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신게공선과 미래의 전쟁

View Comments

2007.02.26 16:53

      
90년대 초반 읽었던 소설 중에 <게공선>이라는 작품이 있다. 일본의 사회주의 소설들을 모은 작품집이었다.

아래 신 게공선은 이를 미래적인 관점에서 각색한 제리님의 SF단편 소설이다. 제리님은 블로그의 다른 글에 있는 덧글에서 이 작품이 필립 K 딕의 단편 [거짓말 로봇]에서나오는 기막힌 반전에서 모티브를 따왔음을 밝히고 있다. [거짓말 로봇]도 강추할 만한 작품인데, 이게 <임포스터>라는 밋밋한 영화로 제작되었다는 사실도 밝힌다.

 

아래에 제리님의 소개글과 원문을 담아온다. 다시 읽어보니 나름 재미도 있고, 뭔가 생각할 꺼리도 있어서 담아온 것이다. 요새 TBD라는 말을 아는 20대가 얼마나 될까? 이것도 80년대 후반 원전학습의 산물일텐데...

      
---------------------

  

신게공선과 미래의 전쟁

      
신게공선은 내가 스무살이 넘어서 처음 쓴 SF 단편이다. 아직도 갖고 있는, 중 3때의 작품 "Good Bye 아틀라스"와 더불어서 애정이 가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누군가가 나에게 게공선이 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게공선은 영어로 "Crab factoryship"으로 게를 잡는 원양어선에 가공공장까지 덧붙여진 그런 배를 의미한다. 80년대 말에 사회과학 서점에서 간혹 보았을 수도 있는 작품 "게공선"을 미래적인 관점에서 각색한 소설이라 볼 수 있다.
  
"게공선"은 20세기 초 일본사회주의자들이 정보기관에 잡혀가서 고문 받는 그런 이야기로서 상당히 독특한 작품이다. 만약 21세기에도 사상적인 이유로 정보기관에 의한 탄압이 계속된다면 어떠한 형태를 띄게 될 것인가,하는 것이 이 소설의 화두였다. 다소 온건하면서도 치밀한 수법의 탄압이 사용된다면 그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가?
 
"팔목은 꺾어도 의지는 꺽을 수 없다"는 믿음은 새로운 교화 방법 앞에서 무의미해진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인간의 개조 문제에 초점을 둔 것은 아니다.이미 안소니 버제스가 "시계 태엽장치 오렌지"에서 썼던 그런 내용의 답습은 싫었다. 정치적인 이유든, 개인적인 이유든 범법자들을 다루는 권력의 방식과 그 이유(!)에 대한 고찰은 이미 오래된 논의 과제이다.
   
이 소설은 탄생의 한계상 소품일 수밖에 없다.  미력하나마 내가 표현하려했던 것은 필립 케이 딕의 "거짓말 로봇"에 나오는 그런 기막힌 반전이었다. 군복무중 겨울밤을 꼬박 보초를 서면서 생각했던 결말이지만, 과연 소품으로나마 작품이 가치가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 
2008. 6. 5
일본에서 고바야시 다키지의 <게공선>이 다시 인기라는 기사가 한겨레에 실렸다. 소설 <게공선>은 1930년대 노동운동을 하던 일본 사회주의자들이 투쟁중에 정보기관에 연행되어 고문받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아직도 인상적인 것은 그렇게 고문을 받으면서 사회주의자들은 적기가를 부르는 장면이다. 이를 통해 그리 재미있게 읽지는 않았던 <게공선>이 기억에 남아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일본의 워킹푸어나 프리터들이 자신들의 현실이 이미 70년 전에 있었던 것을 다시 떠올리는 모양이다. 감성이 풍부하다고 해야할지...

 
일본 사회 달구는 ‘프롤레타리아 소설’ (한겨레, 도쿄/글·사진 김도형 특파원, 2008-06-01 오후 10:20:27)
특파원 리포트 
 

 
» 도쿄 진보초 서점가의 대형서점 산세이도의 특별코너에 진열된 소설 <게공선>과 관련 서적.
 

29년작 ‘게공선’ 노동투쟁
20~30대 저소득층 공감
올 판매부수 20만 돌파

 
79년전에 발표된 프롤레타리아 문학작품이 일본에서 폭발적인 인기이다. 일본공산당원이었던 고바야시 다키지(1903~1933)가 일본 경찰에 고문으로 사망하기 4년 전인 1929년 발표한 소설 <게공선>(蟹工船)이 화제의 작품이다.
 
캄차카 연해에서 게를 잡아 통조림으로 가공하는 ‘게공선’의 가혹한 노동조건에 분노를 느낀 노동자들이 맞서 투쟁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은 올해 판매부수 20만권을 돌파했다.지난 31일 <마이니치신문>은 “예년의 47배 속도로 팔리며, 고전작품으로서는 이례적인 대히트를 기록하고 있다”고 전했다.다키지기념도서관쪽은 “이것은 고바야시 다키지 학살에 필적하는 문학적 사건”이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게공선’의 재발견은 <마이니치신문>이 올 1월9일 게재한 작가 아마미야 가린(33)과 다카하시 겐이치로(57)대담이 계기이다. 두 작가는 대담에서 일본의 워킹푸어(일하는 빈곤층)와 프리터(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저임금의 비정규 젊은이)의 현실은 <게공선>의 세계와도 통한다고 언급했다. 
 
기사를 본 도쿄 제이알 우에노역 구내의 서점 여직원(28)이 소설을 다시 읽고 “절실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느꼈다고 한다.자신이 지난해까지 3년간 프리터 생활을 했기에 소설의 내용이 더 절실하게 와닿았다.그는 올 2월 “이 현상(워킹푸어)이 혹시 <게공선> 아닌가요”라는 선전문구와 함께 150권을 쌓아놓았더니 일주일에 한 권밖에 팔리지 않았던 책이 매주 40권 이상 팔리기 시작했다고 전했다.다른 서점들도 하나둘씩 특별코너를 만들어 진열하고 <아사히신문> <요미우리신문> 등 신문들이 <게공선>의 재발견을 크게 다루며 인기에 불을 붙였다.
 
지난해 말에 나온 <게공선> 만화도 한 몫했다. 독자들은 대부분 30대 이하 젊은이들이다. 이들은 1천만명을 넘어선 연수입 200만엔 이하의 워킹푸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일본 사회를 지배하는 ‘자기책임론’에 짓눌려, 할말을 제대로 못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올초 작가 사망 75주년 기념 <게공선> 감상문 공모에 대상을 차지한 야마구치 사나에(25)는 “소설의 주인공들이 공동의 적에 맞아 함께 싸우는 모습에 부럽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는 2005년 졸업 1년 만에 겨우 정사원 자리를 얻어 바쁠 땐 15시간씩 시간외 수당도 없이 일했지만 전표를 조작하라는 상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가 즉시 해고당했다고 한다. 



신 게공선
  
 
『 '구슬이 어디 있는지 말하지 않으면 너의 두 다리를 뽑아 버릴테다!' 
'절대로 말할 수 없어요'
  그러자 검은부리 거인은 크고 굵은 팔을 들어 소년의 가냘픈 두 다리를 뽑아버렸습니다. 검은부리 거인은 소년에게 다시 말했습니다. 
'이래도 말하지 않는다면 네 두 팔과 눈을 뽑아 버릴테다!'
'그 구슬은 우리 마을의 아픈 사람들을 고쳐줄 소중한 물건이어요! 절대 내줄 수 없어요'
  검은부리 거인은 화가 나서 뾰족한 손톱으로 소년의 팔과 눈을 뽑아 버렸습니다. 검은부리 거인은 씩씩거리며 다시 외쳤습니다.
'이제 말하지 않으면 네 혀를 뽑아 다시는 맛난 것을 못 먹도록 하겠다'
  소년은 미련한 검은부리 거인에게 말했습니다.
'맛난 것은 못 먹어도 좋아요. 하지만 제 혀를 뽑으면 저는 구슬이 있는 곳을 가르쳐 줄 수 없어요
'검은부리 거인은 자기 머리를 탁 치며 말했습니다. '맞아! 그렇지. 하마터면 큰일날 뻔 했구나' ..... (중략) .....  』

        "무더운 여름날의 무서운 동화" 제 3권 네번째 이야기
                『예쁜생각』출판사 2095년 제 3판 13쇄 中
  
   1. 보고서
 
   <보고서 양식 제 1호>                           ※ 비밀등급: Ⅰ
   -------------------------------------------------------------------------------------------
   날짜: 2095년 7월 21일
   발신: 세계안전기구 부속 심리정화 위원회 연구소 소장
   수신: ## 111
   참조: 안전기구 수사부 정보국 국장
   제목:『다수자의 의지』파 사건 중앙위원 정화 결과
   대상: 중앙 위원 1인 (성명: People Kim)
   대상약력:: 2052년 출생. 한국계 미국인
             2075년 세계 기준 국립대 뇌생리학과 졸업
             2077년 세계 기준 국립대 뇌생리학 석사과정 수료
             2083년 지구 뇌생리학 연구소 박사 학위       
             2084년 중국계 미국인인 준 리와 결혼
             2085년 준 리와 사별
             2088년 뇌신경접합 이론으로 바이오상 수상
             2091년 생물학과 뇌생리학 전문서적을 베스트 셀러로 만듬
             2093년 동화출판사『예쁜 생각』 설립
            
   본 심리정화 위원회 연구소에서는 지난 2095년 7월 1일 세계 안전기구 수사부에서 지명한 폭력혁명 기구 '다수자의 의지'파 중앙위원 '피플 김'을 검거하여 약 20일에 걸쳐서 심리정화 작업을 마쳤다. 이에 일차 심리정화 작업 결과를 공고하며 그간의  작업 중에 있었던 문제점과 성과물, 그리고 차후에 나타날 문제점에 대해 명시하고자 한다.
 
   (1) 이번 정화 작업의 목적은 일차적으로 차후에 나타날 폭력혁명 배후세력을 견제하기 위하여 대상의 의식속에 존재하는 조직에 대한 정보 파악에 중점을 두었다. 이차적으로는 대상이 차후 그같은 사상에 경도되지 않도록 뇌생산 회로의 수정을 가하였다. 이 과정에서 두가지 문제점이 나타났는데 이 문제점이 어디서 기인하는지는 수사부 정보국과의 대질을 통하여 밝혀내기로 한다.
  첫째로는 뇌생리학적인 문제점으로서 대상이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며 정체성을 상실하거나 상실하려는 과정에 있는 환자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따라서 대상의 뇌수 속에 존재하는 정보 역시 신빙성이 있는 온전한 것이 아니라는 판단이다. 이것은 대상이 저명한 뇌생리학 교수라는 사실로 볼 때 이례적인 것이다.
  둘째로는 대상의 뇌리속에 불법 혁명활동이나 혹은 그에 관련된 정보가 거의 들어있지 않음이 확인되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안전기구 수사부의 해명이 필요하다. 12일간의 철저한 조사 결과를 볼 때 대상은 과거 자신의 아내로부터 혁명 및 불법적인 사고에 관한 자극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혁명 활동 및 그에 준한 어떠한 사고활동도 활발히 하지 않은 것으로 보여진다.
 
     ○ 뇌파 분석 별첨 자료 제 1부 참조 ○
 
   (2) 정화 작업의 결과에 대해서는 화학적 반응을 기록한 별첨 자료 제 2부 참조 바람.
    정화 작업은 대상의 뇌수 속에 존재하는 폭력 혁명의 불씨를 제거하는 회로 재구성 작업을 주로 하고 있다. 회로 재구성 작업은 과거의 호르몬 주입 방법(호르몬을 주입하여 대상을 극단적인  조증이나 울증에  몰아넣거나 과거의 경험과 사실에 대한 격렬한 반발 행위를 유발케 하는 방법을 말한다)에 비하여 효과는 점진적이나 부작용이 거의 미미하고 대상의 기본적인 사고 패턴을 해치지 않아 타인에게 발각될 우려가 전무하다. 연구팀은 대상의 기억중 몇가지 부분을 변조하거나 중요한 이성 회로와 논리방식 회로에 수정을 가하여 예고된 답변을 내도록 했다. 또한 대상의 행동에 근간을 이루는 동기(무의식 구조)를 해부하여 그 기억에 몇가지 수정을 가하였다. 그 주요 부분은 대상의 과거 아내에 대한 기억으로서 무의식 안의 침전물인 아내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어서 이 문제를 해결했다. 대상이 실제로 혁명기구 중앙위원이든 아니든 간에 앞으로도 그럴 만한 가능성은 모두 배제되었다.
 
   (3) 대상의 의식구조에 대한 의문점
  대상은 일반인들과 다른 의식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어떤 인간에게도 발견되지 않은 기억구조이다. 우리는 무의식의 패턴을 따라가던 중에 대상의 기억에 '암흑'이라 일컬을 만한 결절점이 나타남을 알았다. 이 결절점은 주기적인 파동이라 할 수 있는데 쉽게 말하면 대상의 기억속에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는 부분(그러나 분명히 어떤 행동을 이루었을 시간동안의)이 존재하다는 것이다. 새로운 정신병 요소의 발견이 아닐까 생각된다. 또 하나의 특징은 그의 뇌세포의 수가 다른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이다. 과거 뇌수술을 받은 경력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뇌세포의 수가 절대치에 미달한다(물론 이것이 대상의 뇌활동을 제한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보다 오분의 일 정도의 용량으로도 정상적인  뇌활동에는 지장이 없다)
 
   (4) 대상은 현재 모든 과정이 끝난 뒤 연구소 부속 병원에 송치중이며 마지막으로 무의식 패턴 확인 과정을 거치고 있다. 하루 한번의 뇌검색 과정을 거치며 전문의와 상담중이다. 상태는 상당히 호전되어 이틀 후면 과정 종료가 가능하다.
 
                  【 예상되는 문제점과 해결책 】
  본 연구소에서는 모든 가능성을 타진해 본 결과 대상이 실제로 혁명 기구의 중앙위원일 경우 뇌검색을 피하기 위하여 일정부분의 기억을 스스로 삭제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가진다. 따라서 그에 수반되는 복귀책도 가능하므로 이것에 대한 고려도 해보았다. 일단 무선 조종에 의해 자신의 기억정보를 수신 받을 경우를 대비하여  신체에 숨겨진 통신 기구및 부품에 대한 조사를 실시해보았다. 결국 아무런 기계장치도 갖고 있지 않음이 판명되었다. 다른 정보수신망에 대한 조사로서 가택을 철저히 조사했으나 단서로 불리워질 만한 것들을 발견하지 못했다.
 
   □ 관련된 모든 정보는 비밀 정보망을 통하여 차후 송신될 것임 □
-----------------------------------------------------------------------------------------                                                                   보고서 제 1부 종료
   2. 의식 정화 연구소
 
   사내는 유전자 인식 시스템 앞에서 잠시 멈춰섰다. 문 오른쪽의 파여진 홈에 엄지 손가락을 대자 파란 불이 깜빡였고 이내 문이 열렸다. 그가 들어선 넓은 홀은 눈부신 흰빛의 계기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연구실이었다. 희고 번쩍이는 가운을 입은 직원 몇명이 그를 돌아보았다. 사내는 연구소의 직원들과는 달리 검은양복에 붉은색 무늬가 그려진 넥타이를 메고 있었으며 마치 감독차 들른 공장장처럼 느긋하고 거만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탄탄한 몸매는 그가 강한 성품의 소유자임과 동시에, 억센 완력의 소유자임을 증명하고도 남았다. 사내는 갈색 피부와 여윈 뺨을 가져서 다소 깡마른 듯한 느낌이 들었고, 굵은 눈썹과 이마 위로 한줄기 그어진(성형 수술도 마다한)긴 상처가 냉철한 인상을 뒷받침해주고 있었다. 모퉁이를 돌자 눈빛이 날카로운 오십대로 보이는 사내가 나타났다. 그의 얼굴은 흰 수염으로 뒤덮여 있었으며 자신의 앞에 무례하게 나타난 삼십대 후반의 사내를 경멸스러운 듯 흘낏 쳐다봤다.

  "브레인 박사를 찾고 있습니다.”
   인상과는 달리 깍듯한 말투에 흰 가운을 입은 중년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브레인 박사요. 당신이 정보국장입니까?"
  사내는 잠시 찡그리는 것도 웃는 것도 아닌 묘한 표정을 짓고 대답했다.
   "난 국장이 보낸 사람입니다. 이번일로.. "
   사내가 검지 손가락으로 이마를 지긋이 누르면서 침을 삼켰다.
   "국장에게 어떤 문책이 주어진다면 내가 대리 임무를 맡게 되어 있소."
   브레인은 사내의 위치가 자신에게 위협적이 아님을 깨달아서인지 누그러진 표정을 지었다.
   "잘 오셨소. 마침 수사부에 여러가지 정보를 요청할 참이었소. 당신은 정보검색 면허를 가지고 있을 테니 협조가 가능하겠군요. 흔히들 정보국과 연구소의 관계를 빗대어 개와 고양이라고 하지요. 하지만 나는... 이런 사건들의 궁극적인 해결은 이 두 기관의 긴밀한 협조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소"
 
    브레인은 앞장서서 천천히 걸었다. 그의 주위로 굵은 동력 파이프가 연결된 컴퓨터 3대가 스르륵 거리는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치과 의자 같은 긴 의자 몇개가 나타나고 그곳을 가로질러 브레인은 『출입금지』라는 푯말이 붙은 낯선 방으로 들어갔다. 왼편으로는 방의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평면 모니터가 자리잡고 있었으며 그 가운데의 긴 침대에 삐쩍 마르고 거무튀튀한 색깔의 손이 튀어나와  있는 게 보였다. 묶여진 남자의 머리에는 거대한 오토바이 헬멧 같은 것이 씌어져 있었는데 침대 오른쪽의 작은 다섯개의 화면으로는 대상인 남자의 뇌파가 불규칙한 곡선을 그리며 뛰고 있었다. 남자는 자는 듯이 보였다. 뇌파를  검사하기 위해 강제로 재웠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검은양복의 사내는 문득 자신의 옆에 매우 완고하게 생긴 한 명의 사내가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역시 오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이 사내는 가운의 앞에 '부소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있었다. 검은양복은 문득 이 사람이 노벨상 후보에까지 올랐던 인물임을 상기했다. 부소장은 대상이 그려내는 곡선에 정신이 팔려서 자신이 검은양복이 들어온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루터씨 이 분은 정보국에서 오셨소."
  갑작스런 브레인의 말에 루터라 불린 부소장은 고개를 들어 멍청히 입을 벌린 채로 검은양복을 노려 보았다. 검은양복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난 루터라고 하오, 정화 계획의 발안자이지. 당신 성함은.. 참, 정보국 사람들의 이름을 묻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 어쨌거나 아무런 호칭이라도 좋으니 뭘로 써야할지 알려주시오"
  "그냥 A라고 부르십시오"
   루터는 예쁜 여자에라도 홀린 듯 뇌파 곡선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좋소 A 씨.. 난 당신 같은 무지한이 내 작품을 감상하는 것에 대해선 달갑게 생각하지 않소.. 하지만 일에 관한 한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겠소. 단, 당신에게 몇가지 권한이 있다면 내 빌어먹을 상관이 내가 말하는 것을 억압하지 않도록 해주시오"
   검은양복은 씁쓸한 인상을 짓고 있는 브레인을 바라보더니 미소를 짓고 대답했다.
   "매우 좋습니다. 박사가 내게 원하는 정보를 주기만 한다면..  ## 111 에 관련된 것만 빼놓곤 뭐든지 가능하게 해드리겠소"
 
   브레인이 나가자 루터는 기분좋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창가에 다가가 앉았다. 사실 지하 500m 깊이에 만들어진 이 연구소는 안전기구와 마찬가지로 가장 은밀한 장소였기 때문에 햇빛이 들어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단지 직원들의 정신건강을 위하여 브레인이 태양의 광도를 흉내낸 창을 만들어낸 것에 불과했다. 검은양복은, 음모적인 냄새가 풍기는 브레인에 비해 바로 앞의 사내가 훨씬 다루기 쉬운 인간형임을 직감했다. 과학자로서는 뛰어날지 모르지만 조직의 관계나 조건에 관해서 무지한 이 사내가 왜 연구소의 소장이 못되었는지 이해가 갈 듯했다.
   "내가 묻고 싶은 부분은..."
   촌스런 지역의회 입후보자와 같은 말투로 루터가 말문을 열었다.
   "대상의 아내였던 준 리에 관한 것입니다. 물론 지금껏 조사한 바로도 충분히 짐작이 가는 바지만 대상의 상태를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선 준 리에 관한 정보가 더 필요하오. 어떤 이유에서인지 대상의 아내에 대한 정보 접근이 일반 회선으로는 단절되어 있소."
   "좋은 질문입니다. 일단 준 리에 관한 개략적인 설명을 덧붙이자면... 대상보다 다섯살이 어리고 중국태생입니다. 미국으로 국적을 옮긴 것이 스무살 때이고.. 세계 기준 국립대 사회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했습니다. 그리고 스물 일곱이 되던 해에 국제 혁명 그룹 TBD 사건으로 구속되어 교수형 당했습니다.  TBD 그룹은 그해 최악의 사태를 만들어냈는데 국제 기업 환경오염 사례를 일반 정보 회선망으로 동시전송하여 커다란 사회적 물의를 빚어냈던 거죠."
   "뭐라고요? 티비디?"
   "레닌주의의 마지막 그룹이었죠. TBD는 'What is to be done'의 끝 음절의 약자입니다. 이 조직은 국제적인 통신망과 조직망을 가진 초유의 그룹으로 총 17000명 규모에 달하는 국제 조직을 갖고 있었습니다. 조직구도가 파악된 후 전향하지 않은 중앙위원 모두가 내란 혐의로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아하.. 십년이나 지난 얘기로군요, 어렴풋이 기억이 날 듯 한데..  그럼 준 리 라는 이 여자도 같이 교수형을 당했단 말이오?"
   "바로 그겁니다. 총 32명의 중앙위원 중 27명이 교수형을 당했죠. 그 중에는 준 리 도 섞여 있었던 겁니다."
   "내가 의문을 가지는 부분은 그거요, 당시 피플 김은 박사학위를 갓 딴 전도유망한 학자였소. 그런 그가 상대방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결혼했겠소? 빌어먹을, 혹 그럴지도 모르지. 과학자들 중에는 종종 생활방면에 관해서는 멍청한 족속들이  존재하니까. 하지만 아무래도 피플 김과 준 리의 결혼은 균형이 안맞는 것 같소. 당시의 그들은 너무나 다른 이상을 가진 존재였으니까."
   "어떻게 그걸 알 수 있습니까?"
   "내가 조사한 의식속의 자료가 그걸 말해 주고 있소. 당시 피플 김과 준 리의 관계는 정신적인 교류는 거의 배제한 성적인 부분으로만 일관된 관계였소. 이게 얼마나 오래갈 거라 생각하오?"
   "유감스럽게도 현대의 어떤 부부도.. 그 이상을 바라는 경우는 드물죠"
   검은양복은 냉소어린 웃음을 입가에 띄운 채 대답했다.
   "좋소. 그런 것들을 인정한다고 치더라도.. 그럼 대상이 여자와 사별한 이후에도 계속 여자 때문에 괴로워했다는 것은 무엇 때문인 것 같소?"
 
   검은양복은 문득 예정된 장난기 어린 대답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그들의 결혼 생활이 일 년이 채 못되었다는 것은 서로가 맞지 않아도 충분한 싫증을 느끼기엔 좀 짧은 시간이다. 그러나... 그리움이 십년을 넘게 간다거나 하는 것은 현대의 경우엔 좀 비정상적인 경우이다.
   "당신의 말은 그들의 관계에 그 이상의 무엇이 있었다고 추측하는 거군요."
   "나는 모르겠소. 예상대로라면 그래야 되는데 수치나 해석으로는 대상의 감정에 대한 정확한 근거가 주어지지 않고 있소. 적절한 표현은 아니겠지만 감정의 결과는 앙금처럼 남아 있는데 그 감정을 생성시킨 기억이나 유인들이 머리 속에서 삭제되어 있는 것이오."
   "나는... 당신의 전공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찾아 온 것이 아닙니다. 즉, 과정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알아낸 결과이지 과정이 아니죠."
   검은양복은 상의 안주머니에서 무연 담배를 꺼내어 피워 물었다. 
루터는 잠시 담배와 환자를 번갈아 보며 저지시킬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즉, 당신이 발안한 정신정화의 효과가 어떤 것인지도 알아야 하며, 지금 이 대상의 의식 속에서 어떤 정화를 이뤘는지에 대해서도 궁금합니다. 듣기로는 일차적으로 대상이 가질만한 불법 혁명의 불씨를 제거했다고 하는데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효과는 확실한지.."
 
   검은양복은 문득 생각 난 듯 주머니에서 작은 홀로그램용 컴퓨터를 꺼냈다. 그는 기계의 전원을 작동시키고는 자신의 작품을 관찰하는 예술가처럼 멀찍이 물러나 앉았다. 홀로그램은 루터박사의 눈앞에 작은 입방체의 공간을 만들어냈고 그 공간 안의 물질들은 희뿌연 안개처럼 흐릿하다가 이내 비정상적일 정도의 선명함으로 입체 화면을 만들어냈다. 
그 공간에서 약 칠십여명의 관중을 눈앞에 두고 연설을 하는 피플 김의 모습이 확대되었다.
   "이건 세계 노동절 기념 대회를 앞둔 그의 연설 광경입니다. C-5 주거지구에서 자동화 노동자 그룹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죠. 이보다 확실한 자료는 없을 거라고 생각되는군요. 그가 사용한 낱말군의 그룹을 한번 검색해보면 아시겠지만..  그는 '사회 일탈 사전'에 나오는 낱말의 3퍼센트를 이 모임에서 사용했습니다. 또한 또 하나의 자료는 '다수자의 의자'파가 불법성을 보이기 이전의 창립회의에서 그가 대표 발기인 연설을 맡았던 것입니다. 이 자료들은 불충분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TBD' 그룹을 와해시킬 때도 이 정도로 확실한 자료는 없었죠."
   "난 당신들 정보국은 그 이상의 자료를 갖고 있는 줄 알았소. 생각보다 형편 없구만."
   검은양복은 잠시 미간을 찌푸리더니 말했다.
   "현대로 올수록 사회일탈적 그룹들의 활동이 비밀스러워지고 있다는 겁니다. TBD 그룹때만 해도 우린 육체적인 고문으로 필요한 정보 이상을 빼내고 또..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재엔 그런 방식도 소용없게 되었죠.  적들은 정보를 뇌 깊숙이 감추기도 하고 검거시에 특수한 약물로 정보자체를 녹여버리기도 합니다. 따라서 가장 확실한 대응은 상대방이 눈치채지 못하는 범위 내에서 정보를 빼내고 그들을 원상태로 복귀시키는 것이죠."
   "좋소. 난 당신들이 원하는 대로 수백 명의 대상들을 그들 스스로도 모르게 착한 시민으로 변화시켰소. 근데 이 '다수자의 의지'파 사건 이후론 솔직히 두려운 마음이 생겨났소. 그건 이 그룹의 인물들이 하나같이 정상적인 뇌활동의 소유자가 아닐 뿐더러, 내가 예견한 패턴에 역행하는 요소를 너무 많이 갖고 있기 때문이오."
   "그건 당신이 갖고 있는 학설의 문제점이 아닙니까?"
   루터 박사는 상대방의 공격성 어린 말에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만큼 의기소침해져 있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대답했다.
   "그럴런지도 모르지... 아뭏든 난 최선을 다했소."
   "그건 그렇고 대상의 의식 속에서 변경을 가한 부분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변경의 효과는 어느 정도입니까"
   "음... 당신은 전공자가 아니니 비유를 들어 간단히 설명하겠소. 우리는 그의 뇌 전극에 천 이백개의 전극섬유를 연결했는데 이 섬유는 각각 오백개의 독립된  전극관을 가지고 있소. 이것을 통하여 우리는 그의 의식패턴을 추적하고 하나의 질문이 화학적으로 처리되는 과정의 모형을 만들어 낸 것이오. 그리고 그 모형의 회로에서 일부분으로 수정하여 다른 모형회로와 접지를 시키는 것이오. 그렇게 되면 대상은 이전에 해왔던 대답과 다른 결론을 내리게 되는 것이오. 그러나 문제점은 뇌가 단일한 연결선과 회로로 구성된 기계가 아니란 것이지.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가지 못할 경우 의식은 수많은 우회로를 선택할 수 있고 소규모 회로를 수정한다 해도 그 회로의 이질성을 무시한채 다른 방법으로 자기 길을 갈 가능성이오. 따라서 우리는 상대적으로 강력하고 넓게 개통된 길을 화학적, 생물학적 처리에 의하여 생산해냈소. 그리고 우리는 이 작업을 가능케하기 위해 약간의 리셉터를 개조해냈소. 개조된 패턴을 무시하고 다른 길을 택할 확률은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아 0.7 퍼센트 정도요. 그러나 이 과정에서 대상은 분명한 혼란을 느끼기 때문에 결국엔 그 '다른길'이 그를 무기력하게 만들 가능성이 더 다분하오. 결국 대상은 주어진 생각을 행동에 옮기지 못한채 포기하고 마는거지.“
 
   "피플 김의 경우는 어떤 부분을 개조해낸 겁니까"
   "우린 그의 의식 속에 있는 죽은 아내에 대한 우호성을 제거했소. 이 작업은 무척 힘이 들었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지. 그리고 혁명사상에 대한 부분인데 우리는 그가 공동체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를 부정적인 것으로 손질해놓았지. 또 하나 '자유'와 '평등'에 대한 근본적인 욕구를 뒤틀린 콤플렉스로 바꿔치기 해버렸소. 그리고..."
   "또 뭡니까?"
   "난 같은 뇌생리학자로서 그와는 경쟁적인 관계에 있었지. 대상의 머릿속에 있는 지식으로 판단해보건데 나는 그가 별볼일 없는 과학평론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아냈소"
   검은양복은 과시욕에 젖어서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는 루터를 바라보며 콧웃음을 치고 빈정댔다.
   "당신은 안전기구가 준 시간을 또 쓸데없는데 소비했군요. 이젠 뇌생리학에 관한 한 당신을 따라올 자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남의 뇌속의 지식을 도적질할 필요는 없을 텐데. 이미 당신은 이 분야의 독보적 위치를 공고히 했으니..."
   루터 박사는 상대방의 냉소어린 칭찬에 어린 아이처럼 미소를 짓고 대답했다.
   "이제 마지막 확인 과정만이 남아 있소. 이쪽으로 오시오"
 
   3. 브레인스코프
 
   박사는 잠자는 듯 누워 있는 환자를  보더니 거대한 회색 기계 장치의 전원을 올렸다. 막대한 파워가 상승하는 듯한 곡선을 보이더니 계기류가 정상이라는 신호를 내고 출력이 100퍼센트라는 것을 화면에 명시했다. 검은양복은 하나의 벽면 전체를 덮은 감청색 평면 브라운관 앞에 서서 물끄러미 화면을 응시했다. 박사가 복잡한 계기류의 스위치를 모두 점검한 뒤 모니터의 화면을 작동시키자 흐릿한 영상이 화면에 나타났다.
   "지금은 대상의 램수면기요. 우리는 그의 꿈속에 나타나는 여러가지 영상들을 확인할 수 있지. 이건 내가 만든 브레인스코프라는 기계요"
   "선명도가 좀 떨어지는 것 같군요"
   "사실 이게 검색의 불편한 조건이오. 말하자면 일종의 불확정성의 원리랄까. 세부를 선명하게 만들면 전체적인 배경이나 다른 부분들이 더 흐릿하게 나타나지. 마치 시각의 특성과 마찬가지로.. 만약 선명한 상을 얻기 위해 부분부분을 포착해서 하나의 사진으로 만든다면 엄청난 시간이 걸릴 뿐더러 변화하는 의식을 한낱 정지된 것으로 밖에 파악할 수 없는 한계가 있소. 그러니까 이건 동화상(動畵象)을 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이지요 "
   "지금 확인하려는 것은 뭡니까?"
   "내가 의문점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크게 두 가지인데 이 대상의 정체성이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아주 단순하고 유아적이라는 것이오. 무의식의 세계는 피질에서 일어나는 일들 중 가장 무게 있고 충격적인 것들이 프라스크 속의 침전물처럼 깊은 심연으로 가라앉는 것이오. 무의식을 이루는 인자들은 끄집어내기도 힘들 뿐더러 알기 힘든 연관성을 가지고 모여 있소. 이것은 언뜻 보기엔 가장 비중이 큰 핵페기물을 담은 그릇 같은 거지. 잡동사니처럼 널려있기도 하고 일부분은 놀라우리만치 논리정연하기도 하고. 또 하나는 대상이 갖고 있는 의식의 결절점들, 마치 동양의 명상처럼 아무것도 이루지 않은 시간대, 그리고 분명히 의식이 살아있는 시간대가 어떻게 존재하는지에 관한 의문이오."
 
   박사가 예정된 스위치를 누르자 화면은 밝은 색에서 점점 어두운 색으로 변해갔고 몇 분이 지나자 어두운 동굴에서 무언가가 웅크리고 있는 광경이 흐릿하게 비쳐졌다. 박사는 이 광경을 홀린 듯 바라보고 있다가 고개를 돌렸다.
   "이것이 대상이 가진 무의식의 중요한 부분이오."
   검은양복은 유심히 관찰했지만 도대체 어떤 광경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작게 움크린 물체는 언뜻 보기엔 사람과도 같았지만 그것조차 확신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그 물체는 가끔씩 경련을 일으키는 듯 움찔거렸다. 대담한 성격의 그 조차도 이 장면에서 느껴지는 괴기스런 분위기에  압도되어 침묵을 깰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는 잠깐 루터 박사가 생각보다 천재적이고 광적인 인물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박사는 화면을 분석하기 위해 몇가지 화학작용을 동반한 명령어를 기계에 기입했다. 그러자 화면 속의 동굴 위로 희고 춤추는 듯한 영상이 흔들거렸다. 순간 검은양복은 머리털이 쭈삣 서는 공포감을 느꼈다. 화면엔 교수형을 당한 한 여자의 흔들거리는 시신이 나무를 배경으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검은양복은 직감적으로  그게 죽은 준 리의 영상이란 걸 깨달았다. 그러나 그 영상은 대상의 무의식 속에서 조합된 것일 뿐 실제의 것은 아니었다. 검은양복은 준 리가 교수형 당할 때의 모습과 자료가 담겨진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 교수형 기계는 일반인들에게는 공개가 되지 않은 것으로 금속제 의자와 목부분을 두르는 플라스틱 섬유가 튀어나온 장치였다.
 
   박사는 검은양복의 의문을 풀어주려는 듯 그의 굳어진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며 말했다.
   "이것은 동굴 속에서 울고 있는 유아의 영상이오. 그는 울면서 죽은 사람들을 반복적으로 생각하고 있지. 나는 맹세코... 이처럼 단순한 무의식의 창고를 본적이 없소. 비유를 들자면..."
   잠시 입을 다물더니 박사는 불현듯 불화가 치밀어 중앙에 놓여진 탁자를 주먹으로 쾅 내리쳤다.
   "우리는 심해를 탐사할 수 있는 훌륭한 잠수정을 겨우 만들어서 오백년 전에 침몰한 해적선을 찾아 내려간거요. 모진 수압도 견디고 길고긴 여로 끝에 겨우 바닥에 와 닿았단 말이오. 그런데 그 바닥엔 아무것도 없고 이런 낙서만이 써 있는 것이오. '여기엔 아무것도 없다 이 멍청이들아!'라고. 나는 피플 김이 왜 어린아이용 동화 출판사 같은 것을 찾아서 안주하려 했는지에 대한 간단한 답을 찾아냈소."
   검은양복은 빠르게 이성을 되찾고 물었다.
   "이 영상이 의미하는 바가 뭡니까?"
   박사는 검은양복의 질문을 무시한 채 계속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이 영상을 찾기 이전까지 우리는 그의 뇌속에 있는 수만개의 방을 뒤졌소. 그것을 기록해 놓은 종이의 분량과 정보량은 이제 웬만한 백과사전을 넘을 정도란 말이오. 그런데 결과가 고작 이거요... 방금 뭐라고 하셨소?"
   "이 영상이 주는 정보가 뭐란 말입니까?"
   "그건 아주 단순한거요. 단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지. 이를테면...."
   "이를테면?"
   "그건 '분노'와 '공포'요"
 
   4. 변절자
 
   피플 김은 병원의 독실에 혼자 앉아서 명상에 잠겨 있었다. 그는 자신이 22일전 졸도를 해서 병원으로 실려왔다는 것과 긴 시간동안 치료를 받아서 치명적인 뇌출혈이 성공적으로 완치되었다는 것을 들었고, 수술의 결과에 대해 만족을 느끼고 있었다. 보호자도 없이 독신인 그를 간호사들과 의사들은 따뜻한 눈초리로 대해주었고 아주 오랜만에 평화스런 기분을 만끽하고 있는 중이었다. 반쯤 열려진 창으로는 한여름의 무더운 공기를 가르며 뛰노는 아이들의 외침이 경쾌하게 들려왔다. 유난히 아이들을 좋아하는 그였기에 그런 모든 풍경들이 단지 그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이윽고 작은 노크 소리가 나더니 그의 주치의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들어왔다. 주치의는 오십대 중반쯤 되보이는 인물로 백발에다 흰 수염을 기르고 있어서 아주 온화하게 보이는 인물이었다.
 
   "기분이 어떠십니까?"
   "아주 좋아요. 모든 게 더할나위 없이 만족스럽습니다"
   "사실은 몇가지 조사를 하려고 합니다. 김선생님의 뇌활동은 극히 정상이지만 우리로서는 형식적으로나마 이런 조사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뭔가요?"
   "신경복구 테스트라고 하는 거죠"
   "아... 뭔지 알겠습니다"
   "하하. 저보다는 김선생님이 더 잘 아실테지만... 무례를 무릅쓰고 하지 않을 수 없군요"
   주치의는 잠시 설문지를 들여다보더니 약간 인상을 찡그리고 말했다.
   "이런, 인턴들이 짓궂은 문제를 만들어 냈군요. 김선생님이 유명인사인 것을 시기하나본데."
   "하하. 아무래도 좋습니다."
 
   "첫번째 문제는 이겁니다. 당신은 현재의 환경오염과 그 정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건 제 전공분야가 아닌데. 환경보건국에서 알아서 할 일이죠. 무지를 무릅쓰고 말해야 한다면 이번에 환경국에서 내놓은 안건에 거의 찬성을 하고 있습니다"
   "두번째 문제는.. 자본기업의 트러스트가 자동화 공정에 편입된 노동자들을 기계 부품화하는 현실에 대해서 어떤 의견을 가지고 계십니까?"
   피플 김은 잠시 이마에 주름을 모으더니 혼란스러운 듯 대답했다.
   "문제가 현실을 정확히 지적했는지 의문이 드는군요. 전 세계의 단일화 자동화 공정은 피할 수 없는 과학 기술의 미래입니다. 이 과정에서 약간의 비인간화가 진행될 수도 있다는 보지만 그건 구조적인 문제는 아니지요.  언제나 인간의 지혜는 평화적인 방법으로의 해결책을 가지고 있는 법이니까요"
   "아주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자본 트러스트로 이룬 국제 자본연맹의 과학기술은 모든 존재를 상품 이미지화시키고 물신화시켰다'라는 명제에 대한 선생님의 의견은?"
   "일고의 가치도 없군요. 저는 사회학적인 전문지식은 없지만, 아마도 과학적 발전과 사회구조의 재편이 가소화됨에 따라 동반되는 가치관의 혼란, 더 정확히는 사회집단적인 신경증에서 나온 말처럼 보이는군요."
 
    마지막 말에서 피플 김은 약간의 두통이 오는지 더욱 인상을 쓰고 이마의 주름을 모았다. 그러자 주치의는 상대방의 말을 확신시켜주려는 듯 과장된 제스츄어로 무릎을 쳤다.
   "호오. 김선생님의 생각은 저와 아주 비슷하군요. 이렇게 생각이 같은 사람을 만나기도 드문 일인데.. 검사 결과는 곧 통보해 드리지요. 개인적 소견은 불필요하겠지만 제 사견으로는 아주 정상적입니다"
   "고맙습니다"
   "김 선생님, 선생님은 혼자의 몸입니다. 건강을 돌볼 사람이 없으면 자신이 신경을 써야 하는데 현대와 같이 정신없는 사회에선 그게 힘들죠. 어차피 자기 건강은 자기가 돌보아야 하겠지만. '나는 혼자다'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정기적인 진단을 받거나 주치의를 정기적으로 만나보십시오"
   순간 피플 김은 전기에라도 감전 된 듯 몸을 움찔했다. 주치의로 가장한 루터는 깨닫지 못했지만 피플 김의 뇌리 안에선 섬광처럼 한 문장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 문장은 『광역 언어 검색 결과 주어진 신호가 안전지침 1호의 조건에 불충분합니다. 연결회로를 다시 폐쇄합니다』라는 것이었다. 피플 김은 잠시 혼란에 빠졌으나 이내 평정을 되찾고 냉정히 자신을 둘러보았다. 순간적인 착각이었을까. 피플 김은 두려움과 당혹감에 젖어서 돌아서는 주치의의 등만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퇴원하여 자신의 낯익은 방에 도착하자마자 피플 김은 가방을 놓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가 방을 나오기 전과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벽에 걸린 커다란 액자와도 같은 초박형 통신 모니터는 여전히 켜놓은 채였다. 문득 중앙의 소파 위에 걸린 죽은 아내의 사진을 보는 순간 그는 낯설은 감정에 충격을 받았다. 다부진 입매무새를 가져서 강인해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아주 귀엽고 예쁜 인상의 아내가 왠지 역겨운 감정을 느끼게 했던 것이다. 이전까지 그런 감정을 느낀 적은 맹세코 한번도 없었다. 그러나 그 느낌은 그의 뇌리 깊은 곳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이내 머리속을 가득 메웠다. 피플 김은 아내의 사진을 떼어 쓰레기통으로 집어 던졌다. 그는 외투를 벗어서 소파에 집어던진 뒤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정말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무엇 때문에 저 여자를 잊지 못하여 아직까지도 사진을 걸어 놓았던 것일까. 피플 김은 눈을 지긋이 감고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겼다.
   
   10년동안을 한결같이 침묵을 지켜온 아내를 버린 것은 우연한 사건처럼 느껴졌지만 의혹을 지울 수는 없었다. 피플 김은 눈을 뜨고 허공을 응시한 뒤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이젠 정말 혼자군."
   이 중얼거림은 그의 혀의 굴곡을 타고 흘러 강력한 접점을 자극시키고 잠재워 두었던 의식의 핵을 일깨웠다. 그의 의식의 정수, 혁명사상과 뇌생리학의 고등지식, 그리고 복잡한 무의식과 아내에 대한 연민을 담은 뇌의 핵은 혀 안에 감추어져 있었다. 순간 패쇄되었던 회로가 연결되는 강한 자극이 그의 몸을 경련시켰고 그의 머리 속에는 밝고 강한 문장이 지나갔다.
   
  『광역 언어 검색 결과 안전지침 1호에 부응하는 신호를 감지했습니다. 패쇄된 신경회로를 개방합니다』
 
   그는 순식간에 자신의 존재에 대한 자각을 하기 시작했고 20여일간의 납치의 진상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한 자각과 동시에 벌떡 일어나 굳게 잠겨진 욕실 옆의 철문으로 걸어갔다. 그 문을 열자 창문도 없고 이렇다 할 가구도 비치되지 않은 넓은 방이 나타났다. 문을 닫자 방은 곧 완벽한 암흑에 잠겼다. 그는 방의 중앙에 놓여있는 점자판 책들을 헤집고 조그만 스위치가 연결된 기계 앞에 익숙하게 앉았다. 이내 피플 김은 뇌활동을 거의 정지시키는 명상에 들어갔고 혀 안에서 맥박치는 뇌핵과 뇌핵에 연결된 유일한 신경원이 숨겨진 오른손 검지 손가락을 스위치 위에 놓았다. 하나의 촉각과 그것을 잇는 뇌핵만이 또렷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피플 김은, 환희에 찬 어투로 자신의 동료들에게 모르스 부호를 보냈다.
 
   『 20일간 정신정화 위원회에 납치되었었음. 조직의 보위에 관련된 사항은 전혀 누설을 하지 않음.  차후에 있을 중앙모임에 참가 가능할 것임』           (1994)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7/04/25 02:50 2007/04/25 02:50

6 Comments (+add yours?)

트랙백1 Tracbacks (+view to the desc.)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를 읽고

View Comments

2007.02.25 17:54에 쓴 글
   

역사모노드라마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 당대, 2005
Marx in Soho by Howard Zinn, 1999
극본 하워드 진, 번역 윤길순, 출연 마르크스
 
읽은지 한달이 거의 다 된 것 같다. 읽고난 소감글을 쓴다고 했는데 상당히 늦었다. 게다가 서평 같지도 않고...

서울대 도서관에는 Marx in Soho가 없고, 번역본만 있다. 원본이 있으면 좋으련만.
 

Marx in Soho
런던의 소호와 뉴욕의 소호.
런던의 소호에 가본 적이 있는데, 어떠했는지 기억에 없다. 역시 그래서 기록이 중요한가 보다.

 
하워드 진은 사람들이 거의 모르고 있는 맑스, 가정을 소중히 하는 남자로서 아내와 자식들을 부양하기 위해 애쓰는 맑스를 보여주고 싶었고, 관객들에게 맑스가 공격을 받고 자신의 생각을 변호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싶었단다.
 
미하일 바쿠닌이 맑스를 방문한 것으로 나온 것은 뜻밖이다. 기회가 되면 바쿠닌 전기를 다시한번 읽어볼까. 별로 감흥이 없었던 것 같은데...
 
1인극으로 괜찮았는지는 직접 봐야 알 수 있을 듯하다. 이것만으로 별로... 물론 1인극의 극본을 처음 봐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소비에트연방이 붕괴되어 주류 언론과 정치 지도자들이 거의 미친 듯이 기뻐 날뛸 때 이 희곡을 썼다. 나는 소비에트연방은 물론 ‘맑스주의’를 지향한다면서 실제로는 경찰국가를 세웠던 나라들이 결코 맑스가 말한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었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맑스가 자신의 이론이 무자비한 스탈린주의를 옹호하기 위해 왜곡된 것을 보고 분노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세계 곳곳에서 억압적인 통치체제를 구축한 사이비 사회주의자들, 그리고 자본주의의 승리에 자못 흡족해하는 서구 정치가와 저술가들로부터도 맑스를 구해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맑스의 자본주의 비판이 오늘날에도 근본적으로 옳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가 ‘세계화’라고 하는 것도 맑스는 분명히 예견했다.
 
→ 하워드 진의 의도는 좋지만, 과연 1인극에서 이런 내용을 다 보여주지는 못했던 듯하다. 단지 그럴싸한 선동에 그치지 않았나. 맑스가 19세기에 말했던 것이 지금 21세기에 그대로 유효하리라 보는 것은 심하다. 자본주의 비판의 핵심이 지금도 관철되고 있다는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뾰루지 이놈보다 불쾌한 병은 없지요. 평생 동안 나를 괴롭혔으니까요.
어디 그뿐인가요. 내 엉덩이에 난 뾰루지를 가지고 나를 분석하려는 엉뚱한 시도까지 낳았으니, 허 참.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에 분노한 것은 뾰루지 때문이래요!"
그럼, 저들은 뾰루지 한번 안 나본 혁명가는 다들 어떻게 설명할까요?
내 뾰루지는 나의 분노 때문에 생겼을 겁니다. 그러나 뽀류지 난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한번 일해 보세요! 그리고 의사들에 대해선 내게 말하지 마세요. ... 나는 너무 아파서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뾰루지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맑스 전기를 몇 개 읽었는데, 기억에 없는 걸 보니 이 넘의 기억력은 어디에 써먹나...

여러분은 ”맑스는 죽었다!“고 떠들어대는 저 얼간이들의 말에 속아 넘어가지 않았군요. 예, 나는 죽었습니다. … 그러나 죽지 않았지요. 여러분에게는 이 말이 궤변으로 들리겠지만. (pp.31-32)
  
→ 영화 「괴물」에서 송강호가 “나는 죽었는데, 죽지 않았다”고 외치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들도 언론의 자유를 신봉한답니다…. 하지만 일정한 한계를 그어 놓고 그 안에서만 허용하지요…. 그들은 자유주의자이거든요.
이제 여러분은 “맑스가 돌아왔다!”고 말하고 다녀도 됩니다. 아주 잠시 동안이지만 말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맑스주의자가 아닙니다. (p.36)
 
나는 『라인 신문』이라는 신문의 주간이었습니다. 별로 혁명적이지도 않은 신문이었지요. 그러나 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혁명적인 행위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p.38)
  
→ 진실, 프라우다가 진실이라고 했던가. 그리고 80년대 후반 「노동계급」의 학생그룹에서 내던 기관지 이름이 ‘진실’이었다. 진실을 말하는 것만으로 혁명적일 수 있구나.
 
내가 (피퍼에게) 물었지요. “맑스주의 협회라고? 그게 뭔데?”
“우리는 일주일마다 만나 당신의 저작을 가지고 토론하기로 했어요. 한 문장 한 문장 큰소리로 읽고 자세히 검토할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우리를 맑스주의자라고 하는 거예요. 우리는 당신이 쓴 것은 모두 다 전적으로 믿어요.”
“모두 전적으로?”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지요.
“예. 그리고 다음 맑스주의 협회 모임 때는 당신이 오셔서 강연을 해주시면 정말 영광이겠는데요, 맑스 박사님.”
그는 나를 항상 맑스 박사님이라고 불렀지요.
“난 그럴 수 없어.” 내가 말했어요.
그러자 그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묻더군요. “왜요?”
“나는 맑스주의자가 아니니까.”
 
문제는 그의 사고방식이었어요. 참 난감한 사람이었지요. 마치 위성처럼 내 말 주위만 빙빙 돌며, 자기 딴에는 내 말을 세상에 그대로 전한다면서 왜곡하기 일쑤였으니까요. 게다가 그는 그렇게 왜곡시킨 것을 무슨 광신자처럼 무조건 옹호하고 나섰지요. 그걸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은 막무가내 비난하면서 말입니다.
  
→ 나는 무슨 주의자임을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게 참 부담스럽다. 맑스주의자든, 사회주의자든... 무엇을 전적으로 믿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당의 무오류성 같은 것도 당연히 기각되는 것이고, 내가 아는 것 또한 아무리 충분한 근거와 사실, 경험과 이론에 기초하여 형성된 것일지라도 언제든지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앞으로 내가 무슨 주의자를 자처하게 될 때 그게 진의를 왜곡시킬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나와 생각이 다르거나 어떤 현상을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그게 틀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항상 기억하고...

  
한번은 내가 예니에게 말했지요.
“당신은 내가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는지 알아?”
그러자 예니가 말하더군요. “노동자 혁명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 것?”
“아니, 혁명은 일어날 거야. 그런데 그것이 피퍼 같은 사람들에게 넘어가는 것. 권력이 없을 때는 알랑거리는 아첨꾼이다가 권력을 잡으면 난폭한 깡패로 변해 큰소리나 뻥뻥 치는 허풍선이가 되는 사람들 말이야. 이런 사람들이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대변한다면서 내 사상을 세상에 해석해 줄 거야. 그리고 새로운 성직 계급을 조직하겠지. 파문과 금서목록, 종교재판, 총살형 집행대가 있는 새로운 위계질서 말이야.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공산주의라는 이름으로 행해질거야. 자유가 있는 공산주의는 한 백 년쯤 뒤로 미루어 놓고, 세계를 자본주의 제국과 공산주의 제국 두 개로 나누고 말이지. 그들은 우리의 아름다운 꿈을 짓밟고, 그 꿈을 흔적도 없이 없애버리기 위해 또 다른 혁명을 감행할 거야. 어쩌면 그게 두 번 세 번이 될지도 몰라.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그거야.” (pp.43-45)
   
→ 나는 가끔씩 진보, 변혁을 외치는 이들의 행태에 대해 실망할 때가 많다. 그리고 내 자신에게서도 마찬가지이고... 그 연장선상에서 이들이 혁명을 통해 권력을 잡게 될까봐 두렵다. 그 혁명을 유지하기 위해 저지르는 것들을 정당화하는 모습들,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금과는 다른 미래의 씨앗을 오늘 보여주어야 한다. 혁명은 언제 오는 줄도 모르게 갑작스레 올 수도 있지만, 그에 대한 준비가 없이는 그냥 가버린다. 우리의 삶에서 현실을 지양하고 다른 세상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삶이 필요하다.

  
예니는 『자본론』이 꼭 코끼리 같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 책은 일반 대중을 겨냥해서 쓴 『공산당선언』이 아니라고 말하려 했지요. 이것은 분석이니까.
그랬더니 그녀가 말했어요. “누가 분석하지 말래? 하지만 이것도 『선언』처럼 강력하게 외치란 말야.”
… 그러고는 나에게 『자본론』 첫 구절을 읽어주었지요. 물론 나를 고문하기 위해서랍니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지배적인 사회의 부는 엄청난 상품의 집적으로 나타난다.”
예니가 그랬지요. “독자들이 읽다가 잘 거야.”
그런데 한번 물어봅시다.
이 책이 그렇게 지루해요? 어쩌면 조금 지루할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예니가 뭐라고 한 줄 아세요?
“세상에 조금 지루한 건 없어.” (pp.80-81)
 
예니는 항상 물었지요. “우리가 다가가려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다가가고 있을까?” (pp.81-82)
 
→ 내가 쓴 글을 볼 때마다 짜증이 난다. 왜 나는 이렇게 글을 어렵게 쓰는 것일까. 아마도 글을 쓰려고 했던 주제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다 말하려고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자본론』이 어려웠던가. 이 책을 읽지 않은지도 15년이 넘었다. 나는 아는 것도 없이 떠들고 있지 않았는지...
 
세상에 조금 지루한 것은 없다. 맞는 말이다.
  
예니는 나의 생각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보기에 어쭙잖게 고고한 학자인 척한다 싶으면 도저히 참지 못했어요. 그래서 가끔 내게 말했어요.
“지상으로 내려오시죠, 헤어 독토르.”
예니는 내가 잉여가치론을 평범한 노동자들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내가 말했어요. “먼저 노동가치설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그리고 왜 노동력이 생계유지비에 의해 그 가치가 결정되면서도 다른 모든 상품에 가치를 부여하는, 그것도 항상 노동력의 가치보다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특수한 상품인지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어느 누구든 잉여가치론을 이해할 수 없어.”
그러면 그녀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습니다. “아니. 그러면 안 돼. 당신은 그냥 이렇게만 말하면 돼. 그러니까 여러분의 고용주는 여러분이 겨우 먹고 살 수 있을 만큼만 임금을 준다. 그러니까 간신히 생존하면서 일을 할 수 있을 만큼만 주는 것이다. 그러나 고용주는 여러분의 노동력에서 여러분에게 지불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는다. 그래서 여러분은 계속 가난한데, 고용주는 갈수록 부자가 된다.”
좋아요, 세계 역사에서 지금껏 나의 잉여가치론을 이해한 사람이 백 명밖에 안된다고 칩시다.
그러나 그래도 그건 분명히 맞는 이론입니다! (pp.87-89)
 
→ 위와 같은 대화가 사실이었을지라도 맑스와 같이 강변하지 말자.
 
예니는 원래 복잡한 사상을 항상 단순하게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더라, 먼저 학자고 그 다음에 혁명가라고 비난했지요.
그리고 내게 말했어요. “당신의 지식인 독자들은 잊어 버려. 그리고 노동자들에게 말해.”
예니는 내가 오만하고 편협하다고 했습니다. “왜 당신은 부르주아 계급을 공격할 때보다 다른 혁명가를 공격할 때 더 격렬해?” 하며 그녀는 내게 물었지요.
예를 들면 프로동의 경우가 그랬는데, 그가 『빈곤의 철학』이라는 책을 썼기에 나는 『철학의 빈곤』으로 응수했어요. 당연히 나는 현명한 처사라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예니는 이런 나의 응수를 무례한 처사라고 생각했어요. (pp.90-91)
  
→ 나의 화살은 어디를 향해 있을까.
 
예니는 수도가 끊어지고 가스가 끊어지는 더할 수 없이 힘든 상황에서도 살림을 꾸려나갔지요. 그러나 여성해방 문제에서는 결코 지치지 않았습니다. 예니는 여성들이 집 안에만 머물러 밥하고 빨래하느라 생명력이 소진되고 있다고 말했답니다. 그래서 그녀는 집 안에만 머물러 있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이론적으로는 여성해방론자이면서 실제로는 여성 문제를 등한시한다고 비난했어요. 그러면서 이러더군요. “당신과 엥겔스는 남녀평등에 관한 글을 쓰면서도 실제로는 남녀평등을 실천하지 않아.” (pp.93-94)
  
저들은 소비에트가 붕괴되었으니 공산주의도 죽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엥겔스와 내가 스물여덟, 서른 살에 쓴 『선언』을 읽어보기나 했을까요?
“낡은 부르주아 사회 대신에, 그 사회의 계급과 계급 갈등 대신에, 우리는 각 개인의 발전이 모든 사람의 발전의 조건이 되는 연합체를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저들이 공산주의의 목표를 알기나 할까요? 개인의 자유! 동정심 있는 인간 존재로서 자신을 계발하는 것을!
자신과 의견이 맞지 않는 사람을 총살하는 것―그것이 어떻게 내가 평생을 바친 공산주의일 수 있습니까? (pp.96-98)
  
→ 내 말이... 하지만 “자신과 의견이 맞지 않는 사람을 총살했던 것이 공산주의”였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앞으로 그렇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어떻게 할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바쿠닌에 따르면) 우리가 타고난 부르주아지였답니다! 물론 바쿠닌에 비한다면, 모든 사람이 부르주아지이지요. 바쿠닌은 돼지처럼 사는 길을 택했으니까요. 그래서 만약 여러분이 돼지처럼 살지 않으면, 혹시 여러분의 머리를 덮어줄 만한 지붕이 있으면, 거실에 피아노가 있으면, 신선한 빵과 포도주를 좀 즐기면, 바쿠닌에게는 바로 여러분이 부르주아지입니다.
나도 그가 용기 있는 사람이라는 건 인정합니다. 그는 감옥에 갇혔다가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나야 했고, 그곳에서 탈출하여 세계를 떠돌아다녔습니다. 가는 곳마다 혁명을 선동하려고 하면서 돌아다녔지요.
그는 무정부주의 사회를 원했지만, 그가 구축하는 데 성공한 유일한 무정부주의는 다름 아니라 그의 머릿 속에 있었습니다. (pp.101-103)
 
바쿠닌의 머리에는 무정부주의라는 쓰레기가 가득차 있었습니다. 낭만적이고 공상적인 어리석은 생각이었지요. 나는 바쿠닌을 인터내셔널에서 쫓아내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예니는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왜 혁명가 집단은 여섯만 모이면 항상 누굴 제명하지 못해 안달이냐고 말했습니다. (pp.104-105)
  
“내가 말한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뭔지 알고 싶어? 그럼 파리 코뮌을 봐, 그게 진짜 민주주의야.”
선거가 일종의 서커스가 되어버린 영국이나 미국의 민주주의, 사람들이 결국은 구질서의 수호자 가운데 한 사람을 뽑아, 어떤 후보가 이기든 여전히 부자가 통치하는 나라의 민주주의가 아닌 진짜 민주주의 말입니다.
파리코뮌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가난한 사람들을 대표한 합법적인 정치기구였죠. 파리 코뮌에서는 법이 가난한 사람을 위해 존재했습니다. 그래서 부채를 탕감하고, 집세의 지불을 유예하고, 전당포들에게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생활필수품을 되돌려 주게 했습니다. 코뮌 사람들은 노동자보다 월급을 많이 받는 것도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빵 굽는 노동자들의 노동 시간도 줄이고, 누구나 극장에 공짜로 들어갈 수 있는 방안도 계획했지요.
 
코뮌은 학교는 “아이들에게 자기와 똑같은 인간을 사랑하고 존중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목적이라고 선언했습니다.
학교에서는 자본주의 세계에서 성공하는 데 필요한 것은 모두 가르치지요. 하지만 젊은이들에게 정의를 위해 투쟁하라고는 가르치나요?
파리 코뮌을 세운 사람들은 그 점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말로만 가르친 게 아니라 행동으로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전제 정치의 도구이며, 심지어는 전제적인 혁명 정부의 도구로 쓰였던 단두대를 없애버렸지요.
거리는 항상 사람들로 가득 찼고,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언제나 토론이 벌어졌지요. 사람들은 서로 나누고 공유했습니다. 그들은 이전보다 훨씬 자주 웃는 것 같았습니다. 모두 친절하고 상냥했지요. 거리에는 경찰의 ‘경’ 자도 보이지 않았지만, 안전했습니다. 예, 그것은 바로 사회주의였습니다! (pp.110-115)
  
→ 맑스는 『프랑스 내전』에서 파리 코뮌을 찬양했지만, 사실 이를 실현한 것은 정치적 국가가 폐기되는 사회형태를 생각했던 프루동파의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바로 아나키스트였다.   
바쿠닌과 맑스가 논쟁한 것으로 나오지만, 어쩌면 파리 코뮌은 바쿠닌의 생각과 더 가깝지 않았을까.
  
파리코뮌도 2달만에 독일군에 의해 함락된 것이 아니라 계속 지속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기라타니 고진이 『일본정신의 기원』에서 언급한 것처럼 관료적인 고정화가 일어나지 않았을까. 중앙집권적인 그룹이 계속 권력을 유지하면서 관료적인 지배를 유지했을지도 모른다. 대의제와 민주주의의 문제에 대해 좀더 깊게 고민할 필요를 느낀다.
 
  
이 사람들이 모두 자신이 노동자이고 따라서 공동의 적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럼 자신을 실현하기 위해, 자신의 진정한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연대할 것입니다. 그것도 자기 나라에서만이 아니라 국경을 넘어서요. (p.131)
  
새로운 산업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일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의 일에서 소외됩니다. 그리고 기계와 매연, 악취, 소음이 사람들의 감각에 침투하면서 자연으로부터도 소외되지요. 사람들은 또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며 서로 적대하면서,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 일어나면서, 서로에 대해 서로 소외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이 아닌 삶을 살면서, 자신이 정말 살고 싶은 삶을 살지 못하면서, 그런 삶은 꿈이나 환상 속에서나 가능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소외되지요. (pp.131-133)
  
→ 맑스가 『경철수고』에서 소외된 노동을 1) 노동 생산물로부터의 소외, 2) 생산 활동, 즉 노동 그 자체로부터의 소외, 3) 유적 존재로부터의 소외, 그리고 4) 인간으로부터 인간의 소외의 형태로서 설명한 내용이 마지막에 나온다. 이게 맑스 이론의 핵심은 아닐 터...
  
래디컬하다는 것은 바로 문제의 뿌리를 파악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뿌리가 바로 우리입니다.
  
이제 더 이상 자본주의니 사회주의니 하는 말은 하지 맙시다. 그냥 이 지구의 엄청난 부를 인류를 위해 쓰자고 합시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도록 합시다. 식량과 의약품, 깨끗한 공기와 맑은 물, 나무와 풀, 즐거운 가정, 몇 시간의 노동과 그보다 많은 여가 시간을 줍시다. 그리고 그걸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은 누구냐고 묻지 마세요. 인간은 누구나 그럴 자격이 있으니까요. (p.134)
 
→ 급진적이라는 것은 문제의 뿌리를 파악한다는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7/04/25 02:45 2007/04/25 02:45

댓글0 Comments (+add yours?)

트랙백0 Tracbacks (+view to the desc.)

고정희 - 새 시대 주기도문

View Comments

고정희 시인에 대해 잘 몰랐었다.

『또 하나의 문화』 창간 동인으로 여성주의자였으며, 90년대 초반에 불의의 사고로 타계했다는 것 밖에..

창비에서 나온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라는 유고시집 또한 그저그런 시가 있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김규항님의 블로그에 갔다가 그의 관심이 단지 여성주의에만 쏠려 있었던 것은 아님을 알게 되었다.

아래 시가 들어있는 그의 시집을 읽어볼 기회가 있겠지.

 

사실 나는 '새 시대'라는 말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새 시대' 이전과 별로 다르지 않을 것 같아서이다.

그래서 '새~'라는 말이 들어가는 조직, 단체, 개념들도 그리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고정희 시인의 아래 시에 나타난 '새 시대'도 아마 구태의연함을 표상하는 말이 아닐까. 

  


 

새 시대 주기도문

                                                     고 정희

 

권력의 꼭대기에 앉아 계신 우리 자본님
가진자의 힘을 악랄하게 하옵시매
지상에서 자본이 힘있는 것같이
개인의 삶에서도 막강해지이다
나날에 필요한 먹이사슬을 주옵시매
나보다 힘없는 자가 내 먹이가 되고
내가 나보다 힘있는 자의 먹이가 된 것같이
보다 강한 나라의 축재를 복돋으사
다만 정의나 평화에서 멀어지게 하소서
지배와 권력과 행복의 근본이 영원히 자본의 식민통치에 있사옵니다(상향~)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7/04/25 00:28 2007/04/25 00:28

댓글0 Comments (+add yours?)

트랙백0 Tracbacks (+view to the desc.)

정희성 - 너를 부르마

View Comments

네이버블로그에 썼던 글을 수정.

  

---------------------------

"누가 조국으로 가는 길을 묻거든 눈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
   
이 시가 설마 시집에 들어가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것도 대학 새내기 때 추천도서 중의 하나로 들어있었던 정희성 시인의 [저문 강에 삽을 씻고](창작과 비평사, 1978)에 포함되어 있을 줄은...
    
원래 1971년 대학신문에 실린 것이라고 하고, 시집에 들어간 것이 의외라고 보았지만 - 이 시집이 이 땅 농촌의 현실을 잘 보여주는 시집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 [저문 강에 삽을 씻고]를 읽어보니 제 생각이 잘못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70년대 후반 지식인들의 취향에 들어맞는 시집이기에 제 자리에 있다는 생각마져 들었습니다. 출처를 보니 서울대 동창회보에 실렸던 것도 있고, 정서가 딱 그것입니다.
   
[저문 강에 삽을 씻고]에 들어 있는 시 중에 노래로 나와 있는 것도 꽤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너를 부르마>입니다.
    
너를 부르마, 이 노래를 제일 많이 불렀던 때는 1989년도인 듯합니다. 물론 제 경험이지만 말이죠. 뒷풀이 자리에서 많이 불렀습니다. 황당했던 것은 1989년도던가, 5공비리 청문회를 하고 그럴 때 서울 시내에서 열렸던 집회의 마무리집회가 있던 명동성당에서 이 노래를 합창할 때였습니다. 90년대 이후가 되면 이 노래를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지만, 당시만 해도 이런 노래를 대중집회 공간에서 부른다는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더랬습니다.
   
이영미선생님이 들려주는 민중가요이야기 '노래여 나오너라'49회에 보면, 이 노래에 대해 '가사가 갖고 있는 호소력이 굉장히 크지만 대신 악곡은 분명 아마추어가 지었을 음악'이라고 평하고 있습니다. 구조가 보이지 않고, 선율은 따라갈 수 있으나 가사를 떼고 봤을 때는 어디로 가려는 음악인가 이런 걱정이 드는 음악이며, 가사의 힘으로 밀고 가는 노래라는 것입니다. 동감입니다.
   
80년대 중반엔 이와 같이 "노래가 길어지고 말이 복잡해지고 사람들을 막 흥분시키기보다는 차분하게 감정을 살살 긁어주는 노래들이 인기를 끌었"지요. 지금도 들어보면 청승맞긴 하지만, 왠지 사람의 마음을 끄는 맛이 있습니다.
   
아래 노래는 인천민중문화운동연합 노래모음 1집에 실린 것입니다. 아마추어적으로 부르는 것이 정희성 시인이 시를 썼을 때 의도했던 것과 맞지 않나 싶네요.
 

 

인천민문연 - 너를 부르마 (정희성 시, 천광우 곡) 
   
  너를 부르마

 

  너를 부르마
  불러서 그리우면 사랑이라 하마
  아무 데도 보이지 않아도
  내 가장 가까운 곳
  나와 함께 숨쉬는
  공기(空氣)
  시궁창에도 버림받은 하늘에도
  쓰러진 너를 일으켜서
  나는 숨을 쉬고 싶다
  내 여기 살아야 하므로
  이 땅이 나를 버려도
  공기여, 새삼스레 나는 네 이름을 부른다
  내가 그 이름을 부르기 전에도
  그 이름을 부른 뒤에도
  그 이름을 잘못 불러도  변함없는 너를
  자유여 (1975 창작과 비평)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7/04/24 16:55 2007/04/24 16:55

6 Comments (+add yours?)

트랙백0 Tracbacks (+view to the desc.)

'김비환(2000). 데모크라토피아를 향하여' 를 읽고

View Comments

김비환(2000). 데모크라토피아를 향하여. 서울: 교보문고.
  
정치학에서 제기되는 여러 쟁점들을 쉽게 설명하고 있다.
아무래도 강의용으로 나온 내용을 풀어서 쓴 책이라서 그런 듯하다.
하지만, 기존의 정치학 교과서의 틀을 벗어나지 못해서 구태의연한 대목이 많이 눈에 띈다.
제목은 그대로 하더라도 그에 딸린 내용은 왼쪽의 눈으로 좀더 수정해야 하지 않을까.
아무튼 여기에서 제시되는 주제들에 대해 나름의 입장 정리만 하더라도 정치적으로 올바른 관점을 지니게 될 듯하다.

  


1부 인간의 정치, 삶의 정치
  
1. 정치, 그 불가피성과 매력
  
버나드 크릭(Bernard Crick)에 의하면, 정치는 서로 다를 뿐만 아니라 심지어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는 점에서 위대한 가치가 있다. 정치는 모든 사회 집단들의 자유와 능력을 극대화시켜 줄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을 제공한다는 것이다(김비환, 2000: 18).
  
→ 통치형태의 분류에서 다수지배자의 순수형인 Polity를 법치적 민주제로, 타락형을 폭민제로 번역하고 있다. 아테네의 직접민주주의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보여준다.
 
2. 정치는 참다운 인간됨의 조건
3. 국민을 위한 국가, 국가를 위하는 국민
4. 국가의 발생과 존재근거
5. 권력, 두 얼굴의 야누스
6. 민주주의 없이 정치권력 없다?!
7. ‘표현의 자유’ 대 국가: 영화 ‘거짓말’의 경우
8. ‘포스트모던’한 정치의 모습은?
9. 권위와 권위주의 사이
  
민주주의는 권위가 부재하는 상황이 아니다. 단지 권위가 창출되고 유지되며 행사되는 방식이 전통적인 권위주의 사회와는 크게 다를 뿐이다(김비환, 2000: 62).
  
10. 질서와 삶의 비전, 이데올로기
11. 새는 보수와 진보의 양 날개로 난다
 
보수와 진보는 기본적으로 사회의 변동에 관한 태도 및 견해를 의미한다(김비환, 2000: 69).
  
12. 지역주의, 공멸에 이르는 병
 
2부 민주주의, 그 장구한 역사의 드라마
 
13. 민주주의를 아십니까?
  
민주주의는 어원상 인민 - 원래는 가난한 다수의 사람 - 을 의미하는 demos와 권력 혹은 지배를 의미하는 kratos의 합성어로서 어원적으로는 ‘가난한 다수의 지배’를 의미한다. 그래서 고전 시대의 민주주의는 무식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수적인 우세에 입각해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뜻했다. 그래서 플라톤 등은 민주주의를 가장 나쁜 정치체제로 평가했다.
그러나 사회가 진화하면서 대다수 인민들은 교육의 혜택을 받기 시작하고 물질적인 여유도 확보해감으로써 민주주의는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김비환, 2004: 81).
→ 이게 타당한 설명인지 모르겠다.
  
민주주의를 인민의 자치라는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 결과를 떠나서 민주주의는 인민 다수의 합의를 통해 정치공동체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정치원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어떤 사회․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정한 절차 혹은 수단이라고만 이해한다면,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보다 효율적인 방법이 제시될 경우에 민주주의가 불필요하게 될 수 있다.
 
민주주의는 어떤 다른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차적으로 자유롭고 평등하며 합리적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개인들의 도덕적 특성을 표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주의 그 자체는 고유한 의미와 가치가 있다.
민주주의는 자유로운 인격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므로, 다른 목적을 위해서 잠시라도 유보될 수 있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다(김비환, 2004: 82-83).
 
던(J. Dunn)은 민주주의를 ‘결코 완성할 수 없지만, 원하지 않을 수 없는’ 이상으로 표현했다. 민주주의는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는 정치원리 중에서 가장 결함이 적을 뿐 아니라,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염원을 그나마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집단생활의 원리이다. 민주주의는 오직 민중의 관심과 참여를 통해서만 숨쉬며 생존해갈 수 있다(김비환, 2004: 84).
  
14. 민주주의, 그 이상과 현실의 조우
 
슘페터(J. Schumpeter)의 경험주의적인 엘리트주의 민주주의론과 그 비판(김비환, 2004: 88)
민주주의는 정책결정과정에 민중들이 자유롭게 참여하는 정치형태가 아니라 민중이 자신들을 통치할 대표자들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제도적 장치에 불과하다.
지나친 경험주의적 편향성
민주주의에 담겨있는 본래의 규범적 의미를 제거하여 있는 그대로의 민주정치 현실을 정당화시켜 버리는 보수주의적 편향성
  
15. 민주주의, 평등한 시민권을 향한 대장정
 
미국에서는 1960년대 초에 이르러서야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투표할 수 있게 되었고, 스위스에서는 1971년에야 여성들이 참정권을 갖게 되었으며, 호주에서는 1990년대에 들어와서야 흑인들에게도 투표의 권리가 부여되었다(김비환, 2004: 92).
 
16. 자유주의, 민주주의의 파트너
17. 민주주의와 그 적들: 독재와 전체주의
  
독재와 전체주의를 구분할 수 있게 해주는 한편 독재의 의미를 보다 분명하게 부각시켜주는 것은 삶의 두 영역-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의 구분이다. 정치권력이 삶의 공적인 영역만 통제하느냐, 아니면 사적인 영역까지를 포함한 모든 삶을 통제하느냐 여부가 중요한 구분 기준이다. 
 
전체주의는 권력이 인간의 모든 삶의 영역을 통제함으로써 전체 사회를 일정한 방향으로 동원․유도해 나가는 정치형태이다(김비환, 2000: 101-102).
 
18. 아테네, 민주주의의 영원한 고향
 
아테네 민주정치의 이상과 목표는 페리클레스의 ‘장송연설’에 잘 나타나 있다. 페리클레스의 연설에 나타난 아테네 민주정치의 이상과 목표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첫째, 아테네의 민주정치에서는 권력이 소수의 수중이 아닌 전체 민중의 손에 있다. 둘째, 공적인 지위의 등용에 있어서는 계급보다는 실천 능력이 고려된다. 셋째, 사생활에서는 자유롭고 관용을 베풀지만 공공업무에서는 법률을 준수한다. 넷째, 아테네에서는 개인이 자신의 일뿐만 아니라 국가의 공무에도 관심을 갖는다.
 
이로부터 알 수 있는 아테네 민주정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덕스러운 시민이 주체가 된 정치라는 점이다. 덕스러운 시민은 도시국가의 번영과 자유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사생활을 희생하려는 각오를 갖고 있다. 그리하여 협소한 사생활의 공간을 벗어나서 도시국가의 공공문제를 토론하고 결정하는 데 직접 참여하려고 한다. 그들은 사생활에만 몰두하고 있는 사람을 전혀 하는 일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김비환, 2000: 110).
  
19. 영국혁명: 국왕은 군림하나 통치하지 않는다
 
20. 프랑스 혁명: 정의와 평등을 향한 불멸의 이정표
 
1789년 직접민주주의의 이념은 분명히 존재했었고, 이 이념은 혁명과정을 통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으며, 19,20세기의 혁명운동들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민주정부에 보다 확실한 모델을 발견하기 어려웠던 프랑스 혁명주의자들은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와 로마 공화국으로부터 모델을 끌어왔다. 이 모델은 정치적 결정과정에 대한 시민의 적극적이고도 계속적인 참여와 공화국에 대한 헌신과 충성의 정신이 중심이 된 것이다.
 
프랑스 혁명은 직접민주주의 이념을 부활시켜 실천하고자 시도했다는 점, 그리고 역설적으로 새로운 대의민주주의의 필요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근대 민주주의의 발전에 중대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김비환, 2000: 119-120).
 
21. 미국의 독립선언: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평등하다
 
혁명기 미국 민주주의의 형성과 발전에서 투표권의 확대보다 훨씬 더 중요했던 것은 평범한 민중들이 정치과정에 직접 참여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단지 투표만 했던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통치자로서 활동했다.
 
1776년 대부분의 미국혁명주의자들은 군주정을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수립했지만 혼합정 이론을 배격할 의도는 없었다. 그들은 새로운 공화국은 군주정과 귀족정, 그리고 민주정의 장점을 결합하여 구체화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리하여 형식상으로는 혼합원리를 바탕으로 한 공화제적인 정부형태가 탄생하게 되었다. 단일한 제도 내에서 위약한 통치자인 상원은 소수의 대표자들로, 그리고 강력하고 광범위한 힘을 가진 하원은 다수의 대표자들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펜실바니아의 일부 혁명주의자들은 혼합정 이론을 거부했다. 그들은 미국에는 오직 하나의 계급만이 존재하며, 정부는 단지 그들의 대표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상원을 인정하면 귀족제도가 부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결국 펜실바니아의 제헌의원들은 총독과 상원이 없는 단일한 입법체로 구성된 단순한 정부형태를 생각해냈다. 그것은 거대한 공동체에서 실천 가능한 18세기형 민주주의에 가장 근접한 것이었다. 그러나 반대자들은 단일한 행정수반과 상원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혼합정을 옹호했다. 그런 상황에서 펜실바니아 헌법의 반대자들 중 일부는 상원의 존재는 귀족이나 상층계급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을 이중으로 대변하는 것이라며 상원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양원제도를 다른 사회계급의 입장을 대표하는 제도가 아니라 온전한 신뢰를 보낼 수 없는 입법부의 두 부분으로 이해한 것이다.
 
이와 같이 상원이 민중을 대표하는 또 다른 제도라고 한다면 정부의 다른 부분들인 총독이나 재판관들도 민중을 대표하는 제도들이라고 주장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모든 권위는 민중으로부터 나온다는 공화국의 원리와 민중이 직접 통치한다는 민주정의 원리 사이에는 명확한 구분이 없어지고 만다. 1776년 헌법을 제정할 때 미국인들은 총독과 상원들이 비록 민중에 의해 선출되지만 민중을 대표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선거를 대표성의 원천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대의원들과 그들이 대표하는 민중 사이의 이해관계의 상호성이 대표성의 적합한 기준이었다. 비록 선출된 지사들이나 상원들의 권위가 민중으로부터 부여받았다고 해도, 그들은 민중과 같은 이해관계를 갖고 있지 않았고, 따라서 민중을 대표하지 않았던 것이다.
 
1780년대에 이르면 미국인들은 오직 해당 관리에 대한 실제적인 투표만이 대표성을 부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점차 선출된 모든 정부인사들을 민중의 대표로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의회의 하원은 보다 더 직접적인 민중의 대변자로 인식되긴 했지만, 더 이상 유일하고 완전한 민중의 대변자로 생각되지는 않았다. 민중은 모든 곳에서 대표되었고, 모든 정부의 인사들에 의해 대표되기에 이르렀다.
 
정부의 모든 부분들에까지 대표관념을 확장시킴으로써 미국인들은 주에서 연방 수준에 이르기까지의 많은 관리들로 구성된 새로운 연방제도를 정당화할 수 있었다. 이제 민중은 모든 곳에서 지배한다고 볼 수도 있으며, 어떤 곳에서도 지배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게 되었다. 민중은 이제 과거에 하원에서 그랬던 것처럼 더 이상 미국 정부에 참여하지 않게 되었다. 미국인들은 민중을 정부 바깥에 있는 사회계급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계속되어온 사회와 국가 사이의 동일성도 파괴되었다. 메디슨(J. Madison)에 의하면, 미국 정부의 진정한 독특성은 통치과정으로부터 민중을 전적으로 배제시킨 것이었으며, 따라서 미국은 언제나 공화국(대표체제)으로 남아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체제를 해밀턴(A. Hamilton)은 민주공화정, 즉 대의민주주의라고 불렀다.
 
1776년까지만 해도 미국의 고전적 공화주의의 핵심 이념이었던 덕스러운 지도자의 상은 공익을 위해 사익을 희생하는 헌신적인 태도였다. 그러나 이런 믿음은 빈번한 선거운동과 경쟁정치, 법률 제정시 사적 이익을 고려해야 한다는 분위기의 고조, 정당의 합법화 등 다양한 요인들에 의해 변해갔다. 장사를 하는 것이나 정치에 종사하는 것이나 모두 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일이라는 점에서 동등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공공 서비스와 봉급은 더 이상 분리될 수 없게 되었다. 토크빌은 미국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일할 뿐만 아니라, 일 자체를 명예스럽게 생각한다고 하였다. 미국에서의 민주주의를 가장 독특하게 만들었던 것은 일에 대한 미국인들의 평등주의적인 생각이었던 것이다.
 
노동에 대한 태도와 누구나 노동을 해야 한다는 평등주의적이고 민주적인 사고만큼 미국인들과 미국민주주의를 유럽과 확실하게 구분한 것은 없다. 누구나 일하려고 하고 따라서 노동계급이라 불릴 수 있는 특정집단을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사회주의 운동이 발전되기 어려웠던 것이다. 모두가 노동자였고 공직마저도 생계를 위한 일로 인식되었다(김비환, 2000: 124-130).
 
→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독특한 해석이라고 해야 하나. 이에 대해서 좀더 자세하게 파악했으면 좋겠다.
 
22. 세계를 뒤흔든 붉은 깃발, 소비에트 민주주의의 운영
 
1917년 2월, 러시아 소비에트는 1871년 프랑스에서 출현했던 자치공동체인 파리코뮌의 근대적 형태로서 등장했다. 파리코뮌(Commune de Paris)은 자체적인 입법, 사법, 행정 및 방위조직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원리는 통치과정 전체를 통해 모든 민중을 참여시킨다는 것이었다. 볼셰비키(Bolshevik)의 애초의 역할은 민중을 정치과정에 참여시키는 것이었는데, 이에 따라 소비에트에서의 민주주의는 직접적이고 참여적이었다. 어떤 면에서 이는 단순한 유토피아적 이론이 아니라 전쟁이 남긴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민중의 힘을 이용하려는 현실적인 방법이기도 했다. 산업생산의 붕괴, 연료와 식량의 부족, 기근, 질병 등 전쟁의 재앙들은 소규모의 인원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으며, 자신감과 열정이 있는 다수 민중의 힘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소비에트 민주주의는 실제적으로 실현될 필요가 있었으며, 부르주아 의회주의의 한계를 메울 수 있는 유일한 길로 생각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직접민주주의의 실제적 필요성과 낙관적인 전망에도 불구하고, 볼셰비키는 고도로 집중화된 독재체제를 발전시켰다. 인민위원회에 집중된 권력은 혁명의 장애를 제거하기 위한 비상수단으로서 정당화되었다. 볼세비키 정권이 코뮌식 민주주의를 실천하겠다고 한 약속은 실제로 포기되고 이상과 실제의 간격은 커져갔다. 소련공산당은 원래의 이상을 상황논리로 덮어버리고, 공산당의 주도적 역할을 강조하며 소비에트 민주주의를 실질적으로 포기하고 말았다(김비환, 2000: 134-135).
  
23. 대의민주주의, 그 등장의 불가피성
 
서구에서 18세기 중엽부터 산업혁명이 본격적으로 전개된 결과 경제생활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재편성되기 시작했고, 도시가 거대한 규모로 팽창됨으로써 도시의 인간관계는 원자화되었고, 익명성이 두드러졌으며, 상업적인 계약관계가 보편화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모든 시민들이 한 곳에 모여 직접 사회의 문제를 논하고 결정하는 것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불가능해졌다.
 
그러나 대의민주주의의 발전은 단순히 사람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공간적․시간적 제약 때문만은 아니다. 산업사회는 그 규모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그 구조의 복잡성에 있어서도 이전의 농경사회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고, 사회의 경제체제와 다양한 제도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이 없으면 관리하기 힘들게 되었다. 사회의 전문적인 관리를 위해서라도 국민들을 대표할 엘리트들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대의민주주의가 출현함으로써 국민들은 대표자들을 선출하는 정기적인 선거 때를 제외하고는 직접 모여서 국사를 논의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국민들은 소수의 전문가들로 하여금 국사를 담당하게 하고 자신들은 노동을 하고 돈을 벌며 여가를 즐기는데 시간을 쓰게 된 것이다. 물론 국민들은 자신의 수입 중에서 일부를 세금으로 납부하여 전문가들이 국사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이렇게 볼 때 대의제 민주주의는 전문가와 국민들 사이의 일종의 기능분화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 보면 대의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와 전문주의의 불가피한 타협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인들의 자유와 합리성을 실현할 수 있는 절차와 과정이 필요했기에 민주주의가 근대인의 도덕적 특성 - 자율성 - 을 실현할 수 있는 절차로서 요구되었다. 그러나 근대의 산업사회는 시민들의 도덕적 특성을 직접적으로 실현하기에는 너무나 그 규모가 크고 복잡해져 버렸기 때문에 사회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 필요하게 되었으며, 이런 상황은 정치참여를 통해 자율성을 실현하고픈 시민들의 욕구와는 양립하기가 어려웠다(이와 같은 근대 산업사회의 구조적 난점은 자유주의 사회의 시민들을 점차 탈정치화시켰고, 프라이버시를 더욱 신성시하도록 이끌어갔다). 그러므로 시민들의 자율성을 최소한이나마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한편(최소한의 정치참여 욕구 실현), 복잡한 산업사회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엘리트들의 주도적인 역할을 허용할 수 있는 정치원리가 절실히 요청되었고, 이에 부합한 것이 바로 대의민주주의였다. 대의민주주의는 자율성의 이상과 사회관리의 효율성이 이상적으로 결합된 민주주의 형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김비환, 2000: 136-139).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비판
하지만 대의민주주의는 시민들의 정치참여를 지나치게 최소화하고 있기 때문에 사이비 민주주의이다. 시민들은 몇 년만에 한 번씩 돌아오는 선거에서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자에게 한 표를 던지는 것이 고작이고, 그 후보자들도 자신들이 직접 추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이미 정해진 후보자들 중에서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슘페터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그리고 민주주의』(1942)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다만 민중의 지배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을 승인하거나 또는 부인할 기회를 가지고 있음을 의미할 따름”이며,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대의민주주의는 기껏해야 시민들의 지지를 받기 위해 경쟁하는 정치 엘리트의 지배권을 정당화시켜 주는 정도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실현되고 있는 민주주의의 작동방식을 묘사하는 것으로 민주주의의 이상을 대체하고자 하는 시도는 매우 보수적이며, 시민들의 역할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한계가 있다. 또한 대의원들이 지적․도덕적으로 일반 시민보다도 월등히 우월하며 합리적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대의민주주의는 대의원들에게는 너무나 많은 권력을 쥐어주고, 국민에게는 너무나 적은 권력만을 남겨준다.
 
그래서 이에 대한 대안으로 대의원들의 부패와 무능력에 실망한 일반 시민들이 스스로 정치에 참여함으로써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참여민주주의 운동이 거의 모든 국가에서 발생하고 있다(김비환, 2000: 139-141).
  
→ 사회구조의 복잡성, 전문적인 관리의 필요성의 문제를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 관료제의 극복과 관련하여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다. 이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직접민주주의, 참여민주주의에 대한 논의가 공허할 수밖에 없다.
 
24. 대의민주주의의 ‘대표’: 누가, 누구를, 어떻게
 
대표개념이 사용되기 시작했을 때는 주로 두 가지 의미, ‘신탁’(trust)의 의미와 ‘대리’(delegate)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신탁으로서의 대표개념은 일반 시민들이 그 대표자에게 정치적 문제에 관한 모든 일을 책임지고 관리해 달라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일반 시민과 대표자들 간에 능력의 차이가 상당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엘리트주의의 성격을 갖는다. 대리모델에서 대리인(delegate)은 대리를 부탁한 사람의 명령과 지시에 따라서 행동하는데, 18세기의 토마스 페인(Thomas Paine)은 대리인이 선거구민들의 의사와 이익을 그대로 반영하지 않고 자신의 판단과 선호에 의지한다면, 결국 대리인 자신의 이익과 선호를 표현하게 된다는 우려 때문에 이 대리모델을 옹호하였다. 이러한 대리로서의 대표개념을 사용했던 이들은 특히 대의원들과 일반 시민들 사이의 이익이나 견해의 차이가 최소화되는 제도적 장치를 선호했다. 대표자의 임기를 아주 짧게 정한다든지, 국민소환(recall)이나 국민발의(initiatives), 국민투표(referendum)와 같은 직접민주정치의 제도들을 도입함으로써 대표자들에 대한 시민의 통제력을 극대화하는 것이 그와 같은 제도적 장치의 예이다.
 
오늘날의 지배적인 대표개념은 근대 정당제도가 발전하기 시작한 프랑스 혁명 전후기에 등장하였다. 이때부터 대표자들은 개인의 자질과 능력보다는 특정한 정당의 이념과 정책에 충실한 ‘정당인’의 성격을 갖게 되었다. 일반 시민들은 선거기간을 통해 정당이 제시하는 정책에 지지를 보냄으로써 그 정책을 실천할 수 있는 권위를 위임한다. 그러므로 대표개념은 이제 개별 정치인들과 일반 시민들의 관계로부터 일반 시민들과 정당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해되었던 것이다.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에 따르면, 대표자는 선거구에서 선출되지만 전체 국민의 위임을 받으려고 경쟁하는 정당의 일원으로서, 특정 선거구민의 뜻과 이익이 아닌 전체 국민의 뜻과 이익을 대표하는 신탁자로서 자유롭게 판단하고 행위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또 하나의 근대적인 대표개념으로 ‘유사’(resemblance)가 표현하는 것이 있다. 유사라는 용어로 설명되는 대표개념은 의회와 정부의 대표는 계급, 종교, 성, 인종 등 다양한 집단들로 균열된 사회구조를 그대로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정치란 사회의 균열상을 그대로 반영한다는 맑스주의 시각에 기초한 대표개념이다.
유사 용어를 사용하여 대표개념을 이해하려는 사람들은 의회와 같은 대표제도는 계급, 성, 인종 등과 같은 사회집단별로 할당되어야 하고, 따라서 투표자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이 내보낸 후보자에게 투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회와 정치제도의 변화에 따라 신탁, 대리, 위임, 유사의 네 가지 대표 개념들은 서로 교차하고 중첩되기도 하면서 변화하였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신탁이나 대리로서의 대표개념이 적지 않게 거론되고 있다(김비환, 2000: 143-146).
 
25. 민주주의는 정당정치?
 
‘정당은 정치적 견해를 같이 하고, 하나의 정치적 단위로 행동함으로써 주로 선거를 통해 정부를 통제하려고 노력하는 시민들의 조직’으로 정의할 수 있다. 정당은 국가의 공식적인 제도이고 정치적 이익과 견해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단이며, 공직을 위해 경쟁하고 정권의 획득을 목표로 노력한다는 네 가지 특징이 있다. 정당의 현대적 기능은 ① 이익의 대표, ② 정치 엘리트의 육성과 충원, ③ 목표의 설정, ④ 이익의 결집, ⑤ 정치적 사회화와 동원, ⑥ 정부의 조직 등이다(김비환, 2004: 147-149).
  
26. 지방정치, 민주주의의 실험장
  
27. 참여민주주의, 공동선 발견과 배움의 장
 
대의민주주의는 국민의 대표들이 주체가 되어 공동의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정치형태이기 때문에 국민의 직접선거에 의해 구성된 의회가 가장 중요한 기관이다. 그러나 오늘날 의회는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함으로써 대표성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이에 국민의 직접적인 정치참여를 활성화시킴으로써 대의민주주의를 극복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참여민주주의자들은 대의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을 대의민주주의의 성격 자체에서 찾는다.
 
오늘날 대의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의 실천적 형태이다. 자유주의 시대의 국민들은 점점 더 사적인 생활에 몰두하는 경향이 있으며, 정치참여는 정기 선거와 같은 일회성의 행사에만 국한되고 있다. 또한 자유민주주의자들은 국민들의 정치참여를 장려하기보다는 사적인 자유를 보호하는 데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 대의민주주의자들은 국민의 직접적인 정치참여는 오히려 정치적 불안정을 가중시킬 우려가 있다고 하면서 국민들을 정치적으로 무능하게 평가하는 한편, 은근히 국민들의 직접적인 정치참여를 제한하고자 하는 논리를 제공해왔던 것이다. 오늘날의 자유민주주의에서는 정치참여가 특권이 아닌 부담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으며, 고상한 인간의 특징을 나타내지도 않는다.
 
하지만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학자들은 오늘날의 정치적 대표성의 위기가 참여의 결핍에서 온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고대 아테네 민주정치의 풍요로웠던 시민생활의 이상을 오늘날의 상황 속에 다시 복구하기를 원한다. 그래야만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고, 인류가 잃어버렸던 공공생활의 풍요로움을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사람들이 서로 관심사를 공유하고 만나서 토론하는 가운데 삶이 풍부해진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오늘날의 참여민주주의자들이 대의민주주의가 단지 국민의 의사를 정확히 대표하지 못하고 행정부에 비해 무기력하다는 이유만으로 참여민주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공적 생활에의 참여가 인간의 삶을 한 단계 고양시켜 주는 가장 좋은 삶의 방식이며, 공적 생활에의 적극적인 참여는 비참여적인 삶이 줄 수 없는 공적인 자유와 행복을 체험하도록 해주기 때문에 옹호하는 것이다.
  
참여민주주의는 자유주의적 대의민주주의와 결부되어 있는 다양한 문제점들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사적인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일반 국민들은 정치적인 관심도 높지 않고 정치에 관한 지식도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국가권력이 적절히 통제되지 않을 경우 권력이 비교적 쉽게 남용될 수 있다. 권력기관들 사이에 권력을 분할함으로써 서로 견제하고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지만, 이런 제도들은 그 자체로서 권력의 남용을 완벽하게 막아주지는 못한다. 만일 권력간의 타협과 담합이 이루어지거나 한 권력기관이 권력을 독점하게 되면 행정부의 독재로 전락하든지 의회의 독선이 초래될 수 있을 것이다.
참여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의 이런 결함을 보완해주거나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즉 국민의 직접적인 정치참여는 권력의 남용과 공무원의 부패를 막아줌으로써 공화국을 민주적으로 유지시킬 수 있음은 물론 부정부패가 없는 깨끗한 행정관행을 창출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또한 참여민주주의자들은 정치에 관한 국민들의 이해와 관심을 제고하는 배움의 방법으로 참여를 이해한다. 공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참여할수록 사람들은 공적인 문제에 대해 처음에는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되고, 그렇게 되면 정보를 바탕으로 어떤 결정과정에 참여하기 때문에 올바르거나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참여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이해관계에 대해서도 이해하게 된다. 공적인 공간에서 서로 만나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경청함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넓힐 수 있으며, 자신의 이해관계를 바꿀 수도 있다. 그런 가운데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관용이 싹트게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적대감이나 이기심을 가지고 공적인 모임에 참여하게 되지만, 대화와 토론 과정에서 자신의 협소한 이기심을 털어버리고 모든 공동체 구성원들의 이익과 행복에 관심을 갖게 될 수 있다.
 
참여민주주의는 사람들의 매너를 세련되게 하고 부드럽게 만들어 준다. 반복된 참여를 통해 익숙하게 되고 다른 사람들과 접하면서 세련된 행동과 에티켓을 배우는 것이다. 참여는 사람의 생각과 이해관계에 변화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그들의 외면적인 태도와 행동도 변화시키는 전인적인 학습의 장인 것이다.
 
오늘날과 같은 복잡하고 거대한 사회 속에서 모든 시민들이 공적인 문제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토론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참여는 대의민주주의를 통해서는 성취할 수 없는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길을 열어줄 뿐만 아니라, 자기 중심적이고 폐쇄적인 삶을 사는 현대인들의 인생관과 행복관을 바꾸도록 해줌으로써 보다 풍요로운 삶의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다(김비환, 2000: 158-162).
  
→ 김비환은 참여민주주의를 토의민주주의와 비슷한 것으로 파악하는 듯하다.
 
28. 일터민주주의를 생각한다
  
우리는 중대한 국가의 일을 논의하고 결정할 때나 동료들 사이에서 공동의 문제를 결정해야 할 때 민주주의 방식을 도입하곤 한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적 문제해결 방식이나 의결방식은 많은 시간을 일하며 보내는 일터에서도 적용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일터에서의 민주주의는 법으로 강제할 일이 아니며, 따라서 기업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
  
만일 민주주의가 그렇게 좋은 집단적 의사결정 과정이라면 왜 직장에서는 민주주의를 실천하지 않을까. 물론 꽤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일을 진행하는 일터도 있지만, 흔하지 않으며, 설령 민주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도입했다 하더라도 민주주의 원칙은 그리 철저하게 관철되지 않는다. 국가도 하나의 결사이고, 직장도 하나의 결사이며, 민주주의가 좋은 집단적 의사결정 방식이라면, 왜 국가 차원의 민주주의는 법적으로 강제하면서 일터에서는 강제하지 않을까.
 
국가의 시민이 되는 것과 직장의 노동자가 되는 것은 처음부터 다르다. 보통의 경우 우리의 선택에 의해 시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출생에 의해 정해진다. 하지만 특정 국가의 시민이 되는 것과는 달리 엄청나게 다양한 직종 중에서 특정 직종을 선택할 수 있으며, 또 언제든지 다른 직종으로 바꿀 수 있다. 즉 한 국가의 시민이 되는 것은 비자발적인데 반해, 직장을 선택하고 바꾸는 것은 자유롭고도 자발적인 선택에 달려 있다는 점이 다른 것이다.
 
그런데 직장을 마음대로 선택하고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은 일터에서도 민주적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의 당위성을 크게 약화시킨다. 국가의 정치적 결정은 다른 곳으로 이민을 가는 과격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우리의 삶에 강력하고도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와 반대로, 직장 생활과 관련하여 개인이 자유를 누리는 정도는 훨씬 크고 - 직장에서의 의사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경영자의 관리방식이 참을 수 없다고 판단될 경우 개인은 언제든지 그 직장을 떠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 직장에서의 의사결정은 선택적으로만 영향을 미친다.
  
국가의 공적인 문제는 민주적으로 결정되고 처리되어야 국민들이 그 정책의 결과를 용인하고 감내할 수 있으나, 국민 자신의 의사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정책에 의해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경우 이는 견딜 수 없고 고통스럽게 된다. 따라서 국가 정치에 있어 민주주의는 어떤 비용을 지불하고서라도 실현시켜야 할 절박한 과제이지만, 일터의 경우 그와 같은 절박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유럽국가들처럼 서로 문화가 비슷하고 인접해 있는 지역에서는 국가의 선택도 비교적 용이하므로 직장을 선택하는 것과 거의 차이가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또한 어떤 특수한 지역에서는 직장이 거의 없어서 국가를 선택하는 것보다 직장을 선택하는 것이 더 어려울 수도 있다. 탄광촌과 같이 다른 직장이 거의 없기 때문에 광부 일이 아니면 다른 일을 찾아보기 힘든 경우가 그 예이다. 이와 같이 극단적인 경우를 가정한다면 일터에서도 어느 정도의 민주주의는 강제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극단적으로 억압적인 의사결정 과정과 노동자에게 불리한 정책집행은 민주주의 국가가 헌법에 보장하고 있는 기본적인 권리를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일반화시켜서는 안될 것이다.
  
대체로 민주사회의 시민들은 다양한 직종과 직장을 어느 저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임금은 그다지 높지 않지만 정책결정이 민주적으로 이루어지는 직장을 선호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정책이 다소 권위적으로 결정되더라도 임금수준이 높은 직장을 선호할 수 있다. 만일 국가가 국가 차원의 정치에서처럼 일터에서도 민주주의를 강제한다면 그것은 기업가들과 근로자들의 선택범위를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기업가가 모든 정책결정 과정에 노동자들을 참여시키고 동등한 자격으로 정책결정을 하도록 강제한다면 적지 않은 기업가들이 기업을 세우려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민주주의 국가라 하더라도 민주주의가 모든 곳에 적용되지 않으며, 또 그래서도 안된다. 기업가들이 개인들의 자율성과 합리성을 존중하여 의사결정 과정에 노동자들을 참여시키는 것이 바람직하겠으나, 이것은 그 기업의 자유재량에 맡기는 것이 원칙일 것이다. 일터에서는 시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정도의 위험이 없는 한 어느 정도의 비민주주의적인 의사결정 절차도 용인될 수 있다(김비환, 2000: 163-168).
 
→ 일터민주주의를 기업의 선택에 맡긴다면 공공부문에서는 어떠해야 할까. 국가의 선택에 따라서 결정되어야 할 텐데.
결국 선택의 자유가 중요한 요소인 것인가. 탄광촌의 사례가 극단적인 경우일까.
일터에서는 민주주의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논리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29. 전자민주주의, 낙관만 할 수 있을까?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이 일방적으로 민주주의 혹은 전체주의를 결정지을 수 없고, 현재의 정치형태(또는 과정)가 정보통신기술의 사용을 일방적으로 규정할 수도 없다. 중요한 문제는 정보통신기술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이 어떤 정치형태를 발전시키는 데 보다 유리한지 아니면 불리한지를 철저히 검토해서, 그 잠재력을 가능한 한 민주주의를 촉진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설계, 분배, 활용, 통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제는 당연히 한 사회의 문화적 특수성, 정치발전 수준, 경제구조 및 국제적 상호의존성의 정도에 관한 논의를 포괄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요소(또는 변수)들이 정보통신기술의 사회․정치적 활용의 방향과 목적을 상당부분 조건짓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를 적극적으로 이해할 경우, 즉 시민의 적극적인 정치참여라는 관점에서 이해할 경우 아터튼(C. Arterton)의 연구결과와 같은 경험적인 연구들은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이 참여지향적인 민주정치의 필요조건일 수는 있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즉 정보통신기술이 민주정치를 촉진시키는데 기여하기 위해서는 다른 전제조건들과 매개변수들을 거쳐야만 한다는 것이다. 정보의 양과 질, 정치 행위자들의 의식과 태도, 비용과 노력의 문제 등 다른 조건들이나 매개변수들에 따라 정보통신기술이 민주정치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이 좌우된다. 유석진 교수는 『정보화와 민주주의』(1997)에서 아터튼의 경험적인 연구를 요약한 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명제를 제시하였다.
 
첫째, 정보화가 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아직 이론적 경험적 차원에서 확립된 결정적인 인과관계를 설정할 수 없으며, 앞으로 많은 학술적 논의를 필요로 한다.
둘째, 정보화가 민주주의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질적인 고양이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줄 수 있다는 환경변수로서의 역할 정도에 한정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한 걸음 더 나아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가정하여도 정보화는 민주주의의 질적 고양을 위한 필요조건에 불과하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충분조건은 다시 ‘정치적’인 매개변수의 작동을 통해 만족될 것이다.
 
이 명제들은 정보통신기술의 발전 자체가 곧 적극적으로 이해된 민주정치의 심화를 가져온다는 기술결정론적 명제의 타당성을 부인하고 있다(김비환, 2000: 171-173).
 
30. 초국가체제에서 민주주의는 생존할 수 있는가?: 세계화의 문제
 
31. 유교와 민주주의가 만났을 때
 
유교민주주의는 유교로부터 자유주의, 다원주의, 그리고 민주주의와 양립 가능하고 자유주의의 한계와 결함을 보완해줄 수 있는 요소들을 발굴하여 자유민주주의와 접합시킨 형태이다. 그것은 유교로부터 그 형이상학적․우주론적 내용을 제거하는 한편 - 왜냐하면 그것은 현대의 다원주의와 자유․권리 의식과 충돌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 공동선을 고려하여 자유와 권리의 일방적인 행사를 절제할 수 있는 시민의 덕성 함양에 적용할 수 있는 요소들을 발굴하여 자유민주주의에 접합시킨 형태인 것이다(김비환, 2000: 186).
 
3부. 민주주의, 그 끊임없는 인간의 열망
  
32. 높낮이 없는 민주적 유대를 위해: 평등의 문제
 
33. 너와 나의 차이, 공존할 수 있다: 관용의 원리
 
관용은 관용하는 자의 입장에서 볼 때 존재하지 않았으면 하는 신념과 행위 또는 관행을 존재하도록 허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구성요소: 1) 관용하는 자가 못마땅해 하는 어떤 행위나 신념이 존재해야 한다. 2) 관용하는 자는 강제적인 방식으로 이 행위나 신념을 방해해선 안된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제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려는 관용의 태도는 단순한 묵인이나 체념보다는 적극적인 의미를 갖는다.
 
관용은 그릇된 것이라고 믿어지는 신념이나 행위와 관련될 때 더 중시되는 동시에 문제가 될 수 있다. 관용이 잘못된 신념이나 행위까지도 존재하도록 허용할 것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을 허용하는 것이 옳다는 판단을 내포하게 되기 때문이다. - 관용의 역설
 
관용은 반드시 관용되는 대상에 대한 부정적인 판단이나 느낌을 포함한다.
그리고 관용은 못마땅한 신념이나 태도에 대해 강제적으로든 아니면 다른 수단을 통해서든 개입할 수 있는 능력과 힘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기로 선택할 때 실천된다.
   
로크는 『관용에 관한 서한』에서 관용에 대해 옹호하였다.
볼테르(Voltaire): “나는 당신이 말하는 것에 반대하지만, 당신이 그것을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죽을 때까지 변호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자유론』: 자유의 가치를 옹호하는 일환으로 관용을 강조하였다. 관용은 사회의 개선과 지적인 진보, 그리고 지식의 성장을 위해 필요하며, 개인의 도덕적․정신적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김비환, 2000: 196-199).
  
34. 정의로운 사회의 윤곽
  
35. 법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가?: 법의 지배
  
36. 신뢰와 불신, 민주주의의 두 척후병
  
37. 민주적 절차의 조건들
 
민주적 절차의 포괄적인 특징
1) 정치적 평등의 기준. 공도엧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복종과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권위적인 결정은 정치적인 평등의 기준에 따라 내려진 결정이라는 것이다. 정치적 평등은 결정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동등한 발언권과 투표권을 갖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어떤 절차가 정치적 평등의 기준에 잘 부합한다는 것은 결정과정에 참여자들의 선호가 잘 표현되고 동등하게 반영된다는 뜻이다.
 
2) 효율적 참여의 기준. 시민들은 의제를 설정하고 결정하는 단계에 효과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시민들의 선호와 의지가 정확히 반영되지도 않고 고려되지도 않을 것이다.
 
다알(R. Dahl)은 어떤 결정절차가 이러한 두 가지 기준을 충족시키면 어느 정도 절차적 민주주의에 부합한다고 말한다. 그는 보다 완전한 민주적 절차는 이외에 ① 참여자들의 ‘계몽된 지성’이 필요하고, ② 의제의 통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즉 완전한 절차적 민주주의는 사소한 문제에 대해서만 적용되면 안되고 중요한 문제들에도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사회에서 절차적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기 때문에 ‘포용의 기준’(criterion of inclusiveness)도 요구된다. 누가 시민에 포함되는가에 대한 문제는 지역적, 역사적으로 큰 차이가 있으나, 보다 많은 사람들이 시민의 범주에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상에서 설명한 다섯 가지 기준을 완전히 충족시키는 절차민주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김비환, 2000: 220-223).
  
38. 여론정치로서의 민주주의, 과연 신뢰할 만한가?
 
39. 민주주의의 생명선인 선거, 그 빛과 그림자
  
40. 정치적 무관심의 부메랑: 프라이버시가 위협받고 있다!
  
4부 행복한 민주시민, 정의로운 민주공동체
 
41. 시민사회, 밀레니엄 민주주의의 토양
 
킨(J. Keane)은 시민사회를 ‘법적으로 보호되는 비정부 제도들의 복잡하고도 역동적인 결합체’로 정의한다. 이에 따를 경우, 시민사회를 이루는 “비정부제도들은 비폭력적이며 스스로를 체계화하고 반성하며, 그들의 활동에 ‘테두리를 정하고’ 억누르며 또 권한을 부여하는 국가와 영구적으로 상호긴장관계에 있는 경향”을 보인다.
시민사회적 시작에서 볼 때, 민주주의는 단지 정기적인 선거나 경쟁적 정당체제, 다수지배와 같은 협소한 제도적 장치에 불과한 것은 아니다. 이것은 국가제도들과 분리된 사회생활의 영역에서도 실질적인 민주적 원리들이 관철되는 것을 의미한다. 민주주의는 권력분점의 논리가 국가제도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제도 내에서도 관철됨으로써, 권력이 남용되지 않고 다양한 이해관심들이 공개적인 논의와 타협 및 합의에 따라 처리되는 것을 의미한다. 서로 긴장관계에 있는 두 영역간에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정착시켜 나가는 과정이며, 또한 각 영역 내에서 권력을 배분하고 권력행사를 공개적으로 감시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시민사회와 국가는 서로 긴장관계에 있으면서도 상호의존적인 성격을 띄고 있다. 겔너(E. Gellner)는 시민사회를 “국가를 견제하기에 충분히 강력하고, 국가가 평화를 지키고 다양한 이해관계들을 조정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방해하지는 않지만, 국가가 사회의 다른 부분들을 지배하고 원자화시키는 것을 막아주는 다양한 비정부 제도들의 집합체”라고 하였다(김비환, 2000: 244-245).
  
42. 시장과 민주주의: 반대로 뛰는 두 마리 토끼?!
 
43. 페미니즘, 자유와 평등을 향한 여성들의 행군
 
44. 사익과 공익이 어우러지는 사회, 그 풍요로움을 꿈꾼다
 
45. 국가로부터의 자유에서 국가로의 자유로
  
46. 공손함(civility), 그 보이지 않는 조화의 원리
 
민주주의는 인간의 자율성과 합리성을 실현하게 해주는 유일한 정치형태이기 때문에 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하고서 항상 예민하게 신경을 쓰면서 조심스럽게 운용해야 한다면 이것은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민주적인 태도가 습관화되어 일종의 문화처럼 우리의 사고와 판단과 행위를 인도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머리는 항상 무엇인가를 분석하고 판단하느라고 과부하가 될 것이다.
공손(civility)이라는 덕목은 일종의 문화처럼 민주시민의 ‘마음의 습관’이 되어 크게 의식하지 않아도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조절하여 부드러운 인간관계와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데 크게 공헌하고 있다. 이 공손의 미덕은 민주제도의 한계를 보완해 줄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제도의 원활하고 온전한 운용에 필수적이다.
 
쉴즈(E. Shields)는 자유민주주의 제도들이 자유민주주의를 유지하는데 다소 효과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면, 이 제도들은 공손의 미덕을 잘 구현하고 있다고 보았다. 즉 자유민주주의 제도들은 최소한의 공손의 미덕이 없으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공손의 미덕을 태도이자 행위의 패턴으로 이해한다. 공손은 시민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제도와 사회의 모든 계층과 부문들에 대한 존중과 애착의 태도이다. 근본적으로 공손의 미덕은 자신의 개인의식이 부분적으로 집단적 의식에 의해 대체된 사람의 태도를 의미한다.
 
또한 쉴즈는 공손한 태도가 ‘개인들이 서로를 보고 서로를 들으며 서로를 직접 대하는 모든 상황에 두루 작용하며, 입법부와 정치적인 집회와 같은 정치적 공간에까지 자연스럽게 미친다’고 하였다. 나아가 공손의 미덕 그 자체는 개인의 자아를 집합체의 일부로 보는 집단 자의식에 입각해 있는 정치적 행위의 양식으로서, 개인적이거나 협소한 이익보다 집단의 이익을 우선하는 규범을 내포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정착․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민주적인 제도를 구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민주적 덕성이 함양되어야 한다. 민주주의의 운용주체인 민주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운용하기에 충분히 덕스럽고 헌신적이지 않다면 민주주의는 언제든지 타락하거나 권위주의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김비환, 2000: 271-275).
  
47. 유고의 忠恕,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48. 더불어 행동하는 행복: ‘공적 행복’
 
49. 정의로운 사회, 그 행복의 조건
 
50. 한국적 민주시민의 형성을 향하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7/04/23 17:37 2007/04/23 17:37

댓글0 Comments (+add yours?)

트랙백0 Tracbacks (+view to the desc.)

Newer Entries Older Entries

새벽길

Recent Trackbacks

Calender

«   2026/06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Tag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