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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의 연구 대상은 단순히 상품이 아니라 오히려 노동생산물의 사회적 형태로서의 상품이고(주16-), 상품의 사회적 형태는 그 상품의 “가치”이다.(주17- “가치로서 상품은 사회적 양이며, 따라서 사물로서의 그 상품의 ‘속성’과 절대적으로 구별되는 어떤 것이다. 상품은 가치로서 인간의 생산활동 속에서의 인간관계만을 나타낼 뿐이다. 가치는 사실상 ‘교환’을 ‘함축하고’ 있지만, 교환은 사람들 사이의 물건의 교환이다; 교환은 사물 그 자체와 어떤 관계도 가지지 않는다.” (Ⅱ.3.4/1317; 26.3/127)) 따라서 맑스가 처해 있는 문제는 노동이 가치실체라는 것을 증명하는 데 있지 않고, 오히려 노동생산물의 이러한 사회적 형태로부터 자기 자신을 그렇게 나타내는 노동의 특수한 사회적 특성을 재구성하는 데 있다.(주18-쿠겔만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맑스는 이미 자신의 가치론을 증명하지 않고 있다는 비난과 대결한다 :
“가치 개념을 증명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관한 수다는 오로지 문제가 되는 사실뿐만 아니라 과학의 방법에 대한 완전한 무지로부터 기인한다. 내가 말하지 않더라도 1년이 아니라 몇 주 동안이라도 파업이 일어나는 모든 민족이 쓰러진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또한 마찬가지로 서로 다른 필요의 양에 상응하는 생산물의 양이 양적으로 서로 다르게 규정된 사회적 총노동의 양을 필요로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렇게 사회적 노동을 특정한 비율로 분할하는 필요성이 전적으로 사회적 생산의 특정한 형태를 통해 해소(지양)되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현상 방식만을 변경할 수 있을 뿐이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자연법칙은 일반적으로 결코 해소(지양)될 수 없다. 역사적으로 서로 다른 상황들 속에서 변경되는 것은 오로지 그 법칙이 관철되는 형태뿐이다. 또한 이러한 노동의 비율적 분할이 사회 상태 속에서 관철되고, 사회적 노동의 연관이 개별적 개인들의 노동생산물의 사적 교환으로서 간주되는 형태는 바로 이러한 생산물의 교환가치이다.”(32/552f))
상품생산이 자연형태가 아니라 사회적 생산의 늑정한 역사적 형태라는 사실은 바로 상품을 생산하는 노동의 사회적 특성이 상품생산에 기인하지 않는 사회적 연관 속에서 지출된 노동과는 다른 노동의 사회적 특성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러나 상품생산은 단순히 생산의 여러 형태 중의 한 형태가 아니다. 오히려 상품생산과 사회적 생산의 서로 다른 형태들 사이에는 결정적인 구조적 차이가 존재한다. 상품생산에서 노동이 사적으로 지출되고 또한 그 노동이 나중에 비로소 교환 속에서 사회적 특성을 가지고 있고, 사회적 총노동의 구성 요소로서 승인받는 반면에, 사회적 생산에서는 “생산의 사회적 특성이 전제된다.”(Ⅱ.1.1/103; Gr 89, Herv. von mir)
상품을 생산하는 노동의 특수한 사회적 특성에 관한 문제는 『자본』 제1장 1절에 상응하는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의 경우에서처럼 이 1절에서는 그렇게 분명하게 정식화되지 않고 있다. 맑스가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구별한 이후에,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에 따르자면 다음과 같다 :
“사용가치는 직접적인 삶의 수단이다. 그러나 반대로 이러한 삶의 수단은 그 자체 사회적 삶의 생산물이며, 지출된 인간의 삶의 능력이고, 대상화된 노동이다. 사회적 노동의 물질화로서 모든 상품은 사회적 노동을 통일시키는 결정체이다. 이러한 통일의 특수한 성격, 즉 교환가치 속에서 나타나는 노동의 특수한 성격이 이제 고찰되어야 한다.”(Ⅱ.2/108f; 13/16f, Herv. des letzten Satzes von m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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