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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령적 차원으로 접근해야 할 '선거전술'과 타협할 수 없는 원칙들

강령적 차원으로 접근해야 할 '선거전술'과 타협할 수 없는 원칙들

이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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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회주의의 덫 : 현재의 의회주의 덫에는 선거참여, 후보전술 자체가 포함되어 있다>

 

 

 코민테른과 의회전술, 그리고 의회전술에서의 혁명적 전통

 

'선거전술' 문제는 일찍이 코민테른 시절부터 볼셰비키와 공산주의좌파 사이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 레닌과 호르터의 논쟁, 트로츠키와 보르디가의 '혁명적 의회전술' 과 '보이콧전술'등으로 알려져 있는 선거전술문제는, 흔히 알려진 대로 ‘부르주아 의회를 통한 혁명 전략의 부정’이나‘부르주아 의회(선거)의 이용 가능성’에 대한 논쟁이 본질이 아니다.

 

이것의 본질은 러시아의 후진적 정치상황에 적합한 볼셰비키의 의회전술을 일반화하여 유럽 국가들에도 적용하려는 코민테른과, 부르주아민주주의가 일정수준 괘도에 올라 의회의 이용자체가 혁명운동에 걸림돌이 된 유럽의 혁명적공산주의자들의 반의회적 혁명 전략이 대립한 결과이다. 당시의 유럽은 이미 사회민주주의가 부르주아 계급의 일부가 되어버렸고, 이들이 진출한 의회가 오히려 노동자계급을 학살하는 역할을 하는 상황에서, 혁명적 공산주의자들은 의회를 이용하기 보다는 의회를 타도할 목적으로 반의회적 노동자평의회 운동을 광범위하게 전개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보기를 들어, 유럽 공산주의 좌파 중 레닌의 노선을 가장 원칙적으로 지지했던 이탈리아의 보르디가는 코민테른에서 트로츠키의 '의회 전술'에 반대해 '보이콧 전술'을 주장한 반면, 레닌이 지지했던 유럽의 공산당들과 의회에 진출한 공산주의자들은 호르터의 경고대로 기회주의 세력의 본질을 드러내 노동자계급을 배신하고 부르주아에 투항했다.

 

이와 같이 코민테른 시기의 의회전술은 그야말로 부르주아 의회제도의 발전수준에서 국가나 지역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함은 물론, 정세적인 측면에서도 계급투쟁이 혁명적으로 고양되었던 시기와 퇴조기와 반혁명의 상황에 처해있던 정세를 철저하게 분석하여, 혁명적 원칙을 도출해내야 할 문제였지, 짧은 시기 정세의 주도권 장악이나 사회주의의 대중화를 위해 고려해야 할 단기적 전술문제가 아니었다.

 

정작 문제는 퇴조기, 반혁명의 시기에도 대중성과 대중적 영향력을 포기 하지 않고 '사회민주주의로의 복귀'까지 하면서 살아남은 트로츠키주의 흐름들이다. 이들이 반동의 영향력 하에 놓여있는 대중들에게 혁명적 소수로 남아 혁명적 원칙을 방어하면서 계급투쟁의 부활과 계급의식의 발전을 위해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트로츠키의 마지막 착각이었던‘늘 대중과 접촉하고 있고 그래야 한다는 집착’에 빠져 대중들과 함께 하고자, 원칙을 버리고 우경화되면서까지 생존하려했던 전술들이다. 그 정점에 당시의 러시아 상황에서나 적합한 '의회참여' '입당전술'을 일관되게 사용하는 것이 있으며, 이제는 도를 넘어 시대나 정세와 관계없이 낡은 선거전술을 '원칙'으로 박제화 시킨 것이다. 그리고 80년이나 지나버린, 쇠퇴하는 자본주의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일반화 된 현재까지 이와 같은 의회전술을 가능한 모든 곳에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은 이들이 트로츠키의 성과와 과오 모두를 계승하는 위험한 운동에 빠져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반대로 혁명적 소수로써 맑스주의 전통을 이어온 공산주의 좌파들과 혁명적 공산주의 세력들은 대중적 의회전술이 아닌'반의회적 혁명노선'을 고수했다. 그리고 자본주의 쇠퇴의 단계(현상)가 뚜렷해진 1980~90년 이후에는 더 이상 의회전술의 이용자체가 혁명 전략과 프롤레타리아 운동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강령에서 부터 명확히 하고, '부르주아 민주주의' 와 '의회주의 환상'에 맞선 프롤레타리아 고유영역에서의 투쟁을 강조하고 있다.

 

이 상반된 두 흐름은 현실에서도 부르주아 정치의 좌익을 구성하고 있는 트로츠키주의 정치조직(정당)들과 프롤레타리아 정치의 혁명적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국제주의, 공산주의 정치조직으로 나뉘어, 지도력 획득을 통한 계급대중의 전취를 위한 운동과, 계급투쟁에의 공헌과 계급의식의 혁명적 발전을 위한 운동으로 명확한 차이를 보이며 대중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의회전술의 강령적 사례와 타협할 수 없는 원칙들

 

그렇다면 위의 두가지 경향을 대표하면서 현존하는 정치조직들이 의회전술을 강령에 담아내는 방식과 원칙들, 그리고 실천은 무었인가?

 

아래의 사례들은 현존하는 정치조직들이 채택하고 있는 강령에 나타난 의회전술에 관한 원칙들에 대한 비교 분석이다.

 

 

1. 4인터내셔널을 위한 공산주의자 조직>(COFI)의 정치적 결의 (2003년)

 

“일부 공산당, 사회민주당, 노동당에 대한 참여와 선거에서의 비판적 지지는 그들이 여전히 프롤레타리아 기층을 독자적으로 조직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있을 수 있는 전술이다. 이것은 노동자 대중들이 그 당들을 공공연한 부르주아 당들에 대한 확실한 대안이라고 여길 때, 그리고 그것이 그 당들의 배신을 폭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일 때 사용되는 전술이다. 우리는 그 당들이 선거에서 영구적인 지지를 받아야 할 노동자들의 기구라는 관점에 맞서 싸운다.”

 

“우리는 사회민주당이나 노동당, 또는 스탈린주의 당에 대한 장기간의 입당 전술을 거부하며, 장기간의 통일전선도 거부한다. 그러한 두 가지 전술은 결국 전략이 됨으로써 전위 정당의 형성을 가로막게 된다.”

 

“우리는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전략으로서 선거주의를 거부하는데, 그것은 반드시 개량주의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은 사회주의 혁명의 필요성을 대중화할 기회를 잡기 위하여 부르주아 선거에 선전, 후보, 비판적 지지 전술들을 갖고 개입해야 한다. 레닌주의자들은 대중들이 그들의 의지를 실행할 진정으로 혁명적인 대안적 수단을 확보하기 전까지는 일반적으로 선거에 대한 보이콧을 거부한다.”

 

정통 트로츠키주의(제4인터 재건)를 전면에 내세운 조직의 강령인데, 선거전술을 강령에 정확히 명시하고 있다. 이 강령의 특징으로는 트로츠키의 입장에 충실하기 위해 입당전술, 비판적 지지전술 모두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만 혁명 전략으로서의 선거주의는 원칙적으로 거부한다고 하면서, 선거주의의 반대인 보이콧 전술 또한 혁명적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는 일반적으로 거부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그러니까 혁명 전략은 선거가 아닌 보이콧을 기본으로 하는 반의회적 노동자평의회 혁명인데, 일상적인 전술은 선거에 적극 참여하여 사회주의를 알려내는 것이라면서, 전략과 전술의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즉, 부르주아 의회제도 자체에 대한 비판과 거부와 실질적 타격이 아니라, 사회주의의 대중화를 위해서라면 언제든지(혁명적 시기가 아니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부르주아 선거에 적극 개입하여 부르주아 정치세력과 경쟁하면서 사회주의 혁명의 필요성을 강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부르주아 선거에서는 나쁜것과 좀 더 나은것이 존재할 뿐, 혁명적인것은 존재하지 않은다는 것을 애써 외면한 결과이다. 이는 자본주의 쇠퇴가 전면화 된 시기, 일반적인 투표거부 현상과 부르주아 지배도구로써의 의회주의 환상에 대한 분쇄의 절대적 필요성을 자신들의 조직확장과 사회주의 대중화라는 미명하에 덮어버린 결과이다.

 

 

2. 국제공산주의흐름(ICC)의 강령 (1976년)

 

“자본주의 체제가 그 쇠퇴기에 진입하면서, 의회는 개혁을 위한 도구이기를 멈춰버렸다.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이 그것의 11차 회의에서 표현했듯이:

 

"정치적 생활의 중점은 의회로부터 완전히 그리고 궁극적으로 위치를 옮겨갔다."

 

“그 이후부터 의회가 수행할 수 있던 유일한 역할, 즉 그것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유일한 것은, 신비화의 도구로서의 그것의 역할이다. 이렇게 해서, 프롤레타리아가 의회를 어떤 형식으로든 이용하는 것이 더 이상 불가능했다. 노동자계급은 모든 정치적 기능을 잃어버린 하나의 기관으로부터 불가능해져버린 어떤 개혁도 획득할 수 없다.”

 

“프롤레타리아의 근본적인 과제가 부르주아 국가의 모든 제도들 및 그와 더불어 의회를 파괴하는 것에 놓여 있는 이때, 그리고 노동자계급이 보통선거권의 잔해 위에 그리고 부르주아 사회의 다른 잔재들 위에 그 자신의 독재를 건축해야하는 지금, 의회와 선거 캠페인에의 참여는 - 그것의 대변자들에 의해 추구되는 의도들과는 무관하게 - 단지 죽어 가는 육체에 한 줄기 생명을 불어넣는 것을 결과 시킬 뿐이다.”

 

“혁명적인 의원들"이 참여한다고들 하는 "내부로부터의 의회 파괴"의 전략은 그러한 시도를 수행했던 정치적 조직들의 부패 및 그것의 자본주의에 의한 흡수 이외의 어떤 다른 결과도 확실히 보여주지 않았다”

 

“끝으로, 선전 및 선동수단으로서 선거와 의회의 활용은, 부르주아 사회의 모든 정치적 장치들을 유지하고, 노동자들의 수동성을 조장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의회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대중의 자립적인 활동을 대가로 하여 정치적 정당들의 음모들을 조장하는 전문가들의 문제가 관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혁명이 직접적인 가능성이 아니었던 시기에는 그러한 단점들이 수용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결정적인 장해물이 되어버렸는데, 이는 지금 역사의 주요 관심사에 놓여있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유일한 과제가 바로 낡은 사회질서의 전복 및 하나의 공산주의 사회의 건설이기 때문이다. 이 과제는 계급 전체의 능동적이고 의식적인 참여를 요구한다.”

 

“‘혁명적 의회주의’의 초기 전술들이 주로 노동자계급과 그것의 조직들에 대한 과거의 무게와 영향의 한 표현이었다면, 지금 그러한 전술들의 무서운 결과들은, 그 전술들이 이제 계급 내부에서 단지 반혁명적인 역할만을 수행할 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혁명적 의회주의"를 대변하는 그러한 흐름들은, 의회주의를 사회의 사회주의적 변혁의 한 도구로 제시하는 그러한 흐름들과 더불어 지금은 부르주아 진영의 결정적인 부분들이다”

 

맑스, 엥겔스의 공산주의 연맹, 3개의 인터내셔널 그리고 타락해가는 제 3 인터내셔널로 부터 분리해 나왔던 공산주의 좌파와 독일, 네덜란드, 이탈리아 좌파 공산주의 분파들의 연속적인 공헌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ICC의 강령이다. ICC의 의회전술에 대한 강령은, '혁명적 의회주의'를 대변하는 흐름들(트로츠키, 스탈린주의 분파들)을 부르주아 진영의 한 부분으로 보는 것이 특징이다. 이것은 코민테른과 제4인터내셔널 이후 이들의 정치노선의 우경화, 그리고 혁명운동과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에서 현재의 역할을 노골적으로 표현해 준 사실 규정으로 볼 수 있다.

 

다만, 혁명적 의회전술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에도 불구하고 ICC의 강령에는 의회전술 대신 보이콧 전술을 사용하자는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방안 제시는 없다. 왜냐하면, 현재와 같이 자본주의가 쇠퇴하는 시기에 부르주아 정치일정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프롤레타리아와 혁명세력에게 결정적인 장애물일 뿐이라서 그러한데, 이것은 프롤레타리아의 현실적 상황과 과제가 자본주의의 개혁이나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확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타도와 공산주의의 건설이라는 직접적 목표가 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즉, 계급투쟁이 대대적으로 분출할 때 의회주의 환상을 극복하지 못해 결국 계급투쟁이 혁명적으로 진전되지 못하는 상황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일상적인 선거시기부터 의회주의 환상을 걷어내는 운동을 꾸준히 해나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의회제도에 대한 직접적 타격이 가능하기 위해서 혁명세력은 노동자계급에게 수동성을 조장하는 의회전술을 무력화시키고 반드시 노동자계급 고유의 전술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3.우리 정책의 강령적 기초 -프랑스 <노동자 투쟁> (2003년)

 

“노동자들의 권력은 부르주아 국가와 정반대가 될 것이다. 부르주아 국가는 겉으로 가장 민주적인 옷을 걸치는 경우에도 부르주아 소유권과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방어한다는 근본적인 역할 때문에 독재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민주적인 독재’는 처음부터 모든 부르주아 체제 가운데 가장 민주적인 경우보다도 더 민주적일 것이다. 모든 부르주아 체제에서는 선거제도라는 덮개 아래서 거대 기업이 자신의 고유한 독재를 강요한다. 프롤레타리아트의 민주적인 독재는 스스로 소멸하여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두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한 조건이 되는 연합체”에 의해 대체되도록 설계된 형태의 정치권력이 될 것이다.”

 

“노동자 계급 속에 갖고 있는 우리의 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할 만한 성공들이 선거에서 몇 번 있었지만, 우리의 근본적인 과제는 여전히 20년 또는 30년 전과 같다. 우리의 선거 영향력이 별 것 아니기도 하지만, 그것 자체로는 혁명 정당을 대신할 수 없다. 우리는 다른 나라 민중들 또는 특히 프랑스의 억압받는 민중들을 지지하는 많은 시위들에 참여할 것이다. 또한 우리는 혁명적 공산주의자들이 선거에 나서는 것을 하나의 의무라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활동들은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적 공산주의 정당 건설이라는 전망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그에 종속되어야 한다.”

 

프랑스의 트로츠키계열 합법정당의 강령이다. 국제주의 공산주의자 연합 (International Communist Union, ICU)은 우리에게 LO라고 알려져 있는 노동자 투쟁(Lutte Ouvrière)을 중심으로 한 그룹으로, 한국에서는 노건투 흐름의 일부와 친화적이다.

 

이들의 강령 또한 앞에서는 부르주아 선거제도를 반대하면서도, 뒤에서는 선거개입을 공산주의자의 의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또한 앞서 말한 대로 트로츠키주의의 일관된 전술 원칙이다. 이들은 프랑스에서 선거참여 정당 중 가장 왼쪽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정작 혁명적 공산주의자들(ICC를 비롯한 10여개의 반의회주의 혁명 조직들)로부터는 여전히 '부르주아의 좌익' 또는 '선거주의 세력'으로 규정받고 있다.

 

참고로 유럽이나 북미지역 같이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최대치? 로 전면화 된 국가들에서는 '혁명세력' vs '체제 내(합법) 세력'을 구분하는데 있어서, 강령의 내용을 따지기도 하지만, 이들 모두가 스스로를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혁명세력이라 자처하기 때문에, 일반 노동자들은 오히려 선거참여 여부를 그 판단기준으로 삼고 있다. (선거 참여, 개입 세력은 극좌파로 인식할 뿐 혁명세력으로 인정하지 않음)

 

한국의 다함께와 같은 반자본주의 조직이 과거 민노당 입당전술을 사용하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IS사건이후 조직보존을 위한 선거참여, 의회주의 정당 참여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의 맥락이다. 즉 합법정당으로의 입당전술, 선거참여는 한편으로 공안기관과 국가보안법 등으로부터 조직을 보호해주고, 한편으로는 손쉽게 선거공간에서 가장 급진적인 정강으로 대중들에게 사회주의의 내용을 알려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들은 끊임없이 우경화와 제도화되어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의회전술은 이런 흐름의 조직들이 일정정도 규모가 커진 다음에는 조직유지를 위해 이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는 전술이라는 것이다.

 

의회전술에서는 '노동자들과 늘 가까이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을 부르주아정당과 단절시키기 위해' '노동자들이 정세의 주도권을 틀어쥐기 위해'라는 논리로 이 모든 것이 합리화 된다. 하지만 이러한 입당전술, 선거전술을 사용해 온 지난 수십 년 간, 노동자들이 조직과 자금을 댄 노동자당들은 부르주아 정치의 한축이 되었으며, 선거 참여 속에서 노동자들은 부르주아 정당들과 단절하기 보다는 오히려 의회주의를 강화하는 선거시스템의 일원으로 참가하게 되었고, 정세의 주도권은 항상 부르주아의 정치일정에 종속되었다는 사실을 이제는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4. 혁명당 국제서기국(IBRP -현재는 ICT), 1997

 

“자본주의 지배의 보편적 성격은 보편적 혁명 전략을 요구한다.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수립은 모든 나라 공산주의당의 기본 원리다. 특수한 상황에서의 차이, 더 구체적으로 전 세계에 대한 부르주아 지배의 사회·정치적 형식의 다양성은 서로 다른 전술적 접근을 요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롤레타리아트 국제조직의 전술은 항상 보편적 혁명 강령의 기초 위에서 규정될 것이다. 민주주의 투쟁의 시대는 오래 전에 끝났고, 그것은 현재의 제국주의 시대에 되풀이 될 수 없다. 어떤 초보적 자유를 위한 요구가 혁명 선동에 포함될 수는 있지만, 공산주의당 전술은 국가의 전복과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수립을 목적으로 한다.”

 

“공산주의자는 노동자 자유가 의회 다수파 선출을 통해 얻어질 수 있다는 환상을 갖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것은 우리가 사회주의를 입법화하는 동안 지배계급이 평화적으로 기다릴 것이라고 믿는 ‘의회주의 백치병’(맑스)의 환상이다. 의회 민주주의는 부르주아지의 독재를 위장하는 무화과 이파리일 뿐이다. 민주적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질적인 권력기관은 의회 밖에 국가관료, 그 보안세력, 생산수단의 통제자로 존재한다.”

 

“의회는 노동자들에게 그들을 잘못 다스리는 사람을 선택한다는 환상을 준다는 점에서 부르주아지에게 쓸모가 있다. 따라서 혁명가는 노동자들에게 자신의 계급영역에서 싸우라고 요구하면서 의회선거에 반대한다. 자본주의와 그 국가기관의 파괴를 통해서만 노동계급이 표현과 조직의 완전한 자유를 확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은 혁명가 당에 달려있다.”

 

ICC강령과 같이 반의회주의 혁명 노선을 갖고 있는 ICT의 강령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강령은 IBRP가 만들어질 당시에 세계혁명당 건설의 기초를 세우기 위해, 국제주의 원칙과 세계혁명의 보편적 혁명 전략을 내세운 기준강령(혁명당 서기국의 역할)을 채택한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선거전술에 대한 원칙도 특정국가의 상황이나 정세판단이 아닌 국제주의의 원칙에 입각하여 단호하게 부르주아 영역이 아닌 노동자계급의 영역에서 투쟁하라는 원칙을 주장하고 있다.

 

즉, 보이콧 전술도 선거전술 이라기보다는 혁명세력과 투쟁하는 프롤레타리아가 부르주아 선거를 당연히 거부하는 기본입장일 뿐이고, 오히려 노동자(계급)투쟁의 영역에서 고유의 전술을 적극적으로 펼치라는 이야기이다.

 

 

5. 더 나은 세상 이란 노동자-공산주의 당 강령

 

“자본주의 사회, 시장에 기초한 사회, 그리고 노동자와 자본가가 자발적이고 동등한 계약을 맺는 ‘자유로운’ 행위자들로 묘사되는 곳에서는, 투표권, 의회, 선거제도가 부르주아지의 계급 재배를 위한 정당성을 획득하는 주요한 형태들이다. 겉보기에 국가는 국민의 직접적인 투표에 의해 형성된, 국민 모두에 의한 정치적 통치 도구다. 확실히, 역사적 견지에서 보면, 투표권과 의회는 노동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시민권을 증진하기 위한 투쟁에서 얻은 중요한 수확이다. 자유주의적 부르주아 체제에서 사는 것이 군사 또는 독재 체제에서 사는 것보다 훨씬 더 참을 만하다는 것 또한 명백하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들이 현대 국가의 계급 본성을 숨길 수는 없다. 가장 선진적이고 안정적이고 자유로운 의회 제도에서조차 노동하는 사람들은 국가의 정책과 활동에 영향을 미칠 기회가 거의 없다. 의회 제도는 상대적으로 덜 공개적이고 덜 야만적인 폭력을 사용하고 주기적인 총선거를 통해 지배 계급의 상이한 부분들 사이에서 정부의 위치가 교체되게 한다. 그래서 그것은 사회의 정치·경제적 삶에 대한 전체 부르주아지의 의문의 여지없는 지배를 보증해주었다. 의회 민주주의는 정치권력에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장치가 아니다. 그것은 부르주아 계급의 지배와 독재를 정당화하는 수단이다.”

 

이란 공산주의당의 경우에는 원칙적인 의회민주주의의 반대를 표현했을 뿐, 선거전술에 대한 내용은 없다. 이는 이들이 트로츠키주의 영향력 하에 있지 않음을 나타내주면서도, 한편으로 적극적인 선거거부를 표명하지 않은 점은 인터내셔널의(국제주의) 입장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이란이라는 일국내의 공산주의당을 표명하는 강령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들의 강령은 최소한 전략과 전술이 모순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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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르주아 선거의 본질 :  부르주아 의회와 선거에 참여하도록 권하는 것은 현 자본주의 위기가 의회를 통해 극복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줄 뿐이다.>

 

 

나가며

 

이상과 같이 '선거전술'문제는 강령상의 문제임이 확인되었고, 원칙문제에서 현실적으로는 부르주아 선거에서의 '선거개입' 과 '선거거부'라는 타협할 수 없는 차이가 존재한다. 따라서 혁명당 건설을 목표로 하는 조직과 앞으로 건설될 혁명당은 '선거전술' 문제를 강령적으로 명확히 해야 한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강령을 타협의 산물이 아닌 실천의 지침으로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세계혁명과 새로운 인터내셔널 건설이라는 국제주의적 관점에서 혁명적 원칙을 정립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임무임을 명심하고, 반의회적 혁명전통을 실천적으로 확장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차이를 덮어 일시적으로 현재를 유지하는 것은 100여년 혁명적 공산주의의 전통에서 멀어지는 길 뿐이다. 사상투쟁을 회피하거나 두려워말고, 더욱 원칙적으로 혁명적으로! 국제주의, 혁명적 공산주의, 혁명적 인터내셔널의 넓은 바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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