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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05/08
    막내처남
    지리산
  2. 2005/05/08
    걱정
    지리산
  3. 2005/05/08
    나 어릴적
    지리산
  4. 2005/05/08
    스리랑카공동체
    지리산
  5. 2005/05/08
    인도네시아 청년 죠니
    지리산
  6. 2005/05/08
    어제 필봉산
    지리산
  7. 2005/05/07
    요즘
    지리산
  8. 2005/05/06
    초록이녀석
    지리산
  9. 2005/05/06
    박꽃님
    지리산
  10. 2005/05/06
    산다는 것
    지리산

막내처남

내놈 4년전까지 서른넷둔 노총각 막내처남을 두었었다 그때까지 행사장을 쫓아다니며 남성복 장사를 하는 처남은 그야말로 장가못간 천덕꾸러기였던게다 벌써 머리중간은 머리카락을 셀수 있을 정도로 빠지고 있었고 몸닦기를 싫어해 우리집에만 와도 발냄새를 비롯 홀아비 티를 내는지 술,담배냄새가 온몸에 쩔어있어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그런데 처남이 녀인네 하나를 불쑥 데리고 온것이다 1미터 58센티는 될까 작달막한 키에 동근얼굴에 유난히 큰눈을 내리깔은 모습은 고르지못한 이에 주근깨의 얼굴이었지만 모질지못한 착한 심성의 소유자인것이 보이는것 같았다 처남의 말로는 행사장에 아르바이트를 나와 만난 67년 양띠처자라 했다 결혼 6개월만에 이혼한 혼자사는 처자라했다 집사람과 나는 조심스럽긴 했지만 나이 조금더 먹으면 상처가 있는 처자도 얻기 힘들다는 생각에 서로 좋으면 마다 할것 없다고 말했다 덕담은 생략한체 좋은면 살라고 한것이다 그해겨울 처남은 그처자와 결혼을 했다 그처자가 막내처남댁이 된것이다 그날 처남은 뭐 그리도 좋은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내놈 속으로 "이구 이놈아 변변치 몬허게 뭐 그렇게 좋으냐" 씨브렁댔다 밖으로 나돌며 장사를 하는 놈이 처남댁과 볼것을 다보았을텐데 어린아이 처럼 좋아하는 것이었다 자기집을 갖는 것이 좋았나보다 식을 올리고 장사도 안가고 열흘을 월세방을 꾸몄다니 늦장가에 전세방 얻을 돈이 없어 오백에 이십오만원 하는 월세방을 얻은 것이다 월세방이라도 자신의 가정을 꾸민다는 것이 좋긴 좋았던 모양이다 장사도 때려치고 처남은 정착해야 한다고 싱크대 설치하는 이를 따라나서 직업전환도 하고 그런데 문제가 생겼었다 그렇게 일년이 지나고, 이년이 다되었는데도 아기가 없었던 것이다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보니 처남의 정자수가 아주 적다는 것이다 있는 것도 활동이 정상적이지 못하고 이놈이 장사 한답시고 거처없이 떠돌며 별별것 조심안하고 다 먹을때 면박을 준 기억이 났다 "못먹어서 병난다며... " 음식조심 않한것이 원인이지 않았나 하는 걱정이 있었다 그러나 심성착한 처남댁은 아이 못낳는 것이 자신의 문제인냥 아이 이야기만 나오면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이구 저 착한녀인네에게 누가 돌질을 하였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길정도로 순박한 녀인네였던 것이다 그래서 생각한것이 업동이였다 2년전 이렇게, 저렇게 아는 사람의 소개로 여자아이를 하나 데려다 키운것이다 이름은 내놈이가 "다솜"이라 지어주고 재작년 12월 돌잔치를 하는데 부산에서 올라 오시는 처남의 장모를 모시게 되었다 일찍 상처하시어 90이 넘으신 시어머니를 모시고 두분이 사신다는 그리 늙어보이지 않는 처남댁 친정어머니의 등에는 히말라야 셀파들이나 짊어질 큰배낭에 보였고 양쪽 손에는 큰보따리가 들려져 있지 않으신가 택배로 미리 보내시고 떡만 싸가지고 오실수 있었을텐데 그 배낭을 내등에 옮겨 짊어지니 과장없이 식은땀이 주르르 흐를 정도로 무거웠었다 처남집에와 바리바리 쌓오신 보따리와 배낭을 풀어 놓는데 말린 생선에, 밑반찬에, 부산어묵에, 손녀딸년 돐떡에 우리 세식구가 먹어도 한달은 먹을듯한 음식을 싸온 것이었다 딸가진 죄가 저렇게 크겠구나 하는 맘에 가슴이 저려오는 것이었다 더구나 어떤 연고로 큰따님 두번이나 결혼식을 시켰는데 허물없이 살며 속안썩이는 사위에게는 얼마나 고마우시면 저런 고생을 마다않하실까 하고 그런것도 있겠지만 딸은 엄마를 닮는다는데 처남댁의 화를 낼줄 모르는 온화한 품성을 보면 친정어머니를 보는듯 했다 이번 설 이틀전 막내처남이 미리 부산처가댁을 다녀온다며 우리집을 들렀다 매번 그러시는지 모르겠지만 부산 안사돈 께서는 사돈댁 몫도 챙기신단다 처남네 것과는 별도로 한보따리를 싸신것이었다 내놈 장모님 품성도 만만치 않아 장가못간 막내아들 거둔 착한며느리가 고마워 막내아들 집으로 김치담아 나르는 것은 예사고 업동이 티안나게 손녀딸 빨고, 쓰다듬고 얼마나 예뻐하시는지 할머니의 따뜻한 품성이 옮겨와 언니, 오빠들은 다솜이녀석이 사촌동생이 아닌 친동생으로 챙기고 두돐이 지난 다솜이녀석은 벌써 공주님으로 자리하며 재롱을 떨고있다 두분 사돈간의 말없는 사랑의 교감을 보며 깊은 산속의 맑은샘을 보는듯하다 두분의 마음이 그렇게 맑고 깨끗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사람들의 향기라고 말하고 싶은게다 이번 설날은 우리사람들의 아름다운 향기를 고맙게도 두분 어른들에게서 맡을수 있게 된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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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비라도 올라치면 산등성이 겨우 의지하고 사는 사람들이 더 어려워지고 바람이라도 함께 불라치면 비닐떼기로 겨우 지붕 가리며 사는 사람들 더 어려워지고 걱정에 걱정을 더 하는데 언제나 그칠는지 비 그만 와 달라고 가슴만 쓸어 내리니 내일 즈음이면 그칠라나 엊그제만 하여도 더위에 지쳐 헉헉대며 비를 그렇게 그리워했건만 비가와도 어지간히 와야지 이바구니 밥 세끼 겨우 챙겨놓고 하늘이나 가리고 누울자리 겨우 마련하여 하루를 아둥바둥하며 가난을 지고 사는 사람들은 힘들기만 한데 내일 즈음이면 그만 올라나 그러면 비바람에 힘들어하며 마음졸이는 내도 마음이 좀 풀릴텐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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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어릴적

나 어릴적 ... 10시를 넘으면 아버지 불끄고 잠자라는 소리에 혹시라도 라디오소리 새어 나갈가 보아서 이불 뒤집어 쓰고 라디오 다이얼을 동아방송에 맞추었다 성우 김 세원님의 밤의 플래트 홈의 시그날 인 폴 모리아의 경음악"Isadora"속에서 감미로운 세상이야기도 들었다 그렇게 열시를 넘기면서 윤 형주님의 "0시에 다이얼"을 기다리면 프랭크 폴셀의 " in the year 2525" 이 가슴벅차게 나를 자극하고 혹시라도 밥 딜런의 "Knock on havens door"이라도 나올라치면 어데 천국을 어떻게 찾아갈까 하고 마음도 졸이면서 다이얼을 잠시도 고정시키지 못하고 조금은 무거운 음악을 듣고싶어서 다이얼을 조금 옮겨 기독교 방송에 임 문일님의 "꿈과 음악사이"를 켜놓고 킹 크림슨을 기다려 보고 블랙 사베스도 기다리면서 젊은 밤을 달랬는데 혹시라도 켄사스의 "Dust in the wind"라도 나올라치면 왜 그리 가슴이 울렁였는지 다시 우측으로 다이얼을 옮겨 임 국희님의 "별이 빛나는 밤"을 틀으면 어디 우주의 아름다운 별여행으로 안내 하는 듯한 프랑크 폴셀의 "Merci Cheri"가 나를 편안히 맞았고 유신이라는 엄혹한 그 시대에 살아온 우리가 월남전에서 전해전 비둘기 발자욱을 그려진 평화를 상징한 peace mark를 청바지 자락에 그려놓고 왜 비둘기 발자욱이 그 시대를 상징 햇는지 보다도 왜 존 바이에즈와 밥 딜런 그리고 존 레논의 노래속에서 월남전을 반대했는지를 느낌으로 받아들인 아주 감성적인 소년이었으니 돈 메클린의 울림이 각별한 "Vecent"를 듣고 메라니 사프카의 애절한 "Ruby tuesday"를 듣고 산타나의 "Sambapaty"를 에게를 여행하게 하는 듣한 감정으로 들으면서 이 때에는 내게 음악이 있어 살아있는 것을 실감한 어쩌면 음악에는 깊은 이해가 있었던 것이라 생각도 해본다 그 때는 말이지 김 민기가 내게 정말 특별하기도 했구 김 민기의 "친구" 를 들으면서 뭉클거리는 마음을 깡통이라는 친구녀석과 즐겨부르면서 한 대수의 "고무신"을 들으면서 우리가 사는 시대가 아프다는 것을 어렴풋이 감지한 고등학교 그 때의 조금은 예민한 감성을 가진 나인데 그 때의 그 예민한 감성을 자극한 음악이 지금의 아주 감성적인 나를 있게 한듯도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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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공동체

어제는 오산근교에서 일하는 스리랑카분 들을 공동체로 묶어주는 날이었습니다 얼굴은 검지만 키는 크고 핸섬하기만 한 그 들은 인도대륙 아래에 남한정도의 크기에 인도양에 위치한 섬나라로 70년대 중반까지 실론이란 나라로 불리어 지기도 했지요 인도, 파크스탄과 같이 1948년 이전까지는 영국의 제국주의정책에 100여년을 영국의 식민지로 있어온 까닭에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기도 하구요 문화적인 요소도 식민지의 잔재가 남아 있어 그들이 즐기는 운동도 영국연방국가 들이 즐기는 야구와 비슷한 클리켓이란 운동이기도 하지요 83년대 들어서는 48년 영국으로의 해방이후에 싱글리족과 타밀족의 민족 문제가 내전으로 번져 수많은 사상자를 나은 분쟁의 지역이기도 합니다 넉 달전 망포리에 있는 회사가 이사를 하면서 일자리를 줄이는 바람에 실업자가 되고 일한 월급도 받지 못한 헤르뜨란 청년이 상담을 청해와 일자리도 찾아주고 월급도 받아준 계기가 헤르뜨에게는 신뢰로 다가갔는지 매주 일요일이면 친구들을 데려와서 밥도 같이 먹고 인터넷도 가르치면서 마음을 나누고 오산근교에 사는 스리랑카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살아갈 공동체란 틀을 만들 것을 제안 한 것이 오늘 25명이 모여서 스리랑카공동체구성이 성사가 된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사회적인 약자로 존재하는 이주노동자들 자신의 나라에선 인테리 교육을 받았어도 경제활동을 할 근거가 부족하여서 일자리를 찾아서 코리아를 찾은 그 이 들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것은 많지가 않습니다 지난 해 9월 28일 개소한 오산의 이주노동자센터 매월 첫 번째 일요일 한번의 무료진료 공장에서 한국말 못 알아듣는다는 구박을 면해주기 위한 한글교실 이제 전 세계에 어느 구석에서도 필요할 인터넷 교육 생일잔치라도 함께 하고 어려운 일은 함께 논의하여 해결 할 수 있는 나라별 공동체구성 자칫 그 이들에게 차별화된 인권의 적용이 있다면 평등한 국제 인권 법을 들어 그 이들이 소외되지 않게 상담을 통해 해결하는 일 문화적인 이질감을 해소 해주기 위해서 우리나라의 민중문화를 공연이나 체험을 통해 접목시켜 주는 일 우리나라에서 부부로 맺어지어서 아이를 낳았는데 온종일 일을 해야 하는 엄마, 아빠를 위해서 육아방을 꾸리는 일 일자리를 찾아 오산에 온 이들을 위한 쉼터 운영 등등등 쉽지는 않습니다 온통 어려움 뿐 입니다 사람들을 챙기는 일이 모두다 그렇듯이 말이지요 순박하기만 한 스리랑카 청년들의 오산지역공동체 속에서 낯설기만 한 이국 땅 코리아의 오산이란 곳에서 자신의 외로움도 그리움도 공장의 일 속에 어려움도 해소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봅니다 그 들도 우리와 똑 같이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우리도 그 들과 똑 같이 먼 이국 땅에서 노동자로 일한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들은 언어와 얼굴색만 틀리지 우리와 똑같이 생각하고 일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가지고 있는 행복을 나누어 가지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그 들의 공동체 탄생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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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청년 죠니

지난주 일욜날 늦은 아홉시 즈음이 넘었는데 인도네시아 스물 여덟먹은 청년 죠니에게서 폰이 왔다 "미스터 지 바뻐요? 지금 어디예요???" 이궁 녀석 무슨 일이 있나보다 하고는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아직도 한국말이 서투른 녀석은 여자친구 사바티니 이름만 데고 나머지 말은 통 알아들을수가 없서서리 내게 눈총주는 마눌 뒤로 하고 집에 있으라 하고 녀석 숙소로 차를 몰고 갔다 에고고 녀석은 집에서 무슨 음식을 하는데 녀석들 먹는 음식의 향이 독특해 비위를 상하게 하는데 뭐하냐고 물으니 여자친구 사바티니가 기숙사에서 점심부터 저녁까지 안먹어서 저녁을 가져다 주려는데 녀석이 내보고 같이 갔으면 하는 것이다 녀석이 안내 하는 데로 사바티니가 근무하는 기숙사를 찾으니 그 곳은 기흥 톨게이트 에서 한참 산속으로 들어가는데 그 곳에는 가게를 나가려 해도 30분은 걸어 나와야 하나보다 그 처녀 참으려다 못참고 죠니에게 먹을 것 좀 가져다 달라고 ~~~ 구원을 청한 모양이다 이구 주변단지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죠니가 보고 싶었는지 아니면 미스터 지가 보고잡았는지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죠니란 녀석은 아주 순진하다 무슬린은 술과 돼지고기를 안먹는데 녀석은 술도 잘하고 돼지고기도 잘 먹는다 녀석은 먹으면서 엄마가 알면 혼난다고 비시시 웃는다 녀석들은 아직도 동네에서 네 것 내것 없이 어울려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생활 습관이 남아있는지 녀석의 자취방엔 항상 여러명이 들끓은다 녀석의 심성이 좋은 탓도 있다 인도네시아 다른 녀석들도 보지만 녀석들을 챙겨 주다가도 우리보다 영악스런 별난 녀석들에게는 가끔 정이 싹 떨어지기도 하는데 녀석의 착한 심성에는 마음을 빼앗기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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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필봉산

집사람과 두주째 오르는 필봉산이 어제는 내게 선물이었다 오랜만에 내려준 실비가 하늘을 가린 뿌연연기 모두다 거두어주니 맑고 푸른하늘 너무 고맙기도 한데 하늘 바라 보기가 부끄럽기도 하다 나도 저 맑고 푸른 하늘에 뿌연연기를 뿜어낸 장본인중에 하나이니 당연히 죄스러워하고 반성하며사는 어리석은 사람이니 하늘보기가 부끄러운 것은 당연 한것이려니 정말 깨끗한 하늘아래 동네가 펼쳐졋으니 북으로는 지지대고개 넘어 관악산자락도 보이고 동으로는 산세가 수려하다는 용인의 산자락들이 광주까지 넓게 펼쳐져 보인다 그곳에 사람도 살고 다른 생명체들도 서로서로 의지해서 살텐데 반환경적인 사람의 욕심가득하게 살아가는 것이 햇빛이 쨍쨍 거려도 파란 하늘을 볼수 없으니 말이다 차마 서쪽은 애써 외면 한다 그 맑고 푸른 하늘아래 수청동철거민들의 망루가 있으니... 우린 늘 손을 잡고 다닌다 81년부터 였으니 휫수로 스무다섯해째인데 이제는 식상할때도 됬구만 집사람과 집을 나서서 손을 잡지 않으면 허전하기만 하다 보경이아빠는 우리보고 투닥거리지나 말란다 녀석이 우리 집안속내 꿰뚫고 있으니 시비거리가 일수도 있는데 그 시비거리가 거슬리지는 않다 그만큼 가까워있는 후배녀석이 잇으니 말이다 1시간 30분 정도의 그리 험하지 않은 산을 손잡고 다녀온다 마주치는 이들에게 눈인사도 하고 우린 무슨 할 이야기가 많은지 질리지가 않는다 자존심 강한 집사람 심사만 건들지 않으면 나 보다도 살겹게 이야기를 풀어놓는 집사람이니 말이다 그 필봉산 자락에는 내가 좋아하는 야생화들이곳곳이 숨어 있다 닷새 전에는 소나무 그늘아래 수줍게 숨어있는 각시붓꽃을 보고는 얼마나 반가웠는지 요즘은 넓게 분포해 있는 제비꽃인데 초입에는 하얗게 핀 알락제비꽃을 비롯 어제는 황매화가 시들고 있고 노란 뱀꽃도 시들고 있구... 지금은 보기 힘든 그렇게 흔하던 쇠뜨기도 보인다 그런데 비가 와서 땅이 물러져 산길이 망가지고 있다 곳곳이 뿌리가 들어내 아파하고 있는데 얼마나 아플까 하는 맘 뿐이니 말이다 /// 쇠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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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요즘 일상은 수청동에 온통 매달려 있다. 덕분에 변화에 중심에 있는 동지들과의 함께할수 있어 좋기는 한데 집사람과의 관계가 아슬아슬하다.

 

 내가 변화한지 벌써 18년을 넘기는 해인데 일에 대한 끊임없는  나의 열정을 본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한 무한한 신뢰이기도 하다.

 

 다솜교회의 존재 그리고 고마움 늘상 마음에 있지만 그렇지도 못하고 가끔 불만으로 다가가는 우를  반성도 한다.

 

어디 장목사님 같은분이 있겠나. 목사라는 신분하나로도 편하게 살수 있는 조건을 뿌리치고 노동자를 예수로 섬기는 목사님은 어쩌면 우리시대에 예수이기도 한데 말이다.

 

요즘은 하루가 모자란다. 가게일에 매달려야 하고 변변히 챙기지도 못하는 수청동철거현장에서 마음도 벗어나질 못하고, 다행히 동지이자 후배이고 동생인 형모가 있어 수청동이 살아움직인다.

그리고 센터식구인 우곤씨 승만씨 케리어 엘지동지들 경기본부동지들 모두가 오산을 살아있게 하는 힘이기도 하다.

 

 오늘은 장모님 생신에 식구들이 모이기로 해서 서울 처가댁에 가야하는데 오산이 미덥다. 수청동을 떼어 놓고 간다는 것이 벌써 마음에 걸런다. 마음같아서는 망루에서 함께 귀찰이라도 서고 싶은데 그렇질 못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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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이녀석

녀석은 21개월 하고 일주일이 지났다
녀석은 벌이가 시원하지 못하나 인간적인 마음이 가득한 아빠를 두었다
녀석은 깔끔하고 새침둥이인 엄마를 두었다

녀석의 코는 외할아버지, 나머지는 아빠와 큰아빠를 닮았고
식성은 할아버지와 흡사하다

녀석은 수정같은 맑은 눈을 가졋고
입술은 사내같지 않게 그려낸듯 윤곽이있고 붉다

녀석은 아빠처럼 운동경기 구경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녀석은 그래서인지 아빠를 밝힌다

녀석은 표현력이 풍부한데 그중에 예쁘다는 표현을 으뜸으로 한다
그래서 녀석을 아빠는 예술가로 키우고 싶은데
엄마, 아빠는 녀석에게 인간답게 사는 것을 더 보고 싶어한다

녀석은 떼가 심한데 동생이 없서서 인가 보다 
녀석은 곧잘 엄마, 아빠를 흉내내어 웃긴다
그리고 녀석의 웃는 모습은 순결 그것이다

85.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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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꽃님

고맙구요 ...
그제 아침에는요
아침에 수청동 그 현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햇어요
내용은 청년을 죽음으로 몰아간 본질은 주공의 무분별한 철거민 정책과
당일 철거를 준비하러 들어가는 용역들에게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이 등을 떠민 것이 우선 잘못된 것이라구요 ...
민주단체들은 이 사태의 본질을 진상파악하겟가고 말이예요

그래서 가게에서 아침 할일을 놓치었지 모예요
12시가 다 되어서 가게를 들어가니
집사람은 사색이 되어서 통곡을 하는 것이엇구요
얼마나 속을 더 썩여야 되니냐면서
이제 정말 그만살겟다구요...
도대체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구요
왜 당신이 나서야 하는 것이냐구요...

꼬시...
있자나요 인간의 보편성은
인간의 존엄성을 전재로 한다는 생각이지요
현정권의 주거정책이 힘없는 사람의 집을 빼앗는 것이라는 것에
분노하지 않을수 없지요
비록 내가 당하지 않는 일이지만

멀쩡이 잘사는 화목한 가정을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집을 빼앗아 헐어내고
갈곳이 없는 그이들에게 집을 지어주기는 커녕
전셋돈도 안되는 돈을 보상이라 쥐어주면서 내모는데
당사자는 누구라도 절박하게 내집을 내놓으라고 소리치며
저항을 할것이란 생각이지요

지금 수청동에는 인간의 존엄성은 국가권력의 힘에 의하여
철저히 유린당하고 있는 현장이기도 하지요
철거민 현장에서는 항상 생명을 전제로한 싸움이 벌어지는데
안전장비 하나 없이 그 현장에 용역직원을 투입한 주택공사는
진짜 살인을 교사 한 사람들 일수도 있다는 생각이지요
그리고 투입을 용인한 경찰들고 책임을 면할수 없는데
단순히 나타난 현상만으로 살인자로 몰고 있는데 분노하고 있지요

지금 그 이들은 말예요
아이들을 이모에게 맞기어 놓고
망루에 올라간 꼬시와 비슷한 연배의 부부도 있어요
그 아이들이 엄마, 아빠를 생각하면서 얼마나 울겠어요?
그 부부는 아이들의 생각에 망루에서 얼마나 힘들겟어요?
그렇게 지금 그이들은 살인자로 몰린체로 망루에서
언제 경찰특공대가 투입될지 모르는 상황을 불안에 치를 떨고 있구요
지금 경찰특공대가 대기 중이거든요

그 이들을 생각하면 나도 치가 떨리는 아픔이 다시 다가오거든요
90년 6월 한달여 파업을 하면서 언제 투입되지 모르는
경찰에 대한 두려움으로 치를 떨면서 말예요
내가 징역을 살면 집사람과 초록이녀석은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걱정이
피를 말리게 하는 하루하루 였거든요

그리고 징역을 살면서 외가집으로간 초록이녀석과
남의집 허드렛일로 일년을 넘게 보낸 집사람
그렇게 가족 걱정은 말도 못했구요

지금 누군가 나서야 한다는 것은 틀림 없어요
그 누군가는 나와 그리고 나와 함께 일하는 주변 분들이구요
오늘은 안민석국회의원이 주택공사 사장을 만났어요
일요일 저녁 안의원을 만나 종용을 했거든요
사태를 해결하려면 주택공사가 일단은 그들을 설득할 해결방안을 내놓고
그리고 형사적인 문제는 둘째로 묻는 절차를 갖자고 말이지요
그 중간 역할을 안의원에게 요구를 했는데
오늘 만난 것이지요

더이상 생명을 담보로 사태가 더 악화되지 않게 열심히 하고 있는 것 뿐이지요
너무 걱정은 마시구요 ...
지금 밖에 나와 있는 철거민들 가족들에게 더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하구요
아마 다음주 즈음에는 그이들을 돕는 일이 벌어질 것이니 말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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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

언제부터인가 칼을 갈고 있었다
이 세상을 비뚤게하는 자유를 알고
분노의 칼을...
이 세상이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진자들 만의 것이 아닌 평등을 알고
미움의 칼을 ...
이 세상은 날품파는 노가다도 주인짓거리에 허물이 없어야 하는 민주를 알고
노여움의 칼을...


언제부터인가
그 번쩍이는 칼이 비수가 되어 나를 아프게 한다
분노를 삭이고 용서해야 한다며
미움을 접고 화해해야 된다며
노여움을 풀고 보다듬고 끌어안아야 한다며
그 대상이 용서될수 없는 존재라 할지라도


이승이 아니면 저 세상 하늘에서라도
행복이란 추상명사를
세상사람 모두에게 나누어달라며 평등을 소리치며
내 맘속에 칼을 녹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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