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맑스주의와 국가 코뮤니즘
국가의 점진적 사멸
국제코뮤니스트그룹(G.I.C.)
네덜란드, 1932
차례
경제 혁명은 생산 수단의 정복과 함께 시작한다
레닌주의 국가 코뮤니즘. 임노동자는 여전히 임노동자로 남는다.
“자유롭고 평등한 생산자들의 연합”
국가에 대한 레닌주의 이론의 모순
국가 코뮤니스트로서의 레닌
“국유화(Nationalization)”와 “사회화(Socialization)”
레닌은 어떻게 “간단한” 방법으로 어려움을 해결했나
국가 코뮤니즘은 평의회 사상과 충돌한다
맑스주의으로부터의 의문스러운 이탈
노동자들의 통일된 권력은 필수적이다
1871년 파리 코뮨의 교훈
맑스의 평의회 체제란
코뮨의 대중과 지도자에 대한 문제
국가 소멸의 조건들
두 체제의 대립
1932년 G.I.C.가 채택한 막스 헴펠(Max Hempel)의 글 ‘Marx-Engels und Lenin’. Uber die Rolle des Staates in der proletarischen Revolution, in: ‘Proletarier’ Nr. 4 . 6, 1927 [1]
맑스주의와 국가 코뮤니즘
경제 혁명은 생산 수단의 정복과 함께 시작한다
노동계급의 지배가 산업화된 국가에서 사실이 되자마자, 프롤레타리아트는 경제적 일상을 새로운 기반, 공동체 노동[2] 위에 세우는 변형 작업을 수행해야 하는 일에 직면한다. 사적 소유의 폐지는 쉽게 발표되고, 그것은 노동계급의 정치적 지배를 표현하는 첫 번째 척도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 경제적인 과정을 위한 법적 근거를 제공하기 위한 사법적인 조치일 뿐이다. 진정한 변형과 실제 혁명적 작업은 그 후에서 시작된다.
레닌주의 국가 코뮤니즘. 임노동자는 여전히 임노동자로 남는다.
이 문제가 공식적인 맑스주의자[3]에 의해서 다뤄지는 한, 국가가 이 책무를 다해야 한다는 것은 과거의 결론으로 간주된다. 1917년 혁명 이후 러시아 볼셰비키당은 지속적으로 생산수단을 국가의 손에 쥐여주는 사상을 수행해왔다[4]. 그것이 제한된 정도로만 성공한 것은 러시아의 사회적 생산이 후진적인 상태였기 때문이다. 어떤 점에서는, 그것은 생산 수단의 국유화에 부여된 자연적인 장벽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국유화를 할지, 그리고 어느 정도 국유화가 가능할지가 아니라, 볼셰비키 이론과 실천에서 스스로 선언한 것처럼, 승리한 노동계급이 생산수단의 국유화를 수행하는 것이 코뮤니즘으로 나아가는 길인가 하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 볼셰비키 정권 아래 러시아 기업의 발전은 명확한 답을 내놓았다. 국유화된 기업에서 노동자가 여전히 임금 노동자라는 것은 이제 확실한 사실로 여겨진다. 국가는 이전의 사적 자본가들을 대체했고,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을 이 국가에 판매한다. 국가는 법으로 임금을 정하고, 노동조합을 허락하는데, 스스로 국가 기관이 되고, 노동법을 제정한다. 러시아에서 실제로 효력을 갖는 임금법은 17개 임금 단계, 성과급, 보너스 등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국유화된 산업은 사적 자본주의 아래 생산과 마찬가지로 노동력의 착취에 기초해 있다. 국가 관료는 지배계급이 된다. 이 체제에서 소비에트 선거는 가짜다. “자유로운” 노동자는 마침내 노동자와의 “공동-경영”을 획득한다.
국가 그 자체– 러시아에서는 노동자 농민의 국가로 불리지만[6] -는 생산수단의 소유자로서 임노동자 계급과 대립한다. 중앙집중화된 국가 관료제의 정상은 국가의 입법과 행정기관이며, 동시에, 생산의 지도자이기도 하다. 이들은 사적 자본주의에서의 독점 자본과 같은 위치를 차지하고, 사실 새로운 지배계급: 국가 관료와 농민 계급을 대표한다. 노동자들의 그들의 노동력을 국가에 판매하지만, 오직 노동법에 따라서만 그렇게 할 수 있고, 국가 관료에 의해 만들어진 노동법은 가격과 노동 조건을 정해놓고 있다. 유례없이 가혹한 착취가 법으로 규정되어 있으며, 모든 반대는 원칙적으로 반혁명적인 것으로 억압된다.[7] 훈육과 국가에의 복종은 이 강제적인 조직을 완성한다. 사람들은 헛되이 궁금해한다. 대체 어떻게 코뮤니즘의 첫 번째 요건, “임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달성했냐고.
다른 편에서는, 국가의 경제와 정치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노동자들, 그리고 모든 국민들이 소비에트 선거에 참여하고, 당과 노동조합에 가입한다. 그러나, 소비에트 선거가 전능한 국가 관료(그리고 재산을 갖고 있는 농민 계급)의 영향을 결정적으로 받는 이상, 당과 노동조합이 관료의 강력한 도구인 이상, 사람들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영향력이 이런 방식으로는 효과적일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실질적으로 후자는 사회 민주주의자들이 자본주의 아래서 요구한 노동자들에 의한 “공동-경영”으로 환원할 수 있다.
“자유롭고 평등한 생산자들의 연합”
맑스에 따르면, 국가는 독특한 억압 기구이다.
- 자본주의에서는 노동계급을 억압하는 기구
- 프롤레타리아 독재에서는 부르주아지와 반혁명을 억제하는 기구
그러나 이로부터 코뮤니스트 사회에서 중심 리더십과 전체 경제적 삶의 정수를 손에 쥔 국가가 배타적인 권력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오히려 반대로, 맑스와 엥겔스는 코뮤니스트 사회의 전형적인 특징은 “자유롭고 평등한 생산자의 연합”에 있다는 입장을 지지했고, 국가란 반드시 사라져야 하고, 그 시기는 억압할 것이 남아있지 않을 때, 그러므로 부르주아지의 저항과 그들의 이데올로기가 노동자들에 미치는 영향력이 극복되었을 때이다. “자유롭고 평등한 생산자들의 연합”에는 더는 계급 적대가 없으며, 따라서 이러한 사회에서 권력의 도구로서의 국가는 불필요한 것이 된다.
레닌은 국가 코뮤니즘의 창시자이다. 그 이론의 토대를 닦은 “국가와 혁명”에서 그는 맑스와 엥겔스를 언급한다. 비록 이 작업이 멘셰비키주의에 반대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방어하기 위해 작성되었고, 그런 점에서 지속적인 이점이 있지만, 레닌의 주장에 따른 독재의 모습은 과학적 코뮤니즘 창자들의 문제에 대한 개념과 대립된다. 이는 레닌이 맑스와 엥겔스의 저작에서 인용한 부분에서도 드러난다. 레닌은 엥겔스를 인용한다.
“국가는 그렇게 오랫동안 존재한 것이 아니다. 국가가 없는, 국가나 국가 권력의 개념이 없는 사회는 존재했다. 경제적 발전의 특정 단계에서, 필연적으로 사회가 계급으로 분열되는 시점에서 국가는 그 분열의 필연적 결과가 된다. 우리는 이제 이러한 계급들의 존재가 더 이상 필연적인 것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생산에 방해가 되는 생산 단계에 다가서고 있다. 이전 단계에서 등장했던 모양으로 그것은 없어질 것이다. 그와 함께 국가는 필연적으로 사라진다. 자유롭고 평등한 생산자들의 연합에 기반하여 재조직된 사회는 모든 국가의 기계를 그것이 속할 장소에 둘 것이다: 골동품들의 박물관, 물레와 청동 도끼 옆에.”[8]
엥겔스는 다른 장소에서 생산수단은 국유화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므로 레닌은 이 문장에서의 그의 이론을 발견한다.[9]
그러나 그것은 기이한 국가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그 국가는 오직 티끌로 사라지기 위해, 모든 권력을 점차 잉여로 만들기 위해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만들기 위해 창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가 자신의 손에 ”사물과 생산의 리더십의 관리”를 집중시키고, 생산 체계의 관리자들이 노동자들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면 어떻게 될까?
만약 관리 기관이 정치적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소수당의 손에 있다면, 실제로 그것은 광범위한 대중을 지배하는 것 관한 것이다.[10] 당이 ”프롤레타리아트의 당“이라는 변명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이 관리 기관은 러시아의 예시가 가르쳐주듯이, 중앙화된 조직 기관으로서, 중앙으로부터의 지시만을 따른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 기관 내에서는 ”독립적인 생산자“(노동자)의 자리는 없다. 이것은 중심적 리더십과는 관계가 없다.[11] 결과적으로 우리는 엄격한 규율, 최고 지도자의 명령에 대한 복종이 러시아 경제와 정치의 종교적 교리가 되었음을 관찰한다.
이론적으로 소비에트 선거는 ”사회의 이름으로“ 생산 수단을 소유한 국가가 실제로 사회의 이름으로 국가를 경영하고 생산 기관을 지시하는 안전망을 제공할 것이었다. 실제로 국가 관료주의는 모든 권력 수단을 동원하여 자신의 계획을 강요했고, 소비에트 선거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소비에트 선거로 국가의 관리에 영향을 미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는 국가당(State Party, C.P.R.)이나 노동조합의 사례가 아니다. 이 국가 관료는 자신 외의 그 어떤 다른 정치의 등장도 허락하지 않는다. 이러한 국가 코뮤니즘에서 명목상 당과 노동조합 조직, 그리고 소비에트 선거로 운영되는 민주주의가 맑스와 엥겔스가 요구했던, 그리고 레닌 또한 꿈꾸는 척했던, 국가의 소멸을 보장할 수 없으리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12]
한 손에 집중화된 생산은 새로운 형식의 지배를 정의한다. 결과적으로 국가는 소멸할 수 없다. 민주주의도 역시 소멸할 수 없다. 민주주의는 억압을 감추는 가리개를 남겼다.
우리는 이 정부 또는 집중화된 리더십은 소멸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지만, 반대로 생산 수단를 국유화한 방식의 결과로 스스로를 더 긍정해야 한다.[13] 그것은 실제로는 자유롭고자 하는 생산자들이 정부에 복종한다는 것, 그들이 정부에 경제적으로 의존한다는 것, 결국 종속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위안을 삼을 만한 것이라면, 그 대가로 그들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종속될지 스스로의 종속을 모양 지을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길은 생산자로서의 그들의 기능을 넘어서는, 민주주의의 길이다.
의심할 바 없이, 생산자로서의 노동자는 하나의 권력이지만, 바로 그렇게 그들은 중심적 리더십에 따라야 한다. 기업 바깥에서 그들은 오직 무장했을 때에만 결정적인 권력이 된다. 그러나 러시아에서 우리는 노동자들이 무장해제 되고, 반대로, 중앙 정부 소속의 적군(Red Army)이 만들어짐을 본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민주주의에서 노동자들은 거의 영향력이 없다. 근본적으로, 이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어떤 점에서도 구분되지 않으며, 관료제를 지배하는 강한 내부자들에 저항하는 것은 그 무엇도 이뤄질 수 없다. (이는 러시아의 사례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이 나라의 사회적 관계에 의존한다. 이들은 러시아의 국가 코뮤니즘의 승리를 보장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로부터 우리는, 이것들이 노동계급에게 어떤 타격을 주었는지,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 국가에서 러시아 모델에 따라 국가 코뮤니즘을 실행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알 수 있다.)
레닌의 이론에 따른 생산수단의 국가소유의 결과로서 중앙조직의 지도력과 관리는 지배관료주의에 의한 억압의 도구로서 이른바 새로운 강력한 국가가 될 것이다. 민주주의는 부르주아 사회에서 쓸모없는 잎사귀가 노동자에 대한 새로운 지배를 가리는 의미를 지닐 것이다.
이에도 불구하고 레닌은 「국가와 혁명」에서 국가는 반드시 소멸할 것이라 표현했고, 심지어 민주주의 또한 반드시 죽는다는 올바른 결론을 내린다:
”(...) 국가가 ‘소멸’한다는 것, 그리고 보다 생생하고 다채롭게 ‘스스로 죽어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엥겔스는 꽤 명백하게, 그리고 단호하게 “국가가 전체 사회의 이름으로 생산수단을 소유한‘ 시점 다음의 시기를 언급하고, 그것은, 사회주의 혁명 이후이다. 우리는 모두 그 시기 ’국가‘의 정치적인 형식이 가장 완전한 민주주의임을 안다. 그러나 뻔뻔스럽게 맑스주의를 왜곡한, 어떤 기회주의자들의 우두머리들도 진입할 수 없다. 엥겔스는 결론적으로 여기서 민주주의에 대해 ’스스로 죽어가는‘, 또는 ’소멸한다‘고 이야기한다.”[14]
의심할 바 없이, 이를 통해 레닌은 국가 코뮤니즘 내의 민주주의를 의미한다. 러시아에서는 실제 그 반대로 나아갔지만, 그러한 발전 상황과는 별개로, 엥겔스의 다음 문장을 반복함으로써 반대하고자 한다.
“사람들의 정부는 사물의 관리, 그리고 생산과정의 지휘로 대체된다. 국가는 “철폐되지 않는다”. 그것은 소멸한다.”[15]
여기서 레닌의 이론은 스스로 모순됨이 명백하다.[16]
국가에 대한 레닌주의 이론의 모순
핵심은 국가에 대한 레닌주의 이론 내부의 모순을 드러내는 데 있다. 만약 프롤레타리아 국가와 민주주의의 소멸이 이뤄진다면, 누구도 동시에 사회를 정치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정부의 가장 엄격한 중심적 리더십 아래 있도록 강제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자본주의 아래의 부르주아 국가보다 더 큰 권력과 광범위한 역량으로 무장한 새로운 국가의 존재와 다름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가 그 권력을 특정 시점에 내려놓고, 이것이 생산과 관리를 위한 전체 중앙 기구들의 붕괴 없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을 사람은 오직 정치 신생아들뿐일 것이다. 반대로, 국가는 자신의 권력을 재확인하고 지금까지 존재해 왔던 어떤 사회들보다 더 큰 억압을 위한 도구로 성장할 것이다.
새로운 지배 카스트(계급)는 새로운 국가 코뮤니즘으로 진화한다. 노동자계급에서 올라온 지도자와 부르주아지의 탈주자로 구성되는데, 이들은 국가 코뮤니즘에 투신하고 중앙 관리를 차지한 이들이다. 이것이 오늘날 러시아에서 명백하게 드러난 것이다. 지금은 사라져가는 러시아 노동자의 소수만이 국유화된 생산의 관리 조직 안에서 지도적 지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경제를 새로 만들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공무원들과 지도자들을 차지할 필요가 있다. 코뮤니스트당으로 통합됨으로써 코뮤니스트로 정당화된 이 사람들은 유능한 노동자들 - 지도자들 - 과 함께 나라의 생산을 통제한다. 그들은 새로운 지배 카스트를 형성하고, 이미 지금 노동자들보다 훨씬 더 나은 물질적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그들의 지위 권력을 사용한다. 러시아 노동자들의 불만은, 심지어 “프라우다(Pravda)"와 같은 공식 신문상에서도 나타나는데, 관료들이 오직 자기 자신의 이해관계만을 걱정할 뿐이며, 노동자들의 너무나 뚜렷한 위기상황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해 준다. 그러므로 ”소비에트 부르주아지”라는 단어가 러시아에서 나왔다는 것은 별로 놀랄 일이 아니다.
국가 코뮤니즘은 코뮤니즘에서는 국가가 소멸한다는 주장과 모순되는 입장에 있다. 오직 둘 중 하나만이 가능하다: 국가 코뮤니즘, 다시 말해 중심적 조직 리더십과 국가에 의한 생산 관리가 이뤄지는 경우는 국가가 남아 있으며, 그 권력을 강화한다. 국가와 민주주의의 소멸의 경우에는, 그 대신 사회가 자유롭고 평등한 생산자들의 연합을 향해 나아가며, 억압적인 국가 권력은 불필요한 것이 된다. 그러나 이 경우 국가 생산을 주도하는 중앙 기관은 무너져야 한다.
국가 코뮤니스트로서의 레닌
이 새로운 억압적 기관이 러시아 국가 자본주의의 관행들로부터 비롯되었을 뿐만 아니라 레닌이 ”국가와 혁명“(1917)에서 그 한계를 이미 날카롭게 지적했다는 것을 명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지난 세기, 재치 있는 70대 독일의 사회-민주주의자는 우편 서비스를 사회주의 경제 시스템의 예시라 했다. 이것은 확실히 진실이다. 현재 우편 서비스는 국가-자본 독점의 연장선상에서 조직된 사업이다. 제국주의는 점차 모든 신뢰(trusts)를 유사한 형태, 과로하고 굶주리는 “평범한” 사람들을 지배하고 똑같은 부르주아 관료제를 가진 조직들로 변형시키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 관리의 작동방식은 이미 우리 손에 있다. 우리가 자본주의자들만 전복시키고, 무장한 노동자들의 철권으로 이 착취자들의 저항을 박살 내고, 그리고 근대 국가의 관료적 기구들을 때려 부수기만 한다면, 우리는 아주 멋지게 장비된 작동방식들, “기생충”으로부터 자유로워진, 통일된 노동자들이 기술자들, 십장, 그리고 회계사들을 고용하고 모든 “국가”의 일반 공무원들이 그러하듯 노동자의 임금으로 보수를 지급하며 잘 운영할 수 있는 작동방식을 갖게 될 것이다. 모든 신뢰(trusts)와 관련하여 즉시 수행 가능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업무가 있다. 이 일의 수행은 일하는 사람으로부터 착취를 없앨 것이다. 이 일은, 코뮨이 이미 실행하기 시작한 (특히 국가의 건설에서) 것에 관한 것이다.”
“우편 서비스와 같이 모든 경제를 조직하기 위해서는, 기술자들, 십장, 그리고 회계사들뿐만 아니라 모든 공무원들은 ”노동자의 임금“ 이상의 보수를 받을 수 없고, 모두 무장한 프롤레타리아트의 통제도 지도 아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당장의 우리 목표이다. 이것이 의회주의의 폐지와 대의 기구의 보존을 실현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노동하는 계급들에서 이러한 기관들의 부르주아지 변절자들을 제거하는 방법이다.”[17]
여기서 레닌은 평이하게 국가 코뮤니즘에서의 중심적 리더십과 생산관리는 우편 서비스의 모델에 근거하여, 또는, 국가 자본 독점의 방식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기술자들, 십장, 회계사들뿐만 아니라 모든 공무원들”은 이제 국가의 공무원이 되고, 국가의 생산 독점에서 이 공무원들은 전체 생산을 통제하는 이들이다. “일반적인 공공 기업의 작동방식은 자본주의 국가 독점의 예시에 따라 조직된다.”[18]는 것은 사실 국가 코뮤니즘에 대한 특징적인 서술이며, 레닌이 이를 발전시킨 것이다.
여기서 엥겔스(그리고 다른 곳에서 맑스)가 이야기한 바를 지적할 필요가 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국가 권력을 쟁취하고 처음에는 생산 수단을 국가 소유로 전환시킨다”[19]. 얼핏 보면 그는 레닌과 같은 말을 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는 생산 수단은 “처음에는” 국가 소유로 이전될 것이라고 이야기하며, 나아가 생산수단은 사회의 이름으로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것이 동시에 프롤레타리아 국가의 “마지막 독립적 행동”을 구성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생산수단의 소유가 또 다른 행동을 시작하는 것일 뿐이며, 우리가 맑스와 엥겔스의 가르침을 거꾸로 뒤집지 않는 한, 또 다른 행동이란 “자유롭고 평등한 생산자들의 연합”일 수밖에 없다. 만약 생산수단을 프롤레타리아 국가가 소유하는 것이 이러한 연합의 형성을 자극한다면, “업무 관리”와 “생산과정의 관리”는 발전할 것이며, 그동안 자유롭게 평등한 생산자들의 연합된 사회가 자유로운 경제적 기반 위에서 자신의 삶을 정하게 될 것이다. 오직 이 연합이 스스로 확장하는 정도로만 국가의 억압적 힘이 잉여가 되고, 국가는 소멸할 수 있고, 그렇게 될 것이다. 동시에, 이러한 연합을 만들어내는 것, 그래서 국가의 소멸을 이루는 것이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유일한 책무다. 오직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맑스와 엥겔스의 글을 이해할 수 있다. 맑스와 엥겔스는 국가가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것을 “일반적인 공공 기업의 작동방식, 자본주의 국가 독점의 예시에 따라 조직된 것”으로 제시하지 않기 위해 조심했다.
그러한 관점은 오직 “한 재치 있는 사회 민주주의자”의 산물일 뿐이며, 맑스와 엥겔스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여기서 레닌은 “재치 있는 사회 민주주의자”가 맑스주의 원칙들을 설명하는 방식을 가져다 쓰면서, 필연적으로 사회주의 사회에 대한 엄격하고 기계적인 개념으로, 스스로 국가 코뮤니즘임을 보여주는 개념을 받아들였다. 생산을 독점한 국가는 여기서 사회를 대표하는데, 이는 사회 민주주의 이론에서 이야기하는 국유화(nationalization)와 조금의 차이도 없다. (계속)
<주>
[1] 이 번역은 1932년, 국제 코뮤니스트 그룹(Group(s) of International Communists)이 네덜란드어 팸플릿으로 출간한 것이다. (서지 데이터는 이 판 편집자의 글에서 찾을 수 있다)
[2] 1927년 글에서는 “경제를 새로운, 공동의(코뮤니스트적) 원칙에 따라 전환하는 것”으로 작성되어 있다.
[3] 1927년 글에서는 “비공식적인 맑스주의자”로 작성되어 있다.
[4] 1927년 글에서는 이와 같이 계속된다: “이와 같은 부르주아화된 사회-민주주의는 (노동자들이 보편적 참정권으로 스스로를 지배하는) 부르주아 국가에 의한 자본주의 경제의 사회주의화까지 마음속에 그려보는 데까지 나아간다. 이것은 지적할 필요가 있다: 이론적으로는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으나, 현실은 다르다.
[5] 1927년 글에서는 “국가는 과거의 사적 자본가들을 대체했고,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력을 이 국가에 판매한다. 그동안 국가는 임금을 고정시키고, 지배하는데, 오직 자유 시장과 경쟁의 한계 내에서만 그러하다.”
[6] 1917년 글에서는, “거만하게도 노동자 농민 국가로 불렸다”로 작성되어 있다.
[7] “이들은 사적 자본주의에서의...”에서 “유례없이 가혹한 착취...”까지의 구절은 1932년 판에 추가되었다.
[8] 레닌, “국가와 혁명”(챕터1: 계급 사회와 국가, 3장, 국가: 억압된 계급을 착취하는 도구):
https://www.marxists.org/archive/lenin/works/1917/staterev/ch01.htm
1927년 글에서 헴펠의 원문은 “우리는 레닌, ‘Lenin, ‘Staat und Revolution’, Aktions-
Verlag, Berlin-Wilmersdorf, 1918. 에서 인용했다. 쪽수는 판마다 다를 수 있다. 엥겔스의 인용은 다음과 같은 제목이 있다: ‘Der Ursprung der Familie, des Privateigentums und des Staats’, Verlag Dietz Nachf., Berlin
[편집자 주: 1927년 글에서는 레닌 이후 엥겔스의 인용 두 개가 더 있다. 그들은 ‘과학에서의 유진 듀링의 혁명 [반-듀링]’에 있던 것인데, 이 판에서는 부록에 있다 : 레닌이 엥겔스로부터 인용한 두 인용문]
[9] 1927년 글에서는 ”엥겔스는 생산수단은 국가의 재산이 되어야 한다고 명확하게 언급했다. 국가는 사회를 대신하여 그것을 소유한다. 그러므로 레닌은 이 문장에 기반을 두어서도 그의 이론을 정립했다.“(”-여서도“는 1932년 팸플릿에서는 빠졌다)
[10] 1927년 글에서는 ”그것은 광범위한 대중을 지배하는 것 관한 것이다“로 되어있다(강조인 “실제로”는 빠져있다.
[11] 1927년 글에서는, ““자유로운 생산자들”(노동자들)에 의한 뒤섞임은 이 기관 내에서는 불가능하고, 통합된 중심적 리더십과는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12] 이 문장은 1927년 글에서는 공식화되어 있다. “중앙 정부에 대한 소비에트 선거는 이 국가가 다음과 같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안전망을 보장해야 한다. 국가는 생산수단을 “사회의 이름으로” 소유해야 하고 - 이것은 엥겔스, 그리고 또한 레닌이 요구한 것이다 - , 실제로 사회의 이름으로 국가를 경영하고 생산과정을 지도하며, 국가는 이 혁명의 과정에서 사라지도록 해야 한다. 전체 경제는 중심에서 통합되어 있고, 그로부터 지시를 받으며, 그에 의해 지배된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래서 다른 공동체 현장에서 이뤄지는 소비에트 선거는 경제의 결정적인 설계에 영향력이 전혀 없다. 이것은 사회가 그 자신의 영향력을 마음대로 생산의 지도자들의 중심적 최고위층에 행사할 수 있는 결정적인 것이다. 이 경우, 정부가 실제 “사회의 이름으로” 움직이도록 만들기 위해 그렇다.
[13] 1927년 글에서는 “우리는 여기서 그것이 가능한지, 어느 정도로 가능한지에 대해 검증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이 정부 또는 중심적 리더십은 소멸할 수 없다는 결론을 이끌어낸다”고 작성되어 있다.
[14]
https://www.marxists.org/archive/lenin/works/1917/staterev/ch01.htm - s4
[15]
https://www.marxists.org/archive/lenin/works/1917/staterev/ch01.htm – s4.
[16] 1927년 글의 처음 세 부분은 여기서 끝난다.
[17]
https://www.marxists.org/archive/lenin/works/1917/staterev/ch03.htm.
[18] GIC는 아마도 호르터(Gorter)의 ‘국가와 혁명’ 네덜란드 번역판을 인용한 것이다.
[19]
https://www.marxists.org/archive/marx/works/1877/anti-duhring/ch24.htm.
F.K. 번역(원문), 2016년 5월 25일
편집 Jac, J., 2017년 7월 26일 : 2017년 10월 10일
최종 수정 : 2017년 12월 22일
번역(한국어) : 국제코뮤니스트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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