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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좌파에게 대한민국은 무엇인가? (장석준, <시민과 세계> 2008년 하반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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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에서 뒤늦게 주대환 의장과 장석준 동지의 논쟁(?)을 다룬 기사를 내보냈다. 논쟁이라고 할 것도 없는데, 화제거리로 삼았달까. 이 논쟁 자체보다는 장석준 동지가 <시민과 세계> 2008년 하반기호에 발표한 글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 싶어 여기에 올린다. 물론 주된 내용은 주대환 의장의 글을 계기로 좌파가 대한민국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논한 것이다.
  
촛불투쟁을 어떻게 볼 것인가 여부 말고는 그와 그리 다르게 파악하는 것은 없다. 특히 국가장악론이나 국가분쇄론이 아닌 국가변형론은 이미 전진의 대안사회세미나에서 공유했던 것이다. 구체적인 현실의 사안들을 분석하는 과정에서도 이러한 시각을 녹여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장석준 동지가 결론으로 내린 것에도 동의한다. 다만 대중권력이 조직화된 노동자계급에 기반하지 않고서 어떻게 가능할지 의문이다. 3.1운동이나 4.19혁명이 향후에 귀감은 되었을지언정 실패이거나 미완인 이유는 바로 주체의 문제에 있다고 본다. 그리고 시대적인 상황도 좌우하였고... 
 
이 글을 가지고 주변의 동지들과 토론을 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또는 주대환 의장의 글과 함께 보면서 비교해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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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당성’ 논쟁 진보 안에서 점화 (한겨레, 이세영 기자, 2008-12-17 오후 06:48:10)
 
친일·독재의 유산을 상속받은 한국의 보수세력이, 자신들의 역사적 정당성을 문제삼는 진보진영의 공격에 대응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하나의 ‘역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당신들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인가.’ 진보진영은 이런 역공 앞에 머뭇거렸다. 그들의 질문에 ‘아니오’ 혹은 ‘예’라고 답하는 것은, 분단체제에 편승해 반세기 가까이 국가권력을 장악해 온 반공·보수 세력의 과오를 묵인하거나, 진보세력 스스로 ‘국체’를 부정하는 반국가 세력임을 자인하는 것으로 간주될 위험이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대한민국사’를 둘러싼 논쟁이 진보세력 내부에서 점화됐다. 발단은 주대환(54) 전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이 뉴라이트 계간지 <시대정신> 겨울호에 기고한 ‘이념으로서의 사회민주주의’라는 글이었다. 주 전 의장은 이 글에서 “사회민주주의자는 대한민국을 긍정한다”고 밝혔고, 이런 ‘선언’은 진보진영 내부에서 거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언젠가 매듭지어야 할 문제였다”며 그의 ‘커밍 아웃’을 반기는 이도 있었지만, 다수 의견은 “좌파로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장석준(37) 진보신당 정책실장이 <시민과 세계>에 기고한 ‘진보 좌파에게 대한민국은 무엇인가’라는 글을 통해 주 전 의장의 ‘대한민국 긍정론’을 공개적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두 사람의 논쟁은 진보정당 내부에서 10년 넘게 이어져 온 ‘개혁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노선 대립을 반영하지만, 한편으로는 1990년대와 2000년대 정당운동을 대표하는 신구 이론가의 대결이란 점에서도 관심을 끈다.
 
주 전 의장이 대한민국을 긍정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다당제와 삼권분립,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등 민주주의 규칙을 헌법 원리로 채택함으로써 민주화의 제도적 기초를 수립”하는 한편, “효율적인 농지개혁을 통해 이후 경제발전의 역사적 토대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정부수립기에 대한 우호적 평가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긍정으로 이어진다. “독일의 비스마르크가 했던 것처럼 부국강병을 추진하면서 자본주의를 발전시키고 복지제도의 기초를 닦았다”는 이유다.
 
이런 주 전 의장의 평가를 장 실장은 ‘원칙 없는 투항’으로 받아들인다. 주 전 의장이 민주공화국을 바람직한 정체로 간주하면서 대한민국을 긍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긍정해야 할 대한민국의 정체가 무엇인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장 실장은 “민주공화국은 핵심은 헌법조항이나 국가기구가 아니라, 투표행위와 개인적 항의, 대중운동으로 나타나는 ‘시민들의 권력행사’에 있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민주공화국을 긍정한다는 것은 그 권력의 최종 근거인 ‘대한민국 시민의 힘’을 긍정하는 것이지, 국가기구나 그것을 운영해 온 특정세력의 정당성을 승인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이런 장 실장의 논리는 “진보 좌파가 할 일은 대한민국 60년사에서 자기 정체성을 발견하려는 것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민주공화국’에 대한 열망을 통해 현실의 대한민국을 움직여 나가는 것”이란 결론으로 이어진다.
 
두 사람의 논쟁은 표면적으로는 ‘대한민국의 정당성’에 대한 역사적 승인 문제를 둘러싸고 형성됐지만, 그 기저에 ‘국가’와 ‘민주주의’를 바라보는 관점 차이가 존재하는 까닭에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이에 대해 신진욱 중앙대 교수는 “논의 구도를 국가와 민주주의에 대한 철학과 관점의 차원으로 추상화시키기보다는, 구체적인 정치 전략과 관련된 생산적 논쟁을 벌여야 한다”고 주문한다. 촛불시위에 태극기를 들고 나오는 시민들의 모습에서 확인되듯 ‘대한민국이라는 정치공동체’에 대한 시민들의 소속 욕망은 엄연한 현실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진보진영은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보 좌파에게 대한민국은 무엇인가? 
 
1. 대한민국 긍정론 - 주자학적 역사관의 부활인가?

 
요즘 역사 논쟁, 더 정확히 말하면 한국 근현대사 논쟁이 한창이다. 이명박 정부의 한 축인 뉴라이트 세력이 불붙인 이 논쟁 때문에 대한민국사가 느닷없이 정치 쟁점으로 부상했다. 뉴라이트는 대한민국을 긍정하지 않는 역사관은 대한민국에 발붙일 수 없다고 핏대를 높이며 그간의 한국 근현대사 연구를 규탄하고 역사 교과서에 가위를 들이댄다. 또한 이러한 공격이 김대중, 노무현 전 정권에 대한 ‘부관참시’임을 숨기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러한 바람이 진보 좌파 내부에까지 새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평소 사회민주주의의 전도사로 자처해온 주대환 전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이 뉴라이트 계간지 <시대정신>에 투고한 글에서 “이제 좌파는 대한민국을 긍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주대환, 2008). 그 내용도 내용이려니와 한국 근현대사 논쟁이 한창일 때 다른 곳도 아닌 뉴라이트 잡지 지면에 자칭 ‘뉴레프트’의 주창자가 이런 주장을 발표했으니 파란이 일지 않을 리 없었다.
 
뉴라이트나 주대환이나 모두 대한민국을 ‘긍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도대체 대한민국을 긍정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무엇을 긍정해야 대한민국을 긍정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것을 부정하는 것인가?
 
뉴라이트는 그 긍정의 대상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뉴라이트의 도식에 따르면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긍정은 이승만에서 박정희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전 정권들에 대한 긍정으로 나타나야만 한다. 어쩌면 이것이 더 핵심적이다. 아무리 추상적인 수준에서 “나는 자유민주주의자요”라고 해도 뉴라이트에게는 그것만으로는 성에 안 찬다. 반드시 ‘국부’ 이승만, ‘중흥조’ 박정희에 대한 입장이 따라붙어야 한다. 그들을 존숭해야 한다. 그래야만 대한민국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뉴라이트는 글로벌 시대의 새로운 우익을 자처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미국 문명을 숭배하는 정도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미국 네오콘과의 유대감도 사뭇 긴밀하다. 하지만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태도를 놓고 보면, 이들은 오히려 17세기 조선 주자학자들을 연상시키는 데가 있다. 21세기의 최첨단 외피를 둘러싼 그 이면에 숨은 모습은 송시열과 노론 사대부들의 썩은 시신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역사 속에서 어떤 기원적 사건을 찾고 그것으로부터 정통성의 계보를 작성하는 것은 전형적인 주자학자들의 역사관이다. 주자학자들에게 지금 이 시대의 올바름은 과거 역사 속 올바름의 계보의 연장선 위에 있다. 그 계보와의 연관성 속에서만 이 시대의 올바름도 판가름할 수 있다.
 
17세기 조선 사회에서 노론 벌열(閥閱)들이 보수적인 일당 독재 체제를 구축해나갈 때 내세운 이념적 무기들 중 하나가 바로 이러한 역사관이었다. 송시열을 중심으로 한 정통 주자학자들의 입장에서는 사상적으로 결코 주자에서 벗어나선 안 되었고 역사적으로는 중국 왕조사의 정통으로부터 벗어나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주자와 조금이라도 다른 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모두 사문난적으로 몰았고, 멸망한 명나라 황제를 모시는 사당을 짓기까지 했다. 그들은 이러한 역사관으로부터 집권의 정당성을 확인했던 것이다.
 
이승만-박정희 전 정권의 계보와 대한민국 역사를 동일시하고 전자에 대한 긍정만이 대한민국의 현재에 대한 긍정이라는 뉴라이트의 역사관은 과연 이러한 17세기 조선 주자학자들의 역사관과 얼마나 다른가? 뉴라이트 역시 이승만의 건국 행위라는 기원적 사건을 출발점으로 삼아 박정희의 산업화, 작금의 세계화로 이어지는 어떤 정통성의 계보를 그리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서 이 계보의 연장선 위에 서 있음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단으로, 즉 대한민국 안의 반(反)대한민국 분자(‘친북좌익’)로 몰아붙이고 있지 않은가? 300년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둘 사이의 정신적 근친성은 참으로 놀랄만하다.
 
그런데 우리는 주대환의 글에서도 비슷한 정신적 태도를 엿볼 수 있다. 그 역시 남한 좌파의 역사에서 우선 기원적 사건부터 찾는다. 그리고 그 기원으로부터 이어지는 특정한 계보들을 그린다. 여운형에서 조봉암을 거쳐 자신의 사회민주주의로 이어진다는 계보와, 김일성, 박헌영으로부터 비롯된다는 또 다른 좌파의 계보들을. 그러면서 전자의 올바름과 후자의 그릇됨을 대비하면서 결국 전자의 계보 위에 자리한 자신의 올바름을 주장한다.
 
“우리는 NL은 김일성주의자들이라면, PD는 박헌영주의자들이라 할 수 있다고 본다. 박헌영은 전형적인 스탈린주의자로서, 소련의 지령을 충실하게 따라서 국민 정서로부터 먼 정치적 판단과 결정을 여러 차례 내렸다. 그러니까 해방 당시로 소급해 본다면 PD파는 박헌영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대환, 2008)
 
“우리는 민족사의 정통성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만 있고 대한민국에는 없다는 인식에서 벗어나고,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긍정하면 좌파이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부정하고 대한민국을 긍정하면 우파라는 잘못된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사상적 조상, 정치적 족보의 연원을 김일성, 박헌영에게서 찾는 것이 아니라 여운형, 조봉암에게서 찾아야 한다.” (위의 글)
 
이런 사고방식은 과연 조선 주자학이나 뉴라이트의 역사관과 얼마나 먼 거리에 있는 것일까? 정말 역사는 이렇게 ‘올바른’ 계보와 ‘그렇지 않은’ 계보들 사이의 쟁투인 것일까? 그렇다면 자신이 이 중 어느 계보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찌 해야 하는가? 이를테면 17세기의 윤휴나 박세당 같은 사람은 어찌해야 하는가? 유학자이면서도 종내 주자학자는 아니었던 정약용 같은 이는 역사의 어느 곳에 자신의 자리를 찾아야 하는가? 
 
당장 필자 같은 사람만 해도 그게 걱정이다. 필자는 지금의 정치적 입장으로 따지면야 진보 좌파 내에서 주대환과 대척점에 서 있다. 주대환의 역사관에 따르면 필자는 ‘박헌영주의자’다. 하지만 필자는 박헌영에게서 자신의 올바름의 뿌리를 찾지도 않을뿐더러 박헌영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필자 역시 주대환이 우러러보는 여운형이 당대에 박헌영보다 더 뛰어난 좌파 정치인이었으며 현재 우리의 귀감이라고 평가한다(장석준, 2006). 그렇다면 필자는 한낱 역사의 미아일 뿐인가? 제 계보도 못 찾는 반편이인가? 혹은 윤휴나 박세당처럼 사문난적으로 몰리기를 각오해야 하는 것인가? 정약용처럼 당대의 정치에는 발도 들여놓지 말 일인가?
 
이 대목에서 필자는 도리어 이런 의문을 던져본다 ― 어쩌면 주대환의 역사관은, 그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박헌영의 정신적 태도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닐까? 박헌영이야말로 10월 혁명의 기억과 코민테른 동방노력자대학 수학 경험에서 정치적 올바름의 기원을 찾았던 인물이다. 그리고 그러한 기원으로부터 이어지는 역사의 계보를 너무도 소중히 여겼기에 해방 정국에서 소련의 모든 지령을 묵묵히 따랐다. 스탈린주의자 박헌영의 머릿속에서도 맑스-레닌주의는 조선 주자학의 문화적 DNA와 불건전한 교잡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 주자학적 역사 정통론을 동원해 ‘뉴레프트’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논자로부터 우리가 어떻게 ‘박헌영주의’의 기이한 재림을 연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무리 이번에는 ‘소련식 사회주의’의 자리에 ‘서유럽식 사회민주주의’가 들어섰다 할지라도 말이다.
 
도대체가 현실의 어떤 국가(그게 소련이든 대한민국이든)를 긍정하느냐 부정하느냐는 식으로 질문하고 여기에 답하라 강요하는 것 자체가 전형적인 스탈린주의자의 태도다. 게다가 대한민국을 통째로 ‘긍정’한다는 것은 무엇이고, ‘부정’한다는 것은 또 무엇인가? 이것 역시 전형적인 종교재판 이단 심문관의 물음이다.
 
2. 국가를 바라보는 좌파의 시각
 
그럼 진보 좌파는 대한민국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대한민국 안에서 그 한 정치 세력으로서 고민하고 활동하는 좌파에게 과연 대한민국은 무엇인가? 뉴라이트나 주대환 류의 구도에서 벗어나 다시 원점에서부터 따져보자.
 
대한민국은 국가다. 자본주의 세계의 한 국가다. 따라서 좌파가 대한민국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이야기하자면, 좌파가 국가, 그것도 자본주의 세계의 국가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부터 점검해야 한다.
 
전통적으로 좌파의 국가관은 두 입장으로 나뉜다. 그 중 한 가지 입장은 좌파가 국가를 ‘장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껏 국가가 자본가계급의 이해에 봉사해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을 뒤엎을 무기가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보통선거제도다. 노동자, 민중 세력 역시 선거를 통해 국가 권력에 접근할 수 있으며, 그러면 그간 자본가계급의 이해에 복무해온 국가기구를 노동자, 민중의 것으로 전취할 수 있다. 그 논리적 결론이 곧 선거 사회주의, 개혁적 사회주의 노선이다. 이것이 사회민주주의의 역사적 뿌리이자 논리적 토대다.
 
또 다른 입장은 자본주의 국가는 오직 ‘분쇄’될 수 있을 따름이라는 것이다. 국가는, 그것이 아무리 민주적 외피를 쓰고 있더라도, 애초부터 자본가계급의 이해에 맞게 만들어진 기관일 뿐이다. 좌파정당이 선거에 승리해 내각을 구성하거나 대통령 자리를 차지한다 할지라도 그것으로 국가를 통째로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가기구는 노동자, 민중의 대표들을 포위하거나 무력화시키고 결국은 기존 국가 운영 방향의 포로로 만들어 버린다. 따라서 변혁 세력은 자본주의 국가를 철저히 파괴해야 한다. 이것은 혁명적 사회주의의 출발점을 이루는 국가관이다.
 
이 중 어떤 입장이 올바른 것으로 판명되었는가? 역사의 검증 결과는 어떠했는가? 적어도 필자가 보기에는, 지난 세기의 역사를 통해 드러난 사실은 두 입장 모두 정답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여러 나라에 보통선거권이 도입되자 실제로 많은 좌파 정당들이 선거로 집권당이 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러한 집권이 자본주의 사회의 근본 변화로 이어졌냐 하면 그렇지 않다. 물론 복지국가라는 커다란 역사적 성과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자본주의 자체의 변화는 아니었다. 더구나 복지국가의 건설 자체가, 스웨덴 정도를 예외로 한다면, 한 나라 안의 선거 정치의 결과였다기보다는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 세계적 격변의 산물이었다.
 
또한 선거로 집권한 좌파가 일단 몇몇 복지제도 도입 이상의 급진적 조치들을 취하기만 하면, 그들은 반드시 국가기구 내부로부터 격렬한 저항에 맞닥뜨리곤 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에 걸쳐 칠레, 영국, 스웨덴 그리고 프랑스 등에서 집권 좌파가 겪은 일련의 좌절과 패배가 바로 그 사례들이다. 그리고 이 패배의 잿더미 위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본격 시작되었다. 이것만 보면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국가관이 옳았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허나 그들의 성적표 역시 그렇게 자랑할 만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러시아에서 자본주의 국가를 파괴한 뒤에 실제 닥친 현실이 충격적인 것이었다. 새로 등장한 당-국가는 오히려 자본주의 국가보다 더 억압적이었다. 물론 이것은 혁명 과정의 어떤 일탈(당 관료들의 ‘배반’) 때문이었다고, 그래서 애초의 출발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국가 ‘분쇄’ 이후의 결과를 결코 낙관할 수 없다는 사실 확인을 가리거나 지워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발전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혁명을 성공시키는 데 실패했다. 일단 보통선거권이 도입, 정착된 사회에서는 10월 혁명 식 대중 봉기가 좀체 재연되지 않았다. 그런 사회에서는 대중이 선거제도에 냉소를 보내기는 할망정 그것이 국가권력에 접근하는 가장 덜 나쁜 방식이라는 점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 ‘분쇄’ 전략은 그 올바름을 입증하기 이전에 진보 성향의 대중들 사이에서 다수를 획득하는 데에도 실패하곤 했다.
 
물론 범좌파 안에는 여전히 국가 장악론이나 분쇄론 중 어느 한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국가관이 아직 채 검증이 끝나지 않았을 뿐이지 근본적으로는 올바른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주대환은 사회민주주의(그것이 베른슈타인이나 조레스의 사회민주주의인지, 블레어나 슈뢰더의 사회민주주의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를 한국 좌파의 유일한 선택지로 내세우는 것이며, 지금도 우리 곁에는 코민테른형 혁명 정당을 건설하려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21세기의 좌파에게는 국가 ‘장악’도, ‘분쇄’도 아닌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확신한다. 이전에 발표한 글에서도 계속 주장한 것처럼(장석준, 2007; 2008), 필자가 보기에, 그 출발점은 니코스 풀란차스의 후기 입장이다(Poulantzas, 1978).  
  
풀란차스에 따르면, 국가란 장악하거나 분쇄할 수 있는 어떤 사물이 아니다. 그것은 세력관계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계급과 계급분파들 사이의 세력관계의 물질적 응축”이다. 즉, 국가는 사물이 아닌 관계다. 여기에는 당연히 지배 계급의 권력이 관통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피지배 계급이 완전히 부재한 것은 아니다. 피지배 계급의 힘 역시 각인되어 있다. 따라서 지배 계급조차도 국가라는 무대에서 끊임없이 피지배 계급에 대한 자신들의 힘의 우위를 확인함으로써만 현존 국가를 자본주의 국가로 유지할 수 있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피지배 계급도 국가라는 무대를 통해 자본주의의 지배를 불안정하게 만들 힘을 갖고 있다는 의미다.
 
“민중투쟁이 국가의 제도적 물질성 안에 포함되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민중투쟁은 표면화된 그리고 다양한 투쟁의 흔적을 남기는 물질성에 각인된다. 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정치투쟁은, 보다 일반적으로 권력장치에 대한 모든 투쟁과 마찬가지로, 국가에 대해 외재적인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며, 국가의 전략적 배치에 의존한다. 결국 국가는, 모든 권력기구와 마찬가지로 관계의 물질적 응축인 것이다.” (Poulantzas, 1978)
 
이런 국가관은 무엇보다도 현대의 민주공화국에 들어맞는다. 우선 국가 장악론과 견주어보자.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민주공화국이라 하더라도 지배 계급과 다수 대중의 힘이 서로 불균등하게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선거를 통해 피지배 세력의 이해와 영향력을 국가기구 안에 쉽게 관철시킬 수 있다는 것은 유치한 환상이다.
 
그렇다고 해서 국가를 분쇄의 대상으로만 바라볼 수도 없다. 민주공화국에서는 누구보다도 대중 스스로 자신들의 투쟁을 국가라는 무대로 확장하는 방식으로 권력에 접근하려 하기 때문이다. 자신도 주역이라고, 혹은 주역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 무대 자체를 파괴하자는 데 동의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럼 이러한 새로운 국가관을 뒤따르는 좌파의 정치 전략은 무엇인가? 풀란차스는 국가의 ‘장악’도, ‘분쇄’도 아닌 그 ‘근저적 변혁(변형)’을 말한다. 그에 따르면 국가의 ‘변형’이란 “국가 조직망에서 대중이 항상 가지는 분산적인 저항의 중심이 국가라는 전략적 지형에서 실질적인 권력의 현실적 중심이 되는 형태로 새로운 저항의 중심을 창출, 발전시키고, 보급, 발전, 강화, 지도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대의제 민주주의의 제도 및 자유(인민대중이 획득한 성과)의 확대, 심화와 직접 기층 민주주의의 확장 및 자주관리적 거점의 분산, 확대를 접합”한다(Poulantzas, 1978).
 
앞으로 필자의 논의는 이러한 후기 풀란차스 이론에 바탕을 둘 것이다. 그런데 이 이론 자원으로도 채 풀리지 않는 국가 문제의 또 다른 차원이 존재한다. 위의 시각들은, 사회민주주의나 레닌주의의 국가관이든 풀란차스의 그것이든, 모두 맑스주의 전통에 입각해 있다. 맑스주의 전통은 국가를 항상 ‘안으로부터’, ‘아래로부터’ 접근해왔다. 즉, 시민사회라는 토대로부터 국가에 접근하곤 한다.
 
그런데 실제 국가는 시민사회로부터 규정될 뿐만 아니라 국가들 간의 관계에 의해서도 규정된다. 국가는 국가 내부의 여러 세력관계들의 응축일 뿐 아니라 그 국가와 다른 국가들 사이의 관계의 응축이기도 하다. 즉, 국가는 ‘아래로부터’나 ‘안으로부터’뿐만 아니라 ‘위로부터’, ‘바깥으로부터’도 접근해야 한다. 이것은 자본주의 중심부 국가들이 자본주의-국민국가 형성에 가장 앞섰던 나라(영국) 혹은 나라들(영국-프랑스)과의 경쟁 과정에서 형성되었다는 사실만 돌이켜봐도 이미 분명하다. 현존 국가들 중 다수가 2차 대전 이후 비로소 독립한 나라들이고, 이들 나라의 등장이 탈식민지 성향을 갖는 미국 헤게모니의 부상과 긴밀한 연관을 갖는다는 점 역시 그 한 사례다. 
 
사실 맑스, 엥겔스도 당대 국제 정세를 분석한 짧은 신문 기고용 원고들에서는 국가 간 체계의 존재와 그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착상을 이론 수준으로까지 정연히 전개하지는 못했다. 이러한 약점은, 1917년 당시 레닌의 세계혁명 전망과 같은 몇몇 예외에도 불구하고, 이후 맑스주의 전통에서 그대로 반복됐다. 최근 들어서야 비판적 지구정치경제 이론 등을 통해 뒤늦게, 국가 문제에서 국가 간 체계가 차지하는 중요성이 주목받기 시작하는 형편이다(Cox, 1996; Gill, 1993).
 
아무튼 이제는, 어떠한 국가도 전 지구적인 권력 사슬을 시야에서 지운 채 그 전모를 파악할 수는 없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그리고 대한민국도 여기에서 결코 예외가 될 수 없다.
 
3.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주대환은 사회민주주의자는 민주공화국을 바람직한 정체(政體)로 생각하며 따라서 대한민국을 긍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긍정해야 할 그 ‘대한민국’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불분명하다. 그것은 뉴라이트가 주장하는 것 같은 과거 정권들의 정통성인가? 대한민국 헌법 조문들인가? 대한민국의 국가기구들인가?
 
어쩌면 주대환 류의 사고방식은 국가 장악론과 뉴라이트 식 역사관의 기묘한 조합일지도 모른다. 이런 사고방식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어떤 사물이다. 그리고 선거로 집권한 세력이 이 사물을 계승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그 물질성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아마도 보통선거 같은 몇몇 제도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아니면 뉴라이트가 하는 것처럼 상상의 계보를 작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논리의 귀결이 결국 대한민국을 ‘긍정’ 혹은 ‘부정’할 수 있다는, 그런 이분법이 가능하다는 사고방식이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국가는 도무지 그런 물건이 아니다. 민주공화국이란 무대일 따름이다. 우리가 사는 나라를 ‘민주’‘공화’국이 되게 하는 것은 헌법 조항도 아니고, 국가기구도 아니다. 그것은 공화국 시민이다. 인민 대중이다. 투표 행위로 나타나기도 하고 개인적 항의로 나타나기도 하며 대중운동으로 나타나기도 하는 그들의 권력 행사다. 이러한 민중의 권력이 국가 안에 새겨지고 그래서 국가의 이곳저곳에서 지배 세력의 권력과 끊임없이 맞설 때 우리들의 나라는 ‘민주’‘공화’국이 된다. 국가는 투쟁이자 타협이고 세력관계다.
 
이렇게 본다면, 민주공화국의 긍정에 뒤따라야 할 것은 대한민국의 긍정이 아니라 그 권력의 최종 근거인 대한민국 시민(인민)의 힘의 긍정이다. 뉴라이트 기관지에 “대한민국을 긍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발표할 일이 아니라 2008년 늦봄과 초여름 거리에 메아리친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노래에 목소리를 더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신은 뜻밖에도 대한민국 헌법 전문(前文)에 훌륭히 표현돼 있다. 헌법 전문은 명확한 개념들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추상적 개념들보다 오히려 더 가슴에 와 닿는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들로써 인민 주권의 심오한 의미를 잘 전달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대한민국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는 문장이다.
 
어떤 이들은 여기에서 ‘법통’이라는 고색창연한 말부터 주목할지 모르지만, 이 문장을 꿰뚫는 기본 정신은 그런 제한된 상상력을 뛰어넘는다. 두 사건 모두 그 당시의 현실 국가에 맞선 대중 봉기였다. 3‧1 운동 당시 국제법으로 인정받던 한반도 내 합법 정부는, 우리는 인정할 수 없지만, 일본 정부 기관(조선 총독부)이었다. 3‧1 운동은 이에 맞선 혁명적 봉기였다. 4‧19는 또 어떠한가? 당시의 이승만 정부, 제1공화국 체제에 맞선 대중 혁명이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의 역설에 맞부딪힌다. 대한민국이라는 한 국가의 헌법이 이 나라의 역사적 뿌리로 제시하는 사건들은 그 당시의 국가에 맞선 대중 운동들이었다는 것. 철학자 김상봉 교수는 이를 “‘불완전한 국가’를 국민 주권의 힘으로 끊임없이 부정하고 극복”하려 한 사건들이라 정의한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의 참된 헌법 정신”이라고 단언한다(2008. 8. 18. 참여사회연구소 등 공동 주최 토론회 “대한민국사의 재인식: 48년 체제와 민주공화국”에서). 필자는 이것이야말로 좌파가, 혹은 모든 민주파가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근본 관점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게 만드는 것은 당대의 국가(4월 혁명 당시에 그것은 분명 대한민국 정부였다)를 부정하고 극복하는 대중의 힘이라는 것, 민주공화국의 참된 긍정은 그 현존 형태를 부정하는 힘을 긍정하는 데 있다는 것 ― 이것은 확실히 하나의 역설이다. 대한민국의 검인정 교과서가 가르쳐주는 명제도 아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역사는 대중들이 스스로 이 역설을 깨쳐가는 과정에 다름 아니었다. 광주 항쟁, 6월 항쟁, 노동자 대투쟁 등이 그 과정의 중요한 계기들, 즉 또 다른 헌법적 사건들이었다.
 
지금까지 그래왔다면,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 현존 국가의 불완전성을 부정하고 극복하는 대중 행동이 보장받고 적극 행사되어야 한다. 즉, 시민(인민)의 제헌적 권력을 이 나라의 미래 역사에서도 끊임없이 되불러내야 한다. 이것은 “이제 좌파는 대한민국을 긍정해야 한다”는 언명으로는 도저히 감싸 안을 수 없는 역동적인 진실이다.
 
우리가 민주공화국을 사랑하면서도 대한민국 긍정론에 무작정 따를 수 없는 이유는 이것만이 아니다. 앞 장에서 지적한 것처럼, 모든 국가는 전 지구적인 권력 사슬로부터 규정받는다. 대한민국도 그렇다. 대한민국의 탄생은 2차 대전 후 미국 헤게모니의 등장 그리고 그것과 소련 사이의 대립 없이는 결코 생각할 수 없다. 과거 한반도에 등장했던 그 어떤 국가의 영토 구성과도 다른 두 국가(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가 등장한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것밖에 없다. 이 점에서 대한민국의 탄생과 이후 성장은 다른 어느 국가보다도 더 강력하게 세계 질서로부터 규정받았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두 분단국가의 등장이야말로 여운형이나 김규식 같은 사람이 가장 피하고자 한 역사의 전개 방향이었다. 주대환이 자신의 이념적 뿌리로 드는 여운형에게 대한민국은 오히려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국가’였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것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둘 다 양대 진영의 피후견 국가였고, 따라서 그 탄생 신화는 결코 남에게 내세울만한 게 못 된다.
  
다행히도 이러한 기원이 이후의 역사를 홀로 결정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는 달리 대한민국은 그래도 ‘민주’‘공화’국됨에 어느 정도 충실한 궤적을 보였다. 위에서 이미 지적한 것처럼, 역설적으로 현존 국가에 대한 대중적 부정이 반복적으로 분출한 덕분에 이렇게 될 수 있었다. 반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는 이러한 부정이 없었다 ― 적어도 아직까지는.
 
허나 그렇다고 해서 대한민국이 이제 한반도에 가장 적합한 국가 형태로서 절대적인 안정성을 확보했다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대한민국 60년 역사의 가장 강력한 배경 역할을 한 미국 헤게모니가 지금 흔들리고 있다. 2008년 가을의 금융 위기는 그 결정적 신호탄이다. 이 위기와 혼란 속에서 어떠한 새로운 세계 질서가 그 모습을 드러낼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어쨌든 전환의 시대가 이미 시작된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것은 미국 헤게모니와 운명을 함께 한 대한민국 60년 역사에 닥친 가장 심원한 단절의 계기일지 모른다.
 
과거에 남한 좌파는 남북이 하나의 민족국가로 통일돼야만 한반도에 ‘정상 국가’가 등장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故) 박현채 선생은 굳이 남한 국민경제와 구분되는 ‘민족 경제’라는 경제 단위를 설정하기까지 했다(박현채, 1989). 즉,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구성이 불안정하며 모순적이라고 보고 이를 넘어서는 새로운 국가 구성을 상상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것을 단지 대한민국을 ‘부정’한 것으로 이해하거나 규정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 논리이자 흑백 이분법이다.
     
물론 한반도에 하나의 민족국가를 구성하는 것(통일)이 과연 최종 해결책일 수 있을지는 이제 의심의 대상이다. 앞으로는 남북의 통일도 아시아 차원의 보다 폭넓은 통합 과정의 일부가 되어야만 적극적인 의미를 지닐 수 있는 것 아닌가 싶다. 하지만 어쨌든 지금의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구성 자체가 무슨 절대적인 것은 아니며 뭔가 새로운 정치 구성체들(한반도 연방이든 아시아 연합이든)이 다층적으로 등장해야 한다는 점만은 분명하다(박순성, 2007; 구갑우, 2007; 진보정치연구소, 2007).
   
이 대목에서도 우리는 어떤 역설과 만나게 된다. 오늘날 세계사의 거대한 전환기에 대한민국은 ‘자기 변신하는’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 즉, 대한민국은 대한민국 아닌 것을 지향해야 한다. 탈남한의 연방, 탈한반도의 지역 통합을 상상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시점에 남한 진보 세력 일각에서 난데없는 대한민국 긍정론이 등장한 것이다. 이것보다 더 퇴행적인, 시대와의 어긋남을 상상할 수 있을까? 하필 봄기운이 완연해질 무렵 두꺼운 겨울 외투를 찾는 기행(奇行)이 유독 분단 체제의 저 북쪽만의 현상은 아니라는 증거인 셈인가?
 
4. 민주공화국을 위해 대한민국을 넘어서자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정리해보면 이렇다. 남한 진보파 일각에는 민주공화국을 긍정한다면 대한민국을 긍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하지만 이에 반해 필자처럼, 민주공화국을 긍정하기 위해서도 끊임없이 대한민국을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좌파도 있다.
 
전자 입장에서 자신의 역사적 뿌리로 여운형, 조봉암을 들곤 하는데, 필자는 오히려 후자의 시각에서 보아야만 이들의 진면목을 제대로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운형이 누구인가? 단적으로 말하면, 대한민국이 등장하는 것을 최대한 막아보려 한 사람이었다(마찬가지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등장 역시). 대한민국과는 다른 영토와 인민으로 구성되며 또한 상이한 국제적 맥락에 놓인 민주공화국을 건설하려 한 사람이었다. ‘여운형’이 상징하는 것은 한반도에 대한민국과는 다른 민주공화국이 출현할 수 있었던 소실된 가능성에 대한 안타까움이자 되살아나는 희망이다.
 
조봉암은 또 어떤가? 1956년 대통령 선거에서 조봉암이 내세웠던 핵심 공약 중 하나는 ‘평화 통일’이었다. 전쟁이 끝난 지 불과 3년밖에 안 된 당시에 북진 통일도 아닌 평화 통일이란 곧 제헌 과정을 새로 시작하자는 것, 국가를 새로 구성하자는 이야기였다. 이승만 세력이 여기에서 공산주의 선전 선동보다 더 불온한 냄새를 맡은 것은 어쩌면 과잉 반응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것은 분명 이승만의 국가 건설 노선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주장이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조봉암’이 상징하는 것 역시 또 다른 민주공화국의 불발된 가능성에 대한 추념이다.
   
그렇다면 여운형, 조봉암의 정신에 충실한 진보 좌파가 할 일은 대한민국 60년 역사에서 자기 정체성을 발견하는 것일 수 없다. 우리가 아낌없는 사랑을 바쳐야 할 것은 지난 60년의 역사가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공화국’이다. 이 미래의 민주공화국에 대한 열망만이 현실의 대한민국을 조금이라도 앞으로 이끄는 힘이 될 수 있다.
 
미래의 민주공화국이라? 너무 막연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미 위에서 우리는 그 최소한의, 가장 밑바탕이 되는 근거들을 살펴본 바 있다. 그 첫째는 현실의 국가를 부정하고 극복하는 가운데 더 나은 정치적 구성체를 만들어내는 제헌적 힘을 지닌 대중이다. 추상적으로 표현하면, 인민 주권이다. 촛불 운동은 이것을 대중 스스로 재발견하는 출발점 역할을 해주었다. 하지만 아직 출발점 수준일 뿐이다. 비정규직 문제 등 현대 자본주의의 모순들에 도전하는 대중운동 과정에서 이 힘은 더욱 거대하고 심원하게 증폭될 것이며 또 그래야만 한다.
 
두 번째는 지금 현재의 국가 구성은 상대적인 것에 불과하며 인민 주권의 보다 효과적인 실현을 위해 그것은 끊임없이 변경될 수 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다시 반복하지만, 우리는 지금 세계사의 대전환기에 들어서고 있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낳았던 한 시대가 이제 완전히 저물어가고 있다. ‘국가 만들기’를 놓고 이승만, 김일성의 정치와 여운형, 김규식의 정치가 경합하던 신화의 시대가 다시 동터오고 있는지 모른다(장석준, 2006). 이 시대의 진보 좌파라면 이러한 새로운 혼란 혹은 가능성의 시대를 예비하는 정도의 안목과 예지, 깊이는 갖춰야 하지 않을까?
 
지금의 대한민국을 낳은 제헌의회에서 조봉암은 이승만의 대통령제 주장에 반대해 내각책임제를 주장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뿐 아니라 그는 헌법 조문을 심의하면서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와 ‘국민’이라는 용어에 대해 다음과 같은 발언을 남겼다.
 
“총강에 특징적으로 주목을 끄는 것은 ‘대한민국’이라는 국호 표시와 인민을 일률적으로 ‘국민’이라는 어구로 표시된 점입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 했는데 소위 민주공화국에 대한(大韓)이란 대(大) 자는 아랑 곳 없습니다. 한(韓)이란 말이 꼭 필요하다면 ‘한국’도 좋고 우리말로 ‘한나라’라고 해도 좋을 것을 큰 대자를 넣은 것은 봉건적 자존비타심의 발로이요 본질적으로는 사대주의 사상의 표현인 것뿐입니다. (중략) 그 다음 ‘주권은 국민에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발한다’ 하여 세계 공통의 ‘인민’이라는 말을 기피했습니다. 지금 세계의 많은 나라 헌법에서는 모두 인민이라고 합니다. 미국에서도 ‘피플’이라 표시했고 ‘네숀’이라고 아니하며 불국에서도 ‘퍼퍼’라 하며 소련에서도 ‘나로드’라 해서 모두 인민으로 되어 있습니다. 최근에 공산당 측에서 인민이란 문구를 잘 쓴다고 해서 일부러 인민이란 정당히 써야 될 문구를 쓰기를 기피하는 것은 대단히 섭섭한 일입니다. 이 헌법 초안의 불비와 보수성은 이러한 불필요한 완고하고 고루한 생각에서 퍼져 나오기 때문에 소위 입법자의 태도로는 용허할 수 없는 편견입니다.”(조봉암, 1999)
 
민주공화국에 ‘대한(大韓)’은 어림도 없고 ‘국민’이 아니라 ‘인민’이 합당하다는 이 한 마디. 어찌 보면 용어 문제를 시시콜콜 트집 잡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 근저에는 현실의 국가(이미 이승만이 건국을 주도하던 그 국가)를 조금이라도 민주공화국의 보편적 이상에 가까이 다가가게 만들려는 선각자의 혜안과 열정이 꿈틀대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러한 ‘근본성’이며, 그것이 한 선각자의 몸짓 정도가 아니라 거대한 대중의 움직임으로 환생하는 새로운 제헌적 과정(좁은 법학적 차원이 아니라 민주공화국의 기틀 놓기라는 차원에서)의 시작이다.
 
<참고문헌>
구갑우. 2007. 『비판적 평화연구와 한반도』, 후마니타스.
박순성. 2007. “한반도 분단과 대한민국.” 참여사회연구소 엮음, 『다시 대한민국을 묻는다』, 한울.
박현채. 1989. 『민족경제론의 기초이론』, 돌베개.
장석준. 2008. “진보 좌파의 민주주의, 그 성찰과 전망.” 『기억과 전망』 제18호.
______. 2007. “21세기의 현실 대안 - 사회주의.” 참여사회연구소 엮음, 『다시 대한민국을 묻는다』, 한울. 
______. 2006. “한국현대사의 ‘잃어버린 리더십’ - 여운형 ․ 김규식을 중심으로.” 『미래공방』 제1호. 
조봉암. 1999. 『죽산 조봉암 전집 Ⅰ』, 정영태 외 엮음, 세명서관.
주대환. 2008. “민주노동당의 분당 사태와 좌파의 진로.” 『시대정신』 제39호.
진보정치연구소. 2007. 『사회 국가 - 한국 사회 재설계도』, 후마니타스.
Cox, R. 1996. Approaches to World Order, Cambridge University Press.
Gill, S.(ed). 1993. Gramsci, Historical Materialism and International Relations, Cambridge University Press.
Poulantzas, N. 1978. State, Power, Socialism, New Left Books. (국역: 박병영 옮김, 『국가, 권력, 사회주의』, 백의,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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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8 05:49 2008/12/18 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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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네트워크 1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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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진보네트워크센터 10주년 기념 후원주점에 참석했다. 그날은 이랜드일반노조가 510일간의 점거농성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행한 금요투쟁문화제가 상암에서 있었기에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9시무렵까지 문화제에서 함께 하고 그 이후에는 진보넷 주점으로 가기로 했다.
 
진보넷 활동가들은 아는 이들이 꽤 있었지만, 후원주점에 도착하니 제대로 아는 이들이 눈에 띄지 않았다. 물론 진보신당과 관련된 이들(과거 민주노동당 노동조합에서 활동했던 이들)을 중심으로 모여있는 테이블이 있었지만, 여기까지 와서 거기에 합석하는 게 좀 거시기했다. 그래서 찾다 보니 운수노동정책연구소, 사회공공연구소에서 활동하는 이들과 자리를 함께하였고, 그게 길게 이어졌다.
 
내가 회원이라서가 아니라 진보넷의 발전이 이 땅의 진보운동의 발전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우리들의 소통통로가 없다면 이 세상을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늦었지만 진보네트워크 10주년을 축하한다, 아니 자축한다. 이런 말 하면 또 홍킹이 참세상에 글쓰라고 뭐라고 하지 않을까 염려된다. 백서에 실린 축사로 대신하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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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10주년, 아니면 이제 10주년?
                                                                                                             새벽길(진보네트워크 회원, 진보블로거)

나에게 진보네트워크센터 10년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진보넷 이전에 있었던 참세상BBS는 당시 공무원시험준비를 하던 나에게 세상과 연결이 되는 통로였고, 참세상을 이어받아서 진보네트워크가 생겨났을 때에도 이를 당연히 받아들였다. 지금 내가 쓰는 블로그이름 또한 지금은 ‘진보공동체’ 내에서 겨울잠을 자고 있는 민중가요모임에서 따온 것이기에 진보네트워크센터의 출범이 뭔가 새로운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대안사회, 대안권력을 이야기하면서도 효율성 또는 대중과의 소통의 편이, 즉각적인 필요 등을 이유로 우리 스스로의 대안을 차근차근 만들어가려하기보다는 자본과 권력이 만들어놓은 틀에 안주하려 했다. 과거 인터넷 이전시기에는 하이텔과 나우누리, 천리안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지금은 네이버와 다음과 같은 포털에 갇혀 있다. 그래서 탄압과 통제가 가해지면 어쩔 수 없이 물러서고 만다. 우리 운동이 지체하고 있는 이유도 따져보면 그러한 근시안적인 접근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하기에 진보네트워크센터가 해왔던 것과, 하고 있는 것, 하려는 것을 생각하면 그 존재를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넘어갈 수 없다. 진보네트워크센터가 감당해왔던 여러 가지 압력과 부담들은 우리 모두가 짊어져야 할 몫인 것이다. 이런 글을 쓰는 것도 10주년을 맞이하는 진보네트워크센터를 축하하는 의미도 있겠지만, 그간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지 못한 데 대한 미안함과 아쉬움도 작용하였다.
 
미국발 금융위기를 맞이하여 신자유주의의 몰락 또는 자본주의의 종말 등을 얘기하는 논의들이 있다. 헌데, 신자유주의가 망했다고, 자본주의가 종식되었다고 그 대안사회가 올 수 있는가.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에 대한 준비를 하지 않는다면 착취와 야만이 시대는 다른 이름으로 계속될 것이다. 그러하기에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하여, 우리가 꿈꾸는 대안사회의 맹아를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만들어나가야 한다. 10년을 맞이한 진보네트워크센터가 진보운동들간의, 그리고 대중과의 접점과 소통의 간극을 좁히고, 정보화에 있어서 대안의 상을 구체화해나가는 그런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 
 



총파업통신지원단에서 정보인권 지키기로 10년 (참세상, 김용욱 기자, 2008년11월16일 23시23분)
10주년 맞은 진보네트워크센터
 
지난 11월 14일 정보인권 단체인 진보네트워크센터(진보넷)는 10주년 기념식을 했다. MB의 인터넷 통제 3대 악법에 맞서 분주한 가운데서도 다른 10년을 준비하기 위한 기념식이었다. 진보넷은 이번 10주년을 맞아 ‘자유와 공유의 연대기’라는 10년 백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진보넷 10주년 홍보물에는 “파업을 하면 서버를 지키며 함께 밤을 샜습니다. 정부의 게시물 삭제 요구에 당당히 거부해 왔습니다.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인 네트워크“라는 문구가 인상 깊다. 밤을 새며 지켜왔던 독립네트워크 10년을 돌아본다.
 
총파업통신지원단, 그리고 진보네트워크센터
96년 12월,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 통과에 맞선 민주노총의 총파업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인터넷 언론이 없던 시기. 보수언론은 노동자들의 거대한 투쟁을 철저히 왜곡 보도했지만 진실을 알리는 통로는 거의 없었다. 2008년 촛불에 대한 공중파와 보수 언론의 보도에 촛불 시민이 느끼는 것보다 더 큰 왜곡과 무관심이 있었다. 소위 진보적인 언론은 거의 전무 했던 시절이라 왜곡보도에 대한 목마름은 더욱 컸다.
 
그래서 당시 정보통신에 관심이 있던 사람들 몇이 뭉쳤다. 이들은 우연히 피시통신 상에서 서로 채팅을 하다 통신지원 활동을 해보자고 했다. 몇몇 단체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던 통신연대를 중심으로 정보통신운동 활동가와 관심있는 시민이 뭉쳤다. ‘노동악법·안기부법 전면 철회를 위한 총파업통신지원단’은 그렇게 생겨났다. 그리고 통신지원단은 주류 언론이 담지 않는 소식을 각 피시통신에 알려냈다.
 
통신지원단은 총파업 속보를 각 통신망의 플라자(자유게시판)에 전달하는 역할에서 부터 매일 속보를 정리해 뉴스레터를 발송했다. 홈페이지도 만들고 영문 뉴스레터와 영문 홈페이지도 제작했다. 영문 홈페이지는 수많은 국제 연대의 성과를 일구었다. 당시 해외에서 국내 총파업 소식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통로가 통신지원단 영문 홈페이지가 되었다. 해외 노동 단체들은 통신지원단의 영문 뉴스를 읽고 한국대사관 앞에서 지지 집회를 하기도 했고 연대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다 통신지원단 내에서 현장에 나가 누군가 속보를 올려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8년 촛불 시민처럼 자원 활동가들이 모였고 실제 파업현장에 나가 속보를 올렸다. 주류 언론의 기사처럼 정제되지는 않았지만 노동자의 목소리가 담긴 생생한 뉴스가 통신망을 타고 퍼졌다. 그해 총파업통신지원단은 언론노조로부터 민주언론상을 받았다. 아직 인터넷이 대중적으로 보급되기 전 통신공간에서 지금의 시민기자단 같은 활동으로 인정받았던 것이다. 10년 전 진보네트워크센터의 모티브는 이렇게 시작했다.
 
오병일 진보넷 활동가는 “이렇게 통신지원단의 성과는 97년 말 노동미디어 행사로 이어졌고 미국, 영국 등의 노동넷 활동가들이 오면서 한국에서도 노동넷 같은걸 만들어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진보넷 설립의 계기를 설명했다. 그러던 중 당시 피시 통신 참세상을 운영하던 김 모씨가 통신연대 활동가들에게 피시통신 참세상을 기증할 테니 진보네트워크를 만들자는 제안을 하고 98년 2월부터 그 제안을 받아 설립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나 설립 준비는 만만치 않았다. 그냥 단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피시통신 참세상이라는 네트워크 상에 여러 사회단체들이 들어와야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식인 연대 활동을 하시던 고 김진균 선생께서 적극적으로 나섰다. 98년 4월부터 본격적으로 준비모임을 갖고 2-3개월 동안 각 단체 운영위 등을 찾아가 독립네트워크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사회 전반적으로 정보화 열풍이 불던 때라 많은 단체들이 취지는 공감하지만 독립네트워크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감이 없었다. 대부분 단체들이 나우누리나, 천리안 같은 상업 피시 통신망에 CUG(폐쇄이용자그룹/ 현재의 인터넷 카페와 같은)를 가지고 있던 상태였다. 단체들은 진보넷이 시스템의 안정성과 서비스의 질을 보장해 줄 수 있는가라는 의구심을 주로 보냈다고 한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98년 11월 14일 진보네트워크센터를 설립했다.
 
설립당시 진보넷은 피시통신 참세상을 기반으로 동호회 개설, 이용자 가입처리, 정보변경, 게시판 개설의 운영에 많이 매달렸다. 주로 통신 서비스사업이 활동의 주를 이뤘다. 당시 참세상 이용료가 3,300원 이었고 총 이용자 700여 명 중 유료이용자는 300여 명이었다.
 
초기에는 네트워크로 사람을 모이게 하는 것이 중요한 사업이었다. 99년 초 민주노총이 CUG를 나우누리에서 피시통신 참세상으로 옮기면서 99년 말에 이용자가 2천 명 수준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2000년을 전후로 나우누리, 하이텔 등 피시 통신에서 다음이나 프리챌 같은 인터넷으로 전환이 시작된다. 초고속 인터넷 망의 급속확산으로 인터넷이 보편화되자 피시통신은 사양길로 접어든다. 진보넷도 2000년 11월 14일 피시통신에서 웹 기반으로 넘어가게 된다. 지금의 www.jinbo.net(진보넷 메인 홈페이지)은 이때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2004년 진보포털 전략, 열악한 재정과 빠른 인터넷 환경 변화, 그리고 독립네트워크
진보넷은 2004년 본격적으로 진보 포털 전략을 세운다. 그러나 오병일 활동가는 진보 포털 전략이 절반의 성공만 거뒀다고 말했다. 그 이전까지는 진보넷으로 사람들을 모으기 보다는 기본적인 서비스와 진보진영의 보안, 인터넷 검열 문제 등에 집중했다.
 
“포털처럼 사람들이 모여 담론이 형성 되는 지점이 있다. 우리가 그런 광장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을 놓쳐 왔다. 그때 진보 포털 전략을 세웠다. 당시 웹 메일과 개인이 쓸 수 있는 메신저 등을 기본으로 제공하고, 사회운동 정보가 특화된 검색서비스를 계획했다. 또한 미디어 참세상으로 뉴스.영상 콘텐츠 전략을 세웠다. 이 세 가지 축으로 계획 했으나 절반의 성공이었다”
 
절반만 성공인 이유는 뭘까. 우선 검색 같은 경우 많은 자본이 필요한 사업이었다. 작은 검색을 하는데도 검색 엔진이 수 천 만원이 필요해 무산됐고 메신저 역시 개발하다 포기했다. 결국 그 전략에서 남은 것은 진보블로그다. 진보포털 전략은 2005년 블로그를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 전략으로 바꾸는 것으로 결론 났다.
 
“지금 평가 해보면 우리가 어떤 기획을 세상의 변화에 맞게 바꾸면서 방향은 나름 잘 세웠는데 그걸 뒷받침할 기술적·재정적 역량의 한계가 있었다. 돈이 없어 자체 기술로 개발하는데 2-3년 걸리면서 고생은 고생대로 했지만 많은 성과를 남기지는 못했다.”
 
많은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고 하지만 진보넷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역할을 했다. 진보넷 메일링리스트와 웹메일, 호스팅 등의 진보적인 공동체 역시 무시할 수 없는 기술적 성과다. 특히 수사기관의 무분별한 정보 제공 요청에 진보넷은 협조하지 않는다. 2002년 발전 파업때는 서버 압수수색에 맞서 막아내기도 하고 수배된 노동자들이 포털 싸이트의 이메일 접속시 위치가 파악되는 것과는 별개로 진보넷 메일은 경찰 수사에 자의적으로 협조하지 않음으로써 안전했다. 진보운동에서 진보넷의 기술력은 자본의 기술력에 비해 인력과 재정의 한계로 많이 부족했지만 그 역할을 인정받기도 했다.
 
정보인권 지키기 10년, 새로운 10년을 위한 고민중
진보넷은 초기 사회운동 단체들의 정보화에 대한 교육과 서비스 업무를 주로 하면서 활동가들은 자기 정체성에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주로 하는 일이 전화 받고, 서비스를 개설하거나 이용자의 문의를 해결해주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많은 단체들과 활동가들 역시 상당부분 진보넷을 서비스 업체로 인식 하곤 했다. 2000년에 진보넷은 운동단체로의 성격강화를 위해 정책국을 신설하고 본격적인 검열, 통제에 맞서 싸우기 시작한다. 또한 다른 축으로는 미디어 운동의 한 진지로서의 역할도 해나간다.
 
미디어 운동은 참세상 방송국을 통해 시작된다. 2001년 4월 10일 대우자동차 구조조정 저지에 나선 노동자들이 경찰 기동대의 방패와 군홧발에 처참하게 짓밟힌다. 이날 경찰의 폭력 행위는 언론의 무관심으로 묻힐 뻔 했다. 그러나 진보넷 참세상 방송국이 함께 했던 ‘2001 대우차 총파업 투쟁 영상중계단’(http://dwtubon.nodong.net)은 이 영상을 찍었고 동영상은 삽시간에 퍼졌다. 단지 글과 사진으로 다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잔인했던 경찰 폭력은 김대중 정부의 성격을 생생하게 드러냈다. 이 사건은 독립적인 미디어 활동이 새로운 미디어인 인터넷과 결합하면서 미디어 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보여주었다. 96년 총파업 통신지원단처럼 노동자 민중의 소식을 전하고 정권의 폭력성을 폭로하는 역할은 이렇게 진보넷이 가진 미디어 운동적 성격으로 이어졌다.
 
진보넷은 그리고 2002년을 거치면서 다시 기술적으로도 노동 사회운동진영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많은 단체와 노동조합의 서버를 호스팅 하면서 노동자 파업시 진보넷이라는 독립네트워크의 장점이 나타난 것이다. 경찰의 무분별한 정보제공 요구와 게시물 삭제요구에 맞서 싸우며 노동자들의 정당한 목소리가 네트워크상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싸웠다.
 
정보운동과 독립네트워크, 새로운 10년을 위해
독립네트워크 10년, 그리고 수많은 정보인권 이슈에 맞서 싸웠던 10년이지만 진보넷은 앞으로에 대한 고민이 더욱 크다. 이미 2004년 진보포털 전략이 절반의 실패였다는 것은 독립네트워크 전략의 절반의 실패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2008년 촛불 집회당시 많은 네티즌들이 자본이 만든 네트워크에서 민주주의의 광장을 만들었지만 상대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진보넷은 조용했다. 논쟁과 소통을 얘기한 진보넷이라는 독립적 공간에서 대중적 접점이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촛불로 인해 역설적으로 독립네트워크의 필요성이 절실하기도 하다. “오히려 지금은 아고라에 있던 사람들이 독립 네트워크가 필요하다고 나오는 시점이다. 그래서 한토마나 민주주의 2.0등 검열로부터 자유로운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거기서 진보넷은 대안으로 인식이 안 되고 있다” 아직 대안으로 인식이 안 되는 진보넷의 고민은 앞으로 새로운 10년에 어떻게 담아 낼 수 있을지 궁금하다. “좀 더 대중적인 네트워크가 되겠다라고 한다면 거기에 맞는 조직체계, 재정, 기술력도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운영시스템 자체가 달라진다. 네트워크가 커질수록 독립성이 약화 될 수도 있다. 반면 대중적인 네트워크가 아니라 다른 문화를 가진 운동사회 소통을 위한 독립적인 네트워크로 남겠다 이런 설정을 할 수도 있다.”
 
일단 진보넷은 지금 하고 있는 촛불과 관련한 인터넷 통제 법안 대응에 총력을 집중하고 있다. 오병일 활동가는 “내년 총회에서 단순히 2009년 계획이 아니라 향후 몇 년을 바라보고 장기적으로 활동과 조직의 전망 잡아 가겠다”면서 “현재 상황에서 진보넷의 역할과 필요한 부분 등을 고민하고 미디어, 서비스, 정책 등의 구분도 평가할 필요가 있다. 또한 재정구조, 활동가 충원, 재생산 문제 등을 어떻게 풀어갈지도 고민”이라고 밝혔다. 모든 전망을 열어 놓고 다 뒤집어서 평가하며 새로운 10년을 준비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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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8 00:15 2008/11/18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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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도 50일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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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쓸데없는 프로젝트를 한다고 블로그 글마저 쓰지 않았다. 사실 그 용역을 준 곳이 내 자신의 지향과 맞지 않는 곳이라 단지 돈만 보고 했을 뿐 연구수행이 실적으로 남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아니 추후에 social position에 금이 갈까봐 일부러 이름을 빼줄 것을 요청하였다. 하지만 용역을 하다보니 내가 맡아서 하는 주제가 미개척분야인데다가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열심히 하게 되었다.
 
거의 10여일동안 격일로 연구실에서 밤을 샜다. 집에 있는 컴퓨터의 인터넷을 끊었기 때문에 집에서는 인터넷을 사용하는 작업을 할 수 없어서이다. 사실 집에서는 잘 집중이 안된다. 그렇다고 이 용역을 그렇게 제대로 할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이긴 하다.
 
아무튼 연구실 자리에는 읽고나서 나중에 블로그나 카페에 옮겨둬야지 싶은 기사들이 실린 신문들이 쌓여 있고, 10여일 동안 책도 제대로 읽지 못했다. 당연히 블로그 글쓰기도 띠엄띠엄해졌다. 진보블로그 뿐만 아니라 티스토리에 있는 펌블로그나 행정학카페에도 글을 올리지 않았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은 하루하루의 생활을 되짚어보면서 좀더 나은 하루를 살기 위함인데, 쓸데없는 용역을 핑계로 리듬이 흐트러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 함께 일하는 교수와 용역 관련 문제로 길게 통화를 하다가 일이 또 늘어나게 되었음을 알고 약간은 속이 상했다. 대충하면 되련만 내 성격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이런 것도 고쳐야 할지 심각히 생각해봐야겠다.
 
올해도 50일이 채 남지 않았다. 올해는 정말 한 것이 거의 없다. 뭘 하고 보냈는지... 남은 50일이라도 잘 보내야 할 텐데... 그래야 내년에는 뭔가 변화가 가능할 것이기에 그러하다.
 
일의 경중을 살피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뭘 제대로 하는 것도 좋지만, 그걸 핑계로 지금 당장 급한 것들을 미루어서는 안된다.
 
글을 쓰려고 하니 머리 속에 생각나는 게 너무 많아서 정리가 안된다. 이렇게 닥치는대로 하지 않기로 했는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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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2 00:09 2008/11/12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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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민중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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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 전태일 열사에 대해 많이 듣게 된다.
예전에는 전태일 열사의 기일을 기리는 노동자대회 때가 기다려지고 그랬는데...
요즘은 삶이 팍팍해서인지 일정조차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게 된다.
 
이번 노동자대회 때 민지네 벗들의 얼굴을 봤으면 한다는 모님의 문자가 어제 왔다. 하긴 이젠 노동자대회에 가더라도 어느 깃발 아래 서야 할지 잘 모르는 처지가 되었다. 전에는 소속이 있었어도 깃발 아래 있지 않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곤 했었는데, 정작 소속이 없으니 좀 거시기하다.
 
한겨레신문에 전태일 열사를 다룬 기사가 크게 나고, 인터넷 신문들에서도 전태일 열사가 지금 시기 우리에게 주는 의미에 대해 얘기하는 글들이 올라온다.
진보신당 홈페이지에 갔더니 조혜원님이 인터넷을 아무리 돌아다녔는데도 [전태일, 민중의 나라]의 음원을 구하지 못하고 우연히 구한 피아노 반주에 자신이 노래를 부른 버전을 게시판에 올라놓았다. 노래를 잘 부르는 걸 알고 있는데, 이번 노래는 약간 떨린다. 내가 당원이었으면 파일을 주겠다고 하련만...
 
[전태일, 민중의 나라]는 김정환 시인이 가사를 쓰고, 당시 대학생통일노래한마당에서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이라는 노래로 대학가를 휩쓸었던 변계원 님이 곡을 붙였다. 그럴싸한 전태일추모가가 없던 차에 [전태일, 민중의 나라]는 대안가요로서 나름 훌륭했던 듯 싶다. 그것도 벌써 15년 정도가 되어 간다. 아래 곡은 메아리가 1992년 신입생 환영제에서 부른 것이다.  
 

 

 

메아리 - 전태일, 민중의 나라
 
너의 죽음으로 더욱 아름다워진
저 푸른 하늘을 보아라 가슴 벅찬 세상보아라
너의 불타는 넋이 누리에 살아 숨쉬니
역사의 새 장을 열고서 그 날을 맞이 하리라
이제는 너의 이름 말하라 순결한 민중의 나라
온세상 산천초목 짓푸른 투쟁과 노동의 깃발
끝없이 끝없이 높이 솟아 맞이하리라 민중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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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06 15:24 2008/11/06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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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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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지음/문학동네/2007.
 
김연수의 이 장편소설을 도서관에서 대출받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항상 누군가 대출중인 상태였다. 그래서 오히려 구미를 돋구었던 소설책이었다. 지금 다시 누군가가 대출예약을 했기에 그를 배려해서라도 빨리 반납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책을 잡은 다음에는 출퇴근 시간에 시나브로 읽어나가려 했는데, 그게 쉽지 않더라. 하다보니 그냥 단숨에 읽어내려버렸다. 그 마지막은 조금은 허탈한...
 
작중화자인 나는 19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까지 벌어졌던 다양한 사건들의 중심부에 있다. 물론 그렇다고 그 사건들의 주인공은 아니며, 조금은 관조하는 듯한 시선을 보낸다. 여기에 정민, 이길용, 강시우 등과 그 주변사람들의 이야기가 보태져서 소설은 전세계를 커버하면서 20세기 전반을 다루는 것처럼 보인다.
 
이 책은 일종의 후일담 소설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이 소설에 나오는 사람들의 정서를 읽어내는 사람이 많이 있을까 의문을 제기한다면 과도한 걸까. 그래도 많이 회자되는 걸 보면 간접체험을 그럴싸하게 느끼는 이들이 꽤 되는 모양이다.
 
하지만 내가 여기에 완전하게 공감하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운동의 주변부에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정민과의 사랑에 대해서도 그렇고, 주인공의 베를린 파견도 그렇고... 방북을 위해 베를린에 예비대표로 파견되는 이 정도 되면 사상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을 텐데, 작중화자는 전혀 그렇지 않다. 내가 아는 한, 주인공은 감성은 깊은지 모르겠지만, 이성과 이념 등에 관한 한 단무지과여야 정상이다. 적어도 학생운동권 내의 좌우파의 특색은 분명히 구분이 되는 것이었는데, 주인공은 이 양자를 짬뽕하여 모두 가지고 있다. 그래서 소설이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소설 제목이 참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시의 한 구절이었다. 이 시는 표제시로 실려 있다.

 
기러기
                                    메리 올리버
착해지지 않아도 돼.
무릎으로 기어다니지 않아도 돼.
사막 건너 백 마일, 후회 따윈 없어.
몸속에 사는 부드러운 동물들,
사랑하는 것을 그냥 사랑하게 내버려두면 돼.
절망을 말해보렴, 너의. 그럼 나의 절망을 말할 테니.
그러면 세계는 굴러가는 거야.
그러면 태양과 비의 맑은 자갈들은
풍경을 가로질러 움직이는 거야.
대초원들과 깊은 숲들,
산들과 강들 너머까지.
그러면 기러기들, 맑고 푸른 공기 드높이,
다시 집으로 날아가는 거야.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너는 상상하는 대로 세계를 볼 수 있어.
기러기들, 너를 소리쳐 부르잖아, 꽥꽥거리며 달뜬 목소리로―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이 세상 모든 것들
그 한가운데라고.
 
Wild Geese 
                                 by Mary Oliver
You do not have to be good.
You do not have to walk on your knees
for a hundred miles through the desert repenting.
You only have to let the soft animal of your body
love what it loves.
Tell me about despair, yours, and I will tell you mine.
Meanwhile the world goes on.
Meanwhile the sun and the clear pebbles of the rain
are moving across the landscapes,
over the prairies and the deep trees,
the mountains and the rivers.
Meanwhile the wild geese, high in the clean blue air,
are heading home again.
Whoever you are, no matter how lonely,
the world offers itself to your imagination,
calls to you like the wild geese, harsh and exciting
over and over announcing your place
in the family of things.
 
나의 책 읽기는 항상 그렇듯이, 책 사이에서 쓸만한 문장찾기가 많다. 김연수의 이 소설에는 사람들이 그럭저럭 감동을 받을 문장들이 상당히 있다. 물론 나는 기억하려는 것은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고...
 
내가 그 또래였으면 전혀 생각하거나 말로 꺼내지 못했을 것들을 나이 어린 화자가 얘기하더라도 그냥 그러려니, 내가 그렇게 어린 것이려니 생각하니 편하다.

 
그 입체 누드사진은 현실보다도 더 생생한 환상을 그(섬에 고립되어 죽을 날만 기다리는 젊은 병사)에게 보여줬을 거라면서, 나는 고립된 사람들에게 현실이 한순간 뒤흔들리면서 그보다 더 생생한 환상이 나타나는 건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고 떠들어댔다. 제아무리 견고하다 해도 현실은 인간의 감각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것이므로.
모든 聖人들은 자발적으로 고립을 택해 ‘존재의 가장 어두운 밤’으로 들어가는데, 이는 현실이 오직 감각을 통해서만 드러난다는 사실을 깨닫기 위해서다. 하지만 ‘존재의 가장 어두운 밤’을 경험한 그 다음 순간, 모든 성인들은 감각적 현실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계인지 깨닫게 된다. 현실이 감각적으로만 성립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모든 게 덧없을 뿐이라는 허무주의에 빠져야 할 텐데, 아이로니컬하게도 더욱더 그 감각적인 생생함을 즐기게 되니 놀라운 일이다. 그러므로 그 밤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최상의 행복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42쪽)
 
→ 나는 이런 말을 하면서 다른 누군가를 꼬실 자신도, 능력도 없다.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것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술이 취해 불콰해진 얼굴로 여럿이 몰려가 창녀와 하룻밤 자는 일은 모두가 공유할 수 있었지만, 학생회 내부에서 연애하다가 생기는 성욕은 전적으로 개인적인 것이었다. 개인적인 모든 것은 전적으로 이해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그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욕망이기에, 그러니까 남들에게 드러낼 수 없는, 지극히 내밀한 욕망이기에, 나는 거기에서 단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었다. 이윽고 나는 그게 사창가에서 드러나는 욕망과 달리 나만의 사적인 욕망이기 때문에 덫과 같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엘레나가 된 순희를 향한 욕망은 연민의 감정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랑으로 포장됐으므로 도덕적이고 공적인 것이었다. 도덕적이고 공적이라는 말은 그런 욕망을 지닌 우리들이 그 욕망의 대상들보다 사회적 위치가 높다는 사실을 뜻했다. 실제로 도덕적으로 욕망할 때도 그랬지만, 도덕적으로 욕망한다고 생각할 때도 우리는 스스로 뭔가를 희생하고 있다고 믿었고, 뭔가를 희생하는 한, 우리는 스스로 그 욕망을 조절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 내게 느닷없이 특정한 대상을 향한, 그 어떤 희생의 기미도 보이지 않는 너무나 사적인 욕망이 자리잡았으므로 나는 당연하게도 그 욕망을 부도덕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명백히 부도덕한 모든 것들은 인간의 무의식을 점령하고 거기서 떠나지 않는다. (53-54쪽)
 
완전한 해방은 두려울 정도로 요염한 쾌감과 연결돼 있었다. 완전한 해방이란 사적인 쾌감과 관계된 것이므로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는 것이었다. (56쪽)
 
→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지만, 그게 과연 완전한 해방일까.
 
증오나 분노와 달리 사랑이 가리키는 것은 저마다 달랐다. 예컨대 광주학살을 명령한 사람이 가족을 아끼는 감정도 사랑이었고, 그 순간 정민의 몸을 껴안고 한없이 만지려고 드는 내 마음도 사랑이었다. 사랑은 그 모든 것이었다. 세상이 혼란스러워지는 까닭은 그 모든 것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때문이었다.
 
(정민의 말) “우주는 무한할 거야. 이 우주에 내가 누구인지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나 하나뿐이라면, 생각만 해도 추워. 무주에서 보내던 그해 겨울이 기억나. 얼마나 추웠는지 몰라. 그때 달달달 떨면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내가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것은 누군가 내게 말을 거는 일이었어. 그게 누구든, 나는 연결되고 싶었어. 다만 내게 말을 걸고, 또 내가 누구인지 얘기해줄 수 있는 사람이 이 우주에 한 명 정도는 더 있었으면 좋겠어. 그게 우주가 무한해야만 가능한 일이라면 나는 무한한 우주에서 살고 싶어. 그렇지 않으면 너무 추울 것 같아.” (68-69쪽)
 
개인들은 언제나 자기 자신으로부터 출발했다. 이데올로그들이 말하는 ‘순수한’ 개인으로부터가 아니라, 역사적 조건들과 관계들 내부에 있는 자신으로부터. 그렇다면 어디를 향해? 그 순간 내 몸으로 이해한바, 시작도 끝도 없는 우주공간 속으로, 그리고 외로움이 없는 해방 속으로. 그 공간은 너무나 행복하고 너무나 아름다워 다른 곳에 그와 같은 세상이 하나 더 존재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70쪽)
 
→ 여친과 그런 상황에 있다면 이렇게도 느낄 만 하겠네.
 
뉴스를 듣다보면 갑자기 세 번의 차임벨 소리가 울리는 순간이 있었는데, 정민은 그 순간을 가장 좋아했다. 세 번의 차임벨 소리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종류의 뉴스가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외신을 전한다거나 지방뉴스가 시작될 때면 어김없이 그 소리가 들렸다. 뭔가가 바뀐다는 것, 이윽고 다른 세계의 일들로 넘어간다는 것은 그처럼 반드시 차임벨 소리와 함께 이뤄져야만 할 것 같았다. …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그 온갖 얘기들이 말해주듯 인간의 삶 역시 항상 무슨 일인가가 벌어지고 있는 곳이었다. 그렇게 무슨 일인가 일어나는 순간, 삶은 예전의 삶과는 달라졌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늘 예전과 다른 곳에서 살아가는 유목민이나 다름없으므로 영원한 거처라는 건 있을 수 없었다. (83-84쪽)
 
습관이란 무의식중에 행하는 행동을 뜻한다. 폭력이 몸에 밴 사람은 폭력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리고 바로 그 ‘인식하지 못함’이 그가 속한 세계를 폭력적으로 만든다. 그런 세계에서는 제아무리 비폭력을 주장한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그들의 몸은 폭력보다 비폭력을 더 불편해한다. 그걸 가리켜 현실감각이라고 부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102쪽)
 
→ 우리가 대체복무에 동의하고, 군대폐지에 공감한다고 하더라도, 강의석이 국군의 날에 행한 군대 폐지를 위한 알몸 퍼포먼스에 대해 불편해하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물론 강의석이 지금까지 해왔던 행태 때문에 이를 쇼라고 보고, 그 진정성을 의심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걸 떠나서 생각해볼 때 그렇다는 거다.
 
신간서적의 한 구절. “반석 위에 집을 지어라. 그 반석이란 네가 스스로 말살시킨 고유의 천성이며, 자식에 대한 사랑이고, 아내의 사랑에 대한 꿈이며, 네가 열여섯 살 때 가졌던 인생에 대한 꿈이다. 너의 환상들을 약간의 진실과 바꾸어라. … 이웃은 잊어버리고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여라.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인데, 올바르게 생각하고 주의를 부드럽게 환기시키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인생은 자기 자신이 지배하는 것이다. 너의 인생을 다른 어느 누구에게도 맡기지 말라. 무엇보다도 네가 선출한 지도자에게는 맡기지 말라. 자기 자신이 되어라.”(123쪽)
 
→ 주인공은 자신을 구한 것이 “자기 자신이 되어라”라는 문장이었다고 하지만, 책 전반적으로 그의 인생을 자신이 지배하지는 못했던 듯하고, 자기 자신이 되지도 못했던 것 같다. 자기 자신이라는 것도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고, 바로 어느 정도는 다른 이와의 소통 속에서 생성되는 것이고, 계속 변화하는 것인데, 저자는 이를 간과하였다.
 
그도 발인할 무렵이면 내가 영안실에서 기식하는 사람, 그러니까 한때 영안실을 지키던 우리가 ‘밥풀떼기’라며 경찰에게 넘겨줬던 그 부랑자들에 가깝다는 걸 알게 될 것이었다. (134쪽)
 
→ 이 구절에서 순간 김소진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떠올렸다. 역시 ‘밥풀떼기’는 1991년 김귀정 열사가 사망했을 때 출현했던 거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 <투란도트>에 희망이 무엇이라고 나와 있었지?”
“밤이면 인간의 마음속에서 날개를 폈다가 해가 뜨면 사라지는 환상. 매일 밤 태어났다가 매일 아침 소멸하는 것.”
“결국 만지면 부서지는 나비의 날개 같은 것이지. 현실이 잔혹할 때, 희망이란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장난감 같은 거야. 그래서 나는 모든 희망을 버린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야. 희망과 함께 자신의 모든 과거를 부정하는 사람들을.” (167쪽)
 
내가 독일행을 결심하게 된 것은 프라하의 성녀 아네스에게 보낸, 성 글라라의 편지에 나오는 한 구절 때문이었다. “옷을 입은 사람은 붙잡힐 때에 있어서 더 빨리 땅에 내동댕이쳐지기 때문에 알몸인 사람과는 싸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 글귀처럼 나는 나의 나약함도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믿었을 뿐이었다. 뭔가를 위해 희생하는 일이라면 그 누구보다 더 잘해낼 자신이 있었다. (168쪽)
 
“음악은 본질적으로 역설이지. 침묵을 이겨내기 위해 태어나지만, 결국 또다른 침묵으로 끝날 뿐이니까. 삶이 그런 것처럼.” (227쪽)
 
→ 베를린 봉쇄 시에 베를린 시민들에게 식량을 공수하던 비행기 엔진 소리가 멈추고 침묵이 찾아왔을 때 이는 더 이상 식량과 석탄이 공급되지 않는다는 걸 의미했으므로 시민들에게 공포를 불러왔다. 그래서 위선적이고 압도적인 침묵이라고 베르크는 표현하였으나, 수용소의 클럽에서 독일인 장교들을 위해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바그너의 마이스터징어 서곡이 끝난 뒤, 가스실을 채운 침묵을 외면했던 자신은 그 독일인에 대해 침을 뱉을 수 없었다고 얘기한다.
 
(이길용,) 그에게는 그런 식으로 위악적인 측면이 있었다. 치명적인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 그 역시 사랑에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동시에 그 사랑에서 도피하고자 했다. 더 깊이 사랑할 수도, 그렇다고 사랑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이 진퇴양난의 상황 속에서 그는 순전히 살아남기 위해서 위악을 선택했다. (250-251쪽)
 
소설 속에서 언급되는 프랜시스 레이가 만든 <빌리티스>의 주제곡이 뭔가 상당히 궁금했는데, 들어보내 익숙한 곡이더라. 아래 곡은 남택상이라는 사람이 연주한 모양이다. 영화 <빌리티스>에서는 누가 연주했는지 당연히 모르겠고... 영화를 내가 봤는지 여부도 불확실하다. 아마 보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T.S. Nam - Bilitis
    
“물질이란 인간의 감각에 주어져 있으며 인간의 감각에서 독립해 존재하면서 인간의 감각에 의해 복사되고 촬영되고 묘사되는 객관적 실재를 표시하기 위한 철학적 범주다.”
“세계에는 운동하는 물질 외에는 아무 것도 없으며 또 운동하는 물질은 공간과 시간 밖에서 운동할 수가 없다. 세계는 하나이며 물질적으로 통일되어 있다는 것, 이것이 ‘세계는 무엇인가?’에 대한 변증법적 유물론의 대답이다.”
“물질세계는 발전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서로 연관된 통합적 전체이기도 하다. 물질세계의 모든 대상들과 현상들은 자력으로 또는 따로따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떼려야 뗄 수 없는 연관 속에서 또는 다른 대상들 및 현상들과의 통일 속에서 발전한다. 이들의 각각은 다른 대상들과 현상들에 작용을 가하며, 스스로도 이 상호작용의 영향을 받는다.” (353쪽)
 
→ 소설에서 이길용은 요원들에 의해 이러한 문장들을 외우도록 강요받았다. 그러고 보면 나도 이런 문장들을 접해본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뇌 용량상의 문제도 있고 하여 당연히 외우지는 않았다. 이해가 되면 되는 것이지. 그런데 그 때는 너무 쉽게 이해가 되는 것은 진리가 아닌 것 같았다. 그것이 내가 주체사상에 대해 별로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엔엘이 되지 않은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
 
소설의 모티브가 되는 그 누드사진은 도대체 뭘까. 궁금하긴 하지만, 그리고 검색해서 찾아보려면 찾을 수도 있으련만 빌리티스 주제곡을 찾아낸 것까지는 몰라도 그것은 좀 과하다.   

 



김연수는 촛불시위의 낙천적인 대학생들을 보고 주인공이 복수하는 결말을 수정했다고 한다. 자신의 눈 앞에서 정의가 실현되지 않아도 좋다는 생각에... 민생단 사건을 다뤘다니 한번 보고 싶기는 한데, 거의 모든 신문기사의 서평에 언급되는 촛불집회 관련 대목 때문에 오히려 조금 별 볼 일 없지 않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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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간도 ‘민생단’ 학살사건 (서울, 김규환 기자, 2008-10-03  24면)
김연수 장편소설 ‘밤은 노래한다’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작가 김연수(38)씨가 민생단 사건을 정면으로 다룬 장편 ‘밤은 노래한다’(문학과지성사)를 펴냈다. 장편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를 출간한 이후 1년여만에 내놓은 여섯 번째 장편 소설이다.
 
‘밤은 노래한다’는 1930년대 초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한 젊은이들이 새로운 세상을 꿈꾸다가 서로 죽이고 배신하고 변절하고 미치광이가 되는 가혹한 운명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측량기사로 파견된 김해연이 이정희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녀가 그에게 한 장의 편지를 남긴 채 자살하는데, 편지를 통해 이정희가 혁명조직의 일원이었음을 알게 되면서 시작된다.“정희가 내게 보낸 처음이자 마지막 서신. 그 한 장의 편지로 인해서 그때까지 아무런 문제도 없이 움직이던 내 삶은 큰 소리를 내면서 부서졌다. 그때까지 내가 살고 있었고, 그게 진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세계가 그처럼 간단하게 무너져 내릴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소설로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대학생 시절부터 이 이야기를 가슴에 담았던 작가는 1995년 장편소설 형태로 썼다가 민생단 자료들을 다시 읽고 계간지에 연재하면서 세상에 내놓았다. 그러나 연재를 끝난 뒤에도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사람들끼리 서로 죽이는 이야기를 내서 뭣하겠는가?”라는 회의가 생겨 뒤로 밀쳐놨다. 그러다 이번에 내놓은 것은 지난 봄 촛불시위 현장에서 본, 전경들 앞에서 대중가요에 맞춰 춤추던 대학생들 때문이었다고 한다. 대학생들이 춤추는 장면을 보면서 어제와 다른, 새로운 세계가 왔다는 사실에 학생시절의 공포를 떨쳐버리고 용기를 얻은 것이다.
 
민생단 논문을 쓴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박사논문을 쓰는 내내 이건 논문이 아니라 소설로 써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사로잡았다.”며 “논문으로는 다 담을 길 없는 그 깊이 모를 혼돈과 암흑의 심연 속에서 벌어진 민생단 사건에 빠져든 인간들의 이야기를 김연수는 처음 끌어안았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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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뺀 사람 얘기 … 노선 관심 없어” (중앙, 이경희 기자, 2008.10.03 00:48)
민생단 다룬 소설 『밤은 노래한다』 펴낸 김연수씨
 
새로 쓴 결론은 마음에 드나. “마음에 든다. 개인의 삶은 불합리해 보이지만 인류 전체로 보면 무언가 이루어진다는 것, 진실은 내가 보아야만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목격할 수도 있다는 결론이다.”
 
“옛날엔 전쟁이나 4·19를 쓰면 누구나 공감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학생 운동을 다룬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80년대 이후 생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 나라에 이런 일이 있었어요?’라는데, 마치 ‘일제시대에 태어났으면 나도 독립운동을 했을까?’란 반문을 듣는 느낌이었다. 오직 하나 남은 공동의 관심사가 연애다. 연애는 호기심이나 말려드는 강도가 전쟁같은 재난에 가깝기 때문에 쉽게 소통된다. 연애는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 연애가 나한테 특별한 건 사실이지만.”
 
“난 노선엔 관심없다. 소설로 써서 기억하는 것까지만 내가 할 일이다. 가치판단은 내 몫이 아니다. 역사적 사건 안의 인물에 덧씌워진 ‘역사’를 빼고, ‘사람’으로 돌아가는 게 내 관심사다. 친구가 나를 죽인다면 어떻게 죽을 것인가, 우정이나 믿음이 뭔가가 내겐 훨씬 중요하다. 그건 역사와 관계없이 반복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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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조선 혁명가를 서로 죽이게 했나 (한겨레,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2008-10-03 오후 10:09:43)
연인의 자살 전 편지 한통에 역사 격랑 빠져드는 청년…
1930년대 ‘민생단’ 사건 되짚어

 
소설은 김해연이 사랑하는 연인 이정희의 편지를 받는 것으로 문을 연다. 용정의 여자학교 음악선생인 정희는 해연의 거듭되는 편지와 구애에도 확실한 대답을 미루다가 마침내 처음으로 편지를 보내는데, 그것은 그가 자살을 앞두고 쓴 마지막 편지이기도 했다.
 
정희의 자살과 편지는 시인을 꿈꾸던 낭만적인 청년 해연을 삽시간에 역사의 격랑 속으로 밀어넣는다. 정희가 혁명 조직의 일원이었다는 사실을 해연은 일본 경찰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야 알게 된다. 조사 과정에서 사토 경부는 해연에게 묻는다: “이정희도 너를 사랑했는가?” 의아해하는 해연에게 사토는 서류 한 장을 내민다. 그 서류는 해연에게 정희를 소개해 준 박길룡이 정희의 애인이라 말하고 있었다. 게다가 상처에 말뚝을 박듯 사토는 덧붙이지 않겠는가: “너는 분명히 운명 때문에 이정희를 사랑한 게 아니라 누군가의 치밀한 계획에 따라 이정희를 사랑하게 된 거야.”
 
정희의 죽음 이전에는 그토록 자명해 보였던 진실이 사토가 내민 서류를 보는 순간 한없이 흐릿하고 모호하게 바뀌고 만다. “그로부터 내가 알던 세계는 완전히 허물어졌고 나는 나를 둘러싼 세계의 이면을 똑똑하게 보게 됐다.”
 
 
» 〈밤은 노래한다〉
 
정희의 사인을 확인하는 과정은 양파 껍질을 벗기는 일과도 같다. 한 꺼풀을 벗겨 진실을 확인했다 싶으면 이내 그 이면의 또 다른 진실이 얼굴을 내민다. 그 과정에서, 정희가 학생 시절 함께 비밀 조직활동을 했던, 박길룡을 포함한 네 남자의 이야기가 드러난다. 하나같이 정희를 사랑했던 그 남자들은 연정과 질투가 혁명을 향한 노선 다툼과 구분할 수 없도록 뒤얽힌 가운데 서로에게 차례로 죽임을 당한다. 조선인 유격근거지에 들어가서 해연이 목격하고 연루된 민생단 사건은 그런 갈등의 정점을 이룬다. 여기에다가 정희가 정보 수집을 위해 일본군 장교 나카지마와 연인 관계로 지냈다는 사실까지 확인되면서 정희의 정체는 천사와 요부 사이를 격렬하게 널뛰기한다.
 
소설 말미에서 해연은 권총을 들고 정희의 옛 동료 출신으로 일본 영사관 경찰보조원으로 전향한 최도식을 찾아간다. 정희를 죽게 만든 자들에게 복수함으로써 일종의 ‘시적 정의’를 이루려 한 것이었다. 그러나 최종 퇴고 과정에서는 최도식의 어린 아들들을 목격한 해연이 복수를 포기하고 돌아 나오는 것으로 처리되었다. 이렇게 결말이 바뀐 데에는 지난 5월 말 촛불시위에 나가서 보았던 젊은이들의 발랄한 모습이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당장 내 눈앞에서 정의가 이뤄지지 않아도 좋다. 이게 어제와 다른, 새로운 세계라면.”(‘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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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위의 낙천적 젊은이들 보고 주인공이 복수하는 결말 수정했죠 (한국, 이왕구 기자, 2008/10/04 02:47:27)
"역사의 광풍에 명멸해간 청춘들 그리며 내 안의 상처 치유"
밤은 노래한다/김연수 지음/ 문학과 지성사 발행ㆍ348쪽ㆍ1만원

 
"그 시절의 진실에 대해서 나는 아는 바가 하나도 없다. 지금은 이 세계에 객관주의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 수 있겠는가라는 의문도 든다" (212쪽)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그것은 "친구를 죽일 수 없는 아이의 세계에서, 친구라도 죽일 수 있는 논리를 받아들이게 되는 어른의 세계로 진입하는 과정"이다. 이 소설은 따라서 잘 짜인 역사소설이자 애틋한 연애소설, 그리고 인상적인 성장소설로도 읽힌다.
 
이 소설은 작가 김씨가 대학졸업 직후 잡지사 기자로 일하던 1995년 일본 학자 와다 하루키의 연구서에서 접한 '유격대원 출신이다. 민생단이라는 진술이 대단히 많다'라는 김일성에 관한 짧은 프로필 한 줄에서 잉태됐다. 그 한 줄의 섬광은 간도를 다룬 안수길 염상섭 등의 소설, 북한의 항일혁명사 소설 '불멸의 역사 시리즈' 에 대한 취재 등을 거쳐 그를 2004년 중국 옌지로 끌어들였다고 한다. 그의 9개월 간의 옌볜 체류는 시대의 광풍에 희생됐던 젊은이들의 사연을 다룬 이 소설로 결실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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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아이러니에 스러져간…‘밤은 노래한다’ (동아, 정양환 기자, 2008-10-04 03:00)
 
“그들은 정작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그건 당신도, 나도, 식민지에서 살아가는 그 누구도 마찬가지다. 나라를 빼앗기고 남의 땅에서 살아가는 한, 우리는 우리가 아닌 다른 존재를 꿈꿀 수밖에 없다. 주인만이, 자기 삶의 주인만이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어딘가를 꿈꾸지 않는다.”
 
지난해 동아일보가 선정한 ‘올해의 책’ 가운데 한 권으로 뽑혔던 장편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문학동네)의 작가 김연수. 1년 만에 출간한 ‘밤은 노래한다’는 출간 이전부터 올 하반기 최고의 기대작으로 꼽혀온 작품이다. 책장을 넘기는 순간, 그 기대는 기대를 뛰어넘는다.
 
소설의 배경은 1930년대 초반 북간도 항일유격 근거지에서 실제로 벌어진 ‘반민생단(反民生團) 투쟁’. 일본제국주의에 맞서 총칼을 든 혁명가 500여 명이 적도 아닌 동지들의 손에 죽어간 사건이다. 그 역사의 아이러니 속에 꺾인 청춘의 꽃 무덤 앞에 작가는 짙은 묘비명을 아로새긴다.
 
사랑이란 상처로 생의 의지마저 잃어버린 해연. 죽기를 맘먹었으나 그마저 여의치 않고, 후유증으로 말문이 막혀버린 그는 사진관 소녀 여옥을 통해 상처를 치유할 용기를 얻게 된다. 사랑을 사랑으로 치유하는 법을 배운 그들은 여옥 언니 결혼식에 참석하러 화룡현 촌락 유정촌으로 향하는데…. 그들을 기다리는 세계는 행복의 땅이 아니었다.
 
“캄캄했다. 그 무엇도 내 망막에는 맺히지 않았다. 검정이 검정을 직시할 수 없듯이 이 모든 암흑을 검은 눈동자는 바라볼 수 없기에 나는 어둠을 믿지 않았다. 그런 눈동자. 내 눈동자. 당신의 눈동자. 그리고 그들의 눈동자. 어둠을 믿을 수 없는 눈동자. 자신과 다른 것만을 알아볼 수 있는 눈동자. 바라보는 바를 믿어 의심치 않는 눈동자.”
 
‘밤은 노래한다’는 놀랍다. 작가 특유의 고고한 품위가 여전하면서도 편안하다. 사실 전작들에서 보여준, 무거운 침잠이 가득했던 작가의 문장은 한껏 매력적이면서도 그 체화(體化)가 수월치 않았다. 하지만 이번 소설은 훨씬 무거운 주제를 다룸에도 사뿐하다. 봇물처럼 드넓게 터져 오른 가을꽃 향취처럼.
 
무엇보다 이 소설은 작가가 계속해서 헤치고 보듬는 ‘경계’의 실연이 빼곡하다.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할 뿐 아니라, 양쪽 다 밟아야만 버틸 수 있는 삶. ‘반쯤 죽은 자들과 반쯤 살아 있는 자들이 함께 살아가는 세계.’ 어둠을 먹고 눈물을 품은 유목민들은 어디쯤에서 가쁜 숨을 고를는지. 작가는 여전히 그 사막 건너를 바라본다. 찢기는 혹은 시린 가슴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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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8 23:02 2008/10/08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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