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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0/02/03
    교사와 학생
    흑무
  2. 2010/02/03
    비밀을 사랑할거다
    흑무
  3. 2010/02/03
    2월
    흑무
  4. 2010/01/29
    20년 후의 그를 사랑할 수 있는가
    흑무
  5. 2010/01/29
    내가 너를 선택한 것은
    흑무
  6. 2010/01/29
    안개
    흑무
  7. 2010/01/29
    그대 덕분
    흑무
  8. 2010/01/29
    처음부터 다시
    흑무
  9. 2010/01/29
    진짜 위인
    흑무
  10. 2010/01/29
    나비를 꿈꾸는 그대에게
    흑무

사랑은 너무 복잡해…메릴 스트리프 - 경향100311

 

메릴 스트리프는 특별히 잘하는 역이 없는 배우입니다. 모든 역을 다 잘하기 때문이죠. 메릴 스트리프가 출연했다는 사실만으로 작품의 질은 일정 수준 이상 보장됩니다.

이번주에는 그가 출연한 <사랑은 너무 복잡해>가 개봉합니다. 스트리프는 재결합을 원하는 전 남편(알렉 볼드윈), 다정다감한 건축가 애덤(스티브 마틴) 사이에서 갈등하는 요리사 제인 역을 맡았습니다. 연적으로 등장한 볼드윈과 마틴은 며칠전 제8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공동으로 사회를 맡기도 했습니다. 스트리프는 올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작이었던 <줄리&줄리아>에서도 요리사 역을 맡아 객석에 앉아있었고요.


에밀리 블런트, 앤 헤서웨이, 클레어 데인스, 페넬로페 크루즈. 스트리프를 롤 모델로 삼고 있다는 젊은 여배우의 명단입니다. 그럴만도 한 것이, 스트리프는 연기뿐 아니라 사생활에 있어서도 딱히 흠잡을 데가 없습니다. 조각가인 남편과 30년 이상 해로하면서 아이 넷을 키웠습니다. 결혼, 이혼, 또다른 결혼이 순식간에 이뤄지는 할리우드에선 보기 드문 삶입니다.

연기와 삶에 있어 모두 모범을 보이고 있는 스트리프이건만, 상복은 없는 편입니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스트리프는 다시 한번 미끄러졌습니다. 역대 최다인 16번 노미네이트돼 2번 수상. 마지막 수상이 <소피의 선택>(1983)의 여우주연상이었으니, 27년간 아카데미와는 인연을 맺지 못했습니다. 스트리프의 성공적인 경력을 생각한다면, 타율이 지나치게 낮아 보입니다.

스트리프 대신 여우주연상을 가져간 이는 올해 처음으로 아카데미 후보로 지명된 샌드라 불럭이었습니다. ‘꿈의 공장’ 할리우드 최대의 축제답게, 아카데미 시상식은 극적인 상황을 연출하길 좋아합니다. 주연상도 고르게 우수한 연기를 선보이는 배우보다는, 생애 다시 없을 열연을 펼친 배우에게 돌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불럭 역시 아카데미 전날 열린 라즈베리 상에서 최악의 여우상을 받을 정도로 들쭉날쭉한 연기를 보였습니다. 최근의 수상자 중에서는 리즈 위더스푼, 힐러리 스웽크, 할리 베리 등이 유사한 모습입니다. 스트리프는 지난해가 아니면 올해, 올해가 아니면 내년이라도 상을 받을 수 있지만, 다른 배우는 이번이 아니면 안됩니다.

그래서 상복이 없는 스트리프가 불행할까요. 올해에도 여느 때처럼 스트리프는 무대 위의 수상자에게 환한 웃음, 뜨거운 박수를 보냈습니다. 속이야 모르지만, 표정엔 섭섭한 기운이 없었습니다. 따져보면 환갑이 넘도록 할리우드 영화의 주연 자리를 꿰차고 있는 여배우가 어디 있을까요. 상을 받는 건 영예롭지만, 대중과 제작자에게 끝없는 호출을 받는다는 건 더 영예롭습니다. 배우에게 상은 이벤트지만, 연기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 경향, 백승찬기자의 배우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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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실수도 교수’

성균관대 권철신 명예교수, 개인연구실 마련 학생 지도

‘입실수도(入室修道) 교수.’ 성균관대 권철신 명예교수(65)의 별명이다.

권 교수는 1986년 이 대학 시스템경영공학과 교수로 부임한 이래 지난달 정년퇴임할 때까지 매주 월~토요일 6일간을 학교 연구실에서 보냈다. 학생들이 “입실수도하는 교수님”이라고 부를 만도 하다.

권 교수는 24년간 연구실에서 먹고 자며 강의와 연구, 논문 지도에 열중했다. 방학이라고 예외를 두지도 않았다. 오히려 여름방학에는 4주에 걸쳐 세미나, 특강, 야외체육훈련 등으로 꾸려진 ‘한계돌파 지옥세미나’를 하며 학생들을 독려했다. 이렇게 길러낸 석·박사 제자만 190여명에 이른다.

권 교수는 ‘3배수 원칙’으로도 유명했다. 3시간 강의를 하려면 9시간을 준비해 똑같은 강의를 되풀이하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지난달 28일 퇴임한 뒤에도 그의 제자 사랑은 계속되고 있다. 아직 박사학위 과정을 끝내지 못한 제자 5명이 학위를 얻을 때까지 지도를 계속해달라고 요청해왔기 때문이다. 권 교수는 사비를 들여 서울 양재동에 개인 연구실을 열고 제자들과 만나고 있다. 다만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퇴임 전처럼 사무실에서 숙식하지는 않기로 했다.

권 교수는 “처음 연구실에서 먹고 자기 시작했을 때는 1년만 하겠다는 생각이었다”면서 “그러다 기간이 3년으로 늘어나고, 결국 10년이 넘었다. 시간이 가면서 가족들도 제자들에 대한 나의 마음을 이해했다”고 술회했다. “엿새 분량의 도시락을 싸느라 아내가 고생이 많았다”고 부인에 대한 고마움도 표시했다. 교육자로서 그의 좌우명은 “교육을 하고자 하는 자, 실망을 두려워하지 말라”이다.
 

.....................

 

..........교육을 하고자 하는 자, 실망을 두려워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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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경향을 비난하지 않은 까닭 - 경향,20100310

[김상봉칼럼]

 

내가 경향을 비난하지 않은 까닭

 

 

 김상봉| 전남대 교수 ·철학

 

이런 일은 좀체 없는 일인데, 나는 요즘 고시를 보겠다는 법학도에게 법학 따위는 집어치우고 철학을 공부하라고 권하고 있는 중이다. 어젯밤 강의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그 학생이 같이 걸으며 물었다. 철학을 공부하면 생계는 어떻게 해결하는 거냐고. 나는 그런 물음을 묻지 않게 되는 것이 철학을 하는 것이라 대답했다. 철학은 생계를 위한 수단이 아니니까, 우리가 철학하는 까닭은 철학 말고는 다른 아무 일도 할 수가 없기 때문이지, 철학을 수단으로 삼아 다른 것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니까. 도리어 먹고 사는 것이 철학을 위한 수단일 뿐이니까.

그러므로 내가 경향신문에 실리지 못한 칼럼을 인터넷 매체에 발표하면서 경향신문을 비난하지 않겠다고 말했던 까닭은 노후대책으로 소설을 쓴다거나 밥벌이 때문에 소설을 쓴다는 위인들이 말하듯이 무슨 밥벌이의 엄숙함 때문이 전혀 아니었다. 세상만사가 밥벌이를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미신에서 벗어나지 못한 중생들은 제주도의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에 가서 그 가난한 예술가가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었는지 순례하는 마음으로 참배하길 권한다.

그 사나이는 1985년 제주도에 정착하여 2005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오직 제주의 아름다움을 사진에 담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희생했다. 가난을 각오하고 결혼 같은 것은 처음부터 포기했던 이 예술가에게 유일한 걱정거리는 쌀이 아니라 필름과 인화지였다. 이것들을 살 돈마저 떨어지면 그는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해 번 돈으로 필름을 샀다. 그리고 다시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해서 제주의 신비를 2만장의 필름 속에 남기고 루게릭 병으로 오십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그가 불쌍해 보이는가? 제주에 가 그가 남긴 사진을 보라. 그 앞에서 우리가 눈시울을 붉힐 때, 그는 숭고한 빛 속에서 웃고 있다.

부끄러움은 영혼의 소금과 같아

철학자는 지혜를 위해 살고, 예술가는 아름다움을 위해 죽는다. 기자는? 진실을 위해 싸운다. 밥벌이 때문이라면 그 좋은 머리로 할 수 있는 다른 일들은 얼마든지 널려 있다. 광고 끊어지고 월급 못 받을까 두려워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신문이라면, 경향신문과 조선일보가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그런 신문이라면 감싸고 돌 까닭이 아무것도 없다. 40년 전에 박정희를 비판하지 못한 신문이 신문 아니었듯이 지금 이건희를 비판 못하는 신문도 신문이 아니다. 그런 신문사는 망해서 아쉬울 일 없다.

내가 경향신문을 비난하지 않은 건 전혀 다른 이유 때문이다. 그 칼럼을 보내고 나는 편집국 기자 세 사람과 직위 순으로 올라가며 통화를 했다. 나중에 용기 있게 고백했듯이 그분들은 광고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을 솔직하게 전하면서 표현을 조금만 완화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거절했더니 다음엔 단 하루만이라도 기다려 달라고 거의 애원하듯 간청했다. 나는 매몰차게 거절하고 전화를 끊었다. 한참 뒤 문자가 왔다.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 말에 담긴 부끄러움 때문에 나는 그들을 비난할 수 없었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비난할 필요가 없었다.

부끄러움은 영혼의 소금과 같다. 수치를 아는 영혼은 결코 썩지 않는다. 그리고 반드시 그 부끄러움으로 찌든 영혼의 거적대기를 팽개치고 일어나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내 글이 인터넷 매체에 올라온 뒤 경향신문 평기자들이 들고 일어났다. 그래서 맹자가 이미 말하지 않았던가,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 의(義)의 싹이라고. 그런 신문사를 광고 끊어져 망하게 내버려둔다면, 이제 그건 우리 모두의 부끄러움이다.

‘씨알의 소리’가 가르쳐준 진실

올해는 함석헌이 <씨알의 소리>를 창간한 지 40년이 되는 해이다. 그는 돈에 매여 진실 앞에서 침묵할까 염려해 처음부터 일절 광고를 받지 않고 오직 독자들의 구독료만으로 월간지를 발행했다. 그렇게 찍어낸 것이 많을 때는 1만부가 넘었는데, 그런 정성이 모여 유신독재를 끝냈던 것이다. 군사독재가 자본독재로 바뀌었을 뿐, 그 때나 지금이나 우리가 할 일은 비슷하다. 삼성 휴대폰과 노트북은 바꾸고, 삼성카드는 자르고 가맹점 해지하고, 삼성에 든 보험은 해약하고, 삼성을 비판하는 경향신문은 정기 구독하면 된다. 부수 늘수록 적자라는 간첩들의 유언비어에 속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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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립식앵글

그럴때가 있다. 뭔지 이름을 몰라서 못사는거. 그 중 하나였다, 요 조립식 앵글.

 

집에 옷장이 없는데, 조립식 앵글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비슷한 선반을 샀는데.. 어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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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사는 법’을 이해하기 위한 25가지 조건

‘잘 사는 법’을 이해하기 위한 25가지 조건

[남미의고민] 볼리비아 외무장관 다비드 초께우안까

라라손 La Razón  / 2010년02월15일 20시21분

[편집자주] 지난해 볼리비아는 36개 원주민(볼리비아 인디언) 사회의 통치시스템을 모델로 삼은 새로운 국가형태를 지칭한 “공동체 사회주의”의 새헌법을 공포했다. 새헌법에 따라 전기, 전화, 상수도 등 공공서비스에 대한 권리가 기본적 인권으로 선언되고 에너지 등 천연자원은 전략적인 국가자산으로 분류돼 민간기업이나 개인의 소유가 금지됐다. 석유·광물은 국가의 참여 또는 관리 없이 개발과 생산이 불가능해졌다. 또한, 사회주의적 공유자산 개념이 도입돼 개인 사유지가 최대 5000㏊까지로 제한됐다. 그리고 볼리비아 최초로 원주민 사회를 인정하고 지방자치를 제도화하여 정치권력을 중앙·지방으로 분산시켰다.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에 의해 주도되는 볼리비아의 ‘공동체 사회주의’의 정신이 무엇인지 볼리비아 외무부 장관이 정리한 ‘잘사는 법’에서 살펴본다.

 


볼리비아 외무부 장관이자 안데스 세계관 전문가인 다비드 초께우안까는 한 인터뷰에서 생명과 자연을 중심축으로 한 ‘잘 사는 법’의 구체적인 기본원리를 설명했다.

 

‘잘 사는 법’은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정부가 실현시키고자 하는 삶의 모델이다. 이 모델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길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다양한 원주민 지역 문화의 기본원리를 취합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이 지역 문화는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가장 우선시하면서 인간을 그 다음 영역으로 고려한다.

 

라라손La Razón은 한 시간 반 동안 다비드 초께우안까 외무장관과 대화를 나눴다. 초께우안까 외무장관은 이 모델에 대해 연구하는 아이마라족 출신의 연구자이기도 하고 안데스 세계관에 정통한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는 볼리비아 헌법 제8조로 승인된 이 기본원리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 설명했다.

 

“우리는 다시 잘 사는 길로 돌아가고 싶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들의 역사와 음악, 의복, 문화, 언어, 천연자원에 대해 다시 평가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우리의 모든 것을 복구시키고 우리가 살던 방식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볼리비아 헌법 제8조는 다음과 같이 제정되었다. ‘국가는 다민족 사회의 윤리 도덕적 원리로 다음을 받아들이고 권장한다. ama qhilla, ama llulla, ama suwa(게으름 피우지 말고 거짓말하지 말고 도둑질하지 말 것), suma qamaña(잘 사는 것), ñandereko (조화로운 삶), teko kavi(훌륭한 삶), ivi maraei(병 없는 땅) y qhapaj ñan(고귀한 길 혹은 삶).

 

초께우안까 외무장관은 사회주의는 물론 자본주의와의 차별성에 대해 언급했다. 전자는 인간의 필요성을 만족시키는 법을 우선시한다면 후자는 돈과 잉여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다르다는 것이다.

 

초께우안까 외무장관에 따르면 ‘잘 사는 법’은 최근에 시작된 움직임이며 앞으로 차츰 대중화될 예정이다. “생명의 문화에 소속된 우리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은도 금도 인간도 아니다. 인간은 제일 끝에 위치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강과 공기, 산, 별, 개미, 나비들이다.(중략) 인간은 최후에 존재해 있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생명이다.”

 

볼리비아 문화권에 있는 세 개의 원주민들은 다음과 같다.
* 아이마라족 : 볼리비아에서 대대로 오래전부터 아이마라 공동체에 살고 있으며 qamiris(아이마라어로 ‘잘 사는 사람들’)가 되는 걸 열망해왔다.
* 께추아족 : 께추아 문화권 원주민들 역시 동일하게 qhapaj(께추아 말로 ‘잘 사는 사람들’)가 되기를 희망해왔다. 잘 사는 것의 의미는 경제적인 걸 의미하지 않는다.
* 과라니족 : 과라니 사람들은 항상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즉 언젠가는 iyambae(과라니 말로 ‘잘 사는 사람’)가 되기를 희망한다.

 

‘잘 사는 법’은 인간에 앞서 자연에 우선순위를 둔다. 볼리비아가 점차적으로 새로운 다문화 국가를 실현시켜나가는 특징들은 다음과 같다.

 

1. 생명 우선권

 

‘잘 사는 법’은 공동체 안에 삶의 주거지를 구하는 것이다. 모든 구성원들이 모두를 위해 고민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사회주의에서 설계한대로의)도 아니고 돈(자본주의가 제기한대로의)도 아니다. 바로 생명이다. 더 소박한 삶, 생명을 찾고자 노력한다. 지구를 구하는 목표와 더불어 자연, 그리고 생명과 조화를 이루는 길이며 진정 인류에 우선권을 주는 길이다.

 

2. 만장일치제

 

‘잘 사는 법’은 의견의 일치를 보는 것이다. 이 말이 내포하고 있는 것은 의견의 차이가 있더라도 의견을 나눌 때에는 모두가 합의하고 갈등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핵심에 도달하는 것을 말한다.

 

“민주주의 방식을 거스르는 게 아니다. 우리가 하려는 건 오히려 진정한 민주주의를 더욱 확산시키려는 것이다. 민주주의 방식에는 일면 다수에 의한 소수의 제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타인을 제압하는 것은 잘 사는 법이 아니다.” 초께우안까 외무장관은 이같이 덧붙였다.

 

3. 차이 존중

 

‘잘 사는 법’은 타인을 존중하는 것이다. 말하고 싶어하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일체의 차별이나 제압 없이 귀담아 들을 줄 아는 것이다. 너그러운 체 하는 게 아니라 진정 존중하는 의미에서 말이다. 각각의 문화나 지역은 각기 다른 사고 방식을 가졌기 때문에 조화로운 삶을 위해서는 이 다름을 존중하는 게 필수적이다. 이 원리는 지구에 거주하는 모든 생명체, 즉 동물과 식물을 포함한다.

 

4. 상호보완성

 

‘잘 사는 법’은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서로 충족시켜주는 존재라는 가정 하에 상호보완성을 우선시한다. 공동체 안에서는 아이가 노인과 더불어, 남성은 여성과 더불어 함께 살아간다. 초께우안까 외무장관은 일례로 식물은 인간의 존재를 보완하고 살아가도록 도와주기 때문에 굳이 죽일 필요가 없다고 지적한다.

 

5. 자연과의 균형

 

‘잘 사는 법’은 모든 생명체가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 균형 있게 사는 것이다. 사람들은 생명을 민주주의나 사회정의와 마찬가지로 예외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초께우안까 외무장관에 따르면 이는 단지 한 사회 내에서만 고려하기 때문이다. 생명은 더 중요한 것이다. 생명 그리고 자연과 인간의 조화가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잘 사는 법’은 예외성 없는 평등사회를 열망한다.

 

6. 정체성 옹호

 

‘잘 사는 법’은 정체성을 평가하고 복구시키는 길이다. 새로운 삶의 모델에서 민중의 정체성은 존엄성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정체성이라는 말에는 500년 이상(스페인 정복으로부터) 저항하며 지켜온 가치에 근거한 삶을 온전히 누린다는 의미가 내포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정체성은 자연, 우주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온 가족과 공동체에 의해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다.

 

‘잘 사는 법’의 근본 목적 중 하나는 바로 모든 민중이 하나로 단결하는 것이다. 초께우안까 외무장관은 먹고 마시고 춤추고 소통하고 일하는 법을 아는 것 또한 기본적인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7. 차이의 수용

 

‘잘 사는 법’은 같은 별에 사는 생명체 사이에 있는 차이와 유사성을 존중하는 것이다. 이는 다양성이라는 개념을 넘어선다.

 

“다양성 안에는 통일성이 없고 유사성과 차이만 있다. 그래서 다양성이 언급되는 경우는 사람에 대해서만 얘기할 때 뿐이다.” 초께우안까 외무장관은 이같이 덧붙인다. 이러한 생각은 유사한 존재 혹은 상이한 존재는 결코 서로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다고 해석될 수 있다.

 

8. 우주의 권리를 우위에 둔다

 

‘잘 사는 법’은 인권에 앞서 우주의 권리에 우선권을 준다. 초께우안까 외무장관은 모랄레스 정부가 기후 변화에 대해 제기한 것 또한 우주의 권리에 대해 언급한 것이라고 확언한다.

 

“그래서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이 ‘인권에 대해 말하는 것보다 우리들의 어머니 지구의 권리에 대해 말하는 게 더 중요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한 것이다.”

 

9. 잘 먹는 법

 

‘잘 사는 법’은 먹는 방법, 제철 음식을 조합하는 법을 아는 것이다. 초께우안까 외무장관에 따르면 이 수칙은 한 계절 동안 수확한 생산물을 섭취해온 조상들의 지혜에 기초해야 유용하다. 또한 건강은 올바른 섭취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한다.

 

10. 잘 마시는 법

 

‘잘 사는 법’은 알코올을 적당히 마시는 법을 아는 것이다. 원주민 공동체에서 각각의 축제는 그 의미가 있다. 알코올은 항상 축하자리에 뒤따른다. 하지만 알코올은 과도하지 않고 다른 이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수준에서 소비된다.

 

“우리는 제대로 마시는 법을 알아야 한다. 우리들 원주민 공동체는 계절과 관련된 진정한 축제가 있었다. 그것은 술집으로 가는 것도 아니요, 맥주독에 빠지는 것도 신경세포를 죽이는 일도 아니었다.”

 

11. 춤추는 법

 

‘잘 사는 법’은 춤 추는 법을 아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몸을 흔드는 법을 의미하지 않는다. 춤은 추수나 씨 뿌리는 일처럼 구체적인 행위와 연관되어 있다. 원주민 공동체는 기본적으로 농사 시기에 맞춰 춤과 음악으로 빠차마마la Pachamama를 경배하고 있다. 그런데 도시에서는 근원적인 춤을 민속적인 표현양식으로 생각한다. 새로운 삶의 모델에서는 진정한 의미를 가진 춤이 새롭게 탄생할 것이다.

 

[역주] 빠차마마Pachamama 혹은 빠차pacha로 쓰인다. 아이마라, 께추아어로 빠차는 땅을 의미한다. 현대에 와서는 의미가 확장돼 세상, 우주를 의미한다. 마마는 어머니, 즉 어머니 지구를 뜻하며 남아메리까 안데스 원주민들 사이에서 신으로 간주된다.

 

12. 일하는 법

 

‘잘 사는 법’은 노동을 축제로 생각한다. “우리들에게 노동은 기쁨이다.” 초께우안까 외무장관은 일하는 댓가로 돈을 지불하는 자본주의와 달리 다민족국가의 새로운 모델에서는 노동을 하나의 축제로 생각하는 선조들의 사고방식을 취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노동은 하나의 성장 방식이다. 따라서 원주민 문화권에서는 어릴 때부터 일을 한다.

 

13. 아브야 얄라

 

‘잘 사는 법’은 모든 민중이 하나의 커다란 가족으로 통합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초께우안까 외무장관에게 이 구상은 볼리비아에 있는 모든 지역을 선조들이 하나의 공동체로 여겼던 것처럼 하나로 재구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생각은 다른 모든 나라로 확대되어야 한다. 모든 민중을 통합하고 우리들의 땅 아브야 얄라Abya Yala로 돌아가려는 과업은 현재 중남미 대통령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아브야 얄라는 이 이름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이데올로기적 지위를 부여한다. ‘아메리까’나 ‘신세계’라는 표현은 유럽 정복자들에게나 유용할 뿐 이 대륙의 정착민들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는 원주민의 또 다른 이름이다.

 

[역주] 아브야 얄라Abya Yala는 끄리스또발 꼴론(콜럼버스)과 유럽인이 도착하기 이전 빠나마와 꼴롬비아 지역의 꾸나족Kuna이 아메리까 대륙을 명명한 이름이다. 마야족과 같은 다른 아메리까 민족들도 이 이름을 사용해왔다. 오늘날 서로 다른 원주민 민족 대표체들은 ‘아메리까’라는 말 대신 이 말을 고집하고 있다. ‘성숙한 땅’ 혹은 ‘살아있는 땅’ ‘번창하는 땅’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14. 농업 재통합

 

‘잘 사는 법’은 농업을 공동체에 다시 통합시키는 것이다. 새로운 다민족국가의 원리는 삶의 기본인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땅을 경작하며 공동체 주거 방식을 회복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방식으로 공동체에 땅이 반환될 것이다.

 

15. 소통하는 법

 

‘잘 사는 법’은 소통하는 법을 아는 것이다. 새로운 다민족국가에서는 조상들의 공동체에서 사용한 소통법을 활용하게 된다. 대화법은 초께우안까 외무장관이 제기한 훌륭한 소통 방법의 결과물이다.

 

“우리는 우리 부모들이 예전에 소통했던 방식대로 소통해야 한다. 그리하면 갈등 없이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전통을 잃어버려서는 안된다.”

 

‘잘 사는 법’은 자본주의식의 ‘부자로 사는 것’과는 다르다. 다민족국가의 새로운 모델이 제시하는 원칙 중에는 사회적 의무, 상호성 그리고 여성과 노인에 대한 존중이 포괄된다.

 

16. 사회적 의무

 

‘잘 사는 법’은 한 사회 구성원 간에 의무를 실현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의무는 사람들의 진정한 참여를 감소시킨다는 이유로 몇몇 공동체에서 거부당한 대중적 참여와는 다른 것이다.” 과거 조상들은 “특정 권력이 실행한 기능을 통제할 의무를 모두가 함께 졌다.”

 

17. 상호 부조

 

‘잘 사는 법’은 공동체 안에서 상호 부조를 실행하는 것이다. 원주민들은 이러한 실천을 ayni라고 일컫는다. 이는 씨뿌리기나 추수와 같은 농사일에서 한 가족이 빌린 도움을 일로써 다시 갚는 것 이상이 아니다.

 

“이러한 품앗이는 긴 건기를 앞두고 삶의 균형을 유지시키는 그 어떤 원칙이나 규약 이상을 의미한다.”

 

18. 도둑질과 거짓말 않기

 

‘잘 사는 법’은 el ama sua y ama qhilla(께추아어로 도둑질하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는 것)에 기초한다. 이는 볼리비아의 새로운 헌법에 포함되어 있으며 모랄레스 대통령이 지키기를 약속한 법률 중의 하나이다. 초께우안까 외무장관 역시 동일하게 공동체 내부에서 복지와 구성원 사이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이 원칙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미래에 잘 살 수 있도록 지켜나가야 하는 규약이다.”

 

19. 종자 보존

 

‘잘 사는 법’은 미래에 유전자변형 생산물 사용을 피하도록 종자를 보호하고 보존하는 것이다. 볼리비아 외무부가 발행한 ‘전세계적 위기에 대항하기 : 잘 사는 법’이라는 책에서는 이 새로운 모델의 특징 중 하나로 종자 은행의 설립으로 과거 농경사회의 부를 보존하는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래야만 생산성을 증대시키기 위한 유전자변형을 피할 수 있다. 유전자 변형이라는 화학적 합성은 유해하며 수 천년간 유지해온 종자를 멸종시키게 될 것이다.

 

20. 여성 존중

 

‘잘 사는 법’은 여성을 존중하는 것이다. 여성은 생명을 낳고 모든 열매를 돌보는 어머니 지구 빠차마마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여성은 공동체 안에서 가치평가되며 생명, 돌봄, 교육과 문화재생과 같은 활동에 참여한다. 원주민 공동체 구성원들은 여성을 사회적 기구의 핵으로 평가한다. 그 문화의 모든 지혜는 여성들에 의해 아이들에게 전수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21. ‘잘 사는 법’과 ‘더 잘 사는 법’

 

‘잘 사는 법’은 자본주의와 연결된 ‘더 잘 사는 법’과는 다르다. 새로운 다민족국가의 원리에서 ‘더 잘 사는 법’은 이기주의, 타인에 대한 무관심, 개인주의와 오로지 돈만 생각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자본주의 원리는 소수의 부를 위해 다수의 착취를 강제하는 것인 반면 ‘잘 사는 법’은 생산의 균형을 유지하는 소박한 삶을 의미한다.

 

22. 자원 복구

 

‘잘 사는 법’은 천연 자원을 회수하고 이를 모두에게 균등하게 배분하는 것이다. ‘잘 사는 법’의 최종 목표중 하나는 천연자원의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적대적인 인간과 자연 사이의 균형과 공존을 도모하며 국가의 전략기업을 국유화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연을 우선시할 필요가 있다.” 초께우안까 외무장관은 이같이 덧붙였다.

 

23. 주권 행사

 

‘잘 사는 법’은 원주민 공동체로부터 국가 전역에 주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일이다. ‘전세계적 위기에 대항하기 : 잘 사는 법’이라는 책에 따르면 이러한 주권은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공동의 힘으로 통일성과 책임성을 만들어나가는 집단의 합의를 통해 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과 자연, 우주가 조화를 이루는 주권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동체와 국가가 재건설되어야할 것이다.

 

24. 물의 보존

 

‘잘 사는 법’은 물을 공정하게 분배하고 올바른 방식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초께우안까 외무장관은 ‘물은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의 젖’이라고 일컫는다.

 

“우리는 천연 자원, 물 등 많은 걸 갖고 있다. 프랑스를 예를 들면 볼리비아에 있는 물이나 땅을 갖고 있지 않다. 허나 우리가 보다시피 지구 없이는 그 어떤 운동도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갖고 있는 걸 소중히 하고 가능한 한 이를 보존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잘 사는 길’이다.”

 

25. 연장자에게 배우다

 

‘잘 사는 법’은 공동체 사회주의로 가는 길을 만들기 위해 할아버지 할머니의 주름살을 읽어나가는 것이다. 다비드 초께우안까 외무장관은 ‘배움의 기본 원천중 하나는 세월과 더불어 잊혀져가는 역사와 관습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공동체의 노인들’이라고 강조한다.

 

“우리들의 할아버지 할머니는 걸어 다니는 도서관이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할머니 할아버지로부터 배워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노인들은 볼리비아 원주민 공동체에서 존경받는 고문역할을 한다.

 


[출처] 라라손 La Razón
(http://www.la-razon.com/versiones/20100131_006989/nota_247_946416.htm)
[원제] 25 postulados para entender el “Vivir Bien”
[일시] 2010년 2월 8일
[번역] 조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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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조의 우화

수조의 우화(The Parable of the Water-Tank)


 

에드워드 벨라미(Edward Bellamy)


 

 


아주 건조하고 메마른 나라가 있었다. 그래서 그곳에 사는 민중들은 물이 부족해 몹시 힘들어했다. 그래서 민중들은 아무 일도 하지 못 하고, 아침부터 밤까지 오로지 물만 찾으러 다녔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물을 찾지 못해 죽어갔다.
 

 

그럼에도 그 나라에는 다른 사람들보다 교활하고 부지런한 사람들이 살았으며,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찾지 못하는 곳에 물을 모아 저장해놓고 있었다. 이 사람들의 이름은 자본가였다. 그러던 어느 날 민중들이 자본가들에게 가서, 물이 너무 필요하니 마실 수 있도록 모아둔 물을 달라고 간청했다. 하지만 자본가들은 이렇게 말했다.
 

 

“꺼져, 이 멍청한 인간들아! 왜 너희들한테 우리가 모아놓은 물을 줘야 되나. 그러면 우리도 너희들처럼 될 거고, 너희들과 같이 죽어갈 텐데 말이야. 하지만 우리가 하는 말을 잘 들어. 우리의 노예가 되면 물을 주겠다.”
 

 

그러자 민중들이 말했다.“물만 주신다면 저와 제 아이들은 당신의 노예가 되겠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되었다.
 

 


- 임금과 물가
 

 

이제, 자본가들은 자신의 종족 안에서 지각 있고 지혜로운 사람들이 되었다. 자본가들은 우두머리, 관리자와 함께 노예들을 모아놓고 명령을 내려서, 일부는 샘에서 물을 퍼내고, 다른 이들은 물을 나르고, 또 다른 이들은 새로운 샘을 찾도록 했다. 그리고 모든 물은 함께 한 곳으로 모았다. 자본가들은 이 물을 담아놓을 거대한 수조를 만들었다. 그 수조의 이름은 시장이었다. 민중들은, 자본가들의 노예들조차도 물을 구하러 그 시장으로 갔다. 자본가들이 민중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이 우리에게 가져오는 모든 물은 이 수조에 담을 것이다. 이것이 시장이다. 그리고 물통 하나당 우리는 너희에게 1페니씩 주겠다. 그리고 너희와 마누라. 아이들이 마실 물을 우리가 주겠지만, 너희는 우리에게 물통 하나당 2페니를 내야 한다. 그 차액은 우리의 이익이 될 것이다. 이러한 이익이 없다면 우리는 너희를 위해 이 일을 하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너희는 모두 죽게 될 것이다.”
 

 

민중들은 이해하는 게 둔했기 때문에, 그들의 눈에는 이게 좋아보였다. 민중들은 많은 날들을 부지런히 물을 길어다 날랐고, 지어 나른 물통 하나마다 자본가들은 1페니씩 주었다. 하지만 자본가들이 바로 그 수조에서 다시 퍼서 민중들에게 줄 때는, 저거 봐라, 민중들이 자본가들에게 물통 하나당 2페니씩 지불했다.
 

 

그리고 많은 날들이 지나자, 그 수조가, 즉 시장의 꼭대기가 넘쳐흘렀는데, 이는 민중들이 한 통의 물을 부으면 겨우 물 반통을 살 수 있을 정도의 돈 밖에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매번 물을 가져올 때마다 남게 되는 초과량 때문에 수조가 넘쳐흘렀다. 민중은 많지만, 자본가들의 수는 적은 데다, 자본가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물을 많이 마시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조는 넘쳐흘렀다.
 

 

그리고 물이 넘치는 것을 알게 된 자본가들이 민중들에게 말했다.“내 말 들어봐. 수조, 아니 이 시장이 넘쳐흐르지? 앉아 봐. 그러니까 말이야, 차분히 앉아서 수조가 빌 때까지 더 이상 물을 퍼오지 말아라.”
 

 


- 실업
 

 

민중들은 자본가들이 물을 구입하지 않아, 돈을 더 이상 받을 수 없게 되자, 물을 살 수 있는 돈이 다 떨어져서 자본가들에게서 물을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자본가들 역시 아무도 물을 사가지 않아서, 더 이상 이익을 남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곤경에 빠졌다. 그러자 자본가들은 사람들을 큰 길과 샛길, 산울타리로 내보내서 소리치게 했다.“목마른 사람이 있거든 수조로 와서 우리한테 물을 사시오! 물이 넘쳐 흐리고 있소!”
 

 

자본가들끼리 이런 말을 주고받았기 때문이었다.“지금은 물이 잘 안 팔리는 불경기야. 광고를 해야겠어.”
 

 

하지만 민중들이 말했다. “당신들이 우리를 고용하지 않아서, 물을 살 돈을 만들 방법이 없는데, 우리가 어떻게 물을 사겠소? 당신들이 예전처럼 우리를 고용하면, 우리도 목이 마르니 기꺼이 물을 사겠소. 그러면 당신도 광고를 할 필요가 없을 거요.”
 

 

그러나 자본가들은 민중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미 수조, 다시 말해 시장이 넘쳐흐르는데, 우리더러 물을 퍼오라고 너희를 고용하라는 말이냐? 물부터 사라. 그래서 수조가 완전히 비면 너희를 다시 고용하겠다.”
 

 

다시 말해서, 자본가들이 물을 퍼올 민중들을 더 이상 고용하지 않으니까, 민중들은 자신들이 예전에 퍼다 놓은 그 물을 살 수 없었던 것이고, 민중들이 자신들이 예전에 퍼다 놓은 물을 살 수 없게 되니까, 자본가들은 물을 퍼올 민중들을 더 이상 고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자 이런 말들이 퍼졌다.“공황이다.”
 

 

민중들의 목이 탔다. 그것은 이 나라가 조상들이 살던 때처럼,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 물을 찾을 수 있도록 열려있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자본가들이 모든 샘물과 우물과 수차(水車)와 물그릇과 물통을 모두 소유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무도 수조에 모아져 있는 물을 살 수 없었다. 그것이 시장이었다.
 

 

그래서 민중들이 자본가들에게 불만을 털어놓았다. “보쇼. 수조는 넘치는데 우리는 목이 말라 죽어가고 있소. 그러니 우리한테 저 물을 주시오. 안 그러면 우리가 죽을 판이요.”
 

 

하지만 자본가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겐 안 되지. 저 물은 우리 꺼야. 우리한테 돈을 내고 사지 않으면 절대로 물을 못 마셔.”그리고 자본가들은 그들의 방식에 따라 서약하듯이 못을 박았다. “사업은 사업이야.”
 

 

하지만 자본가들은 민중들이 더 이상 물을 사지 않아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면 자신들에게 이익이 더 이상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자본가들끼리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우리의 이익이 우리의 이익을 막고 있는 것 같아. 우리가 만들어왔던 이익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이익을 만들 수 없는 것 같아. 우리의 이익이 어떻게 해서 우리에게 불이익을 주고, 우리가 가진 것 때문에 우리가 가난해질 수 있지? 점쟁이한테 사람을 보내서, 이 문제를 해석해달라고 하세.”
 

 

그리고 사람을 보냈다.
 

 

당시 점쟁이들은 사악한 말에 통달한 사람들이었는데, 자본가들이 가진 물 때문에 그들과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 물을 가지고 자신들과 그들의 아이들이 살아갔다. 그리고 그들은 자본가들을 위해 민중들에게 말을 해주었다. 자본가들은 그다지 이해가 빠른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점쟁이들은 미리 할 말을 준비하지도 않아도, 주어진 임무를 잘 해냈다.
 

 

그래서 자본가들은 점쟁이들에게 이 문제에 대해 설명해달라고 요구했다. 그 문제는 수조는 가득 차 있는데도, 왜 민중들이 더 이상 물을 사러 오지 않느냐 하는 것이었다.
 

 

어떤 점쟁이가 이렇게 답했다. “그건 과잉생산 때문이에요.”
다른 점쟁이는 이렇게 말했다.“과잉공급 때문이에요.”
하지만 두 점쟁이의 말은 사실 같은 의미였다.
그리고 다른 점쟁이는 이렇게 말했다. “아니에요, 태양의 흑점 때문이에요.”
그러나 다른 점쟁이는 또 이렇게 말했다. “이건 과잉공급 때문도 아니고, 태양 흑점 때문도 아니고, 악마가 지나가서 그런 것도 아니고, 신념이 부족해서 그런 거예요.”
 

 


- 평정
 

 

점쟁이들이 자기들의 방식에 따라 서로 논쟁을 하는 사이에, 이익만 아는 사람들은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잠을 자기도 했다. 그러다 깨어나서는 점쟁이들에게 말했다. “이 정도면 됐어. 당신들이 말하는 걸 듣고 있으면 우리는 아주 편안해져. 이제 민중들에게 가서 그들이 편안해지도록 이야기를 해줘. 그래야지 그들도 좀 쉬고 우리도 평화롭게 지낼 수 있잖아.”
 

 

하지만 점쟁이들은, 그 무시무시한 학문에 대한 지식이 많은 사내들조차도, 그렇기 때문에 특별한 명칭을 달고 다니는 그들조차도, 민중들이 돌을 집어던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서 그들 앞에 나가는 걸 질색했다. 민중들은 그들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점쟁이들이 자본가들에게 말했다.
 

 

“주인님, 우리의 재능이 참 묘한 것이, 여러분처럼 배부르고, 목마르지 않고, 편안한 사람들은, 우리의 말에서 평안을 찾습니다. 하지만 목마르고, 배고픈 자들은 그 안에서 평안을 찾지 못하고, 우리를 비웃기까지 합니다. 아마도 풍족한 사람이 아니면 우리의 지혜가 닿지 않는 모양입니다.”
 

 

그래도 자본가들은 이렇게 말했다. “가란 말이야! 우리 명령을 안 따를 거야?”
 

 


- 풍요로 인한 굶주림
 

 

그래서 점쟁이들은 민중들 앞으로 나가서, 과잉 생산의 수수께끼와 물이 너무 많기 때문에 목말라 죽어갈 수밖에 없는 이유, 그리고 너무 많기 때문에 부족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민중들에게 태양의 흑점을 염두에 둘 것과, 또 신념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라는 것도 이야기했다. 하지만 점쟁이들이 자본가들에게 이미 말했던 그대로였다. 민중들이 보기에는 점쟁이들의 지혜가 쓸데없는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민중들은 그들에게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꺼져, 이 대머리 새끼들아! 우릴 갖고 노는 거야? 풍요가 굶주림을 낳았다고? 너무 많아서 아무 것도 없다고?”그리고 민중들은 돌을 집어서 그들에게 던졌다.
 

 

자본가들은 아직도 민중들이 불만을 쏟아내며 점쟁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민중들이 수조로 와서 힘으로 물을 빼앗아 가지 않을까 공포스러웠기 때문에, 민중들 앞으로 성자들을 내보냈다. (하지만 그 성자들은 가짜 목사들이었다.) 성자들은 민중들에게 얌전히 지내고, 목마르다는 이유로 자본가들을 못 살게 굴지 말라고 말했다.
 

 

이 가짜 목사인 성자들은 민중들에게, 이 고통은 하느님이 그들의 영혼을 치료하려고 보낸 것이며, 그들이 인내하고 물에 대한 욕망을 참아내고 자본가들을 괴롭히지 않는다면, 고통이 지나간 후에 자본가가 사라지고 물이 풍요한 나라로 오는 귀신을 막아주겠다고 설교했다. 그들은 그렇게 말했지만 확실히 신의 예언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 예언은 자본가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고 항상 자본가들에 반대하는 말씀이었다.
 

 


- 자선
 

 

이제, 민중들이 계속 불만을 털어놓으면서, 점쟁이나 가짜 목사의 말에도 잠잠해지지 않자, 자본가들은 손가락을 수조에 흘러넘치는 물에 살짝 담가서 그 끝을 적셨다. 그리고 손가락 끝에 묻어있는 물방울을 수조로 몰려온 민중들에게 확 뿌렸다. 그 물방울의 이름이 자선이었다. 그리고 그 물방울의 맛은 엄청나게 썼다.
 

 


- 무력
 

 

자본가들이 다시 상황을 보자, 민중들은 점쟁이나 가짜 목사인 성자의 이야기도 듣지 않고, 자선이라고 부르는 물방울도 먹히지 않고, 조용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더 분노하며, 수조로 떼거지로 몰려와 힘으로 뺏으려는 것 같았다. 그래서 자본가들은 회의를 열어서 민중들 사이로 비밀리에 사람들을 보냈다. 민중들 중에서 전쟁 기술을 가진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그 사람들을 따로 불러서 교묘하게 그들을 구슬렸다.
 

 

“자, 이리 와봐. 자본가들하고 연합하지 않을래? 네가 자본가들의 부하가 되어서, 그들을 섬기고 민중들에 맞서 싸우면, 사람들은 수조에 침입하지 못 할 거야. 그러면 너는 물을 많이 가질 수 있을 테고, 너와 네 아이들이 목말라 죽지 않을 거야.”
 

 

그러자 힘센 사람들과 전쟁에서 기술을 갈고 닦은 사람들은 그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자신들을 설득하도록 묵묵히 듣고만 있었는데, 이는 목마른 삶이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본가들에게 가서 그들의 부하가 되고, 널빤지와 칼을 지급받았다. 그리고 자본가를 위한 방어부대가 되어서, 민중들이 떼를 지어 수조로 몰려들 때마다 그들을 내려쳤다.
 

 


- 사치와 낭비
 

 

많은 날들이 지나고 나자 수조 안의 물의 수위가 낮아졌다. 그것은 자본가들이 그 물로 분수와 물고기용 연못을 만들고, 그 안에서 목욕을 했기 때문이었다. 자본가들과 아내들, 아이들은 자신들의 즐거움을 위해 물을 낭비했다.
 

 

그리고 자본가들이 수조가 빈 것은 알게 되자 이렇게 말했다.“공황은 끝났다.”
 

 

그들은 부하들을 내보내서 물을 다시 길어와 수조를 채울 민중들을 고용했다. 그리고 민중들은 물을 길어와 수조에 담고 물 한 통마다 1페니를 받았다. 하지만 자본가들이 바로 그 물을 다시 퍼서 민중들에게 줄 때는 2페니씩 받았다. 거기서 그들은 이익을 챙겼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다시 수조는 예전처럼 넘쳐흘렀다.
 

 


- 선동가들
 

 

그리고 이제, 민중들이 수조를 넘쳐흐를 때까지 채우고, 다시 그 물이 자본가들에 의해 낭비될 때까지 목말라하는 세월이 수없이 지났을 때, 그 땅에는 선동가라 불리며 민중들을 자극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그들은 민중들에게, 민중이 함께 힘을 모으면, 자본가들의 노예로 살 필요도 없어지고, 더 이상 목마름도 없어질 것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자본가들에게는 이 선동가들은 눈의 가시 같아서, 이들에게 십자가형이라도 시켜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민중들이 두려워서 감히 그렇게 하지 못 했다.
 

 


- 선동가들의 이야기
 

 

선동가들이 민중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이 어리석은 사람들아, 얼마나 더 거짓말에 속고, 그 거짓말을 믿으며 고통 속에서 살아갈 겁니까? 여러분들이 지금껏 자본가들과 점쟁이들에게 들어왔던 모든 말들은 다 그들이 교활하게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모르겠어요? 여러분들이 언제나 가난하고 비참하고 목마르게 살아야 하는 게 신의 뜻이라고 말하는 그 성자도 마찬가지에요. 두고 보세요. 그들은 거짓말과 신성모독을 저질렀으니 하느님이 다른 이들은 모두 용서하더라도 그들에게는 쓰라린 심판을 내리실 겁니다. 어쩌다가 여러분이 수조 안에 있는 물을 사지 못하게 되었습니까? 여러분에게 돈이 없다는 게 이유가 될까요? 왜 여러분은 돈이 없을까요? 여러분이 시장이라는 수조에 물을 담을 때마다 한 통 당 1페니씩 받고, 여러분이 다시 수조에서 물을 가져갈 때는 한 통 당 2페니씩 지불해야 해서, 자본가들이 이익을 챙기기 때문이 아닌가요?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면, 여러분의 결핍으로 채워지고 여러분의 궁핍에서 나오는 풍요로움으로 만들어진 수조는 넘쳐흐를 수밖에 없는 거 아닌가요? 또한 여러분이 더 많이 고생할수록, 여러분이 더 열심히 물을 찾아서 나를수록, 상황은 더 최악으로 나빠지기만 할 뿐 더 좋아지지 않는 것은 자본가들의 이익 때문인 것이고, 그게 영원히 반복되고 있는 것 아닌가요?”
 

 


- 악마의 모습이 드러나다
 

 

선동가들은 이런 방식으로 민중들에게 말을 하며 돌아다녔지만, 아무도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민중들이 그들의 말을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민중들은 선동가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 말이 맞소. 우리가 우리 노동의 열매를 전혀 갖지 못하는 것은 자본가들과 그들의 이익 때문이오. 그래서 우리의 노동은 쓸데없는 짓이 되어버렸고, 우리가 수조를 채우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할수록, 더 빨리 물이 차 넘치게 되지. 그러면 점쟁이들의 말처럼, 너무 많아서 우리는 아무 것도 갖지 못하게 되는 거야. 자본가들이 얼마나 독종들인지 잘 봐. 그들의 다정한 자비심은 잔혹하기만 해. 우리가 어떻게 그들이 우리에게 덧씌운 굴레에서 해방될 수 있는지, 알고 있으면 말을 해주시오. 하지만 당신도 해방을 향한 길을 모른다면, 잠자코 우리를 놔둬주시오. 그래야지 우리의 비참한 처지라도 잊을 수 있을 테니 말이오.”
 

 

그러자 선동가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는 그 방법을 알아요.”
 

 

민중들이 말했다. “우리를 속일 생각은 마시오. 이런 일이 시작되던 때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눈물에 젖어 그 방법을 찾았지만, 누구도 해방을 위한 방법을 찾지는 못했소. 하지만 당신들이 방법을 안다면 빨리 이야기 해주시오.”
 

 


- 개선 방안
 

 

그러자 선동가들은 민중들에게 그 방법을 말해주었다.
 

 

“보세요. 여러분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본가들이 다 가지고 있는데, 여러분들의 노동에서 나오는 이익을 그들에게 바치는 이유가 뭐죠? 도대체 자본가들이 무슨 위대한 일을 한다고, 여러분들은 그들에게 공물을 바치는 거죠? 하! 자본가들이 여러분들을 모아놓고 명령하고, 이리저리 데리고 가서 일을 시키고, 나중에 여러분에게 물을, 그것도 그들이 아니라 여러분이 수고해서 퍼온 물을 주는 것 때문인가요? 자, 이제 이 굴레에서 벗어날 방법입니다! 자본가들이 하던 일을 여러분 스스로 하시면 됩니다. 그들이 여러분의 노동을 관리하고, 여러분을 모으고, 일을 나눠주는 거 말이에요. 그렇게만 하면 자본가들도 전혀 필요 없고, 그들에게 이익을 바칠 이유도 없어져요. 여러분이 일한 노동의 열매는, 형제들처럼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나누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만 하면 모든 사람들이 풍족해지고, 더 필요하다는 불만이 없어질 때까지, 수조는 넘쳐흐르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나중에 수조가 넘치면, 여러분 모두가 즐겁도록 재미있는 분수도 세우고, 연못도 만들면 됩니다. 지금 자본가들이 하듯이 말이에요. 하지만 그때는 모든 사람의 기쁨이 되는 거죠.”
 

 


-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자 사람들이 말했다. “좋아 보이긴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되겠소?”
 

 

선동가들이 대다했다. “여러분들 앞에 서서, 사람들을 모으고, 노동을 관리할 사려 깊은 사람을 선택하세요. 이 사람들은 자본가들과 같은 존재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본가들 같은 주인님이 아니에요. 여러분들의 형제들이고, 여러분이 하고 싶은 바를 실천할 관리자들입니다. 그들은 어떤 이익도 가져가지 않을 것이고, 모든 사람들과 똑같이 나눠가질 거예요. 더 이상 주인이나 노예는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며, 오직 형제들만 남게 될 것입니다. 그러다 때때로 적당한 때가 되면, 노동을 관리하는 일을 대신할 사려 깊은 사람을 여러분이 고르면 됩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귀를 기울이고, 그렇게만 되면 정말 좋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별로 어려워 보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면 당신이 말한 대로 해봅시다. 우리가 해보자고!”
 

 


- 모든 일의 결말
 

 

자본가들은 함성소리와 민중들이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점쟁이들도 그 소리를 들었다. 가짜 목사들과 자본가들을 지키던, 전쟁 기술을 가진 힘센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그 소리를 듣고 엄청나게 떨었다. 그들은 무릎에서 딱딱 소리가 나도록 떨었다. 그리고 말했다. “우린 끝이야!”
 

 

하지만 자본가를 위해 예언하지 않고, 민중을 동정하던, 살아있는 신의 진짜 목사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민중들의 함성소리와 이야기를 듣고 엄청나게 커다란 기쁨에 즐거워하며 해방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선동가들이 그들에게 이야기해주었던 모든 일들을 해냈다. 그리고 모든 일들은 선동가들이 말했던 것처럼 되어갔다. 그 나라에는 더 이상 목마른 사람도 없고, 굶주리는 사람도 없고, 헐벗은 사람도 없고, 추위에 떠는 사람도 없고, 궁핍한 사람도 없었다. 그리고 모든 남자들은 친구를 보며 말했다. “내 형제여.”그리고 모든 여자들은 동료를 보며 말했다. “내 자매여.”
 

 

그들은 서로서로 형제와 자매처럼, 모두 하나로 단결하여 살아갔다. 그리고 하느님은 그 나라를 영원히 축복했다.
 

 


[원문] The Parable of the Water-Tank
[번역] neoscrum(http://blog.jinbo.net/neosc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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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급여 등 용어 설명

요양급여 :  근로자가 업무상의 사유에 의하여 부상을 당하거나 질병에 걸린 경우, 그에 따른 요양으로 인해 발생된 치료비등에 대하여 의료기관(약국포함)이나 재해자에게 지급되는 보험급여
휴업급여 :  업무상 사유에 의하여 부상을 당하거나 질병에 걸린 근로자가 요양을 하느라고 취업하지 못하여 임금을 받지 못한 기간에 대하여 지급되는 보험급여
장해급여 :  업무상 재해로 인하여 근로자의 신체 등에 장해가 남는 경우 그 등급에 따라 지급되는 보험급여로 연금과 일시금이 있음
간병급여 :  요양을 종결한 근로자가 의학적으로 상시 또는 수시로 간병이 필요하여 실제로 간병을 받는 경우에 지급되는 보험급여
유족급여 :  근로자가 업무상의 사유에 의하여 사망한 경우에 유족에게 지급되는 보험급여
- 연금으로 지급되는 것이 원칙이나 연금의 형태로 지급하는 것이 곤란한 경우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경우에는 일시금 지급 가능
장의비 :  근로자가 업무상의 사유에 의하여 사망한 경우 그 장제를 실제로 행한 자에게 지급되는 보험급여
상병보상연금 :  요양개시 후 2년이 경과되어도 치유가 되지 않고 그 부상 또는 질병상태가 폐질등급에 해당하는 경우 휴업급여 대신 지급되는 보험급여
수납률 :  당해 산재보험 가입사업장에 대한 산재보험료 징수 실적으로 (수납액/징수결정액)*100 으로 산출
직업재활급여 :  산재근로자의 재취업 촉진을 위한 직업훈련수당 및 직장복귀 촉진을 위한 직장복귀지원금, 직장적응훈련비, 재활운동비 등 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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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은..

   "의사들은 내가 일하고 있는 작업장에 아무런 하자가 없다고 늘 이야기합니다. 그들은 많은 교육과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아마도 모르는 것이 없을테지요. 그러나 나는 그들처럼 전문가는 못되지만 현장에 뭔가 잘못된 것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동료들도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은 단 한 가지, 현장이 나를 죽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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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知)와 열정 - 경향20100209

[고미숙의 行설水설]지(知)와 열정  / 고미숙 고전평론가

 

 

새해 벽두, 폭설이 내렸다. 설상가상으로 혹심한 한파까지 몰아닥쳤다. 방송에선 70년 만의 대기록이라고 했다. 연구실(‘수유+너머’ 남산)이 있는 곳은 서울 남산 중턱. 워낙 고지대라 마을버스나 택시가 올라올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하필 그날 김윤식 선생님 강의가 열렸다. 과연 이 폭설을 뚫고 사람들이 올까? 살을 에는 추위에 저 아래 지하철역에서 이 중턱까지 한참을 걸어와야 하는데….

하나 기우였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눈을 툭툭 털면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주제는 ‘이광수와 고아의식’. 40, 50대 수강생들에겐 남다른 감회를 불러일으킬 만한 테마였다. 한데, 아주 특이하게도 수강생들 중에 10, 20대가 상당수 섞여 있었다.

70대 노대가와 10대 학인의 소통

그들은 ‘김윤식’이라는 이름을 알지 못했다. ‘이광수’는 이름만 겨우 알 뿐 대체로 무관심했다. 하긴, 일제나 식민지라는 말도 생소하기 그지없는 세대들이니까. 그런데 어떻게? 이유는 비슷했다. 아버지가 꼭 들으라고 해서, 혹은 선배와 선생님들이 이 절호의 기회를 놓지지 말라고 해서. 그 말들이 하도 절실하여 ‘대체 어떤 분이기에?’ 하는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다.

이렇게 ‘울퉁불퉁’한 학인들을 앞에 놓고 강의가 시작되었다. 이광수의 생애를 밑그림으로 헤겔에서 루카치로, 향가에서 야나기 무네요시로, 숫타니파타하에서 자본주의 맹아론으로, 평소에 공부하는 내용을 단 하나의 여과도 없이 그대로 쏟아내셨다. 무려 네 시간에 걸친 강의가 끝난 뒤 10대들이 보인 첫 반응,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어른들이 막 웃는데 따라 웃을 수가 없어서 괴로웠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이 아이들은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다시 남산 중턱을 찾아들었다. 이때부터는 호기심이 아니라, 자발적 선택이었다. 신기했다.

한 마디도 못알아 들을뿐더러 4시간 동안의 집중력을 요하는 이 힘든 강의를 대체 왜? 홈피에 올린 그들의 후기. “선생님이 살아온 세월과 그에 따라 켜켜이 쌓인 내공, 기운을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세월이 지나고 나이가 먹어 기력이 떨어지더라도, 김윤식 선생님처럼 멈추지 않고 열정적으로 공부하고 생각하고 그렇게 계속 여행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17살 해완) “ ‘교수는 항상 새롭게 공부하고 그것으로 항상 새로운 강의를 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왠지 모르게 울컥했어요.”(21살 우준) “당신 자신의 시대는 식민 사관을 극복하는 것이 인문학의 과제였고 고민이었다. 각 시대마다의 과제가 있다. 그런데 지금 세대는 아무런 의무도 사명감도 부여받지 못한, 그냥 던져진 세대이다. 그래서 매우 불안에 떨고 있지만 그 불안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지도 모른다. 이런 말씀을 하셨을 때 ‘어떻게 저렇게 시대를 크게 바라볼수 있지?’ 하는 생각이 들어 놀라웠습니다.”(22살 윤의) “들을 때는 한 마디도 못 알아들었는데, 신기하게도 선생님의 강의 내용이 어떤 세미나에서든 한 번씩은 꼭 나오고 있거든요! 어디로든 흐를 수 있는 이야기를 전해주신 선생님, 뒷북 감동입니다.”(21살 윤미)

배움이란 열정과 기운의 전승

요컨대 이들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강의를 들었던 것이다. 강의의 내용이 아니라, 강의가 야기하는 특별한 기운과 감응하고 있었던 것. 평생을 구도자처럼 공부를 해온 70대 ‘노대가’와 머리에 피도 안마른 ‘애송이들’의 이 특이한 소통법! 아, 그렇구나! 세대를 가로질러 소통한다는 건 바로 이런 거로구나.

그리고 새삼 깨달았다. 지식이란 정보를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열정과 기운을 전수하는 것임을. 너무나 평범해서 잊혀진 명제, 그리고 벼랑 끝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 시대의 대학과 지식인들이 반드시 환기해야 하는 명제 또한 이것이 아닐지. “지(知)는 열정이다, 배움이란 스승으로부터 그 열정을 ‘훔치는!’ 것이다”라고 하는. 5일 연속강의가 끝나는 토요일, 그날도 눈이 내렸고, 그날 강의 역시 밤 11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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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표시하기전에 주의할일 - 경향20100209

[사물과 사람 사이]   주의 표시 하기 전에 ‘주의’할 일이일훈 건축가

 

 


교통안내 주의 표지는 사고를 방비하려 설치한다. 교차로, 건널목, 굽은 도로, 오르막과 내리막, 횡단보도, 과속방지턱 등 각종 위험정보를 미리 알려 유용하다. 그 중엔 낙석도로 구간을 알리는 것도 있다. 돌이 굴러 떨어질 위험을 미리 알리는 것인데 지날 때마다 아슬아슬하다. 만약 돌이 떨어진다면 달리는 자동차는 피할 방법이 없다. 낙석의 위험은 경고하지 말고 불안의 뿌리를 뽑을 일이다. 사람들이 많이 쓰는 건물에도 그런 위험을 알리는 경고문이 있다. 어느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 바닥에 ‘미끄럼 주의’라고 새겨져 있다. 어찌나 거울 같은지 천장의 불빛이 반사된다. 넘어질 위험을 감수하면서 굳이 미끄러운 재료를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매끄럽게 가공된 재료는 우선 시각적으로 세련되고 미려해 보여 고급스럽고 디자인을 잘한 듯 보인다. 심지어는 보행자 전용도로를 디자인만 앞세워 걷는 이가 미끄럽게 화강석물갈기로 마감한 얼빠진 길도 보았다. 매끄러운 재료는 눈이나 비가 오면 사람이 넘어져 크게 다친다. 공공 공간과 시설은 사람의 안전이 중심이어야 한다. 불안과 위험을 알면서 근본을 고치지 않고 주의와 경고문으로 버티는 것은 유사시 핑계거리를 찾는 불순함 그 자체다. 주의 표시 하기 전에 본질에 더 ‘주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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