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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사 나들이

원래 오늘부터 2박 3일간 타지방으로 출장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어제 밤에 '급' 변경되었다. 가기 싫은 출장 때문에 입이 댓발 나와있다가 갑자기 기분이 완전 상큼해져서 이를 알려준 이에게 감사의 말까지 전해버렸다. 

 

앞으로 10월달에는 주말에 시간 내기가 어려울 듯하여,

밤늦게, 오늘 나들이를 역시 '급' 결정했다.

사실, 이번 학기에는 추석연휴 빼고 한 번도 주말에 못 쉬었다. 사장님(^^)이 개근상이라도 주시려나 은근 기대하면서 주말마다 꼬박꼬박 출근했는데 (사실, 사장님과는 무관한 일이 대부분이었으나), 그러다보니 도대체 요일 감각이 없어져서 아침마다 심한 혼란이 초래되고는 했다.

 

인터넷으로 기차역에서 가까운 절을 물색해보니, 직지사가 딱 걸렸다. 기차역에서 버스로 겨우 25분이라는군. 시내버스 한 방. 기차도 한 시간밖에 안 걸리고...

 



원래는 아침 일찍 출발할 예정이었으나, 예의 그 늦잠 땜시 아침 느즈막히 겨우 출발을 할 수 있었고, 심지어는 기차를 놓칠뻔하기까지 했다.

대전역 지하철 역에서 역사까지 심장이 터지도록 뛰어올라가서 겨우겨우 표를 출력해서 뛰어내려갔더니만 기차 문 닫혀버렸다. 쪽팔림 불구, 떠나려고 소리내는 기차 문을 부여잡고 처절한 표정을 짓는 나의 모습을 멀리서 승무원 아자씨가 목격, 문 다시 열어 주심 ㅎㅎㅎ  액션영화도 아니고 멜로도 아니고, 완전 궁상.... 각본대로라면, 귀에 이어폰 꽂고 책 한권과 커피 한 잔 들고, 쿨한 모습으로 기차에 올랐어야했는데... ㅡ.ㅡ

 

그렇게 생쑈하고 나니 기차에 오른지 30분이 지나도 목구멍이 타들어가는 듯한 갈증이 가시지 않았다. 기다리던 홍익회 아자씨는 나타나지도 않구... 겨우 나타난 아자씨가 가진 물품 중 시원한 거라고는 달고나 스타벅스 병커피. 젠장, 알뜰한 여행 계획하고 5500원짜리 무궁화 탔는데, 3천원짜리 커피가 웬말이야... 문제는, 기차에 내려서도 목구멍 타들어감 증상 지속되어 편의점에서 또 음료수 사먹었음. 흑...

그 뿐이야?

심지어 시내버스 타고 직지사 내리자마자 비 내리기 시작하는 바람에 울면서 우산 구입. 접히는 거는 만원이나 한다는 겨. 한 3천원 받으면 딱 맞겠더만... 아줌마한테 깎아달라고 사정했는데 듣지도 않고 말이지....

내가 스무살 배낭족도 아닌데 왜 이리 지지리 궁상을 떨며 떠돌아야 하는 것일까, 잠시 회의가 들었음 ㅜ.ㅜ

 

근데, 하여간... 직지사 입구에 들어서서 입이 쩍 벌어짐!

 

 

 

 


 

일단 입구에 차들이 백만대나 늘어서 있는데다, 완전 유원지 분위기.

인공폭포와 절벽, 각종 분수대와 조형물들은 그로테스크 그 자체...

나는 마음의 평정심을 찾으러 온 건데... 이건 아니여...

설마 경내도 이렇지는 않겠지, 우려 반 기대반으로 올랐는데 절 바로 입구까지 차량 행렬은 정말 징하게도 .... ㅡ.ㅡ

 

다행히 경내는 바깥 세상만큼 소란스럽지 않았다.

 

하지만 뭐라그래야 할까? 배치와 동선이 특이해서 그런건지, 영, 안정감을 찾기는 어렵더라는...  무위사나 내소사 같은 포근함(?), 뭐라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그런 안온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비오는 처마를 바라보며 쉴 수 있는 작은 툇마루 하나, 아님 인적을 피할 돌계단 하나 찾아내기가 어렵더라구... 사찰이 불공드리러 오는 곳이지, 책이나 읽으려고 오는 곳이냐고 반문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서도...

 

그래도, 경내에 나무들이 많고, 대부분이 단풍인 것이, 가을이 좀더 깊어지면 풍광이 꽤나 아름다워지겠구나 하는 생각은 했다. 지금도 물론 (더구나 비까지 살짝 뿌려서) 풀향기, 나무 향기와 녹음이 수려하기는 했다.

 

 


 


저 나무들이 모두 단풍이란 말이다!!!

일부는 이렇게 변해가고 있었다. (초점이, 초점이.. ㅜ.ㅜ 우산 들고 한손으로 부들부들 올려찍다보니... )


 

경내에 찻집이 하나 있길래,

가을 기념으로 국화차 한잔 마셔줬다.

비로소, 여행자 느낌이 물씬....

야외에서 처마로 떨어지는 빗방물 보며, 음악과 따뜻한 국화차, 완전 맛난 콩고물떡.. 그리고 고종석의 책... (바다소녀가 선물해준 북다트도 보이는군)

 


 찻집이 약간 높은 위치라 담너머 다른 건물들을 내려다볼 수 있다.

 


 

김천역으로 돌아오는 시내버스에서 내다보니, 역이나 시내에서 너무 가깝다는게 새삼 단점으로 생각되더군. 이를테면, 낙안읍성이나 백양사 들어가는 길처럼 구비구비 정겨운 맛이 없는 거여... 입맛 참....  아무래도 직지사는 나의 선호 사찰 목록에는 들어가기가 어려울 듯 싶다.(그쪽도 별로 바라지는 않겠지만서도 ㅎㅎ) 

 

그래도 이 정도면 이번주 버틸만한 호연지기는 충전하고 온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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