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열아홉 번 째 여행 - 해파랑길 걷기 ① 동네 개들 다 나왔나보네: 옥계에서 묵호까지 34구간(2015년 6월 21일)
 
메르스와 가뭄으로 곳곳이 난리다. 텅 빈 도심과 쩍쩍 갈라진 논밭이 국민들 마음일까. 세월호 참사 때와 마찬가지 이번에도 무능(無能)만을 보여주는 정부. 또 그걸 바라보는 국민들 마음 말이다. ‘살려야 한다’는 문구 앞에서 전화기를 붙들고, 마른 논을 향해 소방호수를 부여잡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인기가요 순위만큼이나 자주 발표되는 여론조사 지지도?
 
강화도와 경기북부, 강원도 지역은 예년에 비해 강수량이 절반이란다. MB와 새누리당은 4대강 사업을 밀어붙이면서 분명 가뭄에 도움이 될 거라 했지만. 이제와 또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수로를 놔야한다고 하면 그건 분명 사기다. 하기야 약속은 자기가 해놓고 보상보육 이행은 지방정부가, 교육청이 하라고 하는 마당이니 아니라 해도 별 탈 없을 듯.
 
다행인지 지난주에 소나기가 몇 번 왔다. 그래서일까. 군데군데 가뭄피해로 보이는 메마른 밭이 보이기는 했지만. 옥계를 벗어나 작은 고개 하나를 넘고 만난 들녘엔 초록색 벼들이 씩씩하다. 해갈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하는 얘기들이 있어 걱정을 했더랬는데. 가뭄 속에 걷는 시골길, 그나마 마음이 좀은 덜 무겁다.
 
하지만 산길로 접어드는 길가 밭은 푸석푸석하다. 그 가운데 고추며 옥수수는 그나마 잘 버티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대신 감자 꽃은 제대로 피지도 못한 것처럼 꽃대가 축 늘어져 있다. 고구마도 한창 줄기를 뻗어야 할 터인데 그렇지 못하고. 하우스에 토마토만 주렁주렁 매달렸다. 그렇다. 가뭄이 끝나기엔 아직 멀었으니, 오늘은 조심조심 걸어야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지난 번 <헌화로 산책길>을 마지막으로 바우길이 끝났다. 2012년 5월에 13구간 <향호 바람의 길>을 시작했으니 꼭 3년 만이다. 처음 바우길을 걸었을 땐 13구간이었는데 그 동안 2개 구간이 추가됐다. 그 중 동해안 바닷길 걷기를 하면서 11개 구간을 걸었으니 거진 바우길을 다 걸은 셈이다.  
 
이제 7번 국도를 따라 곧장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데, 다행히 심심치 않게 해파랑길이 기다리고 있다. 생각해보면 바우길 대신 7번 국도를 따라 해안길을 걸었다면 울진도 더 지났을 시간이긴 하다. 하지만 바다만 끼고 걷는 것보단 바닷가 마을과 산을 이어주는 길을 걷는 게 훨씬 재미 지니, 것도 괜찮다. 
 
해파랑길은 부산 오륙도해맞이공원에서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770km를 잇는 길이다. 중간 중간 강릉 바우길, 영덕 블루로드와도 겹치고 얼마 전 개통한 동해안 자전거길과도 함께한다. 이 길이 없었다면 7번 국도를 따라 지루한 아스팔트길을 걸었을 터. 덕분에 동해안 이곳저곳을 두루 걸을 수 있으니 시간이 좀 더 걸려도 상관없다.
 
옥계는 면소재지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치 조용하다. 장날이나 되어야 북적부적하려나, 토요일임에도 버스 정류장 말고는 나중에 수도 없이 만나게 되는 개조차 보이질 않는다. 다행히 해가 쨍쨍 내리쬐긴 하지만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 덥진 않다. 한 시간 쯤 후에 만나게 될 산길만 빼면 동네 산책 나온 길인 듯.
 
하지만 계곡물도 바짝 마른 산길 초입에서 개 세 마리가 요란하게 짖는다. 다행히 묶여 있는 것 같은데, 어째 지나가기엔 길이 매우 좁아 보인다. 버젓이 집 방문 앞을 지나는 이 길이 맞는지도 모르겠고. 목줄이 조금이라도 길면 다리까지 닿을 수 있을 것 같다. 다행이 주인 할머니가 길이 맞으니 쭈욱 올라가면 되고, 개는 묶여 있으니 걱정 말라고 하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30분쯤 산길을 오르니 여기서부턴 <옷재>라는 이정표와 함께 동해시와 강릉시를 구분하는 안내판이 보인다. 중간에 한 번, 개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쉬었으니 그다지 높은 것 같진 않다. 경사도 그리 가파르지 않고, 바람만 안 불었다는 것 빼곤 힘들지 않다. 그래도 제일 높은 데 올랐으니 잠깐은 쉬었다 가야겠지. 
 
조용한 마을길을 지나 산불감시초소에서 또 잠깐 쉬었다 고개를 넘는데. 이번엔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멀리서 들리는 개소리에, 숲 속에서 고라니가 먹이 찾는 소리에 오금이 저린다. 고라니는 저도 놀랐는지 길 이쪽에서 저쪽으로 성큼성큼 뛰더니 숲 속으로 몸을 감춘다. 그제야 숨을 내쉬며 주의를 돌아보니 멀리 마을이 보인다. 
 
서둘러 고개를 내려와 여기가 어딘가 살펴보니 약천마을이란다. 한번쯤 들어봤을 시조, “동창이 밝았느냐....”를 지은 남구만이 살았던 곳이라는데. 가만 보니 유적지 바로 옆 우물이 꽤나 시끄러웠던 곳이다. 여기서 살고 있는 분들에겐 미안한 마음이지만 섬뜩한 기분이 드는지라 발걸음이 빨라진다. 어쩔 수 없다.
 
헌데 그 오싹함이 채 가시기도 전, 철조망 저쪽에서 울부짖는 개소리가 들린다. 그것도 한 , 두 마리가 아니다. 게다가 멀리 앞서 걷던 아주머니들이 되돌아 나오시는 모습이 꼭 개에 놀란 듯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그나마 주인이 어디를 가려는지 차를 빼 나오고 있어 개를 막았으니 망정이지. 산만한 개와 맞닥뜨렸을 뻔.
 
뒤도 안 돌아보고 서둘러 고개를 넘는다. 멀리 푸른 바다가 보일락 말락. 아무래도 인적 많은 곳엔 개가 없겠지, 발걸음이 빨라진다. 그런데 웬 걸. 이번엔 줄까지 풀린 개들이 떼로 몰려온다. 그나마 아까 만난 개들에 비한다면 강아지 수준. 그래도 앙칼지게 짖으며 발목까지 달라붙는데, 아무래도 동네 개들 다 나왔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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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리도 넘는다는 망상해변에서 숨도 고를 겸, 바다도 볼 겸 한참을 쉰다. 아직 물놀이하기엔 이르지만 그래도 꽤 북적북적하다. 망상역을 지나고부터는 쭉 왼편에 바다를 끼고 걷는다. 동해안 자전거길 위에 해파랑길이 얹혀있다. 간간이 자전거들이 내달리긴 하지만 그다지 위험하지도 않고. 차도하고도 멀찌감치 떨어져 있어 걷기에 좋다.
 
보드타는 사람들이 꽤 있던 대진항을 지나고, 낚시하는 사람이 유난히 많이 보이는 어달해변도 지나고나니 곧 묵호항이다. 묵호는 태백 살 때 거의 매주 놀러왔던 곳이다. 덕분에 논골담길은 수도 없이 올랐고. 까막바위며 등대, 방파제 역시 눈에 닳았다. 그래도 오랜만에 와서인지 못 보던 전망대가 새로 생겼으니 거기부터 가봐야겠다.
 
전망대에 올라 저 멀리 지나온 바닷길도 손 짚어 되 걷기도 하고. 등대로 오르는 논골담길도 손 짚어 올라보기도 하다가. 다시 방파제로 내려와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땀을 식히기도 하고. 해가 뜨는 동쪽 바다에서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저녁놀이 신기해 한참을 보기도하니. 어느새 집에 갈 시간인가 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열아홉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해파랑길은 부산에서 고성까지 이어진 길이다. 처음 동해안 걷기를 시작했을 땐 얼마 되지 않은 구간만 있었는데, 어느새 길을 다 잇고 번듯한 이름까지 생겼다. 덕분에 열아홉 번째 여행부터는 해파랑길이 길잡이가 됐다. 해파랑길 34구간은 동해시 묵호역에서 강릉시 옥계면 시장까지 18.9km로 제법 길다. 점심 먹고 출발해 저녁 먹기 전에 도착했으니 대략 5시간 20분 남짓 걸린 셈인데. 고성에서 내려가고 있었으니 반대방향으로 걸었다. 
 
* 가고, 오고
출발지였던 옥계까지는 강릉 시내버스를 이용했으나 올 때는 동해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탔다. 묵호에서 옥계로 가는 버스를 타고 옥계에서 다시 강릉 시내로 오는 버스를 타기에는 시간 맞추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시간도 시외버스보다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 잠잘 곳, 먹을 곳
시작하는 옥계에는 모텔이 한, 두 개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면사무소와 시장 주변에는 식당이 여럿 있다. 이후 망상까진 마을을 몇 군데 지나긴 하나 슈퍼 하나 찾기 힘들다. 하지만 이후 망상부터 묵호역까진 숙박시설과 식당이 늘어서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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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2 16:49 2017/02/12 16:49