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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단편영화산책>에서 보는 독립영화에 대한 비평문을 모으고, 독립영화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을 모아보는 곳입니다.

5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7/05/16
    우리는 정의파다 - 질문지
    독립영화비평
  2. 2007/05/16
    우리는 정의파다 질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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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7/05/15
    <더불어 사는 집>에 대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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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7/05/10
    <흡년>, <얼굴들>에 대한 리뷰 - 김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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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7/05/05
    여러 영화들 단평(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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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7/05/03
    여성 - 한국시그네틱스 투쟁 - '자료수집자 김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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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7/04/30
    <계속된다 - 미등록 이주노동자 기록되다> 발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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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7/04/26
    장애인의 성은 인정되어야하지만, 그들의 어긋난 욕망까지도 받아들여져선 안됀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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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7/04/26
    약자 속의 약자 이주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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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7/04/25
    <골목 밖에서> 리뷰-한국독립 애니메이션
    독립영화비평

우리는 정의파다 - 질문지

김현지

 

 

1. 저번 시간에 독립영화가 갖는 영화적 요소에 대한 발표 비중이 적다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우리는 정의파다는 어떤 영화적 요소들을 갖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주제에 맞게 잘 연출 되었는지? 저는 영화적 요소라는게 정확히 뭔지 몰라서 이런 보도와 기록으로 이뤄지는 영화에 영화적 요소가 있다는 것을 놓치고 지나갔던 거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우리가 이 독립영화를 볼 때, 영화라고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요소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래서 제가 영화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을 깰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2. 우리는 정의파다에서는 좀 더 진지하고 오랜 시간 동안 온 몸과 마음으로 집중력 있게 투쟁해온 여성 노동자들이 나옵니다. 투쟁한다는 것에 대해 저번 시간에 제가 회의적인 발언을 했는데, 이 영상을 보며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발제자 분 께서는 투쟁에 관해 어떤 의사를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투쟁의 장점과 단점, 필요 유무 같은 것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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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의파다 질문지

우리는 정의파다 를 보고.

 

강지혜

 

 실은 앞서 본 <얼굴들>에서의 여성(중첩된 가정 내의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하며 제대로 몰입해서 싸워지지 못하는 모습들을 보았다. 싸우면서도 드는 회의(모든 운동이 그러겠냐만은)는 여성이라는 한계에서 파생되는 듯해서, 나는 무언가 좀 더 가열차게 싸워주길 바랐다.

 

 하지만 <우리는 정의파다>를 보며 <얼굴들>에서 느꼈던 아쉬움이 싹 씻겨 내려갔다. 더구나 박통 시절, 중앙정보부를 통한 탄압이었다니. 그녀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진보적이고 허를 찔렀으면 그들이 직접 나섰겠는가.

 

 35(정확한 년도가 기억나지 않는다..)년의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그녀들은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어느 곳에서도 일할 수 없었고, 폭력전과자의 전과를 갖게 되었고, 남편에게 빨갱이라고 폭력을 당했다.

 

 <얼굴들>의 주인공들에게 <우리는 정의파다> 다큐를 보여주면 그녀들은 좀 더 힘을 내지 않을까? 그녀들에게 힘을 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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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사는 집>에 대한 질문

<더불어 사는 집>에 대한 질문들                              영상이론과 박소영

 

 

'더불어 사는 이들'의 아이러니....

   먼저 드는 의구심은 '노숙자들의 공동체가 과연 성립될 수 있는가?' 라는 점이다.

그들은 <더불어 사는 집>이라는 타이틀로 그들만의 공간을 꾸려나간다. 

노숙자라 하면 -타의에 의해서든 자의에 의해서든- 정상적인 사회체제의 부적응자로 낙 인 찍힌 이들로  익히 알고 있다. 이러한 그들이 그들만의 질서와 규칙을 만들어 작은 사회를 만들어 가는 과정은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목표는 잃어버린 생존권을 찾는  '투쟁' 이라 말하고 있지만  과연 그들의 의도에 타당성이 있는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비약해서 말하자면 차라리 사회에 정상적으로 복귀하는게 더 나은 선택이지 않을까 싶다. 아니 자신들의 권리를 소중히 생각했다면 애초부터 노숙자가 되지 말았어야 했다.

사회에 민폐를 끼치게 된 그들의 선택에 시비를 가리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처한 상황에서 그들의 주장과 논리가 다소 억지스러워 보여서 이와 같은 생각이 든 것이다. 노숙자들이 꿈꾸는 -그들이 인간답게 살고싶다는- 세상은 어찌되었든지 현실과 심한 괴리감을 느끼게 한다. 먼저 사회와 가정으로부터 무책임했던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고, 그들에게 닥쳤던 불우한 상황을 좀 더 현명하게 대처할려고 했던 자세가 우선시 되었더라면 그들의 입장에 우리가 한발 더 가깝게 다가갈수 있지 않을까?

사회와 떨어져 노숙자가 되어버린 그들이 또 다른 사회에 편입하여 현실과 맞서는 장면을 과연 우리는 어떠한 기준과 자세로 판단내지는 이해를 해야 하는 것일까?

분명한 것은 그들을 진정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써 이해하고자 한다면 가벼운 동정심만으로는 안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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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년>, <얼굴들>에 대한 리뷰 - 김현선

 


여성 앞에 놓여진 이름-어머니, ‘어머니’라는 가능성

-<흡년,2004>, <얼굴들,2006>-

1. 차이와 차별


인간을 이해하는 기초적인 범주 중에서 가장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은 여전히 ‘성차’이다. 우리는 현실적으로 혹은 경험적으로 성차적 인식을 흔히 접하게 되고, 이러한 성차가 차이를 넘어서 차별에까지 이르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성차는 객관성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지니고 있는 과학적 설명으로 인해 공고화되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갖는 과학에 대한 견해와 달리 과학 이론은 그 시대의 사회적 요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과학은 한시대의 과학 공동체의 사회적 합의와 패러다임에 부합할 때만 객관적인 것이 될 수 있다. 특히 자연을 다루는 어느 분과보다도 성차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사회의 요구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즉 가부장제 내에서 과학적 가설로부터 평가에 이르는 전과정은 남성의 시각에서 ‘객관적’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성차적 인식은 생물학적 이론과 가부장적 가치관에 기반하여 성차별을 공고히 하고 남녀 불평등의 현실적 조건들을 재생산해내는 기제로 작용해왔다. 물론 남성과 여성은 기본적으로 신체와 생식 능력에 있어서 뚜렷한 차이를 지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시 말해, 여성은 남성과 달리 임신과 출산의 가능성을 갖고, 이는 생식 기술의 발달이나 생물학적 조건의 변화로는 달라지지 않는 원천적인 차이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이외의 대부분의 성차적 구분은 뚜렷한 명분을 갖지 못하거나 생식에 있어서의 구별된 역할이 그것의 명분을 대신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생물학적 차이는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그 본래의 의미를 벗어나 그 이상의 지위를 갖기도 하고, 불필요한 영역에까지 이용되는 경우가 흔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현실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자연적인 성차가 여성과 남성을 이해하는 본질적인 요소가 될 수는 없다. 그리고 이와 마찬가지로 자연적인 성차인식 이후에 생겨난 ‘사회적 성차’ 또한 차이에 대한 인식만으로 끝나지 않고 차별에 대한 인식으로까지 이어지거나 그 내부에 이미 이전의 인식이 갖는 한계를 포함하게 되었다. 따라서 ‘여자라서 또는 남자니까’라는 이분법의 출처는 여성과 남성의 몸이 아닌 여성과 남성의 권력 관계를 나타내는 지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맥락에서 성차는 인간을 설명하는 기본적인 지표를 넘어서 사회적 억압으로 기능하고 있으며, 남녀간의 차이를 밝히는 것을 넘어 차별을 정당화하고 강화하는 기제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무엇보다 이처럼 견고한 성차 인식은 엄격한 역할 분담을 낳고 그것으로부터 개체의 자유를 빼앗는 데 작용하기도 한다.


2. 차이가 낳은 고정적인 역할, 그것의 차별적 이름-어머니


<흡년>은 여성들의 흡연과 그와 관련된 사회적인 시선에 대해서 ‘발언’하고 있는 영화이다. 영화는 흡연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끊임없이 보여주면서 그들이 받아야 했던 수많은 비난과 질책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 중에 가장 흥미로운 점은 담배를 피우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비난의 많은 부분이 ‘어머니’라는 가능성의 이름 하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비난은 남성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같은 여성에 의해서도 이루어진다. 아기를 낳아야 하는 여성으로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아이에 대한 무책임한 행동으로 평가된다. 누군가는 일반적인 여성의 흡연에 대해서는 찬성(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무관심)하지만 유독 자신의 아내가 될 여자 또는 자신의 아이의 어머니가 될 여성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비흡연을 주장한다. 또는 담배를 피우는 것은 곧 결혼을 포기하는 것이며, 이와 동시에 어머니가 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기도 하며, 이처럼 결혼과 관련된 사회적 관계를 포기하는 여자는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아무렇게나 사는 여자로 평가된다. 그리고 ‘갈보년’, ‘쉬운 여자’와 같은 비난은 그 이면에 ‘어머니’라는 자리를 포기하고 자신의 욕구(성적인 욕구)를 실현하는 데에만 급급한 여성이라는 부정적인 시각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시각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임신과 출산’이라는 생물학적 조건으로써의 여성의 몸을 사회적인 관계 내에서만 규정하는 차별적인 시선에 불과하다. 이처럼 가부장적 가치관 하에서 여성으로서 흡연을 하는 것은 기호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로 취급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어머니’라는 사회적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여성에게 그러한 자리 이외에 어떠한 욕구도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현실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현실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기혼 여성의 투쟁 기록인 <얼굴들>이다. <얼굴들>은 엄마, 아내, 며느리라는 역할과 함께 노동자로서 살아가야 하는 기혼 여성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 영화는 노동자가 처해 있는 현실을 보여주는 동시에 여성에게 부여된 사회적인 역할과 이로 인해 강요되고 있는 의무들에 주목한다. 다시 말해, 엄마, 아내, 며느리라는 자리는 결혼이라는 제도로 인해 부여된 여성의 사회적 자리이며, 이러한 여성들에게 노동을 통한 자기의 실현은 가정 내에서 부여된 자신의 역할을 다한 후에만 가능한 것이 된다. 그녀들은 자신의 복직을 위해 투쟁하는 동시에 가정에 있는 남편과 아이들을 챙겨야 하는 이중의 임무을 수행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이러한 역할 수행에 대한 의무감과 책임이 뒤따른다. 이처럼 앞서 언급한 <흡년>과 같이 <얼굴들>이라는 영화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여성에게 부여된 ‘어머니’라는 이름은 절대적인 지위를 확보하고 이와 동시에 여성이 지닐 수 있는 또 다른 다양한 욕구들은 ‘어머니’라는 이름 앞에 부정당한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의 어머니는 담배를 피워서도 안 되고, 성적 욕구를 추구해도 안 되며, 노동이나 사회적인 행동들을 통해 자신의 의미를 찾아나가는 것 또한 금지된다. 따라서 이로 인해 후자의 욕구를 선택하고자 하는 여성에게는 언제나 ‘어머니’라는 자리는 멀고 먼 이름이 되고 만다. 반면에 <얼굴들>에서 이야기된 것처럼 남성들이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하고 투쟁할 때에 그들은 ‘아버지’라는 이름을 부담스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그들, 아버지의 가정에는 여전히 이를 지켜나갈 ‘어머니’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아버지’들의 투쟁에 힘을 실어주는 가족대책위원회에서의 여성들의 역할은 ‘아버지’를 위해서만 존재할 뿐 여성 자신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사회적인 참여나 발언이 아니다. 오직 남성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데 그들을 보완하는 객체로서의 역할만이 주어질 뿐이다. 이와 달리 <얼굴들>에서 노동자로서 살아가는 여성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가운데 꾸려지는 가족대책위원회는 그녀들이 노동자이기 때문에 그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동참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의 테두리 안에 있는 ‘어머니’ 혹은 나의 ‘아내’이기 때문에 허락하고 승인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어머니’의 자리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여성 앞에 놓을 수 있는 다양한 이름 중의 하나일 뿐이다. 여성은 ‘어머니’의 자리와 또 다른 자신의 자리 사이에서 언제나 선택을 강요당하지만 그들에게는 ‘어머니’인 동시에 노동자일 수 있는 권리가 있으며, ‘어머니’라는 가능성인 동시에 흡연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따라서 자연적인 성차는 차이에 대한 인식으로 기능하는 것 이외에 그것을 뛰어넘는 차별에까지 이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며, 더욱이 그것이 강요와 억압으로 작용하고 있는 현실은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문제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참고문헌 - 철학의 눈으로 읽는 여성, 연효숙 외, 철학과 현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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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영화들 단평

 강 지 혜

 

상계동 올림픽

김동원A | | 27분 | | 1988 | 극영화

 

인천에서 2014년 아시안게임이 유치 해냈다던데 갑자기 다큐 중간에 인천(부천?)시청에 걸린 [88올림픽의 완벽한 준비]라는 플랜카드가 떠올랐다. 이번에도 [아시안게임 개최를 위한 완벽한 준비]로 걸리지 않을가 하는 생각을 햇다. 뭐 꼭 그렇게 딱딱한 어투는 아니겠지만.

 

영화를 보며 놀란 점은 상계동 주민들의 대처였다. 그들은 시청직원들의 거짓말에 속고 또 폭력을 당하면서도 너무나 순수했다. 오히려 조금만 기다려 달라 혹은 짐이라도 옮기게 해달라 식의 애원조였다. 더구나 건들이지만 않으면 제법 지낼만 하다 라며 땅굴 밑에서 이런 말을 하다니. 그들은 6월항쟁과 민주화에 한몫을 했다고 하지만 너무나 착한 모습에 놀라면서도 화가 났다.

 

인재를 위하여

장윤현 | | 50분 | 칼라 | 1987년 | 극영화

 

내내 보며 든 생각은 박근혜가 정말 대통령이 되면 안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가 대통령이 된다면 박정희 기념관 사업도 재개될 것이고, 밝혀져야할 역사적 진실이 몇 년은 더 감춰지지 않으려나.

노동자들이 뭉크나 피카소를 보면 무슨 감동이 있겠니? 라는 선배의 말이 의미심장했다. 아는 게 아니라 뼈에 사무치도록 몸으로 인식해야 해. 시대적 상황이 워낙 노골적이었고, 생각이 있는 청년이라면 들고 일어서야 했기 때문에 예술이 지향하는 바도 좀더 확실해야 했겠지. 요즘은 아무래도 모든 것이 깊숙히 숨어버렸고, 지상위를 활보하는 예술조차 하늘로 솟았는지 짐작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Wet Dream

김윤태 | 16mm | 15분30초 | 칼라 | 1992년 | 극영화

 

확실히 90년대로 넘어간 것 같다. 개인의 내면으로 침잠해 가는 느낌이었다. 왜 제목을 영어로 했을까? 젖은 꿈이라고 해도 좋았을 텐데. 붉고 초록색 물들에 어떤 감정이 있는 것 같다. 헤어드라이기를 권총을 머리에 대고 자살하는 것 같이 모션을 취한 남자의 모습도 느낌이 좋고.

 

Org

임창재 | 16mm | 13분 | 흑백 | 1994년 | 극영화

 

94년도에 만들어 졌다지만 왠지 유럽 초기 실험영화같은 느낌이 들었다. 함께 본 김

00양도 별로였다는 느낌.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김환태, 2003

   

양심병역거부에 대한 다큐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개인의 신념(양심)을 지켜주는 사회가 되어야 될텐데.

 

다수를 위해 소수를 밟아도 되나? 하지만 이 논리는 군대 병역 안보라는 이름 안에서는 아예 털끝의 자리도 없다. 평화를 위해서 비평화적 방법인 군대로 보류한다는 것도 말처럼 웃기고

 

인터뷰에서 어떤 양반의 말대로 안보와 민주주의 사이의 균형을 잘 맞춰 가는데 논점일 것 같다. 하지만 지금까진 안보라는 트릭으로 박정희 비롯한 여러 죽일 인물들이 많은 자유와 목소리를 억압하지 않았던가

 

대체복무관련 제도를 얼른 실현화해야한다.

 

또한 양심병역거부는 곧 반전운동으로 까지 이어진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이러한 폭넓은 행동개시야 말로 양심병역거부에 대한 오해를 풀 수 있는 좋은 지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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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 한국시그네틱스 투쟁 - '자료수집자 김현지'

참고 : 한국시그네틱스 투쟁의 과정자료는 영화 <얼굴들>을 봤다는 전제로 넣지 않았습니다.

 

“2001 서울 염창동에 있던 한국시그네틱스는 40년 된 반도체조직회사로 2000년 영풍그룹에 인수되었다. 98년 당시 파주공장 설립 등의 과도한 부재로 위크 아웃에 들어갔을 때 염창동 공장 매각과 파주로의 공장 이전이 결정 되었다. 그런데 회사는 이주 불가자를 모집해 대기 사직시키고 안산에 공장을 새로 지어 염창동 공장 노동자들만 따로 수용하려고 했다. 그러나 안산 공장에 투자 계획이 없었다는 걸 착안한 노동조합을 시작했다. 파주로의 고용을 요구하며 2001년부터 투쟁을 시작했다.”

-영화 <얼굴들>에 서문-

전체 95조 중 복직 판정된 25명 중도 해고는 정당하지만 회사가 일정 수준의 인원을 안산 공장에 수용할 자세를 보인점을 감안해 도시 화합 및 사조건보장지원에서 관용을 베푸는 것. -영화 <얼굴들> 중-

 

국가인권위원회는 유치장 입감과정에서 알몸신체검사를 실시해 인권유린 논란을 일으킨 경찰관 5명에 대해 특별인권교육 수강을 권고했습니다. 국가인권위는 지난 4월 구로경찰서 소속 박 모경장 등이 한국시그네틱스 파업노조원 7명을 유치장에 입감하면서 알몸신체검사를 한 것은 명백한 인권유린 인권위가 주최하는 특별인권교육 수강할 것 권유. 국가인권위는 경찰총장에게 인권침해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정밀심체 검사 대상자의 요건을 강화 할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YTN37초2002.10.22

 

● 2006년 오늘 그들은 무엇을?

1997년 선거에 출마에 유OO 집행부에게 패배했던 윤민례씨는 2006년 시그네틱스 지회장으로 활동중이다. 그녀는 유OO 집행부가 들어선 뒤로 한동안 노조활동을 중단하다시피 했다. 3년여 기간동안 유OO 집행부는 사측의 구조조정 계획을 간과한 채 상여금 반납, 임금 동결에 합의하면서 저항의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2000년 말, 정혜경 지회장을 필두로 한 민주노조 운동이 부활하자 회사는 즉각적으로 안산공장 이주불가자를 모집하면서 기존 단협을 파기하고 파주공장으로 노동자를 이주시키겠다는 약속을 뒤집었다. 윤민례씨는 정혜경 지회장과 5년간 보조를 맞추다가 정혜경 지회장이 현재 금속노조 부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지회장직을 맡아 활동 중이다. 시그네틱스 노동자들 중에는 가정경제가 좋지 않아 애초부터 빚이 있었거나 장기 투쟁을 하면서 카드빚이 늘어나 생활 전선에 모든 것을 바치고 있는 이들이 있다. 이들의 경우, 노조활동에 참여하고 싶어도 휴일없는 노동으로 거의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몇년째 경제활동에 전념하고 있지만 상황이 호전되지 않아 매우 힘든 생활을 하고 있다.

또 어떤 경우에는 공장에서 발견하지 못한 자신의 능력을 발굴해 경제생활이 윤택해진 경우도 있다. 이들의 경우, 새로이 얻은 직업을 통해 몇 년 사이에 몰라보게 생활이 나아지기도 했다. 다른 분야에서 활동할 기회를 얻으면서 적성에 맞은 일을 찾은 경우이다. 인력공급업체를 통해 동종업계의 다른 공장에 취직한 경우도 있다. 이들은 주로 비정규직으로 활동하면서 3개월에서 9개월마다 해고 당한 뒤, 2-3일 뒤에 복귀해 일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은 종종 한국통신 계약직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지에 대해 이야기하고는 한다. 가정 형편이 나쁘지 않은 경우에는 가정주부로 전업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의 경우 70만원의 저임금노동에 묶여 가정과 격리되고 강압적인 노동환경에 스트레스를 받았던 과거에 비해 보다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 비록 일하기 전보다 경제생활이 곤궁해졌지만, 자녀교육에 힘쓰면서 시간을 내어 집회에 참석하기도 한다.

외에도 공장으로 복직한 22명의 노동자들이 있다. 이 중 5명은 얼마전 명예퇴직을 하였다. 시그네틱스 노조에 따르면, 이들에게 가해지는 현장탄압은 구조조정의 일환이라고 한다. 이들은 정규직이지만, 예전에 회사에 저항했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고 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장기투쟁 과정에서 심신이 지치고 정신적인 압박에 시달리면서 신경쇠약이나 우울증상을 보이는 노조원들도 더러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그네틱스 지회는 한 달에 한번 전체 모임을 갖는 경우, 보통 20여명 정도가 참석한다. 매주 집회가 있는데, 시간의 여유가 있는 노조원들은 가끔 집회에 참석한다. 그러나 여전히 다수의 노동자들은 6년째 노조에 조합비를 내면서 노조 깃발아래 함께하고 있다. 윤민례 지부장은 "복직판결을 받은 노동자들이 공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조직하는 문제도 노조의 역할 중 하나"라고 전했다.

조합원 최모(46,여)씨는 "6년의 투쟁기간 동안 두번의 대통령을 겪었고 한결같이 실망스럽다"면서 "아직도 시그네틱스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이 가슴이 아프다"고 전했다. 그녀는 전업주부로 생활하고 있지만, "이 문제가 올바로 해결되지 않으면 아이들에게 부끄러울 수밖에 없다"면서 "복직 되기를 희망하고 복직된다면 다시 공장에 돌아가야 한다. 그것이 옳다"며 시그네틱스 노조의 투쟁을 지지했다.

 

 

Q. 다른 나라의 여성 노동자에 대한 대우?

-인권선진국이라 불리는 뉴질랜드의 예

뉴질랜드에서는 육아 문제를 여성의 일할 권리를 보장하는 ‘모성 보호’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육아는 여성에게만 주어지는 책임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짊어져야 할 공동의 의무’라고 정부나 사회가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직장에서 마련한 육아 시설에 아이를 맡기고 부담없이 일하는 뉴질랜드 여성들은 남성과 동등한 일할 권리를 보장받고 있는 셈이다.

●“육아는 사회의 책임”

TVNZ는 뉴질랜드에서 가장 큰 도시인 오클랜드 중심 거리 빅토리아 스트리트에 있다. 차일드케어 센터는 이 건물에서도 가장 접근하기 쉬운 2층에 있다.2세 이하 영아와 3∼4세 유아를 위해 두 개의 침실과 실내외 놀이방, 목욕탕과 식당, 컴퓨터 이용실 등이 마련된 센터에서 50여명의 아이들이 장남감 놀이, 종이접기, 낮잠자기 등 저마다 하고 싶은 놀이를 하느라 여념이 없다. 아이들은 모두 TVNZ 직원의 자녀들이다. 셰릴은 원래 주치의가 있는 병원 근처 사설 센터에 대니얼을 맡긴 적도 있다. 하지만 대니얼이 자꾸 울면서 엄마를 찾는 바람에 일에 집중할 수가 없어 넉달 전 회사 내 시설로 옮겼다. 업무 도중 잠시 짬을 내 대니얼을 품에 안은 셰릴은 “언제 무슨 일이 생기든 바로 찾아볼 수 있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다.”며 대니얼의 뽀얀 볼에 입을 맞춘다.

TVNZ은 지난 89년 이 보육 공간을 만들어 사설 센터보다 15% 가량 싼 값에 직원의 아이들을 돌봐주고 있다. 여성들의 사회 참여가 활발해지고 여성이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면서 뉴질랜드의 기업들은 기업이나 사회가 여성에게 동등한 기회를 제공해줘야 할 의무를 갖게 된 점을 알고 있다. 현재 TVNZ의 여성 직원 비율은 전체 980명 가운데 47%로 우리나라 기준으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높다.

|오클랜드(뉴질랜드) 이재훈 특파원|

뉴질랜드는 1893년 세계 최초로 여성의 참정권을 보장해준 나라다. 헬렌 클라크 총리, 아넷 킹 보건장관, 매리언 홉스 환경장관, 케리 프랜더게스트 수도 웰링턴 시장이 모두 여성이고 국회의원 120명 가운데 여성의원은 35명으로 29%를 차지한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비율은 60.8%로 남성의 75.0%에 비해 크게 뒤지지 않는다. 지난 5월 스위스의 세계경제포럼(WEF)이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도, 경제활동 기회, 정치적 권리, 교육 성취도, 보건복지 수준 등 5개 평가항목을 바탕으로 발표한 ‘여성의 권리와 남녀불평등조사’ 보고서에서 뉴질랜드는 스웨덴,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덴마크, 핀란드 등 북유럽국가에 이어 6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최하위권인 54위였다.

집권 노동당 여성위원회 부위원장 레슬리 소퍼 의원은 뉴질랜드 여성의 지위가 높은 이유를 국가 태생의 역사에서 찾았다. 지난 5일 웰링턴 국회의 의원 사무실에서 만난 소퍼 의원은 “19세기 초반 유럽인들이 섬나라 뉴질랜드를 개척하고 정착하는 데 여성들이 큰 역할을 했고 이후 여성들의 교육수준도 높였기 때문에 여성의 지위가 자연스레 올라갔다.”고 설명했다. 높은 여성 지위와 여성의 정치·경제 참여비율은 자연스레 여성을 위한 법과 제도를 갖추게 만들었다.1972년 남녀 동등임금법을 만들어 지난해 여성의 임금수준을 남성의 87%까지 끌어올렸고 1986년에는 세계 최초로 여성부를 만들었다. 여성부는 내각 최상급기관으로 모든 이슈를 여성의 입장에서 검증하는 역할을 맡는다.

1990년에는 기업내 남녀 고용 비율을 똑같이 맞추게 하는 동등고용법을 만들었으나 3년 뒤 집권당이 노동당에서 국민당으로 바뀌면서 폐기됐다. 하지만 1999년 재집권한 노동당이 법안 마련을 다시 추진하고 있다.2007년부터는 모성보호를 위해 정부기관이 모든 3∼4세 아동들의 교육을 주당 20시간 책임지는 의무 육아교육시스템도 시행할 예정이다.

nomad@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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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그네틱스

전자관 및 기타 전자부품 제조업체.

업종 전자부품제조

설립일 1966년 9월 12일

소재지 경기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483-3

총자산 1319억 원(2003)

매출액 877억 원(2003)

본문

1966년 9월 설립되어 1995년 5월 로열필립스일렉트로닉스가 주식을 매입하였고 1996년 거평그룹에 인수되어 상호를 거평시그네틱스(주)로 변경하였다. 1997년 5월 파주공장을 완공하였고, 1999년 1월 거평그룹의 부도로 현재의 회사명으로 상호를 변경하였다. 2000년 3월 대주주가 영풍(주)으로 변경됨에 따라 같은 해 6월 대규모기업집단 영풍에 편입되었으며, 11월 2억 불 수출의 탑을 수상하였다. 그러나 재무상황 악화로 2003년 1월 화의를 신청, 2월 10일 화의개시결정을 받았다.

주요 사업은 전자부품 제조 및 판매, 수출임업 등이다. 본사는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483-3번지에 있고, 공장은 경기도 파주시와 서울특별시 강서구에 있다. 2003년 12월 말 현재 총자산 1319억 원, 당기순이익 231억 원, 매출액 877억 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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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된다 - 미등록 이주노동자 기록되다> 발제문

 

<단편영화산책> 발제문

<계속된다 - 미등록 이주노동자 기록되다>를 중심으로


방송영상과 20041235 도유리


1. 들어가며


1) 이주노동의 역사


  <계속된다 - 미등록 이주노동자 기록되다>(이하 <계속된다>)의 도입부에서 볼 수 있듯, 1980년대 이전에 ‘이주 노동자’ 라는 단어는 대부분 해외로 나가 일을 하는 한국인들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동남아시아인들이 주류를 이룬 해외 이주 노동자들이 한국에 들어오기 시작했다.1) 그렇다면 왜 하필 1980년대 후반이었을까? 영화 <계속된다> 와 <복수의 길>, 그리고 이주노동자들의 존재와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기 전에, 편협함과 차별적 민족주의가 팽배한 한국 사회에 도전장을 던지기 시작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어떻게 우리 사회에 편입되기 시작했는지부터 알아보자.


이주노동자가 유입되기 시작한 80년대 말 한국은 사회전반의 민주화 진전과 함께 노동시장에서도 대공장을 중심으로 노동조건의 개선과 노동자 임금의 급격한 상승을 경험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결과적으로 대공장(대기업)과 중소공장(영세기업) 간 노동조건의 격차확대를 초래했고, 여기에 내국인들의 육체노동에 대한 인식변화가 더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영세 제조업, 건설업, 광업 등 이른바 3D로 분류되는 업종에 대한 취업기피 현상으로 이어졌다. 국내 중소영세업체의 인력난이 점점 가속화되는 가운데 극심한 실업난을 겪고 있던 중국, 동남아의 개발도상국에서는 한국의 높은 임금과 환율차에 기대를 건 한국행 노동이주에 대한 선호가 날로 높아져, 한국으로 입국하는 이주노동자의 수가 급증하였다.2)


  위 글에서 볼 수 있듯, 외국인 노동자들의 존재는 - <계속된다>에서 한 이주노동자가 스스로 밝혔듯이 - 한국의 급격한 산업발전과 한국 노동자들의 3D 기피현상으로 생겨나기 시작한 것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왜? 한국 사회는 이들을 고마운 존재로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그에 관해 생각해보기 위해 우선 한국 정부의 ‘산업 연수생 제도’ 와 ‘고용 허가제’ 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자.


2) 산업 연수생 제도 / 고용 허가제


 ① 산업기술연수생 제도


저개발국 외국인에게 기업연수를 통하여 선진기술을 이전하기 위한 제도. 개발도상국과 경제협력을 도모하고 기업연수를 통하여 선진기술을 이전하기 위한 제도이다. 1993년 11월 도입되어 국내 3D 산업 중소기업의 인력난을 해소하는 창구역할을 해왔다.3)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한국정부 역시 산업연수생 제도가 국내 3D 산업의 인력해소에 도움이 됨을 인정한 바 있다. 하지만 더불어 ‘선진 기술을 개발도상국에 이전한다’ 라는 입장을 취해 외국인 노동자들을 ‘노동자’ 가 아닌 ‘연수생’ 으로 구분 짓는 근거를 마련했다. 실제로 산업 연수생 제도의 가장 큰 폐해는, 이 제도가 그들을 노동자가 아닌 연수생으로 보기 때문에 그들이 노동 3권, 최저임금 보장 등의 권리를 전혀 누릴 수 없었다는 부분에 있다. 때문에 외국인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고강도의 노동, 산업재해 불인정, 강제노동, 폭행, 임금체불 등의 부당처우를 견디지 못하고 사업장을 이탈해 불법 체류자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2003년부터 고용허가제와 병행 실시되던 이 제도는, 민주노총 등을 비롯한 노동단체의 꾸준한 문제제기와 외국인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결국 2007년 1월에 완전 폐지되었다.


② 고용 허가제


산업 연수생 제도의 폐지로 새로이 도입된 고용 허가제는, 2003년 8월 16일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 · 공포되면서 도입되었다. 이 법에 따라 2003년 11월부터 약 9개월간의 시범 실시를 거쳐, 2004년 8월 17일부터 정식 시행되고 있다. 고용허가제의 입법은 외국인력제도 개선의 첫발을 내디뎠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고, 국가 간 쌍무협정을 맺어 인력송출업무를 민간이익단체가 아니라 정부기관이 맡도록 하는 등 제도운영의 공공성 확보를 천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주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함으로써 산업연수제 하에서 발생한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권침해와 노동착취를 방지하고자 했다는데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인 취지에도 불구하고, 시행 2년이 지나고 있는 상황에서 고용허가제는 사업자 이동의 제한이라는 치명적인 한계를 극복하지 못함으로써 이주노동자의 인권개선 등 한국의 이주노동정책이 가진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권침해의 온상으로 비난받아 온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4) 등 연수추천단체를 이주노동자 모집·선발에서 사후관리에 이르는 고용허가제 운영전반에 편입시키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어 이주노동자인권단체를 비롯한 노동·시민단체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5)


  이처럼 고용허가제는 산업연수생제도의 폐해를 어느 정도 인정하고 받아들인 한국정부가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향상과 노동권 인정을 위한 첫 걸음을 떼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각종 이권단체의 로비와 정부부처의 이해관계로 인한 파행적 운영 - 정부는, 외국인 노동자가 입국 후 받을 인권과 노동권에 대한 교육과정도 이익집단에게 맡길 계획이며 심지어 고충처리, 재해사고 지원 등 이주노동자의 인권보호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안마저 이권단체에 위탁하겠다고 하고 있다. - 은 산업연수생제도로 회귀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낳고 있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과연 이런 제도적인 개선만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이 처한 불합리한 상황을 바꿀 수 있겠는가? 라는 물음에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을 수 없다는 것이 외국인 노동자 관련 제도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고 볼 수 있다.


3) 이쯤에서의 당연한 의문 -

왜 외국인 노동자의 고용합법화가 이루어지지 않는가?  


① 국내 노동자와의 차별화 문제


  앞서 살펴봤듯이, 한국의 사업주들이 외국인 노동자들을 고용하게 된 첫 번째 이유는 임금이 싸기 때문이다. 실제로 외국인 노동자들의 국내 진출로 한국 근로자들의 임금이 동결되고, 저임금을 견디지 못한 한국 근로자들이 스스로 실업자가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 대부분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국내 3D 업종에서 일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부분에 관해 정확한 통계는 나와 있지 않으며 한국 근로자들 중에서도 3D 업종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수준에 비해 비싼 임금을 유지하고 있는 한국 근로자들은 일자리를 구하는 데에 어려움을 호소한다. 하지만……

  

누가 이런 문제를 제게 묻는다면 대답해줄 수 있어요. ‘자유롭게 들어

오게 해라’ 그럼 브로커 문제가 없어지는 거죠. 그리고 한국노동자의

일자리를 뺏어간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죠. 일자리가 없으면 돌아가

는 건 그들이에요. 이주노동자가 계속 있어서 증가한다는 건 말이 안

되죠. 장기 체류자 증가에는 다른 이유가 있어요. 브로커한테 준 돈

을 갚으려면 3,4년이 걸리고, 다시 가족에게 줄 돈을 벌어가려면 3,4

년이 더 걸려요. 장기 체류자가 오히려 더 양산되는 거죠. 입국을 제한

하는 게 오히려 장기 체류자를 양산하는 거에요. 이주노동자가 자리를

덤핑 친다고, 한국노동자 자리를 잠식한다고 그러는데, 한국 노동자와

이주 노동자에게 똑같이 월급을 줘 봐요. 누가 이주노동자를 채용하겠

어요? 같은 조건을 만들어주면 되죠. 차별 없애라 그러는데. 브로커

문제만 없애면 되죠. 자유롭게 들어오게 하면 되는 거네. 그 차별 조건

만 없애면 다른 부차적인 문제가 다 해결되는 거죠.1)

 

② 세금, 복지혜택의 문제


  외국인 노동자 고용이 전면 합법화 된다면 외국인 노동자들은 한국 정부에 세금을 내야 한다. 또 한국 정부는 그들에게 의료보험, 고용보험과 같은 제도적 혜택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한국 정부와 외국인 노동자 단체 측이 일정한 협상과 논의를 통해 어느 정도의 결론을 내린다면 이러한 제도 마련을 위한 한국 정부의 노력이 나타날 수도 있다.

  하지만 법무부는 계속해서 전면 합법화는 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외국인 노동자측은 부분 합법화가 아닌 전면 합법화를 주장하면서 외국인 노동자 고용 합법화 문제는 끝없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한국 정부나 외국인 노동자 단체 측, 둘 중 어느 하나의 입장이 변하지 않는 이상 제도적 문제 해결을 위한 한국 정부의 노력 역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 가장 큰 문제다.


③ 민족주의의 문제


  스스로를 ‘단일민족’ 이라 여기며 한국 사회 안에 외국인이 들어오는 것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않는 한국인들, 그리고 그 편협함에서 유일하게 제외되는 것이 백인이라는 점 또한 외국인 노동자들의 입지를 더욱 좁게 만든다.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동남아시아 인들에 대한 한국인들의 고정된 시각, 그것이 먼저 바뀌지 않는 이상 ‘외국인들이 한국인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간다’ 라는 편견 또한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노동자 문제와 더불어 코시안들의 정체성 문제, (거의 매매혼에 가까운) 결혼을 통해 한국에 들어오는 외국인 여성들에 대한 문제도 해결되긴 힘들 것이다. 


4) 최근의 협상 물결


  한국 정부는 최근 외국인 노동자들의 ‘자진귀국 프로그램 등 일시적 귀국 조치를 통한 합법화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6) 하지만 이 역시 부분 합법화일 뿐이기 때문에 외국인 노동자 측이 이 방안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않을 분위기다. 

  실제로 우리가 <계속된다>에서 보았듯 정부의 협상제안이나 합법화 방안 마련 논의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외국인 노동자들은 한국 정부를 믿을 수 없다는 점, 그동안 불법체류자 신분이었다는 것이 불리한 점으로 작용하여 일시 귀국 후 재입국하지 못할 가능성이 많다는 점, 부분 합법화는 결국 외국인 노동자들을 선별적으로 ‘걸러내는’ 것이므로 또 다른 차별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 등을 이유로 정부의 협상방안을 수용하지 않고 있다. 성공회 농성단의 해산을 다룬 <계속된다>의 에피소드가 말하고 있는 부분이 바로 이런 문제인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믿음을 심어주지 못하는 한국 정부의 태도가 과연 이번에는 변화할지 귀추가 주목되는 것도 그래서다.


2. <계속된다 - 미등록 이주노동자 기록되다>


1) 인물선정 방식


  이 다큐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한 두 명의 특정한 ‘주인공’ 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심이 되는 것은 ‘명동 농성단’ 이라는 집단이며, 집행부를 맡고 있는 인물들 - 투쟁국장 비두, 명동 농성단 대표 샤말과 같은 - 몇몇이 잠시 부각되긴 하지만 그마저도 곧 외국인 노동자라는 집단, 혹은 명동 농성단이라는 집단 속으로 녹아들어간다.

  이와 같은 인물선정 방식은 이 작품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 특별한 처지에 있는 사람에 대한 동정심을 유발하게 되는 휴먼다큐로서의 형식을 일부러 배제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안타까운 처지나 가난한 생활 등을 걷어내고 그 자리에 대신 투쟁하는 모습을 배치해,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물질적인 도움이나 정신적인 동정이 아니라 함께 연대하여 힘을 주는 사람들임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7)

2) 음악 및 이미지


  크게 두 부분 - 방글라데시로 돌아간 외국인 노동자들의 모습 / 한국에서의 외국인 노동자들의 투쟁 - 으로 나눌 수 있는 <계속된다> 는, 특히 초반부에서는 이미지를, 후반부에서는 음악을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연을 날리는 외국인 노동자 출신 방글라데시인들의 모습은 자유롭게 날고 싶지만 ‘무언가’에 묶여있는 탓에 그럴 수 없는 그들의 처지를 고스란히 반영한 것 같아 보이고, 방글라데시 안 어딘가를 달리는 자동차들의 이미지는 ‘중요한 시기에 타지에 나가 있었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내 나라도 내 나라가 아닌 것 같다’는 한 노동자의 말과 겹쳐져 더욱 스산하게 느껴진다.

  또한 힘없이 누운 채 그 날 배운 운동가요를 부르는 노동자의 목소리는 보는 사람의 심금을 울리고, 갑작스러운 단속에 의해 무자비하게 연행되어 가는 사람들의 모습 위로 흐르는 음악은 우리의 분노를 자극한다. 그리고 대상에 대한 동정심이나 공감을 요구하지 않는 대신 이렇게 이미지와 음악으로 보는 이의 감정을 건드리는 방식은 꽤나 효과적이다.


3) 내레이션


  감독은, 작품의 시작을 본인의 아버지 이야기로부터 시작함과 함께 철저히 본인의 입장에서 내레이션을 진행했다. 그것은 감독 자신이 외국인 노동자들의 문제에 적극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래서 ‘연대의 필요성’ 이라는 이 작품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해주기도 했다. 생각해보자. 만약 <계속된다> 의 대상이 된 인물 중 한명이 직접 내레이션을 했다면 어땠을까? 그것을 보는 ‘우리’는 정말 그들과 같은 ‘우리’ 가 될 수 있었을까?


<계속된다> 는 주체의 문제였어요. 이주노동자의 정체성 문제. 한국사회에서 이주노동자가 운동의 역사 안에서 주체로 서기 힘들었던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이제 그들이 주체로 섰다. ‘난 이주노동자다!’ 라고 말하는 주체. 이걸 얘기한 거였어요. 이제부터는 한국 노동자들과 연대할 수 있을까? 더 크게 보면 노동자는 연대할 수 있을까? 그런 질문들을 해보고 싶어요.8)


3. 나오며


  이 작품이 만들어진 후, ‘명동 농성단’을 비롯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어디에서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하지만 어딘가에서 그들은 아직도 투쟁을 계속하고 있을 것이며, 그들이, 그리고 우리가 납득할만한 처우가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

  이제 외국인 노동자들은 미디액트 등의 미디어교육을 통해 발언의 도구를 얻어가고 있고, 이주노동자를 위한 인터넷 방송을 개설하는 등 스스로를 돕기 위한 활동도 시작하고 있다. 한국의 법, 혹은 그들의 처지나 지위에 상관없이 이제 그들이 엄연한 한국 사회의 일원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1) 1987년 봄 동아일보에 ‘서울 강남에서 일하는 필리핀 여성 가정부’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대부분의 경우 이것을 해외 이주 노동자에 대한 첫 번째 공식기록으로 보고 있다.


2) 「한국 이주 노동정책의 현황과 전망 」,최현모(한국 이주 노동자 인권연대 연대협력국장), 『이주연대심포지움자료집』, 2006년


3) 네이버 백과사전


4) 산업연수생 제도 하에서,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를 비롯한 수협, 농협, 건설협 등의 민간 이익단체들이 인력도입 및 관리를 담당함에 따라 송출비리와 사후관리를 빙자한 횡포가 만연했던 바 있다.


5) 「한국 이주 노동정책의 현황과 전망 」, 최현모(한국 이주 노동자 인권연대 연대협력국장), 『이주연대심포지움자료집』, 2006년


6) 법무부는 5월까지 21만명의 미등록 이주노동자(불법체류자) 가운데 우리정부와 인력교류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국가 노동자에 한해 ‘자진귀국 프로그램 등 일시적 귀국조치를 통한 합법화 방안’ 등의 내용이 포함된 대책을 마련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주목되고 있다. (민주노동 참세상, 2007년 3월 30일)


7)  “그들도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에서 출발해, 이주노동운동의 주체를 세우는 작업을 다큐멘터리를 통해 하고 싶었다”. 주현숙 감독 인터뷰 (2004년, 인터넷 신문 프로메테우스)


8) 주현숙 감독 인터뷰 (2004년, 인터넷 신문 프로메테우스)


 

 

 

 

 

발제문 업데이트가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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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성은 인정되어야하지만, 그들의 어긋난 욕망까지도 받아들여져선 안됀다.

장애인의 성은 인정되어야하지만, 그들의 어긋난 욕망까지도 받아들여져선 안됀다.

<핑크 팰리스>

김현지

“한번 태어나서 죽으면 언제 다시 태어날지 모르는데, 숫총각으로 죽으면 진짜 억울하다. 억울해!”

핑크 팰리스는 장애인의 성에 대한 얘기이다. 대체로 전신, 혹은 하반신이 마비된 척수 장애인, 언어장애와 경직이 심한 뇌성마비 장애인, 그리고 시각, 청각, 소아마비 등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들이 나와 성에 대한 경험과 욕구, 다양한 생각들을 말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영화가 만들어지게 된 계기를 마련해준 주인공 “한번 태어나서 죽으면 언제 다시 태어날지 모르는데, 숫총각으로 죽으면 진짜 억울하다. 억울해!”라는 말을 한 48세의 중증뇌성마비 장애인, 최동수 아저씨의 얘기가 주를 이룬다. 최동수씨의 평생 소원은 ‘섹스 한 번 해보는 것’ 몇 년 전 청량리 성매매업소를 찾아 한 번 시도했다가 거절당한 경험이 있다한다. 그리고 감독은 이런 최동수씨의 욕구를 해소해주기 위해 (소원 한번 풀어주기 위해) 성매매 금지법이 시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두 번째 시도를 돕는다. 감독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 잘, 잘못을 떠나서 그들이 느끼는 성에 대해 있는 그대로 담으려고 노력했다. 그들의 욕구가 인정 되어야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들도 우리와 같이 성욕을 갖고 있는 인간이다.” 결국 우리 모두 동등하게 욕구가 인정 되어져야하고, 받아들여 져야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나는 감독이 이 영화를 감상할 때 제시한 금기를 어겼다. 잘, 잘못을 떠나서라고 감독의 의사를 분명히 밝힌바 있으나 왜곡된 성에 대한 시각과 여성의 상품화 등등이 영화를 보는 내내 불쾌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나는 함부로 말 할 수 없다. 웃기지만 나는 사지가 멀쩡한 여자이기 때문이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결핍이 되면 그것 밖에 안보이게 되는데 하다못해 장애인 남성이 갖는 성욕의 거세됨이 그것 밖에 안보 이는 게 당연 한 것 아닌가라고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감독이 정말 말하고 싶은 부분은 장애인들의 성이 인정되어야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간간히 장애인 부부, 여성, 다양한 층의 남성들이 말하는 성에 대한 얘기는 훈훈하기도 하고, 애틋하기 까지 했다. 그러나 최동수씨가 말하는 성에 대해 듣고, 그것을 받아주고 카메라에 담아내는 감독의 태도를 보면서 나는 그 곳에서 또 하나의 차별거리, 또 하나의 타자를 보게 된 기분이여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정상인들은 맘껏 즐기면서 자신은 그렇게 못하게 한다고 성매매 금지법에 대한 분개심을 표출했다. 그런 그의 시각에서 사회적 약자 혹은 희생물이 되는 여성을 바라보며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들었을 때 만들려고 했던 의도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한다. 최동수씨가 한 성매매 소로 들어가는 장면으로 끝나는 이 영화의 끝은 그저 다른 약자를 만들어내는 부당한 욕구 분출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핑크 팰리스에서 장애인들만의 성에 대한 잔잔한 얘기만으로도 충분히 감독의 의사가 전달되었을 것인데 내게 이런 혐오감을 자아내게까지 정직하게? 끝까지 최동수씨 의 얘기를 담아낸 감독의 의사가 궁금하다. 이럴 수밖에 없는 그를 동정하라는 건가. 핑크팰리 스의 끝은 내게 비겁한 자멸로 여겨졌고, 굉장한 찝찝함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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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 속의 약자 이주노동자

<약자 속의 약자 이주노동자들>

김현지

우리 집에는 작은 차별이 있다. 맏이로 태어난 첫째 딸, 여성이라는 이유로 막내아들인 남동생이 받는 대우와는 다른 대우를 어렸을 때부터 받아왔다. 다른 내 성격적 결함이 있었으리라는 추측을 제외하고서라도. 같은 행동도 동생이 했을 때는 받아들여지지만 내가 하면 받아들여지지 않는 숱한 상황 속에서 내가 원치도 않는 성으로 태어나 그렇게 대우 받았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 후 그것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면 돌아오는 말은 “ 네 성격이 이상해서 그래 ” 단 몇 마디이다. 처음에는 그 말을 사실로만 받아들였다. ‘그래 내가 좀 이상하니까 이렇게 나를 대하는 건당연한거야’ 이렇게 생각하고 넘기는 것은 쉬웠지만, 계속 되어 쌓여가는 억울함과 불만에 억눌렸던 나의 상한 감정이 비어져 나왔다. 내가 이상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을 전제로 그렇다면, 그들이 이상하다고 말하는 이상한 나의 목소리를 한번 내보기 했다. 한 가족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한 투쟁이었다. 부당하다 생각되면 귀찮은 아이 취급받기를 각오하고 조목조목 내 논리를 펴가며 따져가기 시작했다. 이 이상한 환경 속에서 나를 지켜줄 수 있는 것은 나를 믿는 나뿐 이었으므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보고 떠오른 내 과거의 잔상이다.

차별 속의 차별, 계속 되는 악행, 말도 안돼는 상황. 힘이 힘을 누르고, 악습이 악습을 낳는 상황들. 숨 막히는 상황들 속에서 이주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기본적인 권리를 주장한다. 자유를 노래한다. 드러나는 형태는 다르지만 같은 맥락의 내용을 담은 <상계동 올림픽>에서 가난하고 집 없는 자가 갖게 되는 설움. <미친 시간>에서 베트남 전에 한국 군인을 향한 증오비를 세울 정도로 그들의 잔인함을 경멸하는 베트남 사람들. 그리고 내가 어렸을 때부터 딸이라는 이유로 받았던 설움. 이 모든 것들은 하나의 커다란 차별이란 고리로 연결 되어 있다. 힘 있는 자의 왜곡된 시각이 만들어 낸 악행. 그 곳에는 싸울수록 자신의 무력함을 실감하지만 이 억울한 현실에 온 몸을 바쳐 항의하는 약자들. 계란으로 바위를 쳐서. 계란이 다 터져 나가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한 모든 힘을 다해 부당함에 항의 하겠다는 생의 의지. 이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현실이 마음 아플 뿐이다. 받아들이기 싫지만 말도 안돼는 일들이 일어나는 현실 속에서 힘(그것이 돈의 부재이든, 권력의 부재이든지)이 없다는 이유로 가축과 같은 대우를 받고 있는 이들은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대우를 받기 위해 죽기까지 싸운다. 사람으로 태어나 갖게 되는 조건 속에서 사람이상의 대우를 받는 이들과 사람 이하의 취급 받는 이들. 이들 속에 나는 어떤 위치에 있을까?

EBS에서 특별한 성격의 애니매이션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제목은 <별별 이야기>였는 데, 인권에 대한 문제를 주제로 다룬 영상들이었다. 이것을 보며 내가 현실 속에서 갖고 있는 위치에 대해 끊임없이 반문해 보았다. 그리고 내가 앞으로 작가로 살아 갈 때 갖게 될 위치를 생각했다. 작가를 할 때 좋은 점은 생각의 소스가 작업으로 잘 풀어져 나올 때 그자체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 가정에서 맏딸로 태어나 겪은 차별로 부터 다음 차별의 연결고리를 더듬어가며 하나의 다큐를 만들어보기로 결심했다. 순환 되는 차별의 고리에 대해 결국 말하고 싶은 것은 "너도 말 할 것 없다."였다. 내가 속한 가정안에서의 차별, 한국 안에서의 차별, 그렇지만 그들 안에서도 있을 차별. 누구를 탓할 수 있는가. 차별은 차별을 낳는다. 나 역시 내가 차별이 주는 부정적인 영향을 인식하기 전에는 다른 사람들이 받는 차별에 관심조차 갖지 않았을 나의 이기심을 본다.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서 받는 차별에 대한 울분이 터져 나오는 기록물을 보고 분개할 수 있지만, 나는 완전히 그들의 입장이 될 수는 없다. 그들 속에서 그들이 되지 않는 한 내가 느끼는 감정은 피상적으로 잠시 분개하는 것 정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현실의 한 측면을 바로 이해하고 나의 작업으로 풀어보고 싶다는 인식하는 정도가 아직까지의 내 위치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주노동자들을 바라보는 잘 못된 태도를 비난하기 이전에 차별이 되 물림 되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고민해보고 더욱 좋은 해결책이 마련되길 바라면서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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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별 이야기의 줄거리>

인권애니메이션 프로젝트(이하 인권애니메이션)는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제작한 옴니버스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인권(차별)을 주제로 애니메이션 감독 여섯 명이 참여하였다. 이 영화는 우리사회에 만연해 있는 차별의식을 지적하고 차별을 차이와 구별하는 인권감수성 향상을 위해서는 문화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제작되었다. 장애인의 현실을 다룬 <낮잠>(유진희 감독), 사회적 소수자 차별이야기 <동물농장>(권오성 감독), 사회에 만연한 고정된 남녀 성역할을 지적한 <그 여자네 집>(5인 프로젝트팀), 외모차별을 다룬 <육다골대녀(肉多骨大女)>(이애림 감독), 이주노동자를 다룬 <자전거 여행>(이성강 감독), 입시위주의 교육문제를 꼬집은 <사람이 되어라>(박재동 감독)로 이루어진 총 여섯 편의 옴니버스 형식의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 그 외 <별별 이야기> 참고기사

삐딱한 시선에 대한 6명의 충고, <별별 이야기>

[씨네21 2005-12-23 13:49]

<낮잠>의 유진희 감독

DVD 타이틀의 매력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나 훌륭하게 복원된 고전영화들과의 만남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외면을 받는 여러 단편 작품들을 모은 것도 빠질 수 없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제작한 <별별 이야기>는 우리네 곁에서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는 구성원이지만 무관심과 냉대를 받는 소수자의 이야기다. DVD에 수록된 6편의 단편애니메이션은 모두 인권차별을 주제로 각기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다. 장애우에 대한 편견과 따가운 시선, 사회적 무관심을 밀도있게 그린 <낮잠>, 양떼들 사이에서 염소가 겪는 차별에 관한 이야기 <동물농장>, 아이를 가진 직장 여성의 일과를 통해 남녀 성 차별에 접근한 <그 여자네 집>, 큰 몸집을 가지고 태어나 고통받는 여성을 통해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 메스를 가하는 <육다골대녀>, 주인없는 자전거를 통해 외국인 노동자들의 현실을 다룬 <자전거 여행>, 고릴라를 의인화해 입시 중심의 교육 환경을 비판한 <사람이 되어라>이다.

이들 작품들은 인권차별이란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렇다고 마냥 심각하기만 한 건 아니다. 적절한 유머와 재미를 갖추고 있어 작품에 대한 부담감을 일부분 해소하고 있다. 부록의 하나로 제공되는 인터뷰를 통해 연출자들이 들려주는 작품에 대한 이야기와 인권차별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들을 수 있다. 스토리보드는 여섯편 가운데 <동물농장> <그 여자네 집> 두편에서만 제공한다. 화질과 음향은 기대 이상으로 좋은 편이다.

(글) 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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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밖에서> 리뷰-한국독립 애니메이션

골목 밖에서

유진희/ 1996/ 4분

 

박선영

 

 나는 빵을 좋아한다. 팥도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부드러운 빵과 달콤한 팥 앙금에 귀여운 붕어 모양까지 갖춘 붕어빵을 좋아한다. 4개에 천 원 하는 곳이 대부분이지만 동네에 따라 10개에 천 원 하는 곳도 있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 가격이란 말인가. 맛도 없으면서 하나에 천 원 이상을 받는 빵들보다 직접 보는 앞에서 만들어 주는 붕어빵은 따뜻하고 바삭한 것을 바로 먹을 수 있고 믿음이 간다는 점에서 마음에 든다. 그래서 붕어빵 매니아인 나는 <골목 밖에서>라는 애니메이션이 아무 이유 없이 좋았다. 화려하지도 않고, 대사도 없고, 4분이라는 짧은 애니메이션이라는 것, 이렇게 특별할 건 없지만 잔잔한 감동이 있었다.

 1평 남짓한 천막 아래 공간에서 하루 종일 붕어빵을 굽는 할머니가 있다. 할머니는 말없이 주전자에 담긴 밀가루 반죽을 붕어 모양 불판에 따르고 팥을 넣는다. 그리고 뚜껑을 닫고 불판을 돌려 또 다시 반죽을 붓는다. 그렇게 할머니의 하루는 지나간다. 그러면 또 다시 똑같은 하루가 돌아오는 것이다. 할머니는 그렇게 자신의 자그마한 가게를 가진 뒤부터 매일 같은 삶을 살았을 것이다. 할머니의 붕어빵은 단순한 백 원짜리 빵이 아닌 그녀의 모든 것이 담긴, 값을 매길 수 없는 그녀의 인생이었다. 그리고 그 소중한 붕어빵을 배고픔에 지친 한 소녀가 조용히 삼킨다. 그 소녀에게 역시 그것은 단순한 백 원짜리 빵이 아닌, 허기진 배와 마음을 채워주는, 현재를 버티기 위해 내일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절실함이었다. 그 모습을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지켜본다. 그 사이에는 외로움과 따뜻함이 흘렀고, 서로가 서로를 채워주고 있었다, 말없이.

 나는 이상하게 붕어빵 굽는 모습을 보면 애잔한 마음이 느껴진다. 우리 동네 젊은 총각이건, 경희대 앞 50대 부부이건, 주전자 드는 것이 벅차 보이는 밑 동네 할머니이건 말이다. 그 중에서도 배가 부르더라도 꼭 하나라도 사 먹게 만드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석관 우체국 앞 붕어빵 아주머니였다. 그 곳의 붕어빵은 10개에 천 원이다. 왜소하고 어딘가 모자란 듯해 보이는 아주머니는 너무나도 소중하게 한 마리 한 마리 정성을 들여 꿋꿋하게 붕어빵을 찍어냈다. 백 원이란 가치가 무색하게 말이다. 아주머니는 백 원을 내고 한 마리를 사 먹는 나에게 싫은 표정도 한 번 보이지 않았다. 그럴 때면 너무나 미안해지면서, 다음번에는 한 마리를 사먹어도 이백 원을 내야지 다짐하곤 한다.

 아주머니의 결과물들은 대부분이 시커멓게 타거나 앙상하다. 하지만 나는 그것들이 더욱 사랑스럽다. 때가 잔뜩 낀 손으로 방긋 웃으며 붕어빵을 전해주는 아주머니의 모습. 나는 그 순간, 백 원을 주고 붕어빵을 사는 것이 아니라 아주머니의 마음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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