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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또 파즈(Nastor Paz)는 스물다섯 번째 생일 하루 전날이자 체 게바라가 죽은 지 꼭 3년이 되는 날인 1970년 10월 8일에 숨을 거둡니다. ELN(볼리비아 민족해방군: Ejercito de Liberacin Nacional)의 멤버로 떼오폰떼(Teoponte) 지역 게릴라 운동에 참가해 약 석 달간 투쟁을 하다 마리아포(Mariapo) 강둑 위에서 굶어 죽은 겁니다. “모든 진정한 혁명가들은 무장 투쟁이야말로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길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까밀로 또레즈(콜롬비아인 사제, 사회학자, 대학 교목인 또레즈는 콜롬비아 민족 해방군이었으며 정부군에 의해 사살됐습니다. 파즈는 까밀로 또레즈의 모범과 글로부터 깊은 충격을 받았지요.)의 말을 새기며 길을 떠난 파즈는 조그맣고 까만 노트를 가지고 다니며 떼오폰떼 전투 기간 내내 일지를 썼는데요. 다음은 프란치스꼬가 쓴 전투일지 중 하나입니다.
 
8월 1일
오늘이 바로 ‘그 날’1)이 아닌가요. 공주여, 또 다시 맞는 이 기쁜 날, 특별한 사랑으로 당신을 생각하게 되오. 당신을 사랑하오.
이틀 전까지는 아주 어려운 날이 두 번 있었소. 적군과 두 번의 유리한 접전을 벌였소. 그러나 나의 전반적인 사고방식을 바꾸어야만 했소. 아마 그것은 폭력, 임무 수행, 투쟁의 의미, 희생의 가치, 우리 부대의 효율성 등,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의 근저에 맴돌고 있는 당신의 부재에 관계된 것일 거요.
그것을 생각하면 내 마음은 비통에 잠기게 되오. 그렇지만 나는 성장했소. ‘옛 사람’의 모델을 버리고 그것을 ‘새로운 인간’의 모델로 전환시킨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웠소. 모든 성장은 고통을 의미하오. 이것이 내가 느꼈던 바이오. 이 일들이 주님의 길이라고 해도 성장은 역시 확실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오. 그리고 오늘은 더 평화롭고 평온한 상태이오. 그리고 내가 지켜야 할 결의를 다짐해 보았소.
첫째, 나는 승리 아니면 죽을 때까지 이 싸움을 계속 할 것이오.
둘째, 이 길이야말로 역사가 진전하는 길이며, 지금 다른 길은 없소.
셋째, 그렇다면, 특히 까밀로 또레즈의 예언자적 역할을 기억한다면 이것이 바로 크리스챤의 길이오.
넷째, 여기에 있음으로써 나는 보다 더 온전히 당신과 함께 하는 것이오. 왜냐하면 우리 삶의 이상을 실현하고 있기 때문이오.
나는 다시 한 번 당신을 생각하면서, 무다 가르시아(Muda Garcia)에서의 파티들, 모터사이클, 일요일 아침들, 우리의 첫 키스, 함께 지낸 모든 행복한 순간들-그리고 슬펐던 일들도 떠올려 보오. 이 모든 일들에 대해 계속 생각하지 않는 게 좋겠소. 왜냐하면 그 생각이 나로 하여금 당신 곁에 있고 싶도록 만들기 때문이오. 그러나 어쩔 수 없소.
모든 일은 잘 되어 가고 있소. 가장 어려운 고비는 이미 지나갔소. 전망은 밝소. 그리고 단지 우리의 결점과 나약함만이 극복된다면 그 전망은 계속될 것이오. 이 첫 석 달이 결정적인 시기요. 앞으로 모든 일이 보다 잘 되리라 생각하오. 충만함과 믿음으로 기도하기 시작했소.
자, 이제 당신을 떠나야 하오. 사랑하오. 아, 그런데 십자가가 달린 모자와 “모든 것 그리고 언제나”라는 말이 새겨진 손수건을 잃어버렸소. 새 것을 만들어 주지 않겠소?
 
2. 
손병휘의 3번째 앨범 ‘촛불의 바다’는 ‘전쟁과 평화’라는 부제를 갖고 있습니다. 이라크, 체첸, 보스니아 등 지구촌 분쟁 지역의 참상을 고발하고, 인디언 수우족의 추장, 인도의 시성 타고르 등의 입을 빌어 평화를 노래하고 있지요. 이 앨범에는 첫 곡으로 <모든 것, 그리고>이 있는데요. 네스또 파즈의 동지이자 연인인 쎄시2)가 떠나는 파즈에게 수놓아 준 손수건에 써 있는 글귀에서 제목을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요. 8월 1일 전투일지에 바로 그 얘기가 있습니다. 
 
<모든 것, 그리고>
조금 오래 전 어느 저녁 공원벤치에 앉아있을 때
그 위로 빛나던 하늘의 별빛 그 보다 더 빛나던
너의 눈동자 그 입술만큼 지금도 널 사랑할 수 있을까
모든 것, 그리고 언제나
모든 것, 그리고 언제나
모든 것, 그리고 언제나
모든 것, 그리고 언제나
그 만큼 오래 전 어느 한 낮 종로거리에 서 있었을 때
그 아스팔트 뜨겁던 태양 그 보다 더 빛나던
너의 그 눈동자 억센 두 팔 만큼
지금도 그렇게 달려갈 수 있을까
모든 것, 그리고 언제나
모든 것, 그리고 언제나
모든 것, 그리고 언제나
모든 것, 그리고 언제나
모든 것, 그리고 언제나
조금 오래 전 어느 새벽 가슴 벅찬 가슴 나누었을 때
동트는 여명 한줄기 햇살 그 보다 더 빛나던
너의 그 눈동자 굳센 미소만큼
지금도 그렇게 당당할 수 있을까
모든 것, 그리고 언제나
모든 것, 그리고 언제나
모든 것, 그리고 언제나
모든 것, 그리고 언제나
모든 것, 그리고 언제나
 
3.
네스또 파즈의 일지는 87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그것도 언제 맞닥뜨릴지 모르는 ‘고릴라’부대3)와 대적하기 위해 항상 긴장을 해야만 하기에 그다지 길지 않습니다. 그래서 책도 무척 얇고 또 그만큼 가볍지요. 하지만 파즈의 일지를 한 장, 한 장 읽어 내려가다 보면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는 걸 느끼게 될 겁니다. 그리고 “사랑이란 동지를 위해 죽는 것”이라는 파즈의 마지막 시구에서, 인간 존재의 가치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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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라 파즈의 Universidad de San Andres에서 네스또와 쎄시가 처음 만난 날인 8월 1일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네스또는 거기에서 의학을 그리고 쎄시는 생화학을 공부하고 있었지요.
 

2) 쎄실리아는 뒤에 반제르(Banzer) 체제 하에서 학생 전투원과 광부들이 탄압받고 있을 때 ELN의 지하 집회장에서 사람들을 보호하려고 노력하다 볼리비아 정부군의 포격으로 인해 죽게 됩니다

 

3) ‘고릴라 Gorilla’는 진압군인 정부군대를 가리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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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7 17:52 2011/01/07 17: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