 의견이 자유롭게 제시되면 그중에서 가장 올바른 의견이 공중의 판단에 의하여 선택되는 곳이다.” (134쪽)
 
“어떠한 방식으로 접근하든 언론 매체에 대한 법적 규율은 반드시 공적 권력으로서의 국가권력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의 성립과 운영이 시민들에게 공개되고 시민들의 의사소통에 기초해 성립된 국가권력이라야 언론 매체에 대한 법적 규율을 할 자격이 있다. 특히 언론 매체에 대한 법적 규율을 담당하는 국가 기관은 공공복리를 지향하는 권력이어야 한다. 따라서 공정한 권력, 정치적 중립성은 불가능하다고 할지라도 최소한 당파적 중립성은 갖추고 있는 권력이어야 한다.” (144쪽)
 
맺음말
 
“변화될 질서는 진정 ‘주체적 시민들의 연대적 삶’을 가능하게 하는 질서여야 한다. 만약 이 기대가 타당한 것이라면 공공성 개념은 지금처럼 보수적 정책에 대한 비판 근거로서의 소극적 역할에 그치지 않고, 공동체 질서의 전반적인 변화를 기획하는 데 준거가 되는 적극적 역할까지 할 수 있을 것이다. 공공성은 시민의 주체성 회복, 자유롭고 평등한 의사소통, 공공복리적 가치의 추구를 내용으로 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148쪽)
 
“문제의 핵심은 공공성이라는 이상을 단지 이상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추구하여 우리의 현실을 공공성의 이상과 되도록 가깝게 만드는 데에 있다고 본다. 이를 위해서 공공성의 이론과 현실에 대한 연구와 함께 공공성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론, 이를테면 법적ㆍ제도적 수단에 대한 고민도 이어져야 할 것이다.” (1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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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공공성과 참여 소통 연대의 가치를 담다!
 
『책세상문고ㆍ우리시대』제120권《공공성이란 무엇인가》. 시장 중심의 신자유주의 질서 및 경쟁과 효율성이라는 가치가 한국 사회에 만연하면서 이를 보완하기 위한 개념으로 공공성의 가치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교육, 의료, 언론 등 어느 분야에서나 공공성의 기치를 내걸지만 그 의미는 명확하게 와 닿지 않는다.
 
이 책은 공공성 개념의 역사와 의미의 체계적인 고찰을 통해 이런 모호함을 해결하고자 한 것이다. 시민의 주체성 회복, 자유롭고 평등한 의사소통, 공공 복리적 가치의 추구라는 공공성의 본래 의미에 주목하면서 이런 가치들이 시민사회, 국가, 언론이라는 현실 영역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살펴본다.
 
목차
 
들어가는 말
 
제1장 공공성의 의미와 체계
1.공공성-수사적 개념에서 학문적 개념으로
2.공공성 개념의 역사
(1)라틴어publicus
(2)독일어offentlich
3.공공성의 의미 요소
(1)공공성의 3요소-인민,공공복리,공개성
(2)공공성과 공공복리
(3)공개성과 의사소통
 
제2장 공공성과 시민사회
1.첫 번째 프리즘-시민사회
2.시민사회의 의미-근대적 시민사회와 현대적 시민사회
(1)근대적 시민사회
(2)현대적 시민사회
3.공론장으로서의 시민사회
(1)공공성을 발현하는 장으로서의 공론장
(2)공론장으로서의 근대적 시민사회
(3)공론장으로서의 현대적 시민사회
4.공공성에 비추어 본 시민사회의 현실과 과제
(1)시민사회의 현실로서의 시민단체
(2)시민단체의 공공성 발현을 위한 전제 조건
5.시민단체에 대한 법적 규율의 문제
(1)불가피성과 유의점
(2)시민단체의 조직과 활동에 관한 법적 규율
(3)시민단체에 대한 재정적 지원
 
제3장 공공성과 국가
1.두번째 프리즘-국가
2.국가의 의미-상대성과 이중성
(1)국가 개념의 상대성
(2)국가 공동체와 국가권력
(3)우리 헌법에서의 '국가'
3.공공성과 국가권력적 속성의 단순 등치와 그 극복
(1)공공성에 대한 형식적 이해의 내용
(2)공공성에 대한 형식적 이해의 문제점
(3)공공성의 실질적 이해 회복
4.공공성과 국가의 연결 고리로서의 헌법
(1)우리 헌법의 정체성
(2)헌법과 공공성의 구체적 관련성
(3)헌법에 있어서 공공성의 비중
(4)헌법을 매개로 한 국가 공동체와 공공성의 관계
5.공공성에 비추어 본 국가의 현실과 과제
(1)국가의 현실로서의 국가권력
(2)국가권력의 공적 구조와 내재된 문제점들
(3)국가권력의 공적 구조 보완을 위한 시민단체의 참여
 
제4장 공공성과 언론
1.세번째 프리즘-언론
2.언론의 자유
(1)언론의 자유의 중요성
(2)우리 헌법에서의 언론의 자유보장
3.공공성에 비추어 본 언론의 현실과 과제
(1)언론 자유의 정치적 성격과 언론 매체의 중요성 부각
(2)언론 매체의 공적 성격과 기업으로서의 성격
(3)언론 매체에 대한 공적 과제의 부과
4.언론 매체의 공적 과제를 현실화하기 위한 법적 규율의 범위와 방법
(1)공적 과제 수행을 위한 특권 부여
(2)공적 과제 수행을 위한 법적 규제
(3)법적 규율과 집행에서의 유의점
 
맺는 말

더 읽어야 할 자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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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8 17:26 2009/03/08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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