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분류 전체보기

590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01/30
    험난한 인생...(3)
    풀소리
  2. 2008/01/29
    겨울 무창포(1)
    풀소리
  3. 2008/01/23
    나의 사랑, 나의 결별(5)
    풀소리

험난한 인생...

이명박 정권은 영어몰입교육을 하겠다고 설친다.

 

불평등한 사회만으로도 계급과 계층이 유전되는데,

그것도 모자라 교육제도로써 그 유전시스템을 더욱 확고히 하겠다는 거겠지...

 

우연히 모아논 사진을 보니

암울한 기분에 휩싸인다.

 

사진을 연결해서 보면

 

입시에 관한한 가장 영험하다는 갓바위에서 치성을 드리는 학부모들

 


자녀 입학을 위해 기도하는 부모들 

 

오리엔테이션에서 환하게 웃는 신입생들/ 여기까지 얼마나 험한 경쟁을 뚫고 왔을까?

 


졸업/ 얼마나 많은 노력과 돈이 들었을까...

 


취업/ 또 다시 험한 경쟁을 뚫고 입사.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우리 목을 향한, 핏물이 맺힌, 저 날카로운 X는...

 

노동조합은 희망일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희망이 될 수 있을까...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넘어 평등한 세상은 언제나...

 

* ps : 위 사진은 글 내용과 관계없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겨울 무창포

지난 23일 - 24일

수련회 때문에 무창포에 다시 갔다.

 

겨울이라 바다도 역시 황량하였지만

무창포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썰물로 바닷길이 드러난 무창포

 

정세토론회 참석 관계로 우리는 예정보다 늦게 무창포에 도착했다.

저녁을 먹기 위해 들른 식당에서, 주인은 내일 아침에 바닷길이 열리니 한번 가보라고 한다. 바다가 열리는 시간은 9시 - 11시란다.

 

8시가 넘어 시작한 수련회는 11시 30분이 넘어 끝났다.

모두 모여 뒷풀이를 하는데, 역시 리버럴한 교선담당자들이라서 그런지 모두 참 재밌게들 놀더라.

 

내 아무리 노는 걸 좋아해도 회의도 했다는 증거

 

막판에는 게임을 시작했다. 물론 벌칙은 술마시기다.

우리는 수준에 맞게 아주 단순하면서도 도박성과 중독성이 있는 게임을 했다.

게임을 잘 못하는 난, 그러나 용케도 비켜갔다. 그러나 몇번 연속으로 걸려 오기가 난 김정현 국장은 유리컵에 술을 따라 벌주를 만들었고, 나는 하필 그 게임에서 걸려버렸다.

난 창문에 올라가 호기롭게 병나발로 술을 마시던 '전쟁과 평화'의 삐에로 대위(?)처럼 자리에서 일어서서 단숨에 술잔을 비웠다.

 

내가 벌주 큰잔을 마셨을 땐 이미 새벽 3시가 넘었고, 연맹 윤춘호 국장은 밤바다를 보러 가자고 했다.

물론 밖은 밀어닥친 한파로 몹시 추울 것이라는 사실은 모두가 앍고 있었다.

그러나 몇 시간 동안의 술자리에 취해서인지, 아님 호기로워져서인지 모두 흔쾌히 바다로 가자고 했다.

 

바닷길이 열리고, 주민들과 관광객들은 조개잡기에 여념이 없다. 앞의 노부부는 이미 조개잡이를 마치고 돌아온다.

 

밖으로 나오니 정말 추웠다.

우리는 소주 한병을 샀고, 윤춘호 국장은 폭죽을 샀다.

 

뚝을 넘어 바닷가로 나가니 하늘에는 별들이 듬성듬성 떠있고, 바다로부터 밀려오는 바람은 장난이 아니었다.

 

술 한잔씩 먹으며, 불꽃놀이도 하고,

마치 한맺힌 사람들처럼 바다를 향해 소리지르기도 했다.

 

조개도 씻고, 손도 씻도록 만든 바닷물 우물(?)

 

아침이다.

벌써 9시 30분이다.

대충 씻고 바다로 갔다.

 

이미 썰물로 바닷길은 앞에 있는 석대도까지 훤히 드러났다.

주민이고 관광객이고 할 것 없이 조개를 잡겠다고 장화를 신고, 호미를 들었지만, 처음부터 조개잡이에 관심이 없던 난 그냥 산책삼아 바닷길로 접어들었다.

 

불가사리/ 바다의 포식자라고 하는데, 생긴 건 예술이다.


 

홍합조개/ 홍합조개는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다.


미역인지 파래인지 모르겠다. 이것도 많더라.


이윽고 석대도가 코앞이다.

 

되돌아보니 무창포 해변이 아득하다.

 

바다에 부딪쳐 부서지는 아침 햇살은 눈부시다.

석대도 너머/ 또 다른 삶이 있을 것이다.

 


조개 잡으러 들쳐낸 돌밑에서 드러난 이름모를 물고기와 낙지처럼 보이는 불가사리

 

거센 겨울바람에 밀려오는 흰 파도/ 마치 사바나를 질주하는 가젤떼처럼 보였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심상정 비대위원장이 결연한 혁신의지를 피력했음에도

탈당 러시는 그치지 않는 것 같다.

 

내가 속한 고양시위원회 또한 예외는 아니다.

 

탈당하는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절절하지 않은 경우가 없다.

 

오늘은 후배 병곤이 탈당을 하면서 글을 남겼다.

....

 

오늘 바다를 보면서 술 한잔 해야겠다...

 



가야할때를 알고가는...(그래도 예의인 것 같아서)

 

이형기 선생의 낙화라는 시가 있습니다.
대학 1학년때
창밖을 멀리 바라보며
혼자 중얼거리듯 강의를 하시던, 지금은 고인이 된
이형기 선생이라는 분이 쓴 시지요...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물론 진보적인, 리얼리즘적인 시를 쓰신 분은 아니지만
항상 가슴속에 간직하던 소중한 시지요.

민주노동당 초기,
고양시 안영식 선배 석유가게에 처음 찾아갔던,
추운 겨울날,
유기수, 곽장영, 이근원, 이금곤 등 기라성 같은 노동운동 선배들과
미워도 하고, 웃기도 했던 것 같네요.
그때가 아마 당원이 100명 이네였던거 같네요.
지금 고양시는 1천명 당원이되었고, 우리 파주와 강건너 김포가
분리되기도 했구요...

몇날을 고민했던거 같네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새로운 길을 간다는거,
하다못해 동네 조기축구회라도 가입해서 소속감을 가지려는 우리에게
민주노동당과의 이별은 굉장히 어려운 선택인 건 사실이네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길이 아닌 것을...

지금으로부터 15년전,
얼치기 야학 신입 교사가 10년후 나의 인생을 10문10답으로 했을때
자신있게 진보정당 기획부장을 하겠다던 다짐은
이제,
다시 10년후로 미뤄야 겠네요...

몸속에 깊이 박힌 운동권적 말투와 생활 습관,
그리고 死藏된 사상들로 자신을 합리화하지 않으며
가난한 노동자 계급과
춥고 서러운 인민대중을
내맘같이 든든하게 함께해주고

당에 올인하는 분들에게 자꾸 미안해져
자신을 끊임없이 합리화하며 참여에서 멀어지는 그런 당이 아닌

퇴근 후에도, 직장에서도 아니 24시간 중 가끔
자신이 당에 무언가 기여할 수 있는 여건과 기반을 제공해주는
현대화되고 세련된
새로운 진보정당에 기획부장이 되려면
이제 또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리겠네요.

물론 그때 저는 놀랍고 안타깝게도 공자가 말한 지천명의 나이가
되어 버리네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가야할때를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아름답게 느껴지는 걸...

물론 지천명때까지 기다리다 지치니
그전에 기획부장이 아닌
말단 사원으로 열심히 시작해 승진, 아니 특진도 해야겠지요.

마지막으로 이런 말로 끝네지요

.
.
.

이세상엔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많다.
보이지 않는 건 당신과 나의 기회이자 희망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