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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지친 이들이 쉬어갈만한 작은 얘기들입니다.

208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3/05
    그래도 봄은 오더라
    풀소리
  2. 2006/02/19
    (4)
    풀소리
  3. 2006/02/16
    기자와 창녀 그리고 나(4)
    풀소리

그래도 봄은 오더라

1.

총파업과 철도파업.

당연히 지침을 따라야 하고, 연대를 해야 하면서도

파업에 동참하지 못하는 난 괴롭다.

 

물론 '기러기 이론 '을 들먹이며 파업대오가 20만 쯤 됐을 때 자주관리기업부터 파업에 돌입하고, 30만 쯤 됐을 때 주요 사업장부터 파업을 하겠다고 하지만, 전략 전술의 옳고 그름은 별개로 구차하게 보이는 건 마찬가지다.



더욱이 총연맹의 총파업 지침이 떨어지고, 중부권 이북 조합원들에게 국회앞 집결투쟁의 지침이 떨어져 동지들이 속속 국회앞으로 모여드는 순간 난 상집 간부들을 이끌고 충북 영동 산 속에서 수련회를 가졌다.

 

수련회는 이미 오래 전에 잡혀있었고, 이번에 열지 못하면 노조 사정상 당분간은 열 수 없다는, 그래서 중요한 올해 상반기 사업을 전국에 흩어져 있는 상집성원들이 공유할 수 없다는 절박함 때문에 강행한 수련회였지만, 쉴새없이 날라오는 문자만큼이나 맘들이 불편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2.

어쨌든 수련회는 성과가 있었다.

참가대상 12명 중 11명이 참가한 것도, 허심탄회한 토론이 있었던 것도 성과라면 성과다.

 

이왕 공기 좋은 산속(민주지산 휴양림 밑)에 왔으니 잊을 건 잊자.

산속의 공기는 너무나 좋고, 거칠 것 없는 햇살은 온풍기를 쪼이는 것 처럼 드러난 살결에 그대로 느껴졌다. 어릴적 햇볕 좋은 겨울날 양지쪽 토담벼락에 서서 해바라기를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오랜만이다.

 

수련회가 끝나면 의례 뒤풀이다.

영동 동일버스 지부장이 낸 쏘가리 매운탕 탓인가, 밤 11시 조금 넘어 시작한 술자리가 어영부영 하다보니 벌써 새벽 3시다. 내일을 위해 자자.

* 요놈이 그 유명한 황쏘가리다. 왜 먹었느냐고는 묻지마라.
 

3.

서울로 올라오는 길은 무주를 경유하는 것으로 잡았다. 그것이 빠른 길이다.

무주에 들러 점심을 먹었다. 남도의 음식 맛은 말할 것도 없이 유명하지만, 우리가 들른 음식점은 기대를 하고 간 우리들조차 감탄시킬 정도였다. 너무나 맛깔스런 음식들이 아까워 낯술 한잔씩도 하고...

* 한정식집 뜰앞에 있는 목련은 봄빛이 완연하다.

 

나와보니 뜰앞 목련은 봄햇살에 봉우리가 탱탱해지고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여기저기를 찍는데 주인 아주머니는 '저기 저놈은 막 벌어지려고 해요' 하며 거든다.

 

가까이서 보니 아직 벌어지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정말 그러네요' 하며 맛장구를 쳤다.

 

4.

고속도로로 가는 길에 커다란 누각이 있다.

이왕 늦은 거 저기나 잠깐 들렸다 가자.

올라가니 한풍루(寒風樓)란다. 루(樓)와 정(亭) 은 보통 큰 것이 루고 작은 것이 정자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정확히 말하면 국가나 관청에서 관리하던 게 루고, 개인이 소유 및 관리하던 게 정이다. 물론 약간의 예외는 있지만 말이다.

* 시골의 누각답지 않게 한풍루는 전면 3칸 측면 2칸 도합 6칸으로 제법 당당하다.

 

어쨌든 루(樓)가 있는 곳은 대부분 관청이 있었거나 소재지다.

한풍루도 마찬가지다. 관청이 있던 곳에 늘 그렇듯이 이곳도 예외 없이 한풍루 옆에는 공덕비가 늘어서 있다. 쓰여진 이름에 나 같은 사람은 늘 욕을 하는데, 저 비석의 주인공들은 개의치 않고 확실한 징표를 세우고 싶어했던 겐가? 가진 놈들의 속성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가?

 

* 무슨 나무일까 미쳐 확인을 못했다. 한풍루 앞에 있는 나무로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다.


5.

서울로 가까이 올라갈수록 상념은 깊어진다.

노래도 부르고, 실없는 우스개 소리도 하지만, 그렇다고 어디 근본이 바뀌랴.

 

휴게소에 들렸더니 커피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도회다. 서울이다. 적어도 내 머리 속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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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쟁 사업장에 들렸다 오니 운수4조직 집회시간이 지났다. 늦었다.

사무실에서 간단히 처리할 것을 마치고 전철역으로 걸음을 서둘렀다.

문득 지나는데, 근로복지공단 담벼락 옆 잔디밭에 냉이가 자라고 있다.

스쳐 지나가다 다시 와보니 냉이뿐만 아니라 이것저것 봄풀들이 땅을 뚫고 있고, 자라고 있다.

봄이다.


옛날에는 사람들도 동물들처럼 발정기가 있었고, 그게 봄이라고 한다.

원시의 야성을 잃어버렸을지라도, 봄의 각도 높은 환한 햇살 탓인지, 난 봄이 되면 몸과 정신이 한결 좋아지곤 했다. 적어도 작년까지...

그런데 올해는 봄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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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와 창녀 그리고 나

1.

어제 저녁 일이다.

우리 노동조합 3호 노동자 자주관리기업인 대구 달구벌버스 출범식에 들렸다 밤 10시가 넘어 들어왔다.

아내는 지역에서 있은 노회찬 의원 초청 강연에 다녀오는 관계로 집에 없었다.

 

'술이라도 한잔 할까...'

 

슬며시 일어나 뒤진 냉장고에는 술이 없다.

아내에게 전화하여 올 때 술 좀 사오라고 부탁했다.

 

2.

아내는 산사춘, 난 맥주.

홀짝 홀짝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 하다 아내는 내게 다음날(16일) 분회모임(아내는 분회장이다.)을 하는데 올 수 있느냐고 묻는다.

난 내일 가봐야 안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아내는 날 가만히 보더니 한마디 한다.

 

'기자와 창녀의 공통점이 있데. 그게 뭔지 알어?'

'뭔데?'

'첫째, 그날 무슨 일이 있을 지는 그때 가봐야 안다.'

'다음은?'

'둘째, 저녁에 집에 올 땐 술에 취해있던가, 그렇지 않으면 술을 사들고 온다. 그리고 세번째로는 3년 안에 때려치우지 못하면 그 직업이 평생간다래.'

 

'... 그럼 나하고 같네.'

'뭐냐?'

 

3.

그리고는 서로의 스트레스에 대해서 얘기했다.

아내는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고양시를 벗어나고 싶어한다. 이유를 정확히 말하지 않는 것 만큼 스트레스를 받겠지...

난.

난, 팔자에 없는 사무처장을 맡아 수시로 터지는 투쟁가 교섭에 결정과 지침을 내려야 한다. 대부분 고용문제 등 사활이 걸린 문제인데, 현장 동지들이 둥지 속 아기 새들처럼 속 시원한 해결책을 고대하는데, 사실은 대부분의 경우 별 뾰족한 대책이 없다.

또한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대산별 건설 등 조직 전망도 불투명하다. 이른바 '진정성'이 '현실'의 굳건한 '벽'에 갖혀버린 것 같다.

 

당도 노총도 그리고 나 자신도, 써야할 무기들은 왕조 말기의 지방관아 무기고 속처럼 하나같이 변변한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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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저는 위 직업에 대하여 폄하하자는 의도는 전혀 없으며, 어떠한 편견도 가지고 있지 않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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