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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주의와 국가 코뮤니즘
“국유화(Nationalization)”와 “사회화(Socialization)”[20]
맑스가 코뮤니스트 산업적 삶의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니지만, 그에 따르면 생산의 규제는 “국가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 사회의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연합 조직에 의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개량주의자 쿠노(Cunow)에 따르면 이 개념은 맑스가 그 시대 자유주의 아나키스트들의 경향에서 이끌어낸 것이다(하인리히 쿠노, “Die Marxche Geshichts-, Gesellschafts- und Staatstheorie”, 1권, 309쪽). 생산과 분배의 관리는 생산자와 소비자 자신들에게 직접적으로 이득이 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국가를 거치지 않을 것이다. 국가와 사회를 동일시하는 것은 이후 시대의 산물이다. 엥겔스는 국가 사회주의 또한 반대하며 그의 “반듀링”에서 아래와 같이 썼다.
“그러나 주식회사로의 전화도, 국가 소유로의 전화도, 생산력의 자본주의로서의 성질을 지양하지 못한다. (...) 이 해결은 현대적 생산력들의 사회적 본성이 실제로 승인되는 것에만, 따라서 생산 방식, 전유 방식, 교환 방식을 생산 수단의 사회적 성격과 일치시키는 것에만 놓여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사회의 지휘 이외의 다른 어떠한 지휘에 비해도 웃자란 생산력들을 사회가 공공연하고도 솔직하게 점유 획득하는 것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 사회적으로 작용하는 힘들은 자연력들과 꼭 마찬가지로 작용한다 :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고려하지 않는 한, 그것들은 맹목적으로, 폭력적으로, 파괴적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일단 우리가 그것들을 인식하고, 그 활동, 그 방향, 그 작용을 파악하고 나면, 그것들을 더욱더 우리의 의지에 복종시키고 그것들을 매개로 하여 우리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들 자신에게 달려 있는 일이 된다. (...) 이처럼 오늘날의 생산력들을 마침내 인식된 그 본성에 따라 취급하면, 사회적 생산의 무정부 상태는 전체와 각 개인의 욕구에 따른 생산의 사회적-계획적 조절로 대체된다.”[21]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 5권, p.307-308, 박종철 출판사 번역)
1880~1890년 무렵, 이러한 입장은 이후로도 사회 민주주의당에 의해 방어되었다. 이는 구 리프크네히트의 추종자들이 철도, 광산과 다른 대규모 산업을 국유화하고자 한 연설에 명백하게 반영되어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결국 사회주의 사상의 맹공으로부터 더 이상 스스로를 지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부르주아 사회가 많아질수록 국가 사회주의를 진지하게 주장하고, “여기는 사회 민주주의 – 그쪽은 국가 사회주의다!(Here social democracy – there state socialism!)” 슬로건 아래 사회 민주주의자가 수행해야 할 마지막 전투가 일어날 순간에 우리는 더욱 가까워진다.“
쿠노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따라서, 의회[사회 민주주의 당의](편집자)도 역시 기업의 국가로의 이전에 반대하여 선언해야 한다. 왜냐하면 사회민주주의와 국가 사회주의는 ’양립할 수 없는 모순’으로 불리기 때문이다.“(쿠노, 위 책, 340쪽)
그러나, 1900년 무렵, ”사회 개혁“의 투쟁 속에서 이 입장은 포기되었고, 국가 또는 사업의 다른 지점들의 지방 정부로 가져오는 ”국유화“는 사회주의에 보다 가깝게 다가가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따라서 사회 민주주의적 용어에서 그런 기업들은 비록 그들의 관리와 리더십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더라도 ”사회적 [또는 공동체적] 기업”으로 불린다.
러시아 혁명 또한 완전히 산업의 ”국유화“ 기획에 따라 이뤄졌다. 이 경우 ’성숙한‘ 사업의 지점들도 중앙 정부 기관에 합류했다. 1917년, 생산자들은 다른 회사들의 소유주로부터 회사를 강제로 사들이기 시작했고, ”위에서부터“ 경제적 삶을 이끌고 관리하고자 했던 이들이 이를 매우 불편해하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은 코뮤니스트 원칙에 따른 새로운 기반 위에 생산을 조직하길 원했다. 이러한 원칙 대신 그들은 빵을 위한 석판을 받았다: 코뮤니스트당은 회사들이 트러스트로 통일해야 하고, 중앙집중식 리더십의 지도를 받도록 하는 지침을 내렸다. 이러한 중앙집중식 처리 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회사들은 도로 소유주에게 돌아갔다. 왜냐하면 이 회사들은 아직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첫 번째 모든-러시아의 경제 평의회 의회(All-Russian Congress of Economic Councils)가 아래의 결의안을 채택했는지를 본다.
”생산의 조직 영역에서, 전반적인 국유화는 필수적이다. 개별 회사들(304개의 회사가 국유화되고 압수되었다)의 국유화 시행부터 산업의 효과적인 국유화까지 진행시키는 것은 필요불가결하다. 국유화는 “때때로” 이뤄져서는 안 된다. 오직 전권 최고 경제 평의회(Supreme Economic Council of Plenipotentiaries)를 통해, 최고 경제 평의회의 승인으로 이뤄져야 한다. (A. 골드슈미츠, “Wirtschaftsorganisation in Sowjet-Russland”, 228쪽)
따라서 코뮤니스트당(공산당)은 노동자들 스스로 기업을 코뮤니스트 영역으로 더할 수 있는 원칙, 생산과정에 대한 관리를 사회로 이전하는 원칙에 따라 지침을 내린 것이 아니었다; 코뮤니스트당에게 있어 노동자들의 해방은 노동자의 작업이 아니었고, 코뮤니즘의 수행은 “과학적 인간”, “지식인”, “통계학자”의 기능, 이 모든 배운 자들이 여전히 필요한 것이었다. 코뮤니스트당은 산업의 과거 지휘관들을 몰아내고 그 자신의 손에 노동에 대한 올바른 명령(Right of Command)만 쥐여준다면 코뮤니즘의 안전한 안식처로 모든 것을 이끌기에 충분하다고 믿었다! 노동계급은 과거 노동의 지배자들을 몰아내고 그들의 자리에 새로운 이를 세우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 기능은 그 이상에 이르지 못했고, 더 나아갈 수 없었는데,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생산의 법칙들을 제공함으로써 자기-조직의 기반이 주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22]
레닌은 어떻게 “간단한” 방법으로 어려움을 해결했나
레닌은 확실히 국가 독점의 손에 전체 생산을 집중시키는 것을, 그것은 엄격한 조직의 중앙집중주의에 기초하고 있으며, 국가 권력의 강화를 의미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국가와 혁명”이 집필되던 당시, 레닌은 러시아의 실제 발전을 어떤 식으로든 예측할 수 없었다. 여기서 볼셰비키가 권력을 놓치지 않으려면 국가 권력을 가능한 한 강화해야 했고, 이를 통해 다른 목표는 고려할 것도 없이 생산을 독점해야 했다. 그러므로 러시아의 상황은 그 자체로 레닌의 국가 코뮤니즘 이론을 발전시켰다. 국가를 더 강하게, 가깝게 하는 방법은 러시아의 국가 권력을 차지한 이들에게 점진적으로 처방되었다. 이 과정은 “일반적인 공기업의 메커니즘으로, 국가의 자본주의 독점의 보기로 조직된” 것으로 출발하여 “자유롭고 평등한 생산자들”에 점점 반대되는 것이 될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는 레닌주의 국가 코뮤니즘의 가장 좋은 사례를 현실에서 발전시켰으나, 그것은 담지자로서가 아니라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레닌은 실제 결과의 모든 구체적 내용까지 예견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있어 프롤레타리아 국가는 강제적인 기관이라는 것이 명백하기도 했다. 레닌은 이제 독창적인 방식으로 어떻게 이 국가라는 것이, 그의 이론에 따르면 전체 생산의 관리와 중앙집중적 리더십을 보유한 영속적인 기관으로서의 국가가 스스로 잉여가 되도록, 스스로 소멸할 수 있는지 그 모순을 해결하고자 한다. “국가와 혁명”에서 레닌은 아래와 같이 주장한다:
“우리 노동자들은 자본주의가 이미 창조한 기반 위에, 노동자로서의 경험에 기대어, 무장한 노동자들의 국가 권력의 지지를 받는 엄격한 철의 규율을 세워 대규모 생산을 조직해야 한다. 우리는 단순히 우리의 지시를 의무적으로, 손쉽게 취소할 수 있는, 적당한 보수를 받는 ”십장과 회계사들“과 같이 수행하는 국가 공무원의 역할을 축소해야 한다(물론 모든 종류와 유형, 그리고 수준의 기술자들의 도움으로). 이것이 우리의 프롤레타리아 책무이며,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완성하기 위해 시작할 수 있고, 시작해야 하는 일이다. 대규모 생산에 기반한 이러한 출발은 그 자체로 모든 관료제의 점진적 “소멸”과 질서의 점진적 창조 – 비할 데 없는 질서, 임금과는 조금도 비슷하지 않은 질서 - 로 이어진다. 그 질서는 점점 더 단순해지는 통제와 회계의 기능으로 교대로 수행될 것이고, 그 후 습관처럼 되어 마침내 전체 인구 가운데 특별한 부분의 특별한 기능으로 사멸할 것이다.“[23]
여기서 우리는 기계적 조직의 극단을 알아낼 수 있다: 경제 영역에서 생산자로서 노동자들은 국가 생산 독점의 가장 가혹한 규율에 적응해야만 했고, 국가 공무원에 복종해야 했다. 이 국가 공무원들은 정부에서 최고 리더십 아래 있는 ”고용주“다. 노동자들은 또한 정부에서 그들의 최고 대표를 가진다. 정치적 민주주의 덕에(소비에트 선거 – 당 활동) 그들은 정부에 영향을 줄 수 있고, 따라서 국가 공무원들과 함께 생산을 통제한다.
우리는 그런 시스템에서 모든 권력은 정부에 집중되어 있고, 노동자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보다 더 심각하게 억압되며, 여기서 민주주의는 다시 한번 농담으로 변하며, 그런 사회에서의 번영은 선한 의지와 정부의 역량, 그리고 그들의 관리에 의존한다고 반복해서 이야기한다. 그런 환경 아래서 국가는 그 민주주의와 함께 더욱 견고한 기반을 다지지, 레닌이 원했던 것처럼 잉여가 되어 사멸하지 않는다. 레닌은 우리에게 이러한 국가가 사멸함에도 불구하고, 오직 그 엄격한 조직에 의해서만 그렇게 되리라고 확신 시켜 준다. 그러나 그는 인용된 모호한 논리, “점점 더 단순해지는 통제와 회계의 기능으로 교대로 수행될 것이고, 그 후 습관처럼 되어 마침내 전체 인구 가운에 특별한 부문의 특별한 기능으로 사멸할 것이다”에 대해서는 아무런 논증을 하지 않는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이 모호함의 이유는 추상적으로, 오직 환상에서만 상상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 생산 독점(‘우편 서비스’든 트러스트든)의 리더십을 매우 쉽게 이뤄질 수 있는 감독과 회계의 기능으로 제시하는 것은 모든 것을 근본부터 뒤집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레닌이 국가의 소멸에 대한 맑스와 엥겔스의 가르침을 따랐다는 그의 결론 등의 이 주장을 아무런 내용도 없는 것으로 낙인찍어야 한다. 이것은 레닌 자신에게도 역시 성가신 것이었다.
국가 코뮤니즘은 평의회 사상과 충돌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국가 코뮤니즘 사상을 따르려 한다면, 그 사람은 2가지 특징을 발견할 것이다. 첫째는 국가 코뮤니즘은 모든 문제를 단지 기계적인 것으로 취급한다. 그것은 조직에 의해 이런저런 영역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지, 중앙집중식 리더십과 관리하에 둘 수 있을지의 관점에서만 모든 것을 보는 것이다.
이는 자본주의에서 이미 일어났던 것과 마찬가지로 기업을 집중시키는 것을 계속하는 것이 코뮤니즘을 완성하는 것으로 생각하게끔 했다. 하지만 자본주의 집중으로 생산을 조직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임노동자의 관점에서 볼 때, 그리고 자본가의 입장에서 볼 때 그것은 어떤 의미인가? 그것은 노동의 통제이며, 임노동자에 대한 조직된 통제이다. 맑스주의의 자본주의 분석은 그에 대해 어떤 의심의 여지도 남겨놓지 않는다. 맑스에게 임노동자에 대한 자본주의자의 사회적 입장은 그의 노동, 생산 과정에서의 노동자에 대한 취급에서 특징지어진다.
모든 사회 민주주의 흐름의 사회화 이론들은 노동 계급에 대한 통제라는 동일한 관점에 집중한다. 노동은 반드시 지배되어야 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명백하고, 조직의 엄격한 중앙집중이 요구되는 것(왜냐하면 그것은 체제와 분리할 수 없이 연결된 사회적인 것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은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기 때문이다[그렇게 여겨진다].
그러나 국가 코뮤니즘이 지도자들의 역량에도 결정적인 무게를 둔다는 점은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이것은 중앙 집중주의적 조직의 요소 중 하나의 결과임이 분명한데, 왜냐하면 중앙에 위치한 리더십 원칙의 연약과 견고함에 이제 모든 것이 의존하기 때문이며, 대중들은 이러한 가장 엄격한 규율에 종속된다.
노동계급은 폐쇄된 통일체로서 투쟁할 준비가 되었을 때에만 권력을 쟁취한다는 볼셰비키를 인정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것이 조직의 규율과 중앙의 명령에의 복종이라는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는지는 지금 검토할 수 없는 다른 문제이다.
우리는 이러한 현상에 주의를 기울인다. 왜냐하면 국가 코뮤니즘이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여기서 모든 “지도자” 문제가 평의회 사상에 반대된다는 것이 결정적이다.
맑스주의으로부터의 의문스러운 이탈
국가 코뮤니즘에서 자신의 목적을 찾았던 제3 인터내셔널의 일부로서 노동자 조직의 모든 전술은 그들을 둘러싼 거대한 대중들을 중앙집중식 지도력 아래 두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조직이 일단 만들어지면, 지도자는 주요한 것이 된다. 그러나 그로 인해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성공은 지도자의 능력에 깊이 조건 지어진다 - 이것이 맑스주의로부터의 의심스러운 이탈이다.
이 지도력 문제는 우리가 제3차 인터내셔널의 당과 조직의 전술에 대한 일상에서 직면하는 문제인데(우리는 노동조합, 의회, 그리고 조직의 문제를 C.P. 자체에서 언급했다), 국가 코뮤니즘에서 경제적 영역으로도 이전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도자의 능력과 태도는 그런 사회에서 엄청난 규모로 그 운명에 영향을 미친다. 마찬가지로 레닌과 다른 이들의 미화와 같은 사람에 대한 역겨운 숭배도 설명할 수 있다.
“노동자의 해방은 노동자 자신의 힘으로 이뤄져만 한다.” 이 말은 노동자의 경제적 해방을 고려할 때에도 유효하다. 가장 숙련된 지도자들을 노동자들이 절대적인 규율로 따를 때조차도 그 지도자가 프롤레타리아트로부터 해방의 작업을 떠안아 줄 수 없다. 더욱이 국가 코뮤니즘에서 나타났던 것처럼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지도자와 대중의 관계를 석화시키고, 그 지도력이 발전함에 따라 그 모든 민주주의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지도력은 사회가 점점 의존하는 지배 카스트가 된다.
노동자들의 통일된 권력은 필수적이다
우울하고 지루한 수백만의 대중들을 혁명으로 이끈 단호하고 맹렬하며, 혁명적인 전위가 있는 러시아가 국가 코뮤니즘이라는 교리를 낳고 말았을 때, 이 교리가 첫 번째 성공적인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신호탄으로 모든 나라의 노동자들의 열망에 불 질렀을 무렵, 엄격한 관료제와 생산의 독점화로 인한 재건된 국가 권력은, 국가 코뮤니즘에 의해서는, 그리고 대중들이 규율로 복종하는 지도자에 의해서는 노동 계급의 최종적 해방이 이뤄질 수 없으며, 오직 노동자 스스로의 힘에 의해서만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증거를 보여주었다.
물론, 무장한 노동자의 통일된 힘은 부르주아지와 충돌할 수밖에 없는데, 왜냐하면 이 방식으로만 부르주아 국가의 집중화된 권력이 극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기업을 기반으로 무장을 하고 새로운 국가 권력을 구성한 것은 노동자들 자신이다.
소비에트 또는 평의회가 지도하고 그 지도자는 평의회 정부를 구성하는 노동자 국가의 정치적인 통일은 이 투쟁의 필연적 결과이다.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의 폐지와 “국가 소유” 선언, 또는 더 정확하게는 사회적 소유 선언은 프롤레타리아 국가, 그러니까 정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1871년 파리 코뮨의 교훈
그러나 이제 국가 코뮤니즘은 맑스주의로부터 이탈한다. 왜냐하면 정부의 중앙집중화된 조직 지도력 아래 국가 소유로의 조직화를 통해 국가 코뮤니즘은 생산수단으로부터 즉각적인 생산자들을 추방하고 정부의 손에 그것을 쥐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맑스와 엥겔스는 생산수단을 사회적 소유, 연합, 자유롭고 평등한 생산자들의 연합에 의한 사회적 생산으로의 이전을 요구했다. 그러나 우리가 아래에서 보여주겠지만, 이것은 국가에 의한 중앙집권적 생산의 조직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맑스는 그의 글, 「프랑스 내전」에서 파리 코뮨(1871)으로부터의 교훈을 이끌어냈는데, 그것은 노동자 권력을 확립하려는 첫 번째 시도이다. 「국가와 혁명」에서 레닌은 그로부터 다양한 인용을 했는데, “사회 민주주의 가짜 맑스”에 반대하여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방어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레닌이 이용한 것과 똑같은 인용구를 사용하여 맑스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사용할 때의 의미가 러시아에서 나타난 것과 완전히 다른 무엇인가임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러므로 코뮨의 첫 번째 명령은 상비군을 억제하고, 이를 무장된 시민으로 대체하는 것이었다.”
“코뮨은 지방 평의원으로 구성되며, 이들은 시의 다양한 구역에서 치러지는 일반 선거에서 선출된 이들이며, 책임을 지되 언제든 소환(revocation)이 가능하다.”
“코뮨은”, 맑스가 쓰기를 “의회와 같은 조직이나 행정부, 사법부 없이 작동할 것이다”.
“3년이나 6년에 한 번씩 의회로 대표하고 억압할 지배계급 구성원을 정하는 대신, 일반 선거는 코뮨으로 사람들을 모으는 역할을 하는데, 개별 선거가 노동자, 십장, 그리고 회계사 등 자신의 사업을 위해 일할 사람을 찾고 있는 다른 모든 고용주에게 유리하게 작동하는 것과 같다.”[24]
맑스의 평의회 체제란
그러므로 맑스는 프롤레타리아 평의회 체제의 놀라운 성격을 부여했던 것이고, 그것은 이제 모든 혁명적 노동자 정당의 표준적인 특징이 되었다. 이런 과정으로 임명된 평의회는 언제든지 그 투표자들에 의해 직접적으로 처리될 수 있다는 점을 잘 알아야만 한다. 고용주가 노동자, 십장, 그리고 회계사들을 고용하고 해고하는 것처럼. 투표자는, 즉 노동자는 이 경우 그들의 “사업”에서 완전한 주인이다! 이러한 코뮨의 건설이 중앙집중적 러시아 국가 코뮤니즘과 비교해서 어떻게 완벽하게 다를 수 있는지는 맑스가 쓴 아래의 문장들에서 보여진다.
“코뮨과는 전혀 다른 국가 조직을 간략하게 묘사해보면, 그것은 코뮨은 가장 마을에서나 볼 수 있는 정치적인 형태라고 명백하게 말한다...”. 코뮨은 파리에서 “국가 대표(National Delegation”를 선출했다.
“...얼마 되진 않지만 중요한 중앙 정부의 잔존할 기능들은 억압되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그릇되게 진술되었는데, 코뮨의, 그러니까 엄격하게 책임 있는 관료들로 이전되었다.”
“...국가적 통합은 붕괴되지 않았고, 오히려 반대로 코뮨 헌법으로 조직되었다; 그것은 국가 권력의 파괴에 의해 실재하게 되었다. 국가 권력은 통합이 형상화된 것으로 국가에 독립적이고 국가에 우월하길 원했던 것이었는데, 그 실체는 기생적인 이상 생성물에 불과했다. 과거의 정부 권력의 억압적이기만 했던 기구가 제거되는 동안, 그 정당한 기능들은 사회 위에 설 권리를 주장하는 권위에서 책임감 있는 사회의 봉사자로 복원되었다.”[25]
코뮨의 대중과 지도자에 대한 문제
여기서 “얼마 되진 않지만 중요한 중앙 정부에 잔존할 기능들”은 자신을 직접적으로 선출한 이들에 언제나 엄격한 책임을 지고 있는 공동체의 공무원들이 수행한다고 모호하지 않게, 명백하게 언급하고 있다. 중앙 정부의 최고 공무원들은 국가의 공무원이 아니라 공동체의 공무원이며, 국가의 정부를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코뮨에 있는 그들의 직접적인 선출자들을 책임진다. 그러한 질서, 다시 말해 국가나 사회의 통합을 보장하는 코뮨 공동체의 책임 있는 공무원이 중심적 사회적 기능들을 수행함을 가정한다면, 국가의 소멸 또한 상상 가능하다. 그러나 그러한 질서에서 국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소위 중앙 정부는 더 이상 분리된 권력을 갖고 있지 않고 공동체의 손에 그 권력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동체 또는 평의회 체계가 전체 국가에서 자리 잡는 것은 기생충 같은 국가를 제거하는 것과 동시에 일어난다. “과거의 정부 권력의 억압적이기만 했던 기구가 제거되는 동안, 그 정당한 기능들은 사회 위에 설 권리를 주장하는 권위에서 책임감 있는 사회의 봉사자로 복원되었다.” 일단 그러한 질서가 이뤄지기만 하면, 국가는 진정으로 죽어 없어지고, 사회는 더 이상 국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국가 소멸의 조건들
이러한 상황은 프롤레타리아 독재 아래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오직 이전 국가 권력의 합법적인 기능들이, 이제 사회의 중앙 기능이라고 불리는 것이 공동체의 공무원들에게 이전될 수 있을 때, 국가 권력 – 여기서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 이 불필요해질 것이다. 이러한 기능들의 이전 가능 여부는 이러한 중앙 기능들을 자발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코뮨에 달려 있다. 이러한 기능들과 도구들 함께 사회는 저항을 찾지 못할 것이다. 이전의 국가 권력은 과거 그래왔던 것처럼 코뮨 안에서, 중앙 기능들과 그 결과로서의 도구들을 감시하는 기능을 하는 자발적인 중앙집중화에 의해 생명을 되찾아야만 한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주요 중심 기능들은 사적 소유의 폐지와 나아가 모든 특권의 폐지, 생산수단을 사회의 소유로 이전하는 것(자유롭고 평등한 생산자들의 연합에 의해)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이러한 특권과 사적 소유를 일을 수 있는 모든 개인, 또는 그들의 이데올로기는 이러한 중심 기능에 저항할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사회질서의 기능은 이런 사람이나 계급에게 이전될 수 없고, 이러한 저항이 존재하는 한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필연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저항을 극복한 코뮨은, (예를 들어 코뮤니즘에 충성하는 절대다수의 노동자들이 존재할 경우) 이러한 기능들을 스스로 전복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국가의 점진적인 소멸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
그러나 이 또한, 프롤레타리아 국가는 반드시, 자발적인 중앙집중화, 다시 말해 코뮨에 권력을 이전시킴으로써 처음부터 스스로 모든 권력을 박탈해야 함을 알아야 한다. 이 조건을 만드는 것이 독재의 책무이고, 잉여가 되는 것이 그 목표이다.
두 체제의 대립
맑스에 따르면, 중앙 정부의 적지만 중요한 기능들은 공동체 공무원(엄격하게 공동체를 책임지는)에게 이전될 것이다. 그러므로 지역 공동체의 자치 정부가 문제가 되었을 때, 중앙 국가 권력은 코뮨의 자발적인 중앙집중화에 의해 잉여가 된다. 레닌은 이런 생각에 동의하고, 그의 생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국가 코뮤니즘 이론에 따르면(이 역시 레닌이 발전시켰는데), 모든 생산 수단은 국가 소유이고, “국가 자본주의 독점의 형태로” 중앙집중화된다. 조직적 “일반 공공 기업의 메커니즘”은 정부의 지도력을 가정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국가의 권력 도구이지 코뮨의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 독점의 기능, 조직적 “일반 공공 기업의 메커니즘”은 코뮨이 아니라 중앙 정부를 책임지고 있는 공무원들이 수행한다. 이러한 두 체제의 대립보다 더 극명한 대조는 생각하기 어렵다.
그러나 두 관점, 레닌이 그의 저서 “국가와 혁명”에서 통합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이 신념은 오늘날 제3 인터내셔널을 지지하는 이들의 신념이기도 하다.
레닌이 인용한 엥겔스의 글 2편.
출처: 「국가와 혁명」
“프롤레타리아트는 처음부터 국가로부터 권력을 빼앗고 생산 수단을 국가 소유로 돌려준다. 그러나 그로 인해 프롤레타리아트로서 스스로를 폐기하고, 모든 계급 구분과 계급 적대를, 또한 국가로서 국가를 폐기한다. 지금까지 계급 적대 속에서 작동해 온 사회는 국가가 필요했고, 그것은 특수한 착취 계급의 조직으로 생산의 외적 조건들을 유지하고, 따라서 특히 착취당하는 계급을 주어진 생산 양식(노예제도, 농노 또는 농노제, 임노동)에 의해 결정되는 억압의 조건들 속에 강제로 두려는 목적을 갖고 있었다. 국가는 가시적인 기업의 형태로 집중된 사회 전체의 공식적인 대표였다. 그러나 계급이 스스로 자신의 시대, 전체 사회를 대표하게 되는 국가라는 것이 필요했던 것은 오직 지금까지만 그러했다: 고대에는, 노예를 소유한 시민들의 국가, 중세 시대에는 봉건적 귀족, 우리 시대에 와서는 부르주아가 그러하듯이. 사회 전체를 진정으로 대표할 수 있는 시대가 오면, 국가는 불필요한 것이 된다.”
“전체 사회의 대표로서 국가가 진정으로 나타날 수 있게 되었을 때 – 사회의 이름으로 생산 수단을 소유하게 되었을 때 – 첫 번째 행동은 또한 국가로서의 마지막 독립적인 행동이게 된다. 사회적 관계에서 국가의 개입은 한 영역에서 차례차례 다른 영역에 이르기까지 잉여가 되고, 스스로 사멸한다. 사람의 정부는 사물의 관리(administration of things)로 대체되고, 또한 생산 과정의 관리로 대체된다. 국가는 ‘폐지’되지 않는다. 그것은 사멸한다.” (「반 뒤링」, pp.301-03, 독일어 제3판)“
<주>
[20] 네덜란드어 원판의 이 부분은 “코뮤니스트 생산과 분배의 근본적인 원칙들”의 같은 제목의 챕터에 해당한다 :
http://www.aaap.be/Pages/Transition-nl-Grondbeginselen-1935.html#II.b
[21]
https://www.marxists.org/archive/marx/works/1877/anti-duhring/ch24.htm 이 인용은 1932년 네덜란드판보다 확장되어 있다(편집자 주)
[22] 이 부분은 “근본적인 원칙들”의 끝맺음과 동일하다.
[23]
https://www.marxists.org/archive/lenin/works/1917/staterev/ch03.htm ‘우리’ 이후의 이탤릭체는 편집자가 추가한 것으로 GIC의 네덜란드 원판과 Lenin Werke, Dietz Verlag, Berlin, 1981, Bd. 25, 439쪽에서 볼 수 있다. 후자 같은 경우 레닌은 “노동자로서 스스로 대규모 생산을 조직하자...”고 썼다.
[24]
https://www.marxists.org/archive/lenin/works/1917/staterev/ch03.htm - s3.
[25]
https://www.marxists.org/archive/lenin/works/1917/staterev/ch03.htm - s3.
F.K. 번역(원문), 2016년 5월 25일
편집 Jac, J., 2017년 7월 26일 : 2017년 10월 10일
최종 수정 : 2017년 12월 22일
번역(한국어) : 국제코뮤니스트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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