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 첫 번째 여행 ① 꿩 대신 닭이라고 하던데..... 이건, 닭이 아니라 꿩이었네: 21구간 세화리에서 종달리까지
from 이런 길, 저런 길 2016/07/12 14:49![사용자 삽입 이미지](/attach/4673/1093919307.jpg)
성산항에 한무더기 사람들을 내려놓은 버스가 성산일출봉 쪽으로 부리나케 달려갑니다. 하지만 무리들은 갈 길을 몰라 우왕좌왕, 스마트폰을 꺼내느니 지도를 펼치느니 부산합니다. 그 틈을 비집고 내리기 전 얼핏 봐둔 길을 어림잡아 들어서는데요. 이런, 함께 내린 사람들이 뒤따릅니다. 가만 보니 여행사 가이드라도 된 모양새입니다.
순간 난감해지지만 장난기도 발동합니다. 따르는 이들이 어쩌나 힐끔힐끔 뒤돌아보기도 하지만요. 이쪽이 맞는 길이라는 듯 선창가 쪽으로 앞장섭니다. 아니나 다를까. 저건 오징어잡이 배인가 보다, 저건 뭘 잡길래 저리 작지, 두런두런. 그제야 상황파악이 된 몇 몇은 다른 길을 찾기 시작하고, 또 다른 몇 몇은 왔던 길을 되짚습니다.
이왕 들어선 김에 선창가를 빙 둘러봅니다. 뭐, 항구가 크면 얼마나 크다고. 또 우도 가는 배 시간도 넉넉히 남았으니 말입니다. 게다가 저 쪽 끄트머리에 해양경찰이란 글씨도 큼지막하게 보입니다. 아까 버스에서 내렸을 때 보단 바람이 좀 세게 불어 걷기가 힘들 지경이지만, 뭐. 일단 저까지 가보고 배타는 곳이 어딘지 물어봐야겠습니다.
첨엔 성산항이 저쪽이다 손짓을 하는 가 싶었는데, 웬만하면 오늘은 우도에 들어가지 말랍니다. 2시 쯤 주의보가 뜰 예정이고 지금은 들어가도 나오는 배가 없을 거니 가질 말라는 얘기지요. 허참, 종달리 쪽 도선항에서도 허탕을 쳤는데 여기서도 이러면 어쩌지요. 설마, 아까 사람들 놀리던 벌이라도 받으라는 건가요.
덕분에(?) 이른 점심을 고등어구이에 고등어추어탕으로 아주 비리게(?) 먹고 다시 세화리로 향했습니다. 꿩 대신 닭이라고 하던가요. 우도 올레길 대신, 날씨가 좋았더라면 어제 낮에 걸었을지도 몰랐을, 세화리에서 종달리까지 이어지는 21구간을 걷기로 한 겁니다. 제주도까지 와서 우도를 못 가보는 게 아쉽긴 하지만 말이지요.
해녀박물관은 내부를 새로 꾸미는 중이라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성산항에서도 그랬고, 여기서도 도착하자마자 무작정 바닷가 쪽으로 가 찬바람 맞고 해맨 탓에 쉬었다 가려했는데 말입니다. 다행히 가까운 곳에 비가림치곤 꽤 큰 쉼터가 있어 몸을 녹일 수 있습니다. 올레길 가운데 비교적 짧은 구간이지만, 오름도 올라야 하니 만만하게 봐선 안 되니까요.
박물관 뒤편 연대동산을 넘으니 면수동 마을회관 앞을 지납니다. 그리고는 곧, 세상에. 이런 앙증맞은 무밭과 당근밭을 어디서 또 볼 수 있을까요. 까만 돌담들 사이로 푸른 무 잎과 당근 잎이 바람에 살랑살랑. 첨엔 그저 그 파랗고 까만 모습에 넋을 놓고 보았더랬는데. 그러다 뭘 심은 걸까, 하고 봤더니. 맞아요. 무와 당근이었답니다.
까만 돌이 지천에 널려서인가요. 아까 마을을 지나올 때 봤더니 담도, 집도 돌이요. 밭을 지날 땐 밭 경계도 돌들로 삼더니. 글쎄 묘를 두고도 빙 둘러 야트막한 돌담을 쌓은 게 보입니다. 아마 묘자리를 파다 나온 돌들을 어찌 처리하기 뭐해 그저 주위에 둘렀을 터임에 분명한데. 여기서 보니 저것도 좋은 풍경을 이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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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까맣고 푸른 낯불밭길을 지나고 나니 길은 다시 마을로 이어집니다. 서문동이라고 하는데요, 조선시대에 쌓은 별방진이라는 독특한 성을 두고 있는 마을입니다. 제주도에는 이런 성곽이 곳곳에 있는데요, 올라가지 말란 표지가 없으니 한번 쯤 성 위를 걷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별방진에 올라보면 마을이며 바다 먼 곳까지도 한 눈에 들어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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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해수욕장까진 조금은 심심한 길입니다. 물론 제주니까, 그것도 올레길이니까 하는 말이지. 실은 쪽빛과 옥빛을 번갈아 보여주는 바다를 왼편에 두고 있어 한 눈 팔고 걷다간 오른편에서 오는 차에 큰일 날 수도 있습니다. 아, 다행이도 여기 제주도 찻길엔 비교적 인도가 널찍이 있는 편이고 갓길도 여유가 넘칩니다. 그러니 여유를 가져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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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바람의 여신이라는 영등할망에게 의례를 하는 곳인 각시당도 기웃하고. 꽃이 필 때면 섬 전체가 하얗게 문주란으로 덮여 꼭 토끼처럼 보인다는 토끼섬도 너머다 보고. 밀물 때 들어온 고기를 썰물 때 거두는 갯담, 특히나 멜(멸치)이 많이 몰려들어 잘 뜨는 개라서 붙여진 멜튼개에서는 멜이 있나 한참 들여다보기도 했으니. 여간 한 눈을 판 게 아니네요.
저 멀리 우도와 성산이 머리를 내밀 때쯤이었을까요. 또 난생 처음 이런 모래해변을 어디서 봤을까요. 어찌나 곱고 고운 모래들이 펼쳐져있던지. 게다가 바다는 또 얼마나 푸르고도 파랗던지. 이쪽에서 저쪽까지 뛰어봐야 숨 한 번 고르면 될 만큼 작은 백사장이지만. 바람만 없다면, 작은 의자라도 있었다면 오늘은 여기까지 걸어도 괜찮겠다, 싶을 지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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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멀리서 보면 보아뱀 같기도 한 지미봉을 앞두고 숨고르기를 합니다. 봉우리를 아래서 돌아가는 둘레길도 있으니 마음이 흔들릴 법도 하지만. 뭍에서라면 뒷동산에도 못 미치는 166미터만 오르면 되기도 하고. 무엇보다 한라산과, 우도, 성산일출봉, 제주 바다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지미봉을 놓치는 건. 맞습니다. 앙꼬 없는 진빵입니다.
하지만 앙꼬 없는 진빵이라도 맛보긴 쉽지 않습니다. 시작부터 격한 오르막이거든요. 게다가 자꾸만 어디서 방송 소리가 들리는데. 좀 아까 성산항에서 들은 주의보, 어쩌구 때문이던가요. 내용이라도 알면 괜찮겠는데 웅웅 소리만 들리고. 신경이 쓰여도 너무 쓰입니다. 숨소리가 거칠어지는 만큼 스피커 소리도 거칠어지고. 아, 꼭대기 가면 좀 나아지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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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탄이 안 나오려야 안 나올 수가 없는 풍경이 눈앞에 가득합니다. 이름 그대로 소 누운 듯 펼쳐져 있는 우도와 그 옆에 우뚝 솟은 성산일출봉. 앙증맞게 오밀조밀 붙어 있는 종달리 마을 집들과 하얀 눈을 머리에 이고 있는 한라산. 정말 어디 한 곳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이건 분명, 꿩 대신 닭이 아니라 꿩 그 자체입니다.
얼마나 오래 있었던지 지미봉에서 내려오니 노을이 밀려옵니다. 출발할 때 봤던 이정표에는 3시간이나 4시간이면 된다던데. 얼추 여기까지만도 벌써 4시간이 걸렸습니다. 아마 그 시간이란 게 그냥 걷는 시간만 따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니면 여기 기웃 저기 기웃. 여기도 가보고 저기도 가보고. 한참을 쉬고 한참을 구경하느라 그랬을지도 모르지요.
서둘러야겠습니다. 근처에 잠 잘 곳을 정했더라면 느긋이 종달리 해변을 걷겠지만. 오늘은 서귀포까지 가야 하니 그렇습니다. 또 21구간이 끝나는 곳에서 짐을 맡긴 숙소까지 더 걸어야 하니. 이러다 시간이 모자랄지도 모르겠습니다. 발걸음을 빨리해 종달바당을 걷습니다. 바닷바람을 쐬고 있는 오징어도, 살랑거리는 갈대도 그저 흘긋흘긋 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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