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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새벽 4시 30분에
오늘 하루의 일과를 시작해서
아침 8시 임원회의,
아침 10시 임원-사무처회의(상집회의),
겨우 회의 두개를 끝마치고 나니
오후 4시 30분이다.
지금
각 실별로 점검회의가 또 이어지고 있다.
회의로 살아온 인생,
회의(會議)에 대해 끊임없이 회의(懷疑)하면서도
다시금 회의에 매달리고야 마는.
회의를 혁신해야
조직이라는 것,
운동이라는 것,
사람이라는 것,
모두모두 혁신할 수 있지 않을까.
불현듯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의 말이 떠오르네.
-혁신(革新), 그거 무서운 말입니다.
짐승의 가죽까지 벗겨서 새롭게 바꾼다는 거 아닙니까.
그렇게 민주노총을 한번 바꾸어 봅시다.
그 말을 들으면서
잠시 섬뜩한 생각이 들었지.
어릴 적 만화에서 보았던,
식인종한테 끌려가서 거꾸로 매달린 인간의 모습...
그 사람들도 혁신은 못하고
대부분 곧 구출되었지 아마.
주절주절주절주절투덜투덜투덜투덜
아침, 회의를 시작하면서,
올해를 시작할 때 열심히 하겠다는 결의를 다졌는데
지난 두달을 되돌아보니 여러가지 아쉬움이 있으니
3월을 맞아 다시금 새롭게 마음을 다잡아
더 잘 하겠노라고 짧게 말문을 텄다.
그런 것 같다.
연초에 했던 결심은 1월이 지나면 흐릿해져버리고
달초에 했던 다짐은 한 주일이 지나면 스멀스멀 사라지고
아침에 세웠던 계획 따위야 저녁이 되면 정체불명이 되는 것,
사는 것이 그런 것 같다.
거기에다가
나란 인간은 참 물러터진 것이
시시각각 채찍질하고 담금질하지 않으면
하루하루가 위태위태하다.
어쩌랴, 어제의 것들을
끊임없이 반추하고 곱씹어서라도
그래서 엇비슷한 반성과 반성을 거듭할지라도
그렇게 살아온 인생, 그렇게 부딪혀온 세상을.
정회를 하고 점심을 먹다가
봄이라는데 생각이 미쳐서
오래 전 기록들을 더듬어 봤더니
이런 것이 하나 있더라.
정말...
4년이 지났는데 내 삶의 조건은
변한 게 없는 듯.
봄. 봄. 봄. 한라산에도!
봄. 봄. 봄. 지리산에도!
봄. 봄. 봄. 설악산에도!
봄. 봄. 봄. 백두산에도!
야호!
눈보라와 함께 3월이 왔습니다.
3월을 봄이라고 불러도 좋겠지요.
이번에는 봄이 아주 오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아니, 봄이 오지 않아도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겨울이 너무나 깊었기 때문입니다.
겨울의 상처가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그 고통들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상처를 여미고 고통을 덜어내고
함께 새롭게 일어서는 일은
언제나 우리 모두의 책임이지만
겨울은, 그 계절 속에 파묻혔던 나는
굳이 그것들을 외면하려 했습니다.
이제, 굳이 3월이 봄이라면,
봄, 답게, 나도 더욱 부지런해져야겠습니다.
그동안 못썼던 글, 편지, 일기 따위라도
매일같이 쓰면서
지금 나에게 부족한 것들 감출 수 있을만큼
많이 많이 치열해져야 하겠습니다.
(2001. 3. 5)
지난 월요일이었구나, 오전에는 정례적인 상집회의 진행하고,
오후에는 출장간 위원장을 대신해서 공무원노조 정기대의원대회에 갔다가,
5시로 예정된 단위노조 순회 간담회에 부랴부랴 달려갔다.
조합원이 50명 남짓한 작은 사업장인데 열댓명의 조합원들이 모였고
비교적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30-40분쯤 열심히 떠들고
민주노총의 최근 상황에 대한 곤혹스런 질문에 성의껏 답하고
퇴근 시간이 지난 노조 사무실에 위원장과 마주 앉았다.
-처장님, 고생많으시죠?
=에유, 요즘은 노동자라면 특히 모두들 고생이지요. 어디서나...
-사실 아까도 질문이 나왔지만, 조합원들이 민주노총 사태를 놓고 말들이 많아요.
=언론이 좀 설쳤습니까? 기아차 사태에 이어서 말이죠...
-저도 노조 위원장한다는 게 챙피하더라구요.
=그러셨어요?
-연맹 단체복 하나 구해서 맨날 입고 다녔는데, 요즘은 벗고 다녀요.
(그러고 보니 양복차림이 말쑥하다)
=하하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것 같애서...
=하하, 저야 연맹의 간부고 총연맹의 대의원이기도 하니까, 손가락질 받아도
할말 없지요 뭐.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느낄 때마다 더 반성하고 스스로
채찍질하자고, 이전보다 더 열심히 입고 다닙니다.
(평소에도 일년의 절반 이상은 단체복이나 투쟁조끼로 다니는 것 같다)
-그렇습니까? 하하, 저녁이나 하러 갑시다.
=예...
그렇게 대화는 끝이 났고, 소주 몇잔 마시고 다시 연맹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그 대화를 잊고 있었다.
그런데, 어제, 연맹 정기대의원대회를 진행하다 보니까
얼추 300명 가까운 동지들이 모여 있는데
단체복이나 투쟁복을 입은 숫자가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나만의 느낌이었을까, 아니면 실제로 그런 분위기들이
현장의 노조 간부들에게까지 은근하게 확산되어 버린 것일까.
눈썰미 좋은 동지들에게 한번 물어봐야겠다.
말이 난 김에, 요즘 내가 입고 다니는 옷차림의 일부를 소개한다.
길가다가 이런 사람 보면 난 줄 알고 술마시자고 하셔-ㅋㅋㅋ
낙서나 일기로 생각하면 앉은 자리에서 후다닥 써버리고 마는데,
이게 어디엔가 실리기라도 하는 "원고"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
쉽게 쓰질 못하고 헤매게 된다.
월간 네트워커에 한달에 한번씩 겨우 7-8장 수준의 가벼운 글을 쓰는데,
이번에는 뭘 쓰지 하고 궁리하는데 1주일 이상 걸리고,
그런 궁리를 뒷받침할 간단한 자료라도 살펴보는데 두어시간 걸리고,
그러다가 글을 작정하고 쓰려고 하면 이런저런 일들이 터져서는
아예 책상머리에 앉기도 힘들게 한다.
항상 마감을 훨씬 넘기는 자의 게으르고 궁색한 변명이지 뭐...-.-;;
어쨋거나, 이번에는
이공계에서 잔뼈가 굵어서도 첨단 디지털시대에
기계치를 벗어나지 못하는 내 친구들 얘기나 써야지 했는데,
갑자기 등장한 '자살'이라는 소재에 밀렸다.
그리고 이 좋은 휴일 낮에 아이들을 컴퓨터 앞에서 내쫓고
후다닥 썼다.
나같은 사람들 때문에 휴일에도 출근한
진보넷(월간네트워커) 동지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며...(꾸우벅)
통계청 통계로 2003년 한해동안 10,932명이 자살했다. 하루 30명, 48분에 1명꼴로 자살한 셈이고, 인구 10만명당 자살율이 27명으로 전체 사망원인 중에서 5번째로 수직상승했다. 게다가 자살을 기도했던 사람의 숫자가 연평균 35만명에 이른다고 하니, 실로 자살은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의 하나가 되었다.
이번 겨울 들어서서 주변의 잇따른 자살 소식에 충격을 받았다. 노조 활동가의 자살부터 또 다른 활동가 동지의 부인의 자살, 그리고 배우 이은주의 자살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죽음 이후에도 이어지는 것은 우울증(병)에 대한 다양한 억측과 상상들이다. 생물학적으로 보자면 우울증은 뇌의 신경전달물질체계에 이상이 생긴 것이고, 약물치료든 심리치료든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이다. 국내 자살자의 80% 이상이 우울증 환자로 추정된다는 보도도 있지만, 정작 우울증에 대한 이해와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여타의 질병에 비해서 너무도 판이하다.
누군가 암에 걸렸다면 주변의 사람들은 최악의 경우 죽음까지 염두에 두고 관심을 갖고 배려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누군가 우울증에 걸렸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우울증을 앓는 사람의 문제가 된다. 다른 질병에 비해서 우울증은 그저 심리적인 불안정의 문제요, 개인 의지의 문제로 치부되기 일쑤이다. 그것이 우리 이웃들로 하여금 치료 한번 받지 않고 혼자서 끙끙 앓다가 급기야 죽음에 이르게 하고, 뒤늦게 우리를 땅을 치고 통곡하게 만든다.
아포토시스(apoptosis)라는 개념에 한 때 매료된 적이 있다. 정상적인 세포가 어떤 환경에 놓였을 때 유전자에 기억된 어떤 경로에 따라 세포가 스스로 축소하고 핵이 응축하면서 DNA가 규칙적으로 조각나서 죽어버린다. 세포가 스스로 죽음을 택하다니! 불과 30년전까지만 하더라도 세포의 죽음은 네크로시스(necrosis)로만 알려져 있었다. 네크로시스는 화상과 타박, 독극물 등의 자극에 의해 일어나는 세포의 죽음으로, 세포의 ‘사고사’라고 할 수 있다.
아포토시스는 짧은 시간에 질서있게 진행되는 세포의 능동적인 죽음의 과정이기 때문에 세포자살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아포토시스는 발생과정이나 몸의 형성과 유지에 꼭 필요한 것으로서, 가령 태아의 손은 생성초기에는 손가락 구분이 없는 주먹 형태지만, 손가락 사이의 세포들이 아포토시스를 거쳐 스스로 죽음으로써 남은 부분이 손가락이 된다. 암에 전이된 세포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의 경우에도 초기에는 아포토시스를 통해서 세포가 스스로 치유하려고 한다. 이를테면, 아포토시스는 생명체를 유지하기 위해 선택하는 세포 단위의 ‘공익을 위한 자발적인 죽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세상에서도 아포토시스가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모든 행위는 범죄라고 생각한다. 우울증이든 그 무엇이든,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의 원인은 이 사회에 있고, 우리가 자살이라는 이름으로 그 책임을 죽은 자의 것으로 돌리는 순간, 그것은 사회적 타살이 된다. 자살은 없다. (2005.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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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을 읽을때면 감비님이 감비님으로 느껴진답니다. --;;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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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소녀>> 1.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어요.ㅠㅠ 2. 덧글 쓸 때 블로그주소 좀 넣어주세요. 곧바로 연결되게요.^^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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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소녀>> 로그인하지 않더라도 덧글을 달때는 자기 주소를 넣을 수 있지요. 바다소녀와 스머프가 특히 주소없이 덧글을 잘 달더라구요. 저는 덧글에서 곧바로 다른 불로그로 이동하곤 하는데...^^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