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버~

from monologue 2011/07/09 20:40

아! 감기에 이어 다리를 삐어 반 깁스를 했다.

꼼짝 못 하고 집에 있는 신세,

가지 말라는 신호로 받아는 들이겠는데

부산에 넘넘 가고 싶다~ ㅠㅠ

 

혼자서 1박 2일을

감당되지도 않는 크기의 썰렁한 집에서 나고 있다.

타임라인만 바라보며, 흐미~ 저기 있어야 하는디

부러움만 한 가득 품는 중...

 

부산에 그렇게 드나들 때는

한진중공업, 참혹했고 냉혈했던 그 곳이

이렇게 사람들의 온기로 가득 찰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가까운 사람들이 중공업에 다닐 때,

언제 그 지옥 같은 일을 그만두나....했었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사람이 죽어나가는 공장,

지독한 절망 끝에서도 희망을 보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었지만

고백하건대, 나는 그만한 용기가 없었다.

매번 눈과 귀에 쇳가루가 들어가 병원 신세를 져야 겨우 이겨내는 노동,

손이 퉁퉁 붓고 돌아오는 남편을 보며,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솔직히 했었으니까.

기술은 현장에서 소통되는 언어였고, 물량은 현장을 지배하는 힘이었다.

거기서 일을 했을 여성노동자들은 물론 감추어진 존재들이었다.

 

현장에서 나와 꾸준히 활동을 하며 또 오랜 동료와 친구들을 떠나보내고

다시 크레인 위를 올라 간 김진숙 동지.

그녀를 통해, 85호 크레인 위는 더 이상 죽음만을 생각하지 않는 공간이 되었다.

 

절박함으로 올랐던 그 곳에서 삶을 꾸리고, 그 손으로 연대를 만들어내는

김진숙 동지의 힘, 그것이 바로 활력 있는 여성노동자의 생명력이 아닐까.

 

투쟁이 새로운 삶을 쓰고,

새로운 삶은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고 있다.

게다가 담장 안에 갇혀 평생 나오지 못할 것 같았던

조선소 노동자의 투쟁이 이런 파고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역사에 기록될 그 현장에 함께 하고 싶었는데, 아....

 

아쉽다. 움직일 수 없어서 너무 힘들다. 거기에 함께 있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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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09 20:40 2011/07/09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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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제

from 분류없음 2011/07/05 12:22

며칠을 앓고서

 

오랜만에 사무실에 나오면서 긴장을 했다.

 

무엇 때문일까.

 

누군가의 허락을 맡아야 움직이고,

 

조직적 필요에 의해서만 활동하는 것,

 

집회하면서 투쟁하는 곳만이 현장이라 할 수는 없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경계해야 할 통념이다.

 

헌데 그러한 집회 현장만을 비껴가며

 

혹은 집회 현장을 비난하며, 조직의 안전을 간접적으로 꾀하는 것은 무엇이라 봐야 하나,

 

이것이 우리가 그토록 욕하던

 

관료제가 아니면 무언가.

 

조직 운동의 모든 폐해가 녹여져 있는 단어, 그 관료제,

 

이렇게 작고 아무 것도 기반도 없는 곳에서, 대체 그게 어디서부터 뿌리를 내린 건가

 

사람의 문제인가. 그렇다면 여성 관료와 남성 관료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

 

왜 여성 관료가 더 지독하다는 생각이 드는 걸까. 예상 밖이어서 그런가.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싶다 가끔은....

 

오늘은 현자 아산 피해자 동지에게 가야겠다.

 

동지를 보고, 지친 맘과 몸에 힘을 얻고 와야지.

 

내가 에너지를 드려야 하는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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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05 12:22 2011/07/05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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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from monologue 2011/07/01 17:08

결국, 탈이 났다.

 

생리 중에 두 차례 폭주를 하고서

몸이 심상치 않더니

저번 주에는 방광염 이번 주에는 목감기,

땡땡 부은 편도선을 가지고 도저히 일을 못 하겠어서

조퇴를 했다.

 

마음이 아프면, 몸도 아프니 들어가 잘 회복하라는 동료의 말이

새삼 고맙게 느껴질 정도로,

참, 아프고 무능한 인간으로 취급받기 싫은데

'살아야' 겠어서 사무실을 나왔다.

 

허옇게 뜬 얼굴은 이내 벌겋게 홍역처럼 피워올랐다.

'나는 아프기라도 하다, 그게 잘 티가 난다, 그래 나는 잘 살아 있다'

증명이라도 해주는 듯.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계속 생각에 골몰해 있었다.

살아있다는 것, 그리고 사랑한다는 것,

내내 이에 대한 생각을 했다.

 

아픔이 전염되는 것처럼, 사랑도 전염되기 마련인가.

내가 너만을, 배타적으로 사랑하는 것,

그것이 사랑인가.

 

아니다, 내 몸부터 사랑해야 한다.

여름은 보약도 안 듣는다던데, 왜 이렇게 몸이 말을 안 듣지.

 

겨우 잠에서 깨어 다시 컴퓨터를 켠다.

여노에 와서는 대체로 잘 쉬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불질만 계속 한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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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01 17:08 2011/07/01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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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빗장을 풀며

from monologue 2011/06/29 20:25

종일 네가 생각났다.

 

올 해 처음, 거짓말처럼 동지를 떠나보내던 날

나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나를 잘 기억해주고, 함께 맺었던 관계에 대해 소중하게 생각하던,

누구와도 거리낌없이 소주 한 잔 기울일 수 있었던 사람이

내 곁을 떠나던 날,

나는 명절이라고 멀리 내려와 있다고

마지막 가시는 길, 함께 하지 못 했다.

 

그래, 멀지 않은 과거에 그 일을 겪고도

나는 또 내 일상을 살겠다고,

불편한 상태로,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겨우 워크샵 장소에 도착하고,

어제 하루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몸으로 표현해보자는 강사의 말에,

그만 철퍼덕 바닥에 스러졌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던 오후 내내

쓰러져 있던 마음,

 

결국

가까웠던 사람이 자살했다고, 생활고도 어려움도 아픔도

건너 건너 짐작만 했지만

난 너무 내 삶만 생각했다고...

 

다 하지 못한 말들을 애써 눌렀는데,

결국 서럽게 울었다. 마음의 빗장이 풀린 것처럼, 그렇게.

 

처음 부음을 들었을 때,

그래, 나는 살아야지.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죽지 말아야지, 라고 말했다.

무의식적으로 툭 나온 말이었는데 참 의식적이었다. 매정했다.

그렇게 말했던 내가, 눈물조차 고이지 않던 내가

아무도 모르는 이들 앞에 쓰러져 펑펑 울고 말았다.

 

살기 위해서, 어려워도 살기 위해서 하는 짓인데

대체 난, 누굴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왔는지,

내가 겪었던 고통이나 상처가 무엇이기에, 그깟게 무엇이기에

나는 살려고 발버둥을 쳤다. 그러면서 너무 많은 사람들을 지독하게 아프게 했다.  

이제야, 그 아픔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야.

 

너무 고마웠던 것,

사람들이 팔짱 끼며 방관하지 않았던 것, 

고개를 숙이며 하염없이 우는 나와 똑같이 울어주고 안아주며

그 마음을 나눴던 것. 무거운 걱정, 죄책감 다 내려놓고

무조건적으로 안길 수 있었던 것.

 

세차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돌아오는 길,

네가... 곁에 있어주었으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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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9 20:25 2011/06/2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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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씹어본다

from 분류없음 2011/06/28 09:32

사람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데

뜻밖이었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거늘

왜 죽었느냐며 호소해도

고인은 말이 없다.

 

평소 고인이 하고 싶어하던 많은 말들을

말을 할 수 없게 된 지금에 와서야 생각해보게 된다.

죽음 직전까지 그 사람을 몰고 간

그 비참한 상황을,

 

내 행복했던 운동 한편의 기억을 차지했던 사람,

누구보다 힘들고 어려운 현장에 먼저 연대했던 사람,

다 자기 삶에 바빠 겨우 겨우 타인의 삶들을 빼앗으며 살 때,

그러지 못해서,

젊은 활동가의 치기어린 모습들을 보면서도 너무 잘 하고 있다고 복돋아주고

자기는 그렇게 굶었으면서 얼마 안 되는 사비 털어 밥 한끼 사주었던

그런 사람.

 

사회적으로 조직되는 많은 것들이 있다지.

우리가 꿈꾸는 사회가 그러하다면,

하물며 현행 체제조차도 그러하다면,

 

왜, 나는, 타인의 삶에 기대고 의존하며 살 수밖에 없는 나는

그 사실을 수치스러워 하며 살았던가.

왜 나는 동지에게 따뜻한 밥 한 끼, 꼬깃한 지폐 한 장

나누지 못했을까.

 

나는 그렇게 훌쩍 잘 살아보겠다고 떠났는데

활짝 웃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새로운 삶에 대한 격려 한 마디 아끼지 않고 남겨준 그가,

그의 떠남이,

이토록 처절하게 느껴지는 건...

 

이제 떠난 동지들에게 죄송하다는 말 한 마디로는 부족한 것 같다.

 

그만큼 곱씹어본다.

나의 이기,

내가 나누었던 사랑(차마 동지애라고 쓰기에 너무도 쪽이 팔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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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8 09:32 2011/06/28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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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돌개

from 분류없음 2011/06/19 15:11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옛 섬 사람들은 어찌 살았을까.

어딜 가도 바다 끝자락, 낭떨어지 뿐인데...

그래서 일찍부터 삶에 조응하는 죽음을 알았을테고,

죽음으로 향하는 길을 걸어간 이들에게

깍듯이 예의를 갖추어 온 것은 아닐지...

 

해군기지가 건설되면 이 곳은 파괴된다.

 

절망했던 나에게, 이 곳이 주던 힘은 참 남달랐는데....

꿋꿋이 버티어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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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9 15:11 2011/06/19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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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차디찬 고공 위에서 160일 넘게 싸우고 있는 김진숙동지처럼

 

서울, 서초서 땅바닥에서, 숱한 무관심 속에서

 

성희롱과 끊임없는 2차 가해와 부당해고와 집회 봉쇄까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상식 밖의 탄압에도 주저앉지 않고 일어선

 

그녀의 투쟁!

 

싸울 자유조차 없는 여성노동자,

 

그 굴레를 깨기 위해 주먹을 든 피해자 동지,

 

꼭 함께해야 할 투쟁, 동지들의 연대를!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집중집회)

 

사노위님의 [<격주간 정치신문-사노위 : 13호> 성희롱 피해자, 양심과 상식의 전멸에 분노한다. 연대하자!] 에 관련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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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6 13:29 2011/06/16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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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껑 열리겠다

from 분류없음 2011/06/15 11:15

어떻게 된 게 상담할 때마다 긴장하고 끊으면 욕을 먹냐.

 

매번 나의 무능력에 직면하는 듯.

 

더 많은 경험들을 만들어 가기 위한 단계라 생각하자.

 

노동 상담과 관련하여 더 많은 경험들을 쌓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공부도 하고, ㅎㅎ

 

법률적 용어로 통용되는 성희롱의 개념과

 

성적 모욕, 성적 성가심, 성적 괴롭힘 등으로 해석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성폭력에 대하여

 

고민 정리를 좀 해야겠다.

 

성 억압, 성 체제, 자본주의 가부장제의 모순, 무수하게 확장되는 개념들....

 

경제와 법률이라는 한계적 틀거리 속에 거의 모든 문제들이 가둬지는 걸 반대했지만

 

이제야 중요성을 깨닫고 있어서 좀 공부 좀 해야겠다는 다짐이...

 

짧지만 상담활동을 해보며 느낀 것은...

 

성노동자 혹은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법률지원센터? 같은 걸 해보면 어떨까 하는 것,

 

아, 무식한 나를 좀 잡아줄 수 있는 사람 없나.

 

전화를 끊고, 열 받아 나갔다 오니 대표가 사근사근히 나를 대하네.

 

흠냐. 뚜껑 열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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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5 11:15 2011/06/15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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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강좌

from 분류없음 2011/06/08 20:28

나루님의 [[알림]여이연 강좌] 에 관련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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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08 20:28 2011/06/08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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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생각

from 분류없음 2011/06/05 23:10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과 같은 단체에서 활동한다는 것,

내가 양보해야 하는 것, 혹은 내가 지켜야 하는 것

그 사이의 고독한 외줄타기.

 

분노가 지배하던 일상을 벗어나 조금은 침착해진 나날들,

헌데도 내가 어느 현장에서 어떤 이들을 설득해

어떤 투쟁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가 아니면 쓰기가 어색하다.

이제야 타임라인의 묘미를 알아가는 트위터나, 운동권 관계가 대부분인 페이스북도...

 

토요일에는 가사협 쌤들과 함께 있다가 화장실서 넘어져 크게 다친 엄마를 보러 집에 와야 했다.

 

가사협 샘들과 함께 한 야유회는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일주일 중 토요일은 꼭 나를 위한 시간이어야 한다고,

등산을 가든지 놀든지 집안 일에 손하나 까딱 않고 쉬어야

재충전을 할 수 있다는 쌤들...

대체 어느 누가 나를 위한 시간을 의식적으로 만드려고 하나, 특히 50-60대의 여성들에게...

쌤들에게서 얼마나 깊은 삶의 결들이 느껴졌는지...

 

노동조합의 즉자적인 조직화가 되지 않아도,

노동단체의 활동과 삶을 존중해주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게 너무도 자연스러웠기에

그것이어도 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시간에 청소노동자들은 거리에서 행진을 하고,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격렬하게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을테며

대학생들은 맹박이가 어설프게 꺼내고 마무리한 그 반값 등록금 때문에

서울 전역을 휩쓸고 다녔을 텐데....

 

나는 투쟁하는 자들의 삶을 '평생' 책임져주는 보이지 않는 손,

가사노동자 쌤들과 함께 있었다. 자랑스러워~ 하하.

 

다친 엄마를 보고서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이 하나가 나가고, 엉치 뼈와 팔이 다쳐 움직이기 힘든 상태였는데, 엄마는 여전히 호탕하시다. 이 나이에 화장실서 넘어지면 귀신이 데려가는 거라는 말이 있다고 했는데, 머리 안 다치기 정말 다행이었다.

 

돌봄과 보살핌을 성별 구분 없이 누구나 적극적으로 나서서 하는 그런 분위기, 자기 스스로 자신의 삶을 잘 보살필 수 있는 인간이 되는 것....운동의 목표가 이런 것 정도쯤은 커버(!)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소위 남성 중심의 임노동자들이 만들어 온, 그 계급 투쟁이라는 영역에

왜 가사노동자는, 어머니는 들어갈 수 없는가.

아니다. 질문을 잘못했다. 왜 가사노동자와 어머니(주부노동자)는 남성 중심의 임노동자들이 만들어 온 그 계급 투쟁의 영역에 꼭 들어가야만 하나? 왜? 왜?! 그렇게 조직된 계급 투쟁만이 세상을 바꾸나? 흠. 그런 건가?(투쟁에 헌신적으로 연대하는 골수 활동가들이 난리를 치겠구나 내가 이런 식으로 말하면)

 

현재 내가 하고 있는 고민이다.

 

둥지보다는 언제든지 있다가 떠나갈 수 있는 곳으로 삼자.

치열한 투쟁이 있는 곳이 바로 내가 있는 곳이라는 것,

그 지점이 나의 '현장'이라는 것

다시 한번 각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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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05 23:10 2011/06/05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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