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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 연봉 5000만 원, 최고 5억 원! 법으로! (프레시안, 장석준 진보신당 정책위원회 의장, 2012-10-19 오후 5:57:33)
[장석준의 '적록 서재'] 장뤼크 멜랑숑의 <인간이 먼저다>
몇 달 전에 장 피에르 슈벤망의 <프랑스는 몰락하는가>(정기헌 옮김, 씨네21북스 펴냄)를 다룬 적이 있다. 30년 전 미테랑 좌파연합 정부가 신자유주의에 무릎 꿇는 것을 정부 안에서 지켜본 프랑스 좌파의 역전 노장이 올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펴낸 책이었다. 프랑스 좌파, 그것도 이론가가 아닌 정치인의 책이 한국어로 번역되는 것은 흔치 않다. 대선이라는 중대한 정치적 계기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5월 프랑스 대선 결선 투표 결과는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다. 우파 니콜라스 사르코지 대통령을 누르고 사회당의 프랑수아 올랑드 후보가 승리했다. 프랑수아 미테랑 이후 16년 만에 좌파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곧이어 있은 총선에서도 사회당과 그 제휴 정당들이 승리하여 현재 프랑스는 대통령과 내각, 원내 다수파 모두 좌파다.
그런데 올랑드의 승리만큼이나 이번 프랑스 대선에서 화제를 뿌린 또 다른 인물들이 있다. 그 중 한 명이 극우파 국민전선의 여성 대표 마린 르펭이다. 그녀는 1차 투표에서 17.9퍼센트를 얻어 파시즘의 부활을 우려하는 전 세계 민주 시민들이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들었다. 그녀의 정반대 편에서는 또 다른 '전선'의 후보가 바람을 일으켰다. 바로 좌파전선의 장뤼크 멜랑숑이다.
멜랑숑은 한때 지지율이 15퍼센트를 넘나들기도 했다. 비록 실제 득표율은 일부 지지층이 '결선에서 당선 가능'한 후보 올랑드 쪽으로 쏠려 11.05퍼센트에 그쳤지만, 이것 역시 결코 만만히 지나치고 말 수치는 아니다. 1970년대에 프랑스 공산당의 전성기가 끝난 이후 사회당 왼쪽에서 10퍼센트 이상 득표한 후보가 나타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역사를 멜랑숑과 좌파전선이 새로 썼다.
물론 멜랑숑의 정치적 행진이 기획대로만 되지는 않았다. 그는 대선 직후의 총선에서 일부러 마린 르펭의 지역구에 출마를 선언했다. 총선 1차 투표에서 좌파 중 최대 다수 득표자가 되어 결선에서 르펭을 물리치겠다는 게 그의 포석이었다.
하지만 1차 투표에서 그는 사회당 후보보다 적은 21.46퍼센트 득표에 그치고 말았다. 멜랑숑은 결선 진출을 포기하고 사회당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결선에서 르펭은 불과 100표 차로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르펭을 떨어뜨리겠다는 대의는 실현되었지만, 멜랑숑이 그 영광의 주역이 되겠다는 구상은 실패로 끝난 것이다. 그렇다고 멜랑숑 바람이 그저 에피소드로만 끝난 것은 아니다. 그것은 비록 우회적인 방식이나마 올랑드 정부 안에 자신의 영향력을 새겨 넣었다. 가령 최저 임금 인상 건이 그러하다.
올랑드의 최초 공약에는 최저 임금에 대한 내용이 없었다. 좌파가 총선 때마다 '최저 임금 인상'을 들고 나오는 게 상식인 유럽의 풍토에서는 좀 이상한 일이었다. 반면 멜랑숑은 '최저 임금 인상'을 핵심 공약 중 하나로 내세웠다. 월 1700억 유로(240만 원 정도)로 올리겠다는 것이었다. 이 공약이 크게 인기를 얻자 올랑드 측도 부랴부랴 '최저 임금 인상'을 공약하고 나섰다. 지금 이것은 프랑스 새 정부의 주요 정책 중 하나다.
이 정도 되면 멜랑숑 후보의 정책적 영향력을 얕잡아 볼 수는 없겠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좌파전선의 정책들을 모아놓은 대선 공약집이 최근 우리말로 번역돼 나왔다. "좌파는 어떻게 세상을 바꾸려 하는가?"라는 부제를 단 <인간이 먼저다>(강주헌 옮김, 위즈덤하우스 펴냄)라는 150쪽짜리 작은 책이다.
좌파전선, 어떤 정치 세력인가?
<인간이 먼저다>의 저자는 '장뤼크 멜랑숑'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정가의 상식으로 볼 때 그가 직접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좌파전선'이라는 정치 세력의 집단 저작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좌파전선이 도대체 어떤 세력인지부터 짚어 봐야 할 것이다.
2008년에 프랑스에서는 사회당 왼쪽에 새로운 좌파 정당'들'이 등장해 이목을 끌었다. 그 중 스포트라이트를 가장 많이 받은 것은 반자본주의신당(NPA)이었다. 이 당의 모체는 1968년 5월 봉기 이후 끈질기게 투쟁을 지속해온 프랑스의 유서 깊은 트로츠키주의 조직 '혁명적 공산주의 동맹(LCR)'이다.
저명한 트로츠키주의자 에르네스트 만델로부터 커다란 영향을 받은 알랭 크리뱅(전 유럽의회 의원), 다니엘 벤사이드(국내에 그의 저서 <마르크스 사용 설명서>(양영란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 등이 소개돼 있다) 등이 이 조직의 역사적 지도자들이다.
이 조직이 운동가들로만 이뤄진 일종의 전위 조직에서 대중 정당으로 전환하게 된 직접적 계기는 2002년과 2007년 대선에서 연이어 거둔 상당한 대중적 지지(약 5퍼센트)였다. 젊은 우체국 비정규직 노동자 올리비에 브장스노가 이 두 선거에 후보로 나서서 당시 사회당의 우경화로 열린 좌파의 빈 공간을 채웠다. 그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신자유주의가 아직 승리의 깃발을 휘날리던 때에 자본주의 중심부에서 자칭 혁명적 사회주의자가 두 자리 수 여론 조사 지지율을 기록하곤 하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런데 2008년에 창당한 신생 좌파 정당은 반자본주의신당만이 아니었다. 일군의 사회당 탈당자들이 녹색당 탈당자들과 함께 만든 또 다른 정당이 있었다. 좌파당이었다. 이 해에 사회당에서는 당 대회가 있었다. 당의 여러 경향들이 각자 입장 문서(motions)를 작성하여 대의원들의 지지를 구했다. 그런데 멜랑숑이 속해 있던 좌파 경향의 지지율이 생각보다 저조했다. 이것은 2007년 사회당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세골렌 루아얄의 '제3의 길' 노선, 즉 사회자유주의 입장이 당을 장악해가는 증거로 보였다. 그러자 좌파 일부가 당 대회 와중에 탈당을 결행했다. 조스팽 내각에서 직업 교육 담당 장관을 맡은 바 있는 멜랑숑이 이들 중 가장 이름이 알려진 인사였다.
마침 이들에게는 새 정당 모델이 있었다. 바로 독일의 좌파당이었다. 독일 좌파당은 구 동독의 개혁 사회주의 흐름을 이어받은 민주사회주의당을 한 축으로 하고 슈뢰더 사회민주당-녹색당 연정의 복지 축소 정책에 반발해 사회민주당에서 탈당한 오스카 라퐁텐 전 당 대표 등 구 서독 지역 좌파 사회민주주의자들 및 트로츠키주의 정파들을 다른 한 축으로 하여 등장했다. 좌파 사회민주주의에서 혁명적 사회주의에 이르는 다양한 좌파 세력들이 '반신자유주의' 노선을 중심으로 결집한 정당이다.
멜랑숑 등 사회당 탈당파는 이러한 독일 좌파당과 유사한 정당을 프랑스에도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프랑스는 독일이 아니었다. 전통 하나로 버티고 있던 프랑스 공산당은 자신의 간판을 내려놓을 생각이 없었다. 프랑스 트로츠키주의의 대표 정파인 혁명적 공산주의 동맹도 반자본주의신당이라는 독자 대중 정당 실험을 이제 막 시작한 상황이어서 사회당 탈당파와 다시 당을 새로 만들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사회당 탈당파는 일부 녹색당 탈당 세력하고만 힘을 합쳐 좌파당을 시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프랑스 좌파당은 당세가 미약한 대신 사회당 왼쪽 정치 세력들의 광범위한 연합 전선을 결성해서 사회당에 도전하고자 했다. 연합 전선의 주된 상대는 공산당과 반자본주의신당이었다. 그런데 공산당이 좌파당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과 달리 반자본주의신당은 이를 거부했다. 가장 강력한 이유는 공산당과 좌파당 안에 여전히 친사회당 흐름이 강해서 이들과의 연합이 자칫 급진 좌파 전체를 사회당의 하위 파트너로 만들어버릴 위험이 높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반자본주의신당은 최근까지도 공산당, 좌파당과 선을 긋는 독자 활동에 주력했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반자본주의신당이 점점 더 대중 정치의 중심에서 멀어지게 만들었고, 그래서 창당 당시의 기대와는 달리 당세가 계속 위축되고 있다. 당 통합과 달리 연합 전선의 문제에는 좀 더 유연한 대응이 필요했는데, 반자본주의신당이 이 점에서 패착을 한 게 아닌가 싶다. 반자본주의신당 안에서도 이 때문에 논쟁이 끊이지 않았고, 급기야는 연합 전선 지지파가 탈당해 '통일좌파'라는 새 조직을 만들기도 했다.
반면 좌파당과 공산당의 연합은 탄력을 받았다. 2009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둔 뒤 2010년 지방 선거에도 공동 대응했고 '좌파전선'이라는 이름으로 이번 대선에 뛰어들기에 이르렀다. 좌파당, 공산당 외에도 반자본주의신당 탈당파인 '통일좌파', 마오주의 조직인 '프랑스노동자공산당', 공산당 탈당파 모임인 '진보대안회의' 등 좌파 소수 정파들이 좌파전선에 합류했다. 더 중요한 것은 프랑스 반신자유주의 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ATTAC(금융거래과세시민행동연합)의 주요 활동가들이 좌파전선의 지지 대오를 이뤘다는 점이다.
사실 올해 총선에서 좌파전선이 거둔 성과만 놓고 보면, 그렇게 장밋빛은 아니다. 총 577석 중 좌파전선의 의석은 10석에 불과하다. 소선거구제(비록 결선 투표제가 있기는 하지만)인 상황에서 사회당과 선거 연합을 구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결과는 피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대선에서 좌파전선이 보여준 가능성은 의회 밖 사회 운동에 여전히 신선한 충격으로 남아 있다. 심지어는 반자본주의신당까지도 이제는 연합 전선에 대해 진지하게 재고하는 움직임이다.
이렇게 보면, <인간이 먼저다>는 단순히 선거가 끝나면 망각되고 말 정세적 문건만은 아니다. 자본주의 위기의 초입인 현재, 프랑스에서 사회당 왼쪽 좌파들이 도달해 있는 고민과 합의의 수준을 일정하게 대변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당의 시각을 잘 보여주는 앙리 베베르(지금은 사회당 정치인이지만 젊은 시절에는 혁명적 공산주의 동맹의 이론가였다!)의 <좌파 이야기>(임명주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와 이 책을 함께 읽어보는 것도 꽤 흥미로운 독서 체험이 될 것 같다.
제헌의회를 통해 제6공화국을 향하여
<인간이 먼저다>의 제1장 제목은 '부의 분배와 사회적 불안정의 해소'다. 여기에는 위에서 소개한 월 1700 유로로의 최저 임금 인상을 비롯해서 주35시간 노동 시간제, 각 기업의 임시직 및 계약직 고용을 10퍼센트 이내로 제한하는 비정규직 고용 상한제, 공공 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주가 상승 목적의 정리 해고 금지 등이 제시되어 있다. 한국에서 노동 운동이 요구하고 있는 것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 지구화는 확실히 전 세계인의 시간대를 일치시켰다.
흥미로운 것은 밑에 있는 이들의 소득을 끌어올리는 조치들과 함께 위에 있는 이들의 터무니없는 수입을 깎아 내리는 정책들도 제시한다는 점이다. 모든 기업에 대해 급여 상한제를 실시한다거나 연간 최고 소득을 30만 유로(5억2000만 원 정도)로 고정한다는 게 그러한 공약들이다.
이런 점에서 좌파전선 대선 공약은 확실히 전투적이다. 편이 분명하다. 노동자, 청년, 연금 소득자 등 신자유주의 시대에 소득과 권리가 후퇴하기만 한 이들을 편든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이것은 또한 적을 분명히 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임원급 사원들에 대한 급여 상한제는 이런 선전포고의 일환이다. <인간이 먼저다>는 더 나아가 이러한 자신의 적에 선명한 이름을 붙인다. 그것은 '금융 자본'이다. 서문의 언급을 보자.
"생태적 재앙, 불평등과 불안정과 빈곤의 폭발, 반복되는 민주주의의 침해, 연대와 협력에 근거한 인간관계의 추락 등 이 모든 것이 인간의 행동을 극단으로 몰아가는 원인입니다. 이 모든 재앙의 공통된 원인은 우리 시대의 본질적인 특징, 즉 금융 자본이 세상을 지배하는 데 있습니다.
금융 자본의 지배는 겉으로 보기에 결코 흔들릴 것 같지 않지만 실제로는 허약하기 그지없습니다. 금융 자본의 지배는 국민이 언제든 뒤집을 수 있는 정치적 선택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금융 자본에 과감히 맞서야 우리는 하루라도 빨리 미래를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17~18쪽)
금융 자본의 제압은 그럼 어떻게 가능한가? <인간이 먼저다>는 우선 단기 대책으로 기업의 금융 소득에 대한 과세 방안을 내놓는다. 그러면서 새로운 금융 소득 과세의 세수는 사회 보장 기금으로 쓰여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이 새 조세 체계를 도입함으로써 개인의 일반 사회 보장 분담금(우리의 4대 보험 개인 분담금에 해당)은 아예 폐지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한다. 금융 불로소득을 복지 제도의 재정 기반으로 재분배하자는 것이다.
좀 더 장기적인 대책으로는 은행과 보험회사의 국유화를 제시한다. 그리고 이렇게 국·공유화된 금융기관들을 서로 연계하여 공공 금융 센터를 설립하겠다고 약속한다. 이러한 공적 금융 네트워크는 좌파전선 대선 공약에서 현존 신자유주의 체제로부터 대안 체제로 넘어가는 이행의 견인차 역할을 한다.
공공 금융 센터는 고용과 직업 교육, 실질 성장과 환경 보호의 원칙에 따라 금융 서비스를 수행하며, 따라서 경제 운영 방향을 지금과는 전혀 다른 쪽으로 선회시킨다. 그러자면 반드시 노동자·민중 대표가 공공 금융 센터 운영을 주도해야 한다.
"공공 금융 센터의 관리는 새로운 권력을 기반으로 이루어지고, 이 권력을 수행하게 될 주체는 정부 대표 및 각 기관에서 근무하는 노동자 대표 그리고 이용자입니다. 이용자에는 기업과 지방자치단체만이 아니라 노동자, 실업자, 계약직 및 그들의 대표가 포함됩니다. 소비자 단체와 환경 단체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이처럼 민주적으로 운영되면, 중소기업 재정 지원, 주거 지원, 지방자치단체 지원, 예금자에게 돌아가는 서비스 지원 등 공익 목적의 임무 수행이 가능해집니다." (60쪽)
하지만 프랑스 한 나라만의 금융 억제로는 부족하다. 프랑스가 유럽 통화 동맹의 한 축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인간이 먼저다>는 이 문제에 대해 채무국들과 채무 상환 조건에 대해 재협상을 실시하자는 해법을 제시한다. 그리스에서 급진좌파연합(SYRIZA)이 주장하는 바를 그대로 받아 안은 셈이다. 동시에 이러한 일국적 처방의 초국적 기반으로서, 유럽중앙은행의 민주적 관리와 '유럽 사회·생태·연대적 발전 기금' 창설을 제창한다.
이 정도의 개혁도 신자유주의 시기에 형성된 사회 세력 관계 아래서는 실행 불가능하다. 설령 멜랑숑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좌파전선이 다수당이 되는 일이 벌어지더라도(물론 이것 자체가 세력 관계의 놀라운 역전을 뜻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인간이 먼저다>의 '서문'이 밝히는 대로, 그야말로 '시민 혁명'이 필요하다. 이 책의 제6장 '국민 권력을 되찾는 헌법의 제정'은 그 출발점으로 '제헌의회 소집'을 꺼내든다.
사실상 샤를 드골의 쿠데타로 제정된 현행 '제5공화국' 헌법을 폐기하고 제헌의회와 국민적 대토론, 국민 투표를 거쳐 '제6공화국' 헌법을 제정하자는 것이다. 주요 개정 사안으로는 의원내각제로의 전환, 모든 선거에서 정당 명부 비례대표제 실시, 남녀 동수 대표제 실현, 상원 폐지 등 정치 제도의 민주화가 포함된다.
하지만 민주화해야 할 것이 좁은 의미의 정치 영역만은 아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경제 민주화'라고 이야기되는 과제들이 더 있다. 이에 대해 <인간이 먼저다>는 새 헌법에 기업 내의 노동자 경영권을 명기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적어도 프랑스의 급진 좌파에게 '경제 민주화'란 분명 생산 현장, 즉 기업에서부터 노동자가 결정권을 확보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새 헌법에서는 시민이 일하는 곳에서 시민의 권한이 강화되고, 기업의 시민권도 인정되어야 합니다. 기업 내에서 노동자는 법적으로 새로운 권리를 보장받고, 대기업의 지위는 사회적 책임을 고려하여 재정의해야 합니다.
경제력이 더 이상 주주들의 손에만 있지 않고, 노동자들과 그들의 대표들이 기업의 투자 과정에 참여해야 합니다. 그들은 민주적으로 논의를 거친 사회적·생태적·경제적 우선 과제를 고려하여 기업의 투자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모든 전략적 결정에는 임직원 대표 혹은 기업운영위원회의 호의적 견해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해고를 유예하는 거부권과 노조가 제시한 역제안을 반드시 검토할 의무를 법제화해야 합니다." (104쪽)
프랑스 유권자들은 이번 대선에서 멜랑숑 후보의 입을 통해 이런 메시지를 직접 들었다. 그리고 이것은 한국의 유권자들 역시 대통령 선거라는 계기를 통해 마땅히 접해야 할 시대의 목소리다. 하지만 어쩌면 이 땅의 12월 선거에서는 이런 목소리는 장외의 외침으로 그칠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인간이 먼저다>는 한국의 독자들 사이에 읽혀야 할 충분한 이유를 지닌다.
그러나 좌파의 대안은 아직 미완성
여기까지는 좋은 이야기이고, 이제는 <인간이 먼저다>의 아쉬운 점들을 몇 가지 지적해야겠다. 우선은 여전히 구체적이지 못한 대목들이 있다는 것이다. 가령 금융 이외의 민간 기업 소유 구조에 대해 이 책은 "경제·산업·금융 활동의 주된 수단들을 국유화"(79쪽)한다는 한 문장으로 정리하고 있다. 어떤 방식으로 국유화하겠다는 것인지, 집권하면 언제까지는 어느 수준까지 국가 소유로 만들겠다는 것인지,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 책이 간략한 소책자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문제에 대해 좌파전선 쪽에 다른 정책 자료가 더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쨌든 이 책만 놓고 보면, 좌파전선은 기업의 소유 구조에 대해 여전히 '당 강령' 수준의 원칙만 있지 실행 계획은 갖고 있지 못한 꼴이다. 선동의 소재로 '국유화'를 이야기할 뿐 당장의 실천 과제로 진지하게 고민하는 수준은 아니라는 이야기다(물론 '국유화'가 과거처럼 좌파의 대안에서 핵심을 차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더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여기에서는 일단 이 문제는 논외로 하자).
좌파전선의 이러한 모습은 30~40년 전의 프랑스 좌파에 비해 오히려 후퇴한 것임에 분명하다. 이때는, 후에 신자유주의 지구화에 굴복하게 되는 미테랑의 사회당조차 좀 더 진지한 자세로 '국유화'를 약속했고 이를 실행했다. 이들은 10대 제조업 그룹과 시중 은행에 대한 구체적인 국유화 계획을 갖고 있었다.
좌파전선처럼 "좌파를 다시 건설"(22쪽)하는 것을 과제로 하는 세력이라면, 신자유주의 시기를 거치면서 좌파에게 상실된 이런 측면을 보다 냉정히 직시해야 한다. 그래야 주류 좌파인 사회당에 대한 비판 세력에 머물지 않고 좌파의 대안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은 갈 길이 멀다.
또 하나 지적해야 할 것은 좌파전선 대선 공약이 핵 발전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지나치게 수세적이라는 점이다. 슈벤망이 <프랑스는 몰락하는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핵 발전이 프랑스의 미래 산업 중 하나라는 철면피한 주장을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집권 전에 올랑드 후보가 공약한 '단계적 감축' 수준에서라도 핵 발전 폐기를 공약하는 것 역시 아니다. 단지 "프랑스의 에너지 정책에 관한 국민 대토론회를 즉각 개최"(66쪽)해야 한다는 주장만 있을 뿐이다. '국민 대토론회'야 좋다. 그러나 "민간 핵 분야와 관련해서도 핵 폐기든 안전하고 공적인 핵에너지의 유지이든 모든 가능성에 대한 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식이어선 곤란하다. 이것은 핵 발전에 대해서는 좌파전선에 어떠한 공식 입장도 없다는 것을 자인하는 꼴이다.
평화 정책에서는 결코 이와 같지 않다. <인간이 먼저다>는 아주 단호하게 "프랑스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탈퇴를 즉각 결정"하겠다고 천명한다. "비핵화를 위한 행동"을 약속하고, "다자적 군비 축소"의 의지를 밝힌다. 또한 노골적으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기를 꺼리지 않는다.
좌파의 대안 세력이고자 한다면, 핵 발전에 대해서도 이 정도로 입장이 분명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좌파전선은 그렇지 못하다. 실망스러운 대목이다. 아마도 핵 발전 부문 노동조합과 긴밀한 연계를 맺고 있는 공산당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인간이 먼저다>는, 이렇게, 프랑스 급진 좌파의 성취뿐만 아니라 그 한계와 모순도 맨 얼굴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좌파를 다시 건설"한다는 이들의 도전이 이런 점에서 여전히 미완성임을 확인하게 된다. 그것은 이 도전이 얼핏 생각했던 것보다 더 거대하고 장기적이며 간단치 않은 과업임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쨌든 프랑스 좌파는 첫 발은 뗐다. 문제는, 여전히, 우리다.

 

 


 
·환율 손발 묶인 좌파 정부, 비장의 무기는?
 (프레시안, 손영우 정치학 박사, 2012-06-12 오전 11:24:59)

[기고] 프랑스 사회당 정부의 새로운 실험, 성공할까?
2012년 프랑스 대선에서 사회당이 승리했다. 이에 따라 지난 2002년 대선에서 조스팽 총리가 극우 르펜 국민전선 후보에게 결선 후보를 내주고 정계 은퇴하면서 좌파 연합 정부의 막이 내리고 나서, 10년 만에 다시 프랑스에서 좌파 정부가 들어섰다. 1997년 조스팽 정부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올랑드 대통령과 애로 수상에게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유럽의 재정, 경제 위기와 함께, 이에 대해 '긴축보다는 성장'이라는 해법을 제시한 프랑스 사회당 정부의 정책은 이후 잇따르는 유럽 국가의 공직 선거에 적지 않은 영향 미칠 것이라 예견된다. 하지만 사회당 정부가 그 '성장'을 위해 어떠한 밑그림을 그리고, 이를 위해 제시하는 구체적인 정책은 무엇인가 하는 내용에 대해선 많이 논의되고 있지 못하다.
특히 그 '성장'을 위해 정부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 정부 재정에 대한 위기가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이 아닌 정부가 성장을 위해 어떠한 일을 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해, 혹독한 재정 위기 시대에 좌파 정부가 자신의 이념적 정책을 실행할 수 있는 경제적 자율성이 존재하는가, 이런 질문에 프랑스 사회당 정부는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재정 위기 속 좌파 정부의 정책적 자율성은?
세계화 시대에는 정부가 경제 정책을 구사함에 있어 자율성이 많이 제한받는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기준이 바로 재정 적자 규모와 재정 수지에 대한 규제이다. 소위 '마스트리히트 기준'이라 불리는 이 기준은 1992년 2월 조인된 조약에 근거한다.
유럽공동체는 단일 화폐인 유로(euro)의 도입을 결정함과 동시에 회원국에게 자국의 물가 상승률이 물가가 가장 안정된 세 회원국의 평균보다 1.5퍼센트를 초과하지 않을 것, 재정 수지가 GDP(국내 총생산)의 3퍼센트를 초과하지 않을 것, 전체 공공 적자 규모가 GDP의 60퍼센트를 초과하지 않을 것을 강제하였다. 이후 이 규정은 1997년 6월 암스테르담에서 조인한 '성장 안정 협약'으로 이어졌고, 다시 2005년 재정 수지와 공공 적자 규모를 중심으로 다시 구체화된다. 2011년 말 독일의 메르켈 총리와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이 주도한 '신재정 협약'이라는 것도 회원국들이 이 기준을 준수할 것을 강제하는 것을 그 핵심 내용으로 한다.
그런데 이 기준은 단지 유럽연합뿐만 아니라 세계화와 더불어 세계 투자 시장에서 국가의 재정 건강 상태를 측정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하였고, 모든 국가들이 외국인 직접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준수해야 하는 금과옥조로 취급되었다. 물론 모든 나라에 이 기준이 동일하게 작용한 것은 아니었다.
제3세계 국가들에게는 아직 이러한 세련된(?) 기준을 들이대기보다는 정치적 안정성, 민주주의 정도 같은 경제 외적인 기준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적어도 정치적으로 안정된 선진국들은 이러한 기준이 세계 투자가들의 포트폴리오 구성에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하였다.
이에 따른 영향은 정부의 정책적 자율성의 위축으로 귀결된다. 정부는 외국인 직접 투자를 유치하고 현재의 투자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서 항상 재정 수지 3퍼센트 기준과 공공 적자 규모 60퍼센트 기준을 준수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개혁 혹은 좌파 정부가 등장한다고 해도 급격히 확대된 재정 투자나 복지 정책을 수행하는 것이 어렵다.

나아가 1990년대 중반 이후 등장한 많은 좌파 정부들이 이러한 기준을 맞추기 위해 국영 기업의 민영화나 공공 주식의 매각, 공공 서비스의 축소를 단행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세계화의 영향을 분석하는 많은 학자들이 '마스트리흐트 기준'을 '수렴의 기준(criteria of convergence)'이라고 칭하면서 세계화 시대에 국가들의 경제 정책은 정부의 이념을 떠나 '복지 예산 축소, 작은 정부'의 신자유주의적인 형태로 수렴되는 경향을 갖는다고 지적하기도 하였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 역시 만만치 않았다. 먼저, 재정 수지 3퍼센트 기준과 공공 적자 규모 60퍼센트 기준의 준수가 반드시 경험적으로 복지 예산의 축소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특히 많은 선진국이나 신흥 발전국에서 교육과 연구 분야에 대한 공공 투자가 오히려 확대되는 측면이 있었다는 점이 강조되기도 하고, 세계화로 인해 고용 안정성에 대한 위협은 경우에 따라 실업 보험이나 사회 안전망의 확대를 가져오기도 한다고 지적된다. 또 일부 학자들은 정부가 재정 수지와 공공 적자 규모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다면, 그 외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자율성이 일정 정도 발생한다고 지적하기도 하였다.
둘째, 정부의 정책 결정에 있어 외부로부터의 압력이 중요한 요인이기는 하지만 정책 결정자들은 국내 변수, 즉 유권자들이나 이익 집단의 선호를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이다. 많은 경우 국가 간 경제 협력이나 국제 무역 협정이 이를 조인하는 국가들의 국내 산업이나 단체들의 반발과 요구에 따라 지체되거나 수정된 경우가 이를 증명한다.
하지만 경제 상황에 따라 이 '마스트리히트 기준' 압력은 정도를 달리한다. 경제 안정기와 위기 상황과 다르다는 점이다. 성장이 계속 동반된다면 이 기준에 대한 일시적인 이탈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지만, 불황 시기에 정부 지출의 급속한 확대는 경제 위기를 초래할 만큼 결정적 요인이 될 수 있다.
현재 남부 유럽의 경제 위기는 이러한 상황을 방증한다. 일부에서 그리스 위기의 근원으로 지목받는 상대적으로 관대한 그리스 복지 체계는 바로 몇 해 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1980년대 중반에 그 모델이 형성되었다. 이 모델은 또한 2000년대 초반에는 그리스가 경제적으로 성장하는데 중요한 국민의 높은 구매력을 낳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2005년부터 진행되어온 경기 침체 시기에는 같은 모델이 재정 수지 악화를 낳아 오늘날처럼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2011년 말에 있었던 독일과 프랑스가 주도한 신재정 협약의 내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거 재정 수지 3퍼센트와 공공 적자 규모 60퍼센트 기준을 준수하지 않는 회원국에 대해서 유럽이사회는 그 나라의 상황에 따라 합당한 규제 방법과 정도를 정했다. 하지만 신재정 협약은 유럽 재정 위기 상황에서 기준 위반국에 대한 제재 조치를 즉각적으로 진행할 것을 그 내용으로 하기로 했다. 회원국에 대한 긴축 정책 강제가 목적이었던 것이다.
좌파 정부가 자율성을 갖는 방식은?
이러한 상황에서 프랑스 사회당 정부가 등장하게 된다. 재정 위기와 관련하여 좌파 정부가 자율성을 갖는 방식은 어떠한 것들이 존재하는가? 여러 방법들이 존재하겠지만, 대표적으로 두 가지 방법이 많이 제기된다.
하나는 조세 정책이고 다른 하나는 환율 정책이다. 조세 정책은 지출을 확대하기 위해 재정의 세입을 넓이는 방법이지만, 납세자들의 저항을 고려해야 한다. 환율 정책은 자국의 통화 가치를 상대적으로 높여 공공 적자의 규모를 상대적으로 줄이는 방법이지만, 급격한 환율 변동은 경제 불안으로 작용할 가능성에 대해 유념해야 한다.
프랑스 정부를 비롯한 유로화를 사용하는 정부는 자국의 통화가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일국 차원에서 환율정책을 사용할 수 없다. 같은 이유로 유럽의 정부들은 통화 안정성을 갖는 대신에 상대적으로 정책적 자율성을 제한받게 된다. 프랑스 정부도 예외가 아니어서 자신의 유권자들을 위한 정책을 수행하기 위해선 조세 정책을 중심으로 재정 압박을 해결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사회당은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가?
프랑스 사회당의 해법은?
경제적 상황이 다른 만큼 2012년 대선은 2007년 대선과 이슈와 정책에서 차이가 있었다. 2012년 대선에서 핵심 경제 이슈가 재정 위기와 실업 문제였다면, 2007년 대선에선 구매력 상승이 주요 이슈였다.
2007년 대선 당시 사르코지 후보는 유권자들의 수입을 증가시키기 위해 '더 일해서 더 벌기(travailler plus pour gagner plus)'라는 정책을 제시하였다. 이 정책은 과거 35시간 노동 시간 제도가 엄격이 규제하였던 초과 근로 시간을 유연화하고 동시에 초과 근로 시간 임금에 대해 세금과 사회 보장 분담금을 면제해줌으로 초과 근로를 장려하여 구매력을 높이는 방안을 핵심으로 한다. 이에 반해 2007년 사회당의 루아얄 후보는 최저 임금을 1500유로로 인상하여 최저 임금 수준에 밀집해 있는 저소득층의 전반적인 임금 인상을 꾀하는 방안을 제안하였고, 동시에 기초 수급 대상자도 근로를 하면 소득에 기반을 두고 기초 수급 수당 수준을 조정하여 지급함으로써 워킹푸어(working poor)를 최소화하는 연대 소득 제도(RSA)를 대안으로 제시하였다.
더불어 두 후보 모두 파편화되어 있던 프랑스의 사회적 대화 구조를 개편하여 노동조합의 대표성을 높이고 사회적 대화를 안정화하는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이에 대한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폭 넓은 중산층 유권자를 대상으로 정책을 펼친 사르코지 후보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2012년은 정부 재정 위기에 따른 재정 정책과 10퍼센트에 이르는 실업과 관련하여 일자리 창출, 대량 해고의 방지가 주요 이슈로 등장했었다. 언론의 보도에서처럼 '긴축이냐 성장이냐'라는 대립에서 다수의 유권자가 올랑드 후보의 '성장'을 택하였다. 그렇다면 이 성장 정책은 무엇인가?
올랑드 대통령은 긴축은 구매력의 하락과 세입의 하락을 가져와 정부 재정 위기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정부가 성장을 위해 핵심 분야에 대한 투자를 이끌고 기업 재투자를 자극하여 실업을 줄이고 성장을 통해 세입을 늘려 성장의 선순환을 이루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하지만 표에서 보듯이 프랑스의 2011년 국가 채무는 GDP의 85.8퍼센트를 기록하고, 재정 수지는 5.2퍼센트로 상당히 높다. 이 수치는 앞서 지적한 신재정 협약의 3퍼센트와 60퍼센트를 훨씬 상회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당이 제시한 정책은 무엇인가?

ⓒ프랑스대사관
산업 투자 정책 : 신개입주의와 공공 투자 은행
사회당은 대선 공약집 <변화(changement)>에서 '신개입주의(nouvel interventionnisme)'를 이야기한다. 정부가 혁신 분야에 대한 투자와 중소기업에 대한 투자를 위해 개입해야 함을 분명히 하지만, 이 방법은 예전과 같이 정부 예산을 통해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 투자 은행(Banque publique d'investissement)을 건립하고 이를 통해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공공 투자 은행은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투자와 정부가 100퍼센트의 주식을 소유하는 우체국 금융 파트의 인프라로 만들어질 예정이라 한다. 공공 투자 은행은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혁신 분야와 중소기업에 대한 투자를 통해 정부 개입주의를 실현하면서도, 정부가 직접적인 투자 재정의 부담을 덜 수 있는 방안으로 여겨진다. 이를 통해 새로운 분야에 대한 투자를 통해 경제의 활력을 도모하고 동시에 새로운 신규 일자리를 창출하여 실업 문제에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더불어 경제 위기에 따른 실업의 확대를 막고자 사회당은 집단 해고에 대한 규정을 강화할 것을 제기하는데, 정당하지 못한 집단 해고를 진행하는 기업에 대해선 정부 지원금 전액을 회수할 것을 주장한다. 이러한 실업 정책은 조세 정책과도 연관된다.
조세 정책 : 기업의 재투자 유도와 자본 소득에 대한 누진세
먼저 기업의 이익이 재투자로 이어지고, 주주 배당금으로 전환되는 규모를 줄이기 위해 기업의 법인세를 기업의 재투자율과 배당금 수준에 따라 조정하는 정책을 제시하였다. 현재 33.3퍼센트로 되어 있는 법인세를 재투자를 확대하는 기업에 대해선 20퍼센트까지 하향 조정하고, 배당금을 확대하는 기업에 대해선 40퍼센트까지 상향조정하는 내용이다. (참고로 한국의 법인세는 2011년 22퍼센트다.) 이를 통해 기업의 재투자를 확대하여 고용 창출을 유도한다는 접근이다.
또 다른 한축의 조세 정책으로 이자 및 배당 같은 재산 소득세의 세금에 대해 근로 소득세 기준을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일률적으로 15.5퍼센트인 재산 소득에 따른 세금을 누진적으로 적용되는 근로 소득세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다. 아래 표에서처럼 1인당 연소득 구간에 따른 누진세율을 재산 소득에 대해서도 적용할 예정이다.
 
▲ 프랑스의 근로 소득 세율(2011년). ⓒ손영우
이에 더하여 15만 유로 이상의 수입에 대해서 45퍼센트로 세율을 높이고 100만 유로를 초과하는 고수익에 대해선 75퍼센트의 세율을 적용하겠다는 입장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이를 통해 전반적으로 빈부의 격차를 줄이면서 세입을 늘이겠다는 전통적인 좌파 조세 정책을 고수하면서도 기업의 재투자를 유도하여 경제를 활성화하는데 기여한다는 방침을 제기 하였다.
금융 정책 : 위험 투자 축소와 단기 투자 자본 규제
한편, 금융 정책에 대해선 위기에 따른 위험 투자를 줄이고, 투기 자본을 유럽 차원에서 규제한다는 방안을 제시한다. 먼저 은행의 예금 업무와 투자 업무의 분리함을 통해서 일반 예금이 투자로 전환되어 위기 시 은행이 곤란을 겪게 되는 상황을 배제하고 은행의 안정화를 꾀하는 정책으로 이미 스티글리츠나 크루그먼이 금융 안정화를 위해 권고하였던 내용이기도 하다.
또 단기 투기 자본의 이동을 줄이고 투자 시장의 안정화를 위해 유럽 수준에서 금융 거래세(0.05퍼센트)를 신설할 것을 제안하였다. 소위 토빈세로 이야기되었던 이 정책은 투기 자본이 국경을 넘을 때 세금을 부과함으로써 투기 자본을 규제한다는 생각이었으나, 투자를 감소시킬 위험이 있으므로 일국 차원에서는 도입이 어렵고 국제 규모에서 적용해야 함으로 그 실효성에서 의문시 되어왔던 정책이지만, 이번 유럽 위기를 통해 다시 제시된 정책이다. 이렇게 단기 투자에 대한 일종의 장벽은 해외 투자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 자율성을 증진시키는 효과를 갖는다.
 
▲ 정부의 세출과 세입 계획안. ⓒ프랑스대사관
올랑드 대통령은 이에 더하여 국가 재무 60퍼센트와 재정 수지 3퍼센트를 규제하고 있는 '안정 성장 협약'이 안정과 성장을 위한 금과옥조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프랑스 경제학자 장 피사니-페리(Jean Pisani-Ferry)는 안정 성장 협약은 독일의 재정 규모를 기준으로 만들어졌으며, 이것이 하나의 기준은 될 수 있지만 이것이 안정과 성장의 절대적인 수치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프랑스와 같이 국가 재무가 80퍼센트에 이르더라도 재정 수지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성장률이 뒷받침된다면 안정과 성장에 별 문제가 없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기준으로 올랑드 대통령은 현재 긴축 재정을 원칙으로 고수하고 이를 의무화하고 있는 신재정 성장 협약에 대한 재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사회당 정부의 약점은 무엇인가?
이상과 같은 사회당 정부의 주요 경제 정책은 경제 위기에서도 좌파 정부의 자율성을 높이고 성장과 빈부 격차 축소를 위한 정책으로 제시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은 몇 가지 변수에 종속된다.
먼저 사회당의 정책은 어느 정도의 경제 성장을 가정하고 있다. 사회당은 아래와 같은 성장률을 전망한다. 하지만 이러한 경제 성장률은 프랑스만의 경제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며, 유럽과 세계 경제와도 밀접하게 연관을 맺고 있다. 성장을 위한 투자가 경기 악화로 인해 효과가 절하된다면 그에 따른 세입이 늘지 않아 재정 적자의 폭은 그만큼 확대될 위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대사관
앞의 것이 외부적 요인이라는 또 하나의 변수는 내부적 요인이라 할 수 있는 노동조합과의 관계이다. 프랑스의 노조는 조직률이 한국보다도 낮은 8퍼센트 수준이며, 전국노조가 7개로 파편화되어 있기로 유명하다. 현재 프랑스 정부의 정책은 전반적으로 근로자들의 구매력보다는 실업과 빈곤층, 혁신 분야에 중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공 부문을 중심으로 한 프랑스 노조와의 조정 여부는 정부의 능력을 시험하는 핵심 관문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근로자 중 공공 부문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고, 전체 노조원의 60퍼센트 가량이 공공 기업에 소속되어 있는 프랑스 노조의 임금 인상은 정부의 재정 확대와 직결되기 때문에 임금 인상 요구에 대한 사전 조정은 좌파 정부가 빈곤층을 위한 투자를 확대하기 위한 선결조건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할 경우 임금 인상을 의심하는 정부와 투자를 의심하는 노조 간의 '죄수의 딜레마' 관계가 형성될 위험이 존재한다.
더욱이 과거 사르코지 정부가 실현한 추가 근로 수당에 대한 세금 면제를 폐지함에 따라 근로자들의 구매력은 더욱 낮아질 수도 있다. 만약 경기가 좋고 정부 투자가 효과적이면 사회적 대화를 이끌어가기에 좋은 조건이 형성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사회적 대화는 '죄수의 딜레마' 관계로 빠질 위험이 농후하다.
특히 지난 1998~2000년 조스팽 정부가 35시간 노동 시간 단축을 진행할 때에도 1999년 초까지 경기가 안정화되었을 때는 문제가 없었던 사회적 대화가 1999년 중반 이후 경기가 악화되자 공무원을 중심으로 임금 인상 투쟁을 제기해 정부의 재정 위협으로 직결되었다. 물론 올랑드 대통령은 연례 임금 포럼을 개최하여 임금 관련 사회적 대화를 정례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지만, 이러한 대화가 효과를 거두기 위해선 파편화된 노조를 설득할 수 있는 근거와 우호적인 환경이 요구된다.
이상과 같이 2012년 대선으로 탄생한 프랑스의 사회당 정부는 유럽 재정 위기 국면에서 새로운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들이 모두 실현될지 여부는 아직 미지수이다. 하지만 이에 앞서 정책들이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만들어졌고 이러한 정책들이 어떠한 난관에 부딪쳐 어려움을 겪는가를 관찰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관찰이 이후 지구 다른 편에서 유사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길잡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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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공동후보 멜랑숑 지지율 급등 (경향, 최민영 기자 min@kyunghyang.com, 2012-03-19 22:09:51)
ㆍ프랑스 대선 진보진영 표 흔들, 사르코지 선두로
파리코뮌(1871년) 기념일인 18일, 프랑스혁명 발원지인 바스티유 광장에 주최 측 추산 12만명의 시민이 모였다. 다음달 22일 프랑스 대선 1차 투표를 앞두고 급부상 중인 프랑스 공산당과 좌파전선의 공동후보 장 뤽 멜랑숑(61)이 제안한 ‘시민혁명’을 지지하기 위해서다. 붉은 타이를 맨 멜랑숑은 “혁명과 반란의 사람들인 우리는 바스티유의 정신을 다시 외친다”며 “혁명이 시작됐던 바로 이곳에서 우리의 혁명을 시작하자”고 말했다. 붉은 깃발들 속에서 약 20분간 이어진 연설은 사회주의 전통을 상징하는 ‘인터내셔널가’와 ‘라 마르세예즈’ 제창으로 이어졌다고 르몽드는 전했다.
좌파 후보 멜랑숑이 프랑스 대선구도를 흔들고 있다. 최근 이폽 여론조사에서 그의 지지율은 11%를 기록했다. 지난 1월(6%)보다 껑충 뛰었다. 사분오열된 좌파를 한데 모은 조직력과 현실개혁에 지지부진한 주류정치에 염증 난 유권자들을 끌어모은 덕이다. 그의 공약은 파격적이다. 연소득 36만유로(5억3200만원) 이상 부분은 100% 과세로 국가가 환수하고, 월 최저임금은 1700유로(250만원)로 높이자고 제안했다.
임금노동자들이 애써 창출한 부의 상당 부분을 기업 주주들이 가져가는 신자유주의적 배분구조도 문제로 삼는다. 교사 출신으로 상원의원, 교육장관을 역임한 멜랑숑의 마르크스주의적 사회진단은 4년 넘는 경기침체에도 해법을 내놓지 못하는 주류정치권에 비해 색깔이 선명하다. 달변의 독설가인 그는 각종 토론의 단골손님이다.
멜랑숑의 부상은 대선 선두주자인 사회당 대선후보 프랑수아 올랑드에게는 타격이다. 진보진영의 표가 흩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 달 전에 재선 도전에 시동을 건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저력도 만만찮다. 반이민 공약을 내세우며 극우파의 표심을 사면서 최근 이폽의 여론조사에서 27.5% 대 27%로 올랑드를 오차범위 내에서 앞섰다.
하지만 두 후보 모두 멜랑숑의 인기를 의식한 듯 좌파 성향 공약을 잇달아 내놨다. 올랑드는 연소득 100만유로 이상의 부유층에 75%를 과세하겠다고 발표했고, 사르코지는 부유층의 탈세를 엄격하게 다루겠다고 밝혔다.
5월6일 예정인 2차 투표에서는 올랑드가 60% 지지율로 사르코지를 꺾고 승리할 것으로 점쳐진다. 하지만 최종 결과와 상관없이 멜랑숑이 불붙인 경제 개혁 논의는 프랑스 대선기간 동안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몰락하는 프랑스, 살 길은 '유로존' 탈퇴 뿐? (프레시안, 장석준 진보신당 상상연구소 부소장, 2012-03-16 오후 6:19:24)
[장석준의 '적록 서재'] 장 슈벤망의 <프랑스는 몰락하는가>
한국에서 총선이 실시되는 다음 달, 4월에 프랑스에서는 대선이 있다. 프랑스에서는 대선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1, 2위 득표자가 결선을 다시 치른다. 결선은 5월에 있을 예정이지만, 누가 결선에 올라갈지는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현 대통령인 우파의 대표 주자 니콜라 사르코지와 사회당의 프랑수아 올랑드 후보가 그들이다.
이번만 그런 것은 아니다. 프랑스에서는 대선 결선에 늘 드골주의 우파와 사회당 후보가 올라가곤 했다. 단 한 차례 예외가 있기는 했다. 2002년 대선이다. 이때 사회당 리오넬 조스팽 후보가 1차 투표에서 3위(16.18퍼센트)를 하는 바람에 극우파 국민전선의 장 마리 르펭(16.86퍼센트)이 우파 자크 시라크와 결선에서 맞붙게 되었다. 프랑스 좌파로서는 정말 치욕스러운 경험이었다. 극우파에 맞서 좌파의 오랜 숙적, 시라크에게 표를 던져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말이다.
덕분에 1차 투표에 나온 비사회당 좌파 후보들이 난데없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욕을 많이 먹은 사람이 '시민운동'(당 이름이 이랬다. 후에 '시민공화운동'으로 당명을 바꾸었다)의 장 피에르 슈벤망 후보(5.33퍼센트 득표)였다.
사실 '노동자 투쟁'(트로츠키주의 조직)의 아를레트 라기예(5.72퍼센트)나 '혁명적 공산주의자 동맹'(역시 트로츠키주의 조직)의 올리비에 브장스노(4.25퍼센트), 녹색당의 노엘 마메르(5.25퍼센트)도 슈벤망 만큼이나 좌파 성향 표를 분산시키는 데 일조했다. 그런데도 슈벤망이 유독 욕을 먹은 것은 그가 본래 사회당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사회당 입장에서는 '배신자'로 보일 만도 했다.
그러나 슈벤망은 결코 천덕꾸러기 취급이나 받아야 할 그런 정치인은 아니다. 그는 1968년 5월 봉기 이후 한 세대 넘는 세월 동안 프랑스 현대사의 주요 등장인물 중 한 명이었다. 그의 대안에 뭔가 문제가 있기는 했을망정 그의 이력에서 동시대 다른 주류 좌파 정치인들과 같은 혐의를 찾아낼 수는 없다. 그는 한 번도 신자유주의에 무릎 꿇은 적이 없는 좌파다.
1939년생인 슈벤망은 1968년에 아직 20대였다. 이 무렵 프랑스에는 68 운동의 세례를 받은 젊은 세대가 지지할 만한 좌파 정당이 없었다. 거대 좌파 정당이 있기는 했다. 프랑스 공산당. 하지만 공산당은 낡은 스탈린주의 전통 때문에 젊은이들에게는 기피 대상이었다. 5월 봉기 당시 공산당이 취한 소극적인 태도도 청년들이 이 당에 거리를 두게 만들었다.
또 다른 좌파 정당, '노동자 인터내셔널 프랑스 지부'(SFIO)도 매력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이상한 이름을 단 프랑스판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교원노동조합의 지지에 의존하며 근근이 목숨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 당은 알제리 민족 해방 혁명 때 노골적인 제국주의 입장을 취한 이후 거의 재기불능 상태였다.
슈벤망은 SFIO 당원이었다. 그러나 이 당을 그 이름 그대로, 이제까지의 성격 그대로 이어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와 그 주위의 동지들은 SFIO의 역사적 기반을 접수하면서도 전혀 새로운 성격의 사회주의 정당을 건설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이 새 정당으로 좌파 제1당의 자리를 놓고 공산당과 경쟁하길 바랐다. 그래서 이들은 당 안에 '사회주의 연구, 조사, 교육 센터'(약칭 CERES)라는 조직을 새로 띄웠다.
CERES는 전후 사회민주주의 세계에서 금기시돼온 '국유화' 강령을 다시 끄집어냈다. 또 68 세대가 제기한 '자주 관리'의 문제의식을 받아들였다. 이들은 이를 바탕으로 공산당의 유로코뮤니즘과 경쟁하고 이를 대체할 급진적 사회주의 노선을 정초하려 했다. 이러한 시도는 앙드레 고르의 탈자본주의 구조 개혁론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마르크스의 본래 사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거꾸로 선 이념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회주의는 발전된 자본주의를 민주적으로 극복함으로써 체제 내부에서 탄생할 터였다. (…) 그렇다면 우리는 개혁적이었는가, 아니면 혁명적이었는가? 물론 양쪽 다였다. 우리는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1966년 '혁명적 개혁주의'를 주창했던 앙드레 고르의 충실한 독자였다. (25~26쪽)
이 CERES가 좌파의 거의 유일한 대중 정치인이던 프랑수아 미테랑과 손잡고 새로 만든 게 지금의 프랑스 사회당이다. 슈벤망은 미테랑의 요청으로 사회당의 강령을 작성했고, 1974년과 1981년 대선 공약을 기초하는 데도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다. 미테랑은 이 공약을 바탕으로 1981년에 집권해서 9대 제조업 그룹과 주요 은행들의 국유화를 단행했다. 이때 슈벤망은 산업장관에 임명돼 국유화 정책의 집행을 책임졌다.
이 시기에 프랑스 좌파는 전 세계에서 단연 돋보이는 존재였다. 폴 볼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의 지휘 아래 나머지 세계가 통화주의의 훈육을 고통스럽게 감내하고 있을 때 프랑스 좌파 연합 정부(사회당 정부에 공산당까지 참여했다)만 홀로 케인스주의 확대 정책을 펼쳤다. 다들 금융 세력이 주도하는 자본 우위의 세계 질서(이후 '신자유주의 지구화'라 불리게 되는)를 향해 나아갈 때 유독 프랑스만 거대 자본의 국유화를 추진했다. 68 운동의 여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프랑스 좌파의 영광의 시절이었다.
하지만 오래 가지는 못했다. 영미계 금융 자본의 철수로 인한 외환 시장의 혼란, 그리고 그때마다 서독 연방은행이 유럽통화체제(EMS)를 통해 프랑스에 가한 통화주의 수용 압박 앞에서 프랑스 좌파 연합 정부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EMS에서 탈퇴하고 초국적 금융 세력 및 미국, 서독의 우파 정부에 맞서 항전할 것인가, 아니면 시장 지상주의라는 대세에 뒤늦게 합류할 것인가?
결국 미테랑 정부는 1983년에 후자, 즉 굴복을 선택했다. 이것은 나폴레옹의 프랑스 군대가 영국, 프로이센 연합군에 대패했던 워털루 전투만큼이나 세계사적인 패배였다. 당시 지구 곳곳의 좌파에게 이것은 더 이상의 저항은 소용없다는 청천벽력 같은 비보였다. 브라질 노동자당 좌파의 이론가인 에미르 사데르는 훗날 프랑스 좌파 인사들에게 이렇게 토로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1983년 프랑스가 '다른 정치는 불가능하다'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 우리들은 완전히 사기를 잃고 말았어요. 한마디로 레이건과 대처가 가리키는 방향 말고는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어떤 대안도 없다는 말이나 다름없으니까요." (50쪽)
1983년에 그럼 슈벤망은 어디에 있었던가? 그는 물론 항전파였다. EMS, 더 나아가 유럽연합에서 탈퇴하는 한이 있더라도 프랑스 공화국은 초국적 금융 세력에 맞서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을 열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정작 선택의 순간에 그는 아무 영향력도 발휘할 수 없는 처지였다. 너무 '급진적'인 경제 계획을 추진한다는 공기업 사장단의 불평 때문에 산업장관에서 막 밀려나 한직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졸저 <신자유주의의 탄생>(책세상 펴냄)의 제5장 "유럽의 황혼"에는 이러한 과정이 좀 더 상세히 서술돼 있다.
아무튼 이때부터 프랑스 사회당은 유럽 전체에 시장지상주의 외에 다른 길이 없음을 설득하는 역할을 떠맡았다. 미테랑 정부의 재무장관이었던 자크 들로르가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이 되어 단일 통화, 즉 지금의 유로화 출범을 주도했다. 프랑스의 발목을 잡았던 EMS를 유럽 전체로 확산한 것이다.
이 야심찬 시도의 결말이 곧 지금의 그리스 사태다. 이 모든 선택을 미테랑은 '유럽 통합'이라는 고상한 깃발 아래 긍정하고 또한 지원했다. 그리고 그럴수록 사회당과 슈벤망 사이의 거리는 멀어졌다. 그는 결국 1992년에 걸프전에서 프랑스가 미국을 일방적으로 추종한 데 반발하며 사회당에서 탈당했다. 이후 그는 CERES의 후신인 '시민운동'이라는 소규모 정당을 이끌며 사회당으로서는 가장 껄끄러운 비판자가 되었다.
슈벤망이 올해 대선에도 출마할 거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번에는 출마를 접었다. 대신 책을 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책이 우리말로 번역돼 나왔다(<프랑스는 몰락하는가 : 갈림길에 선 프랑스의 선택과 유럽연합의 미래>(정기헌 옮김, 씨네21북스 펴냄)). 슈벤망이 국내에 그렇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라는 점에서, 더구나 영어권 인물도 아니라는 점에서 이 기민한 국내 소개가 놀랍지 않을 수 없다.
혹시 프랑스 저자의 책이어서 읽기를 망설일지도 모르겠다. 저명한 프랑스 철학자들의 책을 손에 들었다가 낭패 본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충분히 그럴 만하다. 하지만 슈벤망은 프랑스인이라 하더라도 철학자가 아니다. 대중 정치인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은 비교적 술술 읽힌다.
반대로 정치인이 쓴 책이어서 깊이를 의심할 수도 있겠다. 어느 나라나 정치인이 쓴 책 치고 한 보따리의 자기선전이나 변호 아닌 게 별로 없기는 마찬가지니까 말이다. 더구나 선거를 앞두고 나온 책이라면 더 의심해봄직하다.
그러나 이 책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슈벤망의 지나친 자기 확신이 묻어나는 문장들을 비판적으로 읽는다는 것을 전제한다면, 충분히 일독의 가치를 지닌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프랑스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 그리고 유럽 재정 위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유럽이 취해야 할 선택에 대한 사뭇 진지한 고민이 책 전체를 꿰뚫고 있다. 지금 프랑스가, 유럽이 어떠한 고뇌에 휩싸여 있는지 이해하는 데 더없이 좋은 자료다.
슈벤망은 이 책에서 '거슬러 올라가 되돌아보기(thinking backward)'의 사유를 거듭한다. 미테랑 정부가 '사회주의'를 약속해놓고 '시장주의'를 불러들인 198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가고, 더 멀리는 장 모네가 유럽 통합을 프랑스의 국가 과제로 제시하던 제2차 세계 대전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슬라보예 지젝은 이러한 '되돌아보기'의 사유 방식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우리는 운명적 결정이 내려지기 이전으로, 혹은 오늘날 우리에게 일상으로 여겨지는 상태가 연원한 우발적 사건 이전으로 우리 자신을 되돌려 놓아야만 한다. 이러한 열린 결단의 순간을 명확히 드러내는 그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 순간에 역사가 다른 전개 방향을 취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해보는 것이다. (Slavoj Zizek, "Thinking Backward : Predestination and Apocalypse", Edited by Slavoj Zizek, Paul's Moment : Continental Philosophy and the Future of Christian Theology, Brazos Press, 2010. p. 207)
슈벤망의 의도도 다르지 않다. 그가 미테랑이나 모네를 법정에 소환하는 것은 묵은 원한을 풀려는 게 아니다. "그때 그곳에서 나만은 옳았다"고 강변하려는 속셈만도 아니다. 프랑스 현대사의 중대한 역사적 선택의 순간, 그리고 그때 가능했던 다른 대안들을 곱씹으면서 지금 프랑스인들이 직면한 갈림길에 빛을 밝히려는 것이다.
이제는 정말 그럴 때가 되었다. 신자유주의 지구화가 시작된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초만큼이나 근본적인 선택의 시대가 다시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이후 우리는 그런 시대를 살고 있다. 다만, 우리 자신이 아직 이 시대의 의미를 충분히 실감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슈벤망은 '때(時)'에 대한 예민한 감각으로, 지난 30여 년을 되돌아보며 미래를 탐사하는 작업에 누구보다 먼저 나선다. 30여 년 전 결단의 순간에 그 현장에 있던 장본인이 이런 작업에 나서니 더욱 흥미롭게 다가온다.
그의 결론도 흥미롭다. 그는 미테랑 정부 시절 유산되었던 이상을 '새로운 형태로' '재추진'할 것을 제안한다. 그 중의 하나로서, 슈벤망은 주주 중심 기업 지배 구조의 전환을 제시한다.
"산업 정책의 재수립은 순전히 금리 생활자에 불과한 주주들의 독재, 수익성에만 집착하는 익명의 자본과 단절하고 주주들에게 기업의 발전을 고민하는 책임성을 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 기업 경영의 주체인 경영자들의 역할 회복, 다시 말해 지속적으로 회사에 협력하는 주주들이 감독이사회의 다수를 점하는 새로운 기업 개념을 정착시키는 것이다.
직원 대표들 역시 기업 경영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정부도 직접 참여, 황금주, 현재 수준보다 확충된 투자 전략 기금 등으로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새로운 기업 개념 속에서 오직 감독이사회만이 회계감사위원회를 통제할 수 있어야 하며 적대적 인수 시도에 대항한 보호조치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런 새로운 기업 개념은 19세기의 유물인 합자 회사 개념과 단절하고 프랑스 산업이 세계 시장에서 진정한 비교우위를 누릴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363~364쪽)

한국에서는 진보신당이 '탈 삼성 공화국'을 총선 공약으로 제시하면서 비슷한 방식으로 삼성의 기업 지배 구조를 뜯어고치자고 하고 있다. 그 구체적인 방안은 감독이사회를 신설하고 노동자 대표가 감독이사회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건희 일가 같은 재벌이 불법적 독재 권력의 발판으로 쉽게 악용하는 주식회사 형태의 기업 지배 구조를 노동자-국민 기업 형태로 바꾸자는 것이다. 슈벤망의 제안이 지나치게 장기 투자자나 경영자를 특권화한다는 인상은 있으나 아무튼 그가 프랑스인들에게 던지는 대안은 진보신당의 '탈삼성' 논의와 궤를 같이 한다고 하겠다.
슈벤망은 유럽연합에 대해서도 기존의 선택폭을 넘어서는 대안을 제시하는데, 어찌 보면 그의 책 안에서 가장 급진적인 것이 다름 아닌 이 대목이다. 그는 우선 유럽연합 내에서 개별 국민 국가의 정책 결정권을 보장, 강화하는 '국민의 유럽 공화국'을 제안한다. 하지만 이것이 독일 등의 완고한 입장 때문에 실현 불가능하다면, 과감히 '플랜 B'를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바로 유로존 탈퇴, 유로화 폐기다.
이런 대안들이 실현되지 못할 경우, 차선이긴 하지만 알랭 코타의 말을 따르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어 보인다. "서서히 죽어갈 바에는 유로존에서 탈퇴하는 편이 낫다." 유로화의 굴레를 벗어던지면 프랑스 경제에도 조금은 숨통이 트일 것이다.
금융시장과 신용평가사들에 겁을 집어먹은, 자칭 정치 경제 '책임자들'의 일상적인 협박에 놀아나지 말아야 한다. (…) 유로화의 존속을 문제 삼는 것은 프랑스에는 차선책일 뿐이다. (유로화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프랑스의 생존을 위해 불가피하게 취할 수밖에 없는 대안이다. (394~395쪽)

프랑스 사회당 대선 후보 프랑수아 올랑드가 금융 규제와 부자 증세 좀 하겠다는 데 대해서도 거품을 무는 독일 정부나 영국 시티(City, 초국적 금융 중심가)다. 그런데 이런 문구 앞에서는 또 얼마나 경기를 일으킬까? 하지만 한때 황당한 망상 취급이나 받던 이런 주장을 더 이상 그렇게만 몰고 갈 수 없다는 것, 이것이 지금 세계가 진입하고 있는 역사적 시간대에 지배 엘리트들이 처한 궁지다.
그러나 <프랑스는 몰락하는가>에는 우리를 당혹감에 빠뜨리는 대목들도 존재한다. 가령, 핵에 대한 슈벤망의 입장이 그렇다. 그는 프랑스에 아직도 존재하는 많은 장점과 저력들 중 하나로 "공화국 모델", "공공 서비스 전통" 등과 함께 "핵무기 보유"를 들기를 주저하지 않는다(399쪽). 또한 프랑스가 추구했어야 할 발전 방향 중 하나로 "핵 산업 강화"를 든다(244쪽).
유럽 최대의 핵 발전 국가 프랑스가 슈벤망에게는 극복 대상이라기보다는 자랑거리인 것이다. 핵 발전을 단계적으로 축소하겠다는 올랑드 후보의 공약에도 한참 미치지 못하는 현실 인식이라 하겠다. 슈벤망이 프랑스 녹색당을 마뜩찮은 눈길로 바라보는 것도 이런 인식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미테랑 정부의 최대 오점이 1983년 금융 세력에게 무릎 꿇은 일이었다면, 그 다음 커다란 오점은 '레인보우 워리어(Rainbow Warrior)' 호 사건이었다. 1985년 프랑스 정보기관은 남태평양의 프랑스 핵실험을 막으려던 그린피스(Greenpeace) 선박 '레인보우 워리어'를 침몰시켰다. 이 사건으로 프랑스 좌파 정부는 세계인의 빈축을 샀다.
그런데도 슈벤망은 이때의 미테랑 정부의 태도에서 한 발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가 사표로 삼았다던 '혁명적 개혁주의'의 주창자 앙드레 고르가 생태사회주의의 고전 <프롤레타리아여, 안녕>을 쓴 게 이미 미테랑 정부 들어서기 1년 전(1980년)이었는데도 말이다.
핵무기나 핵 발전은 여러 사례 중 하나일 뿐이다. 국내 총생산(GDP) 중심의 성장관 등 쟁점은 더 많다. 이 모두가 생태주의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문제들이다. 이것은 슈벤망의 약점일 뿐만 아니라 30여 년 전 프랑스 좌파의 탈자본주의 구조 개혁 대안의 한계이기도 하다. 미테랑은 비록 "삶을 바꾸자"는 슬로건으로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그 자신 이 구호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프랑스는 몰락하는가>의 결론 부분이 아니라 오히려 그 첫머리에서 우리의 당면 과제를 더 절실히 확인하게 된다. 이 도입부에서 갓 서른의 슈벤망은 CERES 동지들과 함께 68 운동 직후의 시대 상황에 맞춰 사회주의 이념과 운동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시작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 바로 그러한 작업이다. '소비에트+전력=공산주의'이라는 레닌 시대의 비전도 아니고 '국유화+핵 발전=삶의 변화'라는 30여 년 전의 비전도 아닌 우리 시대의 대안을 쓰는 일 말이다.
 
http://www.naeil.com/News/economy/ViewNews.asp?sid=E&tid=4&nnum=653351
[책으로 읽는 경제]존재감 위기 프랑스 좌파의 자아비판 (내일,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2012-03-16 오후 3:17:00)
프랑스는 몰락하는가 / 씨네21북스 / 장 피에르 슈벤망 지음 / 정기헌 옮김 / 1만6000원
프랑스 좌파는 81년에 권력을 잡았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들어오고 유럽이 통합되면서 프랑스의 존재는 희석돼 가고 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좌파관료인 장 피에르 슈벤망이 프랑스의 몰락을 걱정하면서 '새로운 길'을 찾고 있다. '프랑스는 몰락하는가'는 "프랑스 국민에게 새로운 미래를 제시하려면 반드시 그 이유에 답해야 한다"는 슈벤망의 자문이다.
돌파구를 향한 질주는 같이 정부를 책임졌던 미테랑 대통령에 화살을 돌렸다. 미테랑은 '유럽(통합)'이라는 환상에 파묻혔다. 유럽통합을 위한 정지작업인 룩셈부르크 조약과 마스트리히트 조약은 탈규제를 옹호하며 신자유주의를 끌어들였다.
슈벤망은 "미테랑은 자신의 정책이 초래할 결과를 제대로 예상하지 못했다"면서 "남은 것은 위기에 처한 신자유주의와 독일이 주도하는 유럽"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프랑스엔 꿈이 없다고 단언하며 대통령 자리에 꿈을 갖고 있는 듯 비전을 찾아나섰다. 그는 "프랑스좌파는 사회주의를 찾았다고 믿었으나 알고보니 신자유주의였다"면서 "새로이 도래하는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를 온전하게 결산해 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자유주의적 선회라는 함정과 유럽통합주의라는 환상에 빠진 사회당을 바로잡아보겠다는 것이다.
슈벤망은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어느 때보다 자신의 안위를 책임지는 프랑스, 유럽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독일을 견제할 수 있는 프랑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각 국가의 의지가 유기적으로 결합한 유럽국가연합 혹은 국민의 유럽공화국을 건설해야 한다"며 경제를 뛰어넘은 정치적 통합을 제안했다. "현재와 좌파와 우파의 구분을 넘어 68년 대변혁기 이전에 갖고 있던 학교, 동등한 안전망, 시민정신, 조국애 등으로 오래된 역사적 흐름을 복원하는 게 그람시가 말한 '문화적 헤게모니'를 구축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칸트의 말을 빌어 "공화국 이념은 후퇴하더라도 언제라도 재기할 수 있다"면서 "공화주의를 바탕으로 기층민중의 세력을 규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슈벤방은 프랑스 사회당 재건의 주역이다. 81년부터 20년간 프랑스 좌파정부에서 연구부 산업부 교육부 국방부 내무부 장관이 지냈다. 현재는 벨포르 지역 상원의원으로 외교 국방 군사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저 연봉 5000만 원, 최고 5억 원! 법으로! (프레시안, 장석준 진보신당 정책위원회 의장, 2012-10-19 오후 5:57:33)
[장석준의 '적록 서재'] 장뤼크 멜랑숑의 <인간이 먼저다>
몇 달 전에 장 피에르 슈벤망의 <프랑스는 몰락하는가>(정기헌 옮김, 씨네21북스 펴냄)를 다룬 적이 있다. 30년 전 미테랑 좌파연합 정부가 신자유주의에 무릎 꿇는 것을 정부 안에서 지켜본 프랑스 좌파의 역전 노장이 올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펴낸 책이었다. 프랑스 좌파, 그것도 이론가가 아닌 정치인의 책이 한국어로 번역되는 것은 흔치 않다. 대선이라는 중대한 정치적 계기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5월 프랑스 대선 결선 투표 결과는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다. 우파 니콜라스 사르코지 대통령을 누르고 사회당의 프랑수아 올랑드 후보가 승리했다. 프랑수아 미테랑 이후 16년 만에 좌파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곧이어 있은 총선에서도 사회당과 그 제휴 정당들이 승리하여 현재 프랑스는 대통령과 내각, 원내 다수파 모두 좌파다.
그런데 올랑드의 승리만큼이나 이번 프랑스 대선에서 화제를 뿌린 또 다른 인물들이 있다. 그 중 한 명이 극우파 국민전선의 여성 대표 마린 르펭이다. 그녀는 1차 투표에서 17.9퍼센트를 얻어 파시즘의 부활을 우려하는 전 세계 민주 시민들이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들었다. 그녀의 정반대 편에서는 또 다른 '전선'의 후보가 바람을 일으켰다. 바로 좌파전선의 장뤼크 멜랑숑이다.
멜랑숑은 한때 지지율이 15퍼센트를 넘나들기도 했다. 비록 실제 득표율은 일부 지지층이 '결선에서 당선 가능'한 후보 올랑드 쪽으로 쏠려 11.05퍼센트에 그쳤지만, 이것 역시 결코 만만히 지나치고 말 수치는 아니다. 1970년대에 프랑스 공산당의 전성기가 끝난 이후 사회당 왼쪽에서 10퍼센트 이상 득표한 후보가 나타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역사를 멜랑숑과 좌파전선이 새로 썼다.
물론 멜랑숑의 정치적 행진이 기획대로만 되지는 않았다. 그는 대선 직후의 총선에서 일부러 마린 르펭의 지역구에 출마를 선언했다. 총선 1차 투표에서 좌파 중 최대 다수 득표자가 되어 결선에서 르펭을 물리치겠다는 게 그의 포석이었다.
하지만 1차 투표에서 그는 사회당 후보보다 적은 21.46퍼센트 득표에 그치고 말았다. 멜랑숑은 결선 진출을 포기하고 사회당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결선에서 르펭은 불과 100표 차로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르펭을 떨어뜨리겠다는 대의는 실현되었지만, 멜랑숑이 그 영광의 주역이 되겠다는 구상은 실패로 끝난 것이다. 그렇다고 멜랑숑 바람이 그저 에피소드로만 끝난 것은 아니다. 그것은 비록 우회적인 방식이나마 올랑드 정부 안에 자신의 영향력을 새겨 넣었다. 가령 최저 임금 인상 건이 그러하다.
올랑드의 최초 공약에는 최저 임금에 대한 내용이 없었다. 좌파가 총선 때마다 '최저 임금 인상'을 들고 나오는 게 상식인 유럽의 풍토에서는 좀 이상한 일이었다. 반면 멜랑숑은 '최저 임금 인상'을 핵심 공약 중 하나로 내세웠다. 월 1700억 유로(240만 원 정도)로 올리겠다는 것이었다. 이 공약이 크게 인기를 얻자 올랑드 측도 부랴부랴 '최저 임금 인상'을 공약하고 나섰다. 지금 이것은 프랑스 새 정부의 주요 정책 중 하나다.
이 정도 되면 멜랑숑 후보의 정책적 영향력을 얕잡아 볼 수는 없겠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좌파전선의 정책들을 모아놓은 대선 공약집이 최근 우리말로 번역돼 나왔다. "좌파는 어떻게 세상을 바꾸려 하는가?"라는 부제를 단 <인간이 먼저다>(강주헌 옮김, 위즈덤하우스 펴냄)라는 150쪽짜리 작은 책이다.
좌파전선, 어떤 정치 세력인가?
<인간이 먼저다>의 저자는 '장뤼크 멜랑숑'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정가의 상식으로 볼 때 그가 직접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좌파전선'이라는 정치 세력의 집단 저작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좌파전선이 도대체 어떤 세력인지부터 짚어 봐야 할 것이다.
2008년에 프랑스에서는 사회당 왼쪽에 새로운 좌파 정당'들'이 등장해 이목을 끌었다. 그 중 스포트라이트를 가장 많이 받은 것은 반자본주의신당(NPA)이었다. 이 당의 모체는 1968년 5월 봉기 이후 끈질기게 투쟁을 지속해온 프랑스의 유서 깊은 트로츠키주의 조직 '혁명적 공산주의 동맹(LCR)'이다.
저명한 트로츠키주의자 에르네스트 만델로부터 커다란 영향을 받은 알랭 크리뱅(전 유럽의회 의원), 다니엘 벤사이드(국내에 그의 저서 <마르크스 사용 설명서>(양영란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 등이 소개돼 있다) 등이 이 조직의 역사적 지도자들이다.
이 조직이 운동가들로만 이뤄진 일종의 전위 조직에서 대중 정당으로 전환하게 된 직접적 계기는 2002년과 2007년 대선에서 연이어 거둔 상당한 대중적 지지(약 5퍼센트)였다. 젊은 우체국 비정규직 노동자 올리비에 브장스노가 이 두 선거에 후보로 나서서 당시 사회당의 우경화로 열린 좌파의 빈 공간을 채웠다. 그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신자유주의가 아직 승리의 깃발을 휘날리던 때에 자본주의 중심부에서 자칭 혁명적 사회주의자가 두 자리 수 여론 조사 지지율을 기록하곤 하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런데 2008년에 창당한 신생 좌파 정당은 반자본주의신당만이 아니었다. 일군의 사회당 탈당자들이 녹색당 탈당자들과 함께 만든 또 다른 정당이 있었다. 좌파당이었다. 이 해에 사회당에서는 당 대회가 있었다. 당의 여러 경향들이 각자 입장 문서(motions)를 작성하여 대의원들의 지지를 구했다. 그런데 멜랑숑이 속해 있던 좌파 경향의 지지율이 생각보다 저조했다. 이것은 2007년 사회당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세골렌 루아얄의 '제3의 길' 노선, 즉 사회자유주의 입장이 당을 장악해가는 증거로 보였다. 그러자 좌파 일부가 당 대회 와중에 탈당을 결행했다. 조스팽 내각에서 직업 교육 담당 장관을 맡은 바 있는 멜랑숑이 이들 중 가장 이름이 알려진 인사였다.
마침 이들에게는 새 정당 모델이 있었다. 바로 독일의 좌파당이었다. 독일 좌파당은 구 동독의 개혁 사회주의 흐름을 이어받은 민주사회주의당을 한 축으로 하고 슈뢰더 사회민주당-녹색당 연정의 복지 축소 정책에 반발해 사회민주당에서 탈당한 오스카 라퐁텐 전 당 대표 등 구 서독 지역 좌파 사회민주주의자들 및 트로츠키주의 정파들을 다른 한 축으로 하여 등장했다. 좌파 사회민주주의에서 혁명적 사회주의에 이르는 다양한 좌파 세력들이 '반신자유주의' 노선을 중심으로 결집한 정당이다.
멜랑숑 등 사회당 탈당파는 이러한 독일 좌파당과 유사한 정당을 프랑스에도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프랑스는 독일이 아니었다. 전통 하나로 버티고 있던 프랑스 공산당은 자신의 간판을 내려놓을 생각이 없었다. 프랑스 트로츠키주의의 대표 정파인 혁명적 공산주의 동맹도 반자본주의신당이라는 독자 대중 정당 실험을 이제 막 시작한 상황이어서 사회당 탈당파와 다시 당을 새로 만들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사회당 탈당파는 일부 녹색당 탈당 세력하고만 힘을 합쳐 좌파당을 시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프랑스 좌파당은 당세가 미약한 대신 사회당 왼쪽 정치 세력들의 광범위한 연합 전선을 결성해서 사회당에 도전하고자 했다. 연합 전선의 주된 상대는 공산당과 반자본주의신당이었다. 그런데 공산당이 좌파당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과 달리 반자본주의신당은 이를 거부했다. 가장 강력한 이유는 공산당과 좌파당 안에 여전히 친사회당 흐름이 강해서 이들과의 연합이 자칫 급진 좌파 전체를 사회당의 하위 파트너로 만들어버릴 위험이 높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반자본주의신당은 최근까지도 공산당, 좌파당과 선을 긋는 독자 활동에 주력했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반자본주의신당이 점점 더 대중 정치의 중심에서 멀어지게 만들었고, 그래서 창당 당시의 기대와는 달리 당세가 계속 위축되고 있다. 당 통합과 달리 연합 전선의 문제에는 좀 더 유연한 대응이 필요했는데, 반자본주의신당이 이 점에서 패착을 한 게 아닌가 싶다. 반자본주의신당 안에서도 이 때문에 논쟁이 끊이지 않았고, 급기야는 연합 전선 지지파가 탈당해 '통일좌파'라는 새 조직을 만들기도 했다.
반면 좌파당과 공산당의 연합은 탄력을 받았다. 2009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둔 뒤 2010년 지방 선거에도 공동 대응했고 '좌파전선'이라는 이름으로 이번 대선에 뛰어들기에 이르렀다. 좌파당, 공산당 외에도 반자본주의신당 탈당파인 '통일좌파', 마오주의 조직인 '프랑스노동자공산당', 공산당 탈당파 모임인 '진보대안회의' 등 좌파 소수 정파들이 좌파전선에 합류했다. 더 중요한 것은 프랑스 반신자유주의 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ATTAC(금융거래과세시민행동연합)의 주요 활동가들이 좌파전선의 지지 대오를 이뤘다는 점이다.
사실 올해 총선에서 좌파전선이 거둔 성과만 놓고 보면, 그렇게 장밋빛은 아니다. 총 577석 중 좌파전선의 의석은 10석에 불과하다. 소선거구제(비록 결선 투표제가 있기는 하지만)인 상황에서 사회당과 선거 연합을 구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결과는 피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대선에서 좌파전선이 보여준 가능성은 의회 밖 사회 운동에 여전히 신선한 충격으로 남아 있다. 심지어는 반자본주의신당까지도 이제는 연합 전선에 대해 진지하게 재고하는 움직임이다.
이렇게 보면, <인간이 먼저다>는 단순히 선거가 끝나면 망각되고 말 정세적 문건만은 아니다. 자본주의 위기의 초입인 현재, 프랑스에서 사회당 왼쪽 좌파들이 도달해 있는 고민과 합의의 수준을 일정하게 대변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당의 시각을 잘 보여주는 앙리 베베르(지금은 사회당 정치인이지만 젊은 시절에는 혁명적 공산주의 동맹의 이론가였다!)의 <좌파 이야기>(임명주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와 이 책을 함께 읽어보는 것도 꽤 흥미로운 독서 체험이 될 것 같다.
제헌의회를 통해 제6공화국을 향하여
<인간이 먼저다>의 제1장 제목은 '부의 분배와 사회적 불안정의 해소'다. 여기에는 위에서 소개한 월 1700 유로로의 최저 임금 인상을 비롯해서 주35시간 노동 시간제, 각 기업의 임시직 및 계약직 고용을 10퍼센트 이내로 제한하는 비정규직 고용 상한제, 공공 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주가 상승 목적의 정리 해고 금지 등이 제시되어 있다. 한국에서 노동 운동이 요구하고 있는 것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 지구화는 확실히 전 세계인의 시간대를 일치시켰다.
흥미로운 것은 밑에 있는 이들의 소득을 끌어올리는 조치들과 함께 위에 있는 이들의 터무니없는 수입을 깎아 내리는 정책들도 제시한다는 점이다. 모든 기업에 대해 급여 상한제를 실시한다거나 연간 최고 소득을 30만 유로(5억2000만 원 정도)로 고정한다는 게 그러한 공약들이다.
이런 점에서 좌파전선 대선 공약은 확실히 전투적이다. 편이 분명하다. 노동자, 청년, 연금 소득자 등 신자유주의 시대에 소득과 권리가 후퇴하기만 한 이들을 편든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이것은 또한 적을 분명히 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임원급 사원들에 대한 급여 상한제는 이런 선전포고의 일환이다. <인간이 먼저다>는 더 나아가 이러한 자신의 적에 선명한 이름을 붙인다. 그것은 '금융 자본'이다. 서문의 언급을 보자.
"생태적 재앙, 불평등과 불안정과 빈곤의 폭발, 반복되는 민주주의의 침해, 연대와 협력에 근거한 인간관계의 추락 등 이 모든 것이 인간의 행동을 극단으로 몰아가는 원인입니다. 이 모든 재앙의 공통된 원인은 우리 시대의 본질적인 특징, 즉 금융 자본이 세상을 지배하는 데 있습니다.
금융 자본의 지배는 겉으로 보기에 결코 흔들릴 것 같지 않지만 실제로는 허약하기 그지없습니다. 금융 자본의 지배는 국민이 언제든 뒤집을 수 있는 정치적 선택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금융 자본에 과감히 맞서야 우리는 하루라도 빨리 미래를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17~18쪽)
금융 자본의 제압은 그럼 어떻게 가능한가? <인간이 먼저다>는 우선 단기 대책으로 기업의 금융 소득에 대한 과세 방안을 내놓는다. 그러면서 새로운 금융 소득 과세의 세수는 사회 보장 기금으로 쓰여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이 새 조세 체계를 도입함으로써 개인의 일반 사회 보장 분담금(우리의 4대 보험 개인 분담금에 해당)은 아예 폐지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한다. 금융 불로소득을 복지 제도의 재정 기반으로 재분배하자는 것이다.
좀 더 장기적인 대책으로는 은행과 보험회사의 국유화를 제시한다. 그리고 이렇게 국·공유화된 금융기관들을 서로 연계하여 공공 금융 센터를 설립하겠다고 약속한다. 이러한 공적 금융 네트워크는 좌파전선 대선 공약에서 현존 신자유주의 체제로부터 대안 체제로 넘어가는 이행의 견인차 역할을 한다.
공공 금융 센터는 고용과 직업 교육, 실질 성장과 환경 보호의 원칙에 따라 금융 서비스를 수행하며, 따라서 경제 운영 방향을 지금과는 전혀 다른 쪽으로 선회시킨다. 그러자면 반드시 노동자·민중 대표가 공공 금융 센터 운영을 주도해야 한다.
"공공 금융 센터의 관리는 새로운 권력을 기반으로 이루어지고, 이 권력을 수행하게 될 주체는 정부 대표 및 각 기관에서 근무하는 노동자 대표 그리고 이용자입니다. 이용자에는 기업과 지방자치단체만이 아니라 노동자, 실업자, 계약직 및 그들의 대표가 포함됩니다. 소비자 단체와 환경 단체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이처럼 민주적으로 운영되면, 중소기업 재정 지원, 주거 지원, 지방자치단체 지원, 예금자에게 돌아가는 서비스 지원 등 공익 목적의 임무 수행이 가능해집니다." (60쪽)
하지만 프랑스 한 나라만의 금융 억제로는 부족하다. 프랑스가 유럽 통화 동맹의 한 축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인간이 먼저다>는 이 문제에 대해 채무국들과 채무 상환 조건에 대해 재협상을 실시하자는 해법을 제시한다. 그리스에서 급진좌파연합(SYRIZA)이 주장하는 바를 그대로 받아 안은 셈이다. 동시에 이러한 일국적 처방의 초국적 기반으로서, 유럽중앙은행의 민주적 관리와 '유럽 사회·생태·연대적 발전 기금' 창설을 제창한다.
이 정도의 개혁도 신자유주의 시기에 형성된 사회 세력 관계 아래서는 실행 불가능하다. 설령 멜랑숑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좌파전선이 다수당이 되는 일이 벌어지더라도(물론 이것 자체가 세력 관계의 놀라운 역전을 뜻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인간이 먼저다>의 '서문'이 밝히는 대로, 그야말로 '시민 혁명'이 필요하다. 이 책의 제6장 '국민 권력을 되찾는 헌법의 제정'은 그 출발점으로 '제헌의회 소집'을 꺼내든다.
사실상 샤를 드골의 쿠데타로 제정된 현행 '제5공화국' 헌법을 폐기하고 제헌의회와 국민적 대토론, 국민 투표를 거쳐 '제6공화국' 헌법을 제정하자는 것이다. 주요 개정 사안으로는 의원내각제로의 전환, 모든 선거에서 정당 명부 비례대표제 실시, 남녀 동수 대표제 실현, 상원 폐지 등 정치 제도의 민주화가 포함된다.
하지만 민주화해야 할 것이 좁은 의미의 정치 영역만은 아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경제 민주화'라고 이야기되는 과제들이 더 있다. 이에 대해 <인간이 먼저다>는 새 헌법에 기업 내의 노동자 경영권을 명기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적어도 프랑스의 급진 좌파에게 '경제 민주화'란 분명 생산 현장, 즉 기업에서부터 노동자가 결정권을 확보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새 헌법에서는 시민이 일하는 곳에서 시민의 권한이 강화되고, 기업의 시민권도 인정되어야 합니다. 기업 내에서 노동자는 법적으로 새로운 권리를 보장받고, 대기업의 지위는 사회적 책임을 고려하여 재정의해야 합니다.
경제력이 더 이상 주주들의 손에만 있지 않고, 노동자들과 그들의 대표들이 기업의 투자 과정에 참여해야 합니다. 그들은 민주적으로 논의를 거친 사회적·생태적·경제적 우선 과제를 고려하여 기업의 투자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모든 전략적 결정에는 임직원 대표 혹은 기업운영위원회의 호의적 견해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해고를 유예하는 거부권과 노조가 제시한 역제안을 반드시 검토할 의무를 법제화해야 합니다." (104쪽)
프랑스 유권자들은 이번 대선에서 멜랑숑 후보의 입을 통해 이런 메시지를 직접 들었다. 그리고 이것은 한국의 유권자들 역시 대통령 선거라는 계기를 통해 마땅히 접해야 할 시대의 목소리다. 하지만 어쩌면 이 땅의 12월 선거에서는 이런 목소리는 장외의 외침으로 그칠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인간이 먼저다>는 한국의 독자들 사이에 읽혀야 할 충분한 이유를 지닌다.
그러나 좌파의 대안은 아직 미완성
여기까지는 좋은 이야기이고, 이제는 <인간이 먼저다>의 아쉬운 점들을 몇 가지 지적해야겠다. 우선은 여전히 구체적이지 못한 대목들이 있다는 것이다. 가령 금융 이외의 민간 기업 소유 구조에 대해 이 책은 "경제·산업·금융 활동의 주된 수단들을 국유화"(79쪽)한다는 한 문장으로 정리하고 있다. 어떤 방식으로 국유화하겠다는 것인지, 집권하면 언제까지는 어느 수준까지 국가 소유로 만들겠다는 것인지,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 책이 간략한 소책자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문제에 대해 좌파전선 쪽에 다른 정책 자료가 더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쨌든 이 책만 놓고 보면, 좌파전선은 기업의 소유 구조에 대해 여전히 '당 강령' 수준의 원칙만 있지 실행 계획은 갖고 있지 못한 꼴이다. 선동의 소재로 '국유화'를 이야기할 뿐 당장의 실천 과제로 진지하게 고민하는 수준은 아니라는 이야기다(물론 '국유화'가 과거처럼 좌파의 대안에서 핵심을 차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더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여기에서는 일단 이 문제는 논외로 하자).
좌파전선의 이러한 모습은 30~40년 전의 프랑스 좌파에 비해 오히려 후퇴한 것임에 분명하다. 이때는, 후에 신자유주의 지구화에 굴복하게 되는 미테랑의 사회당조차 좀 더 진지한 자세로 '국유화'를 약속했고 이를 실행했다. 이들은 10대 제조업 그룹과 시중 은행에 대한 구체적인 국유화 계획을 갖고 있었다.
좌파전선처럼 "좌파를 다시 건설"(22쪽)하는 것을 과제로 하는 세력이라면, 신자유주의 시기를 거치면서 좌파에게 상실된 이런 측면을 보다 냉정히 직시해야 한다. 그래야 주류 좌파인 사회당에 대한 비판 세력에 머물지 않고 좌파의 대안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은 갈 길이 멀다.
또 하나 지적해야 할 것은 좌파전선 대선 공약이 핵 발전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지나치게 수세적이라는 점이다. 슈벤망이 <프랑스는 몰락하는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핵 발전이 프랑스의 미래 산업 중 하나라는 철면피한 주장을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집권 전에 올랑드 후보가 공약한 '단계적 감축' 수준에서라도 핵 발전 폐기를 공약하는 것 역시 아니다. 단지 "프랑스의 에너지 정책에 관한 국민 대토론회를 즉각 개최"(66쪽)해야 한다는 주장만 있을 뿐이다. '국민 대토론회'야 좋다. 그러나 "민간 핵 분야와 관련해서도 핵 폐기든 안전하고 공적인 핵에너지의 유지이든 모든 가능성에 대한 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식이어선 곤란하다. 이것은 핵 발전에 대해서는 좌파전선에 어떠한 공식 입장도 없다는 것을 자인하는 꼴이다.
평화 정책에서는 결코 이와 같지 않다. <인간이 먼저다>는 아주 단호하게 "프랑스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탈퇴를 즉각 결정"하겠다고 천명한다. "비핵화를 위한 행동"을 약속하고, "다자적 군비 축소"의 의지를 밝힌다. 또한 노골적으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기를 꺼리지 않는다.
좌파의 대안 세력이고자 한다면, 핵 발전에 대해서도 이 정도로 입장이 분명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좌파전선은 그렇지 못하다. 실망스러운 대목이다. 아마도 핵 발전 부문 노동조합과 긴밀한 연계를 맺고 있는 공산당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인간이 먼저다>는, 이렇게, 프랑스 급진 좌파의 성취뿐만 아니라 그 한계와 모순도 맨 얼굴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좌파를 다시 건설"한다는 이들의 도전이 이런 점에서 여전히 미완성임을 확인하게 된다. 그것은 이 도전이 얼핏 생각했던 것보다 더 거대하고 장기적이며 간단치 않은 과업임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쨌든 프랑스 좌파는 첫 발은 뗐다. 문제는, 여전히, 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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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0 12:34 2012/10/20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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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의 레디앙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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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의 레디앙 인터뷰에 곰씹어볼만한 대목이 많다. 대부분 평소에 하던 얘기이지만, 조금 강하게 주장한 부분도 보인다. 이에 대해 어떻게 볼까. 개인적으로는 박 대표의 주장에 상당부분 동의한다. 향후 전망과 관련해서는 엇갈리는 내용도 있지만, 적어도 지난 10여년간의 진보정당운동을 비롯한 제도정치에 대한 평가는 공감할 부분이 많다.
 
다만 이제는 제도정치의 주요 이슈로 제기되어야 하는 생태나 지역정치에 대한 고민이 빠져 있는 것이 아쉽다. 평소에 이 부분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게 박 대표의 한계일지도 모르겠다. 반드시 중앙의 의회정치를 통해서만이 변화가 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런 대안의 모색이 베네수엘라나 브라질 등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구체적으로 이번 대선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 문재인, 안철수를 지지하지도 않고, 통진당 후보나 진보정의당의 심상정 후보를 찍을 생각도 없다. 참고로 말하자면, 박근혜의 당선을 막기 위해 문재인, 안철수를 당선시키고자 노력하는 것보다는 아무리 적은 득표를 얻을지라도 노동자 민중후보에게 표를 주는 게 세상을 바꾸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노동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노동자 민중후보나 진보신당의 사회연대후보의 가능성에 박수를 쳐줄 수 있지만, 크게 기대하지는 않는다. 지금 생각은 노동자 민중후보의 흐름이 대선 이후 좌파정당의 건설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차라리 후보를 내지 않는 게 좋을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다.
 
다만 문재인, 안철수에게서 희망을 보는 젊은 친구들에게 이와는 다른, 진정 새로운 대안이 있음을 보여주지 못하는 진보진영의 처지가 안타깝다. 그들 자신이 정치의 주체로 나설 수 있도록 하는, 그런 방안이 필요한데, 역량의 부족을 어찌할 수가 없다. 그러하기에 박상훈 대표의 말처럼 2세대 진보정치운동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암튼 박상훈 대표의 인터뷰 글을 가지고 많은 이들과 논의를 해봤으면 좋겠다. 사실 내가 잘 알고 있고, 연구하고 있는 공공정책분야 뿐만 아니라 진보정치를 포함한 제도정치에 대해서도 일상적으로 함께 토론할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게 쉽지가 않다. 물론 당장 공공운수노조 선거나 조직발전 방향에 대해서도 산적한 과제가 계속 꼬이고 있고, 제대로 된 해결방안조차 내놓지 못하는 주제에, 맨날 거시정치만 바라보는 것도 우습기는 하다만...
 
아래에 박상훈 대표의 인터뷰 내용 중에서 일부를 발췌했다. 너무 많나? 이럴 때면 나의 빈약한 요약능력을 절감하게 된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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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정치학 박사)는 이른바 ‘시대정신’ 운운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이다. 대중의 현실로 들어가 그들의 요구를 파악하고 이를 정치화하지 않고, 소수 엘리트들이 ‘시대정신’이라는 것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며 이를 자신들이 해결해주겠다고 나서는 것은 민주주의적이지 않다는 입장이다.

그는 또 주요 대통령 후보를 중심으로 정치권에서 쏟아내는 ‘좋은 소리’들은 그 요구들을 함께 수행해나갈 정치적 시민적 주체와 결합되지 않는 한, 공허한 소리에 그칠 수밖에 없으며, 말로만 정책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각 정파들의 언술이 비슷해지는 것은 필연적 과정이라고 강조한다.
박 대표는 또 여야, 안철수 진영 모두 정치개혁은 인사이더들(정치 엘리트 그룹)에 의한 정치 개혁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진보진영도 야권연대, 공동정부 운운하면서 인사이더 중심의 정치 개혁에 편승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진보는 자신들 본연의 역할을 상실하고, 인사이더 중심의 정치 개혁을 정당화해주는 역할만 해주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야권 후보 단일화가 이뤄진다고 이번 대선에서 야권 승리가 보장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으며, 야권이 승리한다고 우리 사회가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믿는 것은 ‘순진한 기대’일 뿐이라고 말했다. 야권이 승리할 경우 다만 ‘변화의 가능성’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를 찾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인터뷰-박상훈①] “비례대표 확대, 결선투표 도입 필요”
우리 사회는 정치를 향해서 강력하게 항의하고, 구체적으로 요구하는데 정치는 이 문제를 해체하고, 펑퍼짐하게 동일화시키는 담론을 생산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사회경제적 문제에 대한 무슨 책임 있는 대화가 정치 세계에서 진행될 수 있을까 하는 자괴감이 든다. 지금 정치권에서 얘기하는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담론은 우리 사회의 절박한 요구를 문제가 안 되게 만드는 이데올로기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대중들의 요구가 있는 곳에 조직이 있고, 그 조직 있는 곳에서 그 조직이 원하는 어떤 대안을 찾아내고, 정치는 그 속에서 존재하면서 그것을 집약해내는 것이다. 시민들에게 “내가 이거 해줄게, 이게 시대정신이야.”라면서 위에서 아래로 쏟아내는 게 정치가 아니다.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도, 민주주의는 평등을 지향하는 사회인데, 경제 주체들 사이의 관계가 불평등한 사회에서 이 문제가 갑자기 ‘노동시장 발전’이라든가 하는 것으로 거꾸로 역순으로 담론화되면서 거꾸로 된 이야기들을 쏟아낸다면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다.
지식인이든 정당, 정치인들은 요구가 있는 곳에 가야 한다. 그들의 요구가 밑에서부터 조직되고, 거기서 대안이 구체적으로 올라와 주고, 그것을 정당은 자신에게 요구하는 사람들과 함께, 다른 의견을 가진 쪽과 맞서고 싸워나가야 한다. 그러면 차이가 안 날 수가 없다. 지금은 그 과정이 빠져있기 때문에, 누구나 좋은 말만 하는 것이고, 결국은 언술 차원에서는 똑같아진다.
대안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만들어지는 과정이 정치적이고 사회적이어야 한다. 거기엔 당연히 그런 대안이나 정책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조직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이런 것이 없으면 민주적 정책 결정 과정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경제민주화나 복지 담론이 노동문제나 사회 양극화 등 구체적인 수준까지 포괄시키고 연결시키지 않는 것을 지적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담론이 중심이 된 경쟁의 프레임을 구성하는 것 자체를 문제라고 하기는 어렵지 않나.) 경제시민이 인지되지 않고 추상화되면서, 정치영역에서 정책을 통해 이들에게 뭔가 좋은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는 식으로 얘기되면, 이는 경제시민 없는 경제민주화와 같은 뜻이 된다.
복지국가 이슈도 시민적 요구의 기초 없이 마치 정부가 예산 증액과 이런 저런 정책을 통해 방안을 만들어내고 이것을 보편적 복지라고 얘기한다면 절반이 빠진 것일 수밖에 없다. 나중에 노동을 불러들이는 등 뭐를 해도 결국은 (정당 간의 관련 정책)내용이 비슷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말 자체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갈등의 거점이 사라지면서, 사회적 대중적 기반의 차이에 따른 차별화된 정책이 생산되지 못한 채, 대중적 에너지원의 바깥에서 진행되는 전문가들의 아이디어 경쟁 수준으로 민주 정치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이게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시민정치 이론도 기존 정치권 바깥에 있는 시민운동 엘리트들, 즉 법률가나 전문가들이 정치권에 들어가면 좋겠다는 얘기로, “정치 엘리트를 순환하자.”는 얘기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은 ‘인사이더 범위 안에서의 정치 개혁’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초기에 포괄했던 사회의 부문, 그 안에서 권력을 재분배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기존의 정치 개혁은 여기에 국한돼서 논의가 진행됐다. 그리고 그 범위 안에서는 이미 나올 수 있는 아이디어가 다 나온 상태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대중들이 직접 자기 손으로 대통령 정치인을 뽑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갈등을 담고, 이를 풀어나가는 거다. 따라서 기존 정치가 포괄하지 못했지만 넓게 포진돼 있는 아웃사이더들을 (정치 영역, 정치 과정에) 불러들이지 않고, ‘인사이더 정치’ 내부의 권력 재분배 방식으로는 새로울 것도 없으며, 정치 개혁을 이뤄낼 수도 없다.
지금 여든 야든, 안철수 진영이든 모두 정치개혁은 인사이더들에 의한 (그래서 인사이더들을 위한) 정치 개혁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진보진영도 자신들이 할 일을 하지 않은 채, 야권연대 공동정부 운운하면서 인사이더 중심의 정치 개혁에 편승하고 있다. 진보는 자신들을 본연의 역할을 상실하고, 인사이더 중심의 정치 개혁을 정당화해주는 역할만 해주고 있는 셈이다.
비례대표 후보를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 정 그게 대통령 중심제와는 맞지 않는 제도라는 주장을 한다면, 결선투표제라도 도입해서 시민들의 다양한 정치적 선호가 억압되지 않게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제도를 바꾸는 데 역할을 해왔던 진보정치인들이 그런 의지를 상실했다고 본다. 진보정치의 정체성을 믿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보니까 그들은 ‘인사이더가 되고 싶은 열망’을 진보의 언어로 포장해온 위선자들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제도 변화에 대한 노력도 없고, 그런 의지를 가진 사람도 약해진다면 누가 어떻게 정치 개혁을 하겠나.
맨 처음의 정치 개혁 단계라고 볼 수 있는 관료 개혁의 경우 공식적인 담론으로 된 건 아니지만 기존 관료정치 상층을 야당 인사로 바꾸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김대중 정권에서는 안기부를 포함한 호남 출신 관료들을 등장시켰으며, 노무현 정부 때는 흔히 말하는 거버넌스 개념을 확장시켜 비관료 출신의 등용에 적극적이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여러 가지 위원회를 만들었으며, 위원회에 들어가는 예산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관료 개혁을 위해 청와대의 인력과 예산도 확장했다. 하지만 이런 두 가지 방법은 성공하지 못했다. 결과를 보면 두 정권의 집권 말기에는 대통령 본인 스스로 관료들에게 더 의존적이 됐다.
관료 문제는 정치학의 오래된 논의 주제다. 현대 민주주의에는 세 가지의 권력 자원 공간이 있다. 하나는 경제 권력이다. 자본주의 시장중심 사회에서 법인 기업이 중심이 된 불평등한 권력이다. 다른 하나는 행정 권력이다. (관료들이 다루는) 예산 규모로 따지면 경제 권력 못지 않다. 복지를 제외하더라도 이들이 관장하는 예산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우리 사회가 점차 민주화되다 보니 이들이 단순히 민주정치 결과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모피아’처럼 스스로 자신들의 조직적 이익을 추구하게 됐다. 자신들의 이익을 포장하는 담론과 이데올로기를 개발하는 주체가 되고 있다. 불평등한 경제 권력과 위계적인 행정 권력이라는 두 개의 권력을 견제하는 것이 민주정치이고 구 주체는 정치권력이다. 그런데 정치권력의 경우 힘이 약해지면서 비정치적 요소로 이것이 대체되고 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사회적 요구 가운데 정치가 보호해줘야 할 대상들이 빠지고 인사이더 중심의 엘리트나 전문가가 정치를 하다보니까 시간이 지나면서 행정 권력과 경제 권력을 제어하기 어렵게 된다. 그러다보니 말로는 검찰 개혁 포함 행정권력, 경제 민주화 경제권력 제어한다고 하는데 결국 공허해지게 된다. 이러니 실체 없는 개혁 담론들이 자신들의 진정성을 과시하기 위해 유통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검찰 개혁의 제도적 대안을 물어오는데, 많이 물어지는 담론 상황이 되면 전문가들이 득세할 수밖에 없다. 대안을 찾아내라는 건 전문가 불러내는 것이다. 우리가 경험에서 전문가들은 자기 전공 분야에 대해 말 그대로 ‘코딱지’만큼만 알고 나머지 분야에는 무지하기 짝이 없고, 시민생활과는 완전히 유리된 그들이 어떻게 국가정책을 잘 만들 수 있나? 차라리 보통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법률적 지식은 없더라도 방향을 잘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민주정치에는 두 가지 모델이 있다. 하나는 사회적 갈등을 줄여서, 합리적이고 유능한 행정을 제도화를 통해서 사회를 운영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적 갈등과 사회적 요구를 더 많이 정치에 투입시키는 방식이다. 
전국적 싸움은 큰 싸움이 돼야 한다. 보통 사람들, 배제된 사람들의 요구를 정치 안으로 들여오고, 이걸 전국으로 확신시키는 게 필요하다. 괴롭지만 전국 차원의 큰 싸움을 통해 한국정치를 변화시키고 확산시키면서 이를 매개로 지방 토호세력들의 이익을 깨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다.
  
[인터뷰-박상훈 ②] “문-안 당선돼도 사회 근본변화 없어”
이미 존재하는 이익과 영향력을 결사적으로 지키려는 힘들 사이에 부딪치는 갈등의 세계 속에서 진행되는 것이 정치다. 이런 정치 세계의 변화를 예측하려면 변화를 추진하는 사람들의 의지와 힘을 봐야 한다.
설령 정권이 이번 대선 결과 바뀐다고 해도, 구조적인 큰 변화는 가능하지 않다. 물론 그럼에도 대선에서 정권을 교체하는 것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변화 자체가 아니라, 변화를 가능하게 만드는 조건이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식인들의 역할이라면 사회적 요구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것을 조직해야 되는데, 모두 다 좋은 슬로건이나 요구를 가지고 정치 캠프에 세일을 하고 있다. 2013년 체제론도 그런 것이라고 본다. 이런 것들은 현실을 바꾸는 게 아니라 본인들의 우월적 위치를 과시하는 것에 불과하다.
제발 지식인들이 연구하고 조사하는 자신들의 역할에 충실했으면 좋겠다. 모두 자기가 통치자 옆의 자문관이나 되는 것처럼, 그런 자기 심리적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보는데, 이는 엘리트주의로 보기도 아깝다. 
나는 이른바 ‘폴리페서’를 부정하지 않는다. 방법이 문제라는 것이다. 모두 다 대접 받고 싶은 심리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과거 문국현 현상 같이 새로운 외생 정치세력들의 경우 기존의 정당 체제 밖에서 새롭게 형성되는데, 대부분 이들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사이클이 꺾이는 경향을 보였는데, 안철수에 대한 지지는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되어가고 있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는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물론 아직도 이들이 지배담론에 갇혀 있다고 보는데, 이제 점차적으로 정치를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지지 기반도 형성되고, 민주당 내부도 동요하는 걸 보면서, 이들이 어떤 정당의 길로 갈 것인가를 계속 주시할 필요가 있다.
한국사회에서 정당이 될 수 있는 열정을 끌어올 수 있는 자원은 세 가지다. 하나는 호남이다. 해방 직후 인구 기준으로 30% 정도가 되면서, 이들이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에서 자신들의 집단적 정서를 공유했다. 이들이 한국 정치의 주요 변수가 될 수 있었던 배경이다.
또 하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이후, 노사모 또는 친노라 불리는 사람들의 열정이다. 민주당이라는 정당의 주요 자원 중에 하나다. 이들은 어떻게 보면 한국사회에서 주변부 엘리트들이라 볼 수 있다. 한국사회가 워낙 중앙집권적이고 학벌 중심적이며, 이런 신분적 사회에서 지위재를 갖지 못하는 중산층의 소외와 저항 의식이 있다.
나머지 하나는 진보적 이념과 노동에 대한 열정이다. 그동안 진보정당이 민주화 이후 첫 단계부터 제도 야당에 휩쓸리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소외된 민중의 기반과 이런 열정 때문이었다.
이런 세 종류의 열정 덩어리가 있었는데 그 주요 축인 민주통합당의 당 대표 경선 과정을 거치면서, 당권이 지나치게 친노와 호남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여기에 대한 불만이 (안철수 지지 흐름이라는) 변화를 가져오는 요인으로 작용됐다. 다른 하나는 진보의 약화다. 안철수 현상은 이것을 빼고는 설명을 할 수가 없다. 안철수는 안철수 현상을 만드는 데 10% 정도밖에 기여하지 못했다.
결국 안철수 선거 운동은 민주통합당과 진보가 해준 셈이다. 이것을 표현하는 방식 중에 하나가 상식, 합리성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상식이라는 공허한 발언 뒤에 숨어 있는 것은 그런 힘의 변화라고 본다.
정당은 단순한 법률적 조직 형식이 아니다. 그것을 넘어서 사회를 조직하고 변화시키기 위한 하나의 세계관이다. 시대정신이라든지 상식을 반영해서 국가를 운영하겠다는 것은 전체주의로 가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제는 야권 단일화라는 것은 기획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됐다. 그리고 시간은 너무 짧다. 시간이 너무 짧은 짧다는 것은 야권 단일화의 절차적 정당성을 만들어내는 조건이 너무 나쁘다는 의미다. 지금 조건에서는 단일화가 언젠가 이뤄진다 해도 정당성은 훼손, 결핍되고 약화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양쪽을 지지했던 에너지들이 단일화를 다 좋아하고 찬성하는 것도 아니다. 정권 교체를 가능하게 하는 단일화는 두 후보의 지지 기반이 통합돼야 한다고 가정하면, 두 후보는 게임이 아니라 실제로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마이너스 게임이 안 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권력분점을 멋지게 하기 위해 이런 저런 위원회 같은 것들을 꾸리는 그런 짓들을 할 것이다. 어떻게 하든지 정당성은 훼손될 수밖에 없으며, 대선 전망은 불투명하다. 
보수는 사회적 요구에 대해 임시변통 적응하는 스타일로 처리한 것이다. 이것은 보수정치 자체가 일상적으로 해오던 과정이다. 이 과정을 통해서 보수정당도 사회를 좀 더 넓게 반영하게 된다.
 
[인터뷰-박상훈③] “진보정당 없으면 정치안정도 없어”
우리 정치에서 변형주의가 일상화되고 있다. 자기 정체성을 중심으로 하고, 이것을 풍부하게 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면 모든 것을 다 변형적으로 통합해나가고, 나중에는 모든 정당의 세계관이나 조직화 방식이 다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대중들의 정치 불신은 높아지고, 이런 정치를 수동적인 입장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그 놈이 그 놈이다.”라며 정치적 동질화를 욕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쁜 정치는 사람들로 하여금 좋은 시민이 되겠다는 생각을 버리게 한다. 그냥 착한 소비자가 되자, 윤리적 소비자가 되자, 생협을 만들어서 우리끼리 유기농하면서 살자면서 시민되기를 벗어나 개인, 소비자, 조합원 같은 범위로 자신을 규정하게 된다. 이는 정치와 전체 공동체로부터 스스로를 소외시키고, 작은 공동체에서 자족을 찾는 경향이 커지게 된다.
우리에게는 개인적 삶과 함께 사회적으로 부여된 역할이 있다. 개인적으로 착하게 살려고 하는 것과, 개인에게 부여된 과업을 과감하고 단호하게 실현하는 일 사이에 딜레마와 도덕적 긴장이 있으며, 그 속에서 사람의 인격이 나오게 된다.
만약에 ‘악마와 손을 잡을 일’이 필요하다면 굳이 진보정치를 할 필요가 없다. 그냥 권력정치를 하면 된다. 좋은 정치를 하려는 대의를 가진 사람이 정치 세계에서 자신에게 부여된 과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도덕성을 기준으로 괴로움을 겪더라도 자기 일을 해나가야 한다는 얘기지, 결과만 좋으면 무조건 좋다고 한다면 뭐 하러 진보정치를 하나?
현재 상황에서는 진보정치의 앞날이 이런 저런 아이디어를 내고 방법을 찾아서 좋아질 가능성은 완전히 다 소진됐다고 본다. 첫 번째, 왜 20년 가까운 기반을 가지고 있는 진보정치가 실패했느냐 하는 질문이 제기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 그 전에는 보이지 않게 진보진영 사람들이 갖는 우애 의식 있었다고 본다. 어디 가서 잘난 척 해서 사람들에게 좋은 평을 받지는 못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같은 진보라는 점에서, 서로 의견이 다르더라도 우리 세계 안에 일종의 집단적, 공동체적 소속감 같은 게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그뿐 아니라 자신들의 행동을 설명하는 방식, 자신들의 대의와 신념이 왜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설명의 언어를 잃어버렸다.
서로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도구적 가치, 도구적 대상 수준이며, 대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연대를 이뤄낼 수 있을까?
더 이상 1세대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새로운 2세대 진보정치에서 희망을 찾아야 한다. 1세대는 모두 다가 문제다, 건질 만한 리더는 단 한 명도 없다.
통합진보당 탈당파는 어떤 조직이라도 가져야 하는 최소한 가져야 할 요소가 없다. 조직 지속성의 관점에서 보면 통합진보당보다 못하다. 통합진보당을 야유하면서 본인들이 정당성을 찾으려는 태도는 조롱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 당의 대중 투표 권력은 구 참여당 계열에서 나온다. 나머지 그 위에 떠있는 사람들은 본인들의 정치적 자산을 잃고 싶어 하지 않거나, 그걸 어떻게든 잘 발휘해서 더 많은 것을 보장 받으려고 하고 있다.
정치에서는 단절을 통하지 않고 과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그게 정치다. 왜냐하면 정치는 열정이라는 에너지가 있기 때문이다. 정치를 이성적으로 보면 그런 방법을 찾는 게 합리적이고, 모든 사람이 덜 상처받는 일이지만, 정치는 그렇게 하면 에너지가 나오지 않는다.
실망스러운 경우도 있었지만 과거 20년 가까이 진보정치를 이끌었던 리더들이 나서서 하지 않고는 어렵지 않겠냐는 생각, 지렛대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오랫동안 관용을 베풀어왔는데, 돌아보니까 사람들 나이가 너무 많아졌다. 그들 밑에서 성장했어야 할 사람들이 성장하지 못하고, 생활상 압박이 커지면서 진보정치 언저리에서 일을 하기가 어려워졌다. 이게 큰 비극이다. 그들이 후배 세대들을 길렀어야 한다. 그들에 대한 심리적 의존 상태를 연장시킬 필요는 없다.
내 생각에는 의정활동을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잃어버린 신뢰를 다시 얻기 위해 1~2년 동안 노력을 했으면 한다. 노동운동을 생각하면, 현장 조합원들의 마음을 열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정치는 조건에 영향을 받지만 조건을 만들어가는 면도 하다. 진보정치 지도자들에게 느끼는 불만 가운데 하나는 자신들의 역할을 여러 가지 전략적 고려에 (조건을 만들어내는 적극적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수동적으로 본다는 점이다. 한국정치는 지금 있는 정당들로는 결코 안정될 수 없다. 그만큼 기존 정치가 포괄하지 못하는 항의 목소리가 크다. 우리나라의 무당파는 무관심파가 아니라 아주 비판적인 사람들이다.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진보정치의 길을 열려는 적극적 의지도 과감함도 담대함도 없이 쪼잔하다. 그래서 기대를 하지 않는다. 연합정치도 추레하다. 끼워주기를 바라는 그런 심리에 머물고 싶지 않다. 그러려면 좀 멀리 보고 차분하게 다시 해볼 필요가 있다. 그런 자세가 진보파의 기개라고 본다. 그런 것 없이 이번 대선에서 뭘 하려하면 안 된다. 
정권교체, 연립정부 고민을 하다보면 계속 의존적 심리를 벗어날 수 없다. 진보적 시민은 또 들러리가 되거나 수동적 구경꾼이 되고, 결과에 대해서 또 한 번 실망할 것이다. 차라리 이런 단호함 보여주는 게 지도부에게 경각심 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당신들을 신뢰할 수 없다는 그런 신호를 보여주는 게 낫다.
노동자 대통령 후보를 내는 흐름이 성과는 내기 어렵다. 기존 민주노총 지도부, 정규직과 명망가 중심성에 대한 비처럼 소극적 비판으로는 정치를 할 수가 없다. 정치는 적극적 가능성을 불러일으키는 일이다. 그런 에너지를 만드는 데 본인들이 익숙해지는 심리를 갖고 정치를 해야 한다.
정치라는 건 정말 인간이 갖고 있는 미칠 것 같은 열정에서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그 길은 내는 사람들은 화만 내면 길이 안 열린다는 걸 잘 알아야 한다. 괴롭지만 나와 같이 가면 비를 피해가고, 우애를 찾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정치에서 보통 시민연합, 시민정치라고 하는 흐름은 압력정치를 특징으로 한다. 본인들이 다른 정당에서 대표될 수 없는 열정이 있지만, 지지 기반이나 균열 기반을 조직해서 사회 권력구조에 변화를 주는 것이 아니라, 정당은 기존 정당 체제에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시키는 압력행사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게 전형적인 시민운동의 한 방법이다. 이런 흐름이 있는 것 자체가 유해한 것은 아니데, 그게 만들어내는 부정적 효과가 늘 있다. 주체들이 스스로 조직하는 걸 잘 못하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시민운동 엘리트들의 이력을 보면 결론적으로 정치권에 이렇게 저렇게 차명하는 것 이외 다른 정치적 변화는 만들어내지 못한다.
기존 정당 체제에 충격을 주려면, 스스로 권력 자원 없는 가난한 보통사람들의 응집을 통해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동원하는 방법밖에 없다. 시민운동은 전세계적으로 교육받은 중산층 운동이다. 또한 정당의 실패와 관련해서도, 정확하게 말하면 민주당이나 진보정당의 실패일 따름이다. 정당은 강해지고 있다. 안철수도 결국 정당으로 갈 수밖에 없다. 현대정치에 적응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조직적 무기는 정당이라는 것을 오히려 확인되고 있다.
시민정치 연합론은 인사이더 좀 더 참여시키는 것이다. 민주주의 가치를 자본주의라는 사회경제 토대 위에서 실현하려면 권력자원이 머릿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정치적 결사를 통해야 한다. 교육도 받고, 자기를 설명하는 말도 배우고, 일정 수준의 소득도 있는 중산층을 통해서가 아니다.
우리도 실패를 학습의 비용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온건한 사민주의적 이념에 바탕을 둔 제3정당이 50석 이상이 돼야 한국정치가 안정될 수 있다고 본다. 진보정당이 정당 체제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면 그 기간 내내 갈등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정도의 경제수준이라면 보수정치인들도 진보정치가 들어와야 보수정치도 안정된다고 생각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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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18 18:31 2012/10/18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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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전기료 올리려 ISD 제소 방안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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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이 한전이 전기료 올리려 ISD 제소방안까지 검토한 사실을 경향신문이 자세하게 분석하고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기업이 자기들의 이익극대화를 위해 국가를 상대로 FTA의 대표적 독소조항인 투자자-국가소송을 활용하기 위해 구체적 사례 법률 검토까지 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봐야 하나. 이런 걸 공공기관이라고 할 수 있나? 한전은 거의 다국적기업 뺨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전기, 가스 등 에너지와 관련된 한국 정부의 제도가 외국인 투자자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걸 입증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미 해외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단다. 투자자-국가소송제 폐지를 포함하여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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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전기료 올리려 ISD 제소 방안 검토 (프레시안, 이대희 기자, 2012-10-17 오후 6:11:36)
구체적 사례 법률 검토까지 진행해
공기업인 한국전력이 전기료 인상을 위해 투자자-국가 제소제(ISD)를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업이 이익 극대화를 위해 자유무역협정(FTA)의 대표적 제도 중 하나를 국가를 상대로 활용하려 했다는 점에서 파장이 일 전망이다. 일각에서 ISD는 한미 FTA의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꼽혀 왔다.
17일 이현재 새누리당 의원(지식경제위원회)은 한전이 제출한 자료를 토대로 "한전이 ISD 제소 가능성에 대한 법률 검토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한전이 대주주(한국정책금융공사와 정부 합계 지분율 51%)인 정부를 제소 대상으로 고려한 까닭은 올해 2차례에 걸쳐 전기요금 인상안이 거부됐기 때문이다. 정부가 한전의 이익 극대화를 정책적으로 방해해, 외국인 투자자의 이익 실현 기회를 가로막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한전은 실제 ISD 활용을 위해 기관투자자를 제외한 외국인 소액주주가 정부를 제소할 수 있는지 여부를 검토받기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아가 지식경제부가 명확한 거부사유를 기재하지 않고 전기료 정책 재검토 요청을 하거나, 인가행위를 지속적으로 지연하는 상황이 ISD 제소감인지 등 구체적인 사례별 법률 검토까지 진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의원은 "ISD 소송을 내세워 지경부를 압박하기 위한" 의도를 한전이 갖고 있었다며 "전력의 공익성을 뒤흔드는 법적 검토 의뢰 및 발전 자회사에 대한 소송 협박 등을 일삼은 한전은 공공기관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헌신짝처럼 저버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기요금 올리려 한전, 정부 상대 투자자소송 시도 (경향, 김지환·유희곤 기자, 2012-10-17 22:07:05)
한국전력이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를 악용해 정부의 공공요금 인상 최소화 움직임을 무력화하려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투자자-국가소송제가 외국인 투자자뿐 아니라 국내 기업까지도 정부의 공공정책을 무력화시키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사례여서 파장이 예상된다.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이현재 의원(새누리당)은 한전이 지식경제부의 전기요금 인가 권한을 무력화하기 위해 투자자-국가소송이 가능한지 법률 검토를 했다고 17일 밝혔다. 국내 전기요금은 한전 이사회가 정부에 건의하면 지경부 산하 전기위원회가 심의하고 지경부 장관이 인가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한전은 적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내세워 올해 4월과 7월 각각 13.1%, 10.7%의 요금 인상안을 제출했으나 정부는 이를 거부했다. 이에 따라 한전은 1차로 국내법상 지경부 장관의 인가 재량권 범위 등에 대한 법률 검토를 실시했다. 이어 ㄱ법무법인을 통해 투자자-국가소송제 가능성을 검토했다. 정부가 한전의 전기요금 인상률을 결정하는 게 소송 대상이 되는지, 한전의 외국인 주주(24%)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이 가능한지 등이 검토 대상이었다. 이에 대해 ㄱ법무법인은 “특정요건을 충족할 경우 투자자-국가소송제 대상이 될 수 있으나 실제 소송에서 한전이 정부에 승소할 가능성은 낮다”는 회답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전은 결국 법률 검토를 포기하고 정부 권고에 따라 8월 4.9% 요금 인상안을 받아들였다. 이현재 의원은 “한전의 투자자-국가소송제 검토는 국가 전력기관으로서 사회적 책임과 공익성을 저버리는 행위”라고 말했다. 송기호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외교통상위원장은 “외국인 투자자뿐 아니라 국내 기업도 투자자-국가소송을 악용해 정당한 국내 규제를 무력화시킬 위험이 현실로 나타난 사례”라고 말했다. 한전 관계자는 “국내 전기요금 인상 절차가 법률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실무적 차원에서 알아봤을 뿐 정부를 압박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공공규제 무력화 ‘투자자소송 악용’ (경향, 김지환·유희곤 기자, 2012-10-17 22:19:53)
ㆍ한전, 정부에 법률 대응 땐 여론 비판 우려
ㆍ외국인 소액주주 내세워 ‘지경부 압박’ 꼼수
한국전력은 왜 한국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소송제(ISD)라는 카드를 만지작거리게 됐을까. 한전은 정부가 51%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공기업이다. 한전의 속내는 전기요금 인상안이 지식경제부로부터 계속 거부되자 외국인 주주를 내세워 전기요금 인상에 대한 명분을 갖추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전은 김중겸 사장이 취임한 뒤 전기요금 인상을 정부에 줄곧 요구해왔다. 한전 이사회는 지난 1년 동안 6차례에 걸쳐 전기요금 인상안을 의결했다. 지난해에는 2차례에 걸쳐 전기요금을 올렸다. 한전은 올 4·7월에도 각각 13.1%와 10.7%의 전기요금 인상안을 정부에 제출했고, “인상 한도를 5%로 낮추라”는 정부 권고에 따라 8월 4.9%를 추가로 인상했다.
이후에도 한전의 전기요금 인상을 위한 ‘떼쓰기’는 계속됐다. 지난 9월에는 주무부처인 지경부와 협의도 없이 전기요금 누진제를 개편하겠다고 발표했다. 지경부는 곧바로 전기요금 인상이 논의된 바 없으며, 올해 안에는 요금 인상 계획이 없다고 진화에 나섰다. 이는 한전의 무리한 전기요금 인상 의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전기요금 인상 결정권은 정부가 쥐고 있다. 한전 이사회가 전기요금 인상안을 정부에 제안하면 지경부 산하 전기위원회가 심의한 뒤 지경부 장관이 인가한다. 한전 단독으로 전기요금을 인상할 수 없으니 투자자-국가소송제를 무기로 이용해 요금 결정체계를 바꾸려고 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전의 주주 구성을 보면 미국계 투자은행인 JP모건이 8.95%를 소유하고 있고, 미국인 투자자가 포함돼 있는 소액주주들이 28.22%를 갖고 있다. 한전으로선 “ ‘외국인 주주가 정부의 전기요금 인상 억제로 주식 가치가 떨어져 손해를 봤다’며 자체적으로 투자자-국가소송을 제기한 것”이라고 해명하면 전기요금 인상 시도에 대한 비판 여론을 피해갈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투자자-국가소송이 가능하다는 사실만으로도 지경부 공무원들은 위축효과(chilling effect)를 느끼게 돼 굳이 국제중재에까지 가지 않더라도 지경부를 압박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
한신대 이해영 교수는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국민들의 동의를 구하는 정공법을 써야 하는데 공기업인 한전이 외국인 소액주주 등을 핑계로 대는 꼼수를 쓰려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 미국계 자산운용사인 TCW는 자신이 지배하는 미국 회사 DEH를 통해 2004년 도미니카공화국의 공영 배전회사인 EDE의 지분 50%를 소유한 AES의 지분 100%를 인수했다. EDE의 나머지 지분은 도미니카공화국 소유였다.
2007년 TCW와 DEH는 도미니카공화국이 자신들에 당초 약속했던 전기요금 제도를 이행하지 않고, 전기요금과 관련된 보상을 해주지 않았으며, 투명한 전기정책을 펴지 않았다는 등 15가지 이유를 들어 도미니카공화국을 국제중재에 회부했다. 결국 도미니카공화국은 2009년 7월 합의로 사건을 종결시키는 대가로 2600만달러를 지급해야 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외교통상위원장인 송기호 변호사는 “전기, 가스 등 에너지와 관련된 한국 정부의 제도가 외국인 투자자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상황이 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에 포함돼 있는 투자자-국가소송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전 관계자는 “최근 한전을 상대로 소액주주들이 소송을 제기해 외국인 투자자들이 소송을 할 가능성은 없는지 법률적 검토를 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5·6월 전기요금 결정 구조가 국내법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확인한 뒤 7월에는 투자자-국가소송까지 검토한 점에 비춰보면 정부를 압박하려는 목적인 것으로 풀이된다. 한전은 법률 검토 결과 외국인 투자자가 한국 정부의 전기요금 인가 절차로 인해 손해를 입었다며 투자자-국가소송을 제기할 수는 있지만 정부가 패소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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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18 08:40 2012/10/18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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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수 녹색당+ 신임 공동운영위원장 당선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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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녹색당+ 창당일이다. 하승수 선배가 녹색당+ 신임 공동운영위원장으로 당선되어 인터뷰를 가졌는데, 녹색당+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다. 
 
물론 생각이 다른 점도 있다. 그는 "진보정당의 중심적인 고민에는 생태 위기나 자원고갈, 기후변화에 따른 식량위기가 들어 있지 않고, 성장담론을 부인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그건 진보정당이 아니다.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 적어도 머레이 북친의 사회적 생태론처럼 원시적 삶, 내핍 생활, 극기 등을 강조하는 게 아니라 물질적 향유와 여유를 강조하면서 과학기술을 적극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또한 계획과 관리의 중요성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정당 대의원을 제비뽑기 방식으로 선출한 것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진보신당에서 부분적이긴 하지만 실험을 했던 것이고, 그에 따른 문제점을 노출하였다. 제비뽑기 방식의 선출을 했다는 것보다는 이를 꾸준히 유지하고 확대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가라타니 고진 또한 선거와 제비뽑기(추첨민주주의)의 결합, 즉 우선 복수의 후보를 무기명 선거에서 뽑고 마지막에 제비뽑기를 하자고 했는데, 실험도 좋지만, 제도화가 중요하다는 걸 말하고 싶다. 이를 위해선 당원들의 활동 제고가 전제되어야 하고...
   
나머지 그가 말하는 탈핵, 정치개혁, 지방분권과 풀뿌리 민주주의에 대부분 동의한다. 아마 진보정당을 하는 이라면 이에 동의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다만, 하승수 선배나 녹색당에 있는 이들이 노동에 대해서는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는 게 아쉽다.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널려 있고, 주민노동자의 문제 또한 커지고 있는데, 이들을 주체로 하지 않고, 생태, 정치개혁, 풀뿌리 민주주의가 가능할까. 분명 우선순위가 있긴 하겠지만, 녹색당+가 다른 진보정당의 보완정당으로 멈추지 않으려면 노동의 문제를 제껴놓아선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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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스타일? 강남에 핵발전소 짓자" (오마이뉴스, 12.10.12 09:38, 김병기(minifat)권우성(kws21) 기자)
[인터뷰] 하승수 녹색당+ 신임 공동운영위원장 당선자
 
"진보정당의 중심적인 고민에는 생태 위기나 자원고갈, 기후변화에 따른 식량위기가 들어 있지 않다. 또 이들은 성장담론을 부인하지 않는다. 성장을 기반으로 세금을 거둬서 복지를 충당하자는 입장이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성장 패러다임은 한계에 부딪쳤다. 경제 성장을 계속 추구하면 지구가 위기에 처한다. 무한 성장 패러다임에 대한 반성에 기초한 정당이 필요하다."
 
"자격을 갖춘 사람 중에서 제비뽑기를 하는 것이다. 대의원 숫자로 지분싸움을 하면서 사람들을 동원할 필요가 없다. 유럽 일부 국가들은 지역의 중요 현안을 결정할 때 시민패널을 추첨으로 뽑아서 그들에게 맡긴다. 선거제도 개혁도 정치인들에 맡기면 좋은 답이 안 나온다. 무작위로 뽑힌 시민들이 결정한다. 그런데 정당이 이런 제도를 채택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새로운 실험이다."
 
이들은 말로만 지역분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당비를 받으면 60%를 지역으로 보낸다. 서울, 경기 등 광역 단위는 그중 절반을 시군구로 보낸다. 그리고 다른 당처럼 지역별 당원모임도 있는 데, 의제(관심사)별 모임도 있다. 가령 동물권에 관심 있는 모임의 이름은 '개나 소나'이다. 이런 모임 활동에도 재정을 지원한다.
 
"당원 여론조사를 했는데, 이번 대선에서 관철시켜야 하는 문제로 '탈핵' '탈토건'을 꼽았다. 원전과 4대강 등 토건 사업을 막거나 방향을 전환하도록 하겠다. 유력후보 캠프에 정책 제안을 하고 이를 반영하라고 압박할 예정이다. 우리는 대통령과 같은 권력보다 '탈핵' 등 변화가 필요하다."
 
"요즘 '강남스타일'이 뜨는데 강남에 핵발전소를 지으면 어떨까? 입에 침이 마르게 원자력발전소 자랑을 늘어놓는 이명박 대통령을 위해 청와대에 핵 시설을 설치하면 어떨까? 이건 내 주장이 아니라 원전을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정말로 안전하고 원전이 불가피하다는 게 소신이라면 '내 집 앞'에 지어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원전  지역 주민들의 반대 운동을 '님비 현상'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정치인은 비양심적이다."
 
"박근혜 후보는 기득권 정치인이다. 그는 정치개혁을 못한다. 리더십도 독단적이어서 위험하다. 문재인, 안철수 후보는 정치혁신을 부르짖는데 알맹이가 부족하다. 선거제도와 정당제도 개혁을 주장해야 한다. 요즘 투표시간 연장 문제가 이슈로 떴는데, 당연히 필요하고 사전투표제도 도입해야 한다. 비례대표제를 전면 확대하고, 정당기호부여제도를 개선하면 다양한 정치세력이 등장할 수 있다."
 
"정치권의 관심사는 중앙에 집중된 권력을 대통령과 국회,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어떻게 나누느냐에 있었다. 그런데 차원을 넓혀서 중앙 권력을 지역으로 분산하고 시민들과 어떻게 나눌건지를 고민해야 한다.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을 하고 풀뿌리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 이런 논점을 말하지 않으면서 정치를 개혁하자는 것은 중앙 집중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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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12 08:55 2012/10/12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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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인 새사연 원장의 레디앙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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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태인 새사연 원장의 레디앙 인터뷰를 발췌했다.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점도 있긴 하지만,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걸 제기하기도 한다. 행동경제학과 대안사회이론의 결합이 그런 예이다. 나도 여러 사안들에 정책을 만드는 입장에서 접근하는데, 확실히 내공이 딸리는 모양이다. 기초체력도 떨어지고... 지금이 이런 것들을 길러야 할 때인가? 한숨만 나온다. 능력이 부족하면 써먹을 데도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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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redian.org/archive/42816
안철수, ‘생각’과 행동이 다르다? 문재인, '정책의 정치화' 실패해
[인터뷰-정태인 원장①] “진보시대 열렸는데 스스로 자멸”
‘아래로부터, 안으로부터’ 성장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사회적 경제다. 다행이 지난 2011년 협동조합 기본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이후 현재 전국적으로 협동조합에 대한 붐이 일어나고 있다. 양적으로 보면 협동조합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적 경제가 굉장한 성장의 가능성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정부는 이들이 지역 공동체에 뿌리박고 제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간접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시민운동과 지방정부가 함께 정책을 만들고 협동조합이 이를 수행하는 ‘퀘벡 모델’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책(리셋코리아) 내용에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게 있는데, 그것은 자본 통제를 주요 경제 정책으로 채택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미국이 3차 양적 완화 정책에 들어가면서 우리나라로 달러 유출입이 심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토빈세를 부과해서 세수를 늘리고 자본 이동에 의한 경제의 변동성을 낮추는 것이 필수적이다.
내수확대는 이제 국민 스스로가 참여해서 결정하는 기업이나 협동조합을 운영하는 경제시스템으로 변화해야 가능하다. 이런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없으면 살아날 방법이 없다.
복지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금융으로 해결하려 했다. 은행들이 소매, 가계금융으로 살 길을 찾다가 가계부채 문제에 봉착하게 됐다. 신자유주의라는 게 결국 세금은 낮추고 가능하다면 금융 정책과 활동을 통해서 사람이 살기 좋아질 거라는 믿음이다. 그런 환상을 사람들에게 심어준 거고, 이런 환상은 국내 차원이나 세계적 수준에서 이미 깨졌다.
국민연금을 동원해 대규모 펀드를 조성하고 이를 통해 창업 열기를 일으켜 문제를 해결하자는 이헌재의 말에 안철수가 넘어간 것이고, 이게 결국 안철수 버전의 혁신경제로 나타났으며, 안 후보가 이헌재에 대해서 “위기 때 필요한 사람”이라고 얘기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발언이라고 짐작한다. 정부와 기업 사이의 네트워크, 기업과 대한 사이의 지식 교환 시스템이 훨씬 중요하다. 돈도 중요한 것은 맞지만 쏟아 붓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캠프 인선을 봐도 정부를 끌고 갈 능력이 없는 것 같다. (그는 이 부분에서 안철수 캠프의 정책 생산 능력에 대한 강한 의구심을 표시했다)
문재인 캠프의 경우 경제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상당히 탄탄한 사람들이다. 내가 알기로는 정책도 오랫동안 준비해왔다. 하지만 캠프 전체적으로 보면 정책을 만든 이후, 정무적 판단에 따라 정책 발표 순서와 강조점 등이 드러나야 되는데 이 점이 취약한 것 같다. 윗선의 정무적 판단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특정 정책이 그만큼의 파괴력을 갖지 못하게 되는 것 같다.
 
http://www.redian.org/archive/43039
‘사회경제적 민주주의’가 시대정신, “박근혜 복지, 당선되면 사라질 것”
[인터뷰-정태인 원장②] “진보, 대선후보 내지 말았으면”
2010년 지방선거 때부터 사람들은 “나만 잘 살 수 있다.”에서 “나도 루저가 될 수 있다.”는 쪽으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무상급식이라는 작은 이슈가 보편복지로 번져갈 수 있었던 것은 국민들의 이 같은 변화된 생각 때문에 가능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전혀 먹혀들어갈 것 같지 않던 경제민주화가 핵심 이슈로 떠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직 국민들의 심정은 계기만 주어지면 경제적 투기를 선택할 수 있다. 
안철수의 ‘생각’과 장하성, 그렇게 잘 어울리는 건 아니다. 장하성은 기본적으로 주주자본주의를 강조하는 사람이다. 시장에 의한 재벌 견제와 개혁이 필요하며 이 과정에서 펀드 역할이 중요하다고 보는 사람이다.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강조하는 장하성 펀드가 바로 그런 것이다. 장하성 정책에서 ‘이해당사자’ 자본주의라는 관념은 없다. 설령 있더라도 정책화할 정도까지는 아닐 것이다. 안철수의 경제정책은 여전히 의심스럽다. 전체적으로 노동자, 지역주민, 중소기업 등 이해당사자 목소리가 의사결정에 반영되는 경제민주화 정책을 입안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중요한 것은 정권 교체가 된 다음에 과연 경제민주화나 보편복지, 협동조합까지, 이런 것들이 정책적으로 잘 실행될 것이냐 하는 점이다. 현재로서는 이에 대한 정책 실행이 잘 될 것이라는 보장이 전혀 돼 있지 않다. 대선 과정에서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반영되고, 정권 교체가 된 이후에는 이를 실행하도록 시민사회가 강요하고 참여하는 구조를 만들지 못할 경우 새로운 정권은 3각 동맹에 포위돼 고립되면서 노무현 정권 후반기 같은 상황을 맞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깨끗하게 정리하고, 말 그대로 시대가 변했으므로 시대를 교체해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그리고 (변화된 시대를 대변하지 못하는) 지배동맹의 대변자 역할을 하고, 곳곳에 남아있는 말 지배동맹의 역사인식을 그대로 주장하는 것을 정확하게 공격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안철수가 대통령이 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특히 『안철수의 생각』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최근 캠프 인선을 보면서 다시 생각하게 됐다.
 
http://www.redian.org/archive/43120
“합의된 정책은 당선 후 우선 집행”
[인터뷰-정태인 원장③] "진보 생각하면 가슴이 아리다"
지금까지 직접 민주주의는 참여예산제나 책임자 소환 정도였는데, 이번 경우는 정책 기조를 기준으로 대통령을 선택하고, 그 기조를 관철시키기 위한 내각 인선에도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 참여 폭이 훨씬 넓어질 수 있다. 이는 정당이 약해진 결과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다른 차원에서 보면 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도 볼 수 있다. 
80년대에 만들어진 운동은 이후 계속 말로는 여러 번 쇄신도 하고 혁신도 했지만, 당시의 정파적 사고방식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힘까지 빠져서 자멸한 것이다. 확실한 건 훨씬 더 젊은 사람들, 과거 기억에 붙잡혀 있지 않은 젊은 이들이 자기들의 생각들을 주눅들지 않고 말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줘야 한다. 이게 최소한이다. 
새무얼 보울스가 과거 주장한 민주적 기업론도 행동경제학과 직접 연결해서 설명하는 것이 가능할 텐데, 과거 자신이 운동과 진보 쪽의 입장에서 만든 그런 이론과 현재의 행동경제학 기초를 연결시키려는 시도는 하지 않고 있다. 점점 생물학 등 추상적으로 가고 있다.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중요 명제들은 대안적 사회의 건설을 생각할 때 분명히 인간이 가지고 있는 심성과 이를 바탕으로 나타나는 현상들이 어떻게 거기에 반영돼야 할 것인지는 나의 오래 된 문제의식이기도 했다. 그런 것들이 이 책(<이타적 경제학의 출현>)에서 많이 반영됐다.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경제라는 것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협동하자는 것이 기본인데, 자본주의 300년 동안 주류 경제학은 인간의 이기적 본성에만 너무 치우쳐왔으며, 그게 지금 문제로 드러난 것이다. 인간은 원래 협동적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붐’처럼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협동조합 운동은 또 우리나라 거시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중요한 부분이라는 자신감을 갖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이 하는 일이 사회적으로도 옳고, 개인적으로 중요하고 올바른 거라고 생각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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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10 01:02 2012/10/10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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