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덕에서..

from monologue 2008/09/19 01:32

 

순이 삼촌,

저 세상에서는

마음 아파하지 말고 건강합서!

 

아프면 드러눕고,

배고프면 주워먹는 게

당연한 거 아니우꽈!

 

이데올로기의 잔혹함,

언제나 이를 견뎌야 했던 것은

무지몽매했던 대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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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19 01:32 2008/09/19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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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자르다

from monologue 2008/09/19 01:29

 

괜찮나?

나도 가끔 변신할 때가 있다고 크크

서울 올라간 김에 머리를 자르고

앗백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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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19 01:29 2008/09/19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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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추석영화

from the movie 2008/09/09 22:38

이비에스의 탁월한 선택,

 

투야의 결혼,

원스

헌데, 나는 못 본다는 거....!

 

제사 지내고 이것저것 하기 땜시..

결혼 후 첫 추석,

명절이 짧아 다행이라는 후문!ㅋㅋ

 

내년엔 울 집으로 가야쥐~~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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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9 22:38 2008/09/09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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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소와 앉은뱅이소’에 대처하는 공감의 자세



김기린 (장애여성공감 인권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비장애여성 활동가)




촛불집회에 가기 전, 사안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모으기 위해 간단한 세미나를 하면서 누군가 ‘미친소 싫소’라는 피켓이 몸서리치게 싫다고 말했습니다. 정신장애를 희화화하고 있는 ‘미친소’라는 말도 무섭고, 꽃을 달고 눈이 풀린 ‘미친’소의 이미지도 너무 불편하다고 말이에요.




육식동물에게 제멋대로 동물성 사료를 먹이고는 또 아파하는 소를 제멋대로 죽이고 있는 인간 자체도 무섭지만, 그런 소를 먹지 않을 권리만 요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백프로 동의하기도 어렵다고요. 아프지 않게 건강하게 자기 생을 살아갈 소와 돼지와 닭의 권리는 누가 고민하나요.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아직도 삼겹살 냄새에 흔들리고, 육식을 멈추지 못하고 있는 우리도 반성하자는 얘기도 나왔고요. 아니, 이 모든 것은 멈출 수 없는 자본주의의 폐해가 아닌가요.




이윤추구가 전부인 시스템 안에서 먹을 것을 공장에서 찍어내면서 무엇을 더 바라냐고요. 이 끝없는 탐욕의 연쇄고리에서 한우만 예뻐하면 문제가 해결되나요. 한우를 예뻐하는 게 한우를 많이 먹어주는 거라고 생각하는 엽기적인 발상은 또 어떻구요. ‘앉은뱅이소’라는 말은 어떤가요? 선천성 골이형성부전증으로 걷지 못하는 우리 R언니와 M언니는 ‘앉은뱅이’가 아니던가요?




덕분에 앉은뱅이로 검색해 보았더니 ‘앉은뱅이 용쓴다’ , ‘앉은뱅이 앉으나마나’등의 속담이 십여 개가 나오네요. 휴우- 얼굴이 화끈거려요. 예비군복을 입고 여성과 노약자를 지켜준다는 군인아저씨들은 어떻구요. 아무리 좋은 의도에서 시작한 일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누군가의 보호’로부터 벗어나 단독자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위해 거리에 나서는 것이 아니었던가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만의 생각을 담은 피켓을 여러장 만들었어요. - ‘미친소’는 장애편견을 강화합니다 - 보호는 통제의 또 다른 이름 - 우리는 예비군의 보호가 필요 없는 시위를 원합니다 - 육식을 멈추자, 탐욕을 멈추자 - 1%를 위한 정책을 멈추라 휠체어를 타고 수만 명이 모여 있는 거리로 나간다는 것은 비장애인이 거리 행진에 참여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 같아요.




평소에 지하철에서 모르는 타인에게 딱해서 어쩔 줄 모르는 시선과 빵, 사과 따위를 참으로 자주 받게 되는 우리인데 이날 지나가던 시민으로부터 받은 삶은 계란 한 봉지는 좀 남다르게 느껴졌어요. 거리에서 피켓을 들고 만나는 시민들의 ‘힘내세요!’ 하는 응원도 조금 달랐죠. 휠체어만 지나가면 그림된다며 마구 찍어가는 언론사 카메라는 역시 부담스러웠지만요.




어쨌든 우리는 여자들뿐이고, 육체적으로도 매우 약한 중증장애여성들이 많은 집단입니다. 사회 구조 안에서 우리의 취약성을 잘 알고 있고, 그럼에도 우리의 목소리를 끊임없이 내는 것이 우리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고 믿고 있어요.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보육원에서 아무 이유 없이 맞으면서 자란 언니, 학교 문턱에도 못 가보고 방송통신고등학교를 졸업한 언니, 매달 수급권으로 받는 돈을 통장에 모으는 재미로 사는 언니, 한번이라도 제대로 된 연애를 해보는 것이 소원인 언니, 걸핏하면 어린아이 취급하고 반말하는 낯선 이들과 매일같이 사투를 벌여야 하는 언니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우리가 좀 더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장애’에 대한 차별만 사라져서는 택도 없습니다. 옆 사람을 괴롭히는 문제가 내일은 나를 괴롭히게 될 것이라는 선견지명(?)을 가진 분들을 더 많이 만나고 싶습니다. 우리가 만든 피켓을 신기한 듯 보는 것이 아니라 적극 공감해 주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기도 하고요. 우리가 조금 더디고, 새로운 사람에 대한 낯가림도 심한데다, 지난한 논의와 끊임없는 문제제기로 공동행동에 누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조금은 있습니다.




이제와 고백하자면 장애여성공감은 연대 공포(!)를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그래도 왠지 반차별 공동행동에 믿음이 가는 이유는 끊임없이 자신에 대한 성찰과 서로에 대한 애정을 업그레이드할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버려서인 걸까요. 집회 때 만난 우리와 같은 속도로 맞춰 걸어주던 그 깃발들의 마음을 느껴서일까요. 오래도록 서로에게 거울이 되어주고 비빌 언덕이 되어주는 연대체가 되기를 바래요. 물론 공감도 노력할게요.



http://chachacha.jinbo.net/bbs/board.php?bo_table=web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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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5 17:29 2008/08/25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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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

from monologue 2008/08/14 01:07

처음 타로를 배웠을 때

나의 별명은 구원이었다.

 

뒤섞여 있던 타로카드 중, 내게 운명처럼 다가온 카드가

새 세상이 열린 것처럼 내 앞에는 내가 만지고 싶어하던 것들이 가득했기 때문에

나중에야 그것이 '환영'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내게는 '구원'처럼 보였다.

 

그래서 나는 내 스스로를 '구원'이라 불렀고, 사람들에게도 '구원'이라 불러달라 했다.

 

구원해달라는 호소를 언제 해봤더라. 오랫동안 가슴에 묵힌 체증이 무엇을 해도 내려가지 않았을 때, 그 정지된 상태를 너무나도 벗어나고 싶어서 만난 사람들, 그게 타로를 함께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다.

전혀 관리되지 못하는 기억들 속에서 조금씩 좋아졌던 나날들..그렇게 해서 잃어버린 다른 한 쪽의 나를 다시 찾았다.

 

끔찍한 터널을 건너왔다.

다 오지도 못해, 이제 또 다른 터널에 마주한다.

 

이제는, 시시때때 내게 찾아오는 사람들이 구원같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그 어둠을 함께 딛고 이겨낼 사람들이

나에게는 구원 같다.

 

은희언니에게 연락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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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4 01:07 2008/08/14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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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예뻤을 때,

from the text 2008/08/10 00:40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거리는 꽈르릉하고 무너지고

생각도 않던 곳에서

파란 하늘 같은 것이 보이곤 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주위의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공장에서 바다에서 이름도 없는 섬에서

나는 멋부릴 실마리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아무도 다정한 선물을 바쳐주지 않았다

남자들은 거수경례밖에 몰랐고

깨끗한 눈짓만을 남기고 모두 떠나버렸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의 머리는 텅 비고

나의 마음은 무디었고

손발만이 밤색으로 빛났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의 나라는 전쟁에서 졌다

그런 엉터리없는 일이 있느냐고

블라우스의 팔을 걷어올리고 비굴한 거리를 쏘다녔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라디오에서는 재즈가 넘쳤다

담배연기를 처음 마셨을 때처럼 어질어질하면서

나는 이국의 달콤한 음악을 마구 즐겼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아주 불행했고

나는 아주 얼빠졌었고

나는 무척 쓸쓸했다

 

때문에 결심했다 될수록이면 오래 살기로

나이 들어서 굉장히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불란서의 루오 할아버지같이 그렇게.

신이현, '내가 가장 예뻤을 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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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0 00:40 2008/08/10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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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백기

from monologue 2008/08/10 00:24

1.

이건, 나와의 투쟁이기도 하다.

내가 갖고 있던 관료성과 가부장성에 대하여

다시 돌아보게 되는 투쟁.

그리고 돌아봄은 항상 내가 상처를 입힌 무한한 사람들에 대한

일차원적 반성으로 되돌아오곤 했듯이

이 투쟁은 그냥 많은 에너지를 쓰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삶 자체를 공감하고 느끼는 과정들이 무엇인가를 일깨워야 하는

만만치 않은 숙고여야 한다.

그 어떤 깊이로도 설명될 수 없는 타인의 고통에 대하여

그간의 나는, 그리고 당신들은 어떤 척도로

재단하고 깎아내리려 했던가.

 

 

2.

나는, 아주 많은 고통에 직면했던 많은 선배들의 고통을 버렸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매번, 매 순간, 무시하기도 하고 나를 아프게 하기도 하고 도피하기도 했다. 나는 이런 과정에서 나만 아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전히 나 덕에 여러 선배들이 고통을 입었다. 고통의 원인이 어디에서 오는지조차 몰랐고, 무력했던 나날들을 보냈다. 그 땐 순간이라 생각했지만, 기억은 박제되어 늘 내 머리속을 짓누르곤 했다.

 

 

3.

내가 지금 만나고 있는 동지들을 생각한다.

그녀들의 삶 자체가

끊임없이 부정당하는 자기 존재를 딛고 일어선,

침묵과 날조와 위선에 대한 투쟁의 역사였다는 것을 생각한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 삶과 맞지 않는 이데올로기들로

자신을 포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이데올로기가 참혹한 폭력의 결과로 오기도 했다.

받아서는 안 될 상처를 받고, 남겨서는 안 되는 흉터를 남긴다는 것,

사람들은 여전히 그래서는 안 된다 타박하고 타인의 아픔에 대해 곱씹기를 좋아한다. 

이제라도 알아 천만 다행이지만 나 역시 그러했으니.

 

 

4.

당신, 아니 우리, 이제 함부로 '상처'에 대해 거론하지 말자.

사랑은 사랑대로

아픔은 아픔대로

그냥 두어라.

이건 이 투쟁의 시작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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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0 00:24 2008/08/10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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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현중노조 위원장 오종쇄에게
해고자 조돈희가 오종쇄에게 쓰는 공개편지  


조합원과 함께 촛불을 들어라

내가 자네에게 몇 가지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얼마 전부터 자네에게 편지를 한번 써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야 자판을 두드리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 본지가 너무도 오래되어서 잘 써질랑가 모르겠다.

내 나이가 자네에 비해서 그리 많은 나이도 아니고 자네와 내가 그리 가까이 지낸 사이도 아니다. 하지만 자네는 내게 ‘형’이라 불러주었고 내가 자네를 부를 때도 하대를 써왔던 관계이기에 편지글에서도 하대를 하기로 하겠다. 이점 이해하리라 믿네.

그럼 편하게 몇가지 하고 싶었던 말을 해 보겠네.

민주주의

어느 나라건 어느 조직이건 할 것 없이 그 조직이 민주화되기까지 많은 노동자 민중들의 피가 배어 있듯이 현중노조 21년 역사도 그렇게 조합원들의 피와 땀으로 일구어져 왔지.

그러나 그렇게 일구어진 현중노조의 민주주의는 악랄한 현중자본의 억압적 통제로 다시 과거보다 못한 상황에 처해 버렸음을 자네도 부인하지 못 할 것이야.

1987년 6월 항쟁으로 이 나라 민주주의를 쟁취한 싯점과 현중노조의 민주주의가 그 역사적 출발을 같이 하여 너는 그 선두에 서 있었고 우리는 그 뒤를 따라 민주노조를 건설했지.

그런데 우연찮게 지금 너는 다시 민주화를 쟁취해야 할 투쟁의 과제를 안고 있는 조직의 수장으로 서 있게 되었는데 그 자리가 지금은 1987년에 타도의 대상이었던 어용노조 위원장 그 자리가 아닌가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나 싶다.

지금 이 나라에서는 촛불을 든 초등학생에서부터 노인들까지 또다시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다. 국민 자신들이 직접 투표권을 가지고 주권을 행사할 수 있음에도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니 독재정치를 멈추라”며 “명박퇴진”을 외치고 있다. 이들의 외침은 비단 광우병 쇠고기 때문만이 아니다. 국민을 잘 섬기고자 하는 게 아니라 국민들을 죽음의 벼랑으로 내모는 정책들을 밀어붙이고자 하는 것에 대한 강력한 항의 아닐까? 이 땅 소수 자본가들을 위해서 말이다. 게다가 국민들을 개 패듯이 패대니 종교계까지 나서고 있는 형국아닌가.

현중노조의 주권은 누구에게 있을까?

현중노조의 주권도 형식적으로는 조합원에게 있으나 실제 그러한가?

자본가들의 이해를 정확히 대변하며 소수 자본가 집단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 민중들에게 독재를 휘두르는 이명박 정부와 현중노조 대의기관과 집행부가 혹시 닮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나?

종쇄야! 넌 국민을 섬기는 정치를 하겠다던 이명박 정부가 취하는 지금의 행태를 어떻게 생각하니?

“조합원을 잘 섬기겠다”고 한 너희들이 조합원들이 진정한 주권을 행사하게 하기 위해서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난 너희들이 ‘조합원들 잘 섬기겠다’고 한 그 표현이 옳은 표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차라리 “조합원이 주인행세를 잘 하도록 하겠다”고 표현하고 거기에 걸맞는 활동을 하는 것이 옳지.

현중노조는 현중자본의 비열한 노무관리에 의해 조합원들이 자기 조직 내에서 민주주의를 행세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지금의 이 모양 이 꼴이 되어 버렸다. 종쇄 네가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고 너는 노동자들 스스로 자주성과 민주성을 갖게 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기도 한 것을 난 알고 있다. 내가 뭔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되고 지금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정책과 행동으로 옮겨야 할 것이야.

그런데 난 네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네가 위원장 된 배경이 ‘거시기’ 해서 말이야...

복직과 사고, 그리고 배신감

2002년 윤석이가 위원장 되고 나서 해고자 ‘청산’할 때 넌 복직 대상이 됐어. 그때 네명이 복직했지? 다들 궁금해 한 것이 “오종쇄가 어떻게 복직 대상이 되었을까?”였다. 너는 쪽 팔려했지. 복직 대상에 선정 된 것에 어리둥절하면서 복직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하기도 했고. 난 네게 “복직하기 싫으면 나와 바꾸자”고 농담도 던져 봤지. 당시 해고자 네명은 복직했고, 첫 출근하는 날 밖에 내동댕이쳐져 버린 남은해고자들은 정문에서 복직자들을 부러움과 서러움을 동시에 느끼며 배웅했지.

그 뒤 넌 작업장에 다른 업무를 받아 복직한 후 손가락이 문드러지는 중대재해를 당했지.

난 너의 흉측하게 문드러진 손을 잡으며 내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을 숨길 수 없었다. 기억할 게다. 내가 그토록 안타까워 했던 모습을... 어디 나 뿐이었겠냐. 너의 사고 소식을 들은 동지들 모두가 안타까워했지.

그런데 네가 어용화된 현중노조의 위원장이 되었다니...

모두가 실망하고 배신감에 치를 떨어야 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선도했던 권용목이 그러더니 너까지...

이제는 달라졌다고 하지만 뭐가 어떻게 달라졌니? 자본의 노동자통제가 더 강화되었고 조합원들의 주권과 노조의 자주성이 말살당하고, 늘어난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더 열악해진 노동조건, 모든 것이 87년 이전으로 돌아가 있지 않니?

그리하여 새로운 전략이라는 것이 노사상생 복지노조란 것인데 네가 거기에 동조하고 있단 말이냐?

조합비 50억, 부동산 투자 중단해라

요즘 조합원들이 현중노조에서 추진하는 휴양소 건립 사업에 50억이란 거액의 조합비를 사용하는 문제에 대해 ‘오종쇄 집행부의 대운하 사업’이라고 비난하며 우려하는 분위기라드만.

노조에서는 ‘조합비를 없애는 게 아니고 부동산 사 놓는 거’라고 하던데, 노조가 부동산 ‘투기’집단이 되어서 되겠니? 그거 그렇게 하지 말아라. 나중에 필히 문제된다. 대의원대회에 권한이 있고 대의원대회가 총회를 갈음한다지만 조합원들에게 직접 물어서 해라. 가능하면 조합원들에게 할 일과 결정권한을 주는 게 민주주의로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라는 거 잘 알지 않니?

관리자급 조합원들도 반대하는 목소리가 많다던데 왜 그렇게 밀어붙이는 거냐? 이명박이가 그래서 대중적 저항을 받고 있구만...

너는 이명박처럼 하면 안된다. 조합비는 가만히 놔두고 회사가 모든 비용을 부담하게 해서 조합원 가족뿐만 아니라 사내하청 노동자들도 저렴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운영하라고 요구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거 밀어붙이면 넌 진짜 바보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조합비 50억 부동산투자 계획을 즉각 중단하고, 현중노조의 ‘대운하사업’ 휴양소 건립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라.

해고자들이 떠나지 못하는 이유

마지막으로 해고자 이야기 한번 하고 마칠란다.

네가 위원장이 된 배경이 ‘거시기’했지만 그래도 난 사실 네가 현중노조 위원장 되고 나서 우리 해고자들 밥이나 한번 먹자고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까지 전화 한 통화 못받았다.

그래도 네가 해고자로 함께 살아온 시간이 얼만데. 해고자 청산 당할 때 너도 분개했잖아. 이건 아니라고...

아직도 현중 울타리 밖에 남아 있는 우리 해고자 네명이 ‘현중해고자’란 이름을 떼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해고 자체에 대한 부당성이며, 노조가 앞장서서 해고자 복직 요구와 투쟁을 포기하고 청산 조치를 일방으로 단행한 것에 대한 부당성과 민주노조운동의 정신을 포기하지 못해서이다.

더우기 우리들의 파업투쟁과 정치조직 활동이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되어 그 잘난 국가로부터 명예회복을 받았고 명예회복위원회가 회사에 복직을 권고하기까지 했었단 말이다.

(명예회복위원회의 복직권고에 대해 회사는 노조 조합원총회에서 청산 정리했다는 이유로 복직시킬 수 없다고 답변했었다.)

종쇄야! 네가 어용으로 불리우는 현중노조 위원장이 되어 있지만 나는 네가 최소한 우리 해고자들이 복직하고 싶은 마음을 헤아리고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리하여 2002년 해고자 청산 방식은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고 다른 방안을 논의해 보는 자리를 한번쯤 가져보자고 전화 한번 할 것이라 기대했었다.

사람들이 묻는다. “오종쇄 위원장한테서 연락 한번 없었냐?”고...

네게 의지가 있다하더라도 너의 의지대로 되는 구조가 아님을 안다. 그러나 해고자 문제 해결을 위해 논의해 볼 생각이 있으면 언제든 전화해라.

원․하청 노동자들과 함께 공장에서 투쟁의 촛불을 들어라

오늘 편지에서 사내하청노조 문제를 이야기하려 했으나 필력의 한계와 지면조건상 다 쓰지 못했다. 어용은 나쁜 것이다! 고통받는 조합원들과 사내하청노동자들과 함께 파업할 수 있는 힘을 만들어라. 언제든지 파업을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 모든 노동자들이 원하는 것이다. 이제 원․하청 노동자들과 함께 공장에서 투쟁의 촛불을 들어라!

억압받는 조합원들과 노동자들의 편에 서서 그들과 함께 비열한 사측을 향해 투쟁하는 모습을 보고싶다.

현중노조가 민주화되는 것을 바라는 해고노동자

조돈희(현대중공업 해고자)     2008-07-14 오후 2: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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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5 00:45 2008/07/15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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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조아 이데올로기인 줄 알면서도

 

그것을 차용해 자신의 정당함을 포장하고,

 

자신의 권한을 남용하는 이가 있다면,

 

그가 써대는 글들은 오직 화석화된 공문구에 불과하다.

 

강령은 문구가 아니라 실천의 결과이고 방향이다.

 

누구나, 이 강령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숱한 에너지를 쓰면서

 

자신과 타인과 이데올로기, 이 이데올로기를 실현할 각종 수단들을 '조직'한다.

 

강령은 단지, 그러한 실천들의 '반영'이다.

 

이론적 철저함은 타인들이 각 개 현장에서 행하는 실천들 중 하나일 뿐,

 

그것이 과장되어 부풀려지거나 '자신만은 철저하다'고 착각하는 개인에 의해 오도될 수는 없는 법.

 

오늘도 내일의 과거라 했던가.

 

억울하게 당한 고통은 그냥, 그렇게 지나가도 괜찮지만

 

그 고통을 태연하게 전가한 어떤 이에게는 반드시, 끝을 보는 파행이 있어야 한다. 

 

내일이 없는 오늘을 살아왔던 이에게, 파행은 당연한 결과일 듯.

 

머저리 같은 이들과 싸우는 것도 이제 넌덜머리 날 지경이지만,

 

치욕적이고도 잔인한 과정들을 많이도 견뎌 온 나이기에 이 쯤이야 가볍게 넘겨주지.

 

생각하고 또 적극적으로 조직도 하고 있다.

 

책도 읽고 있고, 곧 있음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많은 주제들에 대해서도 ..

 

경박스러운 다수결주의자들과의 제 2라운드, 본격화되기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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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5 00:23 2008/07/15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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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림사, 경주.

from the road 2008/07/09 23:54

그 날, 그 자리에서 피어난 꽃

그 날, 그 자리에서 피어나던 꽃

쓸쓸하고 초라하지만, 그윽했던 어디쯤..대적광전이었던가..

당신이 있던 자리,

오래된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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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09 23:54 2008/07/09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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