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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만에 시집 한 권을 편안하게 읽었다...
나의 아이들에게는 항상 여유를 가지고 생활하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나는 여유 하나 가지지 못하고,
늘 조급하고 안달하는 마음으로 살았는지도 모른다.
시 한편 제대로 읽을 만한 여유조차 없었으니까...
햇살이 참 좋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산보도 못나가고(안 나가는 건지 못나가는 건지 구분이 안 된다)
감옥 독방 같은 곳에 처박혀서 이 생각 저 생각하다가 잠시 책을 들추어보면 벌써 도서관이 끝났다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그러면서 늘 마음은 초조하기 그지없었고, 무언가에 쫓기는 듯 불안함이 늘 유령처럼 주의를 배회했다.
아마도 야구 심판을 하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물론 심판 보는 게 재미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뭘 잘 모르는 생초짜 심판이 겪는 마음 고생이 크지 않을까 한다).
야구 심판을 하면서 내가 엄청나게 소심하고 겁이 많은 인간인 줄 알게 되었다.
이러한 나의 성격이 초조함과 불안을 더 부채질했을 것이다.
어제 야구 심판을 보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내가 심판 보는 일에 목숨을 걸고 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왜 여기에다 목을 매야 할까...
지금까지 해 오던 일에 목을 매지 않기 위해서 택했던 일이 야구 심판이었는데 말이다^^...
적당히 들락날락하면서 살아야지 싶었다.
그래서 수업 끝나고 오후 내내 시집을 읽었다.
이시영 시집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
도서관 열람실에 내려가서 눈에 띄던 시집이 바로 이 시집이었다.
역시 마음에 드는 시인이다.
시인에게 고맙다.
읽은 시 중에 한 편을 적어본다.
<풀꾼>
어렸을 적 방아다리에 꼴 베러 나갔다가 꼴은 못 베고
손가락만 베어 선혈이 뚝뚝 듣는 왼손 검지손가락을 콩
잎으로 감싸쥐고 뛰어오는데 아버지처럼 젊은 들이 우렁
우렁한 목소리로 다가서며 말했다. "괜찮다 아가 우지 마
라! 괜찮다 아가 우지 마라!" 그 뒤로 나는 들에서 제일
훌륭한 풀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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