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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1/20
    빈집 장투록 1(4)
    빈집

빈집 장투록 1

벌써 목요일 아침이라니 당황스럽다. 역시 시간 가는건 우스워... 등을 기대고 고개를 살짝 왼쪽으로 돌려, 눈은 약간 위를 바라본다. 다리는.. 아마 한 다리는 펴고 한 다리는 접어 세운 상태에서 한 팔을 그 무릎 위에 올려 놓고 있으면 되겠지. 이런 진부한 포우즈와 대사...를 실제로 하고 있진 않고, 지난 한 주간 빈집에서 일어난 굵직한 일들, 그리고 내 개인적으로 설치다가 마무리 못한 일들이 생각나니 벙벙어안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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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아침에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아침 9시 10분전이다.
빈집 사람들은 이제 왠만한 알람 소리엔 잠을 깨지 않는다. 어쩔때는 마루, 손님방에서 오케스트라가 울리는데도 참으로 끈덕지게 버틴다. 그래서 아침에 일찍 일어날 필요가 거의 없는 지각생이 이 전화 저 전화 잡고 버튼을 눌러주기도 한다. 오늘도 그런 건데, 알람 맞춰 놓은 사람은 폰을 마루에 두고 자기는 방에서 세월 모르게 퍼자는 중.
안 일어날 거면 알람 맞춰놓지 점 말라규!!!

글자를 키운건 참된 진리 앙겔부처님의 포스팅을 방금 보고 재밌어서 따라해봤다. 근데 이건 재미가 있을 턱이 없구나.. -_- 여기서 내가 끝을 "말라규"라고 했다고 해서 혹시 내가 특정 두 사람을 겨냥해서 "너희가 문제야"라고 말하는 것이구나 하는 걸 발견하는 영민한 두뇌를 가진 분은 없겠지. 네, 아닙니다. 말랴는 오늘도 아침 일찍 (이 알람 울리기 수 시간 전에 이미) 적금 부을 돈 벌러 갔고 아규는 집에 내려가 있네요. 오늘 내 잠을 깨운 폰의 주인은 아마 네오스크럼이 아닐까 합니다. 아 지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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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빈집 식구가 늘었다.
나를 SF에 빠뜨린 진부불로그의 두 명의 (초기) 인기 블로거 중 한 명, 만화가 최규석보다 어쩌면 더 일찍 빈집에서 "팬 사인회"를 가질지 모르는, "내가 춤출 수 없다면, 그건 혁명이 아니다"의 ㅏㅓㅊㅇ니ㅑㅇㅊㅌ (지금 우리 새끼 고양이 "멍니"가 한 마디 하고 가셨다) 저자, 네오스크럼 되겠다. 여튼, 네오스크럼이 열 상자가 넘는 SF를 들이밀고 빈집에 들어왔다. 칫 그래봤자 다 원서 아닌감, 했으나 한국에 돌아와서 사 모은 것도 꽤 되는데 내가 안 읽은게 많다. 읽을게 많아져서 좋다. 

짐이 별로 없을 거라더니 크고 튼튼한 책장 2을 포함해 제법 된다. 빈집이 다시 꽉 찬다. 아... 빈집2가 필요해 빈집2.. 바로 그날 우리는 빈집2로 적당한, 월세도 싼 집을 발견했고, 그 다음날 바로 계약하게 된다. 역시 빈집의 속도. 네오의 짐을 풀어보니 어이쿠나, 재밌는게 있다. 이런걸 직쏘(jigsaw) 퍼즐이라고 하는 거 맞지? 1000 piece 조각 맞추기!


그림의 제목은 "스패니쉬 댄스". 이 그림을 보고 아기공룡은 "누드화 아냐 이거 이거", 늦게 온 디온은 예의 그 너털? 웃음의 반응을 보인다. 네오의 변명은 "그냥 익숙한 그림밖에 없어서 처음 보는 걸 고른 것 뿐"이라지만, 뭐 어쩌겠는가. 그렇다는데. 여하튼,

우리는 저 상자를 열지 말았어야 했다...
이사를 마치고 배불리 먹은 다음 데반이 저 상자를 열고, 뒤집은 순간, 그곳에 있던 빈집 장투들, 디온, 양군의 일요일은 끝났다. 그리고 몇 사람의 월요일도 끝났다. 빈집 사람들은 아주 뛰어난 근성을 가졌거나, 아님 위험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아닐까 한다. 이 사람들... 그 동안 어떻게 살아왔을까? 외로웠던게 아닐까?

 아래 사진은 월요일 저녁까지 끈덕지게 매달려 결국 마지막 조각까지 맞춘, "살아남은" 넘들의 만족한 모습.

 [사진은 초상권, 프라이버시권 침해로 인해 삭제되었삼. 저자는 알권리를 주장하나... 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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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 내가 생각해도 글쓰는게 산만하다. 내 정신이 요즘 극도로 산만해서 (바다만하면 좋겠다) 그렇기도 하지만, 지금 막 여자방의 문이 열리고 두 명의 새끼 냥이가 튀어 나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역시 빈집은 블로그 쓰기에 좋은 여건은 아니다. 지금도 둘이 서로 뛰어다니며 노는데 "다다다다다다닥, 두두두두두두두" 소리가 울린다. 빈집 마루에서 글을 쓴다는 건 대단한 결의, 굳은 심지를 갖지 않고는 힘든것 같다.


이제 빈집을 동물 식구들을 빼곤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들이 미치는 영향은 크다. 경제적으로 큰 기여를 하며 다른 식구들을 후원하고 있는 8살 "강아지" 복돌이, 여전히 호기심어린 얼굴이지만 종종 권태로운 모습을 보여주시는, 요즘 한참 발정나서 새끼 고양이를 귀찮게 하고 있는 "러니", 사람이 먹던, 개가 먹던, 큰 고양이가 먹던 가리지 않고 지나다 걸리는 모든 음식에 손을 뻗치는 아기 고양이 "멍니" (먹니? 멍미? 뭥미? 어떻게 불러도 상관없다.), 그리고 어릴때부터 큰 일을 겪어 아직도 회복중인, 사람들이 그 미모에 빠져 있는 새끼 암컷 냥이 "동글이".

짐작하겠지만, 발정난 "러니"는 유일한 암컷 냥이 "동글이"를 집요하게 따라다닌다. 덩치 차이가 나서 도저히 사이즈가 안나오는데도 한없이 허리를 구부려 어떻게든 대보려는 러니. 동글이의 목덜미를 물고 자꾸 으슥한, 방해 덜 받는 곳으로 데려가려 하는 속이 컴컴한 넘 되겠다. 동글이는 러니가 목덜미를 물고 있어도 지가 가고 싶은데로 한발 한발 내닫고, 그러면 러니는 "좀 가자 좀" 그러듯이 응양응양~ 거린다. 동글이도 러니가 싫은 것 같진 않은데 너무 아프게 물고 그러면 소리를 지른다. 그러면 어디선가 누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나타나는 빈집 장투들이 동글이를 아동 성학대범에게서 구출해 온다. (이렇게 말했다 해서 혹 러니를 미워하진 말아주세효~ ㅋㅋ)

둘이 옥신각신하고 있을때 또 한쪽에선 다른 두 넘들이 소란을 핀다. 복돌이와 멍니. 복돌이는 멍니만 나타나면 완전 빠져든다. 시선 고정, 인간의 언어 해석 중추 마비, 온 몸은 흥분으로 부들부들 떨려오고, 늙어가지만 기운은 펄펄한 복돌이는 계속 멍니를 따라다니며 귀찮게 한다. 가끔 들이 받고 코로 찍는 것만 빼면 냅두려고 했는데 언제부턴가 멍니가 복돌이만 나오면 얼어붙고 움츠려드는 것 같아서 복돌이를 말리기 시작했다. 멍니는 복돌이와 떨어져 있거나 방에 들어가 있을땐 얼마나 개구쟁이인지 모른다.

이걸 쓰고 있는데 복돌이가 내게 테러를 가했다. 자기에게 좋지 않은 글을 쓴다고 생각한걸까? 느낀거니? 화장실로 들어가 오줌을 싸려는 건 좋은데 그 방향이 안쪽이 아닌 바깥, 마루쪽을 향했다. 마루에서 키보드를 두들기던 나는 그 모습, 노란 물줄기를 생생하게 볼 수 밖에 없었고, 그 물줄기가 화장실 밖으로 나와 내가 벗어둔 양말을 적시는 것을 보게 된다. 복돌이가 내 반응을 보고 뭔가 있다 느꼈는지 내 옆으로 와서 측은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내 손을 혀로 핥는다. 복돌이의 지각생 손 사랑은 나중에 쓰기로 하자. -_- 아 계속 쳐다보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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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시간이 10시 반. 아침밥을 할 시간이다. 요즘 빈집의 아침은 지각생이 책임지고 있다. 푸하하. 그래봤자 할 수 있는 요리의 수가 손가락으로 꼽을 만해서 크게 보면 재탕의 재탕의 반복이지만, 어쨌든 이젠 "요리사 지"라는 칭호를 얻을 만큼 성장했다. 빈집의 최대 기적 중 하나를 꼽는다면 "지각생의 요리 각성"이 포함될 수 있겠다. 지각생의 요리 모험성장기도 나중에 쓰기로 하자. 어제 간만에 11시 전에 아침밥을 다 해먹었는데 오늘은 늦겠다. 뭘 할지부터 다시 고민해야지.

그리고, 맨 처음에 한 말이 이제서야 생각나는데 벌써 목요일이라니 큰일났다. 내일은 정보통신활동가 세미나가 있는데 이번 주는 어째 준비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확인도 못했고, 사람들 꼬드기는 것도 거의 안했다. 그리고 나면 주말, 빈집의 주말은 숨가쁘게 즐겁거나 빡세거나 둘 다다. 간만에 쓰려니까 끝내기가 어렵네. 아침 먹고 다시 쓰던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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