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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지친 이들이 쉬어갈만한 작은 얘기들입니다.

208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08/27
    추억(16)
    풀소리
  2. 2008/08/25
    배추심기(3)
    풀소리
  3. 2008/08/24
    부추꽃
    풀소리

추억

1.

1990년 1월 22일은 내게 있어 특별한 날이다.

역사적인 전노협의 창립일이기도 한 이날은

내가 노동운동에 본격적으로 참여해 상근을 시작한 날이기도 하다.

 

전노협 결성식(1990. 1. 22)

 

 

전날 전야제가 열리던 밤에는

하염없이 눈이 내렸었다.

나는 출근준비를 이유로 전야제에 불참했고,

대신 성수동 포장마차에서 친구와 술을 마셨다.

 

한참 술을 마시는데 옆에서 어떤 청년이 혼자서 흘쩍거리며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궁금해서 왜 우냐고 물었더니

여자 친구가 영남 사람인데, 자기가 호남사람이라서 여자쪽에서 결혼을 반대한다는 거였다.

그 시절이 그랬다.

 

 

 

2.

상근을 시작하기 불과 반년 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지만,

그것이 사회주의자에게 그렇게 심각한 것인지 몰랐다.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표방한

고르비 동지의 페레스트로이카 성과의 부작용 정도로 생각했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했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1989. 8)

 

 

그러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2년만에

소/비/에/트/가/ /무/너/졌/다.

천지가 개벽하는 충격이었다.

소비에트의 붕괴는 우리나라에서도 사회주의혁명을 할 수 있다는 신념의 붕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절망한 많은 동료들이 현장을, 조직을 떠났다.

어떤 이는 천년의 팍스 아메리카시대가 올 것이라고도 했다.

 

돌이켜보면 소비에트 붕괴가

나를 노동운동 언저리에 계속 있게 한 커다란 이유 중 하나였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붕괴의 절망 속에서 난 일종의 '오기' 또는 '책임감' 비슷한 것이 생겼다.

천생 리버럴하니 오기나 책임감이 조직에 쓸모있는 역할을 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철거되는 레닌 동상/ 현실로써 혁명이 우리의 가슴 속으로부터 철거되는 느낌이었다.

 

 

3.

이제 퇴직할 시간이 임박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꽤 긴 시간이었다.

 

내 성향이 노동(노조)운동과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도

2년이 넘는 시간이 지난 뒤에 낸 사표다.

 

사표를 내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임원과 내가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사표를 내고 나서 내가 오해한 것이란 말을 들었지만...

그러나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돼버린 뒤였다.

 

어쨌든 사표는 돌릴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어쩜 내심 바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퇴직이 임박하면서 마음 한편으로는 무거운 짐이 자리잡고 있음을 느낀다.

노동(노조)운동이 침몰하는 상황에서 낸 사표는

형식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도피'라는 혐의를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에게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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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심기

새로 심은 배추

 

 

어제는 전날 김을 매고, 갈아엎은 받을 골라 배추를 심었다.

 

농민이 직접 씨를 뿌려 모종을 낸 하우스에서 배추 모종을 샀지만, 그래도 개당 140원 꼴이다.

어찌보면 시골 농촌에선 제대로 키워낸 커다란 배추값이 우리가 산 모종값보다 쌀지도 모른다는 슬픈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쨌든 배추를 심고 나니 마음은 행복해졌다.

저 배추가 김장을 할 정도로 클 지 안 클 지는 모르지만,

모종을 낸 밭을 보니 흐믓하기만 하다.

 

벌 대신 나비가 와 앉아있는 부추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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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추꽃

하얀 부추꽃/ 벌들이 많이 몰려들고 있다.

 

 

한없이 길 것만 같았던 여름이 끝나가고 있다.

한낮의 햇살은 여전히 뜨겁지만,

우렁차기만 했던 말매미 울움소리도, 요즈음은 한결 힘이 빠져있다.

 

부로농원 하늘도 가을빛을 띄기 시작한다.

 

왕성하게 자라고 있는 토란

 

 

부로농원도 이제 가을농사를 준비할 때이다.

김장을 위해 배추와 무, 갓 따위를 심을 것이다.

 

우리는 점심을 먹고 느지막히 부로농원으로 가

옥수수를 따고, 밭의 풀을 뽑고, 삽으로 흙을 뒤집어 놓았다.

전날 온 비로 땅이 푹 젖어 있었기에 흙을 말리는 것이다.

 

일궈놓은 밭/ 김장거리를 심기 위해 풀을 뽑고, 흙을 뒤집어 놓았다.

 

 

부로농원에는 늘 꽃이 많다.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해바라기

 

흰 옥잠화와 연보라 익모초꽃

 

보랏빛 맥문동꽃

 

연못가 옥잠화
 


가을의 상징 고추잠자리



이름마저 슬픈 상사화

 


화초꽈리

 


단호박

 


장독대에서 늙어가는 호박

 


강아지를 안고 좋아하는 성연이

 


아욱씨와 붉은 고추 



갓 수확해 쪄놓은 옥수수와 파프리카 그리고 커피가 있는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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