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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날을 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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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일요일부터 몇번이나 날을 샜나?

3. 25(일): 연구실에서 날 새다

3. 27(화): 연구실에서 날 새다

3. 28(수): 민방위 소집에 응하다. 오후에는 남부초교 학교운영위에 참석. 별로 헤롱헤롱하지 않았다.

 

3. 29(목): 논문계획서 쓰다가 지도교수의 전화를 받고 진행된 것을 넘겨주다. 그리고 다음주에 발표해도 된다는 말에 안심하여 일단 서울광장에 한미FTA반대 집회에 참석하러 가다. 민지네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 

저녁식사 후 예의상 마무리를 지켜봐야 한다는 생각에 경복궁 역의 집회마무리현장에서 지역위 당원들과 함께 보내다. 거기서 허세욱 동지의 모습을 보았다.

김민정, 박문순 동지 등과 함께 택시를 타고 와서 신림동에서 새벽 6시가 넘도록 술을 마시면서 토론하다. 2차에서는 김민정, 김수정 동지와 함께...

3. 30(금): 2시간 자고 학교에 나가 심사위원 교수들에게 연락함. 두분은 5일 오전에 양해했으나 한분이 조금 화를 내다. 쩝... 

3. 31(토): 늦게 일어나서 이래선 안된다고 생각하여 연구실에서 날을 새다. 그래도 진도는 안나간다. 분량만 많으면 뭐하나. 분석틀이 없는데...

4. 1(일): 오전에 야인님과 서희님의 전화를 받고 없는 시간을 쪼개서 전진총회에 가기로 하다. 회비와 교통비 등 6만여원이 들었지만, 젠장 별로 남은 게 없다. 내가 왜 거길 갔을까. 비몽사몽중에 거기서도 공부하는 척 논문을 봤다. 노트북은 쓰지도 않을거면서 왜 가지고 갔나.

허세욱 동지가 분신했다는 소식이 5시경에 알려졌다. 한강성심병원에 있단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총회가 일찍 끝나면 들렸다가 오자 했는데, 서울에 도착하니 11시 반.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허세욱 동지에게 넘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연구실은 12시에 문을 닫기에 와서 집에서 날을 새다. 2000원짜리 어묵이 참 먹을만하다. 집에서 그 한미FTA체결 때문에, 그리고 허세욱 동지 걱정에 집중도 못하면서 새벽 7시까지 있다가 일찍 학교에 나왔다.  

4. 2(월): 오전에 맛이 갔다. 포럼에 빠졌다. 심사위원과 지도교수가 논문계획서를 왜 주지 않는지 추궁할까봐 하루종일 조마조마하다. 허세욱 동지의 관련글을 보고 괜시리 눈물이 나왔다. 다들 왜 눈이 부어있냐고 물어도 묵묵부답. 

연구실에서 날을 샜다. 격일로 연구실에서 날을 새다 보니 수위아저씨도 항상 같은 이이다.

  

4.3(화): 봉아씨가 일찍도 학교에 나온다. 오늘도 포럼에 빠지고.. 오늘은 마무리해서 논문계획서를 드리자 했는데, 역시 불발.

집으로 책을 또 몽땅 들고 갔다. 3시경에 졸았더니 6기도 못되어서 자동적으로 깬다. 역시 논문계획서에 대신 부담 때문에...

4. 4(수): 집에서 한참 쓰고 있는데, 오후에 지도교수에게서 연락이 오다. 젠장. 어쩔 수 없이 3시경 대충 마무리해서 메일로 돌리고 복사집에 제본을 맡기다.

지도교수와 분석틀이 없다고 그 부분은 따로 쓰라고 한다. 예상했던대로다. 심사위원장은 메일을 확인했는데, 두분은 메일을 확인도 않는다. 한 교수에게는 연구실에 놓고왔으니 되었고, 한분이 문제다.

저녁 때 논문계획서 요약본을 쓰려고 했는데, 이 또한 쉽지 않다. 12시까지 마무리가 안되서 연구실에서 또 날을 새려고 이러고 있다.

지금은 반성의 시간으로 10여일을 복기중.

논문을 읽으면 뭐하나. 정리를 해야지. 정말 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4.5(목): 10시는 결전의 시간. 될대로 되라지. 그래도 요약본은 만들자. 그리고 봐서 분석틀도 좀 생각해보고...

사실 지금 수준으로 봐서는 다음학기 때 쓰라고 할 것 같다. 그게 정상인 것 같기도 하고... 일단 최선은 다하겠지만, 안되도 어쩔 수 없다.

어떻게 수정발표라도 하는 식으로 되면 오후에는 용산에 채일씨와 컴퓨터를 사러 갔다가 전진 기관지위 회의에 참석해야 한다. 밤에는 허세욱 동지가 있는 병원에 가야겠다.

다행히 어제 6시에 있었던 수술이 잘되었고, 일주일 정도 경과를 보자고 한단다. 모금에도 총력을 다해야 한다는데, 정말 없는 살림에 보탤 수 밖에 없을 듯하다. 

민중의 소리의 분신 동영상은 넘 심하다. 모자이크 처리라도 하지. 그걸 어떻게 보라고... 그런 넘들이 진보라고 하니 돌아버리겠다.

 

금요일에는 남부초교 학교운영위가 있고, 정정길 교수의 시차이론에 관한 학술토론이 있다. 어떻게 조정이 안되나.

토요일에는 3층 연구실로 내려간다. 컴퓨터를 다 볼 수 있기 때문에 프라이버시에 신경써야 한다. 일단은 짐을 옮기는 것과 배치가 문제다. 오후에 무슨 약속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암튼 앞으로 10시간만 잘 버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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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04 23:51 2007/04/04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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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민주주의를 구출하라 (한겨레, 유재현/소설가, 2007-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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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인터넷상의 민주주의, 전자민주주의에 회의적으로 변하게 된 이유를 유재현 님은 잘 지적하고 있다.


[세설] 인터넷에서 민주주의를 구출하라 (한겨레, 유재현/소설가, 2007-03-16 오후 04:52:40)
인터넷 거대자본들이 ‘참여’를 선동하는 이유, 독점·수익 높일 대량 콘텐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독점자본의 블랙홀뿐인데 민주주의의 개화라고? 참여를 거부해 소극 저항이라도 해야 한다

     
연초부터 매스컴에 UCC(사용자제작콘텐츠) 바람이 불었다. 이때의 콘텐츠란 전적으로 동영상만을 의미한다. 인터넷 속도도 빨라지고 스토리지도 대형화되고 있는 데에다 디지털동영상 제작 환경이 대중화되었으니까 자연스러운 추세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추세에 참여니 민주주의니 자못 심오한 분석을 덧붙이는 것에는 닭살이 돋는다. 웹2.0을 거론하면서 웹(인터넷)이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고도 말하는데 이것 역시 참여와 민주주의의 태그를 매달고 있다. 유행하고 있는 것은 UCC가 아니라 참여민주주의인가?
  
연초 UCC 바람의 효시를 이룬 지난 해 말의 <타임> 선정 그 해의 발명품과 인물은 유투브와 ‘유(You)’ 바로 당신이었다. 방점이 찍힌 쪽은 당연히 유가 아니라 유투브다. 타임은 UCC의 만개에 디지털민주주의의 개화라는 멋진 말을 붙여 ‘유’의 손을 들었지만 인터넷이 등장한 이래 ‘유’는 콘텐츠의 제작을 멈추어본 적이 없었다. 인터넷은 늘 당신의 콘텐츠로 홍수를 이루었으니까 이게 민주주의 개화의 이유라면 뜬금없이 2007년을 앞두고야 <타임>의 찬사를 받을 이유가 없었다. 결국 <타임>이 지목한 당신이란 ‘유투브에 정력적으로 동영상을 올려대는 당신들’을 의미했다. 이건 어떤 당신인가? 유투브란 새로운 인터넷 비즈니스 모델에 현혹되어 금융자본과 결탁한 거대자본 구글이 16억5천만 달러를 지불했다는 인터넷 벤처업계의 오래된 신화에 새로울 것도 없는 신화 하나를 더 보태준 당신들이다. 멀리 돌아볼 것도 없다. 유투브의 성공신화를 모방해 동영상 바람이 불고 있는 우리네 인터넷의 동영상 바람이 수익모델의 창출에 혈안이 되고 있는 것은 화제의 주인공인 사용자제작동영상이 결국 돈벌이 수단에 대한 관심 이상이 아닌 것을 반증한다.
  
이건 한편으로 좀 딱한 일이다. 한때 눈을 뜨면 새로운 신화 하나가 탄생하던 이 꿈의 업계에서는 유투브 정도의 아이디어가 아무것도 아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유투브 정도에 16억5천만 달러를 지불할 만큼 꿈이 희소해졌다. 상상력(꿈)이 빈곤해진 꿈의 세계에 그나마 최근의 성공으로 기록된 것이 유투브, 플리커, 딜리셔스가 만들어낸 (비즈니스)모델인데 요약한다면 이것들은 참여를 상품화한 모델이고 웹2.0의 실체이기도 하다. 결국은 독점자본의 블랙홀로 빨려들어가 이윤의 창출에 기여할 이 모델을 두고 민주주의 개화로 포장한다면 민주주의에도 여러 종류가 있으므로 이해 못할 것은 아니지만 음험하기는 매한가지다.
  
인터넷의 거대독점자본이 끊임없이 참여를 모색하고 부추기며 선동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구글과 야후, 네이버, 다음과 같은 검색서비스 자본들은 이런 종류의 참여에 의해 대량으로 생산된 콘텐츠와 데이터에 의해 유지되고 성장하는 자본들이다. 정보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이들의 독점력은 심화되며 수익성은 높아진다. 이때의 참여란 질보다 양이 우선이다. 정보의 양이 늘어날수록 검색의 중요성은 비례해서 높아지며 순위의 결정력은 강화되는데 그 순위는 (광고수입가 같은)자본의 이익에 의해 결정됨으로써 이윤을 창출한다. 이게 웹2.0 시대에 참여가 만개하는 원동력이다. 결과는 10년 전 움베르토 에코가 퍼부었던 악담대로 인터넷은 쓰레기더미가 되어버리고 그 위에서 피어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독점자본이 가꾸는 악취 풍기는 이윤의 장미일 뿐이다.
  
인터넷에서 민주주의의 현주소는 질식 직전이다. 인터넷이 등장한 이래 기술독점자본의 출현과 독점의 강화는 꾸준히 이 세계의 다양성과 민주주의를 억압하기를 멈춘 적이 없었다. 다중의 민주주의적 본성은 거미줄(웹)을 따라 이합집산하며 변증법적으로 발전하기보다는 자본의 토목으로 건설된 광폭, 고속의 하이웨이를 따라 정해진 방향으로 등을 떠밀려 왔다. 이 하이웨이에는 단지 몇 개의 톨게이트만 존재할 뿐이어서 인터넷의 공민들은 통행료를 징수당하지 않으면 빠져나갈 출구를 찾을 수 없다. 이른바 거미줄 네트의 민주주의적 가능성은 이렇게 지난 20년 동안 축소일로를 달려왔다. 이제 인터넷은 독점의 논리가 지배하는 거대한 닭장이다. 이 닭장에서 닭들에게 허용되는 것은 매일매일 (수익)의 알을 낳아주는 일이다.
  
인터넷에서 자본의 독점이 강화되는 구조는 서버-클라이언트로 표현되는 집중, 검색으로 귀결되는 대규모 데이타베이스의 축적일 것이다. 이것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인터넷에서 민주주의를 모색할 수 없다.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구글적인 참여가 아니라 P2P적인 수평적 소통의 확대이다. P2P에 대한 독점자본의 과도한 적대감은 이윤의 기회를 훔쳐가기 때문이 아니라 이념적으로 자신들이 소망하는 종류의 참여에 저항하기 때문이다.
     
검열은 민주주의에 있어서는 이제 일상적인 위기인데 구글과 야후, 네이버와 다음의 검색순위는 저강도의 검열이며 부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정보의 차단이란 고강도의 검열 또한 언제라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현실적인 위기이다. 웹2.0의 가장 건강한 모델인 위키피디아조차 그 앞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중국이 인터넷의 목을 대단히 효율적으로 조르고 있는 것을 상기할 만 하다. 이래저래 인터넷에서의 민주주의는 개화하기는커녕 위기의 수렁에 빠져 있다. 소극적인 저항의 형태로 참여를 거부하는 운동의 필요성이 절실해지고 있다. 당신이 아닌 우리들. 알 낳기를 멈추고 닭장을 빠져나갈 궁리에 몰두해보자. 특히 기술자들의 분발이 촉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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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29 23:17 2007/03/29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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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없어도 일단 짚고 넘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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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요일, 그리고 화요일 하루 걸러서 날을 샜다. 그리고 그 다음날은 쌩쌩하게...

논문 프로포절 때문이다.

하지만 제출시간은 거의 지났고,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될대로 되라지.

  

2.

한미FTA가 이미 타결된 것이나 진배없다고 한다. 

  

"한미FTA 사실상 타결됐다" ( 프레시안, 노주희 기자, 2007-03-28 오후 2:20:43)
지금은 잔여쟁점 조율 중…지적재산권 비위반제소 허용 

  
  28일 한미 FTA 협상에 정통한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한미 양국 협상단은 현재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사흘째 최종 협상을 벌이며 잔여 쟁점들을 조율하고 있으나, 그것마저도 협상 마감시한으로 못 박은 3월 31일 오전 7시(미국 시각 30일 오후 6시) 이전에 협상을 타결하기로 이미 합의했다.
 
  양측 협상단이 27일의 이틀째 회의를 28일 새벽까지 이어가면서 계속한 끝에 농업, 지적재산권, 방송·시청각 분야에서 협상 타결의 기틀이 마련됐고, 28일 오후 현재 미국 측 자동차 관세철폐 이행기간 및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등 남은 쟁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어떤 식으로든 합의를 이루기로 양측이 합의했다는 것이다.
 
쌀과 쇠고기만 빼면 농업은 다 넘겨줘도 되는 것인가.

쌀은 원래부터 협상 조건이 아니라며?

 

25일 집회에서 단식중인 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는 한미FTA가 타결된다면 노무현 정권 퇴진투쟁을 벌이겠다고 말했다. 이미 이에 대해 인권단체연석회의에서 제안하였지만, 이번엔 진정으로 퇴진시켜야 한다. 

노무현이 이런 자인지 정말 몰랐다. 그러면서도 진보를 입에 담는 망발을 보였던 그를 이대로 놔두어선 안된다.  

  

그유님이 한미FTA에 관한 사이트, 자료 등을 문의했을 때 사실 이미 끝난 것에 대해 왈가왈부해서 뭐하랴 싶었다. 그래도 대충이라도 알려주고 나니 더 아쉬움을 남는다. 나는 도대체 뭘 했을까.

  

3.

오늘 새벽에 민방위 비상소집에 응했다. 연구실에서 날새고 그대로 신성초교로 간 것이다.

1년만에 다시 듣는 '국기에 대한 맹세'.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 당연히 태극기를 별로 자랑스러워하지도 않고, 지금의 조국과 민족이 무궁한 영광이 있기를 바라지 않기 땜에 입을 다문 채, 손도 당연히 올리지 않고 삐딱하게 서있었다.

 

민방위 대원의 신조? 이런 것도 있었구나.

지진대비요령, 동정 상황, 방독면에 관한 사항을 얘기하는데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제목이라도 알아들었으니 주의를 기울였다고 봐야 하나.

 

결국 20분 만에 도장이 찍힌 참가증을 제출하는 것으로 민방위 비상소집은 끝났다.

올해의 민방위 훈련은 이것으로 끝이다.

이럴 때는 내가 정말 아저씨가 된 느낌이다.

 

4.

오후에 있었던 남부초교 2007년 제1차 학교운영위에서도 국기에 대한 경례가 있었다. 물론 금방 끝났지만...

 

교장이 새로 부임을 했고,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위한 것인 듯 위원장직을 사퇴한 이 대신에 새로 추천받아 들어온 지역위원이 학교운영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그 동안 네 군데 초중고에서 학운위에 있었고, 3군데에서 학교운영위원장을 했다는 대단한 경력의 여사님이시다. 

 

그런데 막상 사회를 보는 폼을 보니 임시로 위원장직을 수행했던 이전 부위원장보다 못하고, 당연히 이전 위원장보다는 회의진행이 서투른 듯하다. 뭐, 그래도 경력이 있으니 나름 잘하겠지.

 

나는 다른 학부모 위원들이 고사하고 김 샘이 나를 추천하여 부위원장에 선출되었다. 이것도 투표를 거쳐서 하다보니 경선은 아니지만 과반수가 나오지 않아 떨어지진 않을까 소심하게 걱정을 했다. 작년에 경선해서 나를 빼고 2표 얻어서 떨어진 기억도 있고...

 

하지만 내 자신은 내 이름에 찬성표를 던지지 않았고, 13명 중 12표를 얻어 무난하게 선출되었다. 선출소감을 준비하지 못해서 우물쭈물... 그냥 잘해보겠다? 이건 아닌데...

 

논문만 쓰려 했더니 나름대로 학운위에도 신경써야 하나.

김샘과 문샘의 전번을 얻었다. 요긴하게 써묵어야 할긴데...

 

5.

심상정 의원의 헛소리 땜에 많이 실망했다.

당비를 1만원에서 3천으로 낮추고, 1개월만 당비를 내면 당권을 가질 수 있도록 하잔다. 물론 말은 비정규 노동자를 당원으로 흡수하기 위해서라고 하고...

 

처음에는 드디어 자민통 넘들이 도발을 하는군 이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심상정이 그렇게 말한 것이다. 

레디앙에서 이 기사를 보고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레디앙 기사에 달린 리플도 다들 비판적이다. 

   

"당원 가입 한달 비정규직 한해 선거권 주자" (레디앙, 2007년 03월 25일 (일) 15:19:56 김선희 기자) 
심상정 “후보 조기선출은 필패… ‘고용안정세’ 도입해야" 

 

하지만 심상정도 심상정 캠프에 결합한 것으로 알려진 전진 회원들도 이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다. 사실상의 개방형 경선제를 하겠다는 것인데, 나름대로 생각해서 말한 것이겠지만, 도무지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가 당의 운영 메커니즘에 대해, 당이 어떻게 굴러가야 하는지에 대해 개념이 없는지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나야 쇼맨십이 강한 노회찬, 참신함이 떨어지는 권영길도 대안이 아니지만, 심상정도 별로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나의 심증을 굳혀주는 짓을 세 후보가 공히 하고 있어서 선택하는데 부담이 없다. 

이제 3명만 나오면 당연히 기권한다. 그렇다고 오종렬이나 이수호가 나온다고 그를 찍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겠지. 

 

이 전까지는 그냥 이긴 사람 우리편(내 편이 아니다)이라고 하면서 넘어갔겠지만, 이제는 누가 이기든 상관 없다. 도대체 대선의 의미가 뭘까.

  

6.

전진 총회가 4월 1일날 있다. 만우절이다.

정말 만우절 같은 총회가 될 것 같다.

이것은 전진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상임위원으로 추천된 회원들 면면히 별로다. 아무래도 여기에서도 기권 신공을 써야 할 것 같다. 이미 전진 홈페이지의 회원게시판에서 이모님이 쓰고 있긴 하지만... 

 

다들 능력이 출중한 동지들인데, 왜 전진이라는 틀로 모아놓으면 이렇게 지리멸렬하는 걸까. 나부터도 그렇다. (물론 내가 능력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ㅡ.ㅡ;;)

이걸 중앙파의 한계로만 생각할 수만은 없다.

 

어쩌다가 전진에 가입해가지고 이런 계륵을 떠안고 살게 되었을까.

이런 고민을 할 때가 아니구나.

근데 잠온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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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28 19:44 2007/03/28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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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행전략과 대안체제에 대한 고민의 중간 보고 (장석준, 200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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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준 동지가 쓴 글 중에서 주요한 부분만 옮겼다.
  
이행전략과 대안체제에 대한 고민의 중간 보고

200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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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행전략․대안체제 논의에서 주체 형성 전략의 중요성 (석사논문)
  
○ 발표자가 상대적으로 높게 평가한 것은 1970년대 스웨덴의 임노동자기금안(보다 정확히 말하면 ‘마이드너안’이라고 불리는 그 원안)과 영국 노동당의 ‘대안경제전략’(AES)의 일부였던 국민기업위원회(NEB)안이었다. 특히 집중적으로 논의한 것은 후자였다. NEB는 전통적 국유화 방식의 한 변종이기 때문에 이제는 낡은 유산이 아니냐고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NEB의 실현을 강력하게 주장한 당시 영국 노동당 내 좌파(Bennite Left)는, 이와 함께, ‘국가의 변형(transformation)’에 대한 문제의식도 갖고 있었다. 따라서 ‘낡은’ 국유화론 정도로 치부해버리고 말 일은 아니다. 국가를 여전히 중요한 이행의 진지로 보되, 최소한 전통적 사회민주주의의 국가론(국가‘장악’론)은 넘어섰던 것이다. Bennite Left의 국가론은 동시대의 좌파 유로코뮤니스트들(N. 풀란차스 등)의 국가론과 맥이 닿는다.     
   
마이드너안과 NEB안을 높이 평가한 이유는 두 방안 모두 주체 형성 전략의 문제의식이 뚜렷하기 때문이었다. 마이드너안에서 그것은, 제조업에서 90% 가량의 높은 조직률을 보이면서 스웨덴형 계급타협 체제(렌-마이드너 모델)의 모순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던 노동조합운동(LO)을 임노동자기금 소유와 운영의 주체로 상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LO가 소유와 운영의 주체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노동조합 간부들이 좌지우지한다는 게 아니라 이를 통해 개별 기업의 LO 조합원들이 해당 기업 내에서 주식 지분을 활용해 경영에 주도적으로 개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NEB안의 경우에 주체 형성 전략은 국가기구 바깥에 주된 진지를 구축하면서 또한 국가기구 안팎에 걸쳐 투쟁하는 사회운동 세력들로 나타난다. 이른바 ‘in and against’ 전략이다. 윌슨-캘러헌 노동당 정부에서는 이 구상이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지만, 1980년대의 노동당 좌파 런던광역시정부에서는 상당한 실제 사례들(GLEB의 설립과 활동, 민중 참여 도시 계획 등)을 보여주기도 했다.
   
○ 분명히 단언한 것은 주체 형성 전략을 그 핵심적 구성 요소로 포함하지 않는 대안체제․이행전략 논의는 불구의 논의에 불과하다는 ‘강한’ 주장이었다. (이것은 뢰머 류의 시장사회주의 구상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없다. 주식 투자의 권리를 민주화하라고 요구하는 모종의 ‘사회주의’가 과연 대안적 정치 이념으로 실체화할 수 있을까?)
  
2. 가장 최근의 고민들 (2006년 미발표 논문)
    
1) 역사유물론의 재구성
   
○ 석사학위논문에서 주체 형성 전략의 고민이 사회주의의 모든 이론 체계 안에 전면화돼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런 맥락에서 Socialist Register 편집진(L. 파니치, G. 앨보, S. 긴딘 등)이 제시하는 ‘능력’(capacities 혹은 capabilities) 개념에 주목하였다.
  
○ 이러한 문제의식을 새로운 사회주의 이행 이론에 완전히 포섭해야 한다.
  
“이제 ‘생산력’ 개념은 주인공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우리는 이보다 더 넓은 맥락의 ‘사회적 능력들’(social capabilities)에 대해 사고해야 한다. 사회적 능력들이 무엇인지 정의 내리기란 생산력의 경우에 비해 그렇게 쉽지 않다. 서로 장르를 달리 하는 다양한 능력들을 포괄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좁은 의미의 생산력을 비롯해서, 조직화의 능력, 지식 생산과 소통 능력, 윤리적 능력 등등이 포함된다. 말하자면 그간 시민사회론의 관심 대상이 되었던 영역들을 적극적으로 통합하는 것이다.”
  
○ ‘사회적 능력’의 문제설정에 대한 또 다른 자극은 A. 센의 발전 이론에서 비롯된다. 그는 롤스 등의 분배 중심의 평등론에 대해 능력(abilities) 중심의 평등론을 제시한다. 그리고 민중의 능력들을 최대한 함양한다는 관점에서 ‘사회 발전’을 바라본다. A. 캘리니코스를 비롯해서 많은 사회주의자들이 센의 이론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는데, 사실 이러한 우호적 대화는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다. 애당초 맑스의 윤리학의 핵심에 이러한 능력 중심의 관점(아리스토텔레스주의)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능력’의 문제설정이 이행전략․대안체제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새로운 창조적 논의의 가능성들을 열어준다.
  
“사회적 능력들에 대한 주목은 사회주의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하여 풍요롭게 만든다. 한 번의 정치권력 획득이나 경제성과의 극대화 과정이 곧 대안 사회의 건설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게 분명해진다. 중요한 것은 일상생활을 규정하는 다양한 영역들에서 민중들의 역량이 새로이 그리고 끊임없이 성장하는 것이다. 이것이 없이는 어떠한 혁신적인 민주주의 장치도, 어떤 사회주의 경제 모델도 작동할 수 없다.
    
우리는 사회적 능력들이 단순히 누적적으로 발전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확인해야 한다. 사회적 능력들의 상당한 부분은 세대마다 공통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반복적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그러자면 각각의 구체적 상황 속에서 민중들의 역량을 깨워낼 끊임없는 정치적 시도들이 필요하다. 숙명론이든 낙관주의든 진화주의가 끼어 들 여지는 없다.
    
더구나 자본주의는 구조적으로 민중들의 역량을 해체하려 한다. 신자유주의는 그 최악의 형태다. 신자유주의는 노동계급이 확보한 능력들의 사회적 토대(진보적 계급타협 체제, 보편적 복지제도 등등)를 허물어뜨린다. 그리고 대중들 사이의 윤리적 능력을 파괴한다(농촌 공동체의 최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열, 이주노동자에 대한 적개심 등등). 사회주의운동은 자본주의로부터 새로운 사회의 토대를 인수하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 자본주의의 공격으로부터 희망의 씨앗들을 살려내는 데 우선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결국 이러한 논의는 우리를 ‘개혁’과 ‘혁명’에 대한 새로운 이해로 이끈다. 이제 개혁은 자본주의의 성장의 과실을 노동자․민중의 것으로 전취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없다. 그것은 오히려 일상 속에서 자본주의에 대항해 민중들의 역량을 복원하고 재형성하며 새로운 사회적 능력들로 접합하려는 시도들이어야 한다.
  
또한 혁명은 일회적 권력 장악을 뛰어넘는 훨씬 복잡한 역사적 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 핵심은 사회적 능력들의 놀라운 성장 과정이다. 사회적 능력들의 발전에는 비약이 있을 수 없지만, 그 ‘점진적’ 발전의 속도가 얼마나 ‘급진적’일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을 것이다. 낡은 사회를 지탱하던 결정적인 고삐들이 풀리면 이런 일이 가능하게 된다. 그래서 21세기에도 혁명은 여전히 현안이다.”
    
2) 21세기형 보편적 복지
○ 이행전략․대안체제의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은 예나 지금이나 ‘보편적 복지’의 구축에 있다고 본다. 또한 그래서 현재 한국의 좌파 정치에서 사회민주주의(‘복지국가 세우기’라는 그 좁은 의미에서)와 사회주의의 중첩이 정세적으로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 기존의 복지국가들에서 계승할 부분은 계승해야 한다. 그 핵심이 기본적 사회서비스의 탈상품화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특히 의료․교육․주택이 뜨거운 현안이다.
    
○ 문제는 연금․실업보험 등의 복지제도에 뿌리 깊게 각인되어 있는 자본주의적 구조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들 제도는 항상 임노동 관계의 보완으로서만 의미를 지닐 수 있었고 존립할 수 있었다. 즉 ‘복지’는 ‘(임)노동’의 잔여였다.
    
○ ‘기본 소득’ 구상에 주목하고 동의하는 기본적 이유는 바로 위의 문제의식에 있다. 어떻게 ‘잔여로서의’ 복지를 넘어서 그야말로 ‘보편적인’ 복지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까? 시민들의 소득을 피고용 노동의 결박으로부터 떼어내 다양한 시민 활동들과 연동시키는 ‘기본 소득’ 구상이 그 대략의 방향을 보여준다.
   
“우리는 보편적 복지를 구축할 새로운 제도적 틀로서 ‘기본소득’(Basic Income) 구상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기본소득이란, 모든 성인 시민들에게 소득의 주요 구성 부분으로서 일정액의 현금을 지급하자는 제안이다. 공적 부조와 사회보험으로 이원화된 기존의 복지체계와는 달리 기본소득제도는 전체 시민을 대상으로 한 일원적 복지체계다. 또한 누구나 임노동관계에 직접 참여하지 않아도 일정한 소득을 확보하게 되기 때문에 고용과 복지 사이의 강한 연계가 해체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공짜 점심’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기본소득의 수혜는 일정한 사회적 활동의 수행과 연동된다. 여기에는 고용 노동 외에, 공적 인정을 받는 다양한 시민적 활동들, 즉 이윤 창출보다는 공동체 기여에 초점을 맞춘 사회적 기업 활동, 지역사회에 필요한 돌봄 노동, 창작과 학습 활동 등이 포함될 것이다.”
    
○ ‘기본 소득’ 제도를 통해 피고용 노동 외의 다양한 시민 활동들이 자립적 기반을 갖게 된다면 이는 공식 경제와는 구분되는 또 다른 생활권(圈)의 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LETS 등을 예로 들기는 했지만, 핵심은 코뮌주의의 단초가 등장한다는 데 있다. 이런 식으로 아나키즘과 자율주의, 생태주의의 문제의식을 포섭할 필요가 있다. 자율주의 등의 문제점은 자본주의 전반의 이행 가능성과 전망을 시야에서 지운 채 코뮌주의적 주체의 형성만을 주장한다는 데 있다. 하지만 바로 지금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코뮌주의의 맹아를 북돋워야 한다는 이들의 주장은 경청할만하다. 이런 문제의식이 대안체제의 중요한 구성 요소로 통합되어야 한다.
    
3) 시장을 넘어 - 참여 계획
K. 폴라니의 고전적인 지적처럼 시장은 어쨌든 사회 전체의 틀에 끼워 맞춰져야 한다. 자본주의의 극복은 시장이 사회의 부속품 중 하나로 그 제 자리를 찾는 과정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주목되는 것은 영국의 좌파 경제학자 P. 데바인이 제시하는 ‘참여 계획’ 모델이다. 참여형 계획경제의 기본 발상은 명령형 계획경제과는 ‘다른’ 계획경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모델에서는 시장이나 명령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주체들의 참여와 협상을 통해 집중적 경제 결정과 분권적 경제 결정 사이의 균형을 달성한다.
    
한편 데바인은 ‘시장강제’(market forces, ‘시장제력’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겠다)와 ‘시장교환’(market exchange)을 구분한다. 상품의 단순한 판매 및 구매 행위는 시장교환에 해당한다. 반면 시장강제는 생산 및 투자 결정이 사후에 원자적으로 이뤄지는 것을 의미한다. 시장의 이 두 가지 차원 중에서 자본주의 사회관계를 낳고 사회의 다른 부분들로 하여금 시장에 종속되게 만드는 것은 시장강제다. 참여 계획 모델에서는 시장교환은 잔존하지만 시장강제는 새로운 사회 관계들로 대체된다.
   
경제 활동의 주요 단위는 각급 계획위원회와 협상조정기구 그리고 생산단위들이다. 그런데 이 기구들은 모두 동일한 구성 원리를 갖는다. 그것은 해당 기구로부터 영향을 받는 모든 이해당사자들이 이 기구의 결정 구조에 참여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권역별 계획위원회를 예로 들어보면, 권역 자치단체의 대표자뿐만 아니라 중앙 계획위원회의 대표자, 권역 내 생산단위들의 대표자, 협상조정기구의 대표자, 이해당사자 집단들의 대표자 등이 참여한다는 식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기업에 해당하는 각 생산단위(Production Unit)도 마찬가지다. 생산단위의 소유 형태는 일단 사적 소유가 아니라 사회적 소유다. 그런데 그 지배구조는 과거의 사회주의 공기업처럼 단순하지 않다. 생산단위의 지배구조는 일반 이익을 대변할 계획위원회나 협상조정기구의 대표자, 지역사회의 이해를 대변할 이해당사자 집단의 대표자, 소비자․서비스 사용자들을 대변할 소비자연합이나 유관 생산단위․협상조정기구의 대표자, 그리고 노동자의 목소리를 대변할 생산 단위 내 노동자의 대표자와 초기업단위 노동조합의 대표자, 이 4가지 요소로 복잡하게 구성된다. 각 생산단위의 생산 활동의 기본 목표는 바로 이 지배구조를 통해 결정된다. 그리고 그렇게 결정된 목표들의 구체적 실행 과정에서 노동자 자주관리가 이뤄진다.
  
경제계획의 대강을 수립하는 것은 각급 계획위원회(Planning Commission)의 몫이다. 중앙 계획위원회는 일국 차원의 자원 배분의 총계획을 짠다. 여기에는 주요 신규 투자의 결정이 포함된다. 가격 지표가 사용되지만, 이것은 더 이상 시장가격이 아니다. 중앙 계획위원회가 비용에 기반해서 1차재의 가격을 결정하면 여기에 중간재들의 가격을 더한 게 최종재의 가격이 된다. 중앙 계획위원회의 계획 수립은 권역별․지역별 계획위원회의 참여와 각급 계획위원회들 사이의 조정을 통해 보다 세밀하게 보완된다.
  
하지만 이 모델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협상조정기구(Negotiated Coordination Body)다. 참여 계획 모델에서는 시장교환이 잔존한다. 소비재 시장이 작동하며 소비자의 선택권이 존재한다. 생산단위 간의 경쟁도 존재한다. 따라서 소비재 시장의 수요 변화나 생산단위 사이의 효율성 차이에 따른 생산 조정이 필요하다. 생산단위들의 대표자와 각급 계획위원회의 대표자, 지역 이해당사자 및 노동자․소비자의 대표자 등이 협상조정기구를 구성해서 서로 간의 대화와 협상을 통해 바로 이 조정 기능을 수행한다. 즉, 자본주의에서 시장강제로 해결되던 것이 이제는 협상조정기구를 통해 이뤄지는 것이다.
    
또한 협상조정기구는 명령형 계획경제에서 불가능하던, 경제 활동의 역동적 조절을 가능하게 만든다. 현실사회주의에서는 중앙 관료들의 계획 목표 설정이 대중의 실제 욕구들(needs)을 반영해야 할 필연적 이유가 없었다. 기본적으로 공급 측면의 독재였다. 그러나 참여형 계획경제는 그렇지 않다. 시장경제만큼이나 역동적으로 수요에 따른 조정이 이뤄진다. 오히려 자본주의에 비해 소비자의 권한이 확대된다. 소비재 시장에서 선택권을 행사해 양적 정보를 제공하는 외에도 각종 경제 결정 단위의 참여를 통해 질적 정보를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데바인의 참여 계획 모델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그 정치학이다. 대안적 경제체제는 그에 걸맞는 새로운 행위 양식의 확산과 정착을 요구한다. 새로운 사회를 운영할 사회적 능력들이 형성돼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바람직한 대안체제 모델은 대안적인 행위 양식이 민중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게 만들 계기를 모델 자체 안에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명령형 계획경제는 이것을 결여하고 있었다. 반면 참여 계획 모델에서는 민중들이 협상조정을 비롯한 분권적인 결정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스스로 새로운 행위 양식을 발전시킨다. 제도의 이행과 주체의 변화, 사회 관계의 변화와 사회적 능력들의 형성이 함께 이뤄지는 것이다.
   
많은 혼란이 있을 수 있지만, 데바인은 “사회적 위기조차 학습의 과정”이 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시장 중심의 행위 양식은 결국 새로운 민주주의의 행위 양식에 자리를 내줄 것이다.
  
○ 데바인의 ‘참여 계획’ 모델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대안체제 모델 안에 주체 형성 전략의 고민이 전면적으로 구현되어 있다는 것이다. 데바인은 이를 ‘이행의’(transformatory) 정치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참여 계획 모델에도 난점이 있다. 협상조정 행위에 처음부터 자본주의 시장의 모든 기능을 떠맡길 수 있겠냐는 의문이 그것이다. (R. 블랙번은 참여 계획 모델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이 점을 의문으로 제시한다. R. Blackburn, “Fin de Siécle: Socialism after the Crash”, New Left Review, no. 195, 1991[국역: 「동구권 몰락 이후의 사회주의」, R. 블랙번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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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24 18:02 2007/03/24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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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당, 콰이강의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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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케이블티브이에서 자주 나오는 광고가 "쇼당 입당"이라는 광고다.

천명을 추첨하여 무슨 경품을 준다고 하면서 엄청나게 광고를 쏟아붓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은 모르겠고, "쇼당"하는 노래만 떠오른다.

    

길가다가 심심하면 생각나는 중독성 있는 노래, 바로 영화 <콰이강의 다리>에 삽입되었던 '휘파람 행진곡'을 변형한 곡이다. 하긴 요새 10대들이 이 영화, 이 노래를 기억이나 할까.

그러고 보니 예전엔 콰이강의 다리를 티브이에서 자주 방영해주었던 듯한데, 요새는 왜 안해주는 걸까. 1958년 제30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7개 부문을 수상했다는 이 영화는 데이비드 린 감독에게 첫 감독상을 안겨주었지만, 역시 윌리엄 홀던, 알렉 기네스, 잭 호킨스 등 주연들의 연기가 더 생각나는 영화였다.

전쟁영화이면서도 전쟁영화답지 않은 느낌이 났던 듯... 

 

 

휘파람 행진곡 - 콰이강의 다리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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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21 22:04 2007/03/21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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