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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함께 43 호
민주노동당 - 정치적 독립성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 김인식
10월 4일 우익의 대규모 시위와 21일 헌재의 수도 이전 위헌 판결을 계기로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던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독립성이 흔들리고 있다.
“한나라당은 수구 세력의 중심이고, 열린우리당은 동요하고 있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천영세 민주노동당 원내대표)
이 물음에 대한 우려스러운 첫 답변은 11월 1일 당 최고위원회에 제출된 공계진 사무부총장의 ‘최근 정국 현안에 대한 대응’ 문서였다. 그는 열린우리당과의 “대승적 협력” 필요성을 피력했다.
“당은 수구 세력과의 투쟁으로 ‘열린당 2중대’라는 소리를 듣는 한이 있더라도 역사 발전의 견지에서 ‘개혁 입법의 현실화’,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대승적 행보를 해야 할 것임.”
그의 주장에는 “역사적인 사건[이자] 발전”인 열린우리당의 ‘보안법 폐지 형법 보완’이 우파의 공세 때문에 후퇴할지도 모른다는 초조감과 불안감이 짙게 배어 있다.
김창현 사무총장도 그 문서의 “표현은 과하지만 전략 기조에 대해서는 동의”했다(<오마이뉴스> 11월 5일치). “수구 보수 세력에 대한 화력을 집중하지 않으면 우리는 한발자욱도 전진할 수 없다는 위기감”(www.kdlp.org) 때문이다.
논리는 간단하다. 한나라당과 우익은 너무 끔찍하고, 열린우리당은 슬금슬금 뒷걸음질치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노동당이 열린우리당을 비판하면 한나라당을 이롭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열린우리당과의 “대승적 협력”을 통해 “열린[우리]당의 ‘우향우’를 저지하고 ‘좌향좌’ 방향 유지를 견인”해야 한다는 공계진 부총장의 주장은 현실 정치의 시험대를 통과할 수 없다.
열린우리당은 모순된 계급 기반 때문에 그 당의 정책은 늘 혼란스럽고 갈팡질팡한다. 피억압 대중을 붙잡기 위해 민주노동당과 ‘공조’하기도 하지만, 자본가 계급을 안심시키기 위해 한나라당에게 추파를 던지기도 하는 등 쉼없이 동요한다.
열린우리당의 개혁적 강령은 언제나 문서로만 존재했다. 열린우리당은 노동자 대중을 위한 진지한 사회개혁을 이룬 적도, 그렇게 할 능력도 없다.
자본가 계급이 그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은행, 증권 시장, 언론, 고위 관료, 사법부 등 권력의 요새들이 그들의 손 안에 있다.
게다가 경제 위기의 심화 때문에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노동자 대중에게 새로운 개혁들을 제공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한때 주었던 것조차 빼앗아야 할 상황에 놓여 있다. 공무원 노동자들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과 비정규직 법안 개악을 보라.
따라서 우파의 반동 앞에서 열린우리당이 사실상 항복하고 대중을 배신하는 것은 결코 우연적이거나 일시적인 이유 탓이 아니다.
10·31 지자체 보궐 선거 패배는 시작일 뿐이다. 열린우리당의 위기는 더욱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우파의 공세가 강화되는 상황 때문에 민주노동당 안에서 이른바 “대승적 협력”론은 쉽게 수그러들 것 같지 않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이 열린우리당의 옷자락에 매달리는 것은, 민주노동당이 열린우리당의 불성실한 동맹(이른바 ‘2중대’)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자기패배적인 모토일 뿐이다.
민주노동당의 성공은 세력 균형을 두 주요 정당의 지배로부터 우리 운동 쪽으로 옮겨놓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임박한 산업 전선의 전투는 이를 위한 중요한 디딤돌이다.
노동자 저항은 노무현 정부만이 아니라 한나라당에게도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게다가, 한나라당이 세력 균형의 절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우파의 준동에 대한 대중적 반감 때문에 한나라당의 지지율은 한 달 전보다 3.3퍼센트 하락했다(<내일신문> 11월 9일치).
11월 5일 민주노동당 전국 지역 대표자 연석회의는 정부의 노동자 운동 탄압에 맞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가장 강력한 대정부, 대여당 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심화되는 사회적 위기는 대담하고 단호한 행동을 요구한다. 민주노동당은 이를 행동으로 증명하면서 정치적 신뢰를 획득해야 한다.
다함께 43 호
노동운동 위기와 대안 논쟁 - 전지윤
요즘 박승옥(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원), 박태주(한국노동교육원 교수), 김형기(경북대 교수) 등이 노동운동을 비판하고 사회적 타협을 주장하면서 노동운동 노선 논쟁에 불을 지피려 하고 있다. 이들 사이에는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두드러진다.
이들은 “왕자병 걸린 노동운동”이 “‘멸망으로 가는 완행열차’를 탄 채 졸고 있다”(박승옥)고 노동운동의 위기를 말한다. 낮은 노조 조직율도 위기의 증거로 제시된다.
그러나 12퍼센트의 노조 조직율 자체는 우파 노조인 한국노총 조합원 수는 줄었지만 좌파 노조인 민주노총 조합원은 9년 만에 20만 명이나 증가했다는 사실을 보여 주지 않는다. 또, 1998년부터 해마다 거의 갑절로 늘어나고 있는 파업건수는 사뭇 다른 그림을 보여 준다.
물론 한국 노동운동이 급속히 성장하면서, 그와 동시에 투쟁을 통제·회피하는 노조관료주의도 발전해 왔다. 이 때문에 IMF 이후 노동운동이 구조조정에 더 효과적으로 맞서지 못했고, 전투적 조합주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노동운동이 강력하지만, 그와 동시에 정치적 위기, 지도력의 위기를 겪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1998년 민주노총 지도부가 노사정위에서 정리해고를 합의한 것, IMF 이후 ‘총파업’이 몇 차례나 무산되며 민주노총이 “양치기 소년”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 올해 보건의료노조 지도부가 지부 투쟁을 가로막는 산별 합의를 한 것 등은 모두 이런 위기의 징후이다.
하지만 이들이 내세우는 위기의 주된 근거는 다른 곳에 있다. 이들은 중심부(대기업·정규직)와 주변부(중소기업·비정규직)로 “노동 내부의 양극화”(박태주)를 지적하고 노동운동이 “대기업 정규직 남성 노동자 중심”의 “또 다른 가진 소수”(박승옥)의 운동이 됐다며 “노동운동의 정당성과 도덕성을 근거지에서부터 허물어뜨릴 … 정당성의 위기”를 말한다.
중심부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의 향상이 1987년 이후 민주노조 건설과 투쟁의 성과라는 점, 주변부 노동자의 열악한 상황의 책임과 원인이 정부와 자본의 신자유주의 공격과 분열지배 정책에 있다는 점, 그나마 대기업의 조직된 노동자들의 선도적 투쟁이 전체 노동자들의 조건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는 점 등은 이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따라서 이들은 주변부 노동자들도 민주노조 건설과 투쟁에 나서도록 중심부 노동자가 적극 고무하고 연대해야 한다는 대안을 내놓지 않는다.
물론 박승옥은 “한국 노동운동이 … 비정규직 문제, 연소 여성노동자 문제, 이주노동자 문제를 자기의 문제로 끌어안고 나아가야[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로부터 나오는 실천적 대안은 연대 투쟁이 아니다. 이들은 다만 ‘노동 내부의 양극화’의 책임과 원인이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임금’과 ‘투쟁’에 있는 양 몰아붙이며 파업·투쟁 ‘자제’와 “연대 임금” 등 ‘양보’를 말한다.
“노동운동은 … 이제 폭력 행동도 그만두어야 한다. … 파업에 대해서도 신중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박승옥)
“소모적인 파업 투쟁은 … 노동계급의 힘을 약화시킨다.”(김형기)
“대기업 노동자들의 양보는 더 큰 단결을 위한 전술적 후퇴인 것이다.”(박태주)
이런 대안이 일리가 있으려면 중심부 노동자들의 투쟁은 주변부 노동자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반면, 중심부 노동자들의 양보는 주변부 노동자들의 조건을 개선해야 한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모두 현실과 어긋난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소장에 따르면 대기업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과 비정규직 증가는 아무런 상관 관계가 없었다. 오히려 노조 조직률이 높아질수록 비정규직이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비정규직 고용에 관한 6가지 신화>).
실제로, 대기업 노조가 높은 수준으로 임단협을 타결하면 중소·하청업체도 그 수준에 맞춰야 하는 압력을 받는다. 그래서 보수 언론이 대기업 노조 파업에 게거품을 무는 것이다. 반면, “대공장 노조가 양보[하면] … 상대적 비교치가 낮아진 중소영세기업 비정규 미조직 노동자들의 임금은 더욱 정체되거나 삭감될 뿐이다.”(하부영, ‘대기업 노조의 자기 성찰과 모색’, ≪노동사회≫ 10월호.)
이들의 대체적 결론은 대기업 노조가 투쟁을 멈추고 “제도적 참여”(박승옥), “사회적 대타협”(박태주), “역사적인 대타협”(김형기)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박태주는 “노동운동이 공장의 담, 기업의 울타리를 벗어”나 “한국 경제의 어려움”을 돌아보라고 주문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거대한 물결을 애써 외면한 채 … 살 수는 없”(박태주)으니 “노동자들이 …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김형기)는 것이다.
하지만 1998년 민주노총이 ‘국민경제의 이익과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 노사정위에 들어가 정리해고와 근로자파견제를 합의한 결과는 사회적 양극화와 비정규직의 확대였다.
이러한 ‘양극화’와 ‘비정규직 문제’를 들어서 ‘노동운동의 위기’를 말하던 이들이 바로 그 문제들을 더욱 심화시킬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위한 ‘역사적 타협’을 말하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나아가 박태주는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파견법 철폐가 실현 가능한 이야기냐”고 말한다.
올해 금호타이어 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조 건설을 고무하고 함께 싸워 정규직화를 쟁취했다. 서울대병원 노동자들은 산별노조관료들의 타협과 통제를 거슬러 투쟁해 승리했다. 노동운동이 “기업의 울타리를 벗어나” 계급적 연대로 나아가고 경제적 요구와 정치적 요구를 결합해서 강력히 투쟁한다는 대안은 이런 투쟁 속에서 나올 것이다.
다함께 43 호
아라파트 사망과 팔레스타인의 저항 - 한규환
지난 11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수반인 야세르 아라파트가 사망했다. 슬프게도, 예정된 그의 장례식은 이스라엘의 압력대로 진행되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현재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그는 1958년 쿠웨이트에서 파타 운동을 창설하면서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1988년에는 무장투쟁 포기를 선언하고 이스라엘 국가를 인정하면서 제국주의와의 타협의 길로 들어선다. 1996년 자치정부의 수반으로 취임한 이래 그는 여느 아랍세계 지배자들과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여 왔다.
그가 오슬로협정의 세부사항을 거의 다 이행하는 데 필사적인 동안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생활수준은 극적으로 나빠졌고, 이스라엘의 학살 만행과 정착촌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가자지구의 실업률은 70퍼센트에 달한다. 2000년 9월 28일부터 2004년 9월 25일까지 이스라엘이 죽인 팔레스타인 사람의 수는 3천3백34명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아라파트는 이스라엘과 협상하는 데만 매달리고 저항운동을 통제해 왔다. 필 마셜에 따르면, “아라파트는 자신의 정력을 대부분 팔레스타인 활동가들을 통제하고 제어하는 데 쏟았다. 2002년 전쟁 전까지 아라파트의 군대가 팔레스타인 청년들과 충돌하는 데 소모한 시간이 점령군과 충돌하는 데 소모한 시간보다 훨씬 많았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동정을 받아 왔는데, 이스라엘이 언제나 그를 제거하겠다고 협박해 왔기 때문이다.
차기 권력주자로 아바스와 아흐마드 쿠레이 두 전 총리가 물망에 오르고 있다. 그러나 이 둘 다 팔레스타인 바깥으로부터의―즉, 이스라엘과 미국과 아랍의 지배자들의―지지를 빼면, 평범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겐 분노의 대상이다.
이스라엘 군부는 아리엘 샤론에게 아바스 전 총리와 대화를 시작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아바스는 카타르의 반동적 지배자들의 고문 구실을 한 기업인 출신이다. 파타 운동의 우파를 대변하고 있던 그는 제국과의 타협책인 1993년 오슬로협정 과정에서 결정적 구실을 했다.
쿠레이 역시 부패하긴 마찬가지다. 심지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을 갈갈이 찢어 놓고 있는 이스라엘의 분리장벽 건설에 시멘트를 대주는 회사가 바로 그의 소유였다.
1936년 총파업 때 팔레스타인 시인 아부 살마는 이런 시를 남겼다. “왕들이 이토록 무기력하다니 창피하도다. 맹세코, 왕관이 신발짝만도 못하구나. 우리의 고국을 지키고 그 상처를 치료할 사람들은 바로 우리 자신이라네.” 이것이 아라파트와 그가 이끄는 자치정부의 모습이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파타의 무능과 부패가 나날이 드러나는 것과 반대로, 새로운 세대의 전투성과 급진성은 이미 아라파트를 정치적 식물인간 상태로 만들어 놓고 있었다.
아바스와 쿠레이가 차기 정부의 수반이 된다 하더라도 이들의 운신의 폭은 매우 제한적일 것이다. 이스라엘이 강요하는 타협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강력한 저항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역할이 그들을 기다릴 것이다. 이들보다 약간만 더 ‘비타협적인 인물’들이 권력을 승계할라 치면 그들은 이스라엘에 의해 ‘테러의 수괴’로 몰려 박해받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심지어 하마스처럼 아라파트를 싫어하는 조직이 행한 폭탄테러조차 아라파트의 지시라며 그를 제거하겠다고 협박했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위험한 도박이라는 것을 이스라엘은 알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아라파트의 명망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저항을 통제하는 안전판 구실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라파트의 사망은 이스라엘에게는 하나의 기회일 수 있다. 아바스와 쿠레이 같은 더 타협적인 인물들을 통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훨씬 더 구제불능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전판의 제거는 불안정을 증폭시킬 수도 있다. 아라파트가 가지고 있던 명망 덕분에 간신히 통제를 유지하고 있던 저항이 훨씬 급진화할 수도 있다.
이미 자치정부와 파타의 부패와 무능으로부터 하마스와 같은 급진적 저항운동이 이득을 보고 있다. 특히 하마스는 가자지구에서 절대적인 통제력을 가지고 있다. 이들의 성장은 파타의 몰락을 가속시킬 것이다.
가자지구로부터 샤론의 일방적 철수정책은 모종의 유화 제스처가 아니다. 이것은 점령을 이스라엘에 우호적으로 만들기 위한 연막임과 동시에 요르단강 서안지방에 대한 통제력 강화를 노린 것이다.
재선된 부시는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똑같이 되풀이했다. 그러나 그가 말한 ‘독립’이 진정 제 구실 하는 팔레스타인 국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샤론과 부시는 팔레스타인이 옛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반투스탄이나 미국의 인디언보호구역쯤으로 존재하길 바란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학살은 계속될 것이고, 팔레스타인의 마을은 철거될 것이고, 그들의 올리브나무는 뿌리뽑힐 것이라는 점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저항은 격렬하지만 그들만의 힘으로 이스라엘과 미국에 승리할 수는 없다. 그것은 중동에 대한 제국의 질서 전체를 변화시켜야만 가능하다.
요르단강 서안지방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활동가 지아드는 이 점을 지적하며 이렇게 말한다. “이라크 전쟁의 경험은 미국의 제국주의가 얼마나 상처받기 쉬운지 보여 주었다. 만약 미국이 이라크에서 패배한다면, 그것은 이스라엘을 열렬히 지지하는 공화당의 신보수주의자들만의 패배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미국 지배계급 전체의 패배다. 더 중요하게 세계 유일 초강대국의 패배는 수많은 중동 사람들과 전 세계를 가로질러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진정한 지구적 운동을 건설하는데 영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팔루자의 운명은 팔레스타인의 것이기도 하다.
다함께 43 호
우루과이 대선 결과 - 라틴아메리카에 부는 “좌파 정권” 바람 - 이수현
지난 10월 31일 우루과이 대통령 선거에서 범좌파전선(FA)의 타바레 바스케스가 52퍼센트의 득표율로 승리했다.
그러자 수도 몬테비데오를 비롯한 여러 도시들에서는 50만 명 이상의 노동자와 학생, 청년과 노인 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바스케스의 승리를 축하했다. 인구 약 3백40만 명의 나라에서 말이다.
이번 대선 결과는 집권 콜로라도당 소속 대통령 호르헤 바트예의 친미·신자유주의 정권에 대한 심판이었다.
바트예 정부에서 내무장관을 지냈던 콜로라도당 대선 후보 기예르모 스털링의 득표율은 겨우 10퍼센트였다.
1825년 독립 이후 블랑코당과 함께 1백70여 년 동안 우루과이 주류 정치를 계속 지배해 온 콜로라도당의 역사에서 가장 낮은 득표였다.
바트예는 라틴아메리카에서 미국의 조지 W 부시를 가장 충실하게 지지한 지배자 중 한 명이었다.
국민의 90퍼센트가 반대한 이라크 전쟁을 지지했고, 아이티에 평화유지군을 파병했으며, 미국의 쿠바 봉쇄를 지지했다.
지난해에는 국영 전화회사와 석유회사를 사유화해 다국적기업들에 넘기려다가 국민투표에서 패배해 중단해야 했다.
이번 대선에서도 물 사유화 정책에 대한 국민투표가 동시에 실시됐으나 우루과이 국민들은 사유화를 거부했다.
한때 “남미의 스위스”로 불렸던 복지국가 우루과이 민중의 삶은 지난 10여 년 간의 경제적 구조조정과 신자유주의 정책들 때문에 피폐해졌다.
특히 2001년 말부터 시작된 아르헨티나 경제 위기의 영향으로 우루과이는 수출 부진, 생산 감소, 아르헨티나 관광객 급감, 금리 및 환율 불안 등으로 타격을 받았다.
2002년 실업률은 사상 최고 수준인 23퍼센트까지 치솟았고 실질임금은 대폭 감소했으며 페소화 가치도 폭락했다. 그 결과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약 10퍼센트 감소했다.
1999년 이후 빈곤층이 갑절 이상 증가해 올해에는 국민의 거의 40퍼센트가 빈곤층이며 도시 거주 아동들의 절반 이상이 빈곤층 자녀다.
1999년부터 2003년까지 몬테비데오와 내륙 여러 도시의 판자촌들이 연평균 10퍼센트씩 증가했고, 경제적 이유로 인한 해외 이주도 해마다 3만 명씩 증가했는데 이는 1973∼85년의 군사 독재 시절과 맞먹는 수준이었다.
영양실조와 굶주림에서 비롯한 영유아 사망률도 기록적인 수치로 증가했다. 한때 근절됐다고 생각됐던 결핵 같은 질병들이 다시 나타났고 환경오염과 환경 관련 질병들이 전국 각지로 널리 퍼졌다.
이런 사회적·경제적 고통, 그리고 이에 대한 불만과 분노 때문에 이번 대선에서 집권당이 참패하고 FA의 바스케스가 승리한 것이다.
FA는 1971년에 사회당과 공산당이 처음 결성했다. 그 뒤 1989년에 옛 투파마로스 ― 1963년 창설된 도시 게릴라 단체 ‘민족해방운동’의 조직원들 ― 출신자들과 기독교민주당 같은 부르주아 정치세력의 일부도 FA에 가담했다.
이러한 이질적 정치세력들의 연합체 FA의 정치적 미래가 어떨지는 분명치 않다. FA의 강령은 매우 온건하며, 무슨 대단한 사회적·정치적 변화를 제시한 것도 아니다.
지난해 12월 FA는 평균 가계생계비의 겨우 10퍼센트에 불과한 현행 최저생계비를 인상하자는 제안을 거부했고, 우루과이 수출소득의 35퍼센트나 되는 외채를 계속 상환하겠다고 약속했다.
심지어 군사독재 시절 고문과 살인을 저지른 자들을 사면한다는 전임 정부들의 방침을 고수하겠다고도 약속했다.
이번 선거가 끝난 뒤 바스케스는 우파 사회민주주의 경제학자이자 상원의원인 다닐로 아스토리를 새 정부의 재무장관으로 임명했다.
<로이터>가 “월스트리트에서 널리 존경받는” 인물이라고 묘사한 아스토리는 최근 인터뷰에서 “오늘날의 세계에서 IMF와 결별하고 [외]채 상환을 거부하는 것은 고립을 자초하는 것이며 일종의 아프리카화로 나아가는 것이다.” 하고 말했다.
그는 또 우루과이 국영기업들과 외국 자본 간의 합작회사 설립을 지원하고 우루과이 조직 노동자들의 다수를 차지하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고용안정망 제거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바스케스와 아스토리는 브라질 노동자당(PT) 정부가 우루과이 새 정부의 모델이라고 밝혔다.
룰라의 PT 정부는 국제 금융기구들의 이익을 보장해 주기 위해 긴축 정책을 집행해 왔고, 심지어 야당 시절 비판했던 전임 카르도주 정부의 정책들보다 더 나아간 경우도 있을 정도다.
바스케스는 쿠바와의 외교 관계를 재건하고, 브라질·아르헨티나·파라과이와의 무역블록인 메르코수르(남미공동시장)을 통한 지역적 유대를 강화하며, 미주자유무역협정(FTAA)과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가 아이티에서 평화유지군을 철수시킬지 어떨지는 불확실하다.
그럼에도 우루과이에서 FA가 승리하고 바스케스 정권이 등장한 것은 라틴아메리카에서 신자유주의가 파탄났음을 알리는 또 하나의 증거다.
라틴아메리카에서 1980∼90년대는 이른바 “워싱턴 컨센서스”로 불리는 신자유주의의 전성기였다. 당시 라틴아메리카 각국 정부들은 공기업과 공공 서비스 사유화, 긴축 재정, 각종 규제 완화 등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 때문에 빈곤과 불평등이 엄청나게 심각해져 보통 사람들의 삶은 점점 더 고통스러워졌다. 그래서 1990년대 말 이후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좌파 정권이 잇따라 등장했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에콰도르의 루시오 구티에레스, 아르헨티나의 네스토르 키르히너, 브라질의 룰라, 볼리비아의 카를로스 메사 등이 지난 몇 년 사이에 선거나 민중 봉기를 통해 집권한 좌파 정권의 수장들이다. 여기에 바스케스 정권이 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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