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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례를 집대성한 특별법안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3): 특례를 집대성한 특별법안


과학으로 포장한 종합선물세트

정부가 발표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벨트) 종합계획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자. 총 3,000명 규모로 세계적 수준의 기초과학연구원(ABSI)을 설립한다. 대형연구시설로서 중이온가속기 설치를 우선적으로 추진한다. 지속성장 도시 조성을 위한 비즈니스 기반을 구축한다. 과학과 문화예술이 융합된 국제적 도시환경을 조성한다. 기초과학 거점을 조성하고 지역연구거점과 네트워크화한다. 이만하면 과학을 전면에 내세운 이명박 정부 최대의 종합선물세트이다. 그런 까닭일까, 1월 30일에 열린 특별법 공청회에서는 ‘세계에 사례가 없다’, ‘모델이 없다’는 말들이 여러 번 나왔다. 공청회 발제자는 “1960년대에 박정희씨가 KIST와 KDI를 설립한 것에 버금가는 혁신적인 조치”라고 찬양했다.

문제는 내용이고 질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채 100불도 되지 않던 시대에 정부가 했던 역할을 2만불 시대에 와서도 똑같이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선진국 중에서 어떤 나라가 불과 5년 만에 국제+과학+비즈니스를 모두 만족하는 도시를 새로 건설하겠다고 나선 적이 있는가. 실리콘밸리, 보스턴클러스터 등 정부가 곧잘 인용하는 외국 사례들도 국가적 필요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시스템의 구축, 그리고 다양한 부문의 전문가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동으로 오랜 세월에 걸쳐 이루어진 것이다. ‘과학’과 ‘비즈니스’를 융합하겠다는 명분으로 노무현 정부가 시작했던 대덕연구개발특구가 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기대에 부응하려면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라.

특별법 중의 특별법

특별법안의 내용을 보자. ‘벨트’ 관련 계획은 다른 법률에 따른 보존 및 개발계획보다 우선하고, ‘벨트’에 대하여 규제를 완화하기 위하여 특례를 정하는 규정은 다른 법령에 우선하여 적용한다(제4조). 기초과학연구원은 ‘과학기술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의 설립·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정출연법)’과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제11조). 기초과학연구원은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서 확정된 5개년 계획에 따라 안정적으로 연구비와 운영비를 지원받을 뿐만 아니라 이 예산을 다음 해로 이월할 수도 있다(제15조). 그야말로 특별법 중의 특별법이다.

‘정출연법’과 ‘공운법’은 정부출연연구기관을 통제하고 간섭하는 근거가 되는 법으로 원성을 사왔다. 다년도 연구예산지원제도는 오랫동안 출연연구기관에서 요구했던 제도이다. 연구현장의 오랜 희망과 숙원을 모르쇠로 일관하더니 새로 설립하는 기초과학연구원에 대해서는 이렇게 특혜를 주겠다고 한다. 과도한 특혜는 기존 연구기관 종사자들의 사기를 위축시킬 뿐이다. 한편, 계획대로 한다면 2015년 이후 기초과학연구원은 연구인력 3천명에 한해 예산이 6500억원에 이르러 현재 한국전자통신연구원과 같은 규모의 연구기관이 하나 더 생기는 셈인데, 그간 정부의 행태로 봐서는 이런 매머드급 연구기관에 무조건 지원만 하고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능할지도 의문스럽다.

앞의 특례들은 그래도 약과이다. 특별법안 49개 조항 중에서 25개 조항이 외국인과 외국인투자기업에 대한 무한특례를 보장하는 내용들이다. 국세와 지방세 감면, 임대 부지 조성과 임대료 감면, 의료시설·교육시설·주택 등 각종 편의시설의 설치와 자금 지원, 국가유공자나 장애인 우선고용 의무 면제, 유급휴일 대신에 무급휴일 부여, 근로자파견대상 업무 확대 또는 연장, 외국어 서비스 제공, 외국인에 대해 민영주택 우선 공급, 외국인 자녀 전용 보육시설 설치와 보육비 보조, 외국인학교 설립과 운영 지원, 외국교육기관의 설립과 운영, 외국인 진료병원 지정과 운영, 외국의료기관 또는 외국인전용 약국 개설, 이 밖에도 이루 열거할 수도 없는 많은 특례와 특혜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우리의 기초과학 연구역량을 대대적으로 확충한다면서 외국인 투자에만 매달리는 법안을 나열하고 있으니 이게 어찌된 영문인가.

과학기술 육성이 아니라 외국인투자유치법

결국 국제 수준의 기초연구환경을 구축한다는 취지는 퇴색되고 외국인 또는 외국인을 등에 업은 국내 부자들을 대거 유치하려던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경제자유구역법)’의 판박이다. 공교롭게도 특별법 공청회가 열린 1월 30일은 경제자유구역법이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으로 개정 공포된 날이었다. 정부는 경제자유구역법의 특별법 전환에 따라 경제자유구역이 ‘규제 없는 경제특구’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면서 ‘외국인투자 유치활동에 긍정적 효과를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하지만, 이 말을 뒤집어보면 2002년 경제자유구역법 제정 이후 6년간 정부의 갖가지 특혜 세례에도 불구하고 외국인투자 유치가 미미했다는 사실을 시인하는 셈이다.

갖가지 특례로 화려하게 치장한 특별법을 보는 과학기술자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태릉선수촌 짓고는 올림픽 메달 획득을 외치듯이 ‘벨트’를 내세워 모든 과학기술자들에게 노벨상을 향해 달려가라고 다그치는 격이니 말이다. ‘벨트’라는 낯선 이름이 아니더라도, 지금 이 땅에서 밤낮으로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과학기술자들과 이공계 대학생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은 의외로 간단하다. 선진화, 구조조정, 경영효율화, 그 어떤 이름으로든, 제발 더 이상 과학기술자들을 흔들지 마라. (계속됨. 2009. 2. 17)

-미디어충청에 기고하고, 조금 줄여서 <공공연구24시>에 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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