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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브리지 주민

미국에 온지 넉 달 동안 참으로 기이한 경험들을 많이 했다.

 

집에 있는 텔레비젼의 떨림 현상이 너무나 심각해져서 하나 장만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내가 유일하게 즐겨보는 프로그램이 [심슨]인데, 지난 주 그거 보려고 앉아 있다가 결국 화면이 안 나와서 못 본게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벼룩시장 같은데 들어가보니 삼성 25인치 칼라TV가 20불이라고 해서 얼른 메일을 보내 찜하고 오늘 아침에 찾으러 갔다. 갔더니 이게 웬말인가. 이 아저씨가 나 말고 다른 사람들한테도 오케이라고 답을 해놨고 자기 나름대로는 먼저 오는 사람에게 주겠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우리(?)한테는 말을 안 했던 것이다. 그런 사실도 전혀 모른채 지하실에 있는 TV를 꺼내와서 잘 나오는지 시험을 하는 중에 웬 여자가 들어오더니만 TV 찾으러 왔다면서 20불을 획 던지고 들고나가려 했다. 어안이 벙벙하여. 이게 뭔 일이냐 했더니만.. 아저씨 주저리주저리 사람들이 온다 해놓고 안 오는 경우가 많아서 어쩌구저쩌구... 짧은 영어로, 나는 이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신경질을 좀 냈더니만, 기껏 내놓은 안이 동전을 던져서 임자를 결정하잖다. 기가 막혀서.. 이 주말 꼭두새벽(9시 반), 차도 없어서 김** 선생님한테 부탁해서 찾아갔는데(샘 부부는 아침도 안드시고 오셨단다 ㅜ.ㅜ), 이 띨띨한 아저씨 땜에 10년도 더 된 텔레비전을 놓고 저 싸기지 없게 생긴 여자애랑 동전 던지기를 해야 하다니..... 기가 막혔지만 동전은 던져졌고 내가 이겼다. 정말 기분 더럽더라. 그나마 여기서 졌으면 얼마나 더 황당했을까.... 미국 생활 4개월만에 별 해괴한 경험을 다 한다 싶었다.

 

아침에 그렇게 설쳐대고 집안 청소를 하고 나니 정말 피곤했다. 오후에 깜빡 잠이 들었는데, 전화벨 소리 우렁차게 ..때르릉....  전화를 받아보니 미국질병관리본부(CDC)에서 온 것이다. 아동 예방접종에 관한 설문조사 중이란다. 다행이 우리 집에는 3살 이하의 어린이가 없었기 때문에 전화 통화는 1-2분만에 끝냈 수 있었다. 전화설문은 벌써 세 번째다. 첫 번째는 Mass 주 정부에서 하는 건강 조사(특히 의료보험)에 대한 것이었고, 나는 외국인이고 여기 임시로 살고 있다고 둘러대서 겨우 피해갔었다. 여기 산지 채 한 달도 안 되었을 때 벌어진 일이다. 두 번째 설문조사는 CDC의 BRFSS 라는 유명한 건강행동 조사였다. 영어 못하고 나 외국인이라서 못하겠다고 했는데도 설문 아줌마 막무가내였다. 아마도 할당이 있었을 것이다. 결국 20분 넘게 흡연, 음주, 식이, 운동, 예방접종, 질병 과거력, 의료 이용 등 두루두루 답변을 해야만 했다. 성 정체성을 묻는 문항도 있어서 적잖이 당황했다. 사실 한번도 나의 성정체성에 대해 의심해본적 없었고, 여태껏 살아오면서 누구도 그런걸 물어본 적이 없었는데 전화로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물어보니까 그냥 당황.... 몆 주 후에는 설문 협조에 감사하는 편지까지 받았다.

 

미국에 산 지 이제 겨우 네 달 째... 마치 10년은 산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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