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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05/24
    노무현이라는 사람(7)
    공돌
  2. 2009/05/22
    자뻑.
    공돌
  3. 2009/05/08
    동생에게
    공돌
  4. 2009/04/16
    아줌마
    공돌
  5. 2009/03/27
    대담한 발상, 담대한 희망(1)
    공돌
  6. 2009/03/17
    학문
    공돌
  7. 2009/02/27
    법치주의
    공돌
  8. 2009/01/06
    미안한 마음
    공돌
  9. 2008/12/22
    비정규직 대책, 뭐했어?
    공돌
  10. 2008/12/04
    통계
    공돌

희재 친구 등

1. ".....최근 대법관 전용 식당에도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한다. 식사는 집무실에서 혼자 도시락을 시켜먹으며 사실상 칩거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희재야, 일촌 신청해서 같이 밥잡사봐.

 

 

2. 집구석에 신달자의 책이 있는 살펴봤다. 모조리 버리기 위해서, MB식 먼지털이 검색을 실시. 책을 찾으면 신달자라는 이름 앞에 '빙'자를 써서 재활용날 집 앞에 버리려고 했다. 망신주기식 서적 투기. 그러나 이 할매 책은 없더라. 아쉽다. 조만간 신촌 헌책방에 다녀와야 겠다.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는 시심'

 

곱게 늙는 것이 그리 어려운가.

 

 

3. 내 이럴 줄 알았다. 진보신당에서....

 

진중권 때리기.

 

진중권의 발언. 사실 그가 2002년 대선때 보인 행보. 그래 다분히 민주당에 오른쪽 발가락 걸쳐놓으며, 귀는 그쪽으로 쫑긋, 오른 쪽 눈은 노무현 쪽으로 흘겨보았다는 건, 왠만한 사람이면 기억하는 일. 근데, 난 그래요. 진중권의 문제라고 보지 않아요. 진중권은 일개 시민일 뿐입니다. 우리와 같거나 비슷한 종족이라는 말이죠. 사실 이건 신앙의 문제가 아닌데도, 계속 신앙의 문제로 보는 태도가 문제라는 겁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이 흡연을 하면 그게 신앙심이 약해서 그런가요, 아니면 담배가 중독성이 강해서 그런가요. 전 후자로 봅니다. 마찬가지로 정치적으로 매력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은근 땡기는 게 사실이고, 왜 우리는 저런 인종이 없는가,에 자괴감 마저 들면서, 적극적으로 지지는 못해도, 은근하게 할 수는 있겠죠. 그건 순전히 취향입니다. 그 취향은 살아오면서 형성된 것이고, 어느 한 순간 바꿀 수가 없는 거죠.

 

여튼 이걸 신앙 문제로 가꼬가면 피곤하다,는 게 제 입장입니다. 진보에 모태신앙이 존재하지도 않을 뿐더러, 지나친 신앙강요와 그에 따른 하드코어 간증이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불편케하고 진보에 다가설 수 있는 가능성을 낮춘다는 것이 순수한 저만의 경험(??)입니다.

 

앞으로 진보신당이 드라마튁한 인물을 어떻게 정치적으로 창조해 내는가, 이게 중요하지 않을까 싶고요. 그래야 뭔가 바람을 한 번 만들어 볼 수 있는 것이고. 좀만 있으면 저의 주례선생님께서 서울시장에 나오실 수도 있습니다. 그 때까지 스피릿은 냉장고에 보관하시고, 몸, 몸을 만들어 두어야 겠습니다. 열심히 뛰 댕길라카믄. 지금부터 괜한데 힘빼지 말고. 여튼 저는 그렇습니다.

 

 

4. 전순옥, 왜 전화를 안받고 전화기를 꺼놓냔 말이다. 이 아줌마에 대한 불만, 요즘 많지만, 어쩌겠나. 잘되기를 바랄 뿐. 더럽게 바쁜 모양이네.

 

 

5. 얼마전 이런 일이 있었다. 스승의 날이라, 진짜, 난 이런 거 너무 싫은데, 오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가긴 갔다. 그러던 도중, 비정규직법 관련해서 얘기가 터져나왔고, 얘기를 주고 받는 과정에서 대학원생 하나가 '형은 좌파니깐' 운운하며, 고기를 질겅질겅 씹어대지 않겠나. 니뮈.

 

"야이, 색히야. 내가 좌파든 좌판을 깔든 간에, 그건 내가 규정하고 내가 결정하는 거지, 니가 뭔데 나를 보고 좌파냐 아니냐고 지랄이야. 조또, 내가 너에게 내가 좌파라고 한 적 있어? 좋아, 내가 좌파라고 하자. 좌파가 다 똑같은 좌판지 알아? 좌파가 다 똑같아? 야, 나는 돼지고기 좌파야, 알아? 색히야. 불만 닿으면 회색으로 변하는 별볼일 없는 돼지고기 좌파지만, 그래도 좌파든 아니든 그건 내가 결정해. 니가 여기 저기 떠들고 다닐 문제가 아니야. 십탱아"

 

 

 

 

 

 

......이래야 되는데, 그냥 "야, 교수님 앞에서 그런 얘기는 하지 마라. 임마", 이러면서 상추 위에 깻잎을 포갰다는. 아, 니뮈. 그리고 그날 고기집 식대, 내가 훌러덩 둘러쓰고.  지랄염병에 보시까지 하시고, 술은 만땅 취해가지고 집에 돌아와 쓰러져 잤다는. 난, 왜 이리, 나약한, 비겁한, 치졸한, 박력없는, 사람일까요...엉엉 ㅠㅠ..

 

6. 방금. 기사 못봤는데. 꽃맘이. 엄청시리 좝솼네, 그려. 근데 얘가 "사망"이라고 쓰는 건, 이유가 있는 거예요. 난 니편일세. 꽃맘이는 실명입니다. 이 놈들아.

 

7. 아참, 내 대가리에 털나고, 처음으로 '상무'님께서 친히 메일 주셨네. 

 

8. 어제 경향, 김혜자. 스크랩 해둔다는 걸. 깜빡. 난 혜자씨를 보면 엄마 생각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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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이라는 사람

블로그 대문에 자칭 진보라고 하는 사람들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애도, 못하겠다는 이유, 나는 이해한다. 그럴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 시절이나 개인적으로 상처를 받은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 중에 나도 한 명이다.

 

전날 술을 처먹고 아무 생각없이, 테레비를 켰다. "권양숙, 실신". 난 그저 이 분들도 급기야 쑈를 하시는 구나 했다. 그러나 봉하마을 사저가 비치고 뒤 부엉이바위란 걸 클로접하는 장면에서, 아나운서가 노무현 대통령 서거라는 말을 꺼내자, 갑자기 멍해졌고, 큰 충격을 받았다. 내 의지가 아닌.

 

내가 개인적으로 인간 노무현이 아닌 노무현 정권을 싫어하고 혐오했던 이유는 아직도 머리 속에 각인되어 있는 한 마디 때문이다.

 

"죽음으로 투쟁하는 시대는 끝났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떨어져, 타, 목매 죽었다. 그 중 알고 있던 김주익 열사가 열사라는, 이름을 달게 되었다. 그리고 노무현 정권도 나의 적으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이후 몇 몇 사업장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장기투쟁을 하고 있는 사업장의 노조 위원장 옆에는 노조 위원장을 감시하는 사람이 하나 붙게 되었다. 언제든지 죽을 각오를 하게 만든 노동사회, 그게 10년 전, 20년 전도 아닌 바로 몇 년 전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정몽헌씨가 죽었을 때는, 솔직히, 아무 반응도, 미동도 없었다. 신문 한 줄 보고, 내 감정도 끝이 났다. 추모나 애통, 따위의 단어도 생각나지 않을 만큼 나는 무미건조했고, 자본가의 일은 내 일이 아니었다. 냉정했다. 그러나 노무현씨의 서거 소식에는, 그 자체의 애통 뿐만 아니라 분노심이 반사적으로 일었다. 그래서 몸이 시키는대로 나는 거리로 나왔고, 버스는 시청으로, 발은 대한문으로, 손은 전경의 방패를 밀고 있었다.

 

거리로 나온 8할 이상의 동기는 명박기 조가튼 시발 새끼라는 분노심 때문이었다. 조문을 둘러싸고 경찰과 유치한 몸싸움을 하다, 저녁에야 조문이 가능해 졌다. 조문까지 하지 않고, 그냥 애도하는 마음만 보내고 왔다. 그러나 쉽게 분노와 애통함은 가라앉지를 못하고 있다. 왤까. 시발, 이 조까튼 기분은 어디서 출발한 것인가.

 

언론이 노무현씨에 대한 평가, 뭐라고 하든 간에, 죽고 나서 하는 건 별로 듣고 싶지도 관심을 가지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죽으면 그냥 끝이다. 우주는 완전히 소멸하고, 모든 것은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다. 남는 건 기억 뿐이고, 그 외 모든 것은 그냥 훅 불면 날라가는 먼지일 뿐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기억, 그것이 사람들을, 나를, 거리로 나오게 한 것 아닐까.

 

노무현씨의 대통령 재임기간은 내가 평가할 실력도 역량도, 시기도 아니라고 본다. 다만 그의 대통령 이전의 모습은 참으로 다정다감하면서도 박력있고, 멋있는, 근사한 사람이었다고 기억된다. 부산에 살 때, 그가 모든 선거에 낙선하고 지역신문과 인터뷰를 한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일요일 아침에는 제 아들과 비디오를 빌려서 보는 걸 좋아합니다. 주로 무협영화를 좋아하고요."

 

그 당시 일요일 아침, 비디오, 무협영화, 이런 것들은 서민들의 정서와 너무나 다르지 않은, 인간 노무현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청문회 스타에서 낙선 정치인으로, 하로동선이라는 식당의 웨이터로, 그는 참, 재미나게 살았고, 서민들에게도 격이 없는 사람이었다. 또한 바보같아도 그는 인권변호사로서 얻은 명성을, 그리고 나와 같은 아이들에게는 닮고 싶어했고, 존경해마지 않는 사람이었다.

 

물론 그 이전은, 더 이전은 가난했고, 돈이 없었으며, 배울 기회가 없었지만, 성공하고픈 욕구가 가득한 사내였다. 그리고 출세했다. 그러나 시대가 그를 그렇게 가만히 두지는 않았다. 그리고 최고 권력을 손에 쥐었봤고, 다시 시골로 돌아갔다. 그는 그런 면에서 훌륭했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 그를 보고 싶었다.

 

파병, 에프티에이, 생각만 해도 끔직한 것들을 그가 추진했다는 건, 솔직히, 여전히, 납득도 이해도, 설득도, 인정도 하지 못하는 바이지만, 작통권 회수나 독도 영유권 대응 등에 자주적 태도는 그 어떤 권력자 보다 과감했다. 그러나 그게 무슨 소용인가. 그저 나는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연민으로 대할 에너지가 남아 있고, 그의 죽음이 안타깝게 느낀다. 그를 지지하면서 한 때 희망을 가졌던 사람들도 우리는 위로해야 할 의무가 있고, 그렇게 해야 우리는 진보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진보를 자청하는 분들이 노무현에 대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비판적으로 접근한다고 해서 그 태도가 야박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들의 생각도 존중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 아니, 그들 생각이 옳다. 그러나 조금 부족함을 느낀다. 쪽수에서, 발상에서, 상상력에서가 아니라 태도와 마음에서. 한 때 적이었던 그를, 혹은 그를 옹호하며 밉상을 떨었던 그와 함께 했던 사람들, 그들은 아파하고 있다.

 

이들을 진보의 이름으로 함께 안아주지 못한다면, 저 닭장차 뒤에 숨어 쥐새끼마냥 사람들이 조금만 모여도 두려워하는 명박이 새끼를 어떻게 조져줄 수 있으며, 다시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와, 그들과 하나되어 광란의 시위를 벌일 수 있겠는가.

 

노무현이라는 사람은 결국, 우익들과 조선일보와 자본가와 경상도 사람들과, 한나라당을 지지했던 사람들과 멍청한 국민들 덕분에 결국 "사살"되었다. 속으로 만세를 부르고 싶은 사람들, 있을 것이다. 물론 돌짱구인 삽옹 명바기는 또 집회할까봐, 사람들 모일까봐 걱정할 것이다. 그게 무섭다는 걸 안다. 그러면 제대로 무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얼굴만 아는 청와대 행정관이라는 사람이 그랬다. 작년에 너무 심하게 화상을 입었다고. 자기를 지켜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오직 경찰밖에. 정보보고도 없었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몰랐고, 푸른기와 안에서 좆잡고 그저 협심통만 느꼈다고. 그리고 촛불이 끝난 뒤, 제일 먼저 한 것이 국정원장을 날린거라고).

 

조문은 조문대로, 할 자격이 있는 사람만 하면 될 것이고, 뜻이 있는 사람만 하면 된다. 지금 국면을 넘어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지는 모두가 알 것이다. 다만 그게 언제냐는 것일 뿐. 다만 우리는 조금 침착해야 하고, 차근히 거리로 나올 준비를 해야하며, 적어도 올 한해, 경찰들에게 수십대는 쥐어박힐 각오를 해야 하며, 도망치기 위해 걷기와 뛰기로 하체를 단련하고, 집에는 촛불과 종이컵을 사두고, 가방과 차에도 촛불과 종이컵을 준비해야 한다.

 

잡아가면 갈수록, 저항은 커지고, 민주주의는 더욱 건강해진다. 우리 아이들에게, 미래는 온전한 것으로,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물려주어야 할 의무, 잊지 말자. 그 의무를 다하지 않고서, 이민 운운하는 사람들은, 보내주자. 그리고 한국에는 앞으로 오지 못하게끔 막자. 민주주의는 대가를 주지도, 보상을 하지도, 도움을 주지도 않고, 그저 희생만을 먹고 사는, 잔인한 그렇게 잔인한 것이기에.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고 이후에 까울 것이므로 무임승차는 니 맘대로지만, 무임하차는 니 맘대로 안된다는 알았줬으면.

 

여하간 그 의무가 사람이 살만한 세상을 만드는 것. 그게 목적이라면. 거리로 나갈 준비, 하자.  자유가 보장되고, 어떠한 형태의 비판과 모임이 가능한 사회,  니들이 말하는 법치주의가 아닌, 헌법적 가치가 보장되는 사회. 경찰이 내가 가는 길을 막지 않으며, 함부러 시민들을 발로 차거나 때리지 않는 사회. 우리의 온전한 의식과 행동을 망가뜨리려는 그 모든 것을 거부하기 위해, 우리는 적어도 동네수퍼로 달려가 촛불과 종이컵을 사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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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뻑.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5/14/2009051400144.html

 

참나, 이게 뭐라고. 이걸 뽑아서 돌리시며, 자기는 80살까지 살 것이며, 그게 오히려 걱정된다는 김교수. 더 이상 노코멘트.

 

"과학으로 판단하기에는 너무나 인간적이고, 숫자로 말하기엔 너무나 아름답고, 학술지에만 실리기에는 영원하다"

 

"조또 욕하기에는 내 주둥이가 덜 인간적이고, 숫자로 말하기엔 나보다 너무 나이가 많고, 내가 아니더라도 욕먹을 일은 영원하다..."

 

난, 그래서, 그러한 이유로, 스바, 뉘뮈, 저그마냥, 뭉쳐다니는, 서울대 출신, 종족들을, 혐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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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에게

나는 내 아버지가 피터 드러커 이상이라고 본다. 왜냐면 너와 나를 키워냈기 때문이다. 우리는 새로운 세계에 들락거렸고, 현재도 그렇다. 드러커가 그랬다. 자신이 후회하는 건, 80세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지 못했다고, 나는 이 말이 단순한 잠언의 경구와 같이 들리지 않는다. 인간은 새로운 것을 찾아 자신의 면모를 아름답게 만들거나 혹은 기존의 것을 고수하면서 늙어가는 자신을 방치하는 두 가지의 선택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내 아버지는 평생을 새로운 일을 찾아서 그 일들을 해오면서 성공과 실패를 거듭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를 존경한다. 그 경험이 값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옆에서 지켜보고 간접적인 경험을 한 나에게도 지금의 내가 있도록 만들게 해 준 에너지라면 현재의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지언정, 미래에는 좀 더 새로운 인생과 행복을 찾으실 수 있을 거란 확신을 갖는다.

 

그렇지 않고서 내 아버지란 존재가 여느 안정적 직장에서 연금을 받으며, 연금의 부스러기에 종속돼 있는 친구들과 시시껄렁한 농담이나 하면서 남은 여생을 보내는 걸 바라지도 않으실테다. 이것이 다른 부모와 내 부모의 차이이고, 다만 니가 우려하는 것은 누구나 우려하는 것이지만, 내 부모가 그런 것을 우려하면서 살아온 존재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몇 년 전 가슴아픈 상처 때문에 여전히 수면제를 복용해야 하고, 가끔씩 오가면 마주치는 사람들과 소식에 적잖은 분노와 좌절을 맛보면 살아야 하는 후진적인 상황에 더 이상 내 부모가 방치되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앞서 말한 선택의 기로에서 충분한 정보와 상황을 부여하며 최대한 부모가 선택한 일에 모든 격려와 지원을 하겠다는 태세로, 오직 마지막 결단만을 기다릴 뿐이다.

 

충분히 고민하고, 너도 많이 도와주기 바란다. 새로운 건 두려움에서 시작되는 것이고 두려움을 극복할 때만이 새로움의 희열을 얻을 수 있다. 이런 생각과 경험은 내 아버지로부터 시작된 것이어서 어떠한 선택에 따른 결과가 나타나더라도 그것에 명백히 따를 자신이 있다. 나 또한 우려는 한다. 그러나 미래에 두려움은 극복할 자신감, 이건 충만하다는 사실을 알아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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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최근 쪽글을 남기지 못하고 있다. 이곳이 소통 공간이 아니므로, 물론 엿보는 사람이야 있겠지만 개의치 않고, 생각을 자주 남기려는데. 항상 바빠서 못올린다고 했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좀 다르다. 손을 조금 다쳤기 때문이다.

 

키보드야, 왼손과 오른손 중지로만 쳐도 되니깐 별 문제는 안되는데(쉬프트키를 눌러야 되는 쌍자음의 경우, 세종대왕이 원망스럽다), 손을 다치고 나니 오만 회한이 밀려든다. 회한이라. 거창하기는 하지만, 내가 다니는 회사의 노사관계가 급격하게 냉랭해지고 있어서, 그 회사의 사장격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이데올로그가 한심해서, 그런 탓도 있겠지만, 사실 비정규직과 관련된 것이라, 회한이라 표현해 보았다. 사실 손이 부어올라 키보드를 두드리는 일이 느려져 머리 속에서 할 말이 깔대기를 넘쳐 흐르는 물처럼 답답하기는 하지만 간략하게 오늘 일을 옮겨본다.

 

10층에서 책을 가지고  9층을 내려오는 길 목에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가 바닥에 세제를 풀어놓고 청소중. 사고는 순식간. 나는 미끄러져 넘어졌고, 들고 있던 10여권의 책이 모서리의 날을 세우고 내 손을 찍었다. 그것도 오른 손을. 왼손이 만세를 쾌재를 불렀겠지만. 여튼 순간 너무 화가 났고, 긴급히 응급실로 갔다. 손에서 피가 흘렀고 손가락을 오무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가까운 병원으로 가니 내가 왜 왔나 싶더라. 제일 먼저 전기공사 중에 화상을 입은 환자는 내 두 손을 엉덩이 뒤로 감추게 하기에도 버겁게 했다. 이미가 찢긴 사람, 오늘 내일 하는 할머니, 위경련을 호소하는 사람 등. 나는 응급실의 나이롱이 된 거다. 그래도 엑스레이를 찍어봤다.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고, 책 모서리가 손가락 위를 찍어버린 자리에 조금 찢어진 살가죽만 치료했다.

 

사고 당시. 마침 8층에는 청소용역을 관리하던 분이 계셨는데, 내가 꽝하고 넘어지는 소리를 듣고 올라왔고, 그 양반과 같이 응급실에 왔다. 그 때가 11시 30분. 그 때까지는 화가 많이 난데다 회사동료들에게 병원간다는 얘기도 못하고 오니 치료 도중에 전화가, 게다가 마누라 전화가, 후배 전화가. 뭔가 작정을 한 건지. 그래서 더욱 짜증이 밀려왔던지도 모르겠다.

 

여담이기는 한데, 나와 같이 병원을 온 용역관리하던 이 양반, 재미있는 것이 내가 응급실에 들어간 후, 시간이 좀 걸리니 그 사이 식사를 하고 오신게다. 그리고 겸연쩍었는지, 치료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가는데, '식사를 하셔야 되는데'하며 묘한 늬앙스을 남기는 말을 여러 번 하더라. 나도 배는 좀 고팠는데, 같이 밥먹기도 그렇고. 회사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그제서야 이 양반이 식사를 했다는 걸 알았다. 내가 응급실에 들어가 있는 사이에. 자기는 미안했던 거지. 먹고 왔으니. 그러면 티를 내지 말든가. 계속 이빨 사이에 낀 음식물을 입속의 공기압력으로 빼내는 소리, '쩝쩝'. 이게 단서가 된 거다. 여튼 이하 거두절미.

 

12시 30분이 넘어서야 치료가 끝나고 택시를 타고 돌아오면서 조금 화가 풀리면서 내 손 꼬라지가 어쩌든 간에, 청소하던 아줌마, 걱정되더라. 그래서 용역 관리하시던 분에게 나는 괜찮으니, '그 아주머니, 별일 없게 해 달라. 크게 다친게 아니니 그냥 대충 넘어가자'고 했다.

 

근데, 용역관리 하시는 이 양반, 잠시 자숙과 성찰의 시간을 단 1초도 가지지 않은 채, '그 아줌마 시말서 써야돼요. 한 두번도 아니고, 이상한 짓을 한 번씩 해가지고, 사람 곤란하게 말이야', 이러는 거다. 여튼 그 양반의 입장도 이해는 되지만, 용역업체에서 일하는 아줌마들에게 시말서라는 건 거의 실형아닌가. 다시 한 번 부탁을 했지만, 마음이 영 찜찜한 걸. 그래도 아줌마가 사고를 좀 쳤다니, 그래, 내가 잘못 한 것도 아니고, 사람을 다치게 한 거니깐. 근무시간 중에 물청소하면 안된다잖아. 청소할라카면 그 쪽으로 왕래를 못하게끔 해야되는데, 그런 조치도 안했으니, 사규든 지시든 뭐든 위반한 거니깐, 난 모르겠다, 잊어버리자.  

 

회사에 돌아와, 손을 다치니, 할 게 없었다. 일은 해야되는데, 동료들 덕에 그냥 오늘은 왼손만 놀리고 있는데, 3시쯤에 아줌마가 내 사무실로 왔다. 사과하러 온 것이다.

 

"잘 할려고 하다 보니 맨날 이런 일이 생겨요.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병원에 또 가봐야 되죠?"

 

할 말이 없었다. 그저 나는 괜찮다, 상관마라고만 했다. 그 아줌마, 말수도 없고, 인사를 해도 다른 아줌마와 달리 고개만 가딱하는 사람이니, 평소에 무슨 호감이야 있었겠나. 그래도 가끔씩 보면 다른 아줌마들에 비해 남자 화장실 출입이 잦다. 여자화장실은 모르겠지만 중간중간 마다 들어와서 휴지나 떨어진 신문 등을 청소하더라. 아마도 가만히 앉아 있는 체질은 아닌 듯하고 비교적 여러 일들을 찾아서 하는 타입인거 같다. 행동반경이나 일의 양이 많아지면 당연히 실수할 확률이 높아지는 건 사실이니, 그 중에 나도 아줌마의 성실함에 피해를 본 사람이 된 거지뭐.

 

아줌마가 대기업 재벌의 마나님이 아닌 바에야, 이 곳에서 청소하는 일이, 그래도 밥벌이일텐데, 내가 처음에 좀 윽박을 질렀던 거부터 나중에 별 일 없게 된 거지만 괜히 병원까지 간 게 잘못했나 싶었다. 내 상처야 한 2주면 된다고 하니, 2주에 한 사람 인생을 뒤바꿀 필요까지는 없지 않겠나, 등등. 그래도 병원 문을 나서는 순간까지는 아줌마 얼굴 어찌보나 했다. 미워서. 근데 아줌마 사과를 받고 나니 받을 사과인가도 모호한데다가 받아도 되는 사과라면 안불편해야 하는데 마음이 좀 안놓인다. 고의도 아닌 뿐더러, 잘하자고 한 건데.

 

그런 이유는 아줌마가 잘해볼려고 한 게 진실성이 있다는 점에서 비롯된 거다. 아줌마가 죄송하다고 말하는 떨림이나 미안한 눈빛 때문에 진실성을 참작해 미안한 마음이 든 건 아니다. 이유는 따로 있다.

 

회사에서 밥을 먹고 근처를 배회하다 담배를 피다보면 우리 회사 근처에서 우리 회사에서 청소하시던 아줌마들을 가끔 만난다. 인사를 하고 '요즘 안보이던데요' 하면 십중팔구 그만뒀다고 한다. 과연 그만뒀을까. 그리고 왜 우리 회사 근처를 어슬렁 거릴까. 아마도 우리 회사 또는 근처 다른 회사 청소를 하고 있거나 다른 회사 일거리를 찾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줌마들이 무슨 용역회사를 찾아가서 계약하고 나서 일을 시작하는 것도 아니고, 막무가내로 가서 '사람 안구합니까?'하고 물어보는 이력서 생략, 초고속 면담채용 인사관리 시스템이 이 동네의 생리니깐. 여하튼 행여 그 아줌마도 그렇게 만날까, 아니 만나고 싶지 않아 걱정이 된다.

 

그저 시말서 한 장으로 끝냈으면 한다. 더럽게 고용도 힘들고 고용되어도 사람을 개같이 조지는 마당에, 내가 일자리를 박탈하는 원흉이 되어서야 되겠나. 여전히 손가락은 욱신욱신하고 오른손 중지는 숙련되어갈 수록, 그 쪽 회사가 아줌마의 목가지를 잡아 비틀 생각을 하니, 마음이 너무 불편하다. 그럴 일이 없겠지, 없겠지, 이쁘지도 않은, 나 보다 늙은 아줌마가 다시 보고 싶다. 내일 꼭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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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한 발상, 담대한 희망(1)

전문가들은 올해 하반기와 내년에 들어 공공부분에 대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진행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명박 정권이 하려고 하는 대부분의 일들은 국민들과 노조, 시민사회단체들의 저항에 항상 부딪혔다. 수세에 몰리기도 했지만 어쨌든간에 과감하게 돌파하는 무대뽀는 통했다. 한다고 했다가 욕먹고 잠시 숨어있다가 잠잠해지면 다시 시작하는 변태적 실사구시와 실용주의라는 위장망으로 덮어놓은 독재적 리더쉽이 제 기능을 찾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과거로 회귀는 더욱 급격하게 진행된다. 지난 2008년, 사용자와 근로자라는 노동관계를 전 국가적으로 적용하는 대범한 발상이 시작되었다. 국민들은 저항했다. 니가 사용자면 진짜 일자리를 달라고. 그리고 주권자들은 소통하라는 명령을 ‘국민을 섬기겠다는 이’에게 전달한다.

 

하지만 그러한 소통의 의미를 한 방향으로 알고 있는, 소통이라는 단어에 맨 먼저 파이프라인을 생각했던 그에게는 수도꼭지에 물을 트는 것이 소통이라는 것 외에 알고 있는 것이 없는 듯 했다. 그래서 물대포를 쏘았다. 국민을 해고하려던 일이 촛불의 반란에 저지되었지만 일부 국민은 이 정권에 의해 징계를 받았고 해고되었다. 그러나 민주시민으로 복직되기는 쉽지 않았다.

 

거리에 나온 사람들은 이 대량해고사태에 대한 공포가 ‘내재화’되기 시작했다. ‘징징거리면 순사가 와서 잡아간다’. 이 원리가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국민과의 관계를 사용자와 근로자의 관계로 파악한 이명박 정권의 실정은 돌파구를 찾게 된다. 새로운 전기는 용산에서 시작됐다.

 

용산에서 벌어진 철거민 세입자들의 소박한 투쟁은 중세시대의 봉건기사를 연상케하는 한 경찰간부의 충성에서 비롯된다. 그는 결국 사회불안세력으로 철거민 세입자들은 지목하고 그들의 목숨을 현 정권에게 봉원한다.

 

국민들은 국가의 폭력과 살인에 분노했지만, 여전히 곤봉과 방패에 흩어졌다. 그리고 덩그러니 남은 건물에는 시커먼 그을림과 이름모를 이가 남겨놓은 국화송이들만 군데군데 놓여있을 뿐, 더 이상의 철거민도 세입자도 없었다. 용산참사라는 희대의 국가폭력과 살인사건은 절대주의 왕정의 존재를 보여줌으로써 스스로를 국왕으로, 국왕의 뜻에 반하는 모든 행위를 역모로, 모반으로 간주하였다. 포졸들과 이방들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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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학문은 당위를 설명하는 것과 미래를 예측하는 일로 나뉘는 것 같다.

 

이런 시기에는 당위보다는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더 필요하고 그러한 학문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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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주의

내가 공부한 바로는 법치주의란 의미를 이렇게 말하고 싶다.

 

법치주의는 법조문을 지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분명히 지적한다. 만약 15세 미만의 자가 살인을 저질렀다고 사회적인 비난을 별론으로 하고 일단은 법적으로 죄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문제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과연 법치주의인가.

 

가진 자의 법을 굳이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법의 의미와 취지를 실현하는 것이 정치다. 정치가 법을 이렇게 적용하라 마라고 말하는 것은 사법부의 주둥아리가 되겠다는 태도에 불과하다. 검찰이 중립적이든 사법부가 삼성에 절절 매든 간에, 이건 법치주의가 이미 무너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의 기술이 없으니 법만 얘기한다. 법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정치를 포기하는 권력적 행위일 뿐이다. 정치는 조정행위도 될 수 있으며, 통합기능을 수행할 수 있으나, 그런 실력이 없으면, 없는 자의 불법행위만 조질 뿐이다. 그것 이겨내는 힘이 법을 하는 사람에게 대한 기대에 있었으나, 법은 이제 너덜한 휴지조각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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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한 마음

퇴근 중 차를 제법 긁어 먹었다.

 

아내에게 일부 탓을 하기는 했는데, 분을 풀어 놓은 거라 내내 미안한데다 미안하다는 말, 하기 어려웠다. 그냥 그렇게 됐으면, "올해 액땜이다", "남일"이라고 생각하면 웃고 넘겼을 걸, 내가 너무 화를 내서 그저 미안할 뿐이다. 내가 그이를 데리고 퇴근을 한 것을 괜히 생색내는 것처럼.

 

여전히 결과에 대해 사태를 좀 더 시쿤둥하게, 길게, 대수롭지 않게 바라 볼 수는 없는가. 오늘 무척 후회가 되는 날이다. 물론, 인간은 늘 후회하고 산다. 그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100% 사용할 필요는 없다. 나머지가 있다면 그것이 뒤를 돌아볼 때, 나도 타인도 보이는 법이다. 다만 많은 후회의 종류들 중에 '자신을 배반해서 생긴 후회'만은 하지 않는게 좋다.

 

여하간 아내에게 미안할 뿐이다. 차리리 삼키고, 소극적인 테러라도 했으면 좋았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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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대책, 뭐했어?

비정규직 대책, “뭐했어?”

 

1. “해봤어?”

 

논쟁이 시작되고 어느 정도 논리의 살갗이 벗겨지고 나면 감정의 뼈가 드러난다. 대표적인 경우가 “해봤어? 해봤냐고”라고 하면서 감정을 배팅하는 경우가 그렇다. 이 말을 할 때에는 자신은 해봤다는 전제에서 쨉을 던져야 되는데, 그렇지 않으면 웬간한 맷집으로는 버틸 수 없는 반격이 시작된다. 주로 21세기 들어서 이런 방법을 잦게 사용하시는 분이 이명박 장로님이신데. “해봤어?” “가봤어?”를 연발하시는 그 분의 이면에는 과도한 경험주의가 똬리를 틀고 있다는 것이 강준만 교수의 지적. 경험주의의 탯줄을 타고 올라가면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 동종업계 데카르트와는 용호상박이다. 이 양반, 이런 얘기 했다. ‘푸딩을 증명하는 방법은 푸딩을 먹어보는 것이다’.

자, 여기에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것이 있다. 경험주의적인 삶의 태도를 가지는 것은 그저 선택사항일 뿐. 한 마디로 푸딩은 먹고 싶은 놈만 먹어라는 거다. 남보고 먹어보라고 강요하지 말라는 얘기. 하지만 이명박 장로님과 정부는 우리에게 푸딩을 계속 먹어볼 것을 강요하고 있다. 그 푸딩이 바로 ‘비정규직법’. 그것도 계약기간을 연장(폐지)해서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는 이미 그 푸딩, 먹고 있다. 필자인 저에게도 “해봤어?”라고 물으신다면, “해봤다. 왜?”라고 대답해드릴 수 있겠다. 비정규직 푸딩을 먹어본 사람으로서 느끼는 바는 이렇다. “먹을 거 못된다”  



2. A씨와 B씨, 과연 누구인가

 

필자, 원고청탁을 받았을 때 부탁받았던 내용은 이렇다. 비정규직 기간연장, 100인 미만 사업장 차별시정제도 유보, 정권초기 공언했던 정규직 전환시 중소기업 지원 등. 어지간히도 주문하셨다. 죄송하지만, 지면의 절반은 노동정책에 대한 정부의 태도를 추적하는데 할애하려고 한다. 왠지는 읽어보시면 알게다.

먼저, 노동부가 12월 1일자로 내놓은 「보도자료」부터 살펴보자. 이 「보도자료」의 알곡은 ‘기간제 근로자 다수도 사용기간 연장폐지 희망’한다 이거다. 싸움을 걸려면 제대로 웃통 까고 시작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근데 이 정부에 들어서는 일단 멀리서 돌멩이를 하나 던져 간을 본 후, 뒤통수를 친다는데 있다. 공기업 선진화도 그렇고, 한반도 대운하도 그렇다. 이미 11월 29일, 언론에서는 비정규직법의 계약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고, 파견대상업무를 확대한다는 내용을 의원입법으로 추진한다는 노동부의 종합대책문건이 공개됐다. 그러나 당일 노동부는 언론에서 보도된 바와 같은 정부안도 없을뿐더러, 의원입법도 추진하고 있는 것이 없다고 해명했다.

근데 생뚱맞게도 3일 뒤, 노동부는 “12월 2일(화) 조간부터 사용해 주십시오”하고 A4 7장이나 되는 「보도자료」를 뿌려놓는다. 이 「보도자료」에서는 비정규직법 ‘기간제한 폐지’에 34.3%가, ‘3∼4년으로 계약기간 연장’에 대해서는 23.4%가 찬성한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도합 기간연장과 폐지가 57.7%. 또한 ‘2년으로 기간을 제한한 것이 기간제 근로자에게 도움이 되는가’에 대해서는 ‘도움이 안 된다’는 부정적 응답이 60.9%로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이 보도자료가 언론에 나간 뒤인 12월 4일, 또 ‘해명자료’를 내놓는다. 설문조사의 기본인 신뢰도와 표본오차가 없다는 지적과 비판 때문이었다. ‘신뢰도 95%, 표본오차 ±2.46%’라고 늦게나마 밝히지만. 원하던 수치가 나오니 급하긴 급했나 보다. 통계를 모르시거나.

해명자료

어찌되었든 간에 비정규직 계약기간을 현행 2년보다 연장(폐지)해야 한다는 다분히 의도로 설계된 이 설문 결과, 수소가스를 담고 하늘을 나는 ‘삐라’와 뭐가 다를까.

더구나 필자는 이 조사에서 조사대상, 조사방법, 그리고 데이터 샘플링을 제대로 했는지도 의문을 가진다. 왜냐하면 다음 조사결과 때문이다. 홍희덕-민주노총(19세 이상 전국 1,000명 대상, 표본오차 95%, 신뢰수준±3.1%, 한길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4년 고용 후 정규직 전환에 찬성한 응답은 14.7%에 불과했다. 또한 현행대로 2년 고용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응답이 45.8%, 현행보다 1년이 줄어든 1년 고용후 정규직 전환에 대한 응답은 33.4%로 나타났다. 같은 문제에 두 조사의 다른 결과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실마리는 노동부 「보도자료」의 앞머리에서 소개하고 있는 ‘사례’에서 찾을 수 있다. 냄새가 난다는 증거다.

이 「보도자료」에서 설문조사 결과보다 먼저 소개하고 있는 두 개의 ‘사례’. 먼저 A씨의 사례. A씨는 계약직이라도 조금 더 일할 수 있도록 하루속히 법을 개정해달라고 노동부에 건의했다는 스토리다. 요건 애교. 문제는 두 번째 사례. 소리 내어 읽어보자.

노동부 보도자료

“B씨는 비정규직법 시행으로 정규직 전환을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인사부에서는 그간 근속기간이 2년을 넘었다는 이유로 다음 계약은 갱신하기 어렵다고 통보했다. 이에 B씨는 ’07.7월 법 시행 이후 갱신계약을 체결한 때로부터 2년이 지나야 법이 적용된다며 근무할 수 있게 더 계약을 갱신해 줄 것을 인사부에 요청했다.”

자세히 읽어보면 B씨의 회사, 비정규직법을 잘 모른다. 그래서 잘 아는 B씨가 2007년 7월까지라도 계약갱신을 요청한 것이다. 이 사례는 비정규직 기간제한의 문제를 어떻게든 엮어보려는 수작일 뿐, 문제의 본질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보도자료」에서 얘기하고 싶은 것이 설문조사 결과라면 객관적인 수치만 내놓으면 된다. 그러나 「보도자료」의 ‘사례’는 고약한 의도가 엿보일 뿐만 아니라 공식적으로 내놓을 「보도자료」의 수준도 아니다. 이 사례를 기자가 그냥 배끼면 ‘기사’가 된다. 결국 이걸 노린 거다. 어쨌든 필자가 볼 때는, A씨는 몰라도 B씨는 가공의 인물이다. 아님, 말고. 만약 어디서 퍼왔으면 출처라도 밝히기 바란다.

그러나 더욱 괘씸한 것은 정부안도 없고, 의원입법도 할지 안할지 모른다고 발뺌해놓고선 결국 지네들 하고 싶은 대로 다하고 있는 꼴 때문이다. 이 정부에선 거짓말은 예사다. 마음 속에 십계명을 새기기 바란다. 십계명, 몰라? 하느님이 돌로 제본까지 떠서 모세에게 주신 ‘기본처세 다이제스트’. 그리고 하나더. 시간되시면 노동부 열린게시판을 꼭 찾아보시라. 무슨 얘기들이 오가는지 말이다. A씨와 B씨 말고도 C, D.....Z씨 의견까지 꼼꼼히 살펴보라 이거다. 참고로 저는 2008년 1월부터 최근까지 다 검색 “해봤어”

 

3. 비정규직과 대운하

 

현 정부는 직접 국민과 소통하지 않는다. 잠수함처럼 수면 아래 위를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어뢰를 꽂을 준비만 한다. 정책에 대한 논의과정도 생략하는 건 다반사고, 툭툭 쨉만 던지니 일일이 대꾸하는 일도 지친다. 촛불들고 대화 좀 하자고 거품 물고 소리쳐봤지 않나. 불리하면 모른다로, 애정을 가지고 봐달라고 이러고 있으니. 결국 ‘슬그머니 전략’으로 일관할 것이 뻔하다. 말로 안되면 제대로 꽝하고 한 번쯤 박아야 하는데. 자제한다. 그래도 몇 가지 지적할 건 분명히 해야겠다.

앞서 노동부가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정규직 전환도 중요하지만 당장의 일자리가 더 중요’하단다. 왜? 기업들이 2009년 7월까지 2년이 경과한 기간제 근로자들을 더 이상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고, 더 이상 고용을 유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 때문이다. 그래서 비정규직을 보호하사, 화끈하게 법개정을 해서라도 기간제로 1, 2년 더 일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잔말말고 비정규직으로 일할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감사하라는 거다. 그런데 문제는 감사하겠냐는 거다.

노동부가 우려하고 예측하는 2009년 7월 비정규직의 일자리 대란, 이게 과학적인 연구와는 거리가 있다. 비정규직 법시행 1년을 평가하는 연구보고서들에서 최근 임금 일자리의 증가폭 둔화가 비정규직법 때문이 아닌 ‘경기침체’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특히 100인 이하 사업장에서 정규직․비정규직의 신규채용이 감소하는 것도 비정규직법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건 노동부가 11월 12일에 배포한 「보도자료」에서도 그렇다. 100인 미만 사업장에서 향후 기간제 근로자의 일부라도 ‘정규직으로 전환할 계획’을 가진 기업이 66.5%로 나타난다. 또한 비정규직 활용이유도 ‘탄력적 인력운용(25.5%)’, ‘정규직 채용 전 시범적으로 활용(21.5%)’ 등으로 나타나 ‘인건비 절감(4.1%)’의 이유 보다 높게 나타난다. 이런 결과에 기반해 볼 때, 노동부는 정규직 전환에 대한 인센티브, 사회보험료 감면 등 기업부담을 줄이고, 노무도급 억제를 위한 규제 등을 통해 비정규직법의 효과를 높일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최근 경기침체로 기업이 어렵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보호법’이 누굴 보호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는 정부의 환각상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2009년 7월 100인 이하 사업장에 대해서도 차별시정제도가 적용되는 것을 유보하자는 이야기도 들린다. 중소기업에 대해 차별시정제도를 유보하면 고용이 증가하고 기업부담도 적어질까. 앞서 노동부의 「보도자료」에서 발표한 조사결과에서 100인 이하 사업장의 경우, ‘차별시정제도에 대한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은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임금격차가 적은 상황을 반영’한다고 분석한 바 있다. 그러면 당연히 차별시정제도를 유보해본들, ‘효과없음’이다. 자기들이 얘기하고 자기들이 뒤집고. 무슨 자학개그도 아니고.

다음으로 지적할 것이 ‘파견대상 업종’을 확대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도 딱 정해진 것이 아니다. 일단 간을 보는 게다. 현재 32개로 제한돼 있는 파견업종을 풀면 고용도 늘고, 골칫거리인 비정규직 문제나 위장도급의 문제도 일거에 해결된다는 것이 노동부의 생각인 것 같은데. 이건 현 정부 정책과 비슷한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최근 경기침체가 심각해지니 한반도대운하 카드를 꺼내는 것과 뭐가 다른가. 전국을 파 헤집는 ‘삽행’이 일시적으로 고용과 경기에는 효과가 있겠지만, 대운하가 완공되면 국민의 ⅓은 드넓은 대운하를 바라보며 우울증에 걸리거나 수맥으로 인한 질병의 증가로 다시 고용과 경기는 침체될 것이라고 본다. 필자가 하는 말이 택도 없는 소리면, 파견대상 업종 확대도, 대운하도 모두 말도 안되는 소리다. 원인이 되는 문제부터 다스려야지, 눈앞에 보이는 효과만 쫒아가려니깐 욕을 먹는 거다. 게다가 불법파견, 제대로 단속하고 있나. 위장도급, 불법파견에 대한 감독소홀은 결과적으로 사용자의 이익으로 귀결된다. 이걸 합법적으로 용인하겠단다. 감독행정에 신뢰가 없는데, 노동계가 이런 법개정에 동의하겠냐는 거다. 파견업종 확대는 중간착취 문제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특히 저질의 일자리만 늘어나는 결과가 발생될 가능성이 높다. 기다려보라. 일자리 양극화가 우리들을 어떻게 복수할 것인지. 실로 걱정된다.

 

4. 현장, “가봤어?”

 

12월 17일, 한 취업정보업체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비정규직 직장인(967명)들은 재취업시 다시 비정규직으로 일할 생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74.7%가 ‘절대 비정규직으로 취업하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그 이유 중 1순위 응답이 ‘정규직과의 차별(36.9%)’. 한편 구직자(685명)들은 올 하반기 취업이 어려울 경우 비정규직이라도 취업할 의향에 대해 72.1%가 ‘그럴 생각이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그 이유가 우울하다. 36.4%가 ‘당장 생활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란다.

이미 정부는 2천 6백명의 대학 졸업자를 행정인턴으로 선발해 1년 동안 100만원을 주겠다고 했다. 단 1년. 매월 26억. 인천의 45억짜리 분수대 하나만도 못한 예산이다. 더구나 공공기관 인력감축을 못박아두고 행정인턴이라는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모순적인 태도에 대해 슬개골이 주저앉는 좌절감을 느낀다. 안정된 일자리의 보호, 차별받지 않는 노동, 이러한 것들이 단지 이들만의 문제일까. 노동시장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는 현 세대 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와도 약속하는 것이다. 외주, 계약해지 등으로 노사갈등과 장기간 파업으로 치닫고 있는 지금, 불안정한 고용과 저임금 구조 속에서 우리 아이들이 언젠가 노사갈등의 주인공으로, 장기파업의 참여자로 동참할지 모른다. 한 가족 내에서도 고용형태가 달라지고 있는 지금, 노동정책이 사회안전망이 아닌 지뢰밭이 되어서는 안된다. 또한 비정규직 문제가 단순히 노동시장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지위의 문제, 인격의 문제로 변이되고 있다는 점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신뉴딜정책이라고 떠벌이는 너덜한 정책은 그만하자. 지금이야말로 세심한 정책이 필요하다. 경제가 어렵고, 고용이 불안정하며, 사회 불안정 요인이 커지고 있는 이때, 노동의 현장으로, 생활경제의 밑바탕으로 내려와 함께 경험해보라. 근데 한 숨부터 나온다. 언제 현장에 가보기는 “가봤어?”, 그럼 정부는 여지껏 “뭐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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