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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오프제, 사용자가 노조를 지배한다

뭘 했는지 내세울 것은 특별히 없지만

잠이 부족할 정도로 바쁘게 지내고 있다.

블로그에 뭘 올리는 것도 좀 심드렁했는데

일상으로 겪는 일들을 똑같이 올리지는 못해도

요즘 쓴 것이나 예전에 쓴 낙서나

메모용으로 찍었던 사진이라도 틈틈이 올려보자.

그것도 책상머리에 앉아있어야 가능한데....ㅎㅎ

 

아래 글은 우리 노조 노보(소란)에 보낸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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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오프제, 사용자가 노조를 지배한다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소귀에 경읽기가 될지라도 우선 분명히 밝혀두고 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노조 전임자에 대한 임금 지급을 법으로 금지하는 것은 노사 자치에 대한 중대한 침해입니다. 국제노동기구(ILO)에서도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을 금지하는 규정을 폐지하라고 여러 차례 권고한 바 있습니다. 정부가 입만 열면 선진국은 그렇지 않다고 떠드는데, 정부가 선진국이라고 칭송하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어디에도 전임자 임금지급을 금지하는 법은 없으며, 대체로 단체협약에 따르도록 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전임자에 대한 임금 지급 금지 이유를 ‘노동조합의 자주성 훼손’이라고 강변하고 있지만, 전임자 임금을 지급하는 것은 사용자의 시혜적 조치가 아니라 노동조합의 투쟁의 결과로서 확보했다는 점에서 결코 부당노동행위가 될 수 없고 법원의 판례도 이를 그대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도저식 밀어붙이기가 특기인 이명박 정부는 2010년 신년 벽두부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명문화한 노동법 개정안을 날치기 처리했습니다. 지난 노동절(5/1) 새벽에는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근심위)가 경찰과 노동부 공무원들을 동원하여 노동계 위원들을 배제한 가운데 법적 시간을 넘긴 상황에서 타임오프(Time-off)안을 날치기로 통과시켰습니다. 이렇게 두 번의 날치기를 자행하고서도 노동부는 주저없이 5월 14일에 타임오프 한도를 날치기한 내용 그대로 고시합니다. 타임오프를 둘러싼 논란이 갈수록 뜨거운데, 지방선거에서의 노동계의 반발을 의식해서였는지, 선거 다음날(6/3)까지 기다렸다가 노동부는 자의적 판단만을 담아서 <근로시간면제 한도 적용 매뉴얼>(이하 “타임오프 매뉴얼”)을 발표했습니다.

 

날치기 타임오프제 : 하박상쪽박

 

정부가 날치기 처리한 타임오프의 내용은 <표1>과 같습니다. 연간 2,000시간의 타임오프에 대해서 1명의 전임자가 활동할 수 있다고 환산하면 1만명 이상의 대기업의 경우 전임자수가 무려 72%나 감소하게 됩니다. 정부가 타임오프 도입의 취지는 노동조합의 정상적 운영을 방해하지 않는 수준의 전임자를 인정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던 것과 완전히 배치되는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정부는 근심위의 타임오프 결정에 대해서 ‘하후상박(下厚上薄)’이라고 강변했지만 노동계는 ‘하박상쪽박’이라고 성토합니다. 타임오프 사용 대상자와 대상 업무, 사용인원 등을 일일이 제한하여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침해한다는 측면에서 조합원수가 적은 노동조합도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타임오프가 그대로 적용할 경우에 국내 최대 규모인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조합원 45,000명)는 현재 220명의 전임자를 올해 7월부터 24명으로, 2012년 7월부터는 18명으로 대폭 줄여야 합니다. 타임오프를 나눠서 쓰더라도 2012년 6월까지 48명, 그 후에는 36명만 유급 전임활동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상대적으로 대규모 사업장 노동조합이 많이 가입해 있는 민주노총이 특히 큰 타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조합원 규모

노동계

날치기안

노동연구원

전임자실태조사

(2008)

민주노총

한국노총

면제시간

인원한도

50명 미만

노사자율

1,050-6,300

(0.5-3인)

1,000(0.5명)

3배수

1.3명

50-99명

2,000(1명)

100-199명

3,000(1.5명)

1.9명

200-299명

4,000(2명)

300-499명

10,500(5인)

5,000(2.5명)

2배수

3.7명

500-999명

6,000(3명)

1,000-2999명

27,300(13인)

10,000(5명)

24.1명

3,000-4,999명

14,000(7명)

5,000-9,999명

48,300(23인)

22,000(11명)

10,000-14,999명

48,300 + 조합원수 1천명당 2,100시간 추가

(23인+ 1천명당 1명)

28,000(14명)

 

15,000명 이상

36,000(18명)

<표1> 날치기 타임오프안과 노동계, 기존 실태 비교

 

* 15,000명 이상은 2012년 6월 30일까지는 2800시간+3000명당 2,000시간(1명)추가함.

 

대기업 노동조합에 대한 타임오프의 지나친 축소 기도가 사용자측의 요구를 뛰어넘고 있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지난 4월 21일에 한국경제신문과 한국노사관계학회가 함께 실시한 ‘전임자 및 복수노조에 대한 인식조사’<그림 1>에서 사용자측 조사 대상자의 가장 많은 응답이 조합원 1,000명 이상의 경우 300명당 1명의 전임자가 적정하다는 것이었지만, 정부가 날치기한 타임오프에서는 상한선을 18명으로 제한한 것입니다. 앞에서 예로 든 현대자동차지부의 경우 150:18로 무려 8배가 차이가 나는 수치입니다. 사용자들의 다수 의견도 전임자수를 대폭 줄여야 한다는 것은 아닌데 정부가 사용자보다 더 앞장서서 노사관계를 파행으로 몰고 가고 있습니다.

 

 

 

우리 노동조합에서 예상되는 문제들

 

우리 노동조합은 대부분의 지부가 300명 미만의 조합원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타임오프를 100% 전임활동으로 전환한다면 전임자가 당장 크게 축소되지는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몇 가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우선, 조합원수에 따라서 타임오프 한도가 정해지는 제도의 특성으로 인하여 조합원수를 일정 수준 이하로 줄이려는 사용자들의 부당노동행위가 극심해질 것입니다. 실제로 한국건설기술연구원지부와 한국해양연구원지부의 경우 사용자의 탄압으로 조합원수가 급격히 감소하여 현재의 전임자 수준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복수노조의 경우에도 어려움이 예상됩니다. 복수노조의 사업장의 경우 모든 노동조합의 조합원수를 합산하여 적용될 타임오프 한도를 정한 후 이를 다시 각각의 노조별로 나누어야 합니다. 산업기술평가관리원지부, 한국연구재단지부는 통폐합으로 말미암아 이미 복수노조 상태인데, 타임오프가 그대로 적용되면 전임자를 온전히 유지하기 어렵고 노동조합 활동이 크게 위축될 수 있습니다.

 

타임오프 매뉴얼을 보면 상급단체 파견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사용자들이 이것을 확대해석하여 우리 노동조합의 임원이나 상설위원장, 국장 등의 활동에 대해서 제멋대로 상급단체 활동이라고 규정하고 논란을 벌일 여지가 있습니다. 우리 노동조합의 통일협약에는 본부 임원으로 피선되면 전임을 추가로 인정하도록 정하고 있는데 타임오프제에 묶이면 사문화될 수도 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별도의 노동조합을 설립하게 될 경우에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과 탄압에 더하여 타임오프를 빌미로 전임활동을 보장받기는 더욱 힘들게 될 것입니다. 타임오프제는 노동자의 단결권까지 파괴하는 것입니다.

 

타임오프 문제를 생각할 때 꼭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타임오프가 최저기준이 아니라 상한선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별 사업장의 전임자수가 타임오프 수준 안에 있다고 해서 피해가 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공공기관의 경우에는 정부가 지침만 내리면 법은 아랑곳하지 않고 일단 강행해온 행태에 비추어 볼 때, 타임오프가 상한선임을 내세우면서 유급전임시간을 삭감하려는 시도가 계속될 것이고, 정부는 지침이나 감사원 감사 등을 통하여 타임오프를 활용하는 전임자가 업무범위를 벗어났는지 여부를 꼬치꼬치 파고들면서 노동조합을 더욱 위축시키려고 할 것이 뻔합니다.

 

근로시간면제자는 전임자와 전혀 다르다

 

노동부의 타임오프 매뉴얼을 보면 ‘노조전임자’와 별개로 이른바 ‘근로시간면제자’라는 개념을 제멋대로 만들고 근로시간면제자의 업무 범위를 엄격히 제한함으로써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침해하고 노동조합을 정부의 뜻대로 통제하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타임오프 매뉴얼에서 제시하고 있는 타임오프 한도 사용 절차<그림2>를 보면 더 이상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의 자주적 결사체가 아니라 사용자에게 종속된 기구에 불과합니다.

 

 

 

 

노동부가 임의로 정한 ‘근로시간면제자’는 “단체협약으로 정하거나 사용자의 동의에 의해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한도 내에서 사용자와의 협의‧교섭, 고충처리, 산업안전활동 등 노조법 또는 다른 법률에서 정하는 업무와 건전한 노사관계 발전을 위한 노동조합의 유지‧관리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입니다. 근로시간면제자 명단과 개인별 면제시간은 노동조합이 사전에 사용자에게 통보하여야 하고, 근로시간면제자로 통보된 이후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노사가 협의하여 변경하여야 하며, 사용자와 협의 없이 노조가 임의로 변경하거나 수시로 변경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합니다. 근로시간면제 대상 업무는 근로시간면제자가 반드시 우선적으로 수행해야 합니다.

 

근로시간면제자는 법에 정해진 소정의 대상 업무를 자유롭게 수행할 수 있지만, 근로시간면제 대상 업무 이외의 업무(가령 상급단체 파견, 파업, 공직선거 출마 등은 노사 공동의 이해관계에 속하는 업무와 무관한 활동이라 유급처리해서는 안된다고 노동부는 주장함)를 수행하거나 노사 당사자가 정한 시간 한도를 초과하는 경우 그 해당 시간에 대해서는 무급 처리하여야 하며, 근로시간면제자의 활동업무 및 사용시간에 대해서는 사후 정산합니다. 더 나아가 노동부는 근로시간 면제자로 지정되지 않은 조합원의 총회, 대의원회, 임원선거 등 노동조합 활동은 근무시간 외에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법제화를 빌미로 노동조합 활동까지 송두리째 봉쇄하려는 수작입니다.

 

앞에서 밑줄 친 내용만 보더라도 타임오프가 갖는 독소적인 성격을 잘 파악할 수 있습니다. 초법적이고 일방적이며 자의적인 지침, 타임오프 매뉴얼에 따르면 노동조합의 전임자와 근로시간면제자는 분명히 다릅니다. 노동조합의 전임자는 업무범위에 제한이 없고 인원수도 노사가 합의하여 결정하면 되지만 사용자가 급여를 지급하면 부당노동행위로 처벌받게 됩니다. 근로시간면제자는 타임오프 한도 내에서 사용자가 급여를 지급하지만 법에서 정한 업무범위를 벗어나면 무급처리합니다. 근로시간면제자의 활동이 정당한지 어떤지 또 임금을 지급할지 말지에 대해서도 사용자가 지배‧개입할 수 있기 때문에, 노동조합 전임자가 근로시간면제자가 되면 사실상 사용자의 통제 아래 놓이게 됩니다. 정부는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타임오프제 도입을 통해서 노동운동의 자주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결과는 이렇듯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파괴하고 노동조합 활동의 뿌리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타임오프는 노동기본권을 유린한다

 

타임오프 매뉴얼을 들여다 보면 우리 사회에서 노동기본권이 어떻게 유린되고 있는지 또 노동조합의 위상이 얼마나 추락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IMF 환란 이후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권을 거치면서 정부는 개별적 노사관계부터 집단적 노사관계까지 철저히 개악했고, 노동자와 노동조합은 이제 비빌 언덕조차 남지 않았습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4대강, 세종시, 무상급식, 천안함 등이 첨예한 쟁점으로 떠올랐지만 정작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좌지우지하는 노동기본권 문제는 전혀 거론되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와 관련해서 말하자면 이전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노사 자율로 임금지급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도록 투쟁해야 할 것입니다.

 

노동악법이 개정되기까지는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하는 강력한 투쟁과 상당한 시일이 필요합니다. 그 때까지는 노동악법과 타임오프 매뉴얼에 순순히 적응하면서 참는 것이 노동조합이 할 일일까요? 타임오프 매뉴얼을 따라가면 노동조합은 없고 사용자의 일상적 지배 아래 놓인 노동자 관리조직이 노동조합을 대체할 것입니다. 그런 미래라면 마땅히 거부해야 합니다. 민주노조가 모두 함께 뭉쳐서 악법을 깨뜨리는 투쟁을 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동시에 기존 조합활동을 새롭게 혁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즉, 기존의 전임자 중심 조합활동에서 비전임 조합간부를 포함한 활동으로 확대하고 인물 중심이 아닌 노동조합 조직이 유기적으로 가동될 수 있는 조직체계를 갖추어야 합니다. 바야흐로 민주노조운동이 기로에 섰습니다.(2010.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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