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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키워드 - 공포

지난 토욜 오전에 참여했던 세미나의 키워드는 불안과 공포, 고착화, 분리, 숙명이라 할 수 있었다. 이제 사람들은 월소득 5백만원에 자산이 10억은 되어야 중산층이라고 생각한단다. 이건 명백히 '부유층'에, 그것도 상위 몇 %에 들어갈 부유층이다. 사회학 전공 교수들마저 깜짝 놀라게 한 이 통큰 답변의 근원은, 불안과 공포라 할 수 있다. 아무런 보호 수단 없는 이 삭막한 사회에서 이 정도는 되어야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다는 무언의 합의를 보여준다. 거꾸로 보자면, 이 정도가 안 되는 대한민국 대다수의 삶은 언제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르는 불안과 공포에 지배된다는 것이기도 하다. 금욜 저녁 자리에서, 건강보험의 공공성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 상당히 달라졌다는 이야기가 오갔다. 하긴 네이버에 올라온 글 중에는 대운하 건설과 건강보험 민영화 중 그래도 뭘 고를래? 하는 질문이 있단다 (ㅡ.ㅡ).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혜택도 적은 의료보험 차라리 없애고 민영으로 하지... 이랬던 내 주변 사람들도 이제는 절대로 이런 소리 안 한다. 이렇게 생각이 바뀌게 된 것 또한, 삶의 일상적 공포 때문 아닌가 싶다. 최근 읽은 책들과 영화 또한 이런 진실을 무지막지하게(ㅜ.ㅜ) 상기시킨다.


0. 우석훈, 박권일 지음. [88만원 세대] 레디앙 2007 경제학 분야에서 코호트분석은 그리 새로운 개념이 아니지만, 한국 사회의 구체적 맥락에서, 그것도 상당히 대중적 언어로 '세대'의 문제를 다루었다는 점은 높이 사고 싶다. 한편으로 88만원 세대의 암울한 삶에 대한 연민의 한숨과, 다행히도(!) 나는 비껴갔구나 하는 안도의 한숨이 교차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과외/학원과 교복 없는 중고시절을 보냈고, 연합고사, 학력고사 한 방으로 인생이 결정나기는 했지만 최소한 본인의 노력으로 무언가를 헤쳐나갈 여지는 있던 시절이었다. 아마도, 지금 다시 중학생이 된다면? 중학생인 정이나 담이를 보면 항상 마음이 짠하다. 다른 이의 비극적 미래를 엿보는 예언자가 슬픈 것처럼 말이다. 이 속 깊은 장난꾸러기 여자애들은 결코 사회가 미리 쳐놓은 울타리를 넘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울타리는, 부모의 가방끈 길이와 지갑의 두께로 넘는 것이지, 아이들의 품성이나 재능, 노력만으로는 결코 넘을 수 없는 심연이기 때문이다. 책은 베스트셀러라는 명성이 무색하게도 비문이 넘쳐났고 중언부언인데다, 납득하기 어려운 논리적 비약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었으나(ㅜ.ㅜ) 저자들의 빛나는 문제의식 덕에 그냥 덮어주기로 했다. 0. 강수돌 저, [일중독 벗어나기] 메이데이 2007 어째 이렇게 재미없게 썼는지... ㅜ.ㅜ 연구보고서나 논문을 그대로 제본해서 책으로 낸 것 같다. 저자의 문제라기보다 편집자의 문제 아닐까 싶네... 이 책은, 일중독에 대한 임상적/사회학적 진단에서부터 원인,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까지 다방면에 걸쳐 제시하고 있으나 다소 미시적인 접근에 치우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개인들의 변화가 모여서 큰 흐름을 일구어내고 그것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첫걸음일 수 있다. 하지만, 현실로부터의 도피나 성취가 가져다주는 엔돌핀 때문에 일 중독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에서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으려는 거대한 공포와 불안 때문에 일을 '부여잡는' 것이라면, 그래도 과연 여기 제시된 처방이 들어맞을 수 있을까? 일을 과감하게 포기할 줄 알고, 자신의 영성을 돌아보고, 가족의 가치를 깨닫는 것은, 일중독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이라기보다, 고된 노동으로부터 해방된 '결과'라고 보는게 맞을 것 같다. 우석훈의 이야기처럼, 누가 먼저 개미지옥으로 떨어질 것인지를 두고 경쟁하는 이 사회에서, 개인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나? 조금 늦게 떨어지기 위해 일 벌레가 되는 수밖에... 0.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 [There will be blood] 2008 공포영화가 따로 없더라. 다니엘 플레인뷰(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분)는 피도 눈물도 없는 자본주의의 현신. 그 자신에게는 피도 눈물도 없지만, 그가 지나가는 곳에는 피와 눈물이 넘쳐나는구나. 황량한 사막, 그 사막의 가시나무 같은 주인공, 황혼이 지나버린 검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불타오르는 유정.... 뭐 하나 마음이 불편하지 않은게 없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0. Neil Gaiman [American Gods] William Morrow 2001 있는 그대로 보자면,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old gods 들이 '아 옛날이여!"를 외치며 발악하는 이야기라 볼 수도 있다. 물론 옛것에 대한 고답적 향수와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연민을 느낄 수도 있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신들조차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오늘날 자본주의 물신사회의 거대한 힘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메타포로 읽힐 수도 있겠다. 아무도 숭배해주는 이 없는 Jinn 이 뉴욕의 택시 운전사로 일하다 고향 친구를 만나 우는 장면은 정말 대책 없다... 이 사회,전통적인 신들은 더이상 필요 없다. 그야말로 구시대의 유물 - 이제 TV의 신, net의 신, mobile 의 신 등이 예전의 신들이 누리던 지위를 누리고 있다. 그래서, old gods vs. new gods 사이의 한판 승부가 벌어지게 된 것 (물론 그 뒤에는 또다른 음모가 있긴 했지만...) 참으로 슬프고도 발칙한 상상력이 아닐 수없다. 사실, 이 책은 좀 어려웠다. 유럽이나 아프리카, 아랍 등의 신화적 아이콘이나 미국 대중문화에 대한 풍부한 이해가 있어야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인데, 문외한인 나로서는... 물론 흥미진진하게 읽기는 했지만, 배경 지식이 충분했더라면 백배는 더 즐겼을 것 같다. --------------------------------------------- 토욜 저녁에 영화를 보고 나서, 당분간 좀 따뜻하고 정감 넘치는 무언가를 보고 즐겨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장이 메말라 버린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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