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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01/19
    설연휴...길떠날 채비를 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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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9/01/16
    기고했다 짤린 글_최저임금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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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9/01/14
    태백선 기차를 탔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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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9/01/12
    또 술사진이네...비엔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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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9/01/09
    처음 혼자 갔던 여행(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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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9/01/07
    두물머리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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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9/01/05
    앙코르와트에 다녀왔다.
    자웅동체

설연휴...길떠날 채비를 해야 겠다.

 

뻔뻔한 친척들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여성의 한숨

너무나 형식적인 그 모임.

 

누구에겐 지옥같을 명절.

 

도망갈 수 있다면 제발 도망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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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했다 짤린 글_최저임금 유감

최저임금 유감.

 

최저임금 관련 논의가 이루어지는 곳이면 사용자와 노동자는 서로 무시하고 딴소리를 하거나 서로의 얘기를 귀담아 들을라치면 핏대를 올릴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논의가 매너 있게 이루어진다싶으면 노동자와 사용자는 서로의 얘기에 귀기울이고 있지 않은 것이다. 사용자와 노동자는 마치 사슴과 돼지들처럼 다른 얘기를 한다. 알아먹기도 힘든 여러 가지 통계와 수치를 얘기하고 외국이 어쩌고저쩌고 해도 결국 논점은 이것이다. 누구는 비용으로 사람을 보고 누구는 사람을 사람으로 본다는 점이다.

 

최저임금법이란 게 있다. 법 얘기만 나와도 머리에 쥐가 난다. 그런데 이 법을 들여볼 만하다. 이 법 1조 최저임금법의 목적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이 법은 근로자에 대하여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하여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어떤가. 정말 근사하지 않은가. 즉, 국가가 노사간의 임금결정 과정에 개입하여 임금의 최저수준을 정하고 사용자에게 그 이상의 임금을 지급할 것을 법률로써 강제하는 제도라는 것이다. 이런 글로벌한 시대에 외국자본이 건강한 기업을 통째로 삼키고 종이회사가 단시간에 막대한 부도덕한 이윤을 챙기는 걸 보고 사는 이 시대에, 국가가 임금결정 과정에 개입하고 임금수준을 법률로 강제한다. 왜? 라는 질문은 너무 뻔하므로 통과~

 

2008년 최저임금 시급 3,370원이다. 주44시간, 월급으로 환산시 3,770원 * 226시간 = 852,020 원이다. 이 돈이 한 달 생활에 ‘근로자의 생활안정’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이 돈으로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얼마나 꾀할 수 있는지 이런 건 논외로 하자. 우리끼리 얘기해봐야 속만 쓰릴 뿐이고 비용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집단은 이런 얘기 아무리 해도 못 알아듣는다.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사용자는 어차피 얼마 차이도 안 나는 거 그 돈으로 계속 살아왔으면서 왜 자꾸 올려달라고 하느냐고 속내를 너무 솔직히 드러낸 바도 있다.

 

그런데 사용자도 아닌 노동부가 최저임금개선방안이란 걸 내놓았는데 그 내용이 정말 해괴하다. 우선 고령구직자 스스로가 명시적으로 희망하는 경우 최저임금을 감액하겠다고 한다. 세상에 어떤 구직자가 최소한의 생계선이라고 법으로 정해놓은 임금수준을 감액해도 좋다고 ‘스스로’ 희망하겠는가? 상당수 고령자들이 임금을 덜 받더라도 일할 기회가 주어지길 바란다는 통계는 아마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통계는 통계일 뿐, 이제 우리 사회에서 노인은 더 이상 존경과 우러름의 대상이 아니라 더 값싼 노동력일 뿐이다. 더 값싸게 팔리더라도 생계를 이어가야 할 절박함에 있는 노인들의 이 비정한 사회에 대한 한숨과 고통이 통계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수습기간을 연장해 비용을 절약해보겠다는 심보 역시 그렇다. 근로기준법 시행령에서 수습근로자의 정의를 ‘사용한 날부터 3개월 이내의 자’로 규정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정부가 2005년 최저임금법 개정 당시 ‘연소자, 양성훈련생, 수습노동자 적용제외’를 ‘수습노동자(3개월 미만)로 단일화시켰다. 그런데 수습기간을 6개월로 늘이겠단다. 최저임금 적용 사업장에서 수습이 6개월이나 필요할 일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보려 해도 3개월 더 최저임금을 덜 주어서 벼룩의 간이라도 삼켜버리겠다는 의도다. 하긴 그 벼룩의 숫자가 늘어나면 아무리 작은 간이라도 많이질테니 그 의도는 이해된다만 정말 치졸해서 대응하고 싶지도 않다. (간접고용 도급계약의 경우 몇 년을 동일 사업장에서 일해도 신규업체가 들어올 때마다 수습기간을 적용시키려고 하는데 청소용역직 아주머니들, 매년 1년에 6개월을 수습으로 지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의 숙식비 공제한도 신설 논리는 더 이상하다. 한국노동자들은 월세를 살아도 자기 돈으로 월세를 내는데 외국인노동자는 회사에서 숙식을 제공하니 형평성이 어긋난다는 것이다. 그럼 한국노동자에게도 숙식을 제공해 형평성을 맞추는 것은 어떠한가. 외국인노동자는 그들이 일자리와 임금을 필요로 하고, 사용자들이 더 위험하고 더러운 일자리에서 더 싼 임금과 더 강도 높은 노동을 감수하는 그들을 필요로 해서 우리 나라에 들어와 있는 사람이다. 인격적으로 모욕당하고 쫓기고 때로는 쫓기다 죽기도 하는 그 노동자들이 없으면 더 어려워질 중소기업이 많단 말이다. 솔직히 외국인노동자들이 집으로 돌아간다고 할까봐 걱정하는 사용자도 있다. 숙식비는 임금이 아닌 복리후생비용으로 보는 것이 우리 노동부의 행정해석이며 최저임금와 통상임금의 산정범위를 같은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 상식임을 꼭 얘기할 필요가 있나.

 

최저임금은 그야말로 최저의 가이드라인 같은 것이다. 가진 자들에게 각종 세제혜택과 규제완화 등으로 잔치를 벌이고 있는 이때, 법으로 정해진 최저수준의 임금에서 뭘 더 빼먹을 수 있는지 잔머리 굴리는 일을 정부가 나서서 해서야 되겠는가. 낭떠러지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을 밀어버리려고 하면 몇몇은 좌절하고 또 삶을 포기하기도 하지만, 이들이 단결의 힘을 알게 되면 가진 자들 너희가 죽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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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선 기차를 탔다.

정겨운 무궁화호...햇살은 너무 좋고 알아먹지도 못하는 재즈를 실컷 들었다.

하늘과 가장 가깝다는 추전역과 오지역이라는 승부역을 돌아오는 코스였는데

머무는 시간이 너무 짧고 넘쳐나는 사람들 때문에 추위만 실컷 느껴졌다.

기차를 탔다는 사실만 좋았다.

 

혼자서 너무 감수성이 예민해져서 '사람이 나이들어 가장 허망해질 때는

하나도 이룬 게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이룬 것들이 자신이 원하던게 아니란 걸

깨달았을 때이다.'라는 글을 읽었을 때 가슴이 쿵 내려앉기도 했다.

씨비.. 난 내가 원했건 안 원했건 이룬 것도 없을 뿐 아니라

내가 뭘 이루고 싶어하는지도 모른단 말이다.

나이들어 허망해지고 있기만 하다.

 

역마살낀듯 이렇게 시간만 나면 돌아다니려하는 것도 이 허망함 때문이지만..

정신분석도 한반도 남한에 여성으로 태어나 배우자도 아이도 없이 중년을 맞이하는  

운동권출신의 노조활동가의 정신상태를

분석해주지는 못한다. 하긴 그 서양것들이 뭘 알겄냐마는..

 

한비야의 책<지도밖으로 행군하라>와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읽었다. 울다 웃다 했다.

책보다 창밖으로 눈을 돌리면 드문드문 집이 보인다.

춥고 외롭고 쓸쓸해서 어찌 사는지...

기차 안에서 카메라로 담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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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술사진이네...비엔나에서

같이 한달 가까이 지냈던 친구들에게 님을 위한 행진곡을 여러 차례 불러주었더니

이 친구들이 술만 마시면 그 노래를 불러달라고 졸랐다.

심지어 트램 안에서도 불러달라고 졸랐다.

 

신기하게도 노래를 듣고는 인도네시아 친구가 자기 나라에도 이런 비슷한 노래가 있다고 하니까

네팔이랑 방글라데시 친구도 그렇다고 했다.

 

어느 날 일과 끝나고 혼자 몰래 빠져나와 근처 센티미터라는 나름 유명하다는 술집에서

정말 맛있는 생맥주를 마시면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같이 노래 부를 수 있게 음을 딴 것과

영작한 것으로 만들어 나눠주었다. 

 

이 노래는 노동자에게는 애국가 같은 노래여서 한국에서 무슨 행사를 하든 행사 시작 처음에

모두 함께 부른다고 알려주었더니 그 내용을 이해하고 고개를 깊이 끄덕여주었다.

우리의 빨간 머리띠와 팔뚝질은 이미 국제적 코드로 인증되고 있어 따로 학습할 필요가 없었다.

 

술을 마시며 혼자서 전자사전을 뒤져 끙끙대며 문장을 만들고 있을 때...

나는 정말 자유롭다고 느꼈다.

그래서 과음했고 서울로 돌아와 자유롭게 살고 말거야 라는 주먹불끈쥔 결심을 까먹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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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혼자 갔던 여행

나는 서른다섯이 되도록 어디 혼자 떠나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지방출장 같은 것도 혼자 가 본적이 없다.

서른 다섯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혼자 기차를 탔다. 어리숙했고 쩔쩔맸었다.

부모님은 엄격하고 종교적 이데올로기를 강요했으며 외박같은 걸 못하게 하는 분들이었다.

그래서 난 외박만 안하고 나쁜 짓은 다 하고 다녔다.

 

사진은 말레이시아 숙소 안...거기는 우기였고 습기가 대단했다. 빨아놓은 양말은 이틀이 지나서도 마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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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물머리에 다녀왔다.

나이 서른을 훌쩍 넘기고 알고 지낸지 10년이 훌쩍 넘은 친구를 짝사랑하다가, 그 친구가 자주 가곤했다던 두물머리에 간건 아마 청승이겠지...

정태춘이 북한강에서..라는 노래를 만든 곳이기도 하다는 그곳,

얼어버린 얼음 위로 내려앉은 노을이 너무 아름다웠다.

음도 안 맞고 가사도 틀리면서 북한강에서를 흥얼거리다

신년 연휴를 마감했다.

당분간 거대담론이 계속 지겨워질 거 같다. 

그리고 내 사진기은 붉은 감을 잘 표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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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와트에 다녀왔다.

앙코르 와트

너무 지독한 폐허라 오히려 비현실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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