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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주의에 관한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 공개회의 : 대차대조표

2024년 1월부터 3월에 걸쳐,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동지들이 (맨체스터, 런던, 버밍엄에서) 세 번째 공개회의를 진행했는데, (NWBCW 리버풀 공개회의, 셰필드의 급진적 도서 박람회) 두 행사에서 발표회가 있었다. 세계의 심각한 상황을 인식하여, 이번 회의 토론의 각 주제는 전쟁의 촉발, 국제주의 의의, 마지막으로 혁명 과업에 중점을 두었다.
발표회
이번 회의를 위해 여러 가지 발표회가 마련되었으며, 각각 조금씩 다른 각도에서 논점을 강조하였다. 그 모두를 재현하는 대신, 지금부터 우리가 제시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본질은 다음으로 요약될 수 있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범세계적 분쟁을 내포한 주요한 단계로 요약된다. 다른 전쟁과 마찬가지로, 주된 희생자들은(군복을 입었든, 시민이든) 노동자였다. 추측으로는, 오십 만여 명의 사망자와 사상자를 내고, 수백만 명이 터전을 잃고 길거리로 내몰렸으며, 전쟁과 징병을 피해 도망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몇 달 동안 전 세계 언론에서는 2023년 10월 7일에 발발한 가자지구의 전쟁이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덮어버렸으며, 현재 하마스의 공격으로 이스라엘인과 일부 외국인이 약 1,200명 사망한 가운데 팔레스타인 측에서는 어린이 1만여 명을 포함해 3만 명 이상이 사망한 상태이다.
두 전쟁 모두, 수십 년에 걸친 끝이 보이지 않는 분쟁의 결과다. 평화는 있을 수 없고, 탈진해서야 잠깐 멈출 뿐이며, 훗날 재개될 분쟁을 위한 준비란 있을 수 없다.
이러한 전쟁은 체제 위기의 징후다. 전후 거품이 꺼지고 난 후, 50여 년 동안 지배계급은 성장률 하락을 반전시키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시도해왔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들은 전 세계 노동자 착취를 확대했고, 생산을 저임금 경제로 옮겼으며, 금융 기관의 규제를 완화하여 무모한 투기를 조장하고, 미래 세대에게 빚더미를 떠안겼다.
그 어느 것도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이제 경쟁하는 지배 계급은 그들의 경쟁상대로부터 이윤을 얻어내기 위해 더욱 직접적인 방법을 취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 결과 경쟁이 격화되면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뉴스에 나오는 전쟁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전쟁일 수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제국주의 경쟁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다.
중국은(인민공화국 건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2049년까지 최대 경제 권력을 거머쥐기 위해 경쟁하고 있으며, 반대로 미국은 전쟁을 통하지 않고서는 이전의 우월한 입지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가자, 우크라이나와 마찬가지로 이곳 역시 타협할 여지가 없다. 최근 미국은 중국을 자기 주요 경쟁국으로 여긴다는 것을 비밀스럽게 여기지 않았다. 심지어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논의할 때조차도 미국은 러시아만큼이나 중국을 공격한다. 그리고 중국은 우크라이나에서 평화 조정자 역할을 강구 하면서도, 여전히 반항적인 지방으로 간주하는 대만에 대한 미국의 '간섭'을 비난한다.
세계 속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전략적 분열을 심화했다. 35년여 동안 미국과 그 동맹국은 자신의 적국, 즉 러시아, 중국, 이란에 제재를 가해왔다. 이로써 이들 세 국가는 편의상 반미동맹으로 결속했으며, 지난 두 해 동안 더욱 밀접해졌다.
한편으로 미국은 독일 같은 나토 회원국들을 상대로 부당한 제재를 가할 수 있었다. 또 헝가리와 터키 같은 나토 회원국이 시간을 끌었음에도, 전쟁은 핀란드와 스웨덴이 나토에 가입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 외의 국가들은 불편하게 제국주의적으로 얽히는 것을 피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했다. 아프리카나 남미의 어떤 국가도 서방의 제재 체제에 동참하지 않았으며,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이스라엘의 대(對)가자 전쟁에 비난을 퍼붓는 데 앞장섰다. 미국의 우월성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개입으로 인한 참담한 결과로 타격을 입었다. 인도는 중동에서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 중 하나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마찬가지로 러시아의 석유를 구매함으로써 러시아를 돕고 있다.
범세계적 무기 경쟁이 시작되었다. 2022년에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연간 전 세계 군비 지출이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20세기 두 차례의 세계대전 모두 비슷한 군비 경쟁이 선행되었다.
또한, 식량과 에너지 안보를 위한 노력과 필수 원자재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도 치열해졌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은 불안정성을 높이는 동시에 자본주의가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없애고 있다.
최근 몇 개 월간 상황은 상당히 악화했다. 가자의 학살에는 미국 및 나토 국가들이 영토 내(內) 주둔 군사의 증원(심지어 중국에서도 전함을 보냈다)이 동반되었다.
전쟁은 예멘으로 확산했다. 비록 보편적으로 인정되지는 않지만, 후티 민병대 정부는 사실상 이란의 지원을 받고 있다. 후티는 팔레스타인 지원 아래, 홍해의 선박을 공격했으며, 이스라엘에 미사일, 드론 공격까지 벌였다. 이에 대응하여, 미국과 영국은 예멘을 폭격했다. 단기적으로 홍해와 수에즈 운하가 폐쇄되면서 상업용 선박이 덜 위험한 항로를 찾게 되면 유럽에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것으로 보이며, 이는 당연히 노동계급에 가장 큰 타격을 줄 것이다.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영국에서도 징병제를 다시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으며, 지난 수십 년 동안 징병제를 폐지한 독일과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징병제 재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물려 퍼지고 있다.
그러나 노동계급은 자본가계급의 이익을 위해 서로 죽고 죽이는 데 관심이 없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모두, 민족주의 흐름에 맞서는 단체가 있었다. 그들은 반전 투쟁이 사회주의로 향하는 투쟁이라는 기치를 내세우고 끝까지 맞서 싸웠다. 그러한 정신으로, 우리 정치적 대선배들은 1943년 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PCInt)을 설립, 노동자에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가 어떤 것이든 받아들여, 전쟁을 막고, 또 막으라.”라고 촉구했다.
전쟁은 일단 발발하면, 그것에 반대하기란 힘든 일이다. 특히 자신이 직접 겪는다면 더욱 그러하다. 때때로 생존하는 것조차 힘들다. 우리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가자와 이스라엘에서, 벌써 전쟁을 거부하고, 비난하고, 폐기 처분한 이들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종류의 거부권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야 함을 지지하면서도, 평화주의와 자유주의, 인도주의에 근거한 개인적 행위들로는 충분치 않다는 점을 주장해야 한다. 전쟁 희생자들에 대한 동정심과 개별적 행위들이 아무리 영웅적이고, 자기희생적이고, 위험을 감수한 것이라 할지라도, 전쟁의 원인은 없어지지 않는다. IDF(이스라엘 방위군)에 징집되기를 거부한 이유로 감옥으로 보내진 이스라엘 청년의 사례, “대량학살에 개입되기를 거부”하면서 저항하며 자살한 미국인 이등병 사례로는 전쟁 체제를 멈출 수 없다.
노동자들은 국가적 원인 모두를 거부해야 한다. 그들은 우리를 억압자들과 엮고, 우리 계급의 동지들에서 분리하기 위해 존재한다. 우리는 반드시 국가, 인종, 종교가 아닌 계급에 근거하여 통합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ICT)의 일부로서 우리는 노동계급에 혁명적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즉, 전 세계적으로 계급이 겪고 있는 공격을 자본주의의 지속적인 위기와 연결하고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항하는 세계혁명이라는 혁명적 관점을 제시하기 위해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NWBCW)으로' 위원회의 설립을 지지했다.
토론
전반적으로 각각 소그룹 논의 중에 토론이 자유롭게 형성되었으며, 우리의 관점은 토론 중 수용되었다. 참석자는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국제코뮤니스트당(ICP), 아나키스트코뮤니스트모임(ACG), 혁명적아나키스트모임(RAG), 연대연합(SF), 영국사회당(SPGB), 늙은두더지모임(OMC)의 동지들과 그 외에 현존하는 모든 조직뿐만 아니라 여러 개인이었다. 아나콤네트워크(ACN)에서는 참석하지 못해 유감이라는 소식을 전했다. 당연히 토론에서는 특정 의견이 분분했는데, 이번에 그중 일부는-논의의 확장을 시사하는 까닭에-집중할 가치가 있다.
맨체스터에서의 주된 이견은 ICC 동지들에게서 나왔다. 그들은 본 발표에 대해서 동의하면서도(특정 용어에 대해서만 질문을 던졌을 뿐이다.), NWBCW의 주장에는 반대했다. 오직 코뮤니스트좌파만이 진정한 국제주의를 상징하며, ‘좌파, 아나키스트’와 함께 위원회에 참여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주장이 언급되었다. 우리는 물론, 전쟁에 직면했을 때 혁명적으로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다른 경향 내에서 발생한 혼란이 증명하듯, 우리가 속한 경향인 코뮤니스트좌파가 이 문제에 가장 분명한 견해를 지닌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코뮤니스트좌파만이 국제주의를 독점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에 코뮤니스트좌파의 단독 독점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와 비슷한 결론에 도달한 코뮤니스트좌파 외부의 다양한 그룹과 개인들도 이를 증명하고 있다.
NWBCW 위원회는 이를 인식하고 세계 상황의 심각성에 대응하여 진정한 국제주의자들 모두 더 넓은 노동계급에 대안적인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단순히 성명서에 서명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경우 계급투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함으로써) 함께 노력할 것을 촉구한다.
위원회에서 ICC의 개입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지만, 우리가 자체 간행물에서 밝힌 것처럼 표면적으로 '국제주의자'라는 선언 뒤에는 전쟁 중인 진영 중 하나에 대한 지지나 기껏해야 '선택적(파트타임) 국제주의'가 숨어 있기 때문에 '코뮤니스트'든 '아나키스트'든 실제로는 '좌파'를 배제할 목적이 있었다.
리버풀에서의 한 노동조합 활동가가 제시한 이견의 핵심은, 본 발표에 대해서는 원칙상 동의하면서도, 그런데도 우리는, 진정한 노동계급 활동의 부재 속에서, ‘덜 나쁜 것’을 고르도록 강요당했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입장은 방어주의로 해석되거나, 혹은 로자 룩셈부르크가 지적했듯 “모든 국가의 프롤레타리아들은 평화의 시간에는 단결하고, 전쟁에서는 서로를 죽인다.” 혁명가 과업은 국제주의자 메시지가 당장은 아무리 인기가 없더라도, 그것을 보전하는 것이다. 전쟁이 노동계급에 사상자를 내면서, 결국 그들은 그토록 비참함과 유혈낭자(流血狼藉)를 양산한 자본주의 체제에 대안을 찾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일련의 사건에 영향을 행사할 수 있는 진정한 노동계급 활동의 부재는 당연히 우리가 직면한 최대의 걸림돌이다. - 그러나 코앞의 전쟁에서 국제주의를 포기하는 것은, 그러한 활동을 개시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과도기적 요구’로서 자결(自決) 개념을 옹호한 영국의 젊은 학생 커플이 있었다. (아마도 트로츠키주의 배경에서 온 듯하다.)역사를 통틀어 우리는 자결(自決)에 대한 국가적 움직임의 수많은 사례를 보아왔다. 어떤 것은 성공적이었으나 어떤 것은 그렇지 못했다. 그것의 여파는 노동계급 활동을 강화하지도, 민족주의 독약을 사라지게 하지도 않았다. 사실 그것은 종종 정확히 반대로 흘러가, 국제주의가 그룹이 활동하기에 매우 어려운 환경을 만들어내곤 했다. 종국에는 모든 “과도기적 요구”와 마찬가지로, 심지어는 자결(自決)에 대한 비판적 지지조차도 그것을 실행하기 위한 시도로서 자본가 분파의 지지를 의미한다. 또한, 참석한 ICC는 블록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또 가까운 시일에 전쟁이 발발할 리 없으며, ‘패배하지 않은’ 유럽의 노동계급은 전쟁에 동화될 리 없다는 이유로 우리의 전망은 틀린 것이며 거의 아나키스트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ICC의 이러한 장황한 주장은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발발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 모든 도피에도 수십만의 노동자들이(징병제와 전쟁 경제를 통틀어) 투쟁을 지속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더욱이 늙은두더지집단(Old Moles Collective)의 한 동지는, 전쟁이 발발하는 데에 제2차 세계대전의 초반에 발생했던 것처럼 블록이 완전하게 형성될 필요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윤율 하락이 전쟁의 동인(動因) 이면에 감추어진 동력인가에 대해 몇 가지 의문 사항들이 있기는 했지만, 국제주의와 관련하여 버밍엄에서 우리가 직면한 의견 불일치는 없었다. 그러나 경제적 분석에 대한 우리의 주장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 비논리성-특정한 세계적 지도자의 광기 등등.-의 결과는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한편, 자본주의 체제의 활동 그 자체는 전반적 충돌의 선결 조건이다. 이것은 개별적 자본가들 모두가 비밀스럽게 전쟁을 바라고 그리하여 그다음 경제 부흥(아마도 그렇게 될 것이다!)을 가져오기를 바란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낮은 이윤율은 격렬한 경쟁을 부추긴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절박한 군사적 조치를 할 가능성이 더욱 크다. 발표에 내재한 기저 질문의 다른 측면은 세계 전쟁이 실제로 어떠할 것인지에 관한 것과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관한 것이다. 전쟁의 동인 둘 혹은 그 이상의 거대한 권력 사이에 직접적인 충돌을 야기할 것인가, 혹은 인간애의 결과가 어떤 식으로든 끔찍할 것이기에, 전 지구적으로 지엽적인 충돌 지속이 계속되는 것을 우리가 보게 될 것인가는 부차적인 문제라는 점을 지적했다.
셰필드에서 우리는 한 교사가 작성한 기고문에 대해 들었다.-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우리의 처음 입장을 새롭게 되새기면서, 전쟁이 지속할수록 한쪽 혹은 다른 한쪽의 승리(이 경우, 그들은 우크라이나의 승리가 ‘덜 나쁜 것’으로 여겨진다.)가 아닌 다른 결과의 가능성을 상상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진다. 이 참가자는 그들 노동 현장에서의 절망적 사례를 이야기했다. 그들이 가르치는 어떤 우크라이나 아이들은 이제 서로 인사할 때, “슬라바 우크라이니”라는 민족주의적 경례를 사용한다. 우리는 반복하여 언급할 수밖에 없다. 국제주의가 인정받지 못할 때, 국제주의를 저버리는 것은 우리가 전쟁을 진정으로 종식할 수 있는 다른 사회에 다가가지 못하도록 한다. 국제주의자들은 국제주의자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을 이야기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현재의 체제가 해결점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하는 다른 노동자들을 끌어낼 수 있는 기준점이 없을 것이다.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뿌리는 소련의 붕괴뿐만 아니라 러시아 제국이 종식된 날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결과적으로는 임시적 안정이 찾아올지는 모르겠으나, 분쟁이 거기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장을 열 뿐이다. 인류를 민족국가로 분열시키는 것 – 이윤, 시장, 자원, 영토 따위를 위해 경쟁하는 – 전쟁을 공고히 하며, 수백만 명의 인류가 고통받는 와중에도 민족주의 번창이 지속하도록 하는 것 –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 틀이다.
전망
단기적으로 우리는 모든 곳의 노동자들이 국가와 나라를 위해 더욱 많은 희생을 치르도록 요구될 것이라는 점을 예상할 수 있다. 지금까지 발생했던 저항은 대부분 조합 단체의 힘 내부에 존재했으며, 그것은 노동자 노동에 의문을 던지지 않고, 그것을 판매하고 협상할 뿐이다. 현재에 휘둘리는 모든 국가의 깃발 사이에서 국제주의자들은 현재를 거슬러 올라가는 이들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벌어지고 있는 파업과 저항은 적어도 국제주의자들이 그 안에서 함께 어우러질 연못을 제공한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지난 몇 해에 걸쳐 새로운 세대 노동자들이 국제주의자 결론을 도출해 낸 것을 우리는 보아왔다. - 수십 년간에 걸친 계급의 후퇴에도, 희망의 횃불이 전해져 내려온다. 만약 그것이 아니라면, 이러한 일련의 모임 경험, 새로운 접근의 등장, 그리고 무엇보다도 새로운 접촉이 생겨나고 오래된 접촉이 다시 떠오르는 일련의 회의 경험은 지금이 절망하거나 고립된 채로 후퇴할 때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2024년 3월 18일
<출처>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4-03-18/cwo-public-meetings-on-internationalism-a-balance-sh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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