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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샘

기막힌 밤이 지나고 아침이 왔다.

 

토요일 오후, 소파에 기댄 채 두어시간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어나니 날이 저물었다. 콩나물을 씻고 김치와 양배추를 채썰어 콩나물밥을 지었다. 냉이된장국을 끓이고 양념간장을 만들어 저녁밥을 먹었다.

 

7시에 약속이 있었는데, 식구들과 밥먹다가 1시간이나 늦었다. 미리 전화를 걸어 양해를 구했고, 뒤늦게 달려가니 다들 술집으로 옮겨 자리를 잡았다. 지역(노동계)의 가장 크고 심각한 현안문제(중의 하나?)에 대해서 이런저런 의견들이 오갔고, 다음 주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모임을 파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1시가 지나서야 잠이 들었다. 술을 여러잔 마셨기에 나도 뒤따라 잠들 줄로 알았다. 아니었다. 지난 일주일간 노트북에 업데이트된 이러저러한 파일들을 백업하다 보니 새벽 3시였다. (노트북은 언제라도 분실할 수 있으므로 주말마다 백업하는 것도 일이다.)

 

그래서 3시에 누웠다. 곧 잠이 들 것이라고 믿었지만 멀뚱멀뚱 천장만 올려다 보고 한참이 지났다. 낮에 노트북에 받아둔 티비드라마를 틀고 리시버를 귀에 꽂았다. 모든 인간관계가 다 뒤엉키고 어긋나더라도 사랑만 있으면 만사형통이란 게 예나 지금이나 티비드라마의 내용인 것을, 왜 갑자기 그걸 틀었을까.

 

보다 말다, 듣다 말다, 안경을 벗었다가 썼다가, 거실에 누운 채 그렇게 시간이 갔다. 그러다가 보면 나도 모르는 새 잠이 들 것이라는 믿음이 처음으로 깨졌다. 5시에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를 켰더니 인터넷이 점검중이었던지 먹통이다. 다시 누웠다. 6시가 오고 7시가 왔다. 와, 잠도 자지 않고 누워서 4시간을 까먹다니-

 

지난 일주일 생체리듬을 아랑곳않고 쏘다녔더니 벌이 내린 모양이다. 7시 30분이 되었고, 다시 인터넷 연결을 시도했다.

 

결국, 잠을 포기하기로 한다. 뭐할까? 산책이라도 나갈까? 오늘 하루의 식단을 짤까? 가족들이 깨기 전에 내 빈 뱃속이나 채울까? 아, 혼자라도 천복순대 본점에 가서 순대국밥에 청양고추를 겯들이는 건 어떨까?

 

어이없이 밤새고 난 아침에 피같은 밤잠을 놓쳐버린게 너무 억울해서 중얼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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