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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했다 짤린 글_최저임금 유감

최저임금 유감.

 

최저임금 관련 논의가 이루어지는 곳이면 사용자와 노동자는 서로 무시하고 딴소리를 하거나 서로의 얘기를 귀담아 들을라치면 핏대를 올릴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논의가 매너 있게 이루어진다싶으면 노동자와 사용자는 서로의 얘기에 귀기울이고 있지 않은 것이다. 사용자와 노동자는 마치 사슴과 돼지들처럼 다른 얘기를 한다. 알아먹기도 힘든 여러 가지 통계와 수치를 얘기하고 외국이 어쩌고저쩌고 해도 결국 논점은 이것이다. 누구는 비용으로 사람을 보고 누구는 사람을 사람으로 본다는 점이다.

 

최저임금법이란 게 있다. 법 얘기만 나와도 머리에 쥐가 난다. 그런데 이 법을 들여볼 만하다. 이 법 1조 최저임금법의 목적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이 법은 근로자에 대하여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하여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어떤가. 정말 근사하지 않은가. 즉, 국가가 노사간의 임금결정 과정에 개입하여 임금의 최저수준을 정하고 사용자에게 그 이상의 임금을 지급할 것을 법률로써 강제하는 제도라는 것이다. 이런 글로벌한 시대에 외국자본이 건강한 기업을 통째로 삼키고 종이회사가 단시간에 막대한 부도덕한 이윤을 챙기는 걸 보고 사는 이 시대에, 국가가 임금결정 과정에 개입하고 임금수준을 법률로 강제한다. 왜? 라는 질문은 너무 뻔하므로 통과~

 

2008년 최저임금 시급 3,370원이다. 주44시간, 월급으로 환산시 3,770원 * 226시간 = 852,020 원이다. 이 돈이 한 달 생활에 ‘근로자의 생활안정’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이 돈으로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얼마나 꾀할 수 있는지 이런 건 논외로 하자. 우리끼리 얘기해봐야 속만 쓰릴 뿐이고 비용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집단은 이런 얘기 아무리 해도 못 알아듣는다.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사용자는 어차피 얼마 차이도 안 나는 거 그 돈으로 계속 살아왔으면서 왜 자꾸 올려달라고 하느냐고 속내를 너무 솔직히 드러낸 바도 있다.

 

그런데 사용자도 아닌 노동부가 최저임금개선방안이란 걸 내놓았는데 그 내용이 정말 해괴하다. 우선 고령구직자 스스로가 명시적으로 희망하는 경우 최저임금을 감액하겠다고 한다. 세상에 어떤 구직자가 최소한의 생계선이라고 법으로 정해놓은 임금수준을 감액해도 좋다고 ‘스스로’ 희망하겠는가? 상당수 고령자들이 임금을 덜 받더라도 일할 기회가 주어지길 바란다는 통계는 아마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통계는 통계일 뿐, 이제 우리 사회에서 노인은 더 이상 존경과 우러름의 대상이 아니라 더 값싼 노동력일 뿐이다. 더 값싸게 팔리더라도 생계를 이어가야 할 절박함에 있는 노인들의 이 비정한 사회에 대한 한숨과 고통이 통계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수습기간을 연장해 비용을 절약해보겠다는 심보 역시 그렇다. 근로기준법 시행령에서 수습근로자의 정의를 ‘사용한 날부터 3개월 이내의 자’로 규정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정부가 2005년 최저임금법 개정 당시 ‘연소자, 양성훈련생, 수습노동자 적용제외’를 ‘수습노동자(3개월 미만)로 단일화시켰다. 그런데 수습기간을 6개월로 늘이겠단다. 최저임금 적용 사업장에서 수습이 6개월이나 필요할 일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보려 해도 3개월 더 최저임금을 덜 주어서 벼룩의 간이라도 삼켜버리겠다는 의도다. 하긴 그 벼룩의 숫자가 늘어나면 아무리 작은 간이라도 많이질테니 그 의도는 이해된다만 정말 치졸해서 대응하고 싶지도 않다. (간접고용 도급계약의 경우 몇 년을 동일 사업장에서 일해도 신규업체가 들어올 때마다 수습기간을 적용시키려고 하는데 청소용역직 아주머니들, 매년 1년에 6개월을 수습으로 지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의 숙식비 공제한도 신설 논리는 더 이상하다. 한국노동자들은 월세를 살아도 자기 돈으로 월세를 내는데 외국인노동자는 회사에서 숙식을 제공하니 형평성이 어긋난다는 것이다. 그럼 한국노동자에게도 숙식을 제공해 형평성을 맞추는 것은 어떠한가. 외국인노동자는 그들이 일자리와 임금을 필요로 하고, 사용자들이 더 위험하고 더러운 일자리에서 더 싼 임금과 더 강도 높은 노동을 감수하는 그들을 필요로 해서 우리 나라에 들어와 있는 사람이다. 인격적으로 모욕당하고 쫓기고 때로는 쫓기다 죽기도 하는 그 노동자들이 없으면 더 어려워질 중소기업이 많단 말이다. 솔직히 외국인노동자들이 집으로 돌아간다고 할까봐 걱정하는 사용자도 있다. 숙식비는 임금이 아닌 복리후생비용으로 보는 것이 우리 노동부의 행정해석이며 최저임금와 통상임금의 산정범위를 같은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 상식임을 꼭 얘기할 필요가 있나.

 

최저임금은 그야말로 최저의 가이드라인 같은 것이다. 가진 자들에게 각종 세제혜택과 규제완화 등으로 잔치를 벌이고 있는 이때, 법으로 정해진 최저수준의 임금에서 뭘 더 빼먹을 수 있는지 잔머리 굴리는 일을 정부가 나서서 해서야 되겠는가. 낭떠러지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을 밀어버리려고 하면 몇몇은 좌절하고 또 삶을 포기하기도 하지만, 이들이 단결의 힘을 알게 되면 가진 자들 너희가 죽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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