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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4/11/23
    노동영화제 - '점거하라, 저항하라, 생산하라!' (the take)
    하이에나새끼
  2. 2004/11/23
    노동영화제 - 볼리바리안 혁명 : 베네주엘라 민중의 삶과 투쟁
    하이에나새끼
  3. 2004/11/23
    노동영화제 - 계속된다.(2)
    하이에나새끼
  4. 2004/11/23
    2004 노동자대회,전공노 파업출정식을 다녀와서
    하이에나새끼

노동영화제 - '점거하라, 저항하라, 생산하라!' (the take)

* 이 글은 진보네님의 [트랙 팩 03 : 노동영화제] 에 관련된 글입니다.

이번 노동영화제의 폐막작인 '점거하라, 저항하라, 생산하라' (the take) 는 이번 노동영화제의 모토이기도 하다. 자본주의적 세계화에 맞서서 새로운 대안을 창출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경기악화로 인해 자본가들이 임금을 체불한채 폐쇄하고 떠나버린 버려진 공장을 노동자들이 '점거' 하고 경영진없이 노동자들의 합의와 원칙에 따라 생산을 시작하는 모습들에 대한 다큐멘터리 이다.


'노 로고' 의 저자이며 반세계화 운동 진영의 주요 이론가이기도 한 나오미 클라인은 신자유주의적 생산양식을 대체할 대안을 찾기위해서 캐나다의 미디어 운동가인 아비 루이스와 함께 아르헨티나로 향한다. 아르헨티나는 신자유주의 경제질서가 망쳐버린 대표적 국가가운데 하나이며, 동시에 버려진 공장을 점거하고 생산하는 공장점거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아르헨티나는 원래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가운데 하나였다. 그러한 나라가 오늘날의 피폐한 경제위기를 맞이한것을 두고 주류 언론에서는 '지나친 노동자투쟁과 포퓰리즘의 결과' 라며 왜곡 선전해왔다. 그러나 진실은 그렇지않다. 1940년대말까지 아르헨티나 경제는 육류·식료품 수출로 호황을 누리고 있었지만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유럽의 농업이 되살아나고 미국의 농산품이 유럽으로 수출되면서 주된 타격을 받았다. 더불어 산업의 성장도 지지부진했다. 친노동정당 이라는 일반적인 평가와는 달리, 페론주의 정당(정의당)은 경제 위기에 직면하자 노동자들의 임금을 동결하고 외국 투자자들에게 시장을 개방했지만 그 성과는 일시적이었다. 페론은 노동자들을 공격하면서 저항에 부딪혔고, 권위주의적 정책으로 대중의 미움을 받았다. 결국 위기 관리 능력 부재로 지배 계급의 불신과 불만을 받아 가다가 1955년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다.


영화속에서 전 대통령 카를로스 메넴은 매우 우스꽝스러운, 자본가계급을 대변하는 독재자의 이미지로 등장한다. 그러나 그 역시 페론주의자 출신으로, 89년 집권당시 국영기업들을 대부분 사기업화했을 뿐 아니라 일자리를 대폭 줄였고, 파업 노동자들을 잔혹하게 탄압했다. 이 당시 아르헨티나는 IMF가 권고한 정책들인 규제 완화·민영화·노동 유연화를 적극 도입했고, 그래서 세계 지배자들로부터 '아르헨티나가 IMF의 모범생' 이라는 찬사를 받도록 만들었다.


모범생의 신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1991년 아르헨티나는 페소화를 달러화에 연동시키는 페그제를 실시해 아르헨티나 경제를 국제 금융시장의 리듬에 더 종속시켰다. 파국은 1997년 동아시아 위기 때 찾아왔다. 동아시아에서 금융 공황이 발생하자 아르헨티나에 들어온 해외 자본들이 서둘러 빠져나갔다.
당시 대통령 데 라 루아는 경제위기가 찾아오자 모든 은행계좌를 동결함으로써 중간계급과 노동계급의 예금을 사실상 몰수했지만, 그런 와중에 국제투기자본은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하룻밤에 몇억달러씩을 빼내갔다. 페소화가 달러화와 연동돼 있어서 아르헨티나가 입은 타격은 남미 경제에서 더욱 심각했다. 소위 경제 기적을 일구었다는 바로 그 신자유주의 정책이 경제 기적을 하룻밤 사이에 신기루로 만들고 아르헨티나 경제를 심각하고도 장기적인 불황에 빠뜨렸다. 여기에 물 사유화를 비롯한 신자유주의 정책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고통속으로 밀어넣었다.


당연히 저항이 뒤따랐다. 화이트칼라 노동자들과 부에노스아이레스 인근의 하층 중간계급 사람들이 도심으로 몰려나와 실직한 육체 노동자들과 함께 대통령궁을 포위했다. 이틀 동안 경찰과 유혈낭자한 충돌이 벌어져 약 30명이 사망한끝에 결국 데 라 루아는 헬기를 타고 도망쳤다. 아르헨티나는 그 뒤로도 4주 동안 대통령이 네번이나 바뀌는 혼란끝에 두알데가 겨우 집권에 성공했다. 그러나 2003년 2월 1일 두알데 정권이 예금 인출 제한 조치를 계속 유지하려고 하자 아르헨티나 주요 도시들에서는 다시 대규모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생필품을 살 돈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은 예금 인출 제한 조치가 위헌이라는 대법원의 결정을 반겼지만, 정부는 대법원의 결정을 무시했다. 그러자 시위대는 '다 꺼져버려라', '우리 돈을 돌려 달라' 고 외치면서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에 절망만 있는것은 아니다. 아르헨티나는 신자유주의 파산의 결정판이면서 또한 신자유주의의 대안을 보여 주는 뚜렷한 사례이기도 하다. 1990년대에 아르헨티나 정부가 전면적인 사기업화를 추진하자 실업자들이 폭증했는데, 그러면서도 사회보장 혜택을 전혀 받지 못했다. 실업 노동자들은 대량해고에 맞서 전투적 대중운동인 피케테로스 운동을 건설했다. 경제 위기 때문에 지금 실업자 수는 네 명 가운데 한 명 이상의 수준이다. 영화속에 등장한 공장점거운동 역시 실업자운동중 하나이다.


공장점거운동은 폐쇄된 공장을 노동자들이 점거하고 자체적으로 생산에 돌입하는 운동이다. 브룩만 양복공장에서 일하던 몇십명의 여성 노동자들이 처음으로 시도한 이 운동은 자논 세라믹등 몇몇 모범적인 사례들을 선보이면서 아르헨티나 민중들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역민들은 '전 경영진보다 더 근면해지고 높은 품질에 가격도 낮아졌다' 며 공장점거운동에 돌입한 노동자들에 대해 높은 지지를 보내고 있다. 점거한 공장에 대해 경찰의 공격이 임박해지면 많은 사람들이 연대하러 오기도 한다. 공장점거운동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맞서는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공장점거운동은 한계도 가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경제적인 상황개선을 우선시하는 운동이다보니 권력에 도전하지 못하고 있으며, 때문에 법원으로 국회로, 자신들이 공장을 운영할수 있도록 해달라고 '애원' 하러 다녀야 한다. 당연히 법관이나 국회의 권력자들은 대부분 그런 요구를 묵살하며, 오히려 사유재산을 침해하지 말고 공장에서 퇴거하라고 명령한다. 그들은 자본가의 편이지 노동자의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점거된 공장은 해당 노동자들이 합의한 원칙에 따라 운영되는데, 대부분 전 경영진을 배격하고 동일임금을 적용하지만 어떤곳은 전 경영진과 협력하며 동일하지 못한 임금을 배분하면서 운영되는곳도 있다. 이러한 한계점들은 전체사회적인 변화를 추구하지 못하는 운동방식들 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모습들이 아닌가 한다.


영화의 주요한축 가운데 또다른 하나는 노동운동을 하는 여성과 그 어머니로 대변되는 아르헨티나 대통령선거를 바라보는 민중들의 입장이다.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아르헨티나에 끌어들인 전대통령 카를로스 메넴의 재출마와 페론주의당 대통령 후보인 키르츠네르, 양자에 대해서 마티 라는 이름의 노동운동가 여성은 둘다 똑같은 놈들이고 그 어떤 '구세주' 도 우리에게는 필요하지 않으며 스스로의 힘을 믿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직 많은 민중들은 그녀의 어머니처럼 페론주의에 대해서 완전히 기대를 접고 있지는 않은것처럼 보인다. 메넴은 거리를 경찰로 채워 치안과 질서를 회복하고 사유재산을 보호하겠다고 큰 소리치며 결선투표까지 진출하지만, 결국 경제상황의 악화를 견디지 못한 대중들의 분노의 목소리에 밀려 기권하게 된다.


지금 키르츠네르는 아르헨티나를 정치적으로 안정시키기 위해서 IMF와 더 좋은 조건으로 협상해야 하고, 노조 관료들에게 잘 보여야 하며, 좌파들에게 어떤 상징적 제스처를 취해야 하고, 실업자들의 불만을 조금이나마 들어주어야 한다는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가 실제로 한 일이라고는 '고용 창출 계획' 을 통해 실업수당을 제공하고, 이를 페론주의 조직과 피케테로 조직들이 분배하게 하는 정도의 것이 전부다. 그런 태도 덕분에 그는 지난해 선거 이후 잠시나마 안정을 누릴 수 있었고 좀 유약한 일부 좌파들한테서 약간의 지지를 끌어낼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의 개혁도 립서비스에 지나지 않을것이다.


키르츠네르나 페론주의당 따위에게 자신의 미래를 맡겨서는 제대로 된 어떤 대안도 나올수 없다. 나오미 클라인은 마치 '대안찾기' 에 너무 골몰한 나머지 저항하는 모습들을 의도적으로 배재하고 점거 생산 이라는 양식에 촛점을 맞춘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저항하지 않고 무슨 대안이 나온단 말인가? '점거하라-저항하라-생산하라' 가 아니라, '저항하라-점거하라-생산하라' 가 되어야 할것이다. 법관이나 국회에 애원하는 모습이 아니라, 아르헨티나 노동자들 자신의 조직된 힘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전체사회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저항하고 점거하고 생산하는' 운동이 될때 그것이 진정한 우리의 대안이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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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영화제 - 볼리바리안 혁명 : 베네주엘라 민중의 삶과 투쟁

* 이 글은 진보네님의 [트랙 팩 03 : 노동영화제] 에 관련된 글입니다.

서울 올라온뒤 노동영화제는 빠지지 않고 챙기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만 매년 1회씩 열리는 영화제에서 보는 영화의 편수는 고작 하루참가, 1~2 편이 전부다 보니 도저히 갔다왔다는 실감이 안 났었다. 올해 11월은 예년보다 더 바쁜 달이었다. 온라인에서 주절거리기를 주로하고 집회가 있으면 참여보다는 구경을 주로하면서도 '이정도도 어디야' 하며 자기 합리화에 능숙했던 예년과는 달리 올해는 나름대로 이런저런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에, 영화제 같은거 쫓아다닐 시간은 더 없을거라고 지례짐작을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하루 참여에 1~2 편을 보는것이 고작이었던 예년에 비해 올해는 날짜수로 3일에, 7편을 보는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아무래도 내게 있어서는 '시간없다' 라는 말이 핑계에 지나지 않는것이다. 시간이 없는게 아니라 열정과 노력이 없는것이다. 관심이 있으면 인터넷 돌아다니며 뒹굴거리는 행위대신에 적극적으로 끼여들게 되는거다. 지방에서 올라와서 하루이틀 보고 가는 사람들도 있는걸보면 '시간없다.' 그거, 거짓말이다. 아무튼 이제껏 영화제라고 쫓아다닌거 중에 이번 노동영화제 만큼 개,폐막작을 비롯해서 작품들의 양이나 질에서 풍성했던적도 없는거 같다. 지난번에 올린 '계속 된다 - 미등록이주노동자 기록되다' 를 비롯해서 모든 작품에 감상후기를 다 남겨야 하겠지만 그러지는 못할거같고 아쉬운대로 개,폐막작에 대한 인상만 좀 끄적여 봐야겠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개막작은 '볼리바리안 혁명 : 베네주엘라 민중의 삶과 투쟁' 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물이다. 이 작품은 폐막작및 몇개 작품과함께 노동영화제 섹션중 '혁명은 진행중' 이라는 섹션에 속하는 것으로, 국제 미디어 활동가의 연대체 '깔리 이 미디어' 의 일원인 '마르셀로 안드라데'씨 가 연출한 작품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도전적이다. 이 작품은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시기를 제4차 세계대전의 시기로 규정한다. 1,2차 세계대전은 잘 알려져 있는 그것이고, 3차 세계대전은 흔히들 냉전 이라고 부르는 시기를 말하는 것으로 이 시기에 일어난 미.소 양국의 침략전쟁, 내전 및 쿠테타의 배후조종, 지역분쟁들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약 2600만의 인구가 희생되었다 하니 3차 세계대전이란 말도 틀린말이 아니다. 그러면 4차 세계대전은? 그것은 IMF 나 WTO 같은 신자유주의 기관들을 앞세운 국제적 자본이 전세계의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가하는 살인적인 억압과 이에 맞서는 민중들의 투쟁이다. 영화의 무대인 베네수엘라는 세계 3위의 산유국이라 한다. 세계 석유의 약 13퍼센트가 베네수엘라에서 생산된다. 1930년대까지 베네수엘라 석유는 대부분 미국 기업들이 소유하고 있었으나, 76년에 국유화 되었고 베네수엘라 국영석유회사(PDVSA)가 석유를 통제했다. 그러나 석유때문에 이득을 본것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80년대 중반에 베네수엘라 인구의 36% 에 달하는 사람들이 극빈층이었다. 1989년에 대통령 카를로스 안드레스 페레스는 그가 '대전환' 이라고 부른 조처들을 도입했다. 그것은 시장 지향적 전환이었고 국제통화기금(IMF)이 요구한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도입한다는 결정이었다. 그것은 베네수엘라 노동자 대다수의 생활수준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페레스의 결정에 반발하는 격렬한 시위가 여러 날동안 계속됐고, 정권은 경찰과 군대를 동원해 이를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거리에서 총에 맞아 사망한 사람만도 수백에 이른다. 잔인한 탄압때문에 투쟁은 성공하지 못했으나, 민중들의 마음에는 아직 분노가 남아 있었다. 1992년 당시 육군 중령이던 우고 차베스는 일군의 젊은 장교들과 함께 '강력한 사회 변혁 의지를 가진 진보적 군인 집단이 위로부터 경제·사회 개혁을 추진할 수 있다' 는 사상으로 반정부 쿠테타를 기도하지만 실패한다. 대중은 주기적으로 거리로 쏟아져 나와 변화를 요구했지만 부패한 정권은 무자비한 탄압으로 일관했다. 좌파라고 불릴만한 사람들이 싸우는 민중들에게 전망도 제시하지 못하고, 투쟁을 지도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우고 차베스는 답답한 민중들의 가슴을 뚫어주는 희망처럼 보일수 밖에 없었다. 쿠테타에 패배한 차베스는 감옥에 갇혔지만 사람들은 연일 그를 지지하고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으며 결국 차베스는 94년에 석방된다. 베네수엘라의 경제는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도입하여 번영한것이 아니라 급속히 붕괴되어 갔다. 공공부문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회사들이 매각, 민영화되었고, 실업율은 증가하는데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이 서민들의 목줄을 졸랐다. 영화속에 등장한 어떤 시민은 버스가격이 200% 나 올랐는데 분노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었겠느냐고 말한다. 36%에 달했던 베네수엘라 빈민층은 몇년 지나지않아 65%로 늘어났으며, 사람들은 더 이상 참을수 없었다. 그럴때 차베스는 대중들의 저항에 자신이 볼리바르주의 라고 이름붙인 이데올로기를 제공했다. 19세기의 라틴아메리카 해방 투사 시몬 볼리바르의 이름을 딴 그 이데올로기는 민족주의적이고 포퓰리즘적인 경향이 강했다. 차베스는 더이상 길거리에 버려지는 아이들이 없도록 하겠다며 다수의 희생을 바탕으로 부를 축적한 소수를 격렬하게 비난했으며 이는 민중의 마음을 대변한 것이었다. 결국 그는 98년에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되었으며 사람들은 이를 볼리바르 혁명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지금 베네수엘라의 공식 명칭은 베네수엘라 '볼리바리안' 공화국이다. 차베스는 헌법을 개정하여 보다 많은 사람들의 권리가 보장되는 새로운 헌법을 만들었다. 대기업의 횡포로부터 소규모 자영농이나 어민들의 권익을 보호할수 있도록 했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교육의 접근권을 보장해주기도 했으며, 여러가지 국책 사업들을 전개하기도 했다. 민중들은 차베스의 개혁이 자신들을 빈곤으로부터 구해줄것이라고 믿고 있으며, 2002년의 우파 쿠테타나 2004년 보수층들이 조직한 소환투표로부터 그를 지키고 구해내었다. 일부는 베네수엘라가 차베스의 위로부터의 혁명과 민중들의 아래로부터의 저항이 잘 조화된 이상적인 케이스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차베스는 말로는 신자유주의를 비판하지만, 그의 정부 재정은 정부 서비스 삭감이라는 신자유주의 원칙에 따라 운영되고 있다. 그 결과 가난한 사람들은 계속 가난해졌다. 또,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삭감되고, 그들이 당연히 받아야 할 보너스 지급이 취소됐다. 보수우파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경제적,정치적 권리를 누리고 있다. 심지어 차베스에 맞서는 가장 강경한 보수파 신문의 편집장도 '차베스로 인해 구체적으로 침해당한 권리가 뭐냐' 라는 질문에 '그런건 없다' 고 답할 정도이다. 때문에 그들은 지속적으로 차베스에 맞서는 이런저런 행동들을 조직할수 있는 것이다. 차베스는 2000년 국영석유회사(Petroleos de Venezuela)에 대한 개혁 조치를 결정했을 때 기득권층과 결정적인 갈등구도에 돌입했지만, 사실 이때조차 기득권세력을 무력화 시키는 조치는 아니었다. 베네수엘라 경제의 대부분은 아직 이들 보수우파들의 수중에 남아있으며, 아직도 길거리에 버려지는 아이들이 있다. 그리고 우파들의 공격이 있을때마다, 차베스는 민중의 힘 보다는 주로 군부의 힘에 의존하여 권좌를 지키려 하고 있다. '볼리바리안 혁명 : 베네주엘라 민중의 삶과 투쟁' 은 차베스가 등장한 배경과 그를 가능하게했던 사람들의 역동적인 투쟁모습이 잘 담겨진 영화다. 이 영화를 보는것만으로 투쟁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고무받을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차베스 정권의 한계에 대해서 거의 언급하지 않은것은 큰 단점이다. 차베스의 개혁은 여기저기서 지지부진하며, 진정으로 민중을 위한 것인가 하는 부분에 의문점이 많다. 그것은 베네수엘라의 혁명이 아래로부터의 거대한 대중적 저항을 통해서 수립된것이 아니라, 쿠테타와 국민투표라는 위로부터의 혁명방식에 의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위로부터의 혁명, 또는 위로부터의 개혁을 주장하는 다른 모든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차베스는 기존의 보수세력들과 타협할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그 때문에 진정한 사회변혁은 자꾸만 연기될수밖에 없으며, 결국 이루어지지 못한채 미완의 것으로 남게 되는것이다. 베네수엘라 혁명은 '진행중' 이며,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차베스의 개혁성과가 그 혁명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된다. 진행중인 혁명은 노동계급 자신의 것이어야 한다. 다행히 영화를 제작한 '마르셀로 안드라데'씨 는 상영후 있었던 토론회에서 자신역시 노동자들의 투쟁이 핵심적이라고 생각하며, 남한 노동자들의 운동에 대해서 많이 배우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조직들을 이용해 독자적으로 행동할수 있는가, 차베스와 같은 위로부터의 혁명이 아니라 진정한 아래로부터의 권력을 수립하고 보수우파들로부터 민중의 것을 되찿아올수 있는가 하는 여부가 베네수엘라 혁명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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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영화제 - 계속된다.

* 이 글은 진보네님의 [트랙 팩 03 : 노동영화제] 에 관련된 글입니다.

작년 초에, 정독도서관 맞은편의 아트시네마 (구 아트선재센터) 에서 인권영화제를 본적 있엇다. 당시만해도 별다른 활동이 없었던 나는 한편의 낮선영화를 맞이하고는 당혹감을 감출수 없었다. 그 낮선 영화에는 피부색이 다른 노동자들이 나와서 우리나라 시내 한복판에서 '단속추방' 이라고 쓰여진 천을 찢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에서의 설명을 통해 그들이 이주노동자 라는것을 알았지만, 왜 그들이 고용허가제를 반대하는지, 노동허가제 라는것이 무엇인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아서 당혹스러웠다. 고용허가제면 충분한거 아니었던가? 오늘 같은 장소에서 열린 노동영화제에 다녀왔다. 그동안 신경을 많이 못 쓰고, 이런저런 일이 생겨서 미뤄뒀었는데 이제서야 퇴근후에 가보게 된거다. 전적으로 나의 개으름과 무신경의 탓이다. '계속된다' 라는 제목의 영화는 정말 이주노동자들의 투쟁과 삶이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1년 반 남짓한 시간을 지난 다음에야 다시 스크린속에서 볼수 있었던 이주노동자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계속해서 싸움이 끝나지 않았음을, 계속해서 싸울수 밖에없는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내게 있어 이 영화는 지난번 인권영화제에서 본 영화의 속편이라고 해도 지나칠바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때 무대위에 올라와서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던 이주노동자들중 상당수는 지금 우리나라에 없다. 인권영화제에서 만난 그들은 당시 내게 있어서 낯선 무엇이었고, 동정의 대상이었다. 그때 내가 흘린 눈물은 그들이 불쌍해서 흘린 눈물이었다. 당시만해도 내가 가지고 있던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인식은 '돈 벌러온 고생하는 외국인' 단지 그것이었다. 그렇지만 1년 반 이 넘는 시간중에 나는 '다함께' 에 가입했고, 그들과 함께 행동하고 공부하면서 내 인식은 바뀌어갔다. 내게있어 더 이상 그들은 불쌍한 거지들이 아니다. 그들은 이 자본주의 사회를 떠받드는 사람들이면서, 동시에 그 사회를 바꿀수있는 힘을 가진 '노동자' 였음을 깨달았다. 내가 그것을 깨닫기 한참전에 이미 이주노동자들은 당당한 노동자로서 살고 있었음도 동시에. 당시 무대에 올라와 인사하던 사람들중에 비두씨가 있었다. 그는 작년 10월 이용식 열사가 분신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대회에 참석했다가 경찰의 폭력적 연행에 잡혀서 추방당했다. 경찰차에 억지로 태워지기전 그는 '나도 인권 있다. 내 인권, 내 인권을 말하는데 왜 입을 막냐' 고 외쳤다. 당연히 경찰들은 그를 땅바닥에 찍어누르고, 수갑을 채우고, 폭력을 가했다. 그는 추방당했지만 올해 1월에 뭄바이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에 참석해서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탄압을 폭로했다. 올해 2월에는 이주노동자 지부장이었던 샤말 타파씨가 대학로에서 '묻지마 연행' 을 당했다. 당시 출입국 관리소측은 항의집회를 막기위해서 연행이 끝난 다음에야 어디로 연행되었는지 가르켜 주었다. 그는 외국인 보호소라는 이름의 감옥안에서 강제추방에 반대하고 살인적 단속추방에 항의하는 단식투쟁을 벌였고, 우리는 우리 모두가 샤말타파가 될것이라고 그렇게 외치며 행진했다. 얼핏 기억하는 그들 말고도, 정권의 강제추방에 절망하고 항의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있다. 작년 인권영화제에서 마주친 그들은 한국인 노동자들과, 특히 민주노총의 열악한 상황인식 때문에 절망하고 있었다. 이주노동자들을 같은 노동자로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같이 싸워줄것을 호소했었다. 그런문제들은 올해도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특히 민주노총의 관료들은 이주노동자의, 일반 조합원들의 요구가 있기 전에는 결코 나서서 이 싸움을 조직하려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한꺼번에 괄목상대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점점 더 많은 한국인노동자들이 연대하기 시작했던것도 사실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는 자들은 피부색을 차별하지 않는다는것을 깨달아 가게 된것이다. 이제서야 우리들은 부족하지만 조금씩이나마, 노동자는 하나라는 것을 깨달아 가는 중이다. 이주노동자들의 명동성당 농성은 만 일년을 훌쩍 넘겼다. 그동안 그들의 삶은 계속되어왔고, 정권의 압박도 계속되고 있다. 아직도 많은 이주노동자들은 '불법사람' 이 되어 숨어 지내야한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들은 그 기간동안에 자신들의 요구뿐만 아니라 반전운동에, 한국노동자들의 투쟁에 열정적으로 결합해왔다. 우리가 깨닫기 전부터, 그들은 노동자는 하나라는것을 몸소 실천해왔다. 그렇게 우리의 투쟁도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자신들이 저지른 파병정책 때문에 받게 된 테러에 대한 위협을 무슬림을 위시한 이주노동자들에게 전가시키는 정권이 있는한,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싸움에 함께 할것이다. 탄압은 계속되고 있고, 투쟁도 계속되고 있다. 투쟁에 계속되는한 지금 내가 일년 몇달만에 속편 을 본것처럼, 내년쯤에 또 다른 속편 을 보게 될것이다. 그러나 그냥 보기만 하는 입장은 아니어야 할것이다. 나는 그 영화에 당당한 출연자로서 등장해야 한다. 아직은 부족하기만 하지만, 나의 활동도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이다. 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어야 한다. 자본은 피부색을 구별하며 탄압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가해지는 탄압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우리는 함께 싸워야 한다. 이제 더이상 그 눈물은 그들만을 위한것은 될수 없는 것이다. stop crackdown. we are one. 함께 싸우지 않으면 우리는 그 무엇도 얻을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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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노동자대회,전공노 파업출정식을 다녀와서

* 이 글은 진보네님의 [트랙 팩 02 : 노동자대회] 에 관련된 글입니다.

토요일 동국대에서 전야제가 시작되는것을 시작으로 '2004 전국 노동자대회' 가 시작되었습니다. 정권의 공무원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과 비정규직 개악 입법안, 한일 FTA 와 이라크 파병연장 동의안에 분노한 수많은 노동자들이 집결해서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밤 늦은 시간까지 투쟁의 열기에 불을 지폈습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지난 6일까지 진행된 총파업 찬반투표에서 51.3 퍼센트가 투표에 참가해 67.9 퍼센트가 찬성표를 던진바 있습니다. 사실상 단위 노동조합의 현안들이 정리되거나 끝난 상태에서 정치적 요구안들을 주되게 내세우고 있는 파업임을 감안할때, 특히 현대자동차나 기아자동차등 이른바 대기업으로 분류되는 노동자들이 정치,사회적 요구안들을 담은 파업에 찬성했다는것은 노무현 정권과 그 지지자들의 '노동귀족론' 이 얼마나 근거없고 악의에 찬 선동이었는가를 반증하는 것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전야제에 단상에 올라온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은 비정규직 개악법안을 의회 안에서만 막아낼수는 없으며 의회 밖에서 강력한 투쟁이 형성되어야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비정규직 개악법안뿐 아니라 공무원노조 특별법도, 한일 FTA 나 파병연장 동의안등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위협하는 현안들은 우리와 다른 세상에 살고있는 소수의 기득권에 기대어 유지되는 국회안에서는 결코 해결될수 없습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수 있는 세상' 은 오직 대규모 민중들의 투쟁에 의해서만 만들어질수 있으며 또 유지될수 있을 것입니다. 전야제가 끝난 다음날은 광화문에서 2004 전국 노동자대회 본대회가 열렸습니다. 본대회는 오후 3시부터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그보다 이른시간인 오후 1시경 부터 수많은 노동자와 연대단체들이 주위에서 활기차게 결의대회를 진행했습니다. 특히 철도노동자 분들과 화물연대 노동자들은 단체교섭 파행과 정부의 2차 에너지세제개편에 반대하는 총파업을 결의하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화물연대가 파업하면 철도를 통해서, 철도노조가 파업하면 고속도로를 이용해서 파업의 여파를 줄이려 했었기 때문에, 만약 두 노조가 동시에 파업에 돌입한다면 이전과는 다른 강한 파급력을 가질수 있을 것입니다. 철도노동자와 화물노동자들이 함께 싸운다면 보다 더 확실하고 강하게 승리를 쟁취할수 있을 것입니다. 두 노조의 연대투쟁을 기대합니다. 노동자대회가 종료되기전 무대에 오른 한국노총 이용득 위원장은 다음주 일요일인 21일 서울 대학로에서 7만여명의 조합원이 참가하는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하겠다고 했습니다. 또한 오늘 기자회견에서 이달 말로 예정된 민주노총의 총파업 일정에 맞춰 연대 총파업 투쟁을 벌이겠다고 선언 했습니다. 굳이 전야제에 무대에 올라온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씨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노동운동이 승리하기 위한 조건이 연대투쟁임은 말할것도 없을 것입니다. 다만 기왕 연대투쟁을 조직할 것이라면 굳이 21 일에 독자적인 한국노총 노동자대회를 열것이 아니라 민주노총의 노동자대회와 일정을 같이 했다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10만이 넘는 노동자들이 정권의 심장부에 운집하여 행진을 벌였다면 정권과 자본의 일방적인 강요에 저항하는 상징이 될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실 아쉽기로는 민주노총도 다를바 없었습니다. 대회 말미에 단상에 오른 민주노총 이수호 위원장은 오는 26일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선언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민주노총의 총파업 찬반투표가 찬성으로 끝난데다가 당장 공무원 노동조합이 파업에 돌입했음을 감안한다면 26일은 터무니없이 늦은 시간입니다. 이수호 위원장은 '예전처럼 전공노 혼자 외롭게 투쟁하게 두지 않겠' 다고 공언했지만, 실제로 지금 공무원 노동조합은 민주노총의 실질적 지원없이 '외롭게' 투쟁하고 있지 않습니까? 소수의 조직으로 한시적 지원을 하는것보다, 민주노총이 연대 총파업선언을 하고 같이 파업과 점거투쟁에 돌입했다면 정부의 강경진압 발표에 긴장할수밖에 없는 공무원 노동자들에게 투쟁이 승리할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줄수 있었을 것입니다. 노동자대회가 종료한 뒤 연세대에서 공무원노조 파업 출정식이 있었습니다. 공무원 노동자들과 함께 연세대로 뛰어 들어갔는데, 오랫만에 뛰다보니 신촌에서 연세대 까지의 거리가 보통때보다 굉장히 길게 느껴지더군요.(^^;) 그래도 입구에서 공무원 노동자들의 진입을 방어하고 연대해준 동지들의 대열덕분에 그렇게 힘들지만은 않았습니다. 파업출정식은 규모는 다소 적었지만 활기차게 진행되었고, 민주노동당 국회의원들이 함께 했던것도 고무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공노 지도부들이 애써잡은 거점을 포기하고 산개투쟁을 결정한것은 매우 아쉬웠으며, 위에서 말한바와 같이 민주노총이 좀더 적극적으로 연대투쟁을 벌였다면 자신감 부족으로 인한 그와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더 안타까울수 밖에 없었습니다. 2004년 노동자대회는 끝났지만 2004년 노동자들의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끝나기는 커녕 이제부터가 시작이 될것입니다. 정권과 언론은 우리들의 삶을 점점 더 압박해오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강행하며 한편으로 그에 저항하는 노동자.농민 등 민중의 저항을 끝없이 탄압하고 뒤틀겠지만 동시에 그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 스스로의 생명을 연장할수 없다는 위기의식의 발로이기도 합니다. 점점 더 단말마적 숨소리를 내어가는 저들의 숨통을 끊을수 있는것은 그동안 세상을 움직여왔던 바로 우리 자신의 손입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남아있는 많은 투쟁들은 부당한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소수를 위한 사회가 아니라 우리 자신들을 위한 사회를 건설하는데 큰 힘이 될수있을 것입니다. 거기에 함께 합시다. 함께하셨던 분들 모두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는 전국 공무원노동조합의 투쟁을 지지합니다. 길을 내고 있다는 심정으로 열심히 싸워주셨으면 합니다. 다시 한번 같이 뜀박질 할수있는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며...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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