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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 동지 2주기] 슬픔과 애도는 앰뷸런스가 지나가는 소리보다도 짧다.

  • 분류
    계급투쟁
  • 등록일
    2020/12/07 14:39
  • 수정일
    2020/12/07 14:40
  • 글쓴이
    자유로운 영혼
  • 응답 RSS

김용균 동지 2주기

슬픔과 애도는 앰뷸런스가 지나가는 소리보다도 짧다.

 

 

임성용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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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홀 작업을 하던 노동자 세 명이 질식했다지하에 들어차 있던 가스 때문이었다세 명의 노동자들이 나오지 못하자작업반장은 맨홀 안으로 다시 세 명의 노동자들을 내려보냈다그들도 역시 나오지 못하고 쓰러졌다질식한 세 명의 노동자를 포함해서 구조하러 간 사람 중의 한 명까지 네 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재료 분배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회사에 안전고리의 교체를 요구했다고리가 낡아서 사고위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그러나 회사는 작업자의 요구를 무시하고 안전고리를 교체해주지 않았다그 노동자는 작업 중에 고리가 끊어지면서 머리를 크게 다쳤다결국 그는 사망했다이것이 과연 안전사고일까?

 

맨홀이나 탱크 같은 밀폐공간에서 작업을 할 때는 사전에 환기가 필수이다이런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점검과 조치를 취하지도 않은 채노동자를 무조건 밀어놓고 순식간에 목숨을 잃게 만드는 행위가 작업책임자의 과실이며 안전을 등한시한 '사고'라고 할 수 있을까회사에서 안전고리 하나만 제 때 교체를 해주었으면 낙하물에 의한 사망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기업살인'이라고 하는 것은 단지 기업의 부도덕과 안전불감증을 말하는 게 아니다누가 봐도 명백한 '살인'으로 밖에 볼 수 없는 일들이 노동현장 곳곳에서 일어난다똑같은 사고가 똑같이 반복된다날마다 노동자를 죽이는 '살인'은 지속된다그러나 기업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고도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지 않는다사망자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주지도 않는다.

 

2018년 12월 11일 새벽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김용균 씨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숨졌다김용균은 스물네 살사회에 첫발을 디딘 비정규직 노동자였다그는 끝내 스물다섯 살이 되지 못했다김용균의 죽음 이후노동자들에겐 무엇이 바뀌었고 노동현실은 무엇이 달라졌는가김용균의 죽음을 계기로 산업안전보건법이 27년 만에 국회에서 개정되었지만노동자들이 처한 실상은 변한 게 없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라는 노동계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민주노총 등 249개 단체(2020년 9월 23일 현재)가 참여하고 있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이번 정기국회 내 진행시킬 것을 요구하며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 앞에서 농성을 진행 중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매일같이 5~6명에 달하는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는다일하러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 우리 곁에 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왜 멀쩡한 팔다리가 잘리고머리가 터지고허리가 끊기고온몸이 피투성이로 짓이겨져 목숨을 잃고 있는가핏물이 타고 뼈마저도 녹아서 없어지는가어떤 악독한 살인자들이 무기를 쥐고 있는가친기업 정부라고 하는오로지 자본가를 위한 권력이라고 하는 인간들이 '살인교사자'들은 아닌가?

 

어제의 김용균이 오늘의 김용균이다어제의 김용균이 오늘도 손전등을 들고 밤을 꼬박 새우고 있다저 동굴 같은 어둠 속에서까마득한 철제 난간 위에서지하의 깊은 가스실 안에서 비좁은 기계 틈을 기어가고 있다살이 발린 생선가시처럼비 맞은 새처럼 떨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이런 나라인가자꾸만 되묻지 않을 수 없다이 질문에 아무도 대답을 해주지 않는다자랑만 넘쳐난다한국은 전 세계 200여 개의 국가 중에서 경제규모 11위의 경제대국이라고 한다군사력은 세계 6위 수준의 강국이라고 한다한국은 이미 선진국에 진입했고 일본과 함께 아시아를 대표하는 풍요와 번영의 나라라고 하는데노동자들은 OECD 국가 산재율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죽어간다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힘들고 어디에서건 비정규직으로 밀려나고 있다하루아침에 푸른 생명의 종지부를 찍고 통곡 속에 누워 있다.

 

우리는 기억한다몇 년 전에 제주도에서 민호라는 특성화고 학생이 야간일을 혼자 하다가 기계에 몸이 눌려서 죽은 일을민호는 한 달 잔업만 100시간이 넘었다고 한다열여덟 실습생을 그렇게 죽도록 부려먹다가 끝내 죽이고야 말았다그와 같은 일은 50년 전에도 있었다전태일을 분신하게 만들었던 청계천 평화시장의 다락방 소녀들도 그랬다서울올림픽이 열리고 본격적으로 산업규모가 커지기 시작한 30년 전에도 그랬고,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렇다우리는 세계가 놀랄만한 수준의 경제발전을 이루었지만아마 이대로 간다면 30년 후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루에도 수십 명이 죽고 다쳐도 그들의 고통을 세상은 알려고 하지 않는다무수한 죽음에 대한 진실을 규명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기업도 정부도 책임지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심지어 떼죽음을 당해도 뉴스에서는 그저 흔히 발생하는 사고로만 보도한다슬픔과 애도는 앰뷸런스가 지나가는 소리보다도 짧다노동문제가 되거나 사회적 의제가 되는 경우는 김용균의 경우처럼 극히 일부일 뿐이다.

 

2020년 5월 21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운동본부()의 발표문에 따르면현대중공업에서는 창사 이래 467번째 노동자가 사망했다고 한다그러나 현대중공업은 아무 탈 없이 배를 만든다최고경영자는 467명의 목숨을 앗아간 책임을 진 적이 없다예방조치를 취하고 작업환경을 개선하는 일에 별다른 비용을 쓰지도 않았다기업에겐 볼펜 값도 안 되는 돈으로 과태료나 벌금을 내면 그만이다한국의 대기업건설현장고위험사업장하청업체 등 모든 곳이 다를 바 없다고용노동부는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하네공정개선 명령을 내리네하면서도 기껏해야 현장 소장이나 과장 같은 하급책임자를 기소하면 끝이다노동자의 사망사고로 기업주가 인신 구속된 적은 거의 없다벌금이라야 고작 몇 백만 원에 불과하고 많아야 1000~2000만 원이 상한선이다결과적으로 노동자를 죽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은 정부가 손을 놓고 있기 때문이다참으로 나쁜 정부와 더 못된 시어미 노릇을 하는 국회에서 노동자를 살릴 수 있는 보호법을 만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이것이야말로 노동자의 사망을 살인의 범주로 보지 않고 단순한 과실로 처리하는 노골적인 방관행위이다.

 

꿈 많은 청년 김용균의 몸이 찢겼지만 기계는 멈추지 않았다컨베이어는 다섯 시간 동안이나 계속 돌았다주변엔 비명을 들어줄 사람조차 없었다본래 정규직이 담당했던 일은 외주업체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맡겨졌고그의 젊은 피는 한줌의 검은 먼지를 가라앉히는 데 쓰이지도 못했다.

 

김용균이 남기고 간 마지막 말은 문재인 대통령비정규직과 만납시다라고 적힌 손팻말이었다그의 유품은 작업모를 쓴 사진과 고장난 손전등그리고 컵라면 세 개였다서울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전동차에 치여 숨진 김 군은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쫓기면서 일하다 가방 속에 컵라면을 남겨두고 갔다두 죽음이 닮은 것은 컵라면뿐일까이들의 죽음은 원청과 하청외주화와 용역간접고용과 비정규직으로 내몰린 한국 노동자들의 적나라한 현실이다이윤이 종교가 된 기업노동자의 하소연이 들리지 않는 정부의 공모가 어제의 김용균과 오늘의 김용균이라는 죽음을 낳고 있다.

 

노동자와 시민들은 컵라면과 촛불을 분향소에 놓고 외쳤다. "더 이상 죽이지 말라" "죽음의 외주화를 멈춰라" "일하다 죽지 않게 해달라"그러나 김용균 2주기가 되는 올해에도 2000여 명에 이르는 노동자가 사망했다김용균의 죽음 이후에도 끼임추락압착 등의 인재에 가까운 중대재해로만 한정해도 매년 600여 명의 목숨이 사라졌다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차고 넘치는 김용균의 죽음들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으니어떻게 하면 노동자들을 죽음의 아가리에서 꺼낼 수 있을까문재인 대통령은 취임하면서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했다.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아드리겠다'고 약속했다하지만 믿음은 퇴색되고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었다.

 

노동자가 보편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살고 싶다는 기본적인 요구마저도 관철되지 않는 나라는 분명 큰 문제가 있다노동자가 노동을 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 '복지국가 대한민국'은 왜 이토록 잔인할까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김용균이 죽어야 정상적인 사회가 될까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영국·캐나다·호주 등 외국은 '기업 살인법'으로 사업주에게 책임을 묻는다사망사고는 매출액보다도 많은 벌금을 물려 기업의 문을 닫게 하기도 한다. '일하다 죽지 않는 세상'을 만들려면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없다기업의 주의 의무와 책임 태만에 따른 근로감독과 처벌을 강화하는 것만이 노동자의 목숨을 살리는 유일한 길이다그것이 일하는 사람 모두가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그럼에도또 그럼에도 저기스물다섯이 되지 못한 청년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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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김용균

 

내 영정을 들고

내가 걸어가네

석탄가루를 뒤집어쓰고

부르르주먹을 쥐었다 펴면

핏빛 햇살 한 줌

저기 떨어진 내 머리

저기 끊어진 내 몸통을

내가 끌고 가네

맑게 빛나는 내 눈이

차갑게 감긴 내 눈을 보네

내 영정에 양복을 입히고

파란 넥타이 꿈을 동여매고

울먹울먹 절하네

스물다섯이 되지 못한

내가 먼저 가네

차마 돌아서지 못한 나를 안고

내가 울며 붙잡고 있네

 

詩 임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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