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스무 번째 여행 - 해파랑길 ② 기찻길 따라 걷는 길: 동해시 묵호역에서 추암까지 33구간
 
첫째 날, 기찻길 따라 묵호역에서 동해역까지(2015년 7월 4일)
 
이주 만에 또 나왔다. 여기저기 산허리에 구멍 뚫고 고속전철인가를 놓느라 폐쇄된 강릉역만 아니었다면 금방 왔을 텐데. 버스타고 시외버스타고 다시 또 버스타고. 1시간이면 올 거리를 2시간은 족히 걸린 듯하다. 그래도 집 나올 땐 꾸물꾸물하던 날씨가 맑게 개여서 그걸로 괜찮다. 
 
발한삼거리에서 늘 지나던 묵호역 앞 대신 뒤편 골목길로 해파랑길이 이어진다. 여길 얼마나 왔다 갔다 했는데 이런 길이 있나 싶다. 지도를 보니 묵호역이 아닌 묵호항역으로 향한다. 묵호역이 아니라 묵호항역이라, 이것도 처음이다. 호기심에 길 이쪽저쪽을 둘러보니 어렸을 적 뛰놀던 골목들과 고개 마루다. 배고프단 핑계 삼아 향로시장으로 들어선다.
 
묵호는 묵호항이 석탄을 실어 날랐던 곳이어서 종종 거기서 잘 못 연상하기도 한다. 하지만 깊고 맑은 바닷물이 검게 보이는 것처럼 거기서 따왔다고 보는 것이 맞다. “이 곳은 물도 검고 바다도 검고 물새도 검으니 먹 묵(墨)자를 써서 묵호(墨湖)라고 하는 게 좋을 듯하구나."라는 유래는 곧 몸이 까만 새, 가마우지와도 연결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묵호항역은 화물을 실어 나르는 역이라 처음부터 광장이란 것도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역 바로 앞 길 건너편으로 집들이 붙어 있다. 하지만 오래 전에 비워졌는지 깨진 창들이며 열려진 문들, 무너져 내린 벽까지 을씨년스럽다. 역 안쪽에 뜬금없이 서 있는 돌하르방만이  쇄락한 마을을 지키고 있다.
 
빈집 지키는 개들 소리만 요란한 묵호항역을 뒤로하고 철길 따라 바다 쪽으로 향하니 작지만 아기자기한 모래사장이 나온다. 하평해변이다. 정식으로 문을 연 건 아닌데 그래도 사람들이 많다. 열풍이 불고 있는 캠핑 족들이 풍기는 고기 냄새만 아니라면 딱 발 담그고 놀기 좋으련만. 쫓기듯 냄새 때문에 자리를 뜬다.
 
멀리 묵호항이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정자가 가까이 있다. 아까 쉬지 못한 보상일까. 발 뻗고 바닷바람 맞으면 한참을 쉰다. 헌데 가만 보니 누군가 벗어놓고 간 신발 한 짝과 밀짚모자가 보인다. 해변은 아까 왔던 데까지 가면 꽤나 멀고, 정자 앞은 낭떠러지로 아래가 철길인데. 무슨 일이야 있겠냐싶지만 괜히 등골이 서늘해진다.
 
정자에서 내려오니 땡볕이다. 한낮을 피해 걷는다고 4시 다돼서 걷기 시작했는데도 이렇다. 대로 건너편은 그나마 그늘이 지는데 이쪽으론 해가 바로 머리 위다. 아까까진 좋았는데 괜한 걱정에 서둘러 나섰나 보다. 해가 잦아들 때까지 천천히 기다리며 한숨 자둘 것을. 어쩔 수 없다. 모자라도 푹 눌러쓰고 부채로 피해봐야지.
 
다행히 한섬해변에서부터 솔 숲 산책길이다. 강릉에서 한참을 걸었던 소나무 숲에 비하면 미니어처 같기도 하지만, 요리조리 소나무 사이를 피해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또 감로수가 나온다는 감추사(甘秋寺)를 지나서부터는 야생화가 잔뜩 핀 곳, 조릿대가 늘어선 곳, 기찻길 따라 바다도 보였다 안 보였다. 산책길이 다 같은 산책길이 아니네.
 
아이들 급식할 돈은 없다면서도 골프 사랑만큼은 지극하신 어느 도지사를 떠올리게 하는 골프장에서부터 산책길이 끝이다. 산책길이 끝났다는 건 곧 땡볕이라는 뜻. 동해역이 코앞이지만 그늘 하나 없는 길이 계속된다. 아무래도 오늘은 여기까진가보다. 어차피 추암은 버스 편이 좋지 않아 버스가 자주 다니는 곳 어디서 멈출 생각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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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기찻길 따라 동해역에서 추암을 지나 삼척 증산마을까지(2016년 5월 14일)
 
강릉이 생각보단 외진 곳이라 연휴가 아니면 전라도나 경상도, 아니 충청도 쪽은 생각지도 못한다. 그래서 일 년에 한두 번 있을까하는 연휴 때면 곧장 밖으로 쏘다닌다. 덕분에 바닷길 걷기 속도가 느리다. 물론 바우길을 이어 붙여 걷는다고 시간을 보냈다지만. 2010년 2월 7일에 고성에서 출발했는데 이제 동해니, 말 다했다.
 
해서 이주 전에 지리산을 다녀와 조금은 피곤한데도 날 좋다는 핑계로 길을 나섰다. 생각해보면 땅끝에서 고성까진 한 달에 두, 세 번 걸을 때도 있었지만 3년 만에 다 걸었는데. 바닷길 걷기는, 맞다. 아직 반도 채 안 됐는데 5년 넘게 걸었으니. 아무래도 이러다간 10년은 족히 걸리지 않을 듯싶다. 허나 언제까지다 정해놓은 것 없으니 서두를 필요도 없다.
 
더구나 오늘처럼 강릉 살면서도 손꼽을 만치 파란 바다와 파란 하늘이 맞닿은 수평선을 볼 수 있는 날엔 더 그렇다. 그러니 한 번에 오는 시외버스대신 버스타고 다시 셔틀버스를 타야 하는 번거로움도 다 마다한다. 하지만 배고픔 앞엔 장사 없고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얼른 자장면이라도 한 그릇씩 후딱 비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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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찻길 옆에 이런 길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실은 해파랑길 홈페이지에서 지도를 출력할 때만 긴가민가했다. 아무리 봐도 여기로 가는 게 맞나. 헌데 버젓이 리본도 달려 있고 표시도 명확하다. ‘해파랑길 33코스 해물금길’. 처음엔 그래도 차가 다닐 만치 길이 뚜렷한데, 밭인지 공원인지 불분명한 곳도 지나고. 고가도로 밑을 지나더니 하천을 건너다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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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평과선교 밑을 지나고 나니 거의 모든 도시가 앞 다퉈 만들어내고 있는 예의 그 하천 옆 산책길로 연결된다. 다른 게 있다면 바다가 가깝고 물이 맑아서일까.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강물에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들이 많다는 것. 자전길과 산책길이 나누어져 있는 것부터 운동기구, 잔디밭, 의자, 운동장까지 강릉 남대천변과 엇비슷하다.  
 
산책길이 끝나니 바다다. 하지만 아까부터 눈에 거슬렸던 시멘트 공장이 바다 풍경을 가로막고 있다. 게다가 군부대 철조망까지 더해지니 이건 영 아니지 싶다. 그래도 잠깐이지만 철책을 끼고 소나무 숲길을 걸을 땐 조금 낫는가 싶었는데. 이번엔 미세먼지 주범, 화력발전소에 석탄을 실어 나르는 트럭이 쉼 없이 질주하는 대로다. 그것도 땡볕에.
 
추암을 바로 코앞에 두고 리본이 이쪽저쪽이다. 조각공원 쪽에도 보이고 지금껏 걸어왔던 공단길에도 바람에 날린다. 공사를 하고 있어서 더 그런지 모르겠는데, 암튼 길이 헛갈린다. 모로 가도 추암만 가면 되겠거니 싶은데 쉽지 않은 셈. 에라, 모르겠다. 일단 조각공원 쪽으로 올라선다. 그쪽이 바다도 가깝고 나무도 있으니 해는 피할 수 있겠지.
 
다행이 아까처럼 철조망을 바로 옆에 끼고 데크로 만든 길이 보이니 잘 찾아온 셈. 더구나 아찔한 절벽 옆에 있는 만큼 바다 풍경이 끝내준다. 또 촛대바위 하나 보겠다고 온 수 많은 사람들을 비켜서서 추암을 볼 수 있는 전망대로도 훌륭하다. 북평해암정하고 추암촛대만 건너뛰면 발 담그고 논 추암해수욕장까지. 해물금길 마지막 화룡점정(畵龍點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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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무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지난번부터 해파랑길을 걷는다. 앞으로도 쭉 그 길을 걸을지 바다를 따라 갈지 딱히 정하지는 않았다. 이번도 해파랑길을 걸었는데 아기자기한 맛이 바우길 못지않다. 아무래도 차도를 다니는 것보다 낫기도 하니 부산까진 이 길을 걸을 듯하다. 추암에서 묵호역까지 어이지는 33구간은 13.3km로 바삐 걸으면 반나절도 채 걸리지 않는다.   
 
* 가고, 오고
묵호역은 강릉역이 폐쇄되기 전엔 참 쉽게 갔을 터인데. 정동진까지 버스타고 가서 기차를 타던가, 터미널 가서 시외버스타고 또 버스타고 가던가. 암튼 1시간 남짓이면 될 것을 2시간 걸려 가야한다. 2017년 말까진 하는 수 없다. 
 
* 잠잘 곳, 먹을 곳
동해역에서 추암까지를 제외하면 곳곳에 먹을 곳, 잠잘 곳 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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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7 09:56 2017/03/17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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