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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론을 읽었다.
간만에 너무 재밌게 그리고 술술(?) 읽었다.
말 그대로 100년전의 사람이 쓴 빈곤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에게 빈곤이란 무엇인지 이렇게 명쾌하고 쉽게 설명해 줄 수 있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물론 다들 아는 사실이겠지만
가와카미 하지메의 빈곤을 없애는 방법 자체는 많이 부족하고
또한 현실에 맞지 않는 측면이 있지만
이것이 100년전 근대 경제학자가 바라본 빈곤에 대한 생각의 정리라는 것을
감안해서 읽는다면...아 그저 감탄스러울 뿐이다.
책을 읽는 몇시간동안 그야말로 아!!의 연속이었다.
음 확실히 즐거운 책이었다.
- 정확히 빈곤선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러한 비용들을 충당할 만한 여유를 갖지 못한 사람들이기때문에, 설사 아무리 유익하고 필요한 일이라고 해도 육체의 건강을 유지하는 목적 이외에 지출하는 것은 그만큼 그 사람들이 육체의 건강을 희생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는 것은 물론이고, 신문을 구독해도, 편지 한장을 보내도 그때마다 육체의 건강을 희생하는 것이다.
- 가난이라는 말에는 대체로 세가지 의미가 있다.
첫번째 의미의 가난은 단지 부자에 비해 가난하다는 것이고 그 중심은 "경제상의 불평등"이다.
두번째 의미의 가난은 구휼을 받는다는 의미의 가난이며 그 중심은 "경제상의 의존"에 있다.
세번째 의미의 가난은 생활필수품을 향유하지 못한다는 의미의 가난으로, 그 중심은 "경제상의 결핍"에 있다.
- 당통이 "국민에게는 빵 다음으로 교육이 제일 중요한 것이다"라고 했는데, 여기서 "빵 다음으로"라는 구절에는 엄청난 무게가 실려있다. 교육은 국민에게 무척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그 교육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우선 배우는 자를 배불리 먹여야 한다. 교육을 보급하기전에 빵을 보급하지 않으면 안된다.
---------------
우리가 운동(?)을 하는 것은 어쩌면 가난하지 않게 살기위함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꼭 물질적인 가난이 아닌 사람이 기본적으로 건강한 심신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이
가난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자본주의는
그 자본주의에 적응하든 안하든 우리의 심신을 핍박하는 전형적인 잘못된 제도라는 것이고
따라서 우리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러한 경쟁/이윤 중심의 자본주의를
일차적으로 없애야 하는 것은 아닐까 ?
여튼
간만에 읽게된 재미있는 책이었다.....ㅎㅎ
아 !! 흐믓해....히히히
책은 언제나 좋다....ㅎㅎ
음...후다닥 읽었다.
음 고로 조금은 쉽다고 해야할까 ?
아니다. 쉽다기보다는 내가 읽어야 할 것들이 뻔하다고 할까 ?
뭐 여하튼 이 책은 후다닥 읽었다는 말이 맞을 정도로 금새 읽었다.....ㅎㅎ
어렵지 않고 일종의 개론서 처럼 여러 이론들을 쭈욱 훝어주시는 센스가 있다.
다만
공간 분석단위로서의 블록공간과 축선공간
공간구문변수로서의 연결도, 통제도, 위상도
단위공간변수와 조직변수...?....뭐 이런 여러 수학 계산식을 가지고 구체적인 분석을 진행한 것은
나름 흥미롭기도 하고 뭐가 뭔지 가늠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고...ㅎㅎ
이해는 되는데 복잡한 수학공식처럼 다가와서 대충 훝어보게 되었다는 것이 맞는 듯 싶다.
즉, 이론적인 설명부분은 여러 이론들의 소개에 할애되고
구체적인 분석은 위와 같은 복잡해 보이는 수학적 지식으로 도출된 어떤 것들을 보여준다..ㅎㅎ
뭐 어렵진 않다...다만 내가 계산할 일이 없기를 바랄뿐..?....ㅎㅎㅎ
여튼 전에 읽은 책에비해서는 조금 부족한 듯 싶지만
그럭저럭 좋은 느낌은 든다는 얘기...ㅎㅎ
제 1장 건축공간의 사회적 의미
- 수잔 랭거
"건축은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공간을 포함하는 공간의 예술 art of space이며 건물은 공간단위를 규정하고 배열하는 것이라고 너무나 일반적으로 인정되기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건축을 공간적 창조라고 말하면서도 실제 무엇이 창조되고 공간이 어떻게 이 과정에 포함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도 않는다 "
- 특정사회가 가지는 물리적 환경은 다양한 사회적 제도를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 장치인 건물들로서 구성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과정에서 건물은 제도를 가능하게 하는 혹은 제도의 발생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특정의 이념과 목적을 구체화시켜주는 도구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 거주인, 방문인, 이방인...모든 유형의 건물과 그 공간은 해당되는 이용자 부류 상호간 혹은 부류에 속하는 구성원 상호간의 교류interface의 장이라고 할 수 있다.
-공간을 통해 사회적 관계성이 실현되기 때문이며 사회가 건물을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이념이 공간을 통해 가장 구체적인 방식으로 실천되기때문이다. 또한 푸코가 지적하듯이 "공간은 집단적 삶이 가지는 모든 형태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 블록공간방식은 공간의 단위를 일종의 폐구간으로 닫혀진 공간영역으로 정의하는 방법이다. 각 블록공간은 공간내의 두 점을 연결하는 선이 그 공간 외부로 나가지 않는 공간으로 정의된다.
축선공간방식은 전체 공간조직을 통행가능한 길을 나타내는 직선으로 구성된 공간의 조합으로 표현하는 방식이다.
제 2장 도시와 공간
- 공간은 하나의 역사적 생산의 과정이며 사회적 존재의 매개체이자 산물이라고 주장한다.....에드워드 소자에 의해 '사회-공간 변증법'으로 정의되어지는데 이는 공간이 수반하는 사회적 관계가 정적이라기보다는 역동적이며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 어떤 도시는 공간의 분절, 격리, 차단 등을 통해 집단구성원 상호간의 교류를 억제할 수 있으며, 또 다른 도시는 지역 간의 교류 또는 이용자 집단 상호간의 교류를 적극적으로 조장하기도 할 것이다. 전자의 경우는 일종의 사회적 분리 segregation의 개념이 공간적 특질에 의해 잠재적으로 표현된 경우이며, 후자는 사회적 통합intergration의 개념이 구체화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브론펠스는 도시를 정치형태와 이상적 질서의 반영이라고 규정한다. 왜냐하면 새로운 정치적 프로그램은 항상 새로운 형태의 건축 및 도시를 필요로 해왔으며, 결국 과거의 도시들은 당시의 정치적 현실을 재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 케빈 린치는 도시형태를 "인간 행위의 공간적 배치, 그 결과로 나타나는 인간, 사물, 정보의 공간적 흐름spatial flow"으로서 정의한다....우주적 모델...실용적 모델...유기적 모델....
- 카밀로 지테는 도시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집단적 삶의 표현이며 따라서 도시설계는 한 사회의 야망을 도시 전체에 표현하는 일이다.
이어서 내일 정리해야겠다....^^;;
너무 덥고 피곤하군...캬캬캬
혜린의 공룡 첫 활동비로 선물을 사준다 해서
오호랏 하는 마음으로 선물받은 책이
그동안 아 !! 읽고 싶다 했던 증여론이다...ㅎㅎ
근데 이럴 수가...이건 뭐...^^;;
완역본이 아니라 편역본(?)이란다...^^;;
전체 내용도 아닌 일부분에 대한 번역본(?). ..?...^^;;
이런 책도 있구나 싶기도 하고 약간 은 당혹 ? ..이게 뭐야 싶기도 하고...^^;;
여튼 읽었다.
워낙 적은 분량에다가
내용도 거의 알고 있던 터라서 그런가 술술 넘어간다...ㅎㅎ
읽으면서 내내 아쉽고 안타깝고...?....ㅎㅎ
뭐 다음에 완역본을 다시 읽으리라 다짐 또 다짐....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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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틀래치는 원래 "식사를 제공하다" 또는 "소비하다"라는 뜻이다.
- 이 정신적 메커니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선물을 받았으면 반드시 답례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 선물로 받거나 교환된 물건이 사람에게 의무를 지운다는 것은 받은 물건이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증여자가 물건을 내버렸다 하여도, 그 물건은 여전히 그에게 속한다. 증여자는 그 생명을 통해서 마치 증여자가 본래 그 물건을 소유하고 있을때와 마찬가지로 그 물건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 다야크족은 식사하는 것을 목격하거나 식사 준비를 하는 것을 보았을때는 반드시 그것에 참여해야한다는 의무에 대한 모든 법과 도덕적 체계를 발전시켰다.
- 받아야 하는 의무도 주어야 하는 의무만큼이나 강제적이다.
-사람들이 도전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물건이나 축연으로부터 얻게 될 이득보다 더 많은 것을 수행한다는 것을 말한다. 어떤 물건이나 환대를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은, 그것에 대해서 답례할 확신이 있으며, 자신도 받은것 못지않게 더 줄수 있음을 증명할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 우리의 도덕과 생활은 상당부분 언제나 의무와 자발성이 섞여 있는 증여의 상황속에 있다. 아직은 모든 것이 구입이나 판매라는 것으로만 분류되지 않는 것이 다행이다. 시장가치만 가지고 있는 물건들이 많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들은 여전히 시장가치외의 감정 가치도 가지고 있다. 우리의 도덕이 단지 상업적인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 우리는 옛날의 기본적인 것으로 돌아갈 수 있고 또 돌아가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알고 있는 생활과 활동의 동기, 즉 공공연하게 베푸는 즐거움, 후하고 풍류가 있는 소비의 즐거움, 환대와 사적이고 공적인 축제의 즐거움을 다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보험, 상호부조 조직체, 협동조합, 직업단체 및 영국법에서 말하는 공제조합 법인등의 배려는 귀족이 소작인에게 보장해주는 단지 개인적인 보증, 고용주가 매일 지급하는 임금으로 생계를 어렵게 이어나가는 것, 심지어 변화무쌍한 신용에만 의지하는 자본가의 저축보다 훨씬 낫다.
-----------------
기대했던 것 보다는 별로였다...
중요한 것은 이 책이 완역본이 아니어서 그런지
너무 짧고 음...뭐랄까..?...^^;;...ㅎㅎ
여튼 모스가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증여를 통하여 타자를 다르게 대하는 즉, 타자와의 관계를 시장의 메커니즘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의 전환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지나치게 답례 혹은 의무로써의 도덕적 원칙들은
마치 교환이라는 장에서 발생하는 어떤 거래의 혐의들이 느껴지는 것 또한 사실인 것 같다.
물론 같은 교환과 일종의 거래라고 해도
결국 바라보거나 실행하는 것의 전혀다른 접근을 통하여
결국 자본주의의 대안 방식에 대한 고민들을 하게 해주는 점은 충분한 것 같다.
다만 이런 공동체에서의 증여 혹은 답례 혹은 선물이
지나치 도덕률이 아닌 즐거움으로 진행되거나
삶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궁극적으로 무엇이 필요할지
여전히 고민이다...ㅎㅎ
음
완역본을 읽어야 알려나..?...싶다...ㅎㅎ
여튼
이 책은 혜린의 선물이었다.....크크크
책은 어쨋든 재밌다....ㅎㅎ
드뎌 공간과 장소를 다 읽었다.
조금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나름 재미나게 읽었다.
내가 정확히 이해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결국 공간은 움직임이라는 것이고 장소는 머무름이라는 것 같다.
우리가 움직이고 활동하기 위한 물리적 기반이 공간이라면
그런 움직임들이 기록되고 머무르는 곳이 우리가 살아가는 장소라는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이런 저런 생각들로 조금은 분주했다.
우선 장소 혹은 공간에 대한 이제까지의 고민들
특히 내가 이제까지 활동(?)이라는 것을 하면서 가지게 된 고민들을
나름 공간과 장소라는 것으로 정리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작업을 시작한 것이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경험이랄까 ?
아직 제대로 정리하진 못했지만 공룡들과 이런 저런 지난 나의 활동에 대한 이야기들을
공간과 장소라는 것으로 치환하여 이야기 해볼 수 있는 시간이 있어서 나름 행복했고
이런 생각들을 가지고
제대로 정리하여 공유해 보자라는 나름 자잘한 목적도 생겼다.
이 [공간과 장소]라는 책이 가진
가장 좋았던 느낌은 결국
이렇게 내가 살아가는 공간과 장소를 보다 진지하게 바라봐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는 점일까 ?
비록 내가 전문가도 아니도
그저 흥미가 일어서 읽다보니
요약하고 내용을 이해하며 충분히 음미하는 것이 부족하기는 했지만
지속적으로 이런 공간과 장소에 대한 고민들을 이어가야 할
충분한 이유는 알게 된 것 같아 좋았다.
---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는지>에 대하여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우리는 <무엇에 대하여 알고 있는지>에 주의를 기울인다. 즉 우리는 어떤 종류의 실재들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우리가 쉽게 보여주고 말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말할 수 있는 것보다도 훨씬더 많은 것들을 알고 있다. 하지만 대개 우리는 <말할 수 있는 것>이 <알고 있는 것>이라고 믿어 버린다.
------
어쩌면 내가 살아가는 이 지역 혹은 마을 혹은 이 물리적 공간들은
언뜻 난 충분히 알고 있는 것 같다가도
어느새 도통 모를 존재로 나에게 낯설게 다가오기도 한다.
언제나 지역...지역...하면서 천착한지도 벌써 10년이 넘었건만
실재로는 여전히 나는 이 지역에서 부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국
나는 내가 살아가는 공간과 장소에 대한 충분한 공간적 능력들을 함양하지 못한
얼치기 지역운동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을 많이 했다.
이렇게 공간과 장소에 대한 공부가 진행되면서
더더욱 많은 반성과 고민꺼리들을 몸에 새기는 것은
결국 이런 책들과 공부가 주는 고마운 선물임과 동시에
제대로된 길찾기를 해야 한다는
너무나 당연한 나의 의무들을 상기시키다.
열심히 가보는 수 밖에....ㅎㅎ
지금은
최윤경이 쓴 [7개 키워드로 읽는 사회와 건축공간]과
에드워드 소자가 지은 [공간과 비판사회이론]을 동시에 읽고 있다....ㅎㅎ
음..나름 조금은 버겁기도 하지만
그럭저럭 즐거운 공부를 하는 중이다...
이것도 조금 다르게 정리를 해봐야 할 터인데....ㅎㅎ...모르겠다....크크
제 12 장 가시성 : 장소의 창조
- 특정 개인과 집단에 매우 중요한 많은 장소들은 시각적으로 두드러진 특징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들은 말하자면 분별력 있는 눈이나 정신을 통해서 알려져 있는 것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알려져 있다.
- 주택은 비교적 단순한 건물이다. 하지만 주택은 많은 이유로 하나의 장소이다. 주택은 안식처를 제공한다. 즉, 공간에서의 주택의 위계는 사회적 필요에 부응한다. 그리고 주택은 보호의 영역이며 기억과 꿈의 저장고이다. 잘 지은 건축물은 "자아(Self)와 짝을 이루는 <세계의 외형>을 창조한다.
- 지역 사람들에게 장소감은 그 취락의 공간상의 물리적 범위에 의해서만 증진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취락들에 대한 인식 및 그들과의 경쟁이 고유성과 정체성의 느낌을 한층 고양시킨다.
- 그들은 그 도시의 빈곤한 지역에 있는 한 구역에 살고 있다고만 알고 있다. 하지만 조만간 외부의 메세지가 스며든다. 지역민들은 소위 "뒷골목"이라는 곳에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 그 곳은 외부인들이 지나가기 두려워하는 모종의 성격과 뚜렷한 경계를 가지고 있는 지역이다. 전체로서의 "뒷골목"은 주민들에게 어두운 현실, 즉 절망, 분노, 그리고 [어쩌면 정치적 행동의 가능성이 장소 의식을 동반한다면] 자긍심까지도 뒤섞여 나타나는 현실이 된다.
- 개인적이든 집합적이든 자아감은 권력의 행사에서 나온다. 도시는 독립적인 정치적 단위 [즉, 도시국가]로서 최대의 가시성을 획득했을지도 모른다.
- <깊이 사랑 받는 장소가 -- 우리에게나 다른 사람들에게 -- 반드시 가시적인 것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장소들은 다양한 수단을 통해 가시화될 수 있다. 장소를 가시화하는 수단으로는 다른 장소와의 경쟁이나 갈등, 시각적인 탁월함, 그리고 예술, 건축, 의식, 의례의 환기시키는 힘 등이 있다. 인간의 장소는 극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생생한 실재가 된다. 장소의 정체성은 개인적, 집단적 삶의 열망, 필요, 기능적인 리듬을 극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성취된다.
제 13장 시간과 장소
- 장소는 조직된 의미 세계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정적인 개념이다. 만일 우리가 세계를 항상 변화하는 과정으로 본다면, 우리는 어떤 장소감도 발전시킬수 없을 것이다. 공간속의 운동은 한 방향으로 진행되거나 순환(반복을 의미한다.)한다. 시간에 대한 일반적인 하나의 상징은 화살이다. 그리고 다른 상징들로는 순환적인 궤도나 진동하는 추가 있다. 따라서 공간과 시간에 대한 이미지는 융합된다. 화살은 방향성있는 시간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한 목표점을 향한 공간상의 운동을 나타낸다. 목표점은 시간상의 한 지점이자 공간상의 한 지점이다.
- 이주자들이 그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는 수개월이 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출발할 때 그들의 기를 꺾어 놓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가로질러야 하는 공간이다. 운동이 회귀하지 않고 한 방향으로 진행된다고 할때 장소는 세가지 범주로 나누어지며, 목표는 그 가운데 하나이다. 다른 두개의 범주는 집, 그리고 캠프나 도로변 정거장이다. 집은 초월되어야 할 안정적 세게이고 목표는 달성되어야 할 안정적 세게이며 캠프는 한 세게에서 다른 세계로 여행하다가 잠시 쉬는 곳이다. 화살은 적절한 이미지이다.
- 습관적으로 사용함에 따라 경로 그 자체는 탄탄한 의미와 안정감을 획득하며, 이것이 장소의 특성이다. 경로와 경로 주위에서 정지하는 것은 집이라는 더 큰 장소를 구성한다. 우리는 쉽게 집을 장소로서 수용하지만, 보다 작은 장소들이 집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집은 명료하게 경계가 쳐져있고 가시적으로도 명확한 구조이기 때문에 우리는 집에 관심을 기울인다. 벽과 지붕은 집에 통일된 형태를 부여한다. 벽과 지붕을 제거하라. 그러면 책상고ㅏ 주방 씽크대와 같은 국지적 지점들 자체가 복잡하게 얽힌 경로, 운동소ㄱ의 정지, 일상적이고 순환적인 시간속의 표지들에 의해 연결된 중요한 장소임이 바로 드러나게 된다.
공간과 장소
제 10장 친밀한 장소 경험
- 친밀한 장소는 우리가 근본적 필요들을 무리없이 보장받을 수 있는 양육의 장소이다.
- 모든 인간사회는 약자가 머무르는 터를 갖고 있고 치유된 사람들은 그곳에서 나와 채집, 사냥, 전쟁에 나간다고 말한다. 가정에는 도구와 음식, 그리고 일종의 관습적인 안식처가 있다.
- 정지함으로써 장소는 인간이 느끼는 가치의 중심이 될 수 있다.
인간은 멈춘다. 그리고 이 사실은 장소에 대한 인간 정서의 깊이를 더해준다.
- 장소의 가치는 특별한 인간관계의 친밀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즉 장소 자체는 인간의 유대를 벗어나서는 거의 아무것도 줄 수 없었다.
- 사람들이 친밀해지기 위해 상대방의 삶의 상세한 부분을 알아야 하다는 것은 아니다. 즉 친밀함은 진실한 앎과 교환의 순간에 타오른다. 각각의 친밀한 교환은 인간의 만남의 성격에 관여하는 현장을 가진다.
- 사소한 사건들이 언제가는 장소에 대한 강한 정서를 만들수 있다.
- 집은 친밀한 장소이다. 우리는 주택을 집과 장소로 생각한다. 그러나 과거의 매혹적인 이미지는, 바라볼 수 있을 뿐인 전체 건물에 의해서 환기되는 것이 아니라 만질수 있고 냄새 맡을 수 있는 주택의 구성요소와 설비에 의해 환기된다.
- 접촉과 마음은 타산적인 눈이나 지성과는 상관없이, 얘깃거리를 저장한다.
- 삶은 사는 것이지 옆에 서서 관찰하는 구경거리가 아니다. 실재는 숨쉬는 것처럼 눈에 띄지 않는 친밀한 일상생활이다. 실재는 우리의 총체적 존재, 우리의 모든 감각과 관련되어 있다.
- 보는 것은 자아와 대상 사이에 거리를 두는 효과를 가진다. 우리가 보는 것은 항상 '저기에"있다. 아주 가까이에 있는 것은 만지고 냄새맡고 맛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들을 볼수는 없다. 친밀한 순간에 사람들은 눈이 흐려진다. 생각하는 것은 거리를 만들어낸다.
제 11장 고향에 대한 애착
- 대부분 어느 곳에서나 인간 집단은 그들 자신의 고향을 세계의 중심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들이 중심에 있다고 믿는 민족은 은연중에 그들의 위치가 상당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 경관은 가시적으로 만들어진 개인과 부족의 역사이다. 원주민의 정체성 -- 사물의 전체 도식속에서의 그의 장소 -- 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왜냐하면 정체성을 뒷받침하는 신화들이, 원주민이 보고 만질 수 있는 바위와 물덩이만큼이나 실재적이기 때문이다.
- 깊지만 잠재의식적인 애착은 단순히 친숙함과 편안함, 양육과 안전의 보장, 소리와 냄새에 대한 기억, 오랜시간동안 축적되어 온 공동의 활동과 편안한 즐거움에 대한 기억과 함께 온다.
공간과 장소
제 7장 신화적 공간과 장소
- 신화적 공간은 두 종류로 구분될 수 있다.
하나의 신화적 공간은 경험적으로 알려진 것을 둘러싸고 있는, 불완전한 지식으로 된 모호한 지역이다.
이것은 실용적 공간을 모양지운다.
다른 하나의 신화적 공간은 세계관의 공간적 구성요소이며
국지화된 가치(사람들은 이에 따라 실천적인 활동을 수행한다.) 개념이다.
- 할로웰
"아마도 인간이 자기세계를 공간화 하는데 있어서 가장 뚜렷한 특성은,
그것이 행위와 지각 경험이라는 실용적 차원에 결코 한정되지 않는 듯하다는 사실이다."
- 인간은 직 그리고 우주와 어떻게 관련되어져 있는가 ?
......세계 곳곳에 알려져 있는 두가지 도식이 있다.
한 가지 도식에서 인간의 신체는 우주의 상(像, image)으로 인식된다.
다른 도식에서 인간은 기본 방위(cadinal points)와 수직축으로 정해지는 우주적 틀의 중심이다.
- 정향된 신화적 공간의 한 특징은 인갅ㅇ심주의이다. 그서은 분명히 인간을 우주의 중심에 놓는다.
....그것은 자연과 사회의 힘을 공간체계 안의 중요한 위치 또는 장소와 결합시킴으로써
자연과 사회의 힘을 조직한다. 정향된 신화적 공간은 우주의 구성요소들을 분류하고
그들 사이에 상호 영향력이 존재함을 제시함으로써 우주를 이해하려고 한다.
그것은 인성(人性)을 공간의 탓으로 돌린다. 따라서 그것은 공간을 장소로 바꾸어 놓는다.
그것은 거의 무한하게 쪼개질 수 있다. 즉 알려진 세계뿐만 아니라
그 세계의 가장 작은 부분(하나의 오두막과 같은)도 우주의 상(像)이다.
- 바람은 솔토 인디언의 세계에서 현저하게 나타난다.
바람은 인간과 같은 존재이며, 각 바람은 기본방위와 동일시 된다.
방향은 공간 속에서의 운동의 진로라기보다는 주로 장소 --"집"--이다.
공간에 대한 사고는 주요한 장소들의 위치에 대한 사고에 종속되어 있다.
인디언들은 동쪽을 바람의 진원지이며 태양이 떠오르는 곳이라고 보며,
서쪽을 태양이 지는 곳으로 본다.
남쪽은 죽은 자의 영혼이 가는 곳이며, 여름새가 떠나오는 곳이다.
- 사람들의 행동방식은 실재에 대한 이해에 의존하며,
그리고 그 이해라는 것은 결코 완전할 수 없으므로 언제나 신화로 물들여져 있다.
- 작은 것은 큰 것을 반영한다. 작은 것은 인간의 모든 감각이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
작은 지역 안에 한정되어 있는 메세지는 쉽게 인식되고 이해될 수 있다.
건축 공간 - 가옥, 사원, 도시-은 [자연적 속성들이 결여하고 있는] 명료함을 담고 있는 소우주이다.
건축은 [집합적이든 개인적이든]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경험뿐만 아니라 깊이 느껴지는 경험들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가시적 세계를 창조함으로써 인식을 고양시키려는 인간의 노력을 지속시킨다.
제 8장 건축 공간과 인식
- 건축가는 어디에, 어떤 재료를 가지고, 어떤 모양으로 지을 것인가를 알아야 한다,
다음으로 육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중력의 작용에 저항하여 구조물을 올리는 과정에 근육, 시각, 촉각이 사용된다.
일하는 사람은 어떤 세계를 만들때 외부 자연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신체를 수정한다.
완성된 건물 또는 건축물군은 이제 거기서 사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환경이 된다.
인간이 만든 공간은 인간의 정서와 인지를 정제할 수 있다.
건축적 형태가 없어도 인간은 내부와 외부, 닫힘과 열림, 어두움과 밝음,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인식은 불완전하다.
건축 공간은 -- 아무것도 없는 대지위의 한낱 오두막에 불과할지라도 -- 그러한 감각을 정의하고
생생하게 해줄 수 있다.
- 역설적으로 근대 사회에 비해 전통사회는 건축형태와 공간에 대해 보다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보다 많은 지식을 가지는 한가지 이유는 적극적인 참여이다.
문자가 없는 농민사회에는 건축가가 없으므로 모든 사람들은 자기 집을 직접 지어야 하고
공공 장소를 만드는 것을 도와야 한다. 또 하나의 이유는 이러한 노력이 일생에 걸쳐
수차례 반복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원시 가옥의 경우, 형태는 지속적이지만 재료의 수명이 짧다.
건축과 보수는 거의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활동이다.
- 건축은 복합적인 활동이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지식을 주며 서로 다른 차원에 주의를 기울이게 한다.
실용적 결정을 내려야 하는 차원, 건축공간을 마음 속이나 종이 위에 그려내는 차원,
이상을 구현하는 구체적인 형태를 창조하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차원
등이 그것이다.
- 건축 공간은 보여주며 가르친다.
- 근대적 건축공간이 인간과 사회에 영향을 주는 주요방식들은 변하지 않았다.
.....적극적인 참여가 크게 축소되고 있다.
문자가 없던 농민사회와는 달리 근대 세계에서 사람들은 자기 집을 직접짓지 않으며,
공공 기념물 건립에 기념으로라도 참여하지 않는다.
건축활동에 초점을 두는, 그리고 한 세계를 창조하는 것으로 여겨지곤 했던 의식과 의례는 크게
쇠퇴했고, 따라서 대규모 공공 건물을 건립할때에도 초석을 놓고 마무리를 하는 상당히
미온적인 몸짓만 할 뿐이다,
집은 이제 더 이상 행동규칙을 담고 있는 텍스트가 아니며,
심지어 다음 세대로 전수할 수 있는 총체적 세계관도 아니다.
제 9장 경험 공간에서의 시간
- 공간과 시간의 경험은 대부분 잠재의식적이다.
우리는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공간감각을 가지며,
생물학적 존재로서 긴장과 안락의 순환국면을 겪기 때문에 시간감각을 가진다.
그러한 운동을 통해 우리는 공간감각을 얻고 긴장을 해소한다.
손발을 뻗을때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동시에 경험한다.
육체적 구속에서 자유로운 영역으로서의 공간, 그리고 긴장 다음에 오는 안락의 지속으로서의 시간.
- 공간은 주관적 형태와 객관적 형태 모두를 취한다.
주관적 공간은 정신적 영역에 속한다.
그것은 사물들의 중심, 즉 경험의 "내"면을 의미하며,
천정(天頂)과 지하계를 나타내는 수직축에 의해 상징된다.
객관적 공간은 각각 주관적 축으로부터 발산되며, 본질적으로는 4개의 기본방향을 향하는 수평면이다.
- 초시간성(timelessness)은 거리가 먼 장소들의 또 다른 속성이다.
- 공간이 방향이나 어떤 특별한 시각을 담고 있다면, 그 공간은 역사적이다.
지도는 비역사적이고 풍경화는 역사적이다.
지도의 시각선(sightlines)은 평행하고 무한대로 확장되므로 지도는 신의 세계관이다.
- 르네상스 이후 유럽에서 시간은 반복적이고 순환적인 성격을 점차 잃어버렸고
점점 더 방향을 가지는 것이 되었다.
화살로서의 시간 이미지가
진동하는 추로서의 시간 또는 순환적 궤도로서의 시간 이미지를 압도해버렸다.
- 어떤 전경을 보고 있을때, 우리의 마음은 자유롭게 배회한다.
우리가 정신적으로 공간을 이동할때, 시간적으로도 앞이나 디로 이동한다.
공간상에서의 물리적 이동은 그와 유사한 시간적 환상을 줄 수 있다.
- 외부를 볼때 우리는 현재나 미래를 바라본다.
내부를 볼때 (즉 자기반서을 할때) 우리는 과거를 회상하곤 한다.
- 목적을 가진 활동에서, 공간과 시간은 사고를 하는 활동적인 자아에게로 향한다.
....시간과 공간은 인간이 적극적으로 계획할때 방향지워진다.
계획은 목적을 가진다. 목적은 공간적이고 시간적인 용어이다.
- 어떤 장소에 있을 필요는 항상 어떤 시간에 걱에 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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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헉...힘들군...ㅎㅎ
읽을때는 마냥 신나서 읽었는데
요약(?..^^;;)하려니 걍 밑줄치기 정도..?....ㅎㅎ
읽을 면서 내내
지난 나의 활동들에서 정리해야 될것과 발견해야 될것들에대하여
끊임없이 생각이 든다.
이왕 드는 생각들 정리해서
공룡에 올려볼까 하는 욕심도 든다...ㅎㅎ
뭐 여튼 좋은 징조(?)라는 생각도 들고'조금 쑥스러운 생각도 들고...ㅎㅎ
여튼
이 책 다 읽었다.....ㅎㅎ
정리만 하면되는데...쉽지 않군...ㅎㅎ
제 4장 신체, 개인적 관계, 그리고 공간적 가치
- 유사성은 궁극적으로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이는 공간조직의 근본원리를 찾으려고 할 경우, 두가지 종류의 사실에서 찾아야함을 의미한다.
하나는 인간신체의 자세와 구조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들 사이의 관계(친밀하든 소원하든 상관없다.)다.
인간은 신체의 긴밀한 경험을 통하여 그리고 타인과의 긴밀한 경험을 통하여
자신의 생물학적 욕구와 사회적 관계에 적합하고, 또 그것을 충족시킬수 있도록 공간을 조직한다.
- 공간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 즉 공간내에서 편안함을 느낀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
이는 공간에서의 객관적인 기준점(이정표나 기본방위처럼)이
인간신체의 의도와 좌표를 따르고 있음을 의미한다.
---(칸트) 만약 우리가 신체의 각 부분에 의거하여 질서잡힌 사물과 총체적인 상호관계적 위치체계를
지역에 할당할 수 없다면, 우리가 가진 지리적 지식과 심지어 장소의 위치에 대한
가장 상식적인 지식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 길을 잃는 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
- 직립과 엎드리기
유아들에게 수평으로 엎드린 자세에서 수직으로 앉는 자세로의 변화는 이미
"자세의 성취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넒어진 지평, 즉 새로운 사회적 정향(orientation)을 의미한다."
직립 자세는 단호하고 엄숙하며 초연하다. 엎드린 자세는 순종적이며, 우리의 생물학적 조건을
수용함을 의미한다. 사람은 직립했을때 완전한 인간의 지위를 획득한다.
"stand(서다)"라는 단어는 "status(지위)", "stature(신장)", "statute(법규)", "estate(신분)",
그리고 "institute(설치하다)"등 관련 단어들의 어원이다. 이 단어들은 모두 성취와 질서를 의미한다.
- 인간 신체의 각 부분에서 파생된 명사이든 그렇지 않은 명사이든,
공간 전치사는 필연적으로 인간중심적이다.
- "거리"는 접근성의 정도를 의미하며 또한 관심의 정도를 의미한다.
인간은 살아가는데 중요한 타인들과 대상들에 관심을 가진다.
사람들은 그 중요한 타인들이 자신들에게, 그리고 서로에게 멀리있는지 가까이 있는지를 알고자 한다.
- 어떤 공간적 구분과 가치들이 존재하고 특정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인간신체에서 기인함을,
그리고 거리(공간적 용어)가 개인상호간의 관계를 표현하는 용어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보았다.
제 5장 광활함과 과밀함
- 기하학적 단위(넓이 혹은 부피)로서 공간은 측량가능하고 분명한 양이다. 보다 자유롭게 이야기하자면, 공간은 여지(餘地, room)를 의미한다.
- 광활함은 자유롭다는 감정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자유는 공간을 뜻한다. 즉 자유는 활동할 수 있는 힘과 충분한 공간을 가지고 있음을 뜻한다.
자유롭다는 것은 여러 수준의 의미를 가진다. 근본적인 것은 현재의 조건을 초월하는 능력이다.
이러한 초월성은 기본적인 운동능력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공간과 그 속성은 직접적으로 체험된다.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은 추상적인 공간에 대한 원초적인 개념을 익히는데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왜냐하면 이러한 개념은 움직임에서 -- 움직이면서 공간을 직접적으로 체험하는 것에서 --
나오기 때문이다.
- 구획되고 인간화된 공간은 장소이다. 공간에 비해 장소는 기존 가치들의 잔잔한 중심이다.
- 개방된 공간에서는 장소를 강렬하게 인식하게 된다.
- 공간은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관점이나 감정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것은 생물학적 생존을 위한 조건이다.
그러나 <인간이 안락하게 살기 위해서 얼마만큼의 공간을 필요로하는가>하는 문제는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자원으로서 공간은 문화적 평가이다.
- 분명히 욕망의 수준은 사람의 공간적 만족감에 영향을 미친다. 욕망은 문화적으로 조건 지워진다.
- 공간(이것은 모든 동물의 생물학적 필요조건이다)은 인간에게 심리적 욕구이고, 사회적 특권이며,
심지어는 영적인 속성이다.
- 경제적 영역에서의 기획의 결핍과 사회적 영역에서의 자유의 결핍으로 고립된 촌락 세계는
좁고 한정된 것처럼 보였다. 젊은이들은 일자리, 자유, 그리고 (비유적우로 말하자면)
도시의 개방 공간을 위해 고향을 버렸다. 도시는 젊은이들이 스스로 진보할 수 있고
보다 나아질 수 있다고 믿는 곳이었다. 역설적으로 기회가 줄어들고 있는 시골에 비해
도시는 덜 "혼잡하고" 덜 "막힌" 곳처럼 보였다.
- 사람들이 공통의 목적을 위하여 함께 일할 때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공간을 침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동료를 도움으로써 동료에게 더 넓은 공간을 확보해준다.
"천사가 많으면 많을수록 자유로운 공간은 더 많아진다."고
박식한 과학적 신학자 스웨덴보르크(swedenborg. 1688-1772)는 말했다.
왜냐하면 천사의 본질은 공간의 사용이 아니라 [사심없는 행위를 통한] 공간의 창조이기 때문이다.
- 긴밀한 관계의 소집단 속에서 지속적으로 생활하게 되면,
인간적 공감은 두 가지의 정반대 방향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인다.
즉 한 극단에는 우정과 친척관계를 초월하는 멋진 개인들 사이의 친밀함이 있고,
다른 극단에는 전체적인 인간의 복지에 대한 일반적 관심이 있다.
제 6장 공간적 능력, 공간적 지식, 그리고 장소
- 운동과 위치의 변화를 마음속에 그려볼 수 있을때 공간적 능력은 공간적 지식이 된다.
걷기는 기술이다. 그러나 내가 스스로 걷는 것을 "볼"수 있다면, 그리고 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내가 어떤 길을 따라 가고 있는지를 부분석하기 위하여 그것을 마음속에 그려볼 수 있다면,
나도 지식을 가지게 된다. 그 지식은 언어와 도표를 통해서 가르침으로써,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어떻게 복잡한 움직임이 분석될 수 있고 모방될 수 있는 부분들로 구성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다.
- 실제로 이동할 때에는 정확성이 필요없다. 목표점으로 향하는 일반적인 방향감각을 가지고,
이동의 각 단계에서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기만 하면 된다.
- 공간이 우리에게 완전하게 익숙해졌다고 느낄 때, 공간은 장소가 된다.
공간이 넓을 경우 공간이 장소가 되려면 개념을 만드는 능력뿐만이 아니라
운동감각적 경험 및 인지적 경험이 필요하다.
- 공간적 능력은 일상생활에 필수적이지만, 언어와 이미지의 상징적 접합이라는 차원에서
공간적 지식은 필수적이지 않다.
- 좁은 의미에서 공간적 기술은 우리가 신체를 통해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의미는 민첩성의 의미와 유사하다.
넓은 의미에서 공간적 기술은 우리가 장소와의 유대로부터 자유로운 정도에서,
그리고 운동의 범위와 속도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 언어는 동시에 일어나는 공간적 관계를 묘사하는 것보다는 사건을 서술하는데 보다 적합하기 때문이다.
- 지리적 지식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환경과 개념적으로 아주 친숙함을 뜻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근린을 잘안다.
또한 지리적 지식은 방문한 적이 거의 없는 장소간의 공간적 관계를
의식적으로, 이론적으로 이해함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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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지도는 지도를 그리는 것 그리고 지도가 구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지도를 해석할 줄 아는 능력에 있다는 것...
즉, 지도를 보는 자의 능력에 따라서 유의미를 획득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공간 혹은 장소란 ?
장소도 결국 공간을 가진 우리들이 어떤 유의미를 부여하든지 간에
누군가 우리들을 보고서 자동적으로 느끼는 장소성이라는 부분일까 ?
음...조금씩 정리는 되는데
더 복잡해지기도 하는 것 같고....^^;;
아마도 책만 읽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다음 주에는 몸을 좀더 굴려서 생각해 보리라 결심.....히히힛
음...서울에서 사온 책을 읽기 시작....ㅎㅎ
음...히히힛...재밌다....ㅎㅎ
이거이거 고민하기보다 책읽는 재미에 빠져드는 것 아닌지 살짝 걱정...ㅎㅎ
그래서 읽는대로 블러그에 업하기로 했다....ㅎ
음 스스로에 대한 견제랄까 ?
텍스트 읽는 즐거움에 빠져들면 헤어나기 어려워서...ㅎㅎ
여튼 잼나게 읽고 정리해 보자...싶다.
1장 서론
- 계획가들은 장소감(a sense of place)을 불러 일으키고 싶어 한다.
- 장소란 무엇인가 ? 장소에 정체성과 아우라(aura)를 부여하는 것은 무엇인가 ?
-"공간"은 "장소"보다 추상적이다. 무차별적인 공간에서 출발하여 우리가 공간을 더 잘 알게되고
공간에 가치를 부여하게 됨에 따라 공간은 장소가 된다. 건축가들은 장소의 공간적 성질에 대해 말한다.
마찬가지로 그들은 공간의 입지적(장소) 성질에 대해 훌륭하게이야기 할 수 있다.
"공간"과 "장소"의 개념을 정의하려면 서로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장소의 안전(security), 안정(stability)과 구분되는 공간의 개방성, 자유, 위협을 알고 있으며
그 역 또한 알고 있다.
나아가 우리가 공간을 움직임이 일어나는 곳이라 생각한다면 장소는 정지(멈춤)이다.
움직임속에서 정지할때마다 입지는 장소로 변할 수 있다.
2장 경험적 관점
- 움직일 여지를 가짐으로써 공간은 직접 경험된다.
- 우리가 보아 왔듯이 공간은 움직일 수 있는 능력에 의해 주어진다.
움직임은 종종 앞으로 방향지워지거나 대상들과 장소들에 의해 저지되기도 한다.
그래서 공간은 대상들이나 장소들의 상대적 위치로, 혹은 장소들을 분리시키거나 연결시키는 거리와
넓은 구역으로, 그리고-보다 추상적으로는 - 장소들의 네트워크에 의해 정의되는 지역으로
다양하게 경험될 수 있다.
- 새로 이사온 사람에게 근린(neighborhood)은 처음에 혼란스러운 이미지,
즉 "저 밖에 있는" 흐릿한 공간이다. 근린을 알려면 근린 공간내에 있는 길모퉁이와 주요 건물 등의
유의한 장소들을 알아야 한다. 대상과 장소는 가치의 중심이다.
그것들은 아주 조금씩 서로를 끌어당기거나 밀어낸다.
잠시 동안이라도 그것들에 관심을 기울이면 그 실재와 가치를 인정하게 된다.
3장 공간, 장소, 그리고 아이
- 사물은 이름을 얻고 어떤 방식으로 분류될 수 있어야 비로소 완전한 실재가 된다.
장소에 대한 호기심은 사물에 대한 일반적인 호기심의 일부,
즉, 경험들에 이름을 부여할 필요의 일부이다.
경험이 훨씬 높은 정도의 영구성을 가지고 어떤 개념적 틀에 맞도록 하기 위해서는
경험들에 이름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 장소에 대한 감정은 지식의 영향을 받는다.
즉 장소에 대한 감정은 그 장소가 자연적인 것인지 인공적인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상대적으로 큰지 작은지와 같은 기본적 사실들을 앎으로써 영향을 받는다.
- 미국에서 정기적으로 이동하는 농장 노동자의 아이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무엇보다도 그들은 얼마동안 자신의 것으로 동일시할 수 있는 장소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아이의 상상력은 특별한 종류의 상상력이다. 그것은 활동에 얽매여 있다.
아마도 내가 읽은 건축관련 책중에 가장 어려웠던 것 같다,.
음...읽고 난 후인 지금도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한 것인지 도통 감이 없다.
르럽은 건축 혹은 그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이용한 건축도면을 가지고 공격한다,
이 책의 원래 제목도 '계획적인 공격'이란다.
뭐 이 책을 읽으면서 제대로된 이야기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측면도 아마 그런 이유일까 ?
[이 작품들은 일가족주택에 대한 공격이다. 일부는 탐구이며, 일부는 공격이고, 일부는 건축적 구성이며, 일부는 허구로 되어 있다. ...]
르럽은 변용이라는 것을 가지고
인간중심건축의 형이상학 즉, 서사, 용도, 부지, 중추구조의 모방관례를
폭력적으로 자신의 구성틀에 집어 넣거나 우리가 기지고 있는 고정적인 틀을 제거해 버리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건축의 변용을 생각하도록 하는 것 같다,
[이 작품들의 기초가 되는 것은 일가족 주택은 '규율의 기제(disciplinary mechanism)'- 그 형태에 명시된 윤리성- 라는 가정이다. 방, 가구, 설비의 지정 및 그것들의 통사론은 이데올로기의 매체이며 인간의 형태를 한정한다. 만들어진 형태는 수많은 영향의 부가적 구조들에 의해 입증되고 있다. 정치와 법률의 수사, 의례상의 연설, 일상생활의 언어, 여러가지 텍스트와 이미지의 조합, 전문가의 특별기고란과 광고에서 텔레비젼 연속극에 이르기까지 그 출처가 다양한 행동의 약호code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
그가 그린 그림들을 보면
결국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부재로써의 건축을 시도함으로써 우리에게
고정적인 텍스트로써의 건축에서 해방되도록
그리고 그러한 방향이 과거의 시원적인 어떤 것으로의 회귀가 아닌
근본적인 성찰의 기억으로 다가가도록 부추기는 듯 하다.
실은 내가 이런 말들을 주절거리고 있지만
난 여전히 이해를 했다고 생각되어지지 않는다.
뭐 무엇을 이야기하고픈 것인지는 알겠는 것 같기도 한데
문제는 르럽이 재구성하는 방식의 도면 혹은 이미지가 딱히 감응을 주지 못한달까 ?
온통 혼란스러운 이미지랄까 ?
결국 르럽이 주려고 한 것도 이런 것일까 ?
이 책은 세가지의 주택을 보여준다
무가족 주택
사랑/주택
그리고 자립한 여성을 위한 텍사스 제로....
대략 도면만을 보면 이해되는 듯도 싶지만
결국 건축이라는 것은 상상이 아닌 구체적인 실현의 목적이라면
이런 측면에서 혼란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건축은 공간에 대한 결과물이기보다는 사회적 구성의 과정이라고 본다면
르럽이 이야기하는 것은 어떤 사회적 과정들을 내포하면 구성되어지는 것일까 ?
도통 해결되지 않는 이 질문에 답은 어쩌면
르럽이 이야기한 허구로써의 공격의 으ㅟ지 정도로 파악해도 되는 것인지....^^;;...나도 잘 모르겠다.
뭐 !! 여하튼 르럽이 공격하려고 한것은 알겠는데
여전히 그 실체는 너무 두리뭉실하게 다가온다......ㅎㅎ
건축은 ...언제나 어렵군...크크크
이 책을 읽으면서 무가족주택이라는 것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최근 가족 혹은 어떤 구성체로써의 고정적인 공동체에 대하여 고민하여 오던 터라서
이런 무가족주택 혹은 남녀의 고정적인 양성이 아닌
인간 본성의 성 자체의 반영을 이루는 방식으로써의
건축에 대한 이야기는 나름 새로운 고민거리를 주는 듯도 싶다...
그런데
난 왜 이런 책을 읽고 있는 거지..?...하는 생각을 가장 많이 한 것 같다.....^^;;
실은 이 책은 너무 건축관련 전문서적인듯
나같은 건축문외한이 이해하고 나름 어떤 것들을 남기기에는 너무 어렵다,
대충 감만 잡는달까 ?
이런 건 책읽기도 아닌데...싶은 생각이다.....크크
다음부터는 책선정에 있어서 조금더 나에게 맞는 책을 만났으면 좋으려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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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책을 공간과 장소, 인문지리쪽으로 너무 편식해서 읽는 듯 싶다...^^;;누가보면 건축학도인줄 알것다...반성반성...캬캬캬
그래도 최근 글을 읽으면서 몇 명이 눈에 보인다.
푸코를 다시 읽어야 할듯도 싶고
르페브르도 얼렁 책 구해서 읽어야 할 것 같고
맑스 원전도 어떤 식으로든 다시 찾아봐야 할듯도 싶고..
아 !! 할일도 많고 읽어야 할 책은 더 많고...젠장젠장...
시간이 부족해....^^;;
아 !1 몸이 두개였으면 하는 바램이 스멀스멀 일어난다. 요즘은....크크크
여튼 후다닥 읽고 정리하고 반성하고 몸뚱아리 굴려봐야쥐....크크크
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