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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함께] 노무현은 우리의 적이다 / 노무현의 ‘자주 외교’?

다함께 44 호

노무현은 우리의 적이다 / 노무현의 '자주 외교'? - 전지윤

http://alltogether.or.kr/

 

지난 11월 11일은 열우당 창당 1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러나 열우당 창당 1년을 기념하는 사람은 ‘빼빼로 데이’를 기념하는 사람보다 더 적었다.
왜냐면 “우리당 창당 이후 1년은 실망과 배신감으로 가득 차 국민의 시름만 깊어[진]”(민주노동당) 1년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1년 간 노무현과 열우당은 “미국에 목덜미 잡히고 조·중·동과 한나라당에 휘둘려 지금까지 한 일이라곤 이라크에 파병하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위해 주력한 것말곤 내세울 게 별로 없[다.]”(홍세화, <한겨레> 11월 17일치)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개혁을 노무현과 열우당에 기대했지만, 그 기대는 철저히 배신당했다.
이해찬은 “조선·동아는 까불지 마라”, “한나라당이 나쁜 건 세상이 다 안다”고 큰소리쳤지만 ‘까불고 있는 나쁜 놈들’에게 노무현 정권은 쩔쩔맸다.
이해찬은 “조선·동아는 내 손아귀 안에서 논다”고 했지만 정작 조·중·동의 손아귀에 잡힌 건 노무현 정권이었다.  
열우당이 ‘친일법’을 ‘부일법’으로 바꾸며 직위가 아닌 행위 중심으로 조사하겠다고 물러나자 <오마이뉴스> 정운현은 “친일 ‘청산’인가, 친일 ‘면죄’인가” 하고 개탄했다.
종합부동산세는 거듭 후퇴해 “타워팰리스 81평”도 빠져 나가는 ‘종합구멍세’가 됐고 경실련은 “열린우리당은 땅 부자를 대변하는 특권층 옹호 당”이라고 규탄했다. 
문화관광부는 “개정된 신문법에 따라도 조·중·동은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아니”라며  ‘친절한’ 유권 해석을 내려 주었다.
검찰은 2억 원이 든 굴비 상자를 받은 한나라당 안상수를 굴비만 받은 걸로 봐주며 불구속 기소해 면죄부를 주었다.

 

최근 열우당과 한나라당의 “재벌 총수의 소유권 보장을 위한 오십 보 백 보의 진흙탕 싸움”(민주노동당) 끝에 통과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대로 하면 “출자 제한을 받는 재벌은 현재의 18개에서 10개로 줄어들”(참여연대) 참이다.
이미 알맹이가 빠져 껍데기뿐인 4대 ‘무늬’ 개혁은 한나라당과 조·중·동은 고사하고 “안에서 개판치는 모임”(김정란)이라는 ‘안개모’의 벽도 넘지 못하고 있다. 
“이게 아닌데 싶어 한마디 하고 싶어” 하던 한나라당, 자민련, 자유총연맹과 재벌2세 출신의 열우당 의원들이 모여 “지나치게 이상적인 개혁 입법”(창립선언문)을 막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래서 이부영은 “산이 높으면 돌아가[자]”고 했고, 천정배도 “너무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했다.
‘노무현의 복심(腹心)’이라는 문희상도 “최선이 안 되면 차선”이라며 “적절한 선에서 타협”을 말하고 나섰다.
한나라당 김덕룡은 “4대 국론 분열법 밀어붙이기를 중단할 것을 시사한 … 반가운 소식”에 기뻐했지만 <오마이뉴스> 고태진은 “그 높다는 산, 한번 올라가 보려고 해 보기는 해 봤나?”라며 분통을 터뜨렸다(11월 12일치).

 

4대 ‘무늬’ 개혁에서는 이토록 힘없이 동요하는 노무현 정권이 이라크 파병 연장, 비정규 노동법 개악, 공무원노조 탄압, 기업도시법 강행 등 ‘4대 개악’에서는 거침이 없다.
“다음 대통령에게는 너무 어려운 숙제를 넘기지 않겠다”는 심보인지 노무현은 반민중적·친제국주의적·친기업적 악행들을 한꺼번에 밀어붙이려 한다. 더구나 여기서는 ‘안개모’와 개혁적 386과 조·중·동과 한나라당이 별 차이도, 이견도 없다.
노무현의 오른팔인 386 이광재는 공무원노조 파업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며 보수언론들에 이메일을 뿌렸고, 유시민은 “누가 공무원 되라고 협박했냐”며 막말을 해댔다.
노동부 장관 김대환은 “전공노는 대화 상대가 아니다” 하고 나섰다. “정부는 탄압하고, 한나라당은 공조하고, 조·중·동은 응원하는”(진중권, <경향신문> 11월 16일치) 상황이 연출됐다.
기업도시법에서는 “주는 김에 홀딱 벗고 준다”(한나라당 최구식)는 우파와 재벌들의 주문에 따라 온갖 친기업적 특혜가 쏟아지고 있다.

 

해외에 나간 노무현은 이번에도 친기업적 발언을 쏟아냈다.
“오늘까지 우리 경제를 성장시켜 온 것은 우리 기업의 애국심이었다. … 대통령이 성과라고 내놓는 것[은] … 기업들이 핵심적으로 한 것이고 대통령은 그냥 밥 짓는데 뒤에 가서 부채질 한번 해 준 수준[이다.]”
기업주들을 위해 ‘부채’를 넘어 선풍기 수준으로 노동자들을 탄압해 온 노무현 정부는 최근 ‘부채질’을 위해 시위진압용 살수차 26대 구입 비용 39억 원을 편성했다.
노무현 정권은 이처럼 4대 개혁에서는 우파와 가끔 말로만 싸울 뿐 행동에서는 우파에 타협해 껍데기뿐인 ‘무늬’ 개혁마저 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4대 개악’에서는 우파와 손잡고 말과 행동 모두 무자비하게 노동자 민중을 공격하고 있다.
따라서 “열우당은 적과 아를 분명히 구분해 … 비정규직 관련법 개악 움직임을 중단하고  개혁 공조를 복원해야 한다”(<민중의 소리> 11월 2일치 논평)는 미련은 버려야 한다.
정말이지 적과 아를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껍데기가 아닌 알맹이 개혁을 이루고 ‘4대 개악’을 막아내기 위한 투쟁에서 우파와 함께 노무현 정권도 우리의 적이다.
‘안개모’의 안영근은 “민노당에 대한 기대는 이만 버리고 우리는 우리 갈 길을 가야 한다”고 열우당의 우향우를 재촉했다.

 

노무현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유사시 못살겠다고 길거리로 쏟아져 나올 국민이 1천만 명이 될 것”(모 장관이 민주노동당 의원들과 회동에서 한 말)이라는 지금, 노무현에 대한 미련을 이만 버리고 노무현에 맞서는 전면적 투쟁의 길로 나서야 한다.

 

노무현의 ‘자주 외교’?

 

 

해외로 나간 노무현이 11월 13일 미국의 대북 강경책에 대한 북한의 반발이 “일리가 있는 측면이 있다”고 편드는 듯한 말을 하면서 작은 파장이 있었다. 
우파들은 노무현이 11월 20일 부시와 만나서 “대들까 봐 걱정”(한나라당 김덕룡)했고, 진보 진영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이 모처럼 빛이 났다”(<민중의 소리>)고 환영했다.
<오마이뉴스> 등은 노무현이 그 동안의 ‘한미공조 올인’ 외교에서 벗어나 ‘자주외교’로 나아가는 신호라며 한껏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막상 부시를 만난 노무현은 ‘대들기’는커녕 부시의 재선을 거듭 축하하고 이라크 파병 연장을 약속하며 알아서 기었다.
노무현은 이번 해외순방에서 기업을 찬양하는 발언들을 쏟아내며 신자유주의를 위한 한-일, 한-싱가포르, 한-캐나다 등 ‘FTA 드라이브’를 펼쳤다.
“전쟁의 위험을 감수”할 수 없다는 노무현의 발언도 이런 발언을 한 게 놀라운 게 아니라 “할 말은 하겠다”더니 그 동안 이런 발언도 안 한 게 놀라운 일이다. 

 

노무현의 말이 없더라도 케네스 퀴노네스(전 미 국무부 북한담당관)가 지적했듯이 “이라크 사태를 걱정하고” 있는 미국이 북한을 “[선제공격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라크에서 수렁에 빠져 있기 때문에 부시는 노무현에게 북한 핵문제를 “평화적이고 외교적 방법으로 해결”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이번에 노무현은 “자기 국방은 자기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이어서 국방부는 ‘협력적 자주국방’을 위해 앞으로 4년 간 99조 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복지를 삭감하며 군비를 늘리고, 이라크 파병 연장도 ‘자주적’으로 결정하고, 아예 “해외 파병 상설부대의 편성을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게 노무현식 ‘자주외교’, ‘자주국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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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함께] 입시 경쟁이 낳은 ‘수능 부정’

다함께 44 호

입시 경쟁이 낳은 ‘수능 부정’  - 강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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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7일 치러진 수능시험에서 휴대전화를 이용해 1백40여 명이 함께 ‘부정행위’를 한 사실이 드러났다.
사실, 전부터 수능시험에서 부정행위에 대한 소문은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실제로 이번 수능시험 전에 이미 교육청 게시판 등에 부정행위에 대한 제보가 올라오기도 했다.
게다가 휴대전화를 이용한 부정행위만이 아니라 신분증을 위조한 대리시험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결국 경찰은 수능시험 부정행위에 대한 수사를 전국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교육부도 부랴부랴 “휴대전화 등을 이용한 부정행위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도록 종합대책을 마련하기로 하고, 감독관 추가 배치, 전자 검색대 및 전파 차단기 설치, 문제지 유형 확대, 몸수색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많은 학생들이 정부의 이 같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 대처에 분노했다.
한 학생은 “시험을 보는 도중 계속 휴대전화 진동 소리가 들렸지만 감독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며 수능시험의 ‘공정성’에 대해 불만을 나타냈다. 그래서 일부 학생들은 수능 “재시험”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것은 한국 사회에서 수능시험이 그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수시 모집이나 대학별 면접 등에 비해 ‘공정한’ 제도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한겨레>는 “시험 부정은 시험제도 자체의 불신으로 비화될 수 있다.”며 정부에 엄정한 대책을 요구했다.
그러나 수능시험과 입시 경쟁 자체가 ‘공정한’ 경쟁은 아니다. 부자집 아이들은 더 좋은 환경에서 충분한 과외를 받아 수능시험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게다가 고교등급제 논란에서 봤듯이, 이들은 면접 등에서 더 좋은 점수를 받을 가능성도 많다.

 

자본주의 시험제도의 목적은 생산을 조직하고 운영할 소수와 위에서 결정된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을 수행할 다수를 분리하는 것이다.
시험 결과에 따른 이해관계가 크면 클수록 입시 경쟁에서 이기고자 하는 바람도 커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부정행위에 대한 기술적 방지 대책을 강화하거나 엄한 처벌을 하는 것으로 부정행위를 온전히 없앨 수 없다. 부정행위는 자본주의 시험제도의 붙박이다.
특히 한국의 수능시험은 대학에서 공부할 자격이 있는지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수능시험의 결과로 인생 전체가 결정되는 시험인 만큼 부정행위에 대한 유혹도 클 수밖에 없다.
한 학생의 말처럼 “수능날 하루가 인생의 반 이상을 결정하는 상황에서 누구나 ‘대박’을 바란다.”

 

지배계급은 시험제도를 통해 경쟁에서 이기면 자신들처럼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주입시킨다.
그러나 오직 소수의 학생만이 신분 상승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대다수 학생들은 시험 경쟁에서 들러리를 설뿐이며, 그 때문에 좁은 학교와 독서실에 갇혀 자신이 원하지도 않는 공부를 하며 시간을 낭비해야 한다.
그러나 모든 인류 사회에서 시험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스스로 어떤 일을 하고, 누구와 일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었던 사회에서 시험은 필요하지 않았다.
지금의 시험제도는 ‘인간 본성’에 따른 자연스러운 제도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필요에 맞춰 만들어진 제도일 뿐이다.
따라서 우리가 연대와 상호 부조와 평등과 집단적 협력과 자원 활용의 민주적 계획에 기초를 둔 사회를 건설한다면 더는 시험제도가 필요 없을 것이다. 당연히 학생들이 절박한 마음에서 부정행위를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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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함께] 공무원노조 파업평가 와 전망 / 실패한 파업?

다함께 44 호

공무원노조 파업평가 와 전망 / 실패한 파업? - 김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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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는 공무원노조에 전쟁을 선포했다. 우리 사회의 지배자들은 공무원 노동자들이 “[지배 계급의] 국민이 아닌 민주노총의 명령에 따르”는 것에 이를 갈았다.(<동아일보> 11월 16일치.)
열린우리당의 소위 ‘개혁파’ 의원들도 예외 없이 공무원 노동자 파업에 적대감을 드러냈다.
그 결과 공무원노조 파업을 둘러싸고 공식 정치 구조 안에서 첨예한 양극화가 일어났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한 목소리로 “파업 철회와 단호한 대처”를 요구한 반면, 민주노동당은 파업을 적극 지지했다.

 

민주노동당은 공무원노조 파업 전 과정에서 중요한 구실을 했다. 이를 통해 열린우리당이 쥐고 있던 정치 양극화의 왼쪽 극을 되찾을 수 있었다.
노무현 정부는 순전히 무력에 의지해 공무원노조 파업을 파괴했다.
“경찰 병력이 전 관공서를 점령하다시피 들이닥친 것은 군사독재 정권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김영길 전공노 위원장)
이것은 정부와 여당이 심화되는 경제 위기와 강화되는 우익의 공세에 직면해 우파와의 타협을 선택했음을 극명하게 보여 줬다.
“정부·여당이 초강경 대응하는 것은 그 자체가 정부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노동계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지켜보는 자본의 눈을 의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www.labortoday.co.kr, 11월 12일치.)

 

그러나, 이 과정에서 노무현 정부의 핵심 지배 전략이 결정적인 위기를 맞이했다.
노무현은 자신이 동의를 좀더 중시하는 지배 전략을 선호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했다. 즉, 노조 지도자들과 타협하고, 그러면 노조 지도자들은 현장 조합원들에게 협상 타결안을 내놓는 방식 말이다.
정부가 한때 내놓았던 ‘네덜란드식[또는 스페인식] 노사 모델’은 그런 시도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이 전략은 별 실효를 거두지 못한 채 표류했다.
경제 위기의 심화는 노무현 정부가 양보할 수 있는 여지를 심각하게 제약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잇달아 예정돼 있는 산업 전투의 고리를 끊어내야 할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됐다. 투쟁 경험이 부족한 공무원노조가 그 표적이 됐다.

 

노무현은 ‘노동조합 전체를 한꺼번에 다루지 말고, 그들 가운데 하나를 골라내’는 새처 식의 노동 지배 정책을 따랐다.
노무현 정부는 과거 억압적인 정부들이 주로 사용한 방식, 즉 법과 경찰에 기대 공무원노조 파업을 파괴했다.
그러나 이것은 “열린우리당과 참여정부[에게] 부메랑이 되는 행동”(홍세화)이었다.
왜냐하면 공무원노조 파업 파괴가 “위기의 노·정 관계에 자극제로 작용하면서 올들어 노·정 관계가 최대 위기 상황에 봉착했”기 때문이다.(<경향신문> 11월 16일치.)
그 어느 때보다 노동조합과 노무현 정부 사이에 커다란 금이 갔다.

 

이 파장은 노동조합에만 한정되지 않을 듯하다.
노무현 정부는 공무원노조 파업을 파괴하기 위해 서울 지역 대학들에 경찰 병력을 배치하고 출입자들을 검문·검색했다.
1980년대 세대에게나 익숙했던 일들이 역대 정부 중 가장 ‘개혁적’이라던 ‘참여정부’ 하에서도 재현된 것이었다. 적지 않은 학생들이 이 낯선 광경에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민주노동당 박용진 대변인은 “노무현 정권은 공무원노조 3권 보장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15년 전 노태우 군사정권과 이름만 다를 뿐 성도 같고 성격도 같다.”고 비판했다.

 

 

실패한 파업?

 

 

정부와 언론들은 노조원들의 참가가 저조해 파업이 실패했다고 말했다. 파업에 헌신적으로 연대했던 일부 활동가들도 이런 시각을 공유하는 듯하다.
그러나 공무원노조 파업의 영향은 단순하지 않다.

 


행정자치부는 파업 참가자 수가 3천2백 명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의 파업 참가자 집계는 실제 상황을 정확히 반영하지 않았다.
“정부 측은 ‘파업 참가자 = 징계 대상자’임을 고려해 신중한 파악”을 했기 때문이다.(<연합뉴스> 11월 15일치.)
더욱이 정부가 파업은 물론 집단 행동 일체를 불법으로 몰아가는 상황에서, 수천 명의 조합원들이 용기 있게 ‘불법’ 파업에 참가했다.

 

<매일노동뉴스>에 따르면, 11월 13일과 14일에 서울에 집결한 공무원 노조원 수는 8천여 명이었다.
공무원노조는 공식적으로 4만 4천 명이 파업에 참가했다고 밝혔다. 이것은 아마도 파업 참가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저항을 포함한 수치일 것이다.
실제로, 상경 파업에 참가하지 못한 노조원들은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파업에 동조했다 ― 지각, 휴가, 집단 자연 보호 활동, 체육 대회, 중식 집회 등.
많은 노동자들은 ‘마음만은 파업’이라는 심정이었다. 1백억 원이 넘는 파업 기금 모금도 파업 지지가 상당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이 같은 현장 조합원들의 지지가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노조가 3일 동안 파업을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정부 탄압 때문에 ― 특히, 11월 4일 정부의 강경한 담화문 발표 이후 ― 상당수 조합원들이 위축된 것은 사실이다.
또, 정부가 협상 자체를(심지어 대화마저도) 거부해 파업을 며칠 남겨 놓고 노조 지도부도 잠시 동요했다. 
그러나 정부는 파업 찬반 투표 봉쇄라는 ‘예비검속’까지 했지만 파업 돌입을 막지는 못했다.
파업 돌입 그 자체를 “승리”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공무원노조가 최초의 파업을 감행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했다.
그렇지 않고 공무원노조 지도부가 정부 탄압에 굴복해 파업을 지레 포기했다면, 그 결과는 지금과는 사뭇 달랐을 것이다.
정부는 탄압의 여세를 몰아 징계 등을 통한 노조 무력화와 다른 산업 부문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싶어했지만, 상황은 정부의 계획대로 되고 있지 않다.
한편, 울산 동구청과 북구청의 파업 참가율은 각각 73퍼센트와 53퍼센트였다.
두 곳은 민주노동당 구청장들이 파업을 지지해 징계 부담감이 상대적으로 덜했던 곳이다.
이것은 정부가 순전히 탄압에 의지해 파업을 파괴했음을 다시 한 번 보여 준다.

 

공무원노조 지도부가 노동자 대회 전에 파업에 돌입했더라면 탄압의 효과를 크게 상쇄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남는다.
공무원 노동자들은 2∼3일만 저항하면 파업을 앞둔 수만 명의 노동자들로부터 방어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터이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면 더 많은 공무원 노동자들이 파업에 참가할 용기와 자신감을 얻었을 것이다.
한편, 정부는 노동자 대회를 앞두고 공무원노조 파업을 파괴하는 것에 심각한 정치적 부담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 공무원노조 파업의 성사 여부는 파업 규모와 연대에 달려 있었다.
즉, 공무원 노동자들이 노동자 대회에 얼마나 참가할지, 무엇보다 민주노총 노동자들이 공무원 노동자들에게 실질적인 연대를 보낼지가 관건이었다.
민주노총 지도부가 노동자 대회에서 공무원노조 파업에 연대를 호소하고 수천 명의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공무원 파업 참가자들을 엄호한 것은 노동자 연대의 전통이 살아 있음을 보여 줬다.

 

그러나, 민주노총 지도부의 11월 26일 총파업 선언은 아쉬움을 남겼다.
15일에 파업에 들어가는 공무원 노동자들에게 26일은 결코 가까운 일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또 정부의 모진 탄압 때문에 전체 노조원의 1퍼센트도 채 안 되는 1천 명 남짓이 상경 파업을 한 상황에서, 이제 막 등장한 신생 노조가 정부를 상대로 사흘을 버틴 것은 놀라운 저항력이었다(이런 이유 때문에 산개냐 집중이냐는 이 파업에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정부는 1989년 전교조 탄압의 전례를 따르고 싶어하는 듯하다.
그러나 공무원노조는 전교조가 10년에 걸쳐 이른 그 지점에서 정부와 싸우고 있다.
이미 14만 명의 조합원을 보유한 사실상의 노동조합이고, 그 때문에 상당수 지자체들이 공무원노조와 단체협약을 체결한 상태다.

 

정부의 파업 노동자 징계라는 2라운드 전투도 만만치 않은 저항에 직면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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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함께] 미국은 결코 승리할 수 없을 것이다

다함께 44 호

미국은 결코 승리할 수 없을 것이다   - 김용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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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루자 공세가 한창이던 11월 13일 미국 NBC방송에는 충격적인 장면이 방송됐다. 미군 해병대원은 부상당해 쓰러져 있는 이라크인에게 총을 겨눈 채 “이 새끼 죽은 척하고 있어”하고 말했다. 곧이어 화면은 보이지 않고 총소리와 함께 “이제 죽었어”라는 말이 들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았지만 이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었다. 국제적십자사는 팔루자에서 탈출한 난민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해서 이번 공격으로 사망한 민간인이 적어도 8백 명이라고 발표했다.


 

이러한 대학살은 우연이 아니라 철저하게 계획된 것이었다. 알라위 정부는 작전 시작 두 달 전부터 팔루자 지역에 새로운 의약품 반입을 막았다.
전투 시작 직전 해병대 장교들은 “15∼50세 남성은 무기를 소지하지 않았더라도 무조건 사살하라. … 적은 여성으로 가장할 수도 있다. 움직이는 것은 모두 쏴라.” 하고 명령했다.

 

 

미군은 11월 8일 공격을 시작하면서 먼저 팔루자 종합병원을 점령했다. 이 병원의 의사 무하라니는 출산을 돕던 중 미군에 체포당했다. 그녀는 미군 저격수가 의사 17명을 살해했다고 증언했다.
미군은 국제적십자사와 모스크들이 모은 구호품의 반입조차 가로막았다. 이것은 국제법 위반이었다. 식량과 물이 끊긴 상태에서 팔루자 사람들은 마당의 나무 뿌리를 캐먹었다.
미군의 공격으로 부상을 당해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목숨을 걸고 집안으로 데려와도 의사도 의약품도 없기 때문에 결국 죽어 갈 수밖에 없었다. 미군 탱크들은 길거리에 방치된 시체를 밟고 지나갔고, 개와 고양이 들은 시체에서 쏟아져 나온 내장을 먹고 살았다.

 

역겹게도 꼭두각시 정부의 총리 알라위는 죽은 사람 가운데 민간인은 한 명도 없다고 잡아뗐고, 해병대는 통역을 시켜 파괴된 집마다 “우리는 평화와 안정을 위해 여기에 왔습니다” 하고 쓰게 했다.
 이번 팔루자 공격에서 미군이 부분적으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은 것은 이른바 ‘럼스펠드 독트린’을 무시하고 1만 2천 명 이상의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재래식’ 작전을 펼쳤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저항세력의 영향력이 강력한 다른 18개 지역에서 똑같은 성공을 반복할 병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오히려 대규모의 해병대 병력이 팔루자에 묶여 있는 한 저항세력은 다른 지역에서 활동하기 더욱 쉬워질 것이다.
실제로 미군은 팔루자보다 인구가 3배 이상 많고, 지리적으로도 훨씬 넓은 모술에 겨우 2천5백 명의 병력만 보낼 수 있었다.

 

따라서 조지 W 부시는 의기양양하게 해병대의 노고를 치하했지만, 원래 이라크 침략을 찬성한 미국의 주류 언론들은 그에게 경고를 보내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죽거나 사로잡은 저항세력의 수로 성공을 가늠할 수는 없다 … 미국이 이미 베트남전쟁에서 배운 것처럼 그러한 성공은 신기루일 뿐이다” 하고 말했다.
<뉴욕 타임스>는 “만약 게릴라들의 근거지를 점령하는 것으로 점령군이 승리할 수 있다면 미국은 애당초 베트남에서 패배하지 않았을 것이고, 프랑스는 알제리 전투에서 승리했을 것이다. 또,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집단 처벌’로 그들[아프가니스탄인들]을 쉽게 굴복시킬 수 있었다면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1백만 명을 살해하고도 철군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실 이들의 예상대로 전투가 더 치열해지고 있다. 모술뿐 아니라 바그다드 남부 6개 지역이 2003년 4월 함락 이후 최초로 미군의 통제에서 벗어났다.
힐라에서는 저항세력과 폴란드 군대 사이에 처음으로 전투가 진행중이고, 남부 습지의 베두인족들은 영국 군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정치적 반발도 확산되고 있다. 11월 13일에는 계엄령을 어기고 바그다드에서 5천 명 이상이 반알라위 시위를 벌였다.
며칠 뒤 47개 정당과 단체들은 내년 1월 선거에 불참하겠다고 선언했다. 팔루자 공격이 부시 정부의 의도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조지 W 부시는 모르겠지만, 미군이 지금 맞서 싸우고 있는 이라크인들은 19세기 후반 제국주의 군대가 대적한 제3세계 민중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이라크인들은 1958년에 제국주의 세력을 자기 힘으로 쫓아낸 기억을 가지고 있을 뿐더러, 산업화와 전쟁을 통해 각종 기술과 무기에 대한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갖추고 있다.
물론 이라크 저항세력이 군사적으로 미국을 패배시키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미국은 이 점 하나만 믿고 앞으로도 계속 군사력에 의존할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결코 승리할 수 없다.
미군이 온갖 야만적 방법으로 군사적 승리를 거두었다고 생각한 순간, 이라크 게릴라들은 더 많은 사람들을 저항에 끌어들이면서 점령군에게 정치적 패배를 안겨 왔다.
부시 정부의 ‘테러와의 전쟁’은 애초부터 매우 정치적인 전쟁이었다. 이 전쟁의 성패는 미국이 거짓말과 협박을 통해서 다른 나라의 지배자와 피지배자에게서 얼마만큼 양보를 얻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하지만 미군이 이라크에서 야만적 학살과 정치적 패배를 반복할수록 정치적 동의를 얻기가 더 힘들어질 것이다. 지금 팔루자에서 일어난 대학살을 보고 자기 나라 지배자들이 이라크 침략에 계속 동참하는 것을 반길 사람은 거의 없다.

 

지난 2주 동안 미국, 영국, 필리핀, 한국 등에서 팔루자 공격 반대 시위가 있었다. 팔레스타인에서도 수천 명이 나섰고, 그리스에서도 1만 2천 명이 반전 시위에 참여했다. 칠레에서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방문하는 부시에 반대해서 5만 명이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라크 저항 운동과 국제적 반전 운동은 함께 가야 한다. 제국주의 점령은 이라크의 저항과 우리의 반전 운동이 결합될 때 끝장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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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일정에 끼워 맞추는 투쟁 - 승리할수 있나?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하나로 뭉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다. 기회는 왔지만 정규직들이 정신 못 차리면 꽝이다. (중략) 민주노총의 중심인 정규직 조합원들은 앞으로 [비정규직을 외면했다고] 손가락질 받을지 말지를 고민해야 한다. ... 무기한 총파업을 해야 한다. 4시간 파업, 하루 파업은 의미 없다. 저들도 그 정도 손해는 계산하고 감수한다. 그러나 무기한 파업은 계산이 불가능하다. 문제는 그것을 조직하는 것이다."


지난 9월 정권의 비정규직 개악법안에 맞서 열린우리당 당사 점거투쟁을 벌였던
전국 비정규직노조대표자연대회의 박대규 의장이 '다함께' 신문 (10월 9일자, 40호) 과 인터뷰 한 기사중 일부다. 그리고 11월 26일 전면적인 총파업에 돌입할 것이라던 당초 선언과달리 민주노총 지도부는 '저들이 계산하고 감수할만한' 6시간 시한부 총파업을 시행했다.


공무원 노동조합은 당초 예정되었던 파업 찬반투표와 총파업 돌입시간을 보름이나 연기하면서 민주노총의 투쟁일정에 합류하려 했다. 그 사이에 정권과 언론은 계속해서 엄정처벌 운운하며 협박을 가했고, 투쟁의 동력이 줄어드는데는 이러한 탄압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하지만 민주노총 투쟁일정에 공조한다는 결정 자체는 오히려 바람직한것이 될수도 있었다. 만약 민주노총이 '전공노 혼자 외롭게 투쟁하도록' 두지말고 15일 전면파업을 선언하고 투쟁에 돌입했다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15일 노동자대회에서 이수호 위원장은 26일 파업에 돌입할것을 선언했다. 그 결정은 공무원 노동자들을 위축시켰고, 정권은 더욱 자신감을 가지고 전공노를 탄압할수 있었다. 그나마 26일 총파업 이라도 착실히 준비했으면 좋았을 것이나, 단위 사업장에 완전 총파업으로 투쟁 지침이 내려왔고, 많은 노동자들이 그렇게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전에 갑자기 지도부가 6시간 총파업으로 지침을 바꿔버렸다. 이쯤되면 민주노총 게시판에 '( 이수호 위원장이 ) 고교 친구인 노동부 장관과 짜고치는 고스톱' 이라는 글이 올라온것도 지나친것이 아니다.


26일의 6시간짜리 '경고파업' 에서 이수호 위원장은 "국회가 29일 비정규 개악법안을 강행통과할 조짐을 보인다면 12월2일 전면적인 2차 총파업을 가질것" 이라고 말했다. 사실 경고파업 몇일전에 열린우리당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비정규직 관련 법안을 처리하지 않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힌바 있다. 그러나 이미 비정규직 대표자들의 열우당 점거 때도 '법안을 고치겠다' 고 약속했다가 몇일 지나지않아 '정부법안 문제없다' 로 돌아선것에서 보이듯이, 그러한 제스쳐는 시간벌기용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 경고파업이 벌어졌던 26일 정병석 노동부차관은 "비정규직 관련 입법사항은 교섭대상 아니" 라고 못을 박았다.


정권의 입장에서 비정규 개악법안은 언제든지 통과시킬수 있다. 민주노총이 이런식으로 흐지부지한 투쟁을 조직한다면 이번회기때 못할것도 없으며, 설사 이번에 통과되지 않더라도 언제든지 통과시킬 여지는 충분하다. '비정규직 개악법안 폐지' 가 아니라 '이번에는 통과시키지 마라' 라고 외치며 싸울수 있단 말인가? 어렵게 준비하고 조직한 총파업을 이런식으로 흐지부지 끝내놓고 다음에 통과할 기미가 보이면 그때 또 총파업을 선언하고 준비할건가? 민주노총 지도부에게 총파업이 그렇게 쉬우면 지난 몇년간 뭐하러 '양치기소년' 이라는 불명예를 들어가며 그토록 자주 총파업을 연기해 왔는지 묻고싶을 정도다.


국회일정에 끼워맞추는 이런식의 투쟁은 결코 승리할수 없다. 자본가, 정치인들이 민주노총을 눈치보고 노동계급의 힘을 두려워 하도록 만들지는 못할망정, 되려 정부여당 몇몇의 립서비스에 기대는 그런 투쟁은 승리할수 없을뿐더러 노동운동을 약화시키는 요인이다. 이수호 위원장은 '이런 분위기에서는 사회적합의란 있을수없다' 라고 이야기 했지만, 국회일정이 문제 아니라 신자유주의 경제질서가 게속되는한 지속적으로 노동자 민중에 대한 공격과 탄압이 있을것이며, 따라서 '이런 분위기' 는 계속될 것이다.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을 분명하게 우리 민중의 적으로 인식하고 그들에게 기대려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이런 분위기' 의 해소는 열린우리당도 국회도 만들어 주지 않으며, 사회적 합의로 해소되는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오로지 노동자 자신의 힘으로 싸워서 뺏아내는 것이다.


6시간 총파업, 국회일정에 끼워맞추는 조건부 총파업으로는 '사회적합의' 조차 성사시킬수 없이 여론의 질타만 받게 될 뿐이다. 이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열린우리당의 '이번 회기내 통과하지 않을것' 이란 말이 시간끌기용 사기술에 지나지 않는다는걸 알고있으며,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고공 농성을 펼치고 있다. 노무현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유사시 못살겠다고 길거리로 쏟아져 나올 국민이 1천만 명이 될 것" (모 장관이 민주노동당 의원들과 회동에서 한 말) 이라는 지금, 노무현에 대한 미련을 이만 버리고 노무현정권에 맞서는 전면적 투쟁의 길로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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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는 영화들 1

파업전야 : 1990 년, 한국, 장산곶매.

 

영화 <파업전야> 중

 

고등학교시절, 한편의 작은 영화가 뉴스에 오르락 거리던 때가 있었다. 뉴스화면에는 헬리콥터가 하늘을 돌며 상영을 중지하고 해산할것을 명령하고 있었고, 자욱한 최루탄 연기속에서 전경들은 곤봉을 휘두르며 '영화관객' 들을 몰아내고 있었다. 한때 그 영화는 보는것도 불법이었고, 심지어 가지고 있기만해도 경찰의 수사대상이 되는 물건이었다.

 

대학이란곳에 들어가고난뒤, 최루탄 대신 담배연기 자욱한 동아리방에서 이 놈을 보면서 어떤 선배들은 그 말도 안되던 시절들을 이야기하며 웃었다. 작은 공장에 노조를 만들려는 사람들과 그것을 탄압하는 자들, 현실적 여건때문에 노동조합에 참여할수 없는 사람들과 자본가의 회유와 협박 때문에 배신할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지독한 신파이고, 최루성 가득한 영화다. 공장 한구석을 점거하고 농성하던 노동자들이 구사대라는 이름의 용역 폭력배들에게 짓 밟히고 끌려나가는 장면까지, 그것을 어정쩡하게 지켜보던 다른 노동자들이 마침내 저마다 손에 스패너니 쇠파이프 따위를 들고 동료들을 구하러 달려나가는 장면까지, 지독하게 상투적이고 감정적이다.  영상미라고는 눈 씻고 쳐다봐도 찾을수 없고, 음향은 또 왜 그렇게 퍽퍽 튀며, 편집은 왜 그리 자주 끊기나? 영화적인 의미로만 따져보자면 결코 잘 만들었다고는 할수 없는 영화가 바로 파업전야다.

 

하지만 중요한건 그런게 아니었다. 영상미고 나발이고 그따위것들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것을 보고 감정이입해서 우는 그런짓은 바보짓이다' 라는 내 관념은 작품성 부족한 독립영화 한편앞에서 완전히 무너졌다. 게다가 정말 중요한것은 보고난뒤 내 가슴속에는 주인공이 치겨든 스패너같은 뭔가 묵직한것이 걸려버렸다는것이다. 

 

장산곶매 출신의 감독들은 나중에 충무로로 진출해서 영화를 한편씩 찍었지만, 개중에 봐줄만한건 단 한편도 없다. 그나마 성공한 케이스가 장윤현인데, 여기저기서 아이디어나 훔쳐다 자기것인양 갖다바르는 그의 영화들은 '어둠의경로' 를 통해 다운로드나 받으면 모를까 돈 주고 보기는 심히 아깝다.

 

랜드 앤 프리덤 : 1995 년, 영국, 켄 로치.

 

 

'키노' 의 열렬 애독자였고 정성일의 극렬 지지자 임을 자처하는 나지만, 사실 그렇게 성실한 독자는 못되었다. 키노 창간호가 나오고나서 몇달뒤 입대를 해야했던 거다. 다만 복무 기간중에라도 키노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정기구독은 계속 유지하고 있었고, 덕분에 가끔씩 외박이나 휴가를 나갈때마다 집에는 아무도 보지않는 키노들이 쌓여가고 있었다.  입대후 1 년이 지나 정기휴가를 나왔을때, 밀려있던 키노들이 외쳤다. '랜드 앤 프리덤을 한국에서도 극장에서 상영한다!' 고 ^^;

 

내가 휴가를 나왔을때는 이미 이 영화를 상영하는 곳이 없었다. 시기상의 문제만이 아니라, 백두대간이 수입했으면 동숭 시네마텍 같은곳에서나 상영했을 것이지, 대구같은 지방 도시에서 상영을 했었을지는 심각한 의문이다. 하지만 어쨌든 마침 비디오로는 출시가 되었던 상태고, 다행히(?) 인기 없는 품목이라 아무도 찾는 사람이 없어서 대여기간의 압박없이 보고 또 보고 할수 있었다.

 

조그맣고 어두침침한 다락방에서 시간가는줄 모르고 할아버지의 유품들을 읽어내려가던 소년처럼, 나는 시간가는줄 모르고 영화속에 빠져들었다. 그 기록은 파시스트의 공격에 맞서 보통 사람들의 삶을 지켜내기위한 투쟁의 기록이며, 전 세계의 노동자들이 국경을 초월한 연대를 실현했던것에 대한 기록이다. 또한 동시에 원칙에 위배되는 입장들, 그런 입장을 주장하는자들 과의 타협이 어떻게 혁명을 망쳤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기도 하다. 몇번을 반복해서 봤지만, 볼때마다 드는 느낌은 '무언가 남겨진 이야기가 더 있다' 라는 것이다. 그 공백은 다락방에서 할아버지의 기록을 보던 소년이 채워넣을 몫이다. 그와 같이 할아버지의 기록을 봤던 우리들과 함께.

 

랜드 앤 프리덤은 처음으로 인터내셔널가 를 접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나지막하게 부르다가 마지막에 거대한 합창이 되는 영화속의 인터내셔널가와 같은, 우리의 운동은 그런것이 될것이다.  

 

메이트 원 : 1987 년, 미국, 존 세일즈.

 

 
 

 

 

 

 

 

 

 

 

 

'혼자' 영화 본적이 있는가? 비디오나 테레비젼이나 컴퓨터가 아니라, 단지 상영관에 혼자 갔을뿐 아니라 넓은 상영관에 단 혼자 앉아서 영화본적이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나는 딱 한번 그런 기억이 있는데, 그것이 이 메이트 원 이다.

 

당시 난 대구에 살았는데, 서울과 달리 지방도시들은 시네마텍 같은곳을 찾기가 만만찮게 어려운 작업이다. 그나마 열린공간 Q 라는 200여석 규모의 소극장에서 간간히 영화제 라는 이름을 붙여 호러물이나 이런 종류의 영화들을 상영해주곤 했었다. 사실 말이 영화제지, 포스터도 변변히 붙여져있지 않은 좁고 퀴퀴한 냄새가 나는 공간에서 영화만 보고 가라는 것이었다. 메이트원을 상영하는날, 하필 그 시간에 그걸 보러 온 사람은 나 밖에 없었고 아저씨는 영화제 참가비 3000 원을 받아쥐고는 아무말 없이 오직 나만을 위해서 영화를 틀어주었다. ^^;

 

메이트원은 같은 이름을 가진 20년대 미국의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실화를 다룬 작품이다. 주인공은 파업이 일어난 광산에 대체인력으로 고용되는데, 사실 그의 정체는 노동운동가로서 메이트원에 민주적인 노조를 건설하려고 한다. 영화는 그 과정에서 자본가와 노동자들의 대립뿐만 아니라 사용자에게 매수된 다른 노동자들과의 갈등까지 폭 넓게 다루면서 노동자들이 건설해야할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마지막에 사장이 고용한 갱들에 의해 조합원과 마을사람들이 학살당하는 장면에서는 '파업전야' 와 비슷한 '묵직한것' 도 걸린다.

 

생각해보면, 파업전야에서도 랜드 앤 프리덤 에서도 메이트원 에서도 진정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오지 않았다. 역시 그것은 영화감독이 아니라 관객이 해내어야할 몫인가 보다.

 

빵과 장미 : 2000 년, 영국, 켄 로치.

 

 

마지막으로 부산 영화제 갔던것이 언제더라?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가더라도 항상 빠듯한 알바일정^^ 과 적은 예산 때문에 영화를 많이 볼수 있는것도 아니었지만, 미쳐 예약을 하지않아 뜨거운 햇볕속에 한시간씩 줄서 있는것은 정말 고역이었지만 그래도 몇년째 영화제를 제끼고 있다보니 역시 갈수 있었던쪽이 좋은 것이었다는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2000 년 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4회 아니면 5회 영화제에서, 몇몇 단편들을 본뒤 천리안 영화동호회에서 알게된 사람들을 만나 밤새도록 술을 퍼마시고서 다음날 아침에 흐리멍텅한 머리로 봤던 영화가 빵과 장미다. 동호회 사람들은 뭔가 따분한 ( 내 주관에서 ^^ ) 영화를 본다고 우르르 몰려가는 바람에 또 나만 남겨져서 이놈을 보게 되었다. 선택은 현명했다. 이 놈을 본뒤 숙취가 확 깨버렸으니까.

 

빵과 장미는 얼핏 '메이트원' 을 생각나게 한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투쟁을 조직하는 과정이 담겨져있으며, 노동자들 사이의 대립이나 불신에 대한 장면들도 여과없이 보여준다. 메이트원을 좀더 밝고 경쾌한 이미지로 만든다면 빵과 장미 가 될것같다. 그래서 나는 메이트원 을 생각하면 빵과 장미가 생각나고, 빵과 장미가 생각나면 메이트원이 떠오른다. 두 영화간에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여주인공 이다. 그녀는 멕시코에서 국경을 넘어온 이주노동자 이며, 여성이며, 비정규직 노동자로 그려진다. '열악한 노동' 의 이미지를 모두 가지고 있는 그녀는 가장 소외받는 노동자이며, 그 때문에 노동운동가인 남자주인공과 트러블을 빚기도 한다. 그러나 마침내, 노동조합을 건설하고 파업투쟁에 돌입하는데 성공한다.

 

'빵과 장미' 역시 실제로 있었던 세탁용역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녀들은 행진할때 구호는 '빵 뿐만 아니라 장미도 필요하다' 였다고 한다. (원문은 까먹었다) 인간다운 삶이 어떻게 빵만 가지고 이루어질까?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싸우지 않으면 얻어낼수 없는것이 이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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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27 파병연장 저지 행동의 날에 함께합시다. - 일시 장소 변경


10.17 국제공동반전행동의 날

 

인생은 아름다워 님 블로그 ( http://blog.empas.com/powerttpp/ ) 에서 퍼와서리 제 연락처를 붙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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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27 파병연장 저지 행동의 날>
 
 
미군의 팔루자 공격은 더욱 큰 저항을 낳고 있다. 팔루자에 대한 공격은 이라크 전역에서 점령에 대한 분노만을 더욱 높였을 뿐이다. 북부의 모술과 팔루자 근처에 있는 라마디등 저항이 팔루자에서 다른 지역으로 옮아가고 있다.
 
모술에서 지금 다시 점령군과 이라크인 저항 사이에 접전이 벌어지고 있다. 그래서 미군은 팔루자에 있던 미군 수 천명을 모술로 급파해야 했다. 이라크의 모스크(성원)들과 연계를 맺고 있는 "무슬림 학자 연합"은 팔루자 공격에 대한 항의로 내년 1월 선거 보이콧을 호소했다.

미군은 이라크인들이 점령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선전하기 위해 이라크 정부군을 작전에 동원했다. 그러나 이들은 전투과정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수백 명의 이라크 군인들은 학살에 참가하는 것보다 군대를 그만두는 것을 택했다.
미 NBC 방송기자가 폭로한 부상당한 이라크인에 대한 미군의 "확인사살" 장면 사진은 팔루자 공격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줬다. 이 사진은 "제2의 아부 그라이브"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미군은 적신월사(이슬람 국가 등에서,‘적십자사’를 이르는 말)가 팔루자인들에게 식량, 물, 전기등을 공급하려는 것조차 막고 있다.
이것이 바로 중부군 사령관 아비자이드가 말한 "해방된 팔루자"다. 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이라크인들의 저항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미군은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라크에서 취재했던 다큐멘터리 PD 김영미씨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술이 '제2의 팔루자'가 되고 있고 키르쿠크, 하위자 등 저항세력의 거점들이 많다. 이들이 자이툰 부대를 공격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고, 미군이 이들 거점을 공격하기 위해 한국군의 작전 참여를 요청할지도 모른다."
 
상황이 이런데도 노무현 정부는 위험천만한 게임을 계속하고 있다. 파병연장을 추진하려 한다. 노무현은 12일간의 해외 순방 일정(11월 12-24일)을 마치고 돌아와 파병 연장 동의안을 국무회의에서 통과시킬 가능성이 높다. 아마 이 시점은 11월 27일 직전이나 직후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나면 파병연장동의안은 국회로 넘어갈 것이다.
 
지금 노무현 정부의 핵심 아킬레스건인 파병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건설할 때이다. 그 첫 번째 초점이 11월 27일 파병연장반대집회가 될 것이다. 여러분의 참여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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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한 사망 병사 어머니가 지적했듯이,  이라크 전쟁은 점점 가난한 사람들의 전쟁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마이클 무어의 영화 '화씨911' 에서도 드러났듯이 전장에서 죽어간 병사들 대부분이 가난한 노동계급 출신들입니다. 이라크에 '자원' 해서 참전한 자이툰부대 한국군 병사들 역시 경제난과 취업난을 주요 이유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쟁을 일으킨 바로 그 자들이 국내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통해서 노동계급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11월 27일의 파병연장 저지 행동의 날은 소수 부유층들의 이익을 위해서 다수의 가난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또 한번의 기회가 될것입니다. 파병연장 저지 행동의 날에 함께합시다.  

 

일시 : 2004년 11월 27일 오후 4시

 

장소 : 국회앞 국민은행

 

오시는방법 : 지하철 5호선 여의도역 하차

 

연락처 : 018-503-7858 - 하이에나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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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영화제 - '점거하라, 저항하라, 생산하라!' (the take)

* 이 글은 진보네님의 [트랙 팩 03 : 노동영화제] 에 관련된 글입니다.

이번 노동영화제의 폐막작인 '점거하라, 저항하라, 생산하라' (the take) 는 이번 노동영화제의 모토이기도 하다. 자본주의적 세계화에 맞서서 새로운 대안을 창출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경기악화로 인해 자본가들이 임금을 체불한채 폐쇄하고 떠나버린 버려진 공장을 노동자들이 '점거' 하고 경영진없이 노동자들의 합의와 원칙에 따라 생산을 시작하는 모습들에 대한 다큐멘터리 이다.


'노 로고' 의 저자이며 반세계화 운동 진영의 주요 이론가이기도 한 나오미 클라인은 신자유주의적 생산양식을 대체할 대안을 찾기위해서 캐나다의 미디어 운동가인 아비 루이스와 함께 아르헨티나로 향한다. 아르헨티나는 신자유주의 경제질서가 망쳐버린 대표적 국가가운데 하나이며, 동시에 버려진 공장을 점거하고 생산하는 공장점거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아르헨티나는 원래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가운데 하나였다. 그러한 나라가 오늘날의 피폐한 경제위기를 맞이한것을 두고 주류 언론에서는 '지나친 노동자투쟁과 포퓰리즘의 결과' 라며 왜곡 선전해왔다. 그러나 진실은 그렇지않다. 1940년대말까지 아르헨티나 경제는 육류·식료품 수출로 호황을 누리고 있었지만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유럽의 농업이 되살아나고 미국의 농산품이 유럽으로 수출되면서 주된 타격을 받았다. 더불어 산업의 성장도 지지부진했다. 친노동정당 이라는 일반적인 평가와는 달리, 페론주의 정당(정의당)은 경제 위기에 직면하자 노동자들의 임금을 동결하고 외국 투자자들에게 시장을 개방했지만 그 성과는 일시적이었다. 페론은 노동자들을 공격하면서 저항에 부딪혔고, 권위주의적 정책으로 대중의 미움을 받았다. 결국 위기 관리 능력 부재로 지배 계급의 불신과 불만을 받아 가다가 1955년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다.


영화속에서 전 대통령 카를로스 메넴은 매우 우스꽝스러운, 자본가계급을 대변하는 독재자의 이미지로 등장한다. 그러나 그 역시 페론주의자 출신으로, 89년 집권당시 국영기업들을 대부분 사기업화했을 뿐 아니라 일자리를 대폭 줄였고, 파업 노동자들을 잔혹하게 탄압했다. 이 당시 아르헨티나는 IMF가 권고한 정책들인 규제 완화·민영화·노동 유연화를 적극 도입했고, 그래서 세계 지배자들로부터 '아르헨티나가 IMF의 모범생' 이라는 찬사를 받도록 만들었다.


모범생의 신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1991년 아르헨티나는 페소화를 달러화에 연동시키는 페그제를 실시해 아르헨티나 경제를 국제 금융시장의 리듬에 더 종속시켰다. 파국은 1997년 동아시아 위기 때 찾아왔다. 동아시아에서 금융 공황이 발생하자 아르헨티나에 들어온 해외 자본들이 서둘러 빠져나갔다.
당시 대통령 데 라 루아는 경제위기가 찾아오자 모든 은행계좌를 동결함으로써 중간계급과 노동계급의 예금을 사실상 몰수했지만, 그런 와중에 국제투기자본은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하룻밤에 몇억달러씩을 빼내갔다. 페소화가 달러화와 연동돼 있어서 아르헨티나가 입은 타격은 남미 경제에서 더욱 심각했다. 소위 경제 기적을 일구었다는 바로 그 신자유주의 정책이 경제 기적을 하룻밤 사이에 신기루로 만들고 아르헨티나 경제를 심각하고도 장기적인 불황에 빠뜨렸다. 여기에 물 사유화를 비롯한 신자유주의 정책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고통속으로 밀어넣었다.


당연히 저항이 뒤따랐다. 화이트칼라 노동자들과 부에노스아이레스 인근의 하층 중간계급 사람들이 도심으로 몰려나와 실직한 육체 노동자들과 함께 대통령궁을 포위했다. 이틀 동안 경찰과 유혈낭자한 충돌이 벌어져 약 30명이 사망한끝에 결국 데 라 루아는 헬기를 타고 도망쳤다. 아르헨티나는 그 뒤로도 4주 동안 대통령이 네번이나 바뀌는 혼란끝에 두알데가 겨우 집권에 성공했다. 그러나 2003년 2월 1일 두알데 정권이 예금 인출 제한 조치를 계속 유지하려고 하자 아르헨티나 주요 도시들에서는 다시 대규모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생필품을 살 돈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은 예금 인출 제한 조치가 위헌이라는 대법원의 결정을 반겼지만, 정부는 대법원의 결정을 무시했다. 그러자 시위대는 '다 꺼져버려라', '우리 돈을 돌려 달라' 고 외치면서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에 절망만 있는것은 아니다. 아르헨티나는 신자유주의 파산의 결정판이면서 또한 신자유주의의 대안을 보여 주는 뚜렷한 사례이기도 하다. 1990년대에 아르헨티나 정부가 전면적인 사기업화를 추진하자 실업자들이 폭증했는데, 그러면서도 사회보장 혜택을 전혀 받지 못했다. 실업 노동자들은 대량해고에 맞서 전투적 대중운동인 피케테로스 운동을 건설했다. 경제 위기 때문에 지금 실업자 수는 네 명 가운데 한 명 이상의 수준이다. 영화속에 등장한 공장점거운동 역시 실업자운동중 하나이다.


공장점거운동은 폐쇄된 공장을 노동자들이 점거하고 자체적으로 생산에 돌입하는 운동이다. 브룩만 양복공장에서 일하던 몇십명의 여성 노동자들이 처음으로 시도한 이 운동은 자논 세라믹등 몇몇 모범적인 사례들을 선보이면서 아르헨티나 민중들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역민들은 '전 경영진보다 더 근면해지고 높은 품질에 가격도 낮아졌다' 며 공장점거운동에 돌입한 노동자들에 대해 높은 지지를 보내고 있다. 점거한 공장에 대해 경찰의 공격이 임박해지면 많은 사람들이 연대하러 오기도 한다. 공장점거운동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맞서는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공장점거운동은 한계도 가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경제적인 상황개선을 우선시하는 운동이다보니 권력에 도전하지 못하고 있으며, 때문에 법원으로 국회로, 자신들이 공장을 운영할수 있도록 해달라고 '애원' 하러 다녀야 한다. 당연히 법관이나 국회의 권력자들은 대부분 그런 요구를 묵살하며, 오히려 사유재산을 침해하지 말고 공장에서 퇴거하라고 명령한다. 그들은 자본가의 편이지 노동자의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점거된 공장은 해당 노동자들이 합의한 원칙에 따라 운영되는데, 대부분 전 경영진을 배격하고 동일임금을 적용하지만 어떤곳은 전 경영진과 협력하며 동일하지 못한 임금을 배분하면서 운영되는곳도 있다. 이러한 한계점들은 전체사회적인 변화를 추구하지 못하는 운동방식들 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모습들이 아닌가 한다.


영화의 주요한축 가운데 또다른 하나는 노동운동을 하는 여성과 그 어머니로 대변되는 아르헨티나 대통령선거를 바라보는 민중들의 입장이다.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아르헨티나에 끌어들인 전대통령 카를로스 메넴의 재출마와 페론주의당 대통령 후보인 키르츠네르, 양자에 대해서 마티 라는 이름의 노동운동가 여성은 둘다 똑같은 놈들이고 그 어떤 '구세주' 도 우리에게는 필요하지 않으며 스스로의 힘을 믿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직 많은 민중들은 그녀의 어머니처럼 페론주의에 대해서 완전히 기대를 접고 있지는 않은것처럼 보인다. 메넴은 거리를 경찰로 채워 치안과 질서를 회복하고 사유재산을 보호하겠다고 큰 소리치며 결선투표까지 진출하지만, 결국 경제상황의 악화를 견디지 못한 대중들의 분노의 목소리에 밀려 기권하게 된다.


지금 키르츠네르는 아르헨티나를 정치적으로 안정시키기 위해서 IMF와 더 좋은 조건으로 협상해야 하고, 노조 관료들에게 잘 보여야 하며, 좌파들에게 어떤 상징적 제스처를 취해야 하고, 실업자들의 불만을 조금이나마 들어주어야 한다는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가 실제로 한 일이라고는 '고용 창출 계획' 을 통해 실업수당을 제공하고, 이를 페론주의 조직과 피케테로 조직들이 분배하게 하는 정도의 것이 전부다. 그런 태도 덕분에 그는 지난해 선거 이후 잠시나마 안정을 누릴 수 있었고 좀 유약한 일부 좌파들한테서 약간의 지지를 끌어낼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의 개혁도 립서비스에 지나지 않을것이다.


키르츠네르나 페론주의당 따위에게 자신의 미래를 맡겨서는 제대로 된 어떤 대안도 나올수 없다. 나오미 클라인은 마치 '대안찾기' 에 너무 골몰한 나머지 저항하는 모습들을 의도적으로 배재하고 점거 생산 이라는 양식에 촛점을 맞춘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저항하지 않고 무슨 대안이 나온단 말인가? '점거하라-저항하라-생산하라' 가 아니라, '저항하라-점거하라-생산하라' 가 되어야 할것이다. 법관이나 국회에 애원하는 모습이 아니라, 아르헨티나 노동자들 자신의 조직된 힘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전체사회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저항하고 점거하고 생산하는' 운동이 될때 그것이 진정한 우리의 대안이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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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영화제 - 볼리바리안 혁명 : 베네주엘라 민중의 삶과 투쟁

* 이 글은 진보네님의 [트랙 팩 03 : 노동영화제] 에 관련된 글입니다.

서울 올라온뒤 노동영화제는 빠지지 않고 챙기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만 매년 1회씩 열리는 영화제에서 보는 영화의 편수는 고작 하루참가, 1~2 편이 전부다 보니 도저히 갔다왔다는 실감이 안 났었다. 올해 11월은 예년보다 더 바쁜 달이었다. 온라인에서 주절거리기를 주로하고 집회가 있으면 참여보다는 구경을 주로하면서도 '이정도도 어디야' 하며 자기 합리화에 능숙했던 예년과는 달리 올해는 나름대로 이런저런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에, 영화제 같은거 쫓아다닐 시간은 더 없을거라고 지례짐작을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하루 참여에 1~2 편을 보는것이 고작이었던 예년에 비해 올해는 날짜수로 3일에, 7편을 보는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아무래도 내게 있어서는 '시간없다' 라는 말이 핑계에 지나지 않는것이다. 시간이 없는게 아니라 열정과 노력이 없는것이다. 관심이 있으면 인터넷 돌아다니며 뒹굴거리는 행위대신에 적극적으로 끼여들게 되는거다. 지방에서 올라와서 하루이틀 보고 가는 사람들도 있는걸보면 '시간없다.' 그거, 거짓말이다. 아무튼 이제껏 영화제라고 쫓아다닌거 중에 이번 노동영화제 만큼 개,폐막작을 비롯해서 작품들의 양이나 질에서 풍성했던적도 없는거 같다. 지난번에 올린 '계속 된다 - 미등록이주노동자 기록되다' 를 비롯해서 모든 작품에 감상후기를 다 남겨야 하겠지만 그러지는 못할거같고 아쉬운대로 개,폐막작에 대한 인상만 좀 끄적여 봐야겠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개막작은 '볼리바리안 혁명 : 베네주엘라 민중의 삶과 투쟁' 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물이다. 이 작품은 폐막작및 몇개 작품과함께 노동영화제 섹션중 '혁명은 진행중' 이라는 섹션에 속하는 것으로, 국제 미디어 활동가의 연대체 '깔리 이 미디어' 의 일원인 '마르셀로 안드라데'씨 가 연출한 작품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도전적이다. 이 작품은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시기를 제4차 세계대전의 시기로 규정한다. 1,2차 세계대전은 잘 알려져 있는 그것이고, 3차 세계대전은 흔히들 냉전 이라고 부르는 시기를 말하는 것으로 이 시기에 일어난 미.소 양국의 침략전쟁, 내전 및 쿠테타의 배후조종, 지역분쟁들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약 2600만의 인구가 희생되었다 하니 3차 세계대전이란 말도 틀린말이 아니다. 그러면 4차 세계대전은? 그것은 IMF 나 WTO 같은 신자유주의 기관들을 앞세운 국제적 자본이 전세계의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가하는 살인적인 억압과 이에 맞서는 민중들의 투쟁이다. 영화의 무대인 베네수엘라는 세계 3위의 산유국이라 한다. 세계 석유의 약 13퍼센트가 베네수엘라에서 생산된다. 1930년대까지 베네수엘라 석유는 대부분 미국 기업들이 소유하고 있었으나, 76년에 국유화 되었고 베네수엘라 국영석유회사(PDVSA)가 석유를 통제했다. 그러나 석유때문에 이득을 본것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80년대 중반에 베네수엘라 인구의 36% 에 달하는 사람들이 극빈층이었다. 1989년에 대통령 카를로스 안드레스 페레스는 그가 '대전환' 이라고 부른 조처들을 도입했다. 그것은 시장 지향적 전환이었고 국제통화기금(IMF)이 요구한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도입한다는 결정이었다. 그것은 베네수엘라 노동자 대다수의 생활수준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페레스의 결정에 반발하는 격렬한 시위가 여러 날동안 계속됐고, 정권은 경찰과 군대를 동원해 이를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거리에서 총에 맞아 사망한 사람만도 수백에 이른다. 잔인한 탄압때문에 투쟁은 성공하지 못했으나, 민중들의 마음에는 아직 분노가 남아 있었다. 1992년 당시 육군 중령이던 우고 차베스는 일군의 젊은 장교들과 함께 '강력한 사회 변혁 의지를 가진 진보적 군인 집단이 위로부터 경제·사회 개혁을 추진할 수 있다' 는 사상으로 반정부 쿠테타를 기도하지만 실패한다. 대중은 주기적으로 거리로 쏟아져 나와 변화를 요구했지만 부패한 정권은 무자비한 탄압으로 일관했다. 좌파라고 불릴만한 사람들이 싸우는 민중들에게 전망도 제시하지 못하고, 투쟁을 지도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우고 차베스는 답답한 민중들의 가슴을 뚫어주는 희망처럼 보일수 밖에 없었다. 쿠테타에 패배한 차베스는 감옥에 갇혔지만 사람들은 연일 그를 지지하고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으며 결국 차베스는 94년에 석방된다. 베네수엘라의 경제는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도입하여 번영한것이 아니라 급속히 붕괴되어 갔다. 공공부문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회사들이 매각, 민영화되었고, 실업율은 증가하는데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이 서민들의 목줄을 졸랐다. 영화속에 등장한 어떤 시민은 버스가격이 200% 나 올랐는데 분노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었겠느냐고 말한다. 36%에 달했던 베네수엘라 빈민층은 몇년 지나지않아 65%로 늘어났으며, 사람들은 더 이상 참을수 없었다. 그럴때 차베스는 대중들의 저항에 자신이 볼리바르주의 라고 이름붙인 이데올로기를 제공했다. 19세기의 라틴아메리카 해방 투사 시몬 볼리바르의 이름을 딴 그 이데올로기는 민족주의적이고 포퓰리즘적인 경향이 강했다. 차베스는 더이상 길거리에 버려지는 아이들이 없도록 하겠다며 다수의 희생을 바탕으로 부를 축적한 소수를 격렬하게 비난했으며 이는 민중의 마음을 대변한 것이었다. 결국 그는 98년에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되었으며 사람들은 이를 볼리바르 혁명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지금 베네수엘라의 공식 명칭은 베네수엘라 '볼리바리안' 공화국이다. 차베스는 헌법을 개정하여 보다 많은 사람들의 권리가 보장되는 새로운 헌법을 만들었다. 대기업의 횡포로부터 소규모 자영농이나 어민들의 권익을 보호할수 있도록 했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교육의 접근권을 보장해주기도 했으며, 여러가지 국책 사업들을 전개하기도 했다. 민중들은 차베스의 개혁이 자신들을 빈곤으로부터 구해줄것이라고 믿고 있으며, 2002년의 우파 쿠테타나 2004년 보수층들이 조직한 소환투표로부터 그를 지키고 구해내었다. 일부는 베네수엘라가 차베스의 위로부터의 혁명과 민중들의 아래로부터의 저항이 잘 조화된 이상적인 케이스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차베스는 말로는 신자유주의를 비판하지만, 그의 정부 재정은 정부 서비스 삭감이라는 신자유주의 원칙에 따라 운영되고 있다. 그 결과 가난한 사람들은 계속 가난해졌다. 또,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삭감되고, 그들이 당연히 받아야 할 보너스 지급이 취소됐다. 보수우파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경제적,정치적 권리를 누리고 있다. 심지어 차베스에 맞서는 가장 강경한 보수파 신문의 편집장도 '차베스로 인해 구체적으로 침해당한 권리가 뭐냐' 라는 질문에 '그런건 없다' 고 답할 정도이다. 때문에 그들은 지속적으로 차베스에 맞서는 이런저런 행동들을 조직할수 있는 것이다. 차베스는 2000년 국영석유회사(Petroleos de Venezuela)에 대한 개혁 조치를 결정했을 때 기득권층과 결정적인 갈등구도에 돌입했지만, 사실 이때조차 기득권세력을 무력화 시키는 조치는 아니었다. 베네수엘라 경제의 대부분은 아직 이들 보수우파들의 수중에 남아있으며, 아직도 길거리에 버려지는 아이들이 있다. 그리고 우파들의 공격이 있을때마다, 차베스는 민중의 힘 보다는 주로 군부의 힘에 의존하여 권좌를 지키려 하고 있다. '볼리바리안 혁명 : 베네주엘라 민중의 삶과 투쟁' 은 차베스가 등장한 배경과 그를 가능하게했던 사람들의 역동적인 투쟁모습이 잘 담겨진 영화다. 이 영화를 보는것만으로 투쟁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고무받을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차베스 정권의 한계에 대해서 거의 언급하지 않은것은 큰 단점이다. 차베스의 개혁은 여기저기서 지지부진하며, 진정으로 민중을 위한 것인가 하는 부분에 의문점이 많다. 그것은 베네수엘라의 혁명이 아래로부터의 거대한 대중적 저항을 통해서 수립된것이 아니라, 쿠테타와 국민투표라는 위로부터의 혁명방식에 의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위로부터의 혁명, 또는 위로부터의 개혁을 주장하는 다른 모든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차베스는 기존의 보수세력들과 타협할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그 때문에 진정한 사회변혁은 자꾸만 연기될수밖에 없으며, 결국 이루어지지 못한채 미완의 것으로 남게 되는것이다. 베네수엘라 혁명은 '진행중' 이며,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차베스의 개혁성과가 그 혁명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된다. 진행중인 혁명은 노동계급 자신의 것이어야 한다. 다행히 영화를 제작한 '마르셀로 안드라데'씨 는 상영후 있었던 토론회에서 자신역시 노동자들의 투쟁이 핵심적이라고 생각하며, 남한 노동자들의 운동에 대해서 많이 배우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조직들을 이용해 독자적으로 행동할수 있는가, 차베스와 같은 위로부터의 혁명이 아니라 진정한 아래로부터의 권력을 수립하고 보수우파들로부터 민중의 것을 되찿아올수 있는가 하는 여부가 베네수엘라 혁명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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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영화제 - 계속된다.

* 이 글은 진보네님의 [트랙 팩 03 : 노동영화제] 에 관련된 글입니다.

작년 초에, 정독도서관 맞은편의 아트시네마 (구 아트선재센터) 에서 인권영화제를 본적 있엇다. 당시만해도 별다른 활동이 없었던 나는 한편의 낮선영화를 맞이하고는 당혹감을 감출수 없었다. 그 낮선 영화에는 피부색이 다른 노동자들이 나와서 우리나라 시내 한복판에서 '단속추방' 이라고 쓰여진 천을 찢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에서의 설명을 통해 그들이 이주노동자 라는것을 알았지만, 왜 그들이 고용허가제를 반대하는지, 노동허가제 라는것이 무엇인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아서 당혹스러웠다. 고용허가제면 충분한거 아니었던가? 오늘 같은 장소에서 열린 노동영화제에 다녀왔다. 그동안 신경을 많이 못 쓰고, 이런저런 일이 생겨서 미뤄뒀었는데 이제서야 퇴근후에 가보게 된거다. 전적으로 나의 개으름과 무신경의 탓이다. '계속된다' 라는 제목의 영화는 정말 이주노동자들의 투쟁과 삶이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1년 반 남짓한 시간을 지난 다음에야 다시 스크린속에서 볼수 있었던 이주노동자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계속해서 싸움이 끝나지 않았음을, 계속해서 싸울수 밖에없는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내게 있어 이 영화는 지난번 인권영화제에서 본 영화의 속편이라고 해도 지나칠바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때 무대위에 올라와서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던 이주노동자들중 상당수는 지금 우리나라에 없다. 인권영화제에서 만난 그들은 당시 내게 있어서 낯선 무엇이었고, 동정의 대상이었다. 그때 내가 흘린 눈물은 그들이 불쌍해서 흘린 눈물이었다. 당시만해도 내가 가지고 있던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인식은 '돈 벌러온 고생하는 외국인' 단지 그것이었다. 그렇지만 1년 반 이 넘는 시간중에 나는 '다함께' 에 가입했고, 그들과 함께 행동하고 공부하면서 내 인식은 바뀌어갔다. 내게있어 더 이상 그들은 불쌍한 거지들이 아니다. 그들은 이 자본주의 사회를 떠받드는 사람들이면서, 동시에 그 사회를 바꿀수있는 힘을 가진 '노동자' 였음을 깨달았다. 내가 그것을 깨닫기 한참전에 이미 이주노동자들은 당당한 노동자로서 살고 있었음도 동시에. 당시 무대에 올라와 인사하던 사람들중에 비두씨가 있었다. 그는 작년 10월 이용식 열사가 분신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대회에 참석했다가 경찰의 폭력적 연행에 잡혀서 추방당했다. 경찰차에 억지로 태워지기전 그는 '나도 인권 있다. 내 인권, 내 인권을 말하는데 왜 입을 막냐' 고 외쳤다. 당연히 경찰들은 그를 땅바닥에 찍어누르고, 수갑을 채우고, 폭력을 가했다. 그는 추방당했지만 올해 1월에 뭄바이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에 참석해서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탄압을 폭로했다. 올해 2월에는 이주노동자 지부장이었던 샤말 타파씨가 대학로에서 '묻지마 연행' 을 당했다. 당시 출입국 관리소측은 항의집회를 막기위해서 연행이 끝난 다음에야 어디로 연행되었는지 가르켜 주었다. 그는 외국인 보호소라는 이름의 감옥안에서 강제추방에 반대하고 살인적 단속추방에 항의하는 단식투쟁을 벌였고, 우리는 우리 모두가 샤말타파가 될것이라고 그렇게 외치며 행진했다. 얼핏 기억하는 그들 말고도, 정권의 강제추방에 절망하고 항의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있다. 작년 인권영화제에서 마주친 그들은 한국인 노동자들과, 특히 민주노총의 열악한 상황인식 때문에 절망하고 있었다. 이주노동자들을 같은 노동자로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같이 싸워줄것을 호소했었다. 그런문제들은 올해도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특히 민주노총의 관료들은 이주노동자의, 일반 조합원들의 요구가 있기 전에는 결코 나서서 이 싸움을 조직하려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한꺼번에 괄목상대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점점 더 많은 한국인노동자들이 연대하기 시작했던것도 사실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는 자들은 피부색을 차별하지 않는다는것을 깨달아 가게 된것이다. 이제서야 우리들은 부족하지만 조금씩이나마, 노동자는 하나라는 것을 깨달아 가는 중이다. 이주노동자들의 명동성당 농성은 만 일년을 훌쩍 넘겼다. 그동안 그들의 삶은 계속되어왔고, 정권의 압박도 계속되고 있다. 아직도 많은 이주노동자들은 '불법사람' 이 되어 숨어 지내야한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들은 그 기간동안에 자신들의 요구뿐만 아니라 반전운동에, 한국노동자들의 투쟁에 열정적으로 결합해왔다. 우리가 깨닫기 전부터, 그들은 노동자는 하나라는것을 몸소 실천해왔다. 그렇게 우리의 투쟁도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자신들이 저지른 파병정책 때문에 받게 된 테러에 대한 위협을 무슬림을 위시한 이주노동자들에게 전가시키는 정권이 있는한,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싸움에 함께 할것이다. 탄압은 계속되고 있고, 투쟁도 계속되고 있다. 투쟁에 계속되는한 지금 내가 일년 몇달만에 속편 을 본것처럼, 내년쯤에 또 다른 속편 을 보게 될것이다. 그러나 그냥 보기만 하는 입장은 아니어야 할것이다. 나는 그 영화에 당당한 출연자로서 등장해야 한다. 아직은 부족하기만 하지만, 나의 활동도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이다. 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어야 한다. 자본은 피부색을 구별하며 탄압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가해지는 탄압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우리는 함께 싸워야 한다. 이제 더이상 그 눈물은 그들만을 위한것은 될수 없는 것이다. stop crackdown. we are one. 함께 싸우지 않으면 우리는 그 무엇도 얻을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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