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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4/12/06
    꿈...(5)
    손을 내밀어 우리
  2. 2004/12/02
    내가 한 말(6)
    손을 내밀어 우리
  3. 2004/12/01
    뜬금없고 실없는 얘기 한 편(1)
    손을 내밀어 우리

꿈...

꿈에서 나는 새벽 4시에 약속이 잡혀 있었다. 그 시간에 맞추어 기차표를 예매해 두었는데 어디선가 '술라'가 나타나더니 버스를 타고 가자고 했다. 지금은 없어진 옛 무궁화열차를 예매했던지, 5명이 한 줄에 나란히 앉아서 갈 계획이 틀어졌다고, 속으로는 아쉬워하면서 '술라'에게 예매를 맡겼다. 그리고 시간이 지났고 우리는 기다리는데 '술라'가 나타나지 않았다. 연신 시계를 보면서 초초해하는데 누군가 약속시간이 5시 37분이라고 했고 아직 차 시간이 넉넉하게 남았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5시 37분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한번도 사지 않은 로또 복권을 생각했다. 신의 계시인 듯 구체적인 5개의 숫자가 나에게 주어졌는데, 잠이 깨자마자 증발해 버렸다. 로또는 6개의 숫자를 맞추어야 하는데, 112를 11과 2로 풀 것인지 1과 12로 풀것인지를 고민했던 기억은 남았다. 버스를 탔는지 기차를 탔는지 약속장소에 갔다. 거기는 술집이었다. 술집은 빼곡하게 손님들로 가득 찼다. 전화를 했다. 약속했던 곳은 그 술집이 아니라 외딴 오두막에 사는 어떤 여성 동지의 집이라고, '이광오' 국장이 알려주었다. 아까는 술라였고 왜 이번에는 이광오일까, 꿈 속에서도 나는 궁금해졌지만, 다음 장면으로 곧바로 넘어간다. 약속장소를 찾아서 헤매다가 다른 동지들을 만났다. 동지들과 축구를 한다. 내가 던져넣기를 해야 하는데 공을 머리뒤로 빠뜨렸다. 관중의 야유. 그러나 곧 가운데있던 우리 편에게 공이 건네지고 그 공은 단 한방에 골대 안으로 그림처럼 빨려들어갔다. 그 장면은 아직도 생생하다. 문지기는 골이 들어가고 나서야 공이 거기에 있는 것을 알아챈 듯 분주했다. 약속이 뭐였는지 모르겠다. 그 약속이 끝나면 만나자고 연락을 받은 기억이 난다. 그 시간이 새벽 6시인데 나는 또 그러겠다고 한다. 잠은 언제 자나 한탄하면서 나는 꿈 속에서 연신 약속을 하고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고 또 꿈속에서 꿈을 꾸고 고민을 하고 그랬다. 증발한 꿈의 기억들은 내가 그림을 잘 그렸으면 좀 더 생생하게 들려줄 수 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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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 말

최근에 내가 했던 말 중에서 지금 불쑥 기억난 내용들;

 

"노동자, 민중의 삶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이 천박한 자본주의 나라에서

 노동조합은 저에게 큰 스승이었고 조합원 동지들은 언제나 희망이었습니다."

(지난 토요일, 선거용 1분 동영상 촬영할 때 내가 읊조렸던 첫 대사)

 

"내가 노동조합을 통하여 세상을 바꾸지는 못했을지라도,

 노동조합이 내 삶을 바꾼 것은 분명해요.  

 노동조합은 내 삶을, 그것이 없는 것보다  훨씬 건강하게 만들어 주었으니까요.

 만약에 노동조합이 아니었으면 내 인생은 크게 망가졌을 것 같아요.

 구태여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을 이럴 때 빌어온다면,

 노동조합이 내 삶을 바꾼 이상 저 편에 있는 세상의 모습도

 아주 쬐금 바꾸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요.

 하지만, 당대에 조바심을 낼 이유는 없지요, 뭐.

 길게 보면서 대체로 난 낙관해요."

(진보네트워크 6주년 행사에 갔다가 돌아오는데, 배모 동지가 물었다.

 노동운동을 하면서 세상을 얼마나 바꾼 것 같으냐고, 힘들지 않냐고?

 마침 고모 동지도 함께 있어서 우리 둘에게 동시에 던진 질문이었고,

 거기에 대한 내 답의 요지가 이랬음)

 

내가 했던 말을

나는 잊고 다른 사람이 기억해낼 때처럼

당황스럽고 미안하고 부끄러운 일이 또 있을까.

이따금 내가 한 얘기들을 되새겨보곤 하는 까닭이다.

글 또한 그렇겠지.

 

**

오늘 잠깐이나마 만난 분들;

진보넷 식구들, 블로거들, 여러 단체의 활동가들, 노동조합 간부와 조합원들,

모두 반가웠습니다. 행복하고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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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고 실없는 얘기 한 편

<네트워커>에 보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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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골치 아픈 투정 좀 해야겠다. 이른바 이공계 기피라는 것이 현실로 드러나기 전에도 과학기술계 정부출연기관 종사자들은 ‘어려서 과학자 꿈 커서 보니 처량하다’는 따위의 구호를 들이밀며 처우에 불만을 토로하곤 했다. 노후보장에 관한 불만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는데, 그럴 때면 단골로 등장하는 것이 연금타령이다. 가방 끈이 길어도 한참 길고 평생 국가발전을 위해 헌신하는데 과학기술연금같은 것이 왜 없느냐 하는 말이렷다.

 

원성이 되풀이되자 10년 전쯤 과학기술처가 연금제도 도입을 검토했지만 문제가 만만치 않아 포기했던 일도 있다. 그 후에도 과학기술자들의 노후보장 문제가 빈번하게 등장하고 이공계 기피현상이 사회적 관심을 모으자, 2002년에 드디어 ‘과학기술인공제회법’이라는 것이 만들어졌고, 이어 과학기술인공제회가 출범하기에 이르렀다. 과학기술인공제회는 국민연금에 묶인 출연기관 종사자들의 노후소득을 사학연금 가입자와 비슷한 수준으로 만들기 위해 개인이 부담하는 퇴직금(연급여의 1/12, 약 8.3%)과 사용자가 부담하는 연급여의 5%, 그리고 정부가 추가로 부담하는 연급여의 2.7%의 보험료를 재원으로 하여 연금(퇴직공제)사업을 설계했다.

 

정부가 공제회 사업을 자랑삼아 떠들어대자 사람들은 막연한 기대에 들뜨기도 했는데, 내용을 들여다보니 그야말로 빛 좋은 개살구였다. 다른 공제회에 정부예산을 지원한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2.7%의 정부 부담분은 일찌감치 날아갔다. 국민연금, 의료보험 등 갖가지 법정부담금에 시달려온 사용자들에게 5%의 추가 부담분은 자칫 임금인상분에서 빼내야 할 판이니, 노후를 대비한답시고 오히려 실질임금이 깎이게 생겼다. 게다가, 운용실적에 따라 퇴직급여가 연동되는 확정갹출형이라, 이래저래 남는 게 없는 장사가 될게 뻔했다.

 

이렇듯 돈도 부족하고, 제도 자체도 부실하니 그냥 없던 일로 하면 될 것 같지만, 그게 또 간단치 않다. IMF 환란을 빌미로 퇴직금누진제까지 폐지한 이후 더욱 불안해진 노후보장의 측면에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데 자기 퇴직금 8.3%에 사용자가 5%의 덤(?)을 얹어준다니 좋아라 하는 입장, 일단 시작하면 정부가 어떻게든 추가로 지원하지 않겠느냐는 기대, 무릇 모든 제도라는 것이 시행착오를 거쳐야 제대로 자리잡게 된다고 하는 언설까지 뒤섞이면서, 퇴직공제사업에 대한 반대를 피력해온 과기노조의 최근 입장도 “재원부족, 제도부실, 공제사업의 ‘졸속추진’을 반대한다”고 재정적 지원 확충과 제도적 보완에 다소 무게가 실려 발표되었다. 

 

이 땅의 어떤 노동자에게도 낭떠러지를 비켜가는 쉬운 길은 없다. 노동자, 서민에게 큰 힘이 되어야 할 국민연금이 표류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후소득 보장’이란 명분 아래 정부가 추진 중인 ‘기업연금제(퇴직연금제)’마저 그대로 도입되면 퇴직금 제도는 사실상 해체되고 영세 사업장과 비정규 노동자는 또 여지없이 소외될 것인즉, 노동자들이 끼리끼리 나뉘어 고민하지 말고 하나로 똘똘 뭉쳐 오늘의 삶이든 먼 미래의 전망이든 단번에 바꿔보자고 하면, 뜬금없고 실없는 얘기가 되나? 총투표로 총파업 결의는 했건만, 힘이 펄펄 넘치는 총파업은 여전히 미지수인 오늘! (2004.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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