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언제 마지막으로 편지를 썼었는지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버니지아가 살던 때에는 상상도 못했을 전자통신수단의 발달 때문에 이젠 많은 사람들이 편지를, 그것도 손으로 꾹꾹 눌러쓴 편지는 매우 비효율적인 의사소통 수단이라고 하거든요. 하긴 시간이 곧 돈인 시대이니 그럴 만도 합니다. 하지만 가끔은 비효율적이라 해도, 그리고 편지를 받아볼 이가 없다 해도 또 보낸 편지에 답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해도 가끔은 편지를 쓰고 싶을 때가 있답니다. 물론 한 자, 한 자 펜으로 꼼꼼히 쓰지는 않더라도요.

 

2.

둘이 벌다 하나만 일을 그만둬도 금세 지갑이 얇아지는데 둘 다 일을 그만두니 당장 이것저것 줄여야 할 게 많습니다. 그동안 뭘 했는지 모아둔 돈은 없고 그저 퇴직금 받은 것밖에 없으니까요. 어떻게 해서든 이 돈으로 4년을 써야 하는데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답은 씀씀이를 줄이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습니다. 해서 외식비는 없애고, 공과금 나갈 것은 줄이고, 또 허리를 핑계로 그 좋아하는 걷기여행도 가지 말자,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기저기 5천원, 3천원, 1만원씩 내던 후원금, 회비도 당분간은 중단하자, 했습니다. 헌데 어찌 보면 얼마 되지도 않은 돈들이기도 하고 빡빡한 생활 속에서 그나마 여유로움을 주던 돈들을 막상 줄이려 하니 쉽지가 않더군요. 더구나 후원금. 통장에서 매달 25일 혹은 10일에 그렇게 빠져나가는 이 적은 돈들까지 끊는 건 정말 어려웠습니다. 일일이 후원하는 단체에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하고 다시 여건이 되면 꼭 연락하겠다, 고 말하는 게 여간 쉽지가 않더라 이겁니다. 그래 어찌할까 고민하다 은행엘 갔답니다. 그리고는 그동안 자동이체 해왔던 곳들의 목록을 뽑았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3.

어느 날 버지니아는 어떻게 하면 전쟁을 방지할 수 있느냐를 물으며 기부를 청해온 한 통의 편지를 받습니다. 이 편지는 그녀 스스로 그 편지에 대한 긴 답장의 글에서도 밝혔듯이 당시로서는 매우 유별난 편지였습니다. 왜냐면 일찍이 ‘교육받은 남성’이 여성에게 어떻게 하면 전쟁을 방지할 수 있겠느냐고 의견을 물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유별난 편지를 받은 그녀는 무려 3년이나 지난 후에야 답장을 씁니다. 그녀로서는 답장이 저절로 씌어지거나 다른 사람들이 답장해주기를 바랐지만 그녀에게 편지를 보내온 ‘교육받은 남성’조차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아직 못 내린 채 놔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 오랜 시간 동안 기다려온 신사의 요청에 그녀는 응답을 합니다. 당신의 기부 요청에 기꺼이 1기니의 돈을 보내줄 수는 있다고. 하지만 자신 앞에 놓인 또 다른 두 통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 먼저라고 합니다. 여자 대학의 증축을 알리는 다른 한 금전출납원이 보낸 편지와 ‘교육받은 남성의 딸’들의 전문직 고용을 도와주는 단체의 생활비 마련을 호소하는 또 다른 한 통의 편지 말입니다. 또 그녀는 당신 단체에 1기니를 보내기에 앞서 여자 대학 증축을 위해, 또 여성이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각각 1기니의 돈을 보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나서야 당신 스스로가 부가하는 조건 외에 다른 어떤 조건 없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1기니를 보낼 수는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녀는 신사에게 1기니를 보내기는 하나 당신 단체의 가입신청서는 작성할 수 없다는 말을 덧붙입니다. 왜냐면 그녀에게 신사가 물어왔던 폭력과 전쟁 방지, 그리고 지배의 철폐는 그것들을 만들어낸 ‘교육받은 남성’들의 말과 방법과는 다른 새로운 말과 새로운 방법을 창조함으로써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마지막 말을 전합니다. 그녀가 제안한 새로운 말과 새로운 방법의 창조는 ‘교육받은 남성의 딸’들이 받아왔던 가정교육에 대한 유일한 대안인 공교육을 위한 여자 대학의 설립과 함께 ‘교육받은 남성의 딸’들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전문적인 직업을 가질 수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말입니다.

 

4.

은행에서 뽑아준 목록은 그리 길지 않았더랬습니다. 이미 전화로 두어 군데 후원을 중지하는 전화를 했기 때문입니다. 수화기 너머 되려 무슨 일이 있느냐며 안부를 물어오는 그런 전화를 말입니다. 그래, 자동이체를 해지하는 일은 무척이나 금방이더군요. 몇 장의 동의서에 서명만 하면 끝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은행 문을 나서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습니다. 이제 더 미안함에 망설이며 전화를 걸 필요가 없어졌는데도 말입니다. 사람 마음 참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있은 지 이제 일 년이 훌쩍 지났고, 지금도 그때, 꼭 일 년 전 수화기를 들었던 그때, 미안함에 은행문을 나서던 그때를 잊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되는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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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3 13:49 2009/06/23 13: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